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중생론(重生論)

서언

제1장 중생과 영혼제2장 중생의 필요

제3장 중생의 방법 : 제4장 중생의 결과 

  

- 서언 -


인류가 태초에 창조될 때에 최고(最高), 최귀(最貴), 최영(最靈), 최미(最美)하게 창조되였으니 천한대서 귀한대로 저급에서 고등으로 진화된 것이 않이고 신령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자니라. 그러면 하나님은 영이신지라 무형무적(無形無迹)하시거늘 형상(形象)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형상은 즉 이것이니 유형(有形)한 형체의 형상이 않이오 무형(無形)한 영성(靈性)의 형적, 즉 그 의(義), 진(眞), 성(聖), 지(知), 생(生) 등의 형상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고귀영혜(高貴靈慧)하신 영성적 형상을 부여하야 창조하시고 명왈(名曰) 생령(生靈)이라 하시니 이는 영성과 물체가 합하야 구성된 본체를 가라침인대 이것이 곧 영혼을 가진 인생이니라. 이리하야 육체를 가지고 또 영성을 가졌음으로 아래로는 육체가 물질을 통하야 의존하고 우으로는 영성이 영이신 하나님과 사괴여 생활하나니 이것을 생령(生靈)이라 하였나니라. 그 생활이야 말로 성스럽고 쾌활하고 깃브고 평화롭고 자유스러웠으니 인생의 의의가 여기에서 정하여룶고 하나님이 인생을 지으신 목적도 여기에 있었나니라. 그러나 연구세심(年久歲深)함을 따라 인류는 물욕교폐(物慾交弊)하야 그 본성의 지혜는 어리석어지고 영성은 어두어저서 그 생활상태가 영어(囹圄)에 구속(拘束)됨 같아야 하나님과의 관계는 죽음과 마찬가지가 되고 그 생활이라는 것은 음식가취(飮食嫁娶)함으로 식색지욕(食色之慾), 즉 유물주의를 인간의 최고이상으로 하야 동물과 마찬가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생의 현상이니라. 이럿틋 타락하야 나려가고 또 나려간 인생을 다시 고결하고 영성적인 본래의 지위에 복귀시키고 심령의 영어(囹圄)에서 해탈하고 심령의 죽엄에서 부활되여 신인격을 창설하는 것이 중생이니라.

모든 인류가타락된 사실을 아는 동시에 역대로 우세애인(憂世愛人)의 뜻을 가진 선각자들이 혹 대자대원(大慈大怨)을 부르짖고 혹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부르지져 종교를 세우고 도덕을 가라처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였으나 그것으로 인류구제에 넉넉한 길이 되지 못하였나니라. 이리하야 억조(億兆)가 광원(廣遠)한 사막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야 바른 길을 찾으며 창파(滄波)에 파선한 객(客)이 살길을 찾다가 얻지 못하야 부르지질 때에 한 구주가 침침칠야의 등불같이 건조한 사막에 생수와 같이 무변대해(無邊大海)에 방향을 잃고 표류하여 도라다닐 때 구명선과 같이 죽을 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하야 절망중에서 울 때에 의원(醫員)같이 나타나서 웨처 갈아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평안히 쉬게 하리라 하는 소리가 그윽히 들녀오니 이는 정욕세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류를 부르는 목자의 소리였다. 이것이야말로 만민의 복음이니라. 바라보니 갈바니산 십자가에 높이달려 왼몸의 피흘니고 엘늬엘늬라마 사박다늬 부르면서 고민(苦憫)중에도 원수 위해 비신 말삼 아버지여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하였으니 그는 누구인가? 암야(暗夜)의 등광(燈光)이오 사막에 생수이며 황파(荒波)중에 구명선이며 만병에 의원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않이신가. 자기의 생명바려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중생은혜 베푸시고 영생천국 주섰으니 금생내생은혜로다. 우리는 이 복음을 듣거든 이 은혜를 체험하고 이 복음을 전파하야 만민에게 증거할지니라.

<처음으로>

 

제1장 중생과 영혼

제1절 정의(定義)

중생(重生)이라는 말은 숙어로는 신생(新生), 또는 재생(再生)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 이 말의 뜻을 생각하면 낫든 것이 다시 난다는 뜻이니라. 이것을 다시 성경에 가라친 말로 생각하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 지은 것이니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되였도다』하신 말삼과 같이 『신창조』를 의미한 것이며(고후 5:17) 또 너희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변하야 새마음을 받으라 함과 같이(롬 12:2) 『새마음』을 의미한 것이며, 또 너희 마음의 신을 새롭게 하야 새사람을 입으라 함 같이(엡 4:24) 『새사람』을 의미한 것이니 다시 말하면 임의 만드럿든 물건이 못쓰게 된 것을 다시 만드러서 새롭게 하는 것같이 임의 창조하신 영혼이 파손된 것을 다시 만드는 것이 중생이니라. 중생은 즉 영적변화인대 원상회복하야 신인격이 창조되는 것이니라.

제2절 영혼이 하나님을 닮았음

처음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섰다 하였으나(창 1:26, 27) 하나님은 원래 무형무상(無形無像)하신대 그 형상대로 지으섰다 하였으니 여기에 형상이라함은 물론 형체의 형상이 않이니라. 우리 인간적으로 말할 때에 형상 또는 모양에 대하야 두 가지 뜻으로 말하나니 일은 유형한 모양을 가라치고 일은 무형한 모양을 가라침이니라. 예를 들어 말하면 한사람을 가라쳐 말할 때에 그 사람이 꼭 아바지를 닮았다 하는 대 그 닮았다 하는 점은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신체의 어느 부분이 물적으로 닮았다 함이오 또 엇떠한 때에는 그 사람이 꼭 아바지를 닮았다 할 경우에 그 닮았다는 것은 그 심성정(心性情)의 심적 현상을 가라처 말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 형상대로 인류를 만들자 하신 것은 형체의 형상이 않이라 무형한 영의 형상이니 즉 하나님의 속성인대 이것이 인류의 영혼이니라. 그런대 이 인류의 영혼이 죄로 인하야 훼파되었음으로 새로히 그 영혼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니라.

