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페너의 종말론

 

I. 서론

독일 경건주의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가 살았던 17세기의 유럽은 신앙의 위기의 시대라 할 수 있다. 30년 전쟁(1618-1648)과 그 공포는 이미 종교개혁자들에게, 특히 루터에게서 강하게 인식되었던 종말 사상을 다시 새롭게 일깨워 주었다. 이 시대의 독일의 모든 지역과 루터교의 모든 계층에서 경건서적, 설교집 그리고 찬송은 바로 다가오는 세상의 종말, 종말에 일어날 그리스도의 재림의 가까움을 느꼈다.

독일에서는 30년 전쟁 기간 중에 도시에서는 인구의 30%가 그리고 인구의 50%가 감소한 지역(Mecklenburg, Pommern, Brandburg, Niederschlesien, Böhmen, Pfalz, Württemburg)도 있었다. 30년 전쟁과 그 후에도 계속되는 전쟁, 기근, 전염병의 팽배로 유럽인들은 한편으로는 세상의 종말이 곧 도래하리라는 위기와 다른 한편으로는 지상에 세워질 천년왕국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II. 슈페너의 종말론적 사상의 태동

1. 요한 계시록 9:13-21에 대한 슈페너의 해석

슈페너의 종말론적인 사상은 이미 그의 슈트라스부르크 시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슈페너는 1664년 6월 슈트라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요한 계시록 9:13-21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슈페너는 여기에서 유브라데강에 결박되어 풀린 네 천사를 루터교 정통주의의 성서해석에 의거하여 아랍인, 사라센인, 타르타르인 그리고 터어키인으로 보고 이들은 바로 이슬람에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한다. 슈페너는 개혁교회 신학자들에게 통례적인 계시록에 기록된 천년 왕국에 관한 해석을 알고 있었지만 이 당시에는 종말론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자신의 종말론적인 사상은 그의 프랑크푸르트 시절에야 고개를 들게 되며, 그의 실제 종말론적인 사상은 "교회의 더 나은 시대에 대한 희망"에 관한 것이다.

2. "교회의 더 나은 시대에 대한 희망"의 태동

슈페너는 1701년 신년 설교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법에 따라 교회사를 300년의 단위로 나누면서 부패한 루터교회의 상태를 목격하고 독일의 루터교에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진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심판은 슈페너의 종말론과 연관되어 있으며 심판 이후에 예언자들과 특히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한 "더 나은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슈페너의 이 사상에 대하여 여기에서는 그 태동 시기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리츨(Albrecht Ritschl)은 그의 '경건주의 역사' 제2권에서 슈페너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은 '경건한 소원들'(1675년)에 처음 등장하며 슈페너의 개인적인 정서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만(Johannes Wallmann)은 슈페너의 이 사상은 1670년 여름부터 1674/75년 사이에 태동되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만은 슈페너가 이 사상을 이미 1674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언급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경건한 소원들'이 나오기 이전에 형성된 것이다. ?만은 리츨의 이와 같은 주장을 반박하면서 슈페너는 하나님이 징조를 통해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으며, 이러한 징조들이 눈앞에 나타나 하나님이 근래에 어떤 중요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슈페너는 그 당시의 교인들의 상태를 통해서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의 구별을 관찰하게 된 것이다.

블라우푸스(D. Blaufuß)는 슈페너의 이 사상이 루터교 정통주의에 근거하고 있으며 특히 슈페너의 선생인 단하우어(J. C. Dannhauer, 1603-1666)의 견해를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III. 교회의 미래에 대한 희망

슈페너의 종말론은 그가 표현한 "이 세상에서 교회의 더 나은 시대에 대한 희망(Hoffnung besserer Zeiten für die Kirche auf Erden)"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슈페너는 최후심판 이전에 두 가지의 중요한 징조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는 자연의 대 변화인데, 우주적인 질서의 변화나 자연 재난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싸이게 된다. 다른 하나는 최후 심판 이전에 일어날 교회사적인 사건이다. 이 교회사적인 사건이 다음과 같은 4가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그륀베르크(Paul Grünberg)는 지적하고 있다: ① 하나님의 교회(루터교회)에 대한 강력한 심판 ② 바벨론의 멸망 ③ 이방인과 유대인의 회심 ④ 교회의 더 나은 시대에 대한 희망. 이러한 내용이 언급된 그의 대표저서인 '경건한 소원들(Pia Desideria)'과 1688년에 나온 그의 교리적인 설교집인 '복음적 신앙교리(Die Evangelische Glaubens-Lehre)'에 나온 설교들을 중심으로 슈페너의 종말론을 다루기로 하겠다.

