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소망의 사도 베드로

 

예수의 사도들은 각각 그 특색이 있다. 바울은 신앙의 사도요, 요한은 사랑의 사도이며, 이에 말하고자 하는 베드로는 그의 쓴 글들을 읽어보면 그의 신앙의 특색은 소망에 넘쳐있음이다. 저의 쓴 글인 베드로 전후 서를 읽으면 누구든지, 저의 넘치는 소망을 접하게 된다. [산 소망] [하늘에 감추인 기업] [영광으로 나타나실 때] [영광의 면류관] [신천 신지] 등 소망의 넘치는 말들로, 저는 일반 박해 중에 있는 신도들을 위로하였다.

저는 주님의 수제자였다. 신약 성경에 제자들의 일음이 네 곳에 기록되어 있는데(마태 10:2-4; 마가 3:13-19; 누가 6:14-16; 사도행전 1:13) 한결같이 베드로의 이름이 첫 번째로 기록되어있다. 저의 본명은 [시몬](히브리말로 듣는다는 뜻)이요, 게바(수리아 말)와 베드로(헬라말)는 다 - 같은 뜻인데 바위(반석)이라는 뜻이다. 저는 타고난 성품이 용감하며, 급격하며, 솔직하다. 이러한 성품에 주님의 은혜를 담아 가지고 복음을 위하여 참으로 질풍 신뢰적(疾風迅雷的-심한 바람과 번개처럼 빠르게)) 역사를 하였다. 저의 생애를 통하여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한다.

저의 직업

저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은 이름 없는 어부였다(마 4:18). 주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에, 당시 명성 있는 학자나, 종교가를 택하지 아니 하심은, 참으로 인간의 방법과 다르신 하나님의 경륜을 볼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고전 1:27-28) 하시는 역사인 것이다. 인간의 자연성(自然性)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로서 능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바울은 벤야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책망 할 것이 없는 율법가(律法家) 이였지만, 바울이 가진 이 자연성(自然性)에 속한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뿐이며, 그리스도와 원수가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의, 도덕, 수단, 지혜라 하는 것은, 다 - 육적(肉的)인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서 능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서 능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자고로 위인의 자취를 살펴보면, 궁벽한 시골에서 나온 사람이 거반 이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은 농부였으며, 다윗은 양을 먹이는 목동이었으며, 엘리사도 밭 갈든 사람이며, 아모스도 목축과 재배를 업으로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즉 이러한 사람들의 정치와 사상과 권능이 한 세대를 휩쓸었음은, 저들에게서 나온 것이 나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아 이룬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에 주의하여 자기를 온전히 주께 들여 하나님의 이적적(異蹟的인 그릇이 되어야 한다.

저의 신앙고백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 가셨을 때에 4,5천명의 군중이 그 뒤를 따랐다. 그 때에 군중들의 예수에게 대한 이해는 형형 색색이 이었다. 혹은 세례 요한이라 하며, 혹은 엘리야라고도 하였다. 그 때에 베드로는 주님의 물음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시이다](마 16:13-16 참조) 라고 답하여, 그 신앙고백을 하였다. 이는 베드로의 지식으로 한 것이 아니오, 오직 성령의 계시하심으로 된 것이다. 과연 신앙이란 인조 품(人造 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다. 신앙이란 이적이요 권능이다. 만일 인간의 이지(理智)로 예수를 안다면, 기독교는 학 박사(學博士)의 전유(專有)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마로 알고 믿게 됨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서 만 되는 것이다(고전 12:3). 신앙이 의지(意志)나 사상(思想)이나 이지(理智)에 토대(土臺) 한다면 참 신앙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며, 그의 권능에 토대(土臺)하여야 변하지 아니한다. 요동치 안는다. 할렐루야 !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만세 기독교의 기초적 신앙고백이다. 주께서 이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셨다(마 16:18). 누구든지 이 신앙을 고백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며, 이런 신앙을 고백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

현대 교회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경해가 가이사랴 지경에 모였던 군중의 견해를 가지 자가 많다. 예수를, 세계 삼성(三聖)의 한 분으로만 아는 것이 보통이며, 혹 철학자, 혹 사상가, 사회개혁자, 심지어는 사회주의자라고까지 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다 -육적(肉的)인 것일 뿐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저의 변화산 경험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1-2) 이 것은 베드로의 일 생애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참으로 장엄한 경험이다. 저는 말년에 이 사실을 일반 신도들에게 간증하여 경계하기까지 하였다(벧후 1:18). 헬몬 산정에서 나타내 보이신 주님의 영광과 위험은 참으로 숭고(崇高)하다. 예수의 신적(神的) 현현(現顯)이다. 저는 그때에 그 영광에 사로잡힌바 되었다. 이 사실은 공중 재림의 모형이다. 여기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으니 모세는 장차 공중에 모일 부활한 성도의 대표이며, 엘리아는 살아서 들임을 받을 성도의 대표가 된 것이다, 아 ! 우리도 주와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경험이 있어야 능히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올라가고 또 올라가라 우리의 영혼이 주의 놀라운 영광에 접촉하게 될 것이다.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간 모세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며, 가멜산 꼭대기에 올라간 엘리야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요한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요 1:14)라고 증거 하였다. 우리가 바라고 동경 하가는 이와 같은 주의 영광의 빛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저의 실패와 통회

(마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 하니라] 이 역사는, 저의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참회(懺悔)의 사실일 것이다. 저의 성격은 원래 솔직하고 과감한 사람이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신 후, 주의 생명의 떡 설교를 들은 군중들이 다 주를 떠나갔을 데, 저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하여, 주의 마음에 위로를 주었으며, 조금 전에 저는[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5) 호언 장담을 하였지만 이제 기야바의 법정 문밖에서, 주를 저주하면서 모른다 하였으니 너무도 비겁해 보인다. 그러나 저의 부인(否認)은 베드로의 중심으로 한 것은 아니다. 저는 충직한 하다.

이에서 우리는 인간의 약점을 보게된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도덕적 자유가 없다. 누구든지 선을 원하되 악을 벗어날 수 없음은 인간의 자연성에 필연의 관계이다(롬 7:14, 17-18). 베드로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거하는 죄성(罪性)이며, 육성(肉性)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저에게 가상(嘉賞)할 것은 그의 통회하는 마음이다. 사람이 누가 허물이나 죄가 없겠는가? 그러나 회개하는 것이 귀한 일이다. 여호와의 구하시는 제사는 오직 상한 심령이니 주께 통회하는 마음을 부흥케 하신다(시 51:17). 다윗의 죄가 사울의 죄보다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나 사울은 버림을 받고, 다윗은 사유하심을 받았으니 이것은 사울에게는 참 회개가 없었고, 다윗에게는 진정한 통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설에 베드로는 일평생 밤에 닭의 우는소리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저의 오순절 부흥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7)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

그처럼 비겁하던 베드로로 하여금, 많은 대적(對敵) 앞에서 사자와 같이 부르짖게 한, 그의 담력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입니까? 누구나 놀라지 안을 수 없다. 한 계집 종 앞에서 주를 모른다고 하던 저가 이제는 공회(公會) 앞에서 대담하게 질책하며 설교하게 되었으며, 저는 최후에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영광의 순교를 하였다. 저의 심령에 일대변화(一大變化)가 일어난 것은, 오순절 날에(행 2:1-4) 성령세례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에서 승리로 운 그의 생애의 비결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도 모든 비겁함에서 떠나 권능의 봉사를 하기 위하여서는 오직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