제3절 영혼과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이 인간의 영혼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섰다 하였는대, 인간이 그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함은 유형한 형체의 형상이 않이오 무형한 형상 즉 영의 형상이라 함은 전장(前場)에서 말하였거니와 그 영적 형상이라는 것은, 즉 하나님의 속성이니 (도덕성, 道德性), 그 속성이라는 것은 이러한 것이니 의(義)와 진(眞)과 성(聖)과 지(知)와 생명(生命) 등이니라.

그런고로 처음 사람은 오직 공의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그 의(義)이였으며, 성(聖)하였나니 순전하야 무죄생활이였으며, 진실하야 거짓과 허위가 없었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야 생각한 것도 없고 배우지도 않이하였으나 완전하였으며, 무한한 자유가 있었나니 선(善)과 악(惡)을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나니 즉 완전한 자유이었으며, 또 큰 권세가 있었나니 물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왼따와 모든 기는 곤충을 주관하는 권세와 영생을 부여하섰나니 영적으로나 육체로나 완전하였나니라. 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곳 인간의 영혼이니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을 창조 하섰나니라(전 12:7).

제4절 영혼이 죽었음

너희가 죄와 허물로 죽었든 자라 하였으니(엡 2:1∼) 이 죽었다 하는 말의 뜻은 육체가 죽은 것이 않이라 영혼이 죽은 상태에 있는 것을 가라침이니라. 가령 사데교회에 대하야 말삼하시기를 너에게 살았다 하는 일흠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나니라 한 말삼이나(계 3:1) 또 연락(宴樂)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은 것이니라 하는 말삼이나(딤전 5:6) 방탕자가 회개하고 도라왔을 때에 그 부친이 말하기를 이는 죽었다가 부활하였으며 잃었다가 얻었다 하는 뜻이 같으니(눅 15:32) 이상에 죽었다고 말한 것은 실상 죽은 것이 않이라 죽은 상태에서 하나님과 그 영적관계와 교제가 끊어짐을 가라침이니라. 이와 같이 중생치 못한 자는 하나님 앞에 죽은 자며 잃어바린 자니라. 맛치 양민으로서 국법을 범하면 재판을 받아 감옥에 갓치나니 이와 같이 된 자는 자유와 공민권을 빼았기고 가족이나 사회의 관계를 두지 못하고 죄값으로 징역(懲役)하며 사나니 비록 사람은 사람이로되 가치 없는 죽은 사람과 일반이니라.

이와 같이 범죄한 영혼은 죽은 자니라(겔 18:20)

제5절 아달의 자격을 상실하였음

엇떠한 여인이 은전 열 푼에서 한 푼을 잃어바렷다 함과 같이 범죄한 자의 영혼은 잃어 바린 상태니라(눅 15:8, 19:10).

하나님께서 처음에 그 형상대로 그 영혼을 창조하섰으니 의(義)와 진(眞)과 성(聖)과 지(知)와 자유(自由)와 권세(權勢)와 영생(永生)을 부여하야 일인격을 형성하야주섰으니 이것이 곳 영혼이오 하나님의 영광을 난호와 받은 것인대(롬 30:23) 그 자격 그 영광을 상실하였나니라. 처음에는 의로왔으나 불의하게 되였고(롬 3:10) 처음에는 진실하였지만 만물보다 거짓되게 되였고(렘 17:9) 처음에는 거룩하였으나 나종에는 거짓되게 되였고(딤전 1:9) 처음에는 하나님 아는 지식이 충만하였으나 나종에는 우마(牛馬)이상으로 몰지각하게 되였고(사 1:3) 처음에는 자유롭게 되였으나 나종에는 죄의 노예가 되였고(벧전 2:19) 인생은 만물을 주관할 자로서 도로혀 만물을 숭배하는 자가 되였고(롬 1:25) 처음에는 영생하도록 창조되었으나(창 3:22) 죽지 않으면 않이될 인생이 되었으니(롬 5:12) 이상이 영혼의 타락상이니, 즉 죽은 상태니라. 그 하나님 아달된 지위에서 떠러저 마귀의 자식이 되었고(요 8:44, 요일 3:10) 지옥의 자식이 되었나니라(마 23:15).

<처음으로>

 

제2장 중생의 필요

제1절 맹목(盲目)이 보기 위하야

예수 말삼하시기를 중생치 못한 자는 천국을 보지 못하나니라(요 3:3) 하섰으니 과연(果然) 중생치 못한 자는 맹목(소경)이니라. 그 심령의 눈은 어두어졌나니 내세의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그 눈에 보이지 않고 자기 영혼 쫓아 있는지 없는지 아지 못하는 영적 맹목이니라(마 15:14). 나는 일즉이 중국 북경에서 선교하는 뿍맨 박사가 우리 재경(在京) 교역자를 모아놋코 일주간 강연할 때에 증거하기를 어느 날 대학생을 맛나 전도하였는대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였다. 그때에 박사는 저에게 칠계(七誡)를 범한 자라고 지적하였으니 이는 성신의 감동이였나니라. 그 익일에 그 대학생은 다시 박사를 찾아와서 자기는 남의 가정을 파괴한 자라고 통회자복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그 심령의 눈은 열렸다 하는 말을 기억한다. 그리면 이 대학생은 그 죄 까닭에 눈이 어두어서 하나님이고 영혼이고 보지 못하고 오직 유물세계(唯物世界)만 감각하고 있다가 그 죄가 깨다라지는 동시에 비로서 영의 눈이 밝아저서 하나님을 알고 자기의 영혼이 멸망에 빠지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니라. 인생의 어두운 눈이 밝아저서 미래의 세계와 하나님과 영혼의 일을 알려면 중생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조건이니라.

