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성결론(聖潔論)

서언 : 제1장 성결의 원리

제2장 성결의 필요 : 제3장 방법

제4장 성결의 결과 : 제5장 성결전후의 성리의 구분

제6장 성결과 성장 : 제7장 성결을 유지하는 법

 

 서언

 

  마음이 깨끗한 자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오 하섰으니 그 마음이 정결한 자 얼마나 복된 것을 가라치심이니라. 십오야월 (十五夜月)이 바야흐로 둥그러 교결하야 명경 (明鏡)같이 하계를 빛최여 줄 때나 이십사번화신풍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에 만화 (万花)가 방창(芳暢) 하야 봉접(蜂蝶)이 춤을 추며 날라 드는 것을 볼 때나 천애만장벽봉(天涯万丈碧峰)에서 은하같은 물줄기가 옥을 깨치는 것같이 비류직하(飛流直下)하야 흐르는 양(樣)을 볼 때나 만수장림(万 樹長林) 욱어진곳, 어지러히 피여있는 꽃도 보고, 벗을 찾는 새의 노래소리도 듣고, 바람결에 날려오는 솔냄새 꽃향기 그야말로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人間)이라. 이러한 곳에서 그 자연의 미와 시적감상이야 형용할 길이 있으랴. 이러한 때에 인간의 심정은 과연 정결을 사모하게 되나니 자연의 무언(無言)한 교훈도 크고 소리없는 감화도 큰 것이니라. 그러나 그곳을 떠나 다시 층층누각(層層樓閣)이 즐비하고 차성(車聲)이 굉굉하며 주(酒)사의 청가(淸歌)와 청루(靑樓)의 묘무(妙舞)를 청시(聽視)하고 만인이 위집하야 시비를 가리고 이해를 다토는 식색시장(食色市場)에 도라놀면 앗가 그 심정과 달라지는 감이 이러난다. 그러면 인간은 환경에 지배를 받는고나 할 것이니라.그러난 그것은 우리의 감정으로는 그럴뜻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삼하신 바 [깨끗한 마음]이라는 것은 그것이 않이라 감정에 빛치여지는 동태기 않이고 의지를 토대한 심령의 성결이니라. 많은 사람이 자고로 그 심령의 고민을 견대지 못하야 부르짖었고 승리를 하랴고 애를 쓴 자최가 많으니 중국의 왕양명(王陽明)은 자기의 심령상태에 대하야 [산중적(山中賊)은 파(破)하기 쉽지만 심중적(心中賊)은 파하기 어렵다]하였고, 사도 바울은 자기 심령상태에 대하야 [아(我)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않이하고 원치 않이하는 그 악은 행하는도다. 내가 만일 원치 않이하는 것을 행하게 되면 내가 행하는 것이 않이오, 내 속에 거하는 죄가 행함이니라]하였으니 [심중적(心中賊)]이나 [심중(心中)에 거하는 죄]는 동일한 뜻이니 모든 성리(性理)를 연구하면 성결케 살고저 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큰 의문이오, 큰 고민이였나니라. 그러면 삼중적, 심중 죄는 무엇인가? 즉 심중에 인간에게 전해지고 있는 죄원(罪原)이니라. 이것은 혹 정신수양으로 없이 하려하고, 혹은 도독의 단련으로 없이하고저 하고, 또는 율법을 직힘으로 없이하고저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오, 오직 우리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랴고 강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를 힘입는 외에 다른 길이 없나니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심을 믿는 그 순간에 아담으로부터 유전하여 온 죄에서 법적으로 구속된 것이니라. 그러나 마귀가 외계로부터 우리에게 있는 본능적 정과 욕을 기회로 하야 유혹하는대 성결은 정욕에 대하야 목석과 같이 무감각하여 지는 것이 않이라 자기심중에 정과 욕을 절제하고 외계에서 오는 유혹을 이기는 능력을 성신께 받어 능히 승리하는 것이니라. 심중의 정욕을 인하여 고민하는 형제들이여, 성결의 은혜를 체험적으로 받을지어다.

<처음으로>

 

제1장 성결의 원리

 

 제1절 정의

 성결을 논하고저 할 때에 먼저 성결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정할 필요가 있나니 성결이라는 것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심과(벧전1:15) 마음이 깨끗한 자라 하심과(마5:8) 하날에 게신 너희의 아바지의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할지어다 하신 말삼과(마5:48) 모든 사람으로 더브러 화목하고 거룩함을 쫓아라 거룩지 않이한 자는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신 말삼에서(히12:14) 일어나는 사상이오 일커러진 말이니 즉 무죄하게 사는 생활을 가라침이니라. 모든 인류가 당 엇지하면 죄없이 살아 볼가 하야 도덕을 가라치고 종교를 세우고 노력하되 얻지 못하였나니라.

  성결에 대하야 모든 사람이 성결하게 살냐고 노력도 하고 이론도 세우고 비판도 하지만 그 정곡(正鵠)를 맛치지 못하고 다 과불급(過不及)하야 혹은 성결을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공상의 노력을 하다가 및지지 못하는 때에는 인간은 도저히 성결하지 못한다고 속단하야 바리는 일이 있는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라 않이할 수 없나니라. 우리가 성결을 바로 알고 체험하려면 그 범위를 잘 알어야 할지니라. 성결의 범위가 광협(廣狹) 두 가지가 있나니,

 

제2절 성결의 범위

 1. 절대적 성결(사57:15)

 이것은 무시무종(無始無終) 하시며 지고지광(至高至廣)한 것으로 거처를 삼으시고 지성지결(至聖至潔)하사 성결한 것으로 일홈을 삼으시는 하나님께서만 가지신 성결이니 절대적 성결이니라. 하나님께서 가지신 성결은 그 이상의 성결이 없는 것이오 또 성(聖)하사 악으로 시험을 받지도 않고 그 성결하심은 잃어바리지도 않이 하시는 성결인 고로 하나님과 같이 성결한 자는 천상천하에 없고 오직 하나님 뿐이니라.

 2. 상대적 성결(벧전1:15)

 하나님의 성결은 절대오 상대가 없으되 인간의 성결은 상대적 성결이니 하나님의 셩결을 상대로 하야 우리 신도가 원하는 성결이며 하나님께서 신도에게 이렇게 되라고 요구하시는 성결이니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일우어질 것이며 인간 스사로가 독립적으로 일우어질 수 없는 것이니라. 그런대 이 상대적 성결을 두 가지로 난호와 생각할 것이니

   (1) 성별(聖別)(레11:44)이니 하나님께서 말삼하시기를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나 너희도 구별(區別)하야 거룩하라 하섰는대 하나님께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세상과 구별 또는 성별되어야 할 것이니라. 그런대 성별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말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집을 성전(聖殿), 즉 거룩한 집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말삼을 기록한 책을, 거룩한 글을 성경(聖經)이라 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을 다른날과 구별하야 성일(聖日)이라 하고 하나님 믿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과 구별하야 성도(聖徒)라하고 목사는 세속적 직업과 구별하야 성직(聖職)이라 하나니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야 택하고 구별되였으니 이것이 즉 성결한 것이니라. 그런고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야 성별된 것은 표면부터 세속과 구별되여야 할지니라. 예배당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하야 성별하였으니 연극이나 무도장이나 기타 속(俗)된 일을 위하야 사용치 못할 것이며 성일(主日)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야 성별된 날이니 이날 물건을 매매하거나 다른 오락을 위하야 사용치 못할 것이오, 성도(신자)는 하나님께 몸을 바친 자니 술을 마시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더러운 말을 하거나 좋지 못한 영업을 할 수 없는 것이오, 목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야 하나님께 바친 몸이니 상업을 하거나 회사원이 되거나 관리 노릇을 하거나 투기업을 하지 못할지니라. 또 한가지는,

