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고통의 봉사자 욥


욥을 창세기 46장 13에 있는 잇사갈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저는 아브라함과 같은 시대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욥기는 성서 중에 가장 오래된 고본(古本)인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이다. 욥기는 인생의 고통 특히 의인의 고통에 대하야 논란한 방대한 글로서 "의인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 함은 오랜 수수께끼가 되어있다. 눈물의 선지 예레미야도 의를 위하여 고투(苦鬪)하면서 이렇게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이니까?"(렘12:1)하고 주께 질문하겠다 하였다. 과연 세상에는 이러한 일이 없지 아니 하다. 사기, 횡령, 수뢰 등으로 배를 채워 살찐 자들이 평안히 잘 사는 자를 보게 된다. 반면에 조의 조식(粗衣粗食-잘 입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함) 하며 의를 행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의인에게 고통이 닥쳐오는 것을 본다. 상선벌악(賞善罰惡-선을 포상하고 악을 벌함)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에 대하여 의문이 없겠는가? 당시 욥에게 세 친구가 찾아와 고覽론(考古論=옛 일을 예로 논함), 또는 인과론(因果論=원인과 결과를 논함), 천계론(天啓論=하늘의 계시를 논함)으로 욥을 권면 하였으나, 욥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였다. 요컨대 [의인에게 임하는 고통은 형벌이 아니라. 더욱 아름답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징치이며 연단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고통의 깊은 뜻이다. 욥기의 사명은, 이와 같은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욥은 만대(萬代) 성도에게 다시없는 위로가 된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로서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한다 해도 욥이 당한 고난보다 더 고난을 당하는 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욥을 생각하고 인내하는 자에 복이 될 것이다(약5:11). 이제 욥기 전체를 통하여 욥의 신앙에 대하여 깊히 배움과 동시에 욥의 인내가 모든 성도들에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I. 속죄의 신앙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욥1:5)

이 말씀으로 미루어 욥은 참으로 철저한 기독신자라 하겠다. 여기에 번제 물은 곧 후일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만민의 죄를 대속 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자기의 죄인 됨을 깨닫고, 죄에서 속량함을 받아야 함을 깨닫지 못하면 진정한 신앙에 들어갈 수 없다. 또한 기독교의 지수를 경험하지 못한다. 근세의 소위 신 신학이라 함은 곧 죄를 부인하며 에수의 십자가는 일종의 희생적 봉사로 만 돌리는 것이니, 이는 화가 있을 것이다(히10:29). 태초 아단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여호와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물리치셨으니(창4:) 이는 무슨 연고인가? 가인의 제사에는 피가 없고 아벨의 제사에는 피가 있었던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가인은 자의적(自義的) 종교가(宗敎家)의 대표인 것이다. 오늘에 있어서도 교회 내에는 전과 다름 업이 이 두 흐름의 신자가 있다(눅18:9-14참조). 즉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주여! 주여! 하는 자는 다- 가인의 계통에 속하는 자이며, 통회하며 그리스도의 보혈을 신뢰하는 자는 다- 아벨과 같은 신자인 것이다. 많은 신학 자 중에는 회개의 경험도 없고, 성결의 요구도 없이 일종 종교(宗敎) 도락(道樂)으로, 기독교를 연구하는 자들이 많으니, 이와 같은 자들은 주께서 알지 못한다 하실 것이다(마7:22,23).

