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물고기 뱃속의 선지 요나


예언자 요나는 갈릴리의 북쪽 드헤벨 사람 아밋대의 아들이다(왕하14:25). 저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로서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 등과 서로 연계가 되어 역사를 하였는데, 여로보암 2세가 치세하던 때이다. 전설에 의하면 저는 엘리야 선지가 살려준 사렙다 과부의 아들이라 한다. 그의 저서 요나서는 예언서 중에 가장 먼저 된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전 830년, 혹은 800년경에 예언한 것이다.

저가 니느웨의 전도 사명을 받았으나 그곳에 가기를 싫어하여,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다가 해상에서 폭풍을 만나 뱃사람들에게 바다에 던짐을 받게 된다. 마침 하나님의 예비하신 큰 물고기에게 삼킴을 받아 그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내다가 다시 육지로 토함을 받고는 바로 니느웨로 가서 전도한 일을 기록한 것이 곧 요나서이다. 본서를 통하여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한다.

다시스로 가는 길

니느웨로 가라고 명하신 주의 사명에 불복하고 다시스로 피하여 가려 하였음은 아마도 저의 생각에,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는 앗수르의 수도임으로 만일 저들이 자기의 전도로 인하여 회개한다면 이는 도리어 원수에게 축복하는 일이라는 편협한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인 줄 안다(욘 4:1-2 참조). 다시 말하면 원수의 망하는 것을 기뻐하는 정신이다. 이는 신약의 사상에 비하여 그 얼마나 유치하며 편협한 것인가.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요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롬 3:29).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박애의 정신이니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국가나 인종의 차별이 없는 것이다(고전 3:11; 갈 3:28).

다시스는 유대의 서쪽 스페인 해안의 땅이며, 니느웨는 유대의 동쪽 앗수르의 수도이니, 요나의 피하여 가는 길은 주의 명령하신 곳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이것은 모든 인류의 가는 걸음을 대표한다. 인류는 에덴에서 쫓겨난 이래, 하나님을 반대하는 근성이 생겼으며(롬 8:7), 그 가는 길은 천국과 정반대되는 지옥의 길이다. 그럼으로 성서에는 회개를 권고하며, “돌아오라”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행 3:19; 렘 3:17. 9, 22, 4:1; 눅 15장 등 참조).

요나로 인하여 큰 폭풍이 일어났음으로, 사람들은 모두 큰 두려움과 불안에 싸이게 되었다. 이는 한 사람, 요나의 불순종으로 인함이었음이,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죄와 사망이 전 인류에게 미치게 된 사실과 유사하다(롬 5:17,19). 이로 보건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일이 비록 한 사람의 작은 일이라 해도 그 결과는 크게 미치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으로 우리는 작은 일에 불충성함으로 큰 심판을 받지 말 것이며, 나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교우 전반의 영적인 피폐를 가져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작은 일에 충성한 데 대한 보응과 한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순종한 결과를 하나하나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마 25:21, 롬 5:19 참조).

물고기 뱃속에서의 3일

요나는 자기로 인하여 배에 탄 모든 사람이 불안에 빠지게 되었음을 아는 고로(욘 1:12) 자원하여 바다에 던짐을 받았다. 때에 섭리의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다가 저를 삼키게 하셨다. 불순종의 길은 이처럼 불안에 불안을, 위험에 위험만을 거듭하게 한다. 세상에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 중 이 같이 불순종의 길을 가다가, 종내 패망하는 가련한 영혼이 적지 아니하다(눅 15장의 형편을 참작). 악인의 길은 형통치 못한 것이다.

요나는 여호와의 낯을 피한 결과 폭풍의 위험을 만났으며, 폭풍의 위험을 피하여 물고기 뱃속으로 삼킴이 되었다. 이는 사자를 피하여 도망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안으로 피하여 손으로 벽을 의지하다가 뱀에게 물림과 같은 일이다(암 5:19). 악인의 가는 길은 동에 가도 패망이요, 서에 가도 패망이요, 남에 가도, 북에 가도 패망일 뿐이다. 그러나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신다(계 3:19). 요나의 불순종의 길에 폭풍을 예비하시고, 큰 물고기를 예비하심은 저로 하여금 그 불순종을 징치(懲治)하시고자 하시는 주의 크신 사랑을 나타내심이다. 만일 저에게 이러한 징계가 없었다면 저는 사생자요 버림을 받은 자신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할렐루야! 징치는 성도를 온전케 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도구이다(히 12:5, 6).