제2절 육(肉)이 영화(靈化)하기 위하야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음으로 영적생활을 하여야 맛당하겠는대 타락한 인간은 육적 생활만을 일삼나니라. 그런고로 예수 말삼하시기를 육신으로 난 것은 육신이오 신(靈)으로 난 것은 신이라 하섰으니 무삼 뜻인가? 하나님께서 처음에 인류를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너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되니라 하섰는대(창 2:7) 이 생령이라는 말은 육신을 가지고도 영적 생활하는 것을 가라침이니라. 그리면 영적 생활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깃부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는 목적으로 생활하는 것이니 중생한 생활의 모형이니라. 그리고 육신으로 난 것은 육신이라 함은 무삼 뜻인가? 이것은 생령이라는 말과 정반대니 인류가 창조된 당초에는 생령이더니 차차 연구세심(年久歲深)함을 따라 창조된 지 약 일천오백년 후에 모든 인류는 육체가 되였다 하였으니(창 6:3), 이것은 인류가 영적 생활에서 육적생활로 타락된 것을 가라침이니라. 여기에 대하야 예수 다시 해설하시기를, 홍수 전에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을 하였다 하였으니(마 24:38), 그 인간의 타락된 생활상태를 증명하심이니라. 그리면 인간은 저열(低劣)한대서 시작하야 고상한 대로 진화한 것이 않이고 고상하게 창조된 것이 저열한대로 퇴화한 것이 사실이니 영적 생활이 육적 생활로 타락되었나니라. 그러면 중생은 저열한대서 고상한 대로 육적 생활이 영적 생활로 변하는 것이 중생이니 인류의 가치를 향상시키여 완전한 인격을 건설함에는 중생이 필요하니라.

제3절 원상회복하기 위하야

사도 바울께서 너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일우기까지 너희를 위하야 해산하는 수고를 하리라 하였으니(갈 4:19) 무삼 뜻인가 하면 우리 인류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의(義)와 진(眞)과 성(聖)과 지(知)와 자유(自由)와 권세(權勢)와 영생(永生)을 부여하야 창조하섰는대 다 타락이 되여 그 원상을 잃어 바리고 변하야 가면이 되고 만 것을 다시 그 원상으로 회복시키는대 중생이 필요한 것이니라. 의가 불의로 떠러진 것이 의로와저야 될 것이며(롬 3:22) 허위를 뒤집어 쓴 인간이 허위를 버서바리고 진실한 사람이 되여야 하겠고(엡 4:25), 불성(不誠)하게 된 자가 다시 거룩하게 변하여야 하겠고(히 12:14), 무지하게된 인생이 지식있는 인생이 되여야 하겠고(골 3:10), 자유를 잃어 바리고 죄의 노예된 자가 해방을 받아 회복하여야 되겠고(요 8:32), 하나님의 아달로서 만물의 상속권을 잃어바린 자가 상속권을 회복하여야 하겠고(롬 8:17), 영생을 잃어바린자가 여생을 회복하여야 하겠는대(롬 6:22), 중생이 필요하게 되였나니라.

제4절 천국 드러가기 위하야

물과 성신으로 나지 않이하면 천국에 드러가지 못하나니라 하였으니(요 3:3) 천국은 영혼의 고향이니라. 우리 인생은 어대서 왔으며 무슨 목적으로 살며 마자막으로 어대로 가는가? 여기 대하야 모든 인생은 막연하다. 오직 현실세계 뿐이 나의 살 곳으로 알고 있으나 현재세계는 우리의 영원히 살 곳이 않이오 우리가 이곳(현세계)에서는 항상 거할 성이 없고 오직 장래의 성(城)을 찾는다 하였나니라(히 13:14). 그러면 그 천국은 엇떠한 곳인가? 죄가 없는 곳이오, 정결하고 거룩한 곳이니 두려워하는 자와 믿지 않는 자와 흉악한 자와 거짓말하는 자가 없는 곳이니 중생치 못한 자가 드러가지 못하는 곳이니라. 그런고로 천국고향에 드러가면 반다시 중생을 요하니라.

<처음으로>

 

제3장 중생의 방법

제1절 하나님 말삼

물과 성신으로 나야 한다고 주께서 말삼하섰는대(요 3:5), 여기에 물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물로 세례받음으로 중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런 것이 않이고 여기에 물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삼을 가라침이니라. 보라 기록하였으대 곳 물로 씻는 것같이 말삼으로써 정결케 한다 하였으니(엡 5:26), 말삼을 물에 비하였고 또 베드로 사도 말하기를 너희가 중생한 것이 썩어질 종자(씨)로 된 것이 않이오 썩지 않이 할 종자로 된 것이니 곳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도(道)로 되었나니라 하였으니(벧전 1:23), 중생하는 힘이 말삼에 있음을 증명한 것이니라. 그리면 하나님의 말삼을 물(水)과 씨(種字)에 비하였으니 이는 물은 씨서 맑히는 힘을 가라침이니 사람이 성경말삼을 읽으면 더러운 죄됨을 깨닷고 회개하야 그 마음을 씨서 중생한 사람이 되는 까닭이며, 또 씨에는 생명이 있음으로 따에 심으면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같이 하나님의 말삼이 사람의 마음에 드러가면 중생되여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동시에 악인이 화(化)하야 의인이 되고 야만족이라도 문화인이 되는 것이 그 말삼의 능력이니라.

