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평민 선지 아모스


아모스는 기원전 793년 예언자이다. 저의 시대는 유다왕 웃시야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 2세의 때이다. 여로보암의 시대는 이스라엘의 전성시대인 동시에, 한편 정치와 종교와 도덕은 극도로 타락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응하여 하나님께서 통쾌히 외칠 선지 아모스를 일으키셨다. 저는 유다 남방 드고아(예루살렘의 남쪽 12마일)에서 출생하여 사명을 받은 후 조로 더불어 교제하며 일생을 편안히 지내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쓰시고자 하는 사람이니 어찌 전원의 풍경에서 일생을 보내게 할 것인가? 하루아침에 저에게는 대 사명이 임하였다. 하나님께서 직접 저를 부르셨다. 이에 저는 궐기하여 부패하여 가는 정치권, 종교계에 격렬한 설교를 하였으며, 쇠약하여 가는 선민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오늘날 교계에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것은, 이러한 평민 전도자가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지옥으로 향 하여가는 영혼을 돌이킴에는 대 신학자의 논설이 나니라, 신앙의 체험을 증거 하는 단순한 그리스도의 증인인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에도 이같이 직접 사명을 받아 일어나는 전도자가 필요하다. 저는 철투철미 정의의 사자이다. [원하옵기는 주께서 직접 우리에게 임하시여 이와 같은 정의의 투사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 이제 아모스서 전체를 통하여, 아모스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배우고자 한다.

I. 열국(列國)의 심판(審判)을 예언(預言)

저는 예언 벽두에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임몬, 모압 등 열국에 대하여 큰 심판을 예언하였으며, 따라서 유다 와 이스라엘에 대하여서는 반드시 심판이 임할 것을 선고하였다. 어느 시대이던지 전도자의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은 인민의 죄악을 공격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일이다. 아모스라는 이름의 뜻은 [무거운 짐]라는 뜻이니, 이같이 모든 사람의 귀에 거슬리는 악담, 저주와 같은 설교를 누가 하기 좋아하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니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여 전하지 않는다면 화가 도로여 저도 자에게 미칠 것이다(고전 9:16, 겔 3:18). 그러므로 오늘날 교계에 있어 사명 있는 전도자는 죄를 대적하되 피를 흘리기까지 하여야겠다. 모든 이단, 음행, 결당, 투기, 시기, 속화 등에 대하여 담대히 공격하는 전도자를 하나님은 원하시다. 저가 유다에 대하여 증거 한 예언은 그 후 200년만에 바벨론의 내습으로 응하였으며(암 5:5).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은 그후 60년만에 앗수르의 내습으로 응하였다(암 6:14).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말씀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응험(應驗)한다(왕하 10:1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II. 형식적 예배를 공격함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를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암5::21,22).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나 [ 지나서 우리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암 8:5상반절)

당시의 종교상태는 다만 형식과 의문(儀文)만 남아 있었다. 인민들이 모여서 예배하며 번제를 들일지라도, 저들의 죄악을 겸하여 행하면서 주의 거룩한 이름을 부름이니 이것이 화가 있을 일이며, 안식일에 형식으로 휴업은 하나, 그 마음에는 장사하여 이를 남기려는 마음뿐 이였으니 이것이 무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예배가 되겠습니까? 오늘날 한국 교회 내에서도, 어느 교회에서는 주일에 예배하다가 당파의 육박전이 생기는 곳도 있으며, 어느 교회에서는 부흥회 중에 한바탕 난투를 일으키는 일도 있어서 교회당내에 경찰까지 동원하여 진압 검속하는 일이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이것이 무슨 예배이며 무슨 부흥회가 되겠는가, 마귀의 부흥회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이러한 곳에 함께 계시지 아니하신다. 이렇게 모이면서 스스로 구원 얻은 줄로 믿으며, 하나님의 일하는 것으로 안다면 이는 큰 착각이다. 아- 모든 교회는 열심히 회개하여 이와 같은 죄악에서 떠나 거룩한 새 덩어리가 되어야 하겠다. 예배는 형식과 의문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심령과 진정에 있는 것이다(요 4:24)