   (2) 성결(고후7:1)이니, 우리가 육체와 마음에 온갖 더러운 것을 바리고 스사로 성결하게 하야 하나님을 경외하야 거룩함을 완전히 일울지어다 하였으니 상대적 성결이라는 것은 표면으로 나타난 거룩한 행동뿐 않이라 이면에 있어서 그 마음(靈)의 정결이니라. 그래서 그 행실과 심령이 깨끗한 것을 성결이라 하나니라. 어떻게 젊은 자의 그 행실을 깨끗이하리오(시119:9)하고 나를 위하야 한 정한 마음을 지어주소서 하고(시51:10) 주의 일홈을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라 하였고(딤후2:22),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정결한 자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리니 (시24:3), 죄인은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정결케하라 하였나니라(약4:8)

 

제3절 성결에 대한 의무

 이 성결은 하나님의 명령이니 오직 너희를 부르신 자의 거룩한대로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할지어다 하였고 (벧전1:15), 또 성결은 하나님의 뜻이니, 대개 너희가 거룩하야 음란을 바리는 것이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였으니(살전4:3), 오직 순종하야 이 은혜에 도달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니라. 그런고로 대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않이오 오직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런고로 저바리는 자는 사람을 저바림이 않이오 그 성신으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을 저바림이라하였고(살전4:7,8), 하물며 하나님의 아달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속된 물건으로 녁이고 또 은혜를 베푸신 성신을 욕되게 하는 자의 응당 받을 형벌이 어떻게 더욱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10:29) 하였으니 우리가 허락된 성결의 은혜를 힘써 받을 의무는 있으되 성결의 은혜를 물리칠 수 없나니, 만일 물리치면 성부, 성자, 성신의 언약과 감화를 물리침이니 그 죄가 커서 형별이 또한 크다 하섰나니라. 우리가 요구하는 성결은 전지전능하게 된다는 것이 않이오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봉사하고 영광을 돌리기에 합당한 성결이니라. 여기에 대하야는 우리의 의무가 크니라.

<처음으로>

 

제2장 성결의 필요

  

성결은 우리 인생에게 절대로 필요하니 유전하는 죄를 멸하며 정과 욕을 이기며 습관에서 버서나기 위하야 필요하니라.

 

 제1절 유전죄에서 정결하여짐

 1. 유전죄에 대한 명칭

  (1) 죄의 몸(롬6: 6)

  우리의 옛 몸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의 몸은 멸하였다 하였으니 옛 몸이나 죄의 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혈육에 속한 육체가 않이라 심령에 속한 것이니 아담 이와가 범죄하는 동시에 생긴 불결성이니라. 이 불결성, 즉 죄의 몸이 잉태됨으로부터 인류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그 심령은 사형수가 되었나니라(겔18: 4)

  (2) 속에 거하는 죄(롬7 : 20, 21)

  바울이 율법의 빛을 양심으로 받어 가지고 그 경험을 말할 때에 만일 내가 원치 않이하는 (惡) 것을 행하게 되면 내가(良心) 행함이 않이오 오직 내 속예 거하는 죄가 행함이니라. 내가 이제 한 법을 깨다랐으니 곳 내가(良心) 선을 행하고저  할  때에 악이 (遺傳하는 罪性) 함께 있도다 하였으니 죄성이 인류의 심중에서 그 행동을 좌우하든 것임을 증거하니라.

  (3) 얽매이기 쉬운 죄(히12 : 1)

  유전죄라는 것은 인류의 자유를 속박하나니 양심으로는 의롭게 기르려 하되 세 발거름을 못가서 뒤에서 잡아 다니는 힘이 있으니 발목을 매여놓은 닭과 같아야 아모리 좋은 일을 하고 의롭게 살려 하되 그 얽매는 힘까닭에 자유를 읽고 죄의 노예가 되었나니라. 그런고로 예수께서 그 얽매이기 쉬운 죄에서 풀어 자유를 주시겠다 하셨나니라 (요8 : 36).

  (4) 쓴 뿌리(히12 : 15)

  원죄를 가라처 중심세력을 가라처 쓴 뿌리라 하였으니 모든 범죄의 원인은 이 쓴뿌리니라. 그런고로 예수께서 말삼하시기를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난과 도적과 거짓말과 비방이 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 하시니라(마15 : 19). 인간의 범죄는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간에게 유전된 죄성이 기인하야 수목의 뿌리에서 가지가 나오는 것같이 모든 심령의 불결이 쓴 뿌리에서 나오나니라.

  (5) 유전된 죄(시51 : 5)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날 때에 죄악이 있고 내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였을 때에 나에게 죄가 있었다 하였으니 내가 날 때에 죄가 있다 함은 분명히 유전죄를 타고 난 것을 가라침이니라. 조상으로부터 대대상전하야 자자손손으로 지금까지 니르니라.

  (6) 이심(二心)(약4 : 8)

  야곱은 말하기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고 두 마음 (二心)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정결케 하라 하였는대, 예수께서 말삼하시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넉이고 저를 경히 넉임이니라(마6 : 24)하섰나니라. 곳 이 말삼의 뜻은 한 가지 마음으로 주를 봉사할 것이오. 두가지 마음으로 못할 것을 가라치심이니라. 그러면 그 한 마음 주심(主心)은 곳 양심이지만 또 한 가지 마음, 둘째 마음은 곳 유전해온 객심(客心)이니라. 이 객심이 있으면 선(善)으로 나가랴는 길을 막고, 악(惡) 으로 경향하게 하나니 리브가의 배속에서 쌍태(雙胎) 야곱과 에서가 싸홈한 것과 같이 (창25 : 22) 싸홈을 하나니라. 고로 사도 바울 말삼하시기를 지체중에 다른 법 있는 것을 보매 내 마음의 법과 함께 싸와 나를 사롭잡아 나의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복종케 하려 한다 하니라(롬7 : 23). 그러면 이것을 비유하야 말하면 다른 법은 유전죄니 도적과 같고 내 마음의 법은 양심이니 주인과 같하야 도적이 도적질하랴 할 때에 주인은 못하도목 제재함과 같으니라.

  (7) 옛사람(엡4 : 22)

  유전죄를 웨 옛사람 곳 늙은 사람이라 하였는가. 다름 않이라 내가 의식적으로 범한 죄는 그 나희가 범죄자의 나희만하되 유전죄의 연령은 아담 이래로 있는 죄인고로 옛사람 곳 늙은 사람 노인이라 하니라. 옛사람아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맛치 기생충이 있어 사람의 영양을 빼앗는 것과 같하야 영혼의 영양을 다 빼앗고 허약하게 만드나니라. 옛사람의 일에 대하야 몇 가지 예를 들어서 말하면,

2. 유전죄의 동작

  (1) 잘 분노함

   가인은 자기의 재물이 받어지지 않이 하였을 때 분노하야 얼골빛이 변하였고(창4 : 4), 방탕자의 형이 그 아오가 멀리 떠났다가 도라와 그 아바지께 사랑 받는 것을 보고 곳 노하였으니(눅15 : 29, 30), 노하는 것은 죄에서 니러나는 결과니라.

  (2) 시기함

  가인이 그 아오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을 보고 밭 사이에서 죽인 것은(창4 : 8, 요일3 : 12) 시기심이오, 방탕자의 형이 동생이 아바지의 용서와 사랑하심을 보고 노함은 시기심의 발작이오, 사울이 다윗의 국민에게 환영받는 것을 보고 죽이고저 함도 (삼상18 : 7-11) 시기심의 발작이니라.