본서 2장을 보면 저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심령이 얼마나 새롭게 되었는가를 볼 수 있다. 2장은 전체가 저의 기도이다. 사람마다 이처럼 징치의 도가니에 들어가야 진정으로 겸손하여져 하늘 아버지께 부르짖게 된다. 저의 기도의 내용을 총괄하여 보면 ① 확신(2:2,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② 부활의 소망(2:4, 6), ③ 완전한 헌신(2:9, 주께 제사를 드리며) ④ 은혜의 종교를 깨달음(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이었다. 참으로 우리가 구원얻는 것은 하나님의 전권과 온전한 사랑으로 됨이요, 우리의 의나 공적으로 됨은 결코 아니다(엡 2:8). 이 물 고기 뱃속은 요나에게 진정한 신학교였으니, 저가 여기서 주를 만나 뵈었음으로 완전히 순종하는 심령을 갖게 된 것이다.

니느웨의 대부흥

주의 명령으로 물고기가 요나를 토하여 육지에 내어보냈다. 이와 같이 주께 완전히 순종함이 없는 동안에는 주의 징계가 끝나지 아니할 것이다. 이에 주의 사명이 재차 임할 때 저는 두말없이 순종하여 니느웨에 가서 외친 것이다(욘 3:1-4). 이 성은 인구가 노유(老幼)를 합하여 약 백 만을 헤아리며, 성 둘레는 3일 길이나 되는 성이다. 요나의 전도를 들을 때에 임금으로부터 서민, 가축까지 모두가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회개하였음으로 온 성이 구원을 얻는 큰 부흥이 일어났다. 할렐루야! 요나의 사적은 주의 부활하심으로 오늘날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된 사실의 모형이 된 것이다(마 12:39, 눅11:30). 성서에 이방인의 기약이라는 것이 있는데(눅 21:24), 오늘날은 참으로 이방인의 부흥기이다. 주의 재림은 이 때를 기다리나니, 이때는 참으로 기도하며 전도할 때이다.

니느웨의 부흥의 원인에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그 하나는 요나의 솔직한 설교이다. 저는 외치되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가감 없이(40일 후이면 니느웨가 반드시 무너지리라) 선포하였다. 이때 요나의 설교는 참으로 지옥을 보고 온 사람의 말과 같이, 그 백성들에게 들렸을 것이다. 오늘의 강단에서도 이러한 권능의 사역자가 나타나야 되겠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단순하게 전하는 설교자가 요청된다. 둘째는 저들의 회개이다. 니느웨 성에 군민(君民) 일동은 요나의 설교를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이다(살전 2:13 참조). 상하가 일제히 회개하였다. 부흥은 이러한 곳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목사나 장로는 회개할 것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다만 평신도들에게만 회개를 권하는 일이 많이 있다. 주께서 이러한 곳에 은혜를 베푸시지 아니하신다. 특히 한국 교회여, 부흥을 원하거든 니느웨 성 군왕의 겸비를 배워서 교역자로부터 회개해야 하겠다. 이것이 근본적인 방침이다. 연회에서의 암투, 총회에서의 암투, 지방회, 노회에서 질투 쟁권하는 교권주의자들이 주관하는 교회에 무슨 부흥이 있을 것인가?

박 넝쿨의 교훈

니느웨의 부흥을 보고 요나가 화가 나서 성 동편에 나아가 앉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예비하시어 저를 교훈하셨다(욘 4:1-6). 요나가 이 박 넝쿨이 무성하여 자기를 가리워줄 때에 심히 기뻐하였다. 슬프다. 인생의 부귀영화여, 이 박 넝쿨에 지나지 아니하다. 요나가 조금 후에 이 박 넝쿨이 마름으로 크게 비탄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금전 혹은 명예라는 박 넝쿨을 쓰고 매우 기뻐하나, 그것이 능히 지옥의 뜨거운 불을 가리우지는 못할 것이다. 저가 일개 박 넝쿨의 죽음을 슬퍼함으로 주께서 큰 성 니느웨의 생명에 대한 사랑을 교훈하셨으니, 한 박넝쿨과 백 만의 생명의 경중이여!

주께서 이와 같이 인생에게 실물 교훈을 하시되, 인생은 이를 너무도 깨닫지 못한다. 우주만상은 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바 유력한 유신론적 설교가 아닌가(롬 1:19,20). 저 요나의 정신은 누가복음 15장의 장자의 정신과 흡사하다. 그 장자는 회개한 동생으로 기뻐하며 잔치를 베푼 아버지께 대하여 불평을 품은 것이다. 이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알지 못하는 편협함이다. 한 사람도 멸망치 아니하는 것이 주님의 거룩하신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