제2절 성신의 능력

중생의 씨슴과 성신의 새롭게 하심이라 하였으며(딛 3:5), 주께서 말삼하시기를 성신으로 난다 (重生)하였으니, 중생함에는 성신의 감화력이 않이면 않이되나니 이를 주께서 바람(風)에 비하야 설명하셨나니라. 추풍에 만물이 발생(發生)하고 하절남풍(夏節南風)에 만물이 성장하고 춘풍에 만물이 성숙하는 것과 같이 성신의 감화하에 돌과 같이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도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하며(겔 36:26) 어름같이 굳고 싸늘한 마음도 땃땃하게 되는 것은 다 성신의 감화니 그런고로 성신의 감화를 소멸치 말지니라. 성신은 죄와 의와 심판으로 사람의 마음을 계적(啓迪)하시나니 성령의 계적에 의하야 회개가 성립되나니라.

제3절 회개와 그 성립

1. 각성

죄에 대한 각성이니 각성이 없으면 회개의 길에 설 수 없나니라. 방탕자가 회개하고 부친께로 도라오게 되든 첫거름이니 깨닫고 곳 갈아대 내 부친의 고군(雇軍)이 많고 그 양식이 넉넉하야 남으되 나는 주려 죽겠도다 하였고, 또 내가 하나님과 아바지께 죄를 범하였도다 하였으니(눅 15:17∼18), 이것이 저의 각성이니라. 이 방탕자가 와유춘풍(臥遊春風)하며 음주자락(飮酒自樂)할 때에 무삼 각성이 있었으리오만은 세궁역진(細窮力盡)하야 목석간(木石間)에도 의뢰할 수 없게 될 때에 세 가지 깨다른 것이 있었으니, 첫째는 자기가 죄인되는 것, 둘째는 자기가 죽게 된 것, 셋째는 아바지는 풍성하니 양식도 풍성하고 사랑도 풍성함을 깨다랏나니라. 사람이 이 세 가지에 대한 각성이 없으면 회개의 길에 설 수 없나니라.

2. 통회(痛悔)

죄를 깨다르면 둘째로 이러나는 것은 통회니라. 통회하는 마음이 겸손한 자로 더부러 함께 거하야 겸손한 자의 영혼을 부흥케 하고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부흥케 하리라(사 57:15). 통회는 침불안(寢不安)하고 식불감(食不甘)하도록 마음이 앞우고 괴로운 마음이 니러남이니라. 참으로 범죄한 것을 붓그럽게 생각하고 술푸게 생각하여야 회개는 될 것이오 평범하게 생각되는 때에는 회개가 있을 수 없나니라. 다윗이 그 범죄를 생각하고 얼마나 통회하였으며(시 51:16∼17), 베드로가 회개한 것 보면 예수를 삼차나 부인하고 얼마나 통회하였든가 생각하라(마 26:75). 통회가 없는 곳에 회개가 있을 수 없나니라.

3. 고백(告白)

죄에 대한 각성이 있고 통회가 있으면 반다시 고백이 있나니, 이는 구약시대나 사도시대나 현대나 통례(通例)니 이것은 진리니라. 민수기에 왈(曰) 남녀간에 범죄하였으면 그 죄를 자복하라 하였고(민 5:6, 7), 세례 요한이 설교할 때에도 자복하였고(마 3:6), 에베소 교인들도 자복하였으니(행 19:18) 자복은 회개에 반다시 따라가는 태도니라(요일 1:7, 9). 다윗도 회개할 때에 자복하였나니라(시 32:3∼5). 혹 우리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전지(全知)하시니, 자복하지 않어도 아실터인대 웨 자복하라 하시는가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유가 있나니 첫째는 겸손을 요하심인대 겸손한 자의 영혼을 부흥케 한다 하섰고(사 57:15), 둘째는 정직을 요하심이니,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무릇 죄를 자복하고 바리는 자는 불상히 역임을 받으리라 하섰나니라(잠 28:13).

4. 변상(辨償)

회개에는 변상이 따르나니 구약시대에도 보면 자기의 죄를 깨닷고 회개할 때에 첫째는 하나님께 자복하고, 둘째는 제사장을 통하야 속죄제물을 드리고(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공로를 믿는 일), 셋째는 그 손해에 대하야 오배를 가하야 주인에게 변상하되 만일 본인이 없으면 그 친족에게, 친족도 없으면 제사장을 통하야 하나님께 돌리라 하였나니라(민 5:5∼8). 세례 요한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하였으니(마 3:8) 이는 변상이오, 사캐오도 토색한 것은 4배로 변상하겠다 하였으니(눅 19:8), 변상은 회개에 따르는 만고불이지전(萬古不易之典)이니라. 로마에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는 어느 구두방에서 구두를 외상으로 맛처서 신었는데 그 구두 값을 ?어 값기 전에 구두방주인이 죽은지라. 요행으로 생각하고 일시는 깃버하였으나 후에 양심에 가책을 받고 견대다 못하야 그 구두값을 가지고 구두방에 가서 그 값을 던지며 원컨대 너는 갈지어다 너는 세계를 향하야 죽었을지라도 나에게 대하야는 아직도 살았구나하고 부르짖었다 하나니라. 그럼으로 변상연후(辨償然後)에야 참 평안한 마음이 오는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안심이 있을 수 없나니라.

5. 사죄(赦罪)

참다운 회개의 결과는 사죄가 따르나니라. 다윗이 자복하기로 결심할 때 사죄하셨다 하였고(시 32:57), 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고하면 저는 믿부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 하였으니(요일 1:9), 참다운 회개에는 사죄가 따르나니 이 사죄의 권세는 하나님 되시는 그리스도께만 있나니라. 엇떠한 여자가 예수 앞에 와서 무한이 눈물을 흘리고 애통하매 예수께서 그 여자다러 네 죄가 사함을 얻나니라 하섰으니 분명히 사죄의 증거를 받었나니라.