  (3) 교만(약4 :6)

  이것은 자기만 잘난 줄로 알고 남을 없수히 넉이는 일이니라.

  (4) 허영심(갈5 : 26)

  명예(名譽), 지위(地位), 연락(宴樂), 안일(安逸), 호의호식(好衣好食), 사치(奢侈) 등은 다 허영에 속한 것이니라.

  (5) 이기심(利己心) (빌2 : 21)

  사랑은 자기의 이익만 구하지 않이하되 옛사람은 자기만 유익케 하랴 하나니라.

  (6) 거짓말(마15 : 19)

  자기를 유리케 하랴고 거짓말을 하나니라.

  (7) 다언(多言) 또는 과언(過言)(엡5 : 3, 4)

  불결한대서 불결한 말이 나오나니라. 성결은 이상에 말한것과 같은 불결에서 정결함을 받는대 필요하니라.

 

 제2절 죄가 유전된 방식

   죄는 하나님의 만드신 것도 않이오 인류가 있기전에 있는 것이 않이라. 인류가 세상에 출생한 후에 비로소 죄가 발생하였나니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사 에덴 원(園)에 두섰으니, 에덴원에는 각종 생명 과실이 있고 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섰는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삼하시기를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 열매는 다 먹으되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먹지 말라 하셨으니 이것이 곳 하나님의 불성문(不成文)의 실물계명(實物誡命)이니라. 국가마다 법률이 있고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십계명이 있고 개인 개인에게는 양심이 있는대 사람마다 국법을 범치 않이하면 양민(良民)이오 십계명을 범치않이하면 의인이오, 양심대로 살면 성도요, 죄라 할 것이 없나니라. 그런대 아담 부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섰음에도 불구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따서 먹었으니 국민으로 국법을 범하고 선민으로 계명을 범하고 이방인으로 양심을 범함과 꼭 같은 율(律) 이니라. 그러면 죄는 창조물이 않이오 두 손바닥이마조치면 소래가 나는 것과 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이나 양심을 어길 순간에 발생하는 것이니라. 만일 범치 않이 하면 죄가 어대있으리오. 그래서 아담 부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것은 분명히 죄오, 불신이오, 반항이오, 허영심이오, 마귀의 말을 믿었든 것이니라. 그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에 엇떠한 독소가 있어 먹으면 그 혈액에 독소가 퍼젔는지는 아지 못하거니와 좌우간에 그 과실을 먹는 동시에 저작하고 그 저작한 것이 식도(食道)로 넘어가고 넘어간 것이 소화되고, 다시 혈액으로 퍼젔는대 이때부터 그 피에는 분명히 독소가 생기고 그 독소가 금일까지 그 자손된 인간에게 유전된 것은 사실이니라. 그런고로 세례 요한은 모든 사람다려(마3 : 7), 독사의 종류라 하고 다윗도 죄인을 가라처 그렇게 말하고(시140 : 3) 예수께서도 바리새 교인다려 독사의 종류 하시고(마12 : 34, 23, 23 : 23), 사도 바울도 그렇게 말하였으니(롬3 : 13) 비록 이것은 유태인의 방언이라 할 것이나, 그 말의 유래를 상고하면 인류의 시조가 배암(蛇)에게 속아 선악(善惡)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음으로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죄악의 독소가 유전되여 나왔음을 증거함이니라. 다시 그 유전된 방식을 말하면 이러하니라.

  1. 심리적으로 유전됨

  창세기 제6장 3절에 세상사람의 죄악이 관영하야 심중사상이 간악한 것 뿐이라 하였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다 하였으며(렘17 : 9), 다윗이 내가 모태로부터 죄가 있다 한 것은 이 심리적으로 유전된 죄와 부패성을 말한 것인 줄 알지니라(시51 : 5). 사람이나매 그 얼골 모양이 조여부(祖與父)를 닮는 것과 같이 그 심리도 닮어서 혹 선하거나 혹 악하거나 또는 활발하거나 침착하거나 호협(豪俠)하거나 착실하거나, 그 어느 편이라도 닮어가지고 난 것이 분명하니라. 그럼으로 그 심리작용인 희노우락애오욕(喜怒憂樂愛惡慾)이 다 순연(純然)치 않고 거기에도 죄의 독소가 혼입(混入)되여 있음을 알지니라.

  2. 생리적으로 유전됨

  인류의 육체는 생리적 원칙으로 유전되였나니, 첫째 그 모양인대 맛치 노인의 3자(三子) 중 셈은 얼골빛이 누루렀음으로 금일까지 아시아인이 황인종이오, 야벳은 얼골빛이 희였음으로 유롭인은 백색인종이오, 함은 얼골빛이 검었음으로 아푸리카인은 금일까지 흑색인종이니, 이 원칙에서 버서날 수 없나니라.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일남일녀를 창조하셨다 하였으니(5 : 3-), 이는 그 육체의 모양과 심리상태까지 포함하야가라친 말삼인 줄 알지니라. 생리적으로 닮았다 함은 얼골 모양에 국한한 것이 않이라 그 죄 까닭에 유전되는 사실은

  (1) 늙는 것 = 만일 인생에게 죽는 문제가 생기지 않이 하였드면 늙는 일도 없었을 것이니라. 인류가 늙음으로 약하여지고 추하여지나니, 이것이 죄의 값이니라.

  (2) 병남 = 인류가 범죄하기 전에는 질병이 없었으나 범죄함으로 우환질고(憂患疾苦)가 인류에게 생겨낫나니라( 伯14 : 1∼).

  (3) 죽는일 = 원래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죽지 않도록 창조하섰으나(창3 : 22) 범죄함으로 죽엄이 세상에 드러왔나니 기록하였으대 이럼으로 죄는 한 사람으로 말매암아 세상에 드러오고 사망은 죄로 말매암아왔나니 이와같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니르렀음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음이니라(롬5 : 12) 하였으니, 죽음은 죄값으로 세상에 드러온 것이 분명하니라.

 

제3절 불의한 정욕

  인간에게는 자연히 있을 정욕이 있으니 부모로 자녀를 사랑하는 애정, 자녀로서 부모를 사랑하는 애정, 남편으로 처를 사랑하는 애정, 처로서 남편을 사랑하는 애정은 없을 수 없으며, 가족중 부모처자간에 구별된다면 애감(哀感)이 없을 수 없으며 불의를 보고 분노하고 꽃을 보고 새소리를 듯고 자연의 경색(景色)을 즐거워 할 감정이 없을 수 없고 죄를 미워하는 등, 정이 없을 수 없는 것이며 또 주리면 먹고 십고 목마르면 마시고 십푼 욕(慾), 치우면 입고 십푼 욕(慾), 성년되면 가취(嫁娶) 하고 십푼 욕(慾), 죽임을 피하야 살고저 하는 욕(慾) 이것이야 없을 수 없나니 만일 이 자연욕(自然慾)이 없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목석이 않이면 시체일 것이며, 그렇지않으면 부활한 인간일 것이니라. 그러나 우리가 없이 하지 않으면 않이될 정욕(情慾)은 죄의 정욕(롬7 : 5)과 사욕(私慾)과 악한 정욕(골3 : 5)이니 이것은 십자가에 못박어 그 정욕은 정결하여야 할지니(갈5 : 24∼) 이것은 죽여야 맛당한 것이니라. 이 정욕의 동작(動作)은 원죄 즉 유전죄의 동작과 별로 다른 것이 없나니라. 그러면 그 죄의 정욕이라는 것은, 악한 정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본능적으로 요청되는 정과 욕 이외의 것은 죄의 정욕이니, 예를 들면 주린 자 먹으면 넉넉하건만 먹고도 더 먹으려 한다든가 목마른 자 마시면 넉넉하건만 다시 술을 요구한다면 그것이 곳 사욕이니라. 자기의 안해로써 만족하고 사랑한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리웃의 안해를 탐하는 마음이 니러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악한 정욕이니 이것을 정결케 하는 것이 성결이니라.