1.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심판

슈페너에게 있어서 종말론적인 예상은 하나님의 교회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과 더불어 시작된다. 벧전 4:17에 근거하여 슈페너는 하나님의 교회 즉 루터교회에 대한 박해가 적그리스도인 교황을 통해 바벨론의 멸망 이전에 일어나게 되리라고 믿는다. 슈페너에 의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저주(condemnatio)인데 구원과 상반되는 것이며(요 3:17f.)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과 불신자들에게 미치는 것이다. 세상과 불신자들에 대한 이 저주는 하나님의 최후심판과 관련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고통(afflictio)이다. 고통은 원래 인간의 죄로부터 오며 하나님의 의와 자비가 이 안에 나타난게 된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인하여 고통이라는 징계를 통해 인간은 더 나은 영적 상태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고통은 저주와 완전히 다르며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구원의 계획을 나타낸 것이다.

슈페너는 고통과 관련하여 교회가 겉으로는 일치되어있다 할지라도 교회 안에 세 가지의 교인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① 참 신자: 이들은 고통과 박해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하심은 한이 없다고 믿는다. 이들은 고통가 박해가 공개적으로 신앙에 대한 고백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순교의 고난까지 받게되는 것이다. ② 위선자: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신앙의 열매가 없는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세상에 대한 사랑만이 그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으며 단지 교회의 외적인 공동체에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박해를 피하려는 사람이다. 박해는 하나님의 형벌의 심판이 아니지만, 박해 아래에서 위선자들은 몰락하게 된다. ③ 중간분자(die mittlere Gattung): 이들은 미지근하다가 차갑게 되어 바른 신앙의 열심을 잃은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고통을 주신 것이다. 이들에게는 고통이 유익한 것이며 회개로 이끌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여기에서 고통은 중간분자들을 참 신자로 만드는 훌륭한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고통은 교회에 필요한 것이다.

슈페너도 루터교의 정통주의자들처럼 루터교회가 지상에 있는 참된 하나님의 교회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루터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받는 것일까? 이에 대해 슈페너는 루터교회의 죄가 바로 심판을 자초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루터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종교개혁에서 참 교리를 받았음을 인정한다. 이 참교리를 받은 것에 대한 결과는 참된 살아있는 믿음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언제나 증거되어져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슈페너의 눈에는 루터교회가 이 참된 교리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이것은 문자로만 나타내진 것으로 만족할 수 없고 성령을 통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진리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슈페너는 루터교회에서 참 교리는 문자적으로만 이해되었지 실제로 나타나 있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내적 신앙이 잘못 형성되었다는 것이며 외적인 종교적 행위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오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슈페너는 이 심판의 목적을 첫째, 교회의 개혁에 있다고 본다. 슈페너는 작금의 루터교회를 부패된 상황으로 간주하고 이 상태가 변화되고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 개혁의 도구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심판의 두 번째 목적은 거짓 신자와 참 신자의 완전한 구별이다. 교회에서 참 신자와 거짓 신자는 외적으로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박해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참 신자와 거짓 신자는 완전히 구별된다.

루터교회에 임하는 이 심판으로 교회는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슈페너는 이 심판의 고통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참 교회의 존속을 믿는다. 살아있는 참 신자들이 이 교회의 회원이다. 여기에서 참 믿음은 참 교회의 지탱을 위한 기본적인 요소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회가 예를 들면 교회 건물의 파괴, 예배금지와 같은 외형적인 큰 해를 입는다고 해도, 긍정적인 결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통해 교회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화되고 새롭게 되어 갱신된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통은 교회에 해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교회의 개혁을 위한 도구로 인식이 된다.