제4절 그리스도의 보혈(寶血)

회개한다고 그 공로로 사죄함을 받거나 중생하는 것이 않이라 예수의 십자가상에서 보혈을 흘리신 공로로 중생하는 것이니라. 자고이래(自古以來)로 의인열사(義人烈士)의 피흘림이 많으니 성경에도 성선지자(聖先知者)들이 귀한 피를 흘리고 우리 역사에도 정포은(鄭圃隱)의 절의(節義)의 피와 민충정공(閔忠正公)의 충의와 피와 이준공(李浚公)의 열의(烈義)의 피도 있으나 그 피를 택하시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택하섰으니 무삼 이유인가.

1. 예수의 피는 창세함으로부터 택하신 피(계 13:10)

인간이 범죄하면 죽는 것이 원칙이나 그러나 만일 누가 대신 죽어 피를 흘리면 용서함을 받나니 이것이 속죄니라.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대속하시기 위하야 피를 찾이시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택하섰나니 예수의 피는 창세함으로부터 예정되여 흘리신 피니라. 가령 아담 부부가 범죄하였을 때에 무죄한 즘생이 아담 부부로 대신하야 죽고 피를 흘렸으며(창 3:21) 아벨이 자기의 죄를 대신하야 양을 죽여 피를 흘렸으며 아부라함은 모리아 산상에서 그 아달 이삭을 대신하야 양을 죽여 피를 흘렸고(창 22:13)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양을 죽여 피흘림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고(출 12:21∼24), 이스라엘이 범죄하였을 때에 양을 죽여 피흘림으로 죄를 속하였으니(레 4:32∼35) 이는 다 장차 예수께서 뭇사람의 죄를 위하야 십자가상에 흘리실 피의 그림자니라(히 9:11∼22).

2. 예수의 피만 거룩함

너희가 속량함을 받은 것은 없어질 은이나 금으로 한 것이 않이오 오직 보혈로 한 것이니,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같은 그리스도의 피니라(벧전 1:18∼19)함과 같이 그리스도의 피는 성결하니 그 이유는 고금 모든 인류의 피에는 다 독소가 있나니 이는 아담의 씨를 받아 가지고 났음으로 역시 그 피에도 독소가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지 않이 하섰나니라. 아담과 이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고 얻은 피의 성분은 불결하였다. 그 피를 타고난 가인은 악하였고, 이로부터 아담의 자손은 일율로 그 성질이 악하여지고 그 피에는 독소가 생기였나니라. 그러나 예수의 피는 거룩하니라. 그러나 한편 마리아의 피를 받어 나셨으니 역시 죄가 있다 할지 모르나 비유로 생각한다면 약중에 인삼이 좋은 것이로되 만일 파두(把豆)를 합하야 다리면 사약(死藥)이 되나니라. 이와같이 예수께서 만일 요셉과 마리아가 혼인한 중에서 나섰더면 죄인일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씨를 받지 않으시고 성신으로 잉태되섰음으로 저는 하나님의 아달이시오, 그런고로 우리 구주시니라. 그렇지 않고 보통 우리와 같은 인간이시라면 우리의 선생은 될 수 있을지언정 구주는 되실 수 없나니라. 거룩하도다 그 보혈이여 이 보혈이 파손된 영혼을 중생케 하는 능력이있나니라.

제5절 신앙(信仰)

네 믿음이 너를 구원(重生)케 하였나니라(눅 7:50). 하나님 편에서는 발서 말삼을 주시고 그 아달로 피 흘리게 하시고 성신 보내섰으니 뜻이 하날에서는 일우어룶으나, 인간편으로는 엇지하면 중생을 체험할 수 있을가? 두가지가 있으니, 회개하는 일과 산앙할 일이니라. 먼저 신앙이라는 것은 엇떠한 것일가? 첫째는 지식(知識)이니, 성서를 배워서 알어야하고 교리도 배워서 알어야 할 것이오, 둘째는 그 아는 바를 그러타고 승인하고 의심치 말어야 할 것이오, 셋째로는 알고 승인한 이상 나의 전부를 하나님께 의뢰할 것이니 여기에서 비로소 신앙이 성립되나니라. 신앙은 이론에 있지 않고 물적으로 증거가 있는 것도 않이오. 하나님의 하시는 것은 초인간적이니 우리도 모든 이론을 초월하야 초자연적으로 의뢰하여야 할지니라(요 1:12, 3:15).

<처음으로>

 

제4장 중생의 결과

제1절 칭의(稱義)

1. 정의

의(義)라 하는 것은 그 행위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이즈러짐이 없어야 의인이 될 것이오(롬 2:13), 만일 왼 율법을 직히다가 하나이라도 범하면 다 범한 것이 되나니(약 2:10), 그럼으로 율법에 빗최여보면 의인이라할 자는 일인(一人)도 없나니라(롬 3:10). 그러면 여기에 칭의(稱義)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의 행한 것을 검사하여보고 만점이다 하는 의미에서 칭의하는 것이 않이오 그저 무조건 하고 주시는 의니, 즉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일값을 주는 것같이 우리는 아모 행한 것이 없는대 덮어놓고 의롭다 하심이니라(롬 4:2∼8). 칭의의 뜻을 마듸로 말하면 의롭게 만드시는 것이 않이오, 의로 넉이심이오, 또는 의라고 인정하심이오, 의로 간주하심이니라. 예를 들어 생각한다면, 아담과 이와가 범죄 함으로 義, 곳 영광을 잃어바리고 그것을 미봉(彌縫)하기 위하야 무화과입사귀로 치마를 만드러 입었을 때에(창 3:7) 하나님께서 그 더러운 의복과 같은 마른 입사귀를 치마를(사 64:6) 벗기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족옷 피의(皮衣)를 만드러 입히시고(창 3:21) 아담이 의롭지 않지만 의롭다고 보시고 정하셨나니라(롬 4:6∼8). 이와같이 칭의는 의롭지 않은 자를 의로녁이시고 또는 의롭다고 간주하시고 의로 인정하시는 것이니라.

