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대의 전감(前鑑)

- 눅 17:26-30; 창 6:1-4 -

  이건 : 홍순균 평역

 


시대를 구분하여 말하면, 천지창조로부터 노아 홍수 때까지 약 2,000년이고, 노아 홍수 이후로 그리스도 오시기까지 약 2,000년이고, 그리스도 오신 이후 오늘까지 2000년이다.

성경상으로 보면 현대는 세계의 종말이라 할 것이다. 창세 후 6,000년인데 앞에 있는 1,000년 시대를 통산하면 7,000년이 된다. 이는 곧 타락한 인류와 저주받은 우주 회복의 완전수적(完全數的) 실현으로 볼 것이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과 롯 시대의 유황불 심판은 모두 오늘의 세계의 목전에 박두한 하나님의 심판의 전감(前鑑)이다. 아울러 대홍수 속에서 구원받은 노아와 유황불 가운데서 구원받은 롯은, 장래 이 세계에 임할 심판의 대환난에서 구원받을 성도의 예표이다. 노아와 롯의 시대를 심판했던 심판은 지금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준비되고 있으니, 모든 나라 모든 족속들은 경성하라(벧후 2:3-8). 사람들이 평안하고 튼튼하다 할 때에 해산 기약이 임신한 여인에게 임함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이르리니 결단코 면하지 못하리라(살전 5:3) 하였다.

노아와 롯의 시대의 형편을 누가복음 17:27-28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라고 표현한다.

 

“먹고 마시고”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유물주의적이며, 현세의 향락에 빠져 있었는가를 말하여 준다. 그 시대 사람들은 아무 종교적 관념이 없이, 다만 “먹고 마시자 내일 죽으리라” 하는 형편이었다. 사람은 영, 혼, 신으로 이루어져 있어, 첫째로 영혼을 위하여 살고, 둘째로 육신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데, 타락한 사람의 생활을 보면, 육, 혼, 영의 순서로 살아가고 있다. 현대인의 생활을 보면, 참으로 먹고 마시는 음식주의(飮食主義)에 불과하다. 전세계 사상계는 유물론으로 어지러워져, 말하였다 하면 빵 문제, 공산주의, 소작쟁의, 노동문제, 동맹파업 등이니, 이런 소동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이는 다 먹고 마시는 문제가 아닌가?

이러한 문제들의 이면에는 무신론, 무종교론의 주동자인 사탄의 음모가 있다. 저 러시아를 보라! 무신론의 괴수 레닌은 저들에게는 구세주요 천사같이 되었다. 그리하여 유물주의 실현의 선구자로, 종교는아편 같다 하여 종교 박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육체화 즉 동물적인 생활에 들어가게 하는 음식주의의 위험이다. 이는 배로 하나님을 삼은 것이 아닌가(빌 3:19). 현대인은 빵으로 구주를 삼고, 하나님은 꿈에도 생각지 아니하게 되었으니, 어찌 화가 임하지 아니할까?

이러한 사상은 오늘 교회 안에도 침투하여, 다수의 신자들이 호의호식을 위하여 돈 모으는 일에 급급해 하는 것이다. 한 주간 두 눈을 부릅뜨고 정신없이 금전에 정신이 팔려 돌아다니다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앉은들 무슨 은혜가 있겠는가? 어떤 목사는, 주일에 장사하는 것을그 교회 직원이 충고하니, 가난한 사람이 주일에 장사하는 것이 무슨 죄가 되겠느냐 하더라고 말한다. 아, 화 있을진저. 음식만 생각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들이여! 노아의 시대의 전감이 멀지 아니하다. 경성하라!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창세기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하였다. 이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성도덕이 얼마나 타락하였는가를 말해준다. 남녀의 성적 문란은 말세의 특징이다. 현대의 사상계를 살펴보면, 소위 자유연애, 연애지상주의, 여성예찬론 등의 흑조(黑潮)가 순진한 청년남녀의 사상을 얼마나 혼란하게 하는가? 현대 청년남녀들은 정조 도덕을 말하는 사람을 진부한 두뇌를 가진 사람으로 알 정도가 되었다. 아! 형제자매들이여 이것이 소위 신 사상인가? 신 유행인가? 이스라엘이 하루에 233,000명 멸망받은 것이 이 음행의 죄였으며, 당 현종의 멸망도 이 음행의 죄 때문이었던 것을 모른단 말인가?

교회 안에 찬양대에서도 청년남녀가 시선을 주고받으며 연애심리를 주고받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연 전에 일본의 아리지마(有道)라 하는 청년 무학자가 어느 유부녀와 연애하다가 끝내는 정사(情死)하는 추극(醜劇)을 나타낸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을 일본 어느 교회학교 잡지에 기재하기를 “아리지마는 철저한 종교가”라 하였다. 연애로 정사(情死)한 자가 무슨 철저한 종교가이겠는가? 이러한 말을 하는 자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어떤 교회에서는 저 윤심덕(尹心悳)이라는 여자가 어는 남자와 정사할 때에 부른 노래를 유성기(蓄音機)로 교회당 안에서 부르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통탄할 일이다.

남녀의 성도덕 타락은 곧 주의 심판을 앞당기게 하는 극단의 징조이며,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은 것”이다(빌 3:19).

 

“사고 팔고”(눅 17:28)

이는 매매이니 곧 상업문제이다. 과연 현대에 종교, 교육, 정치, 산업 등 제 방면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 것은 상업이라는 큰 왕도이다. 기차와 기선은 교통에 편리를 준다 하여도 이는 상업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으며, 전신과 전화는 통신을 편리하게 해주지만, 이 역시 상업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지 아니한가? 큰 은행, 큰 회사, 큰 공장, 큰 물류거래소 등을 상업이 주관치 아니함이 하나도 없다. 현대는 무엇보다도 상업세계이다. 국제간에 운송하는 것과 회사간에 교역하는 것, 그 얼마나 복잡하며 번창한가?

여러 말 할 것 없이, 상업이란 자기 이익 추구이다. 도처에 항만에는 여러 나라의 선박이 수없이 출입하며, 도처의 역두(驛頭)에는 수많은 화물이 산적하여 있다. 이 모두가 각각 상리적(商利的) 패권을 경쟁하고 있음이 아닌가? 이로 인하여 인심은 점점 공리(功利)의 학문으로만 기울어 가고,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지마는 그 마음은 모두가 각박하여만 가고 있다. 맹자는 “이른 새벽부터 이만을 위하여 분주한 자는 도적이다” 하였으니, 이 말은 과연 현대인에 적합한 말이 아닌가?

아! 상업이라 하는 이 세력 안에는 종교도 없고, 순진한 도덕도 찾아 볼 수 없는, 유물(唯物), 유리(唯利)의 대폭군이 주장한다. 말세에 나타날 대 바벨론(계 17, 18장)은 곧 세계의 상업 중심지가 될 것이니, 현대의 성행하는 상업의 세력은 이 대 바벨론의 무너지는 날이 이르러비로소 그 운명을 마칠 것이다.

현대인들이여! “사고 팔고” 하는 일에 정신을 잃고 잊지 아니하였는가? 모든 성도들이여, 여러분의 신앙이 매일 팔고 사는 몇 푼 금전에 죽어가고 있지 아니한가? 경성하기 바란다. 그러면 빵 문제, 자유연애, 상리주의(商利主義)로 충만하였던 노아와 롯의 시대를 교훈 삼아, 이러한 현세 향락주의 곧 사두개인의 누룩의 감화를 받아 세상일에만 몰두하지 말고(빌 3:19), 오직 하나님 신앙으로 영적 생애를 계속해 가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