2. 바벨론의 멸망

바벨론의 멸망은 유대인의 회심과 더불어 슈페너가 제시한 종말론적 기대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슈페너에게 있어서 로마 카톨릭 교회는 바벨론이며 적그리스도이다. 이런 견해는 종교개혁자 루터의 견해와 일치하고 있다. 특히 슈페너는 종교개혁 기념일의 설교에서 교회사적으로 적그리스도의 기원을 다루었다.

슈페너에게 있어서 바벨론인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최후의 심판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에 대한 징조이다. '경건한 소원들(Pia Desideria)'과 '복음적 신앙교리'에 나와 있는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슈페너의 견해는 모두 동일하다. 슈페너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루터교회를 박해하고 난 다음 세력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리라고 본다. 슈페너는 계시록 17장과 18장에 나온 바벨론의 멸망에 루터교 신학자들도 동의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로써 슈페너는 자신의 주장이 신학적으로 루터교의 전통에 근거하고 있으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슈페너는 적그리스도적인 교황권인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첫째, 적그리스도적인 로마 교회의 심판자이다. 계 18장에 의거하여 슈페너는 하나님 만이 로마 교회를 심판하고 결국에 멸망시킬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로마 교회는 강력한 왕국이어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왔다. 이 왕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 어떠한 힘도 세상에는 없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무너뜨릴 수 있다고 슈페너는 보고 있다.

둘째, 로마 교회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사용될 하나님의 도구이다. 슈페너는 이 도구를 알 수 없다고 본다. 그러나 슈페너는 계 9:14 이하에 나오는 네 천사가 이 도구임을 믿고 있다. 그리고 계 17:16의 열 뿔은 왕국들이며 로마 교회를 대적할 하나님의 도구로 추측하고 있다.

셋째, 로마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되는 이유이다. 슈페너는 초기 로마 교회는 참 교회라고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교회는 진리에 대한 사랑 보다는 이것을 거부한 것이다. 이 결과 로마 교회는 진리를 상실하고 점점 거짓된 교회가 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면적이고 심령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외면적이고 형식적인 예배만을 드리게 되었으며,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증된 것으로 심판받게 되었다.

넷째, 로마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또 하나의 원인은 루터교회에 대한 박해에 있다. 왜냐하면 로마교회는 박해에서 수많은 참 신자들의 무고한 피를 흘린데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슈페너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갑작이 올 것이며 로마 카톨릭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닥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는 이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 적그리스도적인 로마 카톨릭에 속한 사람들에게 계 18:4에 근거하여 그곳에서 나올 것을 권면하고 있다. 그리고 루터교인들에게는 적그리스도인 바벨론과의 연합을 경고하고 교황권으로부터 온 나쁜 생활을 버릴 것을 권하고 있다.

3. 이방인과 유대인의 회심

바벨론의 멸망에 이어 교회는 전 유대인의 회심으로 새로운 상태를 맞게 된다. 이 두 가지 하나님의 심판, 루터교에 대한 심판과 바벨론 멸망은 박해를 극복한 교회의 재건과 교회의 더 나은 상태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암시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이방인과 유대인에 대한 선교이다. 슈페너는 선교의 계속적인 수행이 하나님의 심판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1) 이방인에 대한 선교

개신교의 선교 사업의 시작 이후 슈페너는 언제나 선교의 선구자로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슈페너는 선교 사업을 조직하거나 선교에 직접 사역하지는 않았지만 개신교 선교에 새로운 자극을 불어 넣은 사람이다. 슈페너의 저서들, 그 중에서도 '복음적 신앙교리'와 '교리문답에 관한 설교'는 인도에서 초창기 루터교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신학적이고 실제적인 자료였다. 슈페너에게 있어서 선교란 그리스도인들의 행함이며 교회의 사명이었다.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성장은 온 세상에 복음의 전파와 증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선교 사업의 목적은 온 세계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있다.