2. 칭의를 받는 길(방법)

(1)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은 율법을 행함으로 또는 자선사업을 행함으로 그 공로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않이니라(롬 3:20). 가령 우리가 의를 행한다 하면 그 의는 각다귀같이 적은 것은 행하는 체하야 남에게 보이랴고 하고 약대와 같이 큰 죄는 그늘에서 범하다는 뜻이니라. 과연 바리새인들이 표면(表面)으로는 라팔을 불고 구제사업을 한다고 떠들지만(마 6:1∼) 이면(裏面)으로는 과부의 재물을 빼앗나니 그 자선사업이라는 것이 도로히 이중죄 뿐인 것은 첫째는 명예심이오, 둘째는 미명하(美名下)에 탐욕을 채우는 일밖에 다른 것이 않이니 엇지 의가 되리오. 이것은 의같이 보여지되 불의니라. 한가지는 잘하지만 두가지 잘못이 있고, 오날에는 잘 하지만 내일에는 잘못 하니 어느 날에나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으리오, 그럼으로 행함으로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육체가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나니라.

(2) 칭의는 공로없이 받음(롬 3:24)

우리가 의를 세우랴고 엇떠한 위대한 사업을 한다 하여도 그 공로로 하나님 앞에 의될 것이 없고, 또 임의 지은 죄를 속하랴고 금전을 바치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너희 중에 그 형제를 능히 구속하는 자가 없고, 또한 능히 위하야 속전을 하나님께 드릴 자가 없도다. 대개 그 생명을 구속하는 값이 너무 귀하니 영원토록 할 수 없나니라(시 49:7, 8). 여기 사형수 일인이 있는대 그 죄가 너무 커서 자신으로는 도저히 엇지 할 길이 없다. 그러나 누가 그 죄값을 내여주기만 하면 살기는 하겠는대 자력도 없고 도와주는 자도 없다면 죽을 것뿐이다. 죄지은 인생은 이렇게 죽고 사는 경계선상에서 방황하고 있나니라. 한 예를 생각한다면 빌나도의 심판대 앞에는 죄를 아지도 못하시는 예수께서 서 계시고, 또 한 편에는 살인 강도 등 죽을죄를 범한 바라바가 서서 있다. 빌나도, 일반군중에 대하야 말하기를 의인 예수를 석방하랴, 죄인 바라바를 석방하랴 하였으니 이 두사람중 누가 사형을 당하고 누가 석방되나 심판정은 긴장하였다. 그 뿐 않이라 하날의 천사도 긴장한 중에 나려다 보았을 것이다. 그때에 의외에도 의열(衣洌)히 석방될 줄 알았든 예수에게 사형선고가 나리니 그 교환으로 의연히 사형 당할 바라바가 석방을 받았다. 이것은 진실로 인간의 심판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니라. 아 그때에 바라바의 감상이 엇떠하였으랴. 의인 예수 죽지 않었드면 분명코 죄인 바라바가 죽었을 것이니라. 그러나 의인 예수의 죽으심은 분명 죄인 바라바를 대신하야 죽으심이니라. 바라바의 죄값을 예수대신 내심으로 바라바는 예수의 속죄하신 공로로, 그저 은혜로 의로 결정되였나니라.

(3) 예수의 보혈로 인하야 받음(롬 5:9, 벧전 1:18, 19).

나는 앞서 제4절에서 예수의 보혈을 말하였거니와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야 의롭다 하심을 얻었나니라 하였으니(롬 5:9), 그 피는 우리의 피와 같이 더러운 피가 않이오, 의롭고 성결한 피니라. 이 피야말로 하나님의 피니라. 이 피가 않이면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을 길이 없나니라. 우리를 구속하시대 은이나 금으로 않이 하시고 양과 같이 순결하야 더러움이 없는 그리스도의 피로 하섰나니 그 피로 우리의 죄를 덮으섰나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보시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우신 피를 보시고 우리를 의로 녁이시고 의로 인정하섰나니라.

(4) 예수의 부활하심으로 의를 얻음(롬 4:25)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야 내여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함을 위하야 살아나섰나니라 하였으니, 예수가 우리의 구주인지, 그 죽으심이 분명히 우리의 죄를 인함인지 또 하나님이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분명히 의롭다 하실 것인지 그 증거는 예수의 부활이니라. 옛날에 아부라함의 제물을 받으신 증거로 우으로부터 불이 나려와 제물을 태운 것같이(창 15:17) 예수의 희생의 피를 과연 하나님께서 받으신 증거로 예수는 부활하셨나니라. 아론을 과연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써 택하야 세우신 증거를 나타내시기 위하야 12지파의 대표자의 집행이를 모와다가 성막안 법궤 앞에 두고 그 익일에 드러가본즉 오직 아론의 집행이에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까지 맺었으니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표이거니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의 죽으신 것은 만민의 죄를 위하야 죽으시고 그 피를 믿는 자를 의로 정하시겠다는 증거로 그것을 공인하신다는 증거로써 부활하섰나니라.

(5) 그 자리를 박구심(고후 5:21)

하나님께서 죄를 아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야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에게 있어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이는 자리를 박구셨다는 의미니라. 즉 의인 예수의 자리에 죄인 우리가 서고 죄인 우리자리에 의인 예수께서 서서 우리가 당할 형벌을 십자가상에서 대신 받으시고 우리는 의인 예수님의 자리에 서서 의인으로 인정을 받게 되였나니라.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양 예수는 우리 죄 대신 지시고 자기 의로 우리에게 입히시니라.

(6)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음(롬 3:26)

이때에 그 의로심을 나타내심은 하나님이 자기가 의로우사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랴하심이니라하였으니 믿음이 없으면 칭의를 받을 수 없나니라. 먼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 말삼을 그대로 승인하고 그 다음에는 나의 지식, 나의 경험, 또는 자기까지 부인하고 솔직히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이 신앙인대 이러한 믿음으로 믿는 자를 의로 정하신다고 성경에 예언한 바를 그대로 승인한 믿음이니라. 이 믿음의 의로 정하여지나니라.