 

  제4절 구습관(舊習慣)

  이에 너희의 구습을 의론컨대 옛사람을 버서 바리라. 이는 꾀이는 욕심을 따라 부패하여가는 것이니라(엡4 : 22) 하였으니 여기에 구습이라 하는 것은 죄지을 때에 쓰든 [버릇]인대이 버릇을 버서 바릴 것을 강조하니라. 그 구습을 바리지 않으면 [옛사람]이 있어 범죄하게 되는 것이나 [정욕(情慾)] - 이 있어 범죄하는 것이나 동일한 모양으로 범죄하고 부패하게 될지니 그런고로 버서 바리라 하니라. 그러면 범죄하든 습성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즉 거미가 줄을 치는 것이 습관이오, 우리가 의복을 입는 것도 습관이니라. 죄의 근성(根性)이 있을 때만 범죄하는 것이 않이다. 죄의 근성이 없어도 습관으로 인하야 범죄하나니 예를 들어 말하면 거짓말하는 것과 분노하는 것과 입으로 덕세우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과 누추한 말과 망년된 말과 희롱하는 말과 남을 비방하는 것과 게으른 것과 제 직분에 충실치 않은 것과 자기 자랑하는 것, 도적질하는 것, 공상하는 것, 빌녀온 물건 속히 돌려주지 않는 것 등, 이것은 다 성결이 필요하니라.

<처음으로>

 

제3장 방법

 

  제1절 말삼으로 정결하여짐

  사람이 성결케 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삼이니 이는 곳 물로 씻는 것같이 말삼으로써 정결케 하사 거룩케 하시고 하였으며(엡5 : 26), 예수께서 기도하시기를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삼은 진리니이다 하섰으며(요17 : 17) 어떻게 젊은 자가 그 행실을 깨끗이 하리오, 주의 말삼을 좇아 그 행실을 삼가 직힘으로 하리라 하였으니(시119 : 9) 하나님의 말삼은 활발하고 능력이 잇어 좌우에 날선 칼보다이(利) 하야 영혼(靈魂)과 신(神)과 근절(筋節)과 골수(骨髓)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심으로(히4 : 12), 사람의 마음속에 잇는 불결을 능히 깨끗케 하시나니, 누구든지 그 말삼을 사랑하야 읽고 복종하면 그 마음이 깨끗하야 지나니라.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삼이 있는 곳에 부흥이 있나니라.

 

  제2절 성신으로 정결(淨潔)하여짐

  정결케 되는 역사는 성신으로 새롭게 된다 하였고(딛3 : 5),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어 너희로 회개하게 하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신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마3 : 11)하였으니 성신께서 불로 임하사 사람의 마음속에 유전죄와 거기 속한 악한 정욕과 죄의 정욕을 정결케 하시나니 제자들이 오순날 강림하신 성신을 받음으로 그 정(情)과 욕(慾)까지 정결하여졌나니라. 저희가 오순절 전에 는 높고저 하는 야심도 있었고 시기하는 바도 있고 충돌성도 있고 분노함도 있고 부활을 의심하기도 하고 낙심하기 쉬운 마음도 있었나니라. 그러나 오순절에 성신 받음으로 이러한 마음이 다 없어지고 변하야 서로 높이고, 사랑하고, 화목하고 용맹스러운 정결한 마음을 받고,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야 삶으로 일생을 맛치나니라.

 

  제3절 예수의 보혈로 정결하여짐

  구약시에는 모든 것을 피로써 정결하게 하였으나(히9 : 13), 신약시대에는 예수의 보혈로 하였나니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성신으로 말매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섰으니, 그 피가 엇지 너희 양심을 깨끗이 하야 죽은 행실을 바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 : 14) 하였으니, 예수의 피는 정결하고 거룩하니 그럼으로 인간의 불결을 능히 정결케 할 능력이 있나니라. 인간의 피라면 불결한 독소가 있으니 자기의 피로는 자기의 죄를 구속할 가치가 없거든 엇지 능히 남의 불결한 것을 정결케할 힘이 있으리오, 구스사람(흑인)의 살빛이나, 표범의 반문(班紋)을 변하게 할 수 없음같이(렘 13 : 23), 인간의 죄와 악습관은 무엇으로도 정결케 할 수 없으니 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씨서 바리시나니라(요일1 : 7).

 

  제4절 기도함으로 정결케 됨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 빛 가온대서 자기의 불결을 깨닷고 자기의 불결을 자복하고 기도할 때에 성결됨을 체험하였나니(사6 : 1∼10), 깨끗하게 하시는 은혜를 성험(聖驗)하려면 열심히 기도하여야 될 지니라. 이 은혜를 받고져 하야 구하고 찾고 문을 두 다리는 태도로 간절히 기도하여야 체험할 것이니(눅11 : 1), 그리하면 더욱 성신을 받을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의 불결을 깨닷는 동시에 금식을 하든지, 경야(經夜)를 하든지 체험이 오기까지 기도가 필요하니라.

 

  제5절 믿음으로 정결하여짐

  우리가 성결하여지는 것은 물적으로나 감정으로나 오는 것이 않이오, 물로 씻는 것같이 버럭버럭 씻는 것도 않이오, 보이는 것도 않이오 오직 믿음의 역사니라. 기록하였으대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앟이하사 믿음으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섰다 하였으니(행15 : 9) 믿음이 없으면 깨끗함을 받을 수 없나니라. 기록하였으대 예수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야 단번에 죽으심이오 그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야 살으심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스사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야는 산-자로 넉일지어다(롬6 : 10, 11)하였으니, 넉일지어다 하는 말은 인정하였다는 뜻이오, 그렇게 알라는 뜻이니, 곳 믿음이니라. 나 자신이 실제로 죽지 않었으나 죽은 것으로 셈치느 것이 믿음이니라. 다시 말하면 지금부터 일천구백오십여년 전에 십자가상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심은 곳 내죄(원죄와 범죄)를 위하야 죽으심이니 그의 죽음은 곳 내가 죽은 것이라고 인정할 것이니라. 내가 내 의식을 가지고 지은 죄라면 회개할 것이나 유전죄에 이르러는 추호도 나의 책임이 없는 죄인즉 회개할 수도 없는 일이오, 그렇다고 믿는 외에 다른 것이 없나니라. 동시에 유전죄로 말매암아 남겨진 정욕이 관습에 의하야 의식적으로 범죄한 것은 회개하여야 할 것이니라. 그리고 유전죄의 그 본질만은 예수의 십자가에서 못박히실 때에 그것까지 못박혀 나와 상관없이 되었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니 이는 믿는 자는 정결하여진다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섰음이니라. 그러면 성결은 우리가 일우는 것이 않이오, 너희를 부르신 자는 믿부시니(言實) 그가 곳 하나님께서 일우시나니라(살전5 : 24).

