3. 순종의 아들 이삭

 

아삭이라는 이름의 뜻은 <우습다> 인데,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가 100세의 고령에 이르렀을 때에 인체의 생리적으로 더 생상의 소망이 없었지마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과 은혜의 축복하심으로, 이와 같은 노년에 옥동자를 낳게 되였다. 과학자는 자연계의 현상만 추측하나, 우리는 과학 이상의 종교의 초자연적 사실을 믿음으로 아는 것이다. 이삭은 어느 점으로 보던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저는 허락의 아들이요 초자연적 출생이다. 저의 성격은 수동적이며 조용한 내성적인 성품의 사람이었다. 저의 장잠 몇가지를 들어 교훈을 삼저한다.

제 일, 저는 순종의 사람

아브람에게 한 번 큰 시험이 임했다. 그것은 만년의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다(창 22: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수종 하여 그의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앞세우고, 여호와의 지시하시는 모리아 산에 이르러,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놓고, 카로 죽여 번제로 드리려 하였다. 그의 독자를 번제물로 드리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수종 하는 아브라함이나, 결박을 당하여 제단에 올려 놓이는 이삭의 신앙과 순종은 과연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도 순종함이 이러하다. 저는 갈보리 산상에 십자가 제단에 자기의 몸을 자천하여 하나님께 드렸다.

이 때에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100세의 노인이 였고, 이삭은 나이는 25세의 청년이었다. 만일 이삭이 하나님에게 헌신하기를 싫어하였더라면 늙어 힘없는 아버지를 뿌리치고 도망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의 헌신은 여호와를 신앙함으로 명령의 순종하는 자발적인 헌신이 였음을 알 수가 있다.

주 예수 님의 헌신도 이와 같다. "이를(목숨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단의 헌신은, 일시적인 충동적이거나, 상대적 정신으로서가 아니라 철두철미 자원하신 헌신이었다.

제 이, 저는 견인, 무저항의 사람

창세기 26장을 읽어보면, 이삭의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라 골짝이 에서 우물을 파고, 그곳에 살았는데, 그 공에 사는 사람들이 시비함으로, 또 싯나에 가서 한 우물을 팠다. 그 곳 사람들이 또 시비함으로 르호봇에 가서 또 다시 우물을 파고 그 곳에서 살았다. 이에 이삭에게 여호와께서 나타나시어 "나는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창 26:18-24) 하셨다.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있는 구원의 우물에 대하여 시비하며, 자주 와서 메워 버리고자 한다.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시는 예수 님에게도 세차래 나 달려들어 그 마음에 우물을 메우고자 하였다. 우리의 마음의 우물에 생수가 강같이 흐름으로, 이로 인하여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을 마귀는 심히 미워하여 세상에 있는 돈, 명예, 지위 등으로 메우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견인한 정신으로 파고 또 팔 것이다. 그리하여 내종에는 승리할 것이다. 이때에 오직 여호와만 바라보고 견인 무저항주의로 일관한 이삭에게는 원수 아비멜렉이 그랄 에서부터 찾아와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노라" 하고, 항복하였다. 우리도 모든 역경에서 오직 여호와만 신앙함으로 나아가면 모든 난관이 다- 해결될 거시다.

제 삼, 저는 묵상의 사람

창세기 24:63절에 보면 이삭은 저물 때에 들에 나아가 묵상하였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이삭의 종교 생활이 어떠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과연 묵상이란 성결한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루터는 말하기를 목사가 됨에 세 가지 요건이 있나니 첫째 기도, 둘째 묵상, 셋째 시험이라 하였다. 우리는 무상으로 영의 시비를 실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