3. 칭의 받은 결과

(1) 하나님과 화평이 있음(롬 5:1)

이로써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부러 화평함이 있다 하니라 하였으니 이는 다름 않이라 우리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으로 더부러 원수가 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기다릴 뿐이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가 되여 화해를 부처줄 자가 없더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시고 동시에 중보자가 되사(요일 2:1, 2)), 인간과 하나님으로 더부러 악수하고 화목하셨나니라. 옛날의 절녀(節女)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남편과 원수된 자가 절녀의 친부(親父)를 잡아다 가두고 위협하기로 만일 네 남편을 내게로 잡아 보내지 않으면 네 부친을 죽이리라 하는지라. 그러나 부친을 구하려고 남편을 잡아주면 부정(不貞)이오, 남편을 구하려고 부친을 바려두면 불효(不孝)라. 절녀가 생각다 못하야 원수에게 남편을 잡아주리라 약속하고 남편의 있는 곳을 가라쳐주고 시간을 정한 후에 그 날에 자기 자리에 남편을 자게 하고 남편자리에 자기가 누워 있더니 약속한 밤에 절녀의 원수가 와서 절녀의 방에 드러가 절녀를 그 남편인줄 알고 죽여 그 목을 잘나 가지고 가서 본즉 그 원수가 않이라. 원수의 처 절녀라. 원수가 감동이 되여 절녀의 남편과 절친한 친구가 된 일이 있으니 희생이라는 것은 이와 같이 귀중한 가치가 있음을 알 것이니라. 이와 같이 나와 하나님은 원수이더니(롬 5:10)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화목제물이 되사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화목을 붓치셨나니라.

(2) 송사할 자가 없음(롬 8:34, 35)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송사하리오, 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나니 누가 능히 죄를 정하리오, 그리스도 예수께서 임의 죽으시고 또한 다시 사라나사 하나님 우편에 게시사 우리를 위하야 기도하시는 자시니라 하였으니 설령 우리가 과거에 살인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의 우리를 대신하야 죽으시고 그 흘리신 피를 믿을 때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섰고 의롭다 하셨으니 누가 능히 우리를 송사하리오. 사단이 아모리 송사를 잘 하는 자라도 그리스도 우리의 보증이 되시고 또 우리를 위하야 기도하시나니 우리를 송사할 틈이 없나니라. 만일 송사한다면 예수께서 곳 우리를 위하야 변호하실 터이니 송사하는 자는 패송(敗訟)할 것이니라.

(3) 영생의 기업을 얻음(딛 3:7)

의롭다하심을 얻어 바라는 바 영생의 기업(基業)을 얻는다 하였으니 감사하도다. 이것이 원상회복이니라. 원래 영생하도록 창조하섰건만 범죄함으로 잃어 바렸든 영생을 중생 동시에 회복하야 산소망이 있게 하셨나니라.

(4) 의의 세마포 옷을 입음(계 19:8)

아담 이와는 범죄하고 무화과엽으로 의복을 만드러 입었으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의복이였나니라(사 64:6). 그러나 중생함으로 옛 습관과 옛 의복을 버서바리고 새로운 의복을 입었으니 곳 의의 세마포니라.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가 설 수 있는 예복이니라. 우리는 맛당히 즐거워하고 크게 깃버하야 영화를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니르렀으매 그 안해가 발서 예비하였으니 그 안해가 은혜를 받아 깨끗하고 화려한 세마포 옷을 입었은 즉 이 세마포는 곳 성도의 의로운 행실이로다 하더라 함과 같이 중생한 자는 날근 옷은 버서 바리고 새로운 옷 세마포의 의로운 두루막이를 입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나니라.

제2절 성 자(成者)

1. 성자(成子)의 의의(意義)

성자(成者)라는 말의 뜻은 『아달로 둔다』 또는 『아달로 기른다』는 뜻이니 종합하야 생각하면 『아달을 삼었다』는 뜻이니라(엡 1:5). 예수님의 경우로 말하면 내가 오날 너를 낳다 하야 직접 아달이심을 가라쳤지만(히 1:5), 우리의 경우에서는 양자(養子)라 하였으니(롬 9:4, 8:15, 23) 맛치 예를 들어 말하면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에 접붓친 것과 같이(롬 11:17) 원래 아달이 않이든 자를 양자로 하야 아달이 되게 하였나니라. 그리하야 하나님의 성품을 닮었고 그 지위도 아달이라는 명분을 따라 존귀하게 되였나니라. 그럼으로 이제부터는 외인도 않이오 객(客)도 않이오, 오직 성도들과 같은 나라 사람이오, 또 하나님의 권속이니라(엡 2:19).

2. 어떠한 방법으로 아달이 되였나뇨(엡 1:3∼5)

이는 세상을 지으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사랑함으로 그 앞에서 거륵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그 깃부신 뜻대로 우리를 미리 작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 아달을 삼으섰다 하였으니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달된 방법이니라. 감사한 것은 자기자신을 백가지로 생각해 보고 살펴보아도 감히 하나님의 아달될 만한 가치도 없고 자격도 없건만 세상창조하시기 전부터 예정하야 두섰다가 그 아달이 되게 하섰으니 그 영원하신 은총을 우리는 깨달을 수 없나니라. 하나님의 이 무조건 하신 은총은 무엇이라고 형용한 길도 없나니라. 이제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아달이니라.

3. 가족으로 변함(엡 2:19)

중생하기 전에는 마귀의 아달임으로 마귀의 가족이리니 중생한 후에는 그 적(籍)을 하날에 두었음으로 하나님의 권속이 되여 하나님 나라에서 살 뿐 않이라 성부와 성자와 한 식탁에서 음식할 수 있는 가족이니라. 우리가 니르는 곳은 시온산과 살아게신 하나님의 성, 하날 우의 예루살렘과 천만천사와 하날에 기록한 모든 장자의 총회와 교회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혼과(히 12:22∼23) 한 가족이 되였나니라.