III. 부호(富豪)를 타도(打倒)함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치며 양떼에서 어린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암 6:3-6)

당시는 실로 부호의 권세가 발호(跋扈)하였다. 저들은 빈민의 머리에 있는 티끌까지(암 2:7) 탐 내여 저희들의 안일 호사의 자료를 삼은 것이다. 겨울이면 추위를 피하고, 여름이면 더위를 피할 곳에 화려한 별장을 하여 놓고, 밤과 낮으로 먹고 마시며 노래하며 뚜들기는 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이처럼 보호의 세력이 왕성하면 그 국가의 종교와 정치와 도덕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는 거시이다. 오늘날 교회 내에도 무엇으로 속화가 들어오며, 교역자의 타락도 무엇으로 말미암아 오는가, 곧 부호로 말미암아 온다. 어떤 교회에는 돈 목사, 돈 장로, 돈 집사가 있다. 이 사람들에게 영적인 것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교역자도 머리를 숙이며 그의 잘 못함이 있을지라도 감히 책망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멸망 받을 일이다. 황금에 머리 숙이는 교역자, 신자들은 시내 산에서 금송아지 우상에게 절하며 뛰놀던 아론과 이스라엘 무리에서 다를 바 없다. 부호로 사치가 생기며, 안일이 생기며, 따라서 음행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곳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약 5:1-3). 부자여 그 보물을 하늘에 쌓은 일을 행하며 복이 있을 것이다.

IV.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에 대하여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 함이 아니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이 말씀은 오늘의 교회에 응하여 오는 것이다. 현대 교회에서는 신학적, 철학적, 사상문제의 강연으로 일을 삼고, 적확한 성서적 설교는 듣기가 어렵게 되었다. 우리 한국 교회에도 세월을 따라 점점 이러한 경향에 빠져 가는 것이다. 벌서 어떤 교회에서는 순 성서적 복음설교는 폐지된 형편에 있다. 중생이 무엇인지, 성령세례가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 회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체험도 없는 무리들이 강단에서 팔을 걷어 오리고 외치고 있으니, 참으로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이 이 땅에 온 것이다. 모든 영혼의 피폐(疲弊=지치고 쇠약해짐)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가? 교회의 부흥은 어느 시대나 성서의 부흥에 있는 것이다. 루터, 웨슬례, 무디의 부흥은 다- 성서의 부흥 이였으며, 요시아 왕의 부흥, 에스라의 부흥도 성서의 부흥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성서를 읽히며, 이 성서대로 전하며 가르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V. 성지(聖地)의 회복(恢復)에 대하여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내가 저희를 그 본토에 심으리니 저희가 나의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9:11-15)

이는 참으로 귀중한 약속이다. 아모스는 유다 와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고하는 동시에 저는 또한 이러한 원대한 희망을 말하였다.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 대군에게 진멸된 이래 유다 인은 세계의 흩어지게 되었으며, 성지 파레스타인은 황량한 폐허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나 성서는 변치 아니 할 것이니, 이 성지의 회복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유다 인은 세계에 산재할 지라도 이 약속을 굳게 믿고 있다. 최근 파레스타인의 정황은 이 약속 성취에 싹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성지의 개간이 시작 되여, 각국에 유다 인이 해마다 이주하게되며, 예루살렘에는 히부리 대학이 건설 되였는데, 그 대학에는 종교학과가 있어, 옛날 구약의 법대로 24반열로 조직되어 있다하며, 기원70년 멸망 후에는 이슬이 내리지 아니하던 것이 최근에는 옛날 축복의 때와 같이 이슬이 흡족히 내림으로 경작도 풍성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다- 성지 회복의 전조이며, 주의 재림이 절박한 이 때인 것을 주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