 

  제6절 순간적으로 일우어짐

  우리의 유전죄가 우리와 상관 없고 깨끗하여짐은 불문계견성(不聞鷄犬聲)하는 산중에 은둔하여야되는 것이 않이오 난행고행(難行苦行)을 하여야 되는 것도 않이오, 선행함으로 없어지는 것도 않이오, 늙어야 성결하여지는 것도 않이오, 교육을 받어야 없어지는 것도 않이오, 죽을 때에야 성결케 되는 것도 않이니라. 우리가 중생하고 성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인대 늙거나 죽엄이 우리에게 성결을 주며 은혜를 줄 수 있을가, 그러타면 늙음이나 죽엄이 우리 구주가 될 것이니라. 성결은 다만 순간적 역사요 시간을 요할 것이 없나니라. 전광석화적(電光石火的)으로 되는 것이니라. 가령 이새야나 바울의 경우로 볼지라도 역연순간(亦然瞬間)에 일우어졌고, 오랜 시간을 요하지 않었음을 우리는 잘 아는 사실이니라. 유전죄가 없어지는 것은 법적(法的)성결이니 다만 하나님의 하신 일을 믿는  그 순간에 소멸되는 것이오 정욕이나 관습은 나자신의 책임에 있나니 수시(隨時)하야 십자강 못박음으로 성결케 되나니라(갈5 : 24, 눅9 : 23).

<처음으로>

 

제4장 성결의 결과

 

  제1절 자유 (自由)

  인류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속성의 일부 되는 자유를 부여하섰으니 인생의 가치가 여기 있었나니라. 그러나 그 자유를 남용하야 범죄하였음으로 도로혀 그 자유를 잃어 바리고 노예가 되었나니라(롬6 : 16). 자유라는 것은 선악 양자 중 그 어느 것이라도 택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의 원칙인대 참 자유는 선으로만 나가는 것이 참 자유니라. 그런대 여기에 말하는 자유는 무엇인가 하면 잃어바렸든 자유를 회복한 자유니라. 이 자유는 예수께서 말삼하시기를 아달이 너희를 노으면 너희가 참 노하리라(요8 : 36) 하심은 곳 이 자유를 가라침이니라. 사람이 성결치 못하면 아모리 죄를 아니지으려 하여도 않이 지을 수가 없으나 성결하면 죄를 범치 않이 할 자유가 있나니라. 선악 양자 중 어느 것이라도 택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이니 이는 자력(自力)이 않이오 성신의 힘이니라(고후6 : 17).

 

  제2절 승리(勝利)

  주 예수께서 말삼하시기를 너희가 환난을 받으나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였노라(요16 : 33).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랑하시는 자로 말매암아 이김을 얻고도 더욱 남음이 있나니라 하였으니(롬8 : 37), 이는 성결의 결과를 가라침이니라. 인생이 범죄함으로 그 의지나 도덕성이나 양심이 다 약하게 되어 죄가 죄인 줄로 알면서도 이길 힘이 부족하게 되어(롬5 : 6), 죄에게 실패하는 생활을 하였으나 그러나 성결함으로 성신으로 말매암아 강한 힘을 얻어 이기는 생활을 하나니라.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세상 정욕 마귀니라(약3 :15). 보라 성요셉은 무서운 정욕으로 쫓아오는 유혹을 이기였으며 예수께서는 직접사단으로부터 오는 시험을 이기섰으니 바울 사도도 그 생애중에 환난, 인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날 등으로 일이관지(一而貫之)하였으나 이기였나니 성결은 유혹이나 시험을 받지 않는 것이 않이오 받으되 이기는 것이니라.

 

  제3절 평안(平安)

  성결의 결과는 평안이니 악인의 마음에는 평안을 누리지 못할 것이나(사57 : 21) 성결한 마음에는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않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천래(天來)의 평안이 있나니라(요14 : 27). 수면에는 파도가 니러나도 수저(水底)는 안온함과 같고 격랑노도가 부듸처도 엄연히 서서 요동치 않이 하는 거암(巨岩)과 같이 성결한 심령은 이와 같이 안정한 것이니라. 우리에게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닷과 같아야 튼튼하고 견고함과 같이(히6 : 19) 세상풍파에 흔들리면서도 그 심령이 평안한 것이 성결이니라.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섰더니 군중이 너무 좋아서 흥분된 나마에 예수로 왕을 삼는다고 떠드렀으나 예수께서는 소불동념(少不動念) 하시고 피하야 산으로 가사 기도하섰으니(요6 : 15), 이것이 평안한 마음이니리라. 남이 나를 높혀 준다고 마음이 올라가고 또 나를 비평하고 훼방한다고 낙심하고 복수심을 가지는 것은 평안이 않이니라. 부귀공명(富貴功名)이나, 재물이나, 지위에 등한하야 허심무아(虛心無我)가 평안이니 성결한 마음이니라.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나 세상 사람에게나 논단(비평)받는 것을 매우 적은 일로 넉일 뿐 않이라, 내가 나도 논단치 않이 하리라 하였으니(고전4 : 3) 저는 참 평안을 가진 자니라. 바울은 훼예보폄(毁譽 貶)에 관심을 가지고 우섰다, 울었다, 슬퍼하다, 깃버하다, 널-뛰듯 하면 언제 평안을 누리리오. 성결한 마음이니라.

 

  제4절 성신의 열매

  적중(積中)한 성결의 은혜는 내적으로만 증명이 될 것이 않이라 표면에도 나타나나니 맛치 뿌리가 있으면 잎이 푸르고 열매가 달리는 것과 같이 성신의 평안이 있는 사람은 표면에 나타나는 열매가 있나니라. 예수 말삼하시기를 그 매진 과실로 저희를 알지니 가시에서 엇지 포도를 따며 엉겅퀴에서 엇지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열매를 맺고 악한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악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지라 하섰으니(마7 : 16∼18) 과여이니라. 그런고로 성결한 사람에게는 필연적으로 성신의 열매가 있을터이니 갈라디아서5 : 22절, 23절에 기록되였나니라.

  1. 사랑의 열매 =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야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섰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오, 둘째는 리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섰나니라(마22 : 37∼39). 그러면 성결한 사람은 우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선교사업이나 자선사업 같은 것은 사랑없이 할 수 없나니 이것은 천래(天來)의 사랑이니라.

  2. 희락의 열매 = 성결의 열매 되는 기쁨에는 자기를 위하야 근심하며, 걱정하며, 슬퍼한 일이 없고, 깃버할 수밖에   없나니라. 웨 그런가 하면 예수를 믿는 것이 깃분 일이오(벧전1 : 8) 핍박을 받어도 깃버할 것은 하날의 상받을 것이 큼이오(마5 : 11, 12), 천국의 소망이 있음이오(빌3 : 20), 하날에 영원한 기업이 있음이오(벧전1 : 3, 4), 우리 신랑되신 예수가 재림하실 것이오(계22 : 20), 죽을 때에도 깃버할 것이며(딤후4 : 6, 7) 그럼으로 항상 깃버할 것이니라(살전5 : 16).

  3. 화평의 열매 = 이것은 상절(上節) 평안이니라는 항목에 말하였으니, 더 말할 것이 없거니와 자기자신의 평화요 사람과 사람 중간에서 언제든지 화평, 화목케 하는 열매를 맺나니라.

  4. 인내의 열매 = 예수께서 이 인내의 열매를 맺으시니라(히12 :2). 조급함과 경솔함으로는 인내의 열매를 맺지 못할 지니라.

  5. 자비의 열매 = 사랑이라는 말을 뿌리라 하면 자비는 그 사랑에서 나오는 열매니라. 고아원, 맹아원, 의료기관 등은 다 자비의 발로(發露)니라.

  6. 양선의 열매 = 악을 값지 않는 마음의 덕이니라.

  7. 충성의 열매 = 예수는 하나님의 아달로서 충성하섰는대(히3  : 1), 자기의 뜻이 않이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일에 충성하섰나니라. 바울도 자기 사명에 충성하기로 결심하였나니(행20 : 24), 성결한 사람은 자기 직무에 충실하니라(눅12 : 42).

  8. 온유의 열매 = 복수심이나 적대심이 업는 깨끗한 마음이니, 예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니라.

