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탕자의 말로와 그 구원

누가복음 15:11-32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설교 중에,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는 가장 유명하다. 이는 하늘 아버지의 은총을 떠난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와 조건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원한 영광의 기업을 회복한 일에 대한 실상을 보여 주심이다.

 

저의 타락의 원인

1) 허영(虛榮): 저는 그 중심에 허영을 꿈꾸었다. 자기 엄친 슬하에서 매일의 입는 옷과 먹는 음식, 오락에 만족하지 못하였다. 저는 자기에게 돌아올 재산이 자기 손안에 있고, 또 엄하신 아버지의 눈길을 피한다면, 자기 마음대로 화려한 의복을 입고 자동차와 마차로 매일 유흥가에 출입하며, 창녀들의 환대를 꿈꾸었다. 이에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는다”(약 1:15)는 말씀과 같이, 타락의 첫걸음으로 아버지에게 분가해 주실 것을 청원하였다. 허영심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멸망으로 빠져 가게 하는 사탄의 역사이다.

하와의 타락도 마찬가지다. 곧 사탄의 화신인 뱀이 “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 지혜가 하나님과 같게 될 것이다” 할 때에, 하와의 마음에는 허영심이 일었다. 이에 하나님과 동등(同等)되고자 하는 허영심을 품고 따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다. 이를 생각하고 살펴보건대, 허영심이란 인류의 큰 원수이다. 현대 청년남녀들이 이 허영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유망한 장래를 영원한 어둠 속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흔히 볼 수가 있다. 아 - 청년의 주의할 것은 허영심이요, 젊은날에 물리칠 것은 허영심이다.

한 여성이 신자의 가정에서 신앙으로 성장하였다. 나이가 들어 한 믿지 아니하는 부호 청년과 연애를 하였다. 그의 부모는 불신자와의 결혼을 반대하며 교회 목사와 이를 한사코 말렸다. 그러나 그 처녀는 호화로운 생활을 꿈꾸며, 그 남자와 결혼하면 자기의 신세는 말할 것 없이 호사할 것이라 상상하고, 그 남자에게 예수 믿겠다는 약속을 받고, 결국 결혼을 하였다. 그 후 불과 수년에 그 남자는 호탕심(豪蕩心 - 걷잡을 수 없는 방탕한 마음)에 몰려, 또한 다른 여자와 교제하며 자기를 배척하였다. 이 여자의 꿈꾸던 호사는 다 물거품이 되었고, 다만 자기의 정조만 유린되고 말았다. 후회한들 무엇하리.

탕자를 보라. 부친에게 받은 재물을 가지고 방탕하게 즐긴 결과가 어떠한가? 과연 행복하였던가? 아니다. 금전을 따라 교제하던 친구들도 다 떠나가고 이제는 의지할 곳 없는 노숙자가 되었다. 지나간 날에 호화로운 생활은 일장춘몽이었다. 백만장자의 아들이 이제는 한 촌마을 집에 기식(寄食)하며 돼지 키우는 일을 하게 되었다. 고량진미(膏粱珍味)도 배불러 못 먹던 사람이, 이제 쥐엄나무 열매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타락한 인생의 실상이다. 하와의 허영심으로 타락한 인간은 영혼, 사상, 지능 전체가 다 파괴되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불한당을 만나 의복도 빼앗기고 많은 매를 맞아 죽게 된 사람과 같은 형편이다(눅 10:30).

2) 아버지의 교훈을 기뻐하지 아니함: 탕자는 그 부친의 교훈을 부자유롭게 여겼다. 인류의 타락이 여기에 기인한다. 곧 사탄이 하와에게 다가와 “만일 네가 선악과를 따먹으면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될까 하여 먹지 말라 한 것이다” 하였다. 곧 하나님의 교훈이 사람에게 행복스럽지 못한 것으로 여기게 하였다. 이에 하와도 하나님의 교훈대로 순종하는 것이 너무 어리석은 줄로 생각하고 따먹지 말하신 열매를 따먹은 것이다. 탕자도 그 부친의 슬하에서 “근검하여라, 정직하여라, 부랑 친구와 사귀지 말라” 하시는 교훈이, 모두가 자기의 향락을 만족케 못하는 자유롭지 못한, 행복하게 못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타락의 원인이 된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잠 3:11-12).