1687년 삼위일체 후 제20째 주일의 설교본문인 마 22:1-14은 교회가 모든 세상에 대해 열려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모든 민족에 대한 초청의 장소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다. 교회의 초청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초대는 세 가지의 기본노선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 초청은 구약성서의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 사이의 구별을 철폐했다. 이로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나라(das besondere Reich Gottes)"는 이스라엘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이 초청은 성서와 교회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위임을 성취하기 위해 사도들은 어디든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이런 방법으로 교회가 새롭게 세워졌다. 이와 함께 슈페너는 엡 2:12 이하에서 말한 대로 모든 이방인이 참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증거가 현재에도 유효한 것은 예루살렘 교회를 제외한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가 원래 선교에 의해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교 사업의 확실한 결과이다.

셋째, 이 초청은 계속되어져야 한다. 여기에서 거듭난 기독교인, 교회 그리고 기독교 위정자들의 선교의무가 추론된다. 슈페너는 167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행한 그리스도의 승천절 설교(본문: 막16:14-20)에서 선교를 강조하였다. 이 설교에서 설교의 대상은 온 세상과 모든 인간임을 주장하며 설교는 선교의 근본적인 수단임을 지적하고 있다.

2) 유대인에 대한 선교

슈페너가 '경건한 소원들'과 '복음적 신앙교리'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대인의 회심은 바로 유대인에 대한 선교의 내용을 담고 있다. 루터교 정통주의에서 선교 사상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와는 반대로 슈페너는 선교란 포기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며, 이 점에서 루터교 정통주의와 차이가 난다. 슈페너에게 있어서 선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간을 하나님께 회심하게 하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회심은 이미 유대인에 대한 선교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경건한 소원들'에서는 유대인의 회심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경건한 소원들'의 1680년 판에서는 부록에 유대인의 회심에 대한 상세한 각주를 고대 교회부터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이후 시대까지 교회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슈페너는 유대인에 대한 선교가 고대 교회부터 지금까지 연속선상에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슈페너는 1686년 12월 대강절 둘째 주일 설교의 부록에 이에 대하여 상당히 자세하게 두 가지 점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1) 유대인의 회심에 대한 교회사적인 제시 2) 유대인의 회심에 대한 슈페너의 견해.

첫째, 유대인의 회심에 대하여 주장한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롬 11:25 이하와 호 3:4 이하를 유대인의 회심에 대한 근거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 슈페너는 유대인의 회심이 성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확신하다. 먼저 그는 유대인의 회심을 주장한 14명의 교부를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6명의 중세기 신학자들을 들고 있는데, 고대 교회에 비해 이렇게 적은 이유는 중세기에 유대인의 회심이 교리로서 한편에서는 중요하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중요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유대인의 회심에 대한 교리가 세 개의 종파에 따라 인정되었다: 이에 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는 스콜라 신학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전승된 고대 교회의 신학으로부터 온 것이다. 개혁교회는 로마 카톨릭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슈페너는 루터교회의 이 교리에 대하여 루터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유대인의 회심에 대한 루터의 견해는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전 유대인의 회심이며 다른 하나는 교회사의 과정에 나타난 유대인의 회심의 성취이다. 그러나 슈페너는 루터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나온 그의 저작의 편집과정에서 이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슈페너는 루터가 롬 11장에 대한 해석에서 유대인의 회심에 대하여 미래에 일어날 사건 혹은 교회사에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이중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슈페너는 이러한 두 가지 견해가 루터교회에 지금도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슈페너는 루터 이외에 롬 11장에 대한 멜랑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의 견해를 실례로 들고 있다. 멜랑히톤에게 있어서 유대인의 회심은 교회사에 나타난 단지 회심했던 유대인들의 결과이다. 멜랑히톤은 유대인의 회심이 단지 미래의 희망인 것에 대하여 이론(異論)을 제기한다. 그에게 있어서 유대인의 회심은 오히려 비밀에 싸인 하나의 사건이다. 이 견해가 루터교 정통주의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루터교 정통주의는 미래에 전체 유대인이 회심하게 되리라는 것을 거부한다. 이와는 달리 슈페너는 루터교회에서 전체 유대인의 미래에 회심하게 된다는 희망을 가진 견해를 발견한다. 슈페너는루터교의 신학 교수들과 목사들 가운데 이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보증인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Wittenberg, Leipzig, Rostock, Greifswald, Tübingen, Marburg, Gießen, Jena, Helmstedt, Straßburg, Altdorf 그리고 Kiel 대학교의 교수들로 35명이며, 14명의 목사들이다. 이러한 수 많은 증인들과 더불어 슈페너는 유대인의 회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확실하게 표명하고자 했다. 이로써 그는 유대인의 회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반박하는 루터교 정통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방어를 꾀한다.

