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구원의 잠과 타락의 잠

이 건 글, 홍순균 평역

 

성경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잠이 있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심령에 진리의 평안을 받은 구원의 잠이고, 또 하나는 이 세상 일에 꾀임을 받아 타락한 잠이다. 전자를 안면(安眠)이라고 하고, 후자를 취면(醉眠)이라 할 것이다. 이제 이 잠에 대한 성경구절을 찾아 읽고, 늘 깨어 있는 중에 차라리 구원의 잠에 처할지언정 타락의 잠에 빠지지 아니하도록 힘쓰기를 바란다.

 

구원의 잠[安眠]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 127:2).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렘 31:26).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잠 3:24).

이 성경 구절들은 마음의 안식을 표현한 잠을 말함이다. 대개 잠이라 함은 인체의 생리상 필연의 현상으로 정신과 육체의 휴식의 필요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만일 마음에 무슨 번민이 생기거나 신경이 쇠약해지는 경우, 흔히 불면증이 생기게 된다. "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하신 말씀을 묵상해 보라. 대저 세상 사람들은 위치와 명예와 지위와 권력 등 헛된 영화를 붙잡으려고 밤낮으로 가리지 아니하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서로 시기하며, 분쟁하면서 밤잠을 평안히 못 자는 사람이 허다하다. 누구든지 청년시기에 한번씩은 반드시 큰 번민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그 요원한 앞날에 성공이라는 허영을 꿈꾸느라 그러함이다. 오늘날 청년 남녀들 중에 이러한 일로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형제자매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불면증의 원인은 허영을 꿈꾸며, 또한 범죄의 결과로 양심에 갈등으로서 일어나는 증상이다. 사울 왕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은 다음에 악령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이 번뇌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으며, 다윗도 범죄한 후 양심에 큰 고민이 생겨, 그 심장이 뛰며 울렁거려 주야로 번민하였다. 범죄한 사람은 언제나 불안하여 불면증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으면, 마음에 있는 모든 헛된 꿈이 사라지고, 양심에 가책되는 모든 죄에서 사유함을 받고, 그 순간부터 하나님 주시는 안식으로 그 심신이 편안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안면의 복음을 주셨다. 우리가 장래의 천국에서의 안식을 누리게 됨은 물론이지만 현세에 있어서도 심령의 안식을 누리는 사람이어야 참 크리스천인 것이다. 히브리서 4:3에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하였다.

무디는 일찍이 영국에서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대서양 바다 위에서 큰 풍파를 만난 일이 있었다. 그때 배가 풍랑으로 침몰되려는 위급한 지경이었으므로 배 안에 남녀노소들은 모두 울부짖으며 아우성을 치며 어찌할 줄을 모르며 통곡하였다. 이때 무디는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한곳에 불러모으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생각하기를 "내가 미국에 가는 것보다 이제 아버지의 나라 천국에 가는 것이 더 좋다" 하고 자기 침실에 들어가 기도하고, "배가 침몰하면 나는 천국에 가리라" 하고 평안히 누어 단잠이 들었다고 한다. 무디는 "내 평생 잠자던 중에 대서양에서 풍랑 중에 3시간 동안 잠을 잔 것과 같은 단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고 간증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을 증명함이 아닌가? 오순절 성령 강림하신 때에 사도 베드로는 헤롯의 박해로 옥중에 구속되어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중에, 그는 두 간수들이 지키고 쇠사슬에 묶이어 있으면서도 잠을 잤다(행 12:6). 사도 베드로의 마음에 불안이 아닌 참 평안함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천지가 무너질지라도, 바다가 진동할지라도 오직 의인의 마음은 영원히 흔들지 못할 것이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할렐루야!

 

타락의 잠[醉眠]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마 13:25). 이는 타락한 사람의 심령의 잠을 말한다. 마귀는 때때로 마취제를 가지고 온다. 마치 병원에서 의사가 수술하기 직전에 환자에게 마취제를 사용하여 마취시킨 후에 수술함과 같다. 마귀가 사용하는 마취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노년에게 쓰는 것, 청년에게 쓰는 것도 있다. 마귀는 다양한 마취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접근하여 심령에 최면을 걸고자 한다. 혹은 금전이라는 마취제, 명예지위라는 마취제, 남자에게는 여자라는 마취제, 여자에게는 남자라는 마취제와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마귀의 최면에 걸리기 쉽다. 성경에 보면 이러한 타락의 잠에 빠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 대개 마취제라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잠들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사 삼손은 들릴라의 무릎에 누어 연애라는 마취제를 마시고 잠자다가 자기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두 눈이 뽑히고, 원수에게 결박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중 다섯 처녀는 태만이라는 마취제로 잠자다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였으며, 사도행전 20장에 유두고라는 청년은 불성의라는 마취제로 잠자다가 삼층에서 떨어졌으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제자는 피곤이라는 마취제로 잠자다가 이내 예수님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성경에 취면(醉眠)을 잔 사람들의 대표이다.

우리가 만일 깨어 있지 아니하고 세상 허영에 취하여 신앙이 잠들어 혼수상태에 빠진다면 이는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 세상 끝 날까지 잠자다가 결국에 대 심판날에야 눈을 뜨고 일어날 것이다. 이는 지옥에 들여보내기 위하여 일으킨 것이다. 이 어찌 통탄한 일이 아닌가?

지금은 말세이다. 예수님의 재림이 박절한 때이다. 모든 교역자를 비롯하여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다섯 처녀와 같이, 유두고와 같이, 세 제자들과 같이 잠에 취하여 코를 골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고등비평과 신신학에 취하여 잠자는 사람, 이성교제에 취하여 잠자는 사람, 금전에 취하여 잠자는 사람, 소위 타협적 종교운동에 취하여 잠자는 사람, 장기 바둑으로 잠자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교역자는 바둑과 장기를 예사로 알고 심지어 주일에도 장기 바둑을 두고 앉아 있는 일이 있다고 한다. 이는 다 화가 있을 것이다. 베드로후서 2:3에 "저희의 심판은 예로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하신 경고의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깰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