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신앙의 여 선지 안나

(눅 2:36-38)


안나라는 이름은 [은혜]라는 뜻으로, 구약에 한나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저는 처녀로 출간한지 7년만에 과부가 되어 84년간을 지내었다 하였으니, 14세에 결혼을 하였다해도 예수의 탄생하실 때에는 벌서 105세의 노인이었다. 저의 생애에 대해서 누가복음 2:36-38에 간략히 기록되어 있는데, 저의 신앙과 인격에 대하여 몇 가지 교훈을 받자 한다.

저는 정절(貞節)의 사람

저는 과부로 84년 정절의 생애를 보내었다. 영적인 의미로 오늘 우리 성도의 생애도 이와 같아야 한다.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은 벧아니 건너편에서 손을 높이 들어 축복하시고 바람과 같이 승천하신 후 교회는 영적 과부의 처지에 있게된 것이다(눅18:3,7, 마9:15). 그러므로 이차 별세한 남편을 위하여 평생을 수절하고 지낸 안나의 생애는 참으로 교회의 모범이다. 우리들은 무화과나무의 때를 언약하시고 떠나신 신랑 예수의 다시 오심을 바라면서 정결한 생애를 보내어야 한다. 미망인의 생애란 그 남편과 이별함이 육신이요 마음은 아니다. 외롭고 쓸쓸한 그의 마음속에는 세상을 떠난 그의 애인의 모습이 불켠 듯이 오고 가는 것이다. 그럼으로 저의 정신과 육체는 오직 그를 위하여만 사는 것이다. 저가 만일 그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그 때에는 벌서 정조는 잃어버린 사람이다. 그에게는 별별 유혹이 다가 오지만, 그의 굳센 정절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의 성도의 처세도 이러하다. 마귀는 여러 가지로 유혹하여 그리스도를 향하는 우리의 정조를 빼앗고자 밤낮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유혹하는 자가 우리에게 황금으로 오던지, 명예로 오던지 그 무엇으로 올지라도 우리들은 굳게 서서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하겠다. 요한은 그의 계시록에, 시온에 오른 자들을 보니 정절이 있는 자라 하였다(계 14:4). 오늘 교회가 속화하며 교역자들이 사회와 결탁하여 어름 어름하는 것은 다- 음행하는 여인의 행위와 같은 것이다(약 4:4).

저는 성별(聖別)의 사람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 하고]하였음은, 저의 일생이 참으로 경건하고 성별 된 생애였음을 말해 준다. 우리의 영혼도 이와 같이 지성소(至 聖所)의 생활을 하여야 하겠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으로 교제하는 생애를 지속하기를 원하는 바이다. 시편 84편1-2절에, 시인의 노래를 들어 보라 [만 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만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 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이처럼 우리들은 항상 주안에서만 살아가기를 힘쓸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깊으신 품속에 안 키울 때에, 그로 말미암아 지혜와 지식의 모든 것을 풍성히 받게 되는 것이며, 그이 기묘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 안에 기쁨이 있으며, 그 안에 능력이 있으며, 그 안에는 아직 우리에게 알리어지지 않은 비밀한 것이 싸이고 싸여있다. 원컨대 나의 사랑하는 주님은 나를 끓어 [그 후궁(後宮)에 들어가게](아가서 1:4) 하여 주시기를 기도한다. 우리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주님 게신 곳에서 먹고 마시며 잠자며 일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한 순간이라도 주안에서 벗어난다면 곧 죄인 될 뿐이며(롬 8:1) 아무 일에도 성공할 수가 없다.

저는 기도의 사람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하였음을 보면, 저의 일생은 오직 주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기도로 생애를 일관하였을 알 수가 있다. 과연 기도는 성도의 생애에 있어 불가결의 요소이다. 오늘 한국 교회가 점점 침체되어 감은 그 원인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도하는 교역자, 기도하는 제직, 기도하는 신자가 적은 것이 그 원인이다. 교회에서 학술 강연이나 한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며, 연극이나 한다면 사람이 많이 모여 오지만, 기도회로 모인다면 아주 영성(靈星)하게 모이는 것을 우리가 때마다 보게된다. 깊이 기도하지 아니하고 설교하는 교역자, 심지어 기도는 미신이라고 하기까지 말하는 무리들은 다- 교회에서 축출해야 한다.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의 속죄를 믿는 동시에 그 생애도 모범 하는 것이 안입니까? 주님의 한 생애는 참으로 기도의 생애였다. 광야에서도 기도하셨으며, 산에 가셔서도 기도하셨으며, 공중 앞에서도 기도하셨으며, 은밀한 골방에서도 기도하셨다. 한반 경건하게 기도하여 본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교회는 냉 냉한 찬바람이 돌며, 시기, 암투, 결당 등, 죄로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겸손하게 주의 앞에 무릎을 끓고 기도하자. 주께서 우리를 귀히 쓰시리라. -아멘-