  9. 존절의 열매 = 이는 절제와 근신의 뜻을 포함하나니, 성결한 사람은 말에나 성내는 일이나 음식이나 시간에 대하야 절제(극기)함이 있는 것이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靈)이 않이오 다만 능하고 사랑하고 근신하는 마음이라 함과 같이 (딤후1 : 7) 사랑은 물론이고, 근신하는 영이니 재정문제에 근신하고 남의 양심을 위하야 근신하고 도덕을 위하야 살갈 것이니라. 남녀간에 접근으로 그 심령이 약하여질 것은 물론이니 성결하였으니 무관심하다 하거니 초월하였으니 불관(不關)이라 하는 것은 스사로 속고 남을 속임이니라. 성결한 마음이라 하야 원칙적으로 근신할 줄 아나니라. 남녀간에 이성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발서 더럽히는 시작이 되나니 근신할 일이니라.

<처음으로>

 

제5장 성결 전후의 성리(性理)의 구분

 

  제1절 타락전 시대                                                

 

   인류가 타락하기 전시대이 그 성리(性理)를 해부하여 보면 영혼과 양심과 정욕과 가능성이 있는대 가장 성결하게 생활하였나니라.

  1. 영혼

  이 영혼은 보통으로 하는 말이거니와 이것을 분명히 말하지면 영과 혼인대 영(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함을 입은 것이오(창1 : 26), 혼(魂)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의 형체를 만드러노으시고 그 코에 기운을 불어 넣으시니 이것이 곳 정신인대 이 기운이 드러감으로 비로소 사람의 몸은 움직이게되니라. 이 혼에 속한 것은 희노우락애오욕(喜怒憂愛惡慾)아니라. 이 영과 혼이 합하야 활동하는 것을 생령(生靈)이라 하였으니(창2 : 7) 생(生)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형체적 인간이오, 영(靈)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런대 생령이라 함은 육체를 가지고 영적생활하는 것을 가라침이니라.

  2. 양심

  영혼은 마음의 주요, 양심은 그 보필이니 예컨대 항성(恒星)에 대한 위성(衛星)과 같은 것이니 항상 영혼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나니, 선한 양심이니라(딤전1 :5). 영혼이 범죄하면 죽는 고로(겔18 : 4) 양심은 그 시비를 분별하야(롬2 : 15)영혼으로 하여금 범죄치 않도록 판단하야 절제하나니라. 고로 사람이 양심의 소리에 순종하면 범죄를 면하나니라.

  3. 정(情)과 욕(慾)

  정(情)은 희노우락애오욕(喜怒憂樂愛惡慾)등이오, 욕(慾)은 식욕, 색욕, 수면욕, 기호, 생욕 등인대 이것은 죄가 않이오 본능적으로 있는 것이니 주린 자 먹고저 하고 성년되면 이성(異性)을 사랑하고, 피곤하면 휴식하고저 하고, 꽃을 보면 좋아하고, 위험을 피하야 살고저 하는 것은 자연의 요구, 즉 본능이니, 분수에서 지나가면 죄가 되지만 그 분수를 직히면 죄가 되지 않이하나니라. 본농의 정과 욕이 없으면 목석(木石)이나 시체니라. 어덴에 있든 아담 이와에게도 이 정도의 정과 욕이 있었나니라.

  4. 가능성

  이는 즉 자유성이니, 범죄하기도 가능하고 범죄치 않이 하기도 가능한 것이다. 아담이 에덴에서 범죄한 것은 죄의 근성(根性)이 있었든 것도 않이오 범죄하든 습관이 있어서 범죄한 것도 않이오 환경에 좌우된 것도 않이오 오직 자기에게 있는 가능성을 양심의 인도를 따라 절제하였드면 좋았을 터인대 그리하지 않고 욕(慾)에 치우쳤든 까닭에 범죄하였나니라.

 

  제2절 타락시대

  1. 영혼

  인류가 타락된 후에도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나 범죄함으로 자유와 권리를 다 상실하여 버렸으니, 맛치 당당 국민으로서 국법을 범하고 감옥에서 징역하는 동안에 자유와 권리를 상실함과 일반이니라. 이것을 성경에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 하였나니라(엡2 :1∼). 영혼이 죽었다 하여도 무감각하게 된 것이 않이니라.

  2. 양심

  인류가 타락 전에는 그 양심이 선하였었지만, 범죄 후에는 더러워졌나니(딛1 : 15), 그런고로 시비 선악과 흑백이  분명치 못하야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하며 흑(黑)을 백(白)하고 백(白)을 흑(黑)이라 하며 감(甘)을 고(苦)라 하고 고(苦)를 감(甘)이라 하나니라. 사울이 중생(重生)하기 전에는 예수 믿는 것을 죄라 하야 핍박하고 죽이였으니 그 양심의 변별력을 잃어 바림이오, 첩을 두고 아달을 나어야 부모에게 효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러워진 양심의 생각이니라.

  3. 정(情)과 욕(慾)

  인류가 타락되기 전에도 정욕이 있었으니 본능이오, 죄가 않이리니 타락된 후에도 죄의 정욕(롬7 : 5), 악한 정욕이 되니라(걸3 : 5). 악한 정욕이라 하는 것은 깃버하여도 불의를 깃버하며(고전13 : 6), 노하는 것도 하나님의 의를 일우지 못하게 하며(약1 : 20) 근심하여도 세상일로 근심하며(고후7 : 10), 그 욕망도 개(犬)와 같이 남의 이해 불고하고 자기의 이익만 구하나니(빌2 : 21) 이것은 악한 정욕이니라.

  4. 가능성

  인류가 타락하기 전에는 그 자유를 가장 신성하게 사용하였는대 타락함으로부터는 그 가능성을 악용하야(벧후2 : 19), 의와 선을 행하는대는 자유롭지 못하고 가능치 못하지만 악을 행하고 죄를 범하는대로 매우 자유로웠나니라. 이 가능성이 만회하기에는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 않이라 선으로 나가기에 가능한 길도 있나니라. 그런고로 타락하였든 자가 회개하게 되는 것이오(딤후2 : 25) 그렇지 않이하면 전연 회개의 희망이 없을 지니라.

  5. 유전죄

  다윗왕이 내가 모태로부터 죄가 있나이다 한 것은(시51 : 5) 이 유전죄를 가라침이니, 아담이 아달을 나으니 가인인대 그 아바지 아담의 범한 죄성을 타고 나서 악하였나니라. 죄가 유전할때에 심리적 생리적 양 방면으로 전하여졌다 함은 임의 말하였기니와 사람의 심리적으로 전하여질 때에 선악간에 그 어느 편이나 한 편을 타고 나나니 아담이 나은 이자(二子)중 가인은 악을 타고 나고 아벨과 셋은 선을 타고 난 것을 보아 알 수 있나니라. 사람이 비록 타락하였을 지라도 한편에 선이 남아 있는 고로 선을 닮는 자, 악을 닮는 자가 생기나니라. 타락함으로 인류의 심령에는 한 가지 현상이 더 생겼으니 곳 유전죄인 옛사람이니라.

 

  제3절 중생시대

  1. 영혼

  중생 시대의 영혼은 구원받은 영혼이오(벧전1 : 9)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 영혼이니라(갈 4 : 19). 원래 생령으로서 타락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바리고 그 심령이 죽은 상태 있든 것이 중생함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나니라.

  2. 양심

  중생한 후 양심은 중생 전 보다는 확실히 명랑하고, 기능을 잘 발휘한다 하여도 약하니라(고전8 : 7). 양심이란 맑기는 백일(白日)같고 엄하기는 추상(秋箱)과 같고 그 판단은 죽절(竹節)과 같아야 될 것이어늘 그렇지 못하야 알기는 알면서도 가(可)든지 부(不)든지 단수(斷手)하지 못함이 있나니라. 잘못하면 연회석 같은대서 술잔이 도라갈 때에 마시는 등 약점이 있나니라.

