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주의 양친 요셉과 마리아

 
요 셉

요셉은 주 예수의 양부(養父)이다. 유대인의 대 망하는 메시아는 다윗의 후예(後裔)로 난다는 것은 구약성서에 명백히 기록 되여 있다 (삼하7:12,13,16). 주의 양부인 요셉은 역시 다윗의 족속이다(눅2:4).

1. 저는 의인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마1:19)

저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여 희생의 피를 힘입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다. 이 같은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 일직이 아브라함이 천사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의 예고를 들었을 때에, 저는 여호와께 말씀을 드릴 때에 의인 열 사람이 있으면 이 성을 용서하시겠습니까? 할 때에, 주의 말씀이 의인 열 사람을 인하여, 내가 이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라(창18:32) 말씀을 하셨다. 이같이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귀하다. 이렇게 율법에 경건한 요셉에게 메시아의 양육을 위탁하심이 주의 심상치 않은 섭리인 것을 알아야 한다. 저는 주의 유아 시부터 교육은 히브리 적이었다. 주의 지혜가 점점 자라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함을 받게 되었음이 어찌 저의 가정교육의 공효(功效)가 없다 하겠습니까?(신6:5-9)

2. 저는 사랑의 사람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1:19 하반)

저는 자기와 약혼한 여자 마리아가 잉태하였다함을 들었을 때에, 이는 유대인의 율법에 용납되지 아니하는 죄인 줄을 알았다 (신22:22-24). 그러나 저는 이것을 들어내지 아니하고 조용히 끊으려하였으니 이것이 저의 사랑의 인격을 가진 표징이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가리운다] (벧전4:8)하심이, 성서의 교훈이다. 일찍이 알렉산더 대왕이 유명한 화가에게 자기의 초상을 그리어달라 하였을 때에, 대왕은 어느 전쟁에서 그 오른편 이마에 칼의 상처를 당하였다. 화가는 어떻게나 대왕의 오른편 이마에 있은 상처를 숨기기 위하여 대왕으로 하여금 오른 손으로 그 이마를 집게하고 그 형상을 그려서 훌륭한 초상화를 그리었다고 한다. 이 화가가 알렉산더 대왕의 흉터를 가리워 주고자 하는 것과 같은 정신으로 우리들은 형제의 죄와 허물을 들어내며 비방하지 말고 가리워 주어야, 하나님의 율법을 이루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가리워 주셨다(잠17:9; 롬13:10, 3:25)

3. 저는 영교(靈交)의 사람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마1:20 상반).

이 말씀을 상고해 보면, 저는 평소에 깊은 영교(靈交)가 있던 사람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에게도 때때로 이러한 묵시(默示)가 있어야 한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放恣)히 행하거니와] (잠29:16)하였다. 그러므로 묵시가 없는 개인의 신앙은 빈 껍데기뿐이며. 묵시가 없는 국가의 정치는 망할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영교에 깊었던,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을 숨기지 아니하셨다(창18:17, 20-23). 에녹은 영교 중에서 주와 300년간 동행하였음은, 저가 그 세대에 대한 묵시를 받았기 때문이다(유1:14). 심판의 대 환난이 반드시 임할 징조를 미리 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시대가 아무리 상공업(商工業)으로, 문학 예술로 문명을 자랑하고 있었을지라도, 저의 심령에는 날마다 하늘의 음성이 심판의 소식을 울리고 있었다. 우리의 생애가 어떠합니까? 원하고 바라기는 시대에 진운(進運)을 알고자 신문지에 주목하는 것 보다 오직 아브라함의 하나님, 에녹의 하나님께 나아가 영교의 깊은 생애를 보내며, 영원한 세계의 묵시의 밝은 빛에 도취하시기 바란다.

