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진리의 투사 아볼로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생인 유대인이다. 알렉산드리아는 나일강 하구에 있는 당시 유명한 항만에 대도시이다. 인구 약 75만에 모든 물자의 집산지이었을 뿐 아니라 학문으로도 중심지였다.

이같이 번화한 도시는 수재(秀才) 아볼로를 배출하였다. 봄에 꽃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음과 같이, 학술과 종교가 왕성한 이 도시는 아볼로의 수양(修養)에 적지 않은 감화를 주었다.

저는 참으로 독실한 신자였으며 훌륭한 학자요, 웅변가요, 진리의 투사로서 기독교 역사에 빛나는 독실한 학자로서의 사표가 된 위대한 인물이다. 이와 같은 아볼로에게서 몇 가지 배우고자 한다.

 

저의 독실한 신앙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행 18:25). 저의 학문과 능변(能辯)은 그의 인격의 기초인 신앙에서였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후에야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의 본질이 금인지, 은인지, 동인지, 진흙인지를 아신다. 또 우리가 어떠한 그릇으로 되어 있는지도 잘 알고 계신다. 그럼으로 나에게 있는 학술이나, 도덕이나, 능력이 진정한 내가 아니고, 진정한 나는 오직 신앙에서만이 발견되는 것이다. 베드로의 베드로 됨도, 바울의 바울 됨도 진정한 신앙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아볼로의 학문이나 웅변보다 그의 가진 신앙을 찬미할 것이다.

저의 신앙은 “열심으로” 하였으니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열심 있는 독실한 신앙이며, 중심으로 믿는 신앙이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 2:28-29) 하신 말씀과 같이 신앙이 그 사람의 중심으로부터 된 것이 아니면 이는 거짓이다. 도금이 벗겨지는 날이 있음과 같이 외식하는 자들의 본색이 반드시 드러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저의 독학(篤學-독실하게 학문을 함)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행 18:24). 아볼로의 학력(學力)을 증거하는 말이다. ‘지식은 곧 힘이다’라는 말과 같이, 옛부터 기독교 교역자 중에는 평소 많은 학문적 소양을 가진 자가 크게 성공하였다. 물론 복음을 증거함에 유·무식이 큰 관계는 없고, 오직 성령에 충만하여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학을 조직하며 그 심오한 진리를 드러내며 또 변증(辨證)함에는 그 사람의 학력을 기대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아볼로로 하여금 그 역사에 힘있게 한 것은 저의 가진바 성서 지식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에는 이와 같은 성서 독학자가 많이 일어나는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성서를 읽을 때 다른 빛을 구하지 말고 첫째 그리스도와 그 구원에 대한 붉은 줄을 먼저 찾아 읽기를 바란다. 성서는 철학 책도 아니요 역사 책도 아니요 문학이나 사회 사상에 관한 책도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한 책이니 이에 착안하여 읽어야 한다.

 

저의 영적 경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행 18:25 하). 저는 에베소에서 힘써 전도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그러나 저의 영적인 경험은 다만 세례 요한의 세례, 즉 회개에 대한 도리만 알고, 성령세례에 대한 더 깊은 경험은 알지 못하였다(행 19:1-6). 대개 교계는 회개이니 중생이니 성결이니 하는 영적 경험에 대하여 무관심한 전도자도 많이 있다. 예컨대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은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지만 중생의 경험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볼로와 같이 중생의 경험을 말하되 성령세례의 경험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더욱 많이 있다.

대개 요한의 세례는 회개하여 죄 사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리스도의 세례는 즉 성령세례이다. 요한의 세례는 행위상 변화요 그리스도의 세례는 성질상 변화를 주는 더 깊은 은혜이다. 이 은혜는 참으로 귀중한 은혜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저 오순절날에 다 이 은혜를 받았다(행 2:1-4). 이는 신자 모두가 받아야 할 두 번째 은혜이다. 바울이 아볼로가 목회하는 에베소교회를 방문하였을 때 이곳 신도들은 이 성령의 은혜에 관하여 알지 못하였다(행 19:1-6). 그러나 바울이 기도함으로 모였던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게 되었다.

오늘도 에베소교회 신도들과 같이 이 성령세례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교회, 알지 못하는 신도가 많이 있다. 분명히 중생의 은혜와 성령 충만(성결의 은혜)은 다른 것이다. 우리는 모든 교회들이 성령 충만하도록 인도하여야 한다. 그리하려면 나부터 먼저 이 은혜를 경험해야 할 것이다.

 

저의 겸손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행 18:26). 아볼로의 설교는 지적이며 논리 정연하여 힘이 있었으나, 그 설교의 영적 수준은 낮았다. 아직 신앙의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성령세례, 육체의 부활, 예수의 재림 등에 대하여는 막연하였다. 아볼로의 설교를 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독실한 신앙인으로 바울을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하였음)가 저를 청하여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서 복음의 진리를 가르쳤다.

저는 해박한 성서지식과 열심 있는 신앙이 있었지만,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히 저들의 가르침을 배웠다. 브리스길라는 여성이었는데, 아볼로는 겸손하게 그에게서 진리를 더 자세히 배우기를 마다하지 아니하였으니 저는 진실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는 물리치신다. 우리가 만일 신령한 경험이 부족하거든 교역자라는 체면, 교회 직분이라는 체면, 여러 해 믿었다는 그것을 다 버리고 겸손하게 주님 앞에 엎디어 기도할 것이다. 은혜를 받지 못하고, 받은 체하는 사람같이 가련한 사람은 없다.

 

저의 선전(善戰)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행 18:26-28). 아볼로는 참으로 진리를 위하여 힘써 싸운 투사이다. 그는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가 곧 나사렛 예수인 것을 증거하여 역설하였다.

오늘 교계는 아볼로와 같은 진리의 투사를 요구한다. 저는 고린도에서도 모든 영혼을 기르는 영적 관개(灌漑)에 힘을 썼다(고전 3:6). 오늘은 악마의 세력이 날로 팽창하여 전 세계 일류 학자들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저들의 연구를 통하여 성서의 진리를 대적하고 있다. 우리 기독신자들도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 성서를 연구하여 이 악마의 기세를 꺾기 위하여 힘써 대적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모두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