  3. 정욕

  고린도 신자들은 당파가 많었는대 왈(曰) 베드로당, 왈(曰) 압볼노당, 왈 그리스도파 당파가 많어 교회가 불안하게 되었나니라. 여기에 대하야 사도 바울은 왈 말하기를 너희를 성신께 속한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사욕(私慾)에 속한 사람이라 할 수 밖에 없다 하였으니(고전3 : 1, 3) 아직도 명예심, 당파심, 고집, 인물숭배와 같은 것은 다 사욕이니라. 중생하였어도 아직 정욕이 정화되지 못하였음이니라. 때때로 정욕이 우리 영혼을 거스러 싸호나니라(벧전2 : 11).

  4. 유전죄성

  이것은 중생한 후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은 그  믿음이 정도니라. 유전죄성이 깨끗하여젔다 하는 일에 대하야 감정으로 깨다라질 것도 않이오 물적 증거가 있던 것도 않이오, 오직 일천구백오십여년 전에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즉으심은 유전죄성까지 깨끗하게 하섰다고 믿는 단순한 믿음, 굿센 믿음만으로 일우어질 일이지만 , 사람이 중생 당시로 말하면 자범죄(自犯罪)에 대하야서만 회개하고 사죄하였다는 희열에 뛰고 유전성 죄에 대하야는 아직 생각도 못하였든 까닭에 해결이 되지 못하였나니라. 그러나 사죄 동시에 유전죄성까지 깨끗하게 하여주신 십자가의 공로를 믿을진대 그대로 일우어질 것이니, 이것은 방법적 성결이니라. 우리가 중생 동시에 유전죄성이 깨끗하여졌다고 믿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자범죄가 용서받는 동시에 유전죄성도 8분 이상 죽은 것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니라. 그런고로 중생은 성결의 시작이오, 성결은 중생의 완성이니 중생과 성결은 연결되여 있는 은혜이니 유치하다거나 성숙하였다는 구별은 있을 수 있나니라.

  5. 습관성

  중생한 후에도 타락시대에 범죄하든 일, 말하든 일, 습관이 남어 있을 수 있나니라(고전8 : 7). 웨 그런가 하면 습여성성(習與性成)인 까닭이니라.

  6. 가능성

  중생한 후라도 가능성이 역시 연약하니라. 그런고로 예수께서 한 범죄자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죄를 범치 말라 하신 말삼을 생각하면(요8 : 11) 그 가능이 약하야 다시 범죄할 수 있음을 아시는 까닭이니라(롬5 : 6).

 

   제4절 성결시대

 1. 영혼

  중생시대에는 영혼이 분명히 구원을 받었으나 선한 일을 하고저 할 때에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은 속에 거하는 죄 까닭에 곤고함을 당하였으나 사람이 자범죄를 통회자복(通悔自服)하야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용서함을 받고 동시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나의 자범죄 뿐 않이라 유전죄까지  깨끗하게하여 주섰다고 믿는 그 순간 그 영혼은 법적으로 성결하게 되었나니라(벧전1 : 22).

  2. 양심

  양심은 인간의 그 영혼을 보위하기 위하야 부여하신 것인대 원래 선한 것인대 죄로 말매암아 더러워젔더니 중생함으로 그 기능이 회복되었으나 약하든 것이 성결함으로 깨끗하여젔나니라. 기록하였으대 그리스도 영원하신 성신으로 말매암아 흠이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섰으니 그 피가 엇지 너희 양심을 깨끗이 하야 죽은 행실을 바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봉사하게 못하겠나냐(히9 : 14) 하였으니, 성결시대에는 양심까지 깨끗하게 되었나니라.

  3. 정(情)과 욕(慾)

  중생시대에 정(情)과 욕(慾)이 외계의 물욕과 연결하는 동시에 내유외혹(內誘外惑)하야 영혼을 거슬러 싸호고 있었으나(벧전2 : 11) 성결시대에는 그 정과 욕을 십자가에 박았나니(갈5 : 24) 깨끗하여 젔음으로 희노우락애오욕(喜怒憂樂愛惡慾)에 죄가 나타날 수 없고 그 소욕도 자기 중심이 않이고 성신 순종하는 까닭에(롬8 : 5, 6) 정화하야 평안하니라.

  4. 가능성

  사람이 성결한다고 감정도 없어지고 가능성도 없어지는 것이 않이고 그것이 견고하야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그 가능성은 선으로 나가는대 힘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대 힘이 있을 뿐이니라.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였고 다시 말삼하시기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하섰으니, 이때에 그가능은 내 뜻 즉 사람의 뜻대로 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는 것인대 주는 성결하신고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섰나니라. 우리 습관도 정결케 되니라(엡4 : 22∼).

 

  ◇심령변화의 일람표  

 

(영혼)

(양심)

(감정)

(가능성)

(원죄)

(관습)

 1 타락전시대

생령

선함

자유

자유

0

0

 2 타락시대

죽었음

더러움

악함

악용

유(有)

유(有)

 3 중생시대

구원됨

약함

사욕

약함

유(有)?

유(有)

 4 성결시대

정결함

정결함

정결

자유

정결

정결

<처음으로>

 

제6장 성결과 성장

 

  제1절 성결에 대한 오류

  성결에 대하야 잘못된 생각을 가지는 일이 많으니 그 중에 현저한 것을 들어 말하면 첫째는, 사람이 한 번 성결하면 천사와 같이 되여서 다시는 범죄나 타락이나 과오가 없이 생활한다 함이니라. 그러나 이러한 말은 실제에서 떠나 이론에서만 하는 말이니라. 물론 성결의  본질로 말하면 [종신토록 주 앞에서 성결함과 의로움으로 봉사하게 하시리로다] (눅1 : 75) 함과 같이 될 것이니라. 그러나 천사도 피조물임으로 그 성결을 하나님께서 믿지 않이하시나니(욥4 : 18) 엇지 제한이 많은 피조물 인간이리오. 그러나 이것은 성결을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것이 않이라 인간편에서서 경험상으로 하는 말이니 저 원시인 [아담]은 원죄가 없었고 그 생활의 환경이 순조로왔음에도 불구하고 범죄한 것을 보면 성결하여도 범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않인가. 그러면 성결이 부족한 것이 않이라 인간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인간이 성결하면 다시 범죄할 수 없다는 것은 절대의 성결을 말함이나 절대의 성결은 하나님만 가지신 것이니라. 그럼으로 성결한 후에 다시 범죄치 않이한다는 말은 큰 오류니라. 또 한가지 오류는 인간은 연약하야 끊임없이 범죄생활을 하는 것이니 결코 성결할 수 없다 하나니 오류의 심함이 이에서 더 큼이 없나니라. 저희는 [인생이 엇지 하나님보다 의로우며 사람이 엇지 그 창조하신 주보다 더 성결하리오] (욥4 : 17) 하는 말삼을 인조(引照)하지만 물론 하나님보다 더 의롭고 더 성결치 못하다 함이오 성결하게 되지 못한다는 의미는 포함치 않이 하였고 원래가 불결한 고로 성결을 요하나니라. 그런대 인간들이 성결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사1 : 18) 믿지 않고 [개가 그 토하였든 것을 도로 먹고 도야지가 씨섰다가 다시 더러운 진흙에 눔는 것과 같이](벧후2 : 22) 범죄를 거듭하려 하니 엇지 기괴한 일이 않인가.

