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적한 곳을 찾으라

이 건 글, 홍순균 평역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세태가 복잡하여진 것만큼, 우리의 정신도 매우 복잡하다. 다니엘의 예언 중에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4) 하였음과 같이 항공기, 열차, 선박, 전신, 전화 등 문명의 이기들의 발달로 인하여 수륙공의 교통은 세계를 이웃이 되게 하였다. 하늘에는 항공기, 육지에는 열차와 자동차, 바다에는 각종의 선박들로 왕래하는 사람들로 큰 물결을 이룬다. 이렇게 분주하게 왕래하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의식주의 문제로 왕래하는 것이다.

현대는 참으로 물질문명의 극도라 할 수 있다. 또한 정신계는 사상, 주의가 우후죽순과 같이 거듭거듭 나타나 일대 혼돈한 세태를 이루었다. 인심은 극도로 타락한 현대에 더욱이 유물사관이 모든 사람의 사상에 주입되어 물질에 물질, 타락에 타락을 더하여 가고 있다.

수년 전에 인도의 대 시인 타골이 "한적(閑寂)의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일본과 미국 등지를 유세한 일이 있었는데, 저는 물질문명의 현대를 낙관하지 아니하고 다시 세계로 하여금 정신문명에 회귀시키려 한 것이다. 타골은 "한적한 철학"을 제창하였으나, 우리는 "종교의 한적(閑寂)", 곧 기독교의 한적의 신비의 힘을 제창하는 바이다.
 

기독교는 원래 적극적이며 동적 종교이지, 소극적인 정적 종교가 아니다. 이에 한적(閑寂)의 종교라 하면, 혹 불교를 연상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활동력 있는 종교일지라도 그 속에는 한적의 신비가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만상을 살펴 보라. 장엄한 천체의 순환과 수많은 동식물의 번식이 살아 활동하는 놀라운 힘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영하신 능력과 신성이 잠재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롬 1:20).

그러므로 우주는 정적인 동시에 동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삼라만상의 활동은 그 힘이 정적인 깊음에서 나옴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물질 세대를 거슬러 종교의 한적에 처할 것이며, 우주의 신비를 느끼며 종교의 한적에 처함이 인생의 최고의 지혜이며 최상의 이상이라 하겠다.

주 예수님의 생애를 깊이 상고해보건대, 저는 참으로 한적에 처하여 살며 한적에 처하여 활동하셨다. 석가모니나 공자와 같은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전파하기를 적어도 40여 년 간이나 되었어도 그의 교훈은 겨우 동양에 퍼졌을 뿐이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겨우 3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에 전파하였으나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쓸기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놀라운 힘이 과연 어디로부터 왔는가? 이는 오직 그리스도의 한적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주께서 30년간 고향인 나사렛의 한적에 처하셨고, 3년 반 동안 성역을 하실 때에도 때때로 군중을 피하여 따로 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으며 밤을 새우셨다. 이는 군중의 복잡함에서 주의 임재를 잊을까 함이며 더 새로운 능력에 충만함을 받기 위함이셨다.

우리도 때를 따라 한적한 곳에 가서 주의 임재를 깊이 체험해야 하겠다. 우리가 외로울 때 주님을 만나게 된다. 한적한 곳에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참으로 행복이다. 모든 인정(人情)을 떠나며, 모든 친구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떠나서 한적히 주님과 같이 지내는 것이 성도의 다시 없는 위로일 것이다. 이는 신비의 학교이며 인생의 학교이다. 이곳에서 받은 능력은 능히 세계를 움직일 것이며, 이곳에서 배운 지혜는 넉넉히 인생을 교훈할 만한 것이다.

저 오순절의 대소동은 다락방의 한적에서 나온 능력이며, 솔로몬의 3,000 잠언은 기브온의 한적에서 얻은 지혜이다. 에녹의 성결과 노아의 의(義)도 하나님과 동행한 한적에 있다. 우리는 한적한 곳을 찾아서 기도하자. 속된 세상일에 정신을 팔지 말 것이다. 12세된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중에 그 부모는 예수를 잃어 버렸다. 우리도 모든 사무에 분주하다가 예수를 잃어버리기 쉽다. 주님은 무엇보다도 우리와 더불어 교제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한적한 곳을 찾아서 주님과 더불어 교제할 것이다.

야곱은 얍복 강 언덕에서 깊은 밤에 홀로 있다가 주님을 만나 뵈었으며, 엘리야는 호렙 산에 홀로 있을 때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모세는 광야에 홀로 있을 때에 여호와를 뵈었으며, 이사야는 성전에 홀로 있을 때 주를 뵈었고, 바울은 아라비아에 홀로 있을 때 주님의 묵시를 받았으며,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홀로 있을 때 주님의 재림의 광경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