4. 어느때 성자(成子)가 되나뇨

(1) 중생할 때(요 1:12).

사람이 모태에 있을 때에는 아달이라 딸이라 일흠짓지 못하나 어머니 태문에서 출생하는 동시에 비로소 시정부(市政府)에 보고하야 시민권이 발생하나니라. 이와같이 사람의 영혼도 죄악탈을 버서바리고 새사람으로 중생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달이라 하는 명칭이 붓게 되나니 중생치 못하면 언제나 마귀의 아달이니라. 그런데 권세를 주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하였으니, 그 권세는 무삼 권세인가 하면 복권(復權)을 의미하는 것이니라. 가령 사람이 범죄하고 감옥에서 징역을 하면 그 동안은 자유와 권리를 다 잃어버린 것이로되 만일 출감하는 날에는 복권이 되나니라. 이와같이 범죄한 영혼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어 하나님과 천국과 기업과 아모관계가 없고 그 상속권을 잃어 바렸으나(고전 6:10, 갈 5:21), 그 영혼이 중생하는 동시에 일어바렸든 기업에 대하야, 지위에 대하야, 복권이 되는 것을 가라침이니라.

(2) 믿음으로(갈 3:26)

너희가 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달이 되였나니라 하였으니 이는 죄에 타락되였든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죽을 죄를 대신하야 십자가에 달려 형벌을 받고 죽으섰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는 약속을 이심치 않고 믿을 때에 그 순간 하나님의 아달로 결정되나니라. 접대하는 자는 그 일흠을 믿은 자라 권세를 주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하니 중생과 믿음으로 성자(成子)하나니라.

5. 성자(成子)된 증거(롬 8:16)

성신이 친히 우리의 신으로 더부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증거하시나니라 하였으니 그 증거는 엇떠한 것인지 물적으로 나타낼 수 없으나 두 가지 증거니, 첫째는 성신의 증거요, 둘째는 양심이 증거인대 성신의 증거는 나의 양심과 함께 오나니라. 하나님이 아바지로 믿어지고, 천국이 믿어지고, 기뿌고, 바라지고, 기도하고 십고, 예배드리고 십고, 마음의 의심이 없이 믿어지고, 안심이 있는 것은 양심이 증거하되 하나님의 아달된 까닭이니라.

6. 성자(成子)의 결과

(1) 성신받음(갈 4:6). 임의 아달이 되매 하나님께서 그 아달의 신(神)을 우리 마음속에 보내섰으니 부르지저 갈아대 아바 아바지라 하나니라 한다 하였으니 예수의 신과 하나님의 신이 통하여 짐과 같이 또 그 아달 예수의 신이 우리 하나님의 아달된 자에게도 부여되나니라. 맛치 육신의 부모 혈육이 자녀에게 부여됨과 같이 영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부여되나니라. 그래서 하나님의 성신의 인도함을 따라서 사나니라(롬 8:14).

(2) 자유스러운 영을 받음(롬 8:15). 너희가 받은 신은 무서워하는 종(노예)의 마음이 않이라 함은 성자(成子)한 자의 받을 성신의 성질을 가라침이니 성신이 게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 하였나니라(고후 3:17). 그 봉사가 율법적, 즉 노예적으로 억지로 함이 않이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니 자유니라.

(3) 기업(基業)이 있음(갈 4:7, 롬 8:17). 자녀가 된 즉 후사(後嗣)가 되여 곳 하나님의 후사라. 그리스도로 더부러 후사가 되나니라 하였으니 진실한 말삼이니라. 아해가 배속에 있을 때에 아모런 상속권이 없으되 어머니 배에서 출생한 연후에야 아달이라는 명분이 생기고 아달이라는 명분을 가지게 되면 상속권이 발생하나니라. 이와같이 중생하야 하나님의 아달이 된 자에게는 기업, 즉 상속권이 발생하는대 그 기업은 베드로 말삼하기를(벧전 1:3, 4) 우리로 하여금 중생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이 하는 기업을 있게 하시나니 즉 너희를 위하야 하날에 감추신 것이라 하니라. 웨 썩지 않나뇨? 천국의 기업은 물질이 않인 까닭이오, 웨 더럽지도 않나뇨? 천국의 기업은 정욕으로 얻는 것이 않인 까닭이오, 웨 쇠하지 않이 하나뇨? 천국의 기업은 일시적이 않이오, 영구적인 까닭이니라. 그런고로 주께서 말삼하시기를 하날에 있는 보물은 좀도 먹지 못하고 동록도 쓸지 않고 도적도 구멍을 뚫지 못하는 곳이라 하시니라(마 6:20).

7. 성자(成子)의 영광(요일 3:1∼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엇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이하였으나 오직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 참형상을 볼 것을 인함이니라 하니라.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표면으로는 아모 변화나 영화가 없으니 누가 하나님의 아달이라 할 자가 없나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아달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그 모양이 예수와 같으리니(빌 3:20∼21) 그 때에는 하나님의 맛아달 되신 예수(히 1:6)의 영광이나 하나님의 뭇아달 되는 우리의 영광이나(롬 8:21) 같음을 볼 것이니라. 맛치 동절(冬節)이 되면 초목이 다 죽은 것같고 생명이 없는 것같이 보였지만 양춘(陽春)이 도라오면 속에 있든 생명의 영광이 꽃이 되여 모든 사람의 눈에 보여지는 것과 같이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로 그 생명이 그리스도의 생명과 한가지로 하나님 안에 감초여 있다가 그리스도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니(골 3:3, 4), 베드로 사도는 여기 대하야 말하기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크게 깃버하니 이 즐거움은 다 말할 수 없고 지극히 영화롭다 하니라. 할넬루야(벧전 1:8).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