II. 가정의 고통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

욥은 의외의 재난을 당하여, 그 자녀 십 남매가 일시에 몰사하고 소유인 가옥은 다- 무너지고, 만 여 필의 소와 양 등 가축을 혹 빼앗기고, 혹 불에 타 죽기도 하고 하였다.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자기의 악한 창질이 나서 그 고통이 참으로 볼 수 없는 지경 이였다(욥1장, 2장). 이 때에 저에게 유일한 친구라 할, 그의 아내는 욥을 위로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조롱하며 배교를 권하였다. 이에 대하여 욥의 마음의 고통이 그 얼마나 심하였을 까? 오늘도 교역자의 가정에서 그 아내나, 혹 어떤 독실한 신자의 가정에서 그 아내가 밤낮으로 원망한 하여, 남편들의 신앙을 반대하며 조롱하는 일이 많이 있다. 이에 욥의 대답하기를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아쓴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2:10), 우리도 이러한 신앙을 나타내 보여야겠다. 저의 아내는 전일에 번영하한 자녀가 있을 때와 부항 목축을 가졌을 때에는 이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하심이라 하여 매일 아침 아멘 할렐루야로 지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그의 신앙이 어디로 갔는가? 우리가 이에서 깊이 배워야 할 것은 우리의 축복의 목표를 세상 물질에 두지 말고 오직 여에 두어서 신앙으로 부하며(약1:5) 선행으로 부를 삼아야 할 것이다(딤전6:18).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으로 복을 삼은 자는 반드시 낙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소망을 오직 하나님에게 둘 것이다(딤전6:17).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멸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잠12:4)

III. 물욕(物慾)에서 죽어진 신앙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 이다"(욥1:21).

이에서 우리는 모든 물욕에서 떠난, 욥의 신앙을 배워야 하겠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음과 같이, 사람이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우리는 소돔의 헛된 영화에 마음을 붙이고 있던 롯의 아내의 멸망을 생각하고(눅17:32), 금전, 명예, 권세의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면 롯의 처의 멸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크게 경성 할 것이다.

IV. 재림의 신앙

"내가 알거니와 나의 구속자가 살럁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19:25,26).

14장에서 보면 저는 모든 고통 중에서, 내세에 대한 소망이 좌절되었거나, 또는 내세관에 대하여 희미하여진 것처럼 보이나, 저에게 이 같은 연단이 임하는 중에, 저의 신앙은 참으로 놀라운 빛을 발하게 되었으며 깊은 색의(索意)에 들게 하였던 것이다. 25절의 말씀은 당당한 재림의 신앙이며, 26절은 혁혁한 내세관이니 이로 보건대 성경의 심원(深遠)함과 고금의 성도의 신앙이 성령의 계시로 되어있음을 알 수가 있다. 오늘날 교계에 유력하게 사역하는 사람 중에서도 속죄는 믿을 지라도 재림은 믿지 아니 할뿐 아니라 일종의 몽상(夢想)과 같이 여기는 자가 퍽 많다. 그러나 우주의 중심 문제는 요컨대 그리스도의 재림 문제에 있으며, 인류의 평화 실현도 요컨대 저의의 왕 그리스도의 재림으로서 실현될 것이다. 재림을 믿지 아니 하는 자는 결국 성경을 믿지 아니 하는 자라고 할 것이다.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16:15).

V. 회개와 축복의 회복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15,16).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暮年)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욥42:12 상 반절).

이에서 의인에게 오는 모든 고통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 욥은 원래 주의 칭찬하심과 같이 정직하고 악에서 멀리 떠난 자이었다(욥1:8). 그러므로 얼마동안 저는 자기의 의로움을 구가하는 중에 있었으나, 주의 징계가 임하는 동시에, 저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경험을 하였다. 즉 주를 친히 뵙게 된 것이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다. 오늘에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주의 위엄(威嚴을) 보기 전에는 진정한 회개가 생기지 아니 한다. 모든 믿는다 하는 사람들 마다 이와 같은 견신(見神)의 경험을 가져야 한다. 신앙이란? 막연한 정신적 추상(推想)이 아니라, 확실히 하나님을 뵙고, 듣고 만지는 경험이다(요일1:1). 또는 욥이 끝까지 참고 견디었음으로 영적으로 이러한 새 경험을 맛보게 되었으며, 물질 상으로 전 보다 배의 축복을 얻었으며, 자녀 십 남매도 다시 얻게 되었으니 "시험을 받고 참는 자는 실로 복이 있도다"하신 말씀을 기억하라(약1:1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