3) 아버지를 멀리함: 탕자는 재산을 받아 가지고, 부친의 관할 밖으로 멀리 떠나갔다. 부친의 교훈이 비록 그의 귀에 거슬리나, 자기의 행실에는 크게 유익하였을 것인데, 이제는 그 행위를 감시하는 사람이 없으니, 제멋대로 먹고 마시며 놀자 하였을 것이다. 타락의 결과로 에덴에서 쫓겨난 인류의 역사는 사망과 질병과 고통, 번민, 눈물, 분쟁, 살인의 참극뿐이었다. 과연 우리의 행복과 평안과 자유는 오직 하나님 우리 주 예수 안에만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허영에 끌리어 일어나는 온갖 번민의 해결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저의 회개

탕자의 회개는 그 근거가 깊고 철저한 회개이다. 사람의 회개가 이러하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1) 자기의 본연의 모습을 깨달음: 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는 자기 아버지를 깨닫는 동시에 그 아버지의 풍성함을 깨달았다. 과연 사람의 회개가 인생이라는 가치를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영광을 깨닫지 못하면 세상의 정욕으로 썩어질 것을 피하고 하나님께 용감히 돌아올 수 없다.

2) 죄를 철저히 깨달음: 18절에,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저가 그 죄 지은 일이 그 부친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범죄한 것인 줄 깨달았다. 이는 참으로 철저한 회개이다. 종교적 회개이다. 만일 아버지에게만 범죄한 줄 알았다면 이는 도덕적 회개에 불과하다. 오늘날 다수의 신자의 회개가 이러한 천근(淺近)한 도덕적 회개에 지나지 아니함이 허다하다.

3) 자복: 21절에 보면, 탕자는 아버지께 돌아와 그 죄인 됨을 겸손하게 자복하였다. 과연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 하여도, 그 죄상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복하지 아니함이 많다. 자복은 사죄의 은혜에 요건이 된다(요일 1:9).

 

저의 구원의 형편

1)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음: 24절에, “이 내 아들”이라 하였다. 이 사람이 돌아올 때에는 감히 아들의 지위는 생각지 못하고, 품꾼의 하나로 보아 달라 하였다(19-). 이것은 아버지의 큰 사랑이다. 과연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죄악에 빠져든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포용과 사랑으로 무조건으로 자녀라 일컬음을 얻은 것이다(롬 3:25, 요1:12).

2) 제일 좋은 옷을 내다 입혀 주심: 22절에,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하였다. 이는 우리 인간의 의가 누추한 의복과 같았으나(사 64:6),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의 옷, 의의 두루마기(사 61:10)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입혀주시어, 한 번도 범죄치 아니한 자와 같이 여기시는 칭의(稱義)의 은혜를 베푸셨다(갈 3:27).

3) 가락지를 끼워 주심(22-): 22절에,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하였다. 이는 은혜의 확실한 표적이다. 우리 성도에게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성령으로 인을 치시어, 후일에 영원한 기업에 참여할 표를 주셨다(엡 1:13, 고후 1:22, 5:5).

4) 신을 신김: 22절에, “발에 신을 신기라” 하였다. 종은 발에 신을 벗는데, 이 사람은 아들 되는 표로 신을 신기였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신을 신기시어(엡 6:15) 우리의 발걸음이 이르는 곳마다 아름답게 하셨다(롬 10:15).

5) 아버지의 큰 기쁨: 부친은 멀리 떠났던 자식을 매일같이 이마에 손을 얹고 기다리다가, 그 아들의 돌아옴을 보고, 달려가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큰 잔치를 베풀었다. 과연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시고 기다리시다가 만일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99명이 있는 것보다 더 기뻐하신다(눅 15:7). 한 영혼을 온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사마리아 여인이 구원 얻음을 보시고 어찌나 만족하셨던지 “나의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여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하셨다(요 4:32,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