둘째, 슈페너는 위에서 말한 신학자들의 사상으로부터 나온 결론을 결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다섯 가지의 견해가 나오게 된다:

① 전체 유대인의 회심에 대한 근거가 충분한 이유는 인간의 사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있다.

② 유대인 회심에 대한 동의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 고대 교회부터 종교개혁 이후 시대까지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있으며 또한 전 에큐메니칼적인 영역, 즉 로마 카톨릭, 개혁교회 그리고 루터교회까지 이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교리가 성서의 증거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③ 모든 유대인의 회심에 대한 주장은 위에서 언급한 신학자들의 주석에 나와 있으며 롬 11장과 호 3장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교리는 "ex professo(분명히)" 성서 해석에 관련된 것이다.

④ 슈페너는 회심하는 유대인의 숫자에 대하여 유대인 전체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이것은 유다 자손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전체 이스라엘 민족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육신의 혈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진기하게도 슈페너는 호 3장의 유대인의 회심을 두 가지 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재기가 어쩌면 가능하여 재건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유대인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는 종교적인 전환이다.

⑤ 유대인의 회심이 신앙고백의 조항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미래에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써 유대인의 회심은 교회의 더 나은 시대에 대한징조로서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최후심판이 시작되리라는 징조인 것이다.

슈페너는 유대인의 회심이 선교 사업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슈페너에게 있어서 유대인의 대한 선교는 루터교회의 의무로서 이해되었다. 슈페너는 프랑크푸르트에 있을 때 당국에 유대인에 대하여 의무적으로 설교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 제국법에 의하여 유대교도 종교로서 인정을 받기 때문에 이 청원은 거부되었다. 1702년 슈페너는 자신의 이 의견을 철회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유대인에 대한 선교의 도구로 간주하였으며 루터교회에서 유대인에 대한 선교를 위한 선교사를 양육할 것과 유대교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특별위원회 설립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의 소원은 할레(Halle)에 '오리엔탈 연구소(Collegium Orientale)'의 설립으로 이루어졌다.

4) 교회의 더 나은 시대에 대한 희망

슈페너가 이미 '경건한 소원들'에서 말한 "더 나은 시대에 대한 희망"은 '복음적 신앙교리'에서 다음과 같은 다른 용어들로 표현되고 있다: "교회의 안식(Ruhe der Kirche)", 교회의 "기쁜 상태(ein erfreulicher Stand)", "편안한 안식과 선한 상태(eine liebe Ruhe und ein guter Zustand)", "영원의 마지막 관문 이전의 구원의 안식(eine selige Ruhe vor dem letzten Eingang der Ewigkeit)", "더 나은 상태(ein besserer Stand)".

1687년 삼위일체 후 20번째 주일의 "교회에 관하여"(본문: 마22:1-14) 라는 설교에서는 교회의 상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슈페너는 교회 안에 신앙인과 불신앙인이 함께 섞여 있다는 "혼합된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 permixtum)" 이라는 어거스틴의 입장을 받아들이면서 교회의 상태는 부패하고 깨끗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교회의 미래를 주시하고 갱신된 교회의 더 나은 상태를 희망한다. 위에서 말한 루터교에 대한 박해(벧전 4:17), 바벨론의 함락(계 18장-19장)과 이방인과 유대인에 대한 선교(롬 11:25f., 호 3:4f.)는 "더 나은 시대에 대한 희망"이면서 또한 이 희망의 원동력이다.

