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생의 최대요구

누가복음 18:18-23

이 건 글, 홍순균 평역

 

어느 날 유대의 관원이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8:18) 하고 질문을 하였다.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복이라 생각하는 것 몇 가지를 갖추었건만,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나사렛 예수님에게 와서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이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본문에서 살펴봄으로써 인생의 최대의 욕구가 무엇인가를 결론지을 수가 있다.

 

이 사람은 유대의 관원이었다

당시 관원은 제사장, 장로, 학자들로 조직된 70인 의회(議會) 곧 산헤드린 의원이다. 이 사람은 상당한 지위에 있는 신사이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요건이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귀하다 할 만한 것은 이 지위라 하는 것이다. 홍진만장(紅塵萬丈)한 세속사회에서 청운의 뜻을 가지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것은 그 무엇을 위함인가? 이는 모두가 자기의 지위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영웅호걸들의 활동도 지위를 도모하려 함이다. 옛날부터 남아(男兒)의 행운은 이 지위를 얻고 못 얻음에 달린 줄 아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요셉의 행운은 애굽의 총리대신 됨에서 뜻을 이루었고, 다니엘의 행운은 바벨론의 재상 됨에서 이루었고, 다윗의 행운은 이스라엘을 통치함에서 이루었다. 보라, 저 사울은 그 지위에서 떨어짐으로 자살이라는 비운에 떨어졌고, 느부갓네살은 그 지위에서 떨어져 짐승 같은 정신병에 걸렸으며, 대 영웅 나폴레옹은 그 지위에서 떨어져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형되었다.

오늘의 정계(政界)를 살펴보라. 선거철이 되면 각당이 서로 공격하여 정권쟁탈에 몰두하여, 혹은 암살, 저격, 수뢰 등 추태를 연출함을 무수히 보게 된다. 이처럼 경쟁하는 지위, 얻기 어려운 지위, 얻어도 보존하기 어려운 지위를 가진 이 신사는 거기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영생을 구하였으니, 이로 보건대 지위가 인생에게 참 만족을 주지 못함을 알겠다.

 

이 신사는 또한 큰 부자이다

돈이란 인생에게 없어서는 아니될 것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얻기 위하여 피땀을 흘려가면서 애를 쓴다. 돈이라면 예의도, 염치도, 골육 친지도, 자기의 생명도 돌보지 아니하고 덤비는 것이 고금의 인정(人情)이다. 가룟 유다는 돈을 탐하여 은사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 넘기었다.


오늘은 더욱이 황금만능을 부르짖고 활동하는 세대이다. 사기, 횡령, 강도짓을 하여서라도 돈만 많이 모으면 사람들이 칭찬하며 잘난 사람으로 알며 또한 그에게 아첨하며 사는 세대인 것이다. 그러나 이에 예수님을 찾아온 신사는 자기의 가진바 재물로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영생을 구하였으니, 과연 재물도 인생에게 참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이 신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계명을 말씀하시니,

그 사람은 “살인하지 말며, 간음하지 말며, 도적질하지 말며, 거짓증거 하지 말라”는 계명은 어릴 때부터 잘 지키었다고 담대히 대답한 것을 보면, 이 사람은 참으로 경건한 종교적 도덕가이었다. 사람의 인격을 고상케 함에는 지위보다, 재산보다도 도덕인 것이다. 군자에게는 제왕도 심복하며 부자도 존경하는 것이다. 옛 사람의 말에 자손에게 천금을 물려주는 것보다 경문(經文) 한 줄을 가르치는 것이 낫다 하였으며, 미국 대통령 링컨의 어머니는 자녀에게 1,000정보의 논밭을 물려주는 것 보다 성경 한 권을 주는 것이 낫다 하였다. 이러한 말들은 무엇보다도 도덕과 종교의 가치를 귀히 여기는 말들이다.


맹자도 군자의 낙에 대하여 말하기를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울 것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이라 하였다. 과연 도덕가, 종교가의 생애란 참으로 몸과 마음이 화평한 생애이다. 지위도 폐하고, 재물도 없어지되 도덕은 나의 인생으로 영구히 빛나게 하는 값으로 정할 수 없는 보배로운 것이다. 이것이 있음으로 사람은 만물의 영장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가지기 어려운 것이 도덕이다. 지위보다 재물보다 더 얻기 어려운 것이 도덕이다. 그러나 이 신사는 이 같은 도덕적인 행실이, 자기에게 능히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을 알고 이에 영생을 구하였으니, 도덕도 인생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사람은 청년이다(마 19:20-22)

참으로 일생일대에 가장 좋은 때인 청춘을 가진 사람이다. 젊음은 지위보다 재물보다 도덕보다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참으로 귀한 시절이다. 젊고 힘있고, 눈 밝고 손발이 민활한, 다시 오지 아니하는 좋은 시절이다. 장래의 지위, 자산, 도덕가, 모두가 양양한 앞날을 가진 청년에게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러한 원대한 희망에도 자기의 만족을 찾지 못하고, 이에 예수님에게 나아와 영생을 구하였으니, 이로써 인생의 만족은 호시절인 청년에게도 없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인생의 최대 요구는 무엇인가?

지위인가, 재물인가, 도덕인가, 청년인가? 아니다. 이 신사를 통하여 우리는 인생의 최대요구를 알 수가 있다. 곧 영생이다. 영원히 사는 것, 이것이 인생의 본능적 영(靈)의 요구이다. 사람은 이 요구에 응답을 얻어야 비로소 만족이 있으며, 모든 슬픔과 억울하고 원통함이 다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전도서 3:11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하신 말씀을 묵상하라.


진시황은 만승천자(萬乘天子)의 지위도 오히려 만족치 못하여 불사약을 구하였으며, 한무제는 치적(治積)의 대공(大功)과 영토의 확장으로도 오히려 만족치 못하여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을 구하였다. 이는 다 영원한 세상을 사모하는 영의 본능적 충동으로 나타난 일들이다. 그러나 인생은 이러한 일을 깨닫지 못하고 인생의 지위, 재물, 도덕 등에서 이생을 자랑코자 헤매고 있다. 지위가 내 생명을 영생케 못하고, 재산이 내 생명을 영생케 못하고, 도덕이 내 생명을 영생케 못하고, 청년이 지나감도 잠간이다.


찬송하리로다. 이생의 전 요구를 이루어 주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누구든지 예수님에게 나오는 사람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며 만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요 10:28).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