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이 건 글, 홍순균 평역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 1:15).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말과 같이, 우리의 생각, 말, 행위 무엇이든지 습관이 되면 그것은 곧 그의 인격이 되며, 그의 의표(儀表)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 좀더 좋은 덕의 습관을 양성하면, 우리의 인격은 부지중에 고상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좋지 못한 것으로 습관화된다면 우리의 인격은 부지중 비열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나무 자체에서 진액이 거듭거듭 하여 마침내는 섬유가 되어 그 나무에 껍질이 생기는 것과 같으며, 누에 자체에서 나오는 실이 거듭하여 마침내 제 몸을 감출 만한 고치를 이루는 것과 같다.

우리 속에서 나오는 모든 경건한 습관은 마침내, 우리의 성행(聖行)을 이루어서 놀라운 인격의 모습이 될 것이다. 계시록 3:5에 '흰옷'이란 말은 언어에 습관이라는 뜻이라 한다. 그럼으로 성도에게는 모든 좋은 덕의 습관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세마포 옷이 준비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본문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하심은 우리에게 참으로 요긴한 교훈의 말씀이다. 경건한 습관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는 경건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요구하는 종교는 경건한 종교이며, 우리의 요구하는 인격도 역시 경건한 인격이다. 만일 종교가 그 경건함을 잃으면 이것은 맛 잃은 소금과 같으며, 인격이 그 경건함을 잃으면 방탕함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저 바리새인들의 경건은 다만 그 외모에 있을 뿐 실제의 능은 없었다. 우리는 이러한 형식적인 경건을 원치 아니한다. 패역한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찌 경건한 삶을 원치 아니할 것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등한히 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에 '연습'이란 말은 원어에 '벌거벗고 운동하다' 또는 '훈련하다', '연단하다'라는 뜻이다. 경건에 이르기를 운동선수가 몸에 거리끼는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전심전력함과 같이, 우리의 모든 생각, 말, 행동에 있어 힘써 연습하지 아니하면, 어찌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경건한 종교를 증거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아무리 영양가 높은 음식을 섭취할지라도 운동하지 아니하면 소화 불량으로 영양부족이 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매일 성경을 통독하고 암송한다 할지라도 이 경건함에 실제의 수행이 없다면 그 영혼은 필경 메마른 영혼이 될 것이다.

다니엘은 멀리 이국에 가 있으면서도, 그의 경건을 지속하기 위하여 하루 세 번씩 기도하였다. 우리도 경건함에 이르기 위하여 실제로 연습을 하여야 한다. 우리가 경건에 이르기 위한 연습에 있어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마음의 경건이다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 1:15).

경건은 사람의 중심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어서 마음에 없는 일이라도 다만 형식적으로 행하기가 쉽다. 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금은 그 경건이 저들의 중심으로부터가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 하는 외식이었다. 바리새인들의 구제와 기도도 그 중심으로부터가 아니라 다만 외양에만 있었다. 중심에 경건이 없는 사람의 생활이면은 어두움이 있음이 확실하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어야 한다.

바울은 언제든지 흠 없는 선한 양심을 가지고, 모든 일에 있어 하나님을 증거하였음은 저의 경건이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외식하지 말라. 선한 체, 열심 있는 체, 아는 체하지 말라. 마침내는 화가 임할 것이다.

우리의 경건이 골방에 있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경건이 밀실에서 시작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우리는 은밀한 곳에서 마음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암실기심(暗室欺心)은 신목여전(神目如電)이라" 함은 진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한 마음가짐을 위하여 연습하여 일상 광명한 빛 가운데서 자책할 것 없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둘째, 말의 경건이다

하나님은 경건치 않은 자의 말을 심판하신다(유 15) 하셨다. 야고보는 만일 우리가 말에 허물이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 하기까지 언어의 경건에 대하여 비중을 두었다.

야고보서 3:2-8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하셨다.

우리가 말에 허물이 없으려면 이 말의 경건의 연습을 더욱 힘써야 하겠다. 일상생활에 말이 많은 사람은 좀 침묵하기를 연습해야 하겠다. 조급한 사람은 인내의 연습을 해야겠다. 비평하거나 중상하는 혀도 버려야 하겠다.

성경에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셨지만 어떤 신자들은 입버릇처럼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하다가도, 좀 불편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망령된 말을 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마 12:36, 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하셨다.


셋째, 행위의 경건이다

하나님은 경건치 아니한 일을 심판하신다(유 15). 경건치 아니한 일은 곧 그 사람의 행위에 속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경건한 행위를 연습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계시록 19: 8에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하셨다.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아는 것같이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그 사람의 심성도 알 수 있다. 사랑의 습관, 온유한 습관, 친절한 습관을 연습하여야 한다.

교만한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나 교만한 거동이 나타나며, 냉랭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냉랭한 행동을 나타낸다. 우리가 나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니 담대하다 하여 자기의 덕성함양에 주의하지 않는 일이 없는가?

교만한 사람은 언제든지 겸손한 행위의 연습을 하기를 마치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음과 같은 수행이 있어야 할 것이다. 냉정한 사람도, 여리고의 불한당을 맞은 사람을 싸매어 준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친절을 연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경건함의 덕을 연습하여 나의 완전함에 이르도록 힘써 연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