슈페너에게 있어서 "더 나은 시대"란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 건설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천년왕국설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의심받을 수 있으며 루터교의 전통에 위반되기 때문에 슈페너는 천년이라는 숫자를 피해야만 했다. 사실 천년왕국설은 루터교의 최초의 신앙고백서이자 루터교 전통의 모든 신앙고백서들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아욱스부르크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n, 1530년, 이하 CA라 약칭함) 제17항에 대치되고 있다. 여기에서 죽은 자의 부활 이전에 성도들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는 것을 분명히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종교개혁 당시 폭풍우를 몰고 온 뮨처(Thomas Müntzer, 대략 1490-1525)와 뮨스터(Münster)의 천년왕국설에 대한 반대의견을 분명히 명시한 것이다. 슈페너는 자신의 견해가 루터교 전통과 어긋난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뮨스터의 재세례파가 주장하는 천년왕국설을 거부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가 세우는 영광의 나라에 대하여 동조했다. 이렇다고 해서 슈페너가 천년왕국설을 부정한다고 할 수 없다. 이 땅에 그리스도가 세우는 영광의 나라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최후 심판 이전에 있을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살후 2:8에 근거하여 슈페너는 미래에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에 관한 바울의 견해는 바벨론의 멸망 즉 로마 카톨릭 교회의 멸망과 관련된 것이라고 이해한다. 이런 의미에서 살후 2:8의 "파루시아"는 슈페너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육신의 나타나심이 아니라 그의 능력의 나타남으로 이해되었다.

슈페너에게 있어서 "더 나은 시대"의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다. 이 점에서 슈페너는 과격한 천년왕국설과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슈페너를 천년왕국설 신봉자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슈페너는 천년이라는 숫자에 중요성을 두지 않은 상당히 완화된 천년왕국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슈페너에 의해 천년왕국설이 독일 루터교에 소개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슈페너는 급진적인 천년 왕국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계 20:4에 대해서 먼저 순교하여 부활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최후 심판의 날 이전에 이 세상에서 천년 동안 다스리게 되리라고 해석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슈페너에게 있어서 계 20:4에 나온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스리는 자는 영혼으로 이해된다. 슈페너는 요 5:25;28과 딤후 4:8에 근거하여 죽은 자들의 부활은 최후 심판의 날 이전에 일어나지 않고 최후 심판의 날과 함께 일어난다고 믿고 있다.

IV. 결론

슈페너의 "교회의 더 나은 시대에 대한 희망"은 루터교의 종말론의 역사에서 분기점을 형성하고 있다. 종교개혁 시대부터 루터교회에서 지하에 숨어버린 종말론은 여기에서 완곡한 형태로 루터교회의 신학과 교회에서 출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슈페너의 종말론은 탈세상적이며 염세적이지 않고 현실적이며 교회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주고 있다. 슈페너는 현재의 부패하고 병든 교회의 상태에서 완전한 모습을 지닌 미래의 희망에 가득 찬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곧 일어날 루터교회에 임하게 될 박해, 바벨론, 즉 로마 카톨릭 교회의 멸망 그리고 이방인들과 전 유대인의 회심을 통하여 이 세상에 도래할 교회의 새로운 시대를 기대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의 목적은 미래의 구원에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시대는 그리스도의 최후심판 이전에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는 천년이라는 숫자와는 관계없이 슈페너 특유의 완곡한 천년왕국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참고문헌

1. 제1차 문헌

Spener, Philipp Jakob, Des tätigen Christentums Notwendigkeit und Möglichkeit, Frankfurt a.M., 21687.

-------, Die Evangelische Glaubens-Lehre, in: Philipp Jakob Spener Schriften, Bd. III.1., hrsg. v. Erich Beyreuther, Nachdruck Hildesheim-Zürich-New York, 1986.

-------, Pia Desideria, hrsg. von Kurt Aland(Kleine Texte für Vorlesungen und Übungen 70), Berlin: de Gruyter 3.Aufl. 1964, 2. Nachdruck 1982.