4. 저는 순종의 사람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마1:24)

요셉은 1장 20절에 묵시를 받았을 때에 아무 의문 없이, 즉시 그 아내를 다려왔다. 이것이 참된 신앙을 가진 증거이다. 순종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였음으로 만 국민의 신앙의 조상이 되었다. 그가 처음 하나님의 부름을 입었을 때에 아무 의심이 없이 그 본토 우루를 떠났으며(히11:8), 또 저에게 그 독자 이삭을 잡아 번제로 들이라 하실 때에도 저는 주저하지 않고 곧 순종하였다(창22:1-3; 히11:17,18). 그럼으로 우리에게 주의 지시가 임할 때에, 우리는 이에 이론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즉시 순종함으로 받을 바 복을 잃지 말 것이다. 사울 왕은 순종치 아니하다가 결국 은혜에서 떨어지고 말았다(삼상15:22). 수종이란 하나님과 인간의 연쇄 고리가 되는 것이며, 모든 축복의 연원(淵源)이 되는 것이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온 우주는 죄와 사망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한 사람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온 우주가 다시 의와 생명으로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주의 일생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 할뿐이고 "아니라" 함은 없었다(고후1:19,20). 우리들도 범사에 "네" 할 것뿐이다.

5. 저는 성결한 사람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였으니] (마1:25상반)

이 말씀을 보면 저는 참으로 성적으로 정결한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교훈하기를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살전4:4,5) 하였으니, 저는 참으로 이러한 교훈에 부합되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저 혼인의 신성이 어디에 있는가? 남녀 이성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주는 데 있는 것이다. 결혼을 다만 성욕관계로만 본다면 이는 금수와 같은 야비함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는 자들의 사상이다. 부부애의 신성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내 준다(살전5:25; 창2:18).

신약의 요셉도 이와 같이 성적 정결(貞潔)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보는 동시에, 구약의 요셉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도 역시 남녀 교제에 있어 퍽 근신한 청년이었다(창39:6-11). 오늘의 모든 천년 남녀들은 소위 연애라는 그물에 걸려서 말할 수 없는 추악한 행동을 자행하고 있다. 소위 교회라는 곳에 [은혜를 변하여 색욕(色慾)을 일 삼은 일이](벧후2:2; 유1:4) 얼마나 많은가? 남녀가 서로 화려한 의복을 입고 얼굴에 분을 바르며,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서로를 향하여 애교를 부리니, 저들의 눈에는 음욕이 충만하다. 쓸데없이 편지하며, 또는 예물을 주고받는 물건연애(物件戀愛)와 또는 결의(結義) 남매 등의 행위는 다- 음행이다. 이러한 자리에 앉으며, 이러한 길을 다니는 자들이여 속히 그 자리에서 일어나며, 속히 그 길에서 돌아서라. 멸망이 갑자기 그 머리 위에 임할까 두려워하라. 경성 하여 회개하라.

 

마 리 아

 

주의 모친 마리아는 참으로 이상적(理想的) 여성이다. 저에게 여러 가지 아름다운 부덕(婦德)이 가 추워 있었다.

1. 저는 겸손한 사람이며(눅2:48).

2. 신앙의 사람이며(눅2:49).

3. 주와 함께 한 사람이며(눅2:28),

4. 깊이 생각하며 주를 대한 사람이며(눅2:19, 50),

5. 성서적 신앙이 깊었던 사람이다(눅2:46-55). 이와 같이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준비된 저에게 구주의 강탄(降誕)이 위탁되었음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었음을 알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경계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일이 있다. 그것은 곧 천주교의 마리아 예배이다. 저가 오늘에 일종의 우상이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큰 오류이다. 무릇 이 우주에 인간에게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외에 없는 것인데, 마리아가 어찌 예배를 받을 수 있겠는가? 이는 그녀의 근본 원하는바 아닌 것이로되, 후세의 사람이 저를 우상을 만들어 준 것이다. 저도 우리와 같이 주의 구속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천사의 문안에 그가 두려워함도 역시 죄인 된 증거이며(눅1:30; 창3:10), 오순절 기도회에 저도 역시 참여하였으니(행1:14) 은혜를 받아야 할 사람일뿐이다. 누가복음 11장 27, 28절의 말씀에는, 후세 마리아 예배의 부패한 종교를 미리 경계하였음인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