저는 봉사(奉仕)의 사람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저는 헌신의 생애로 일관하였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표적은 곧 이것이니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살지 아니고, 오직 주를 위하여 산은 것이다. 진실로 성자의 생애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이라](롬 12:1)하였다. 무릇 그리스도인의 생애란 봉사의 생애가 되어야한다.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며, 복음을 위하여 힘써 봉사하라. 그 사람의 생애가 실로 형통하리라. 주께서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 오셨다고 하셨다(막 10;45) 말씀하셨음 과 같이, 저는 세상에 계실 때에, 때로는 제자의 발을 씻기시기까지 겸손함으로 봉사의 정신을 가르치셨다. 섬기A을 받으려는 정신은 교만한 자의 소위이며, 게으른 자의 소위이다. 소위 한국에서 양반이라 하던 사람들은 교회에 올 때에 성경책보도 하인에게 들이고 인력거(人力車)나 자동차를 타고 오는 등 아직까지도 부패한 안일의 정신과 교만한 정신이 빠지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예수가 그 마음에 거하실 것인가? 이는 다- 스스로 속이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형상이시나 종의 형상을 취하여 죽기까지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받치신 일을 우리는 깊이 배워야한다.

저는 간증(干證)의 사람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 하니라] 저는 간증의 사람이었다. 주를 믿는 사람마다 다- 전도할 책임이 있다. 그 받은바 은혜를 간증하여야 한다. 대개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우리의 생애에 기도의 깊은 신비적 반면이 있는 동시에 복음전파에 노력하는 활동적 반면도 있어야 한다. 전도가 없는 기도는 주세시대의 기독교이니, 즉 신비와 사색에만 치우치기 쉽다. 기도가 없는 전도는 소위 근대주의의 기독교이니 즉 일종 사업적인데 치우치는 것이다. 그러나 안나의 생애는 참으로 이상적 기독교인의 생활이다. 저는 기도하여 신비를 함양(涵養)하며 넓이 간증하여 복음을 들어내는 생애였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행 1:8)한 주의 말씀대로, 우리들은 각각 책임을 지고 전도하여야 하겠다. 안드레의 전도로 그의 형 시몬이 주께 돌아왔으며, 수가성 우물가에 나타났던 여인의 간증으로 사마리아성에 큰 부흥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던가. 그럼으로 오늘은 넓이 복음을 전파할 때이다. 현대 교회의 현저한 결함은 일반 교인에게 전도의 열이 식어진 사실이다. 유식 계급에 있다는 교역자들은 주야로 독서에만 열중하며 전도는 등한히 하고 있다. 모든 영혼들이 지옥으로 향하여 다름질 하는 것을 저들은 보지 못한다. 어떤 학구가 글에 미치다 시피 하여 하루는 강가에 나아갔는데 고등어를 지고 가는 장사가 물을 건너다가 빠졌다. 그 때 선배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생각은 하지 않고 글을 짓기를 [고등어상(高登魚商) 심입용궁(深入龍宮)-고등어 장수 깊이 용궁에 들어가는 구나]하여 좋은 시를 지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 그 사람은 벌서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 교계는 소위 신학적 여러 변증(辨證)과 조직(組織)에만 힘쓰며, 연구(硏究)하며 이론(理論)하는 文弱(文弱)함에 빠져 있다. 이와 같이 학문만 연구하고 있는 동안 죄악 중에서 헤매는 뭇 영혼들은 수없이 지옥으로 빠져 들어가니 참으로 통탄한 일이다. 바라기는 오늘 교회에 직접전도자가 많이 일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