-------, Pia Desideria, in: Philipp Jakob Spener Schriften, Bd. I., hrsg. v. Erich Beyreuther, Frankfurt a.M. 1680. Nachdruck Hildesheim-Zürich-New York, 1979.

Die Bekenntnisschriften der evangelisch-lutherischen Kirche, Göttingen, 101986.

2. 제2차 문헌

Althaus, Hans-Ludwig, Speners Bedeutuung für Heiden- und Judenmission, in: Lutherisches Missions-Jahrbuch 1961, pp. 22-44.

Blaufuß, Dietrich, Philipp Jakob Speners Reformprogramm als Beitrag zur Glauwürdigkeit der Kirche, in: Una Sancta 40, 1985, pp. 203-214.

-------, Zu Ph. J. Speners Chiliasmus und seinen Kritikern, in: Pietimus und Neuzeit 14, Göttingen: Vadenhoeck & Ruprecht, 1988, pp. 85-108.

Brecht, Martin, Chiliasmus in Württemberg im 17. Jahrhundert, in: Pietismus und Neuzeit 14, Göttingen 1988, pp. 25-50.

Deppermann, Klaus, Vorwort, in: Pietismus und Neuzeit 14, Göttingen: Vadenhoeck & Ruprecht, 1988, pp. 5-10.

Friedrich, Martin, Zwischen Abwehr und Bekehrung. Die Stellung der deutschen evangelischen Theologie zum Judentum im 17. Jahrhundert, Tübingen 1988.

Greschat, Martin, Die "Hoffnung besserer Zeiten" für die Kirche, in: Zur neueren Pietismus Forschung,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1977.

Grünberg, Paul, Philipp Jakob Spener, 3 Bde., Göttingen, 1893-1905.

Jung, Martin, Die württembergische Kirche und die Juden in der Zeit des Pietismus (1675-1780). Studien zu Kirche und Israel 13, Berlin, 1992.

Kruse, Martin, Speners Kritik am landesherrlichen Kirchenregiment und ihre Vorgeschichte, Arbeiten zur Geschichte des Pietismus 10, Witten: Luther-Verlag, 1971.

Lehmann, Hartmut, Das Zeitalter des Absolutismus. Gottesgnadentum und Kriegsnot, Stuttgart/Berlin/Köln/Mainz: Verlag W. Kohlhammer, 1980.

Maier, Gerhard, Die Johannesoffenbarung und die Kirche, Wissenschafliche Untersuchung zum Neuen Testament, Tübingen 1981.

Obst, Helmut, Das Kirchengeschichteverständnis Philipp Jakob Speners, in: Theologische Versuche III, Berlin: Evangelische Verlagsanstalt, 1971, pp. 87-97.

Ritschl, Albrecht, Geschichte des Pietismus, 3Bde., Neudruck Berlin, 1966.

Schmidt, Martin, Judentum und Christentum im Pietismus des 17. und 18. Jahrhunderts, in: Kirche und Synagoge II, Handbuch zur Geschichte von Christen und Juden, hrsg. v. Karl Heinrich Rengstorf und Siegfried v. Kortzfleisch, Stuttgart, 1970, pp. 87-128.

Wallmann, Johannes, Die Anfänge des Pietismus, in: Pietismus und Neuzeit 4, 1977, pp. 11-53.

-------, Philipp Jakob Spener, in: Gestalten der Kirchegeschichte, hrsg. v. M. Greschat, Bd. 7., Stuttgart: Kohlhammer, 1982, pp. 205-223.

-------, Philipp Jakob Spener und die Anfänge des Pietismus, Tübingen: J. C. Mohr (Paul Siebeck), 21986.

-------, Pietismus und Chiliasmus. Zur Kontroverse um Philipp Jakob Speners "Hoffnung besserer Zeiten", in: Zeitschrift für Theologie und Kirche 78, 1981, pp. 235-266.

Weiss, Hartmut, "Philipp Jakob Speners Verhältnis zum römischen Katholizismus", Diss. theol. Kiel,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