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지옥의 사람 가룟 유다


예수의 제자로 3년간이나 가르침을 받은 가룟 유다의 운명은 참으로 참혹하다. 주가 승천하신 후 에 제자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집 다락방에 모여 유다의 보결 선거를 할 때에 유다는 제 곳으로 갔다 하였다(행 1:15). 그가 간 곳은 바로 지옥이다.

애석하다! 예수의 제자로서 사도의 직분을 겸하여 회계의 중임까지 받았던 자가 어찌 지옥의 원혼 이 될 줄 알았으랴! 가룟 유다를 교훈삼아 우리 모두 이러한 운명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주께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 가라 하리라”(마 7:22-23) 말씀하셨으며, 이런 자는 다 내게서 물러가라 하셨다.

교역자이건, 세례이건, 성찬에 참여하는 자이건, 각양 은사를 받은 자이건 이와 같은 것들이 구원 의 조건이 되지 아니한다. 유다를 보라. 직분도 있고 병 고치는 은사도 있었다. 그러나 필경은 지 옥이 그의 영원한 기업이 되고 말았다. 유다는 배교한 신자의 전형이며, 타락한 교역자의 전철이 다. 12제자로 모인 적은 모임은 후세 기독교회의 한 모습이다. 예수께서 이 유다를 가리켜 말씀하 시기를 “이는 처음부터 믿지 아니하는 자라”(요 6:64) 하셨다. 현대 교회 많은 신자 중에 이러한 심리를 가진 신자가 적지 아니하다. 자기 사욕과 방편에 따라 출입하는 것으로, 사실은 예수를 믿 지 아니한다. 또한 목사나 전도사 직을 생활 수단으로 삼고, 생활비를 도식(徒食, 하는 일 없이 먹 음)하는 직업적 교역자가 있다.

오호라! 유다의 영혼을 위하여 절통할 일이라 하겠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어찌 지옥에 읍귀(泣鬼) 가 되었는고. 유장백세(流芳百世, 꽃다운 이름을 후세에까지 오래도록 전함)는 못할지언정, 유취만 년(遺臭萬年, 더러운 이름을 만대에 끼침)이 웬 말인가?

오호라 슬프다! 이 사람이 나지 아니하였다면 좋을 뻔하였도다. 골고다의 바람 소리는 유다, 너를 슬퍼하고, 아겔다마의 피의 소리는 유다, 너를 고발하는구나.

오호라 애석하다! 회개의 기회를 잃었도다. 겟세마네 밤중에 “친구여!” 하던 사랑의 음성을 왜 거절하였는가. 목매는 순간 영원히 기회를 잃었도다.

저는 금전을 탐하는 사람

유다가 지옥에 가게 된 제1의 원인은 무엇인가? 금전을 탐냈기 때문이다. 대저 금전이라 하는 것 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탐하는 정도에 따라 크게 위험하다. 성경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 하였다. 유다는 은 30을 탐하여 은사를 팔 았다. 사람이 어찌 이러한 죄를 범할 것인가?

아! 우리는 크게 경성해야 하겠다. 교역자나 신자가 주야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모을까 하는 생각만 한다면, 이 사람도 필경은 악마의 금전이라는 미끼에 걸려 예수를 파는 배신자가 될 것이 다. 금전이란 사람의 성결함을 시험하는 물건이다. 금전에 대한 마음씀을 보면 그 사람의 심령상 태를 짐작할 수 있다.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탐심은 곧 우상이다.

 사악한 사람

한번은 예수께서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머무르셨을 때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 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씻으니 가룟 유다가 지켜보다가, 이 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고 왜 허비하느냐고 하였다. 유다는 자선가 인 체하였으나 실상은 도적의 심리를 가지고 외식하는 말을 한 것이다.

사람 마음의 사곡(邪曲)함이 이에 나타났다. 이런 사곡한 마음이 어디 있을까? 지옥에 갈 자격이 넉넉하다.
 

 

배은망덕한 자

유다는 배은망덕한 자이다. 3년간을 가르치고, 지도하며, 위하여 기도해 주며 마음쓰던 선생님을 은 30에 팔아 넘겼으니 이 얼마나 악한 일인가?

 

거짓 회개자

예수께서 결박당하여 심문당하심을 보고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받았던 은 30을 제사제 장과 장로들에게 돌려주며 스스로 뉘우쳤다. 혹 이것을 보고 유다가 회개한 줄로 생각한다면 큰 오해이다. 저의 참회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다는 심리의 동기에서 나온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 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하신 말씀은, 이 유다의 회개 와 같은 것을 말함이다. 곧 세상 근심에 지나지 않는 회개이다.

진정한 회개는 지옥의 형벌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닫고 그 은혜로 죄 사함 받을 줄을 믿는 영적 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죄를 깊이 깨달아 믿음을 기뻐하시 는 하나님의 사랑에 자기를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과연 하나님은 만장(萬丈)의 깊은 웅덩이에 빠 졌을지라도, 오직 믿음으로 부르짖는 사람을 기꺼이 구원하시는 자비하신 아버지이시다(시 130:1-8). 인자하심이 주께 있으며 구원하심이 주께 있다. 아, 우리는 죄 중에서 유다와 같이 자포 자기하지 말 것이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당시 유다는 자기의 죄가 자신의 인격과 신분을 망치게 한 것만을 부끄러워 하고, 그 죄가 하나님 의 가슴을 찢는 줄 몰랐다. 그러므로 그의 후회는 자기 본위에서 나온 것이다. 곧 ‘나로 말하면 유대의 종교운동의 큰 단체인 예수의 집단에서 감독의 직분을 가지고 행세하던 일을 일반이 다 아는 터인데 내가 이제 선생을 팔았으니 어찌 유대 사회에 행세할 면목이 있으랴’ 하는 자기 본 위의 후회였다. 그러므로 차라리 이 세상을 떠나서 그 수치를 면하려는 생각에, 종내는 자살이라 는 최후 운명을 이루게 된 것이다.

자살자

자살이란 타락한 자의 말로이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회개를 보라. 아말렉과 전쟁할 때에 선 지자 사무엘이 말하기를, 아말렉 왕도 죽이고, 그 소나 양이나 일체를 가져오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으되, 사울이 소와 양을 탐하여 끌고 왔다. 이때 사무엘이 그 불순종한 일을 견책 하니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 앞 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였다.

이는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것을 원통히 여기는 것은 없고 다만 자기의 지위를 보존 하려고 사무엘에게 자복한 것이다. 이것 역시 거짓회개이니, 유다의 회개도 이러한 자기 본위에서 나는 일종의 후회라 하겠다. 만일 유다가 이때에 진정으로 통회하고 주의 자비하심을 구하였더라 면 용서함을 받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영혼을 죽이는 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느 교회 신자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에 자살하기로 작정하고, 믿을 만한 선생에게 물으니 생활 고로 자살하는 것이 무슨 죄가 되겠느냐 하기에, 자살하기로 작정을 하였다가 부흥회에 참석하여 은혜받고 회개한 일이 있다. 자살은 타락자의 말로이다.

자살은 지옥의 산물

사울도 필경은 자살하였다. 근일에는 자살이라는 죄가 유행하고 있다. 어느 유명한 시인, 모모 학 자가 자살을 일종의 문명의 산물이라 하였다. 자살한 자도 살인죄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아, 이 자살을 기도하는 자는 회개하라. 수다한 사람을 인도하다 보면 이러한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아! 유다는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다. 유다의 제1차 죽음은 제2차 죽음보다 쉽다. 모든 수치를 행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 지옥에서의 영원한 생애야말로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 오, 통재 라. 유다의 원혼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