 

  제2절 중생과 성결

  중생과 성결의 관계를 말할 대 혹은 중생하면 그만이지 다시 성결이 필요가 무엇이냐 하기도 하고 혹은 금일 중생하였으니 내일은 성결하여야 한다 하야 맛치 국교의 일학년생이 다시 2학년생이 되는 것같이 생각하나 그러나 2학년, 3학년, 5학년은 1학년의 연장이니 1학년이 없으면 상급학년에 승진할 수도 없을 것이니라. 중생은 성결의 시작임으로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으니 중생도 성결같이 보이고 성결도 중생같이 보이나니라. 그러나 여기 대하야 성경에 명백히 가라첬나니, 하나님나라는 사람이 씨를 따에 던짐과 같으니 밤에 자고 낮에 니러나매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된 줄은 아지 못하는지라 따가 스사로 열매를 매치매 처음에는 싹이 나며 다음에는 이삭이 나고 그 후에는 이삭이 완전한 곡식을 일우나니 열매가 일울 때에는 곳 낫을 쓰는 것은 거둘 때가 니름이니라(막4 : 26∼29) 하니라.

  씨가 따에 떠러저 싹이난다   함은 중생이라 할 것이오 이삭이 되고 곡식을 일운다 함은 중생이 성결로 장성함이오 열매가 일운다 함은 성결의 성숙이니라. 1학년에서 2학년은 시간을 정하는 것이나 중생과 성결 사이에는 시간을 정할 수 없고 씨를 따에 뿌리고 밤에 자고 낮에 니러나매 씨가 나서 자랏다 함과 같으니라.

  성경에 성결을 완전이라 하였는대 그 완전이라는 뜻은 아해가 모태에서 나매 그 형태로 말하면 완전한 인간이지만 그 체중이나 지식으로 말하면 불완전이니라. 그러나 자라고 배움으로 말매암아 완전한 인격을 일움같이 우리가 성결하게 됨은 믿음으로 순간에 법적 역사(法的 役事)로 되는 것이지만 은혜는 장성하고 성숙하여지나니라. 그리면 아해가 처음에 날 때에는 적기는 하되 발서 완전케될 소질을 가지고 남과 같이 사람이 중생할 때에 발서 성결의 소질이 포함되였나니라.

 

  제3절 성결의 성장

  세상의 정욕으로 썩어질 것을 피하야 그 신의 성품을 얻게 하섰으니 이럼으로 너희가 완전히 힘써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형제화목을 더하고 형제화목에 사랑을 더할지니 이와 같은 것이 너희에게 있어 충만한즉 너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를 없지 않게 하려니와 이와 같은 것이 없는 자는 눈이 어두워 멀리 보지 못하고 그 전 죄에 깨끗케 하심을 이젔나니라(벧후1 : 4∼9).

  이상의 말삼은 세상의 정욕으로 썩어질 것을 피하야 중생하고 그 신 곳 성신을 받았으면 그 은혜가 성장하여야 될 것을 가라첬나니 아해가 모태에서 나면 성장하여야 하고 과실이 열매를 매차도 성숙하여야 함과 같이 중생한 자는 성결로 성장하여야 하나니라. 성결한다 하면 일시에 천사같이 되거나 완전하여지는 것이 않이라 많은 수양 중에서 새 경험을 얻고 또 얻어 완전하게 성숙되나니라.

  1. 신앙

  우리 그리스도교는 주의(主義)로 성립되지 않고 오직 신앙으로 성립되였나니 그럼으로 믿음으로 사죄하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믿음으로 성신 받고 믿음으로 중생하고 믿음으로 성결하고 믿음으로 영생하고 믿음으로 천국가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인즉 믿음이면 만능이라. 다른 것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 알 수 없으나 그런 것이 않이고 그 신앙이 생명이 있는 신앙이면 활동이 있을 것이오, 진보가 있을 것이니라. 그런고로 그 믿음이 기초가 되어 가지고 만덕이 증진발달하나니 믿음은 뿌리오 터(基)니라(히6 : 1∼).

  2. 믿음에 덕을 더함

  덕(德)이라 함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일이니 맛치 보재기로 모든 것을 싸고 덮는 것과 같이 덕은 모든 것 곳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휩쌈으로 일우어진 은혜니라. 태산은 토양(조그마한 흙덩이)을 적다 하야 사양치 않이함으로 능히 그 큰 산을 일우고 대해는 세류(細流;실개천)로 흐르는 물이 적다 하야 바리지 않이함으로 능히 그 깊은 바닷가 된다 하는 말과 같이 믿음에는 태산과 같이 높고 바다와 같이 깊은 덕이 있어야 할지니라. 남의 단점을 드러내는 것은 부덕이오, 그 장점을 인하야 단점을 가리워주는 것은 덕이니라. 노아의 3자 중 함은 그 부친의 잘못을 드러내었으니 부덕이오 셈과 야벳은 가리워주었으니 덕이 되었나니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가러운다 하는 대(벧전4 : 8∼) 웨 당신은 형제의 부족을 드러내고저 하는가. 그것은 믿음은 있다하여도 덕이 없는 까닭이니, 그런 행실 없는 믿음은 자기를 구원치 못할 것이니라(약2 : 14)

  3. 덕에 지식을 더함

  지식이라 하는 것은 과학상 지식을 말함이 않이오 진리의 지식이니 곳 성경의 지식이니라. 사람이 좋은 믿음이 있다 하여도 지식이 없으면 변하기 쉽고 남에게 속기 쉽고 미신에 빠지기 쉬우니라. 성경의 지식이라는 것은 성경의 장 절을 기억이나 하고 대소지(大小旨)나 잘 아는 것이나 역대 인물이나 많이 아는 것이 지식이 않이니라. 그런 것이나 잘 아는 정도로는 교만하여질 따름이오, 혼자 안다고 자긍(自矜)이나 하고 남을 없수히 넉이는 가증한 것 뿐이오, 아모 유익이 없나니라. 그러나 참 지식은 은혜의 체험이니 성경 말삼을 통하야 회개하고 성경 말삼을 통하야 중생하고 성결하고, 성신받은 체험을 가지 것이 참 지식이니라. 체험 없는 성경 지식은 새에게 다 빨려 알맹이 없는 이삭과 같아야 알맹이 잘 된 이삭은 고개를 숙인 중에 알맹이 없는 이삭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과 한가지니라. 성경 지식은 은혜의 경험이 높하갈수록 높아가고 은혜의 경험이 깊어갈수록 깊어 가나니라.

  4. 지식에 절제를 더함

  절제는 과불급(過不及)이 업고 중화(中和)를 이저바리지 않이 하는 것이니 가령 언어 있어서도 조급한 것이나(딤후3 : 4), 다언(多言)한 것은(잠10 : 19) 다 허물과 죄를 만드나니 그런 고로 과언 근신(過言謹愼) 하는 것이 절제니라(전5 : 2∼). 또 성(性)에 있어서도 [노하기를 더대하는 자는 큰 지식이 있고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은 것을 나타내나니라] (잠14 : 29) 하였고 [노하기를 더대하는 자는 용사보다 나으며 자기의 마음을 다사리는 자는 성을 처 빼았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16 : 32)하였으니, 이것을 절제하지 않이하면 마(馬)를 굴네 벗겨 놓은 것과 같하야 위험하며 하나님의 의를 일우지 못하나니 가령 모세가 노하다가 석비(石碑)를 깨트리고 사울이 노하다가 살인하였음으로 분심을 품어도 범죄치 말라 하였으니(엡4 : 26),. 이는 절제를 가라침이니라. 또 우리의 행위를 절제할지니 게으르지 말며 쓸대없는 일을 하지 않이하는 것은 다 절제니라. 이러한 것은 다 성결한 은혜 후에 있을 것이니 성결하였다고 절제할 일조차 없는 것은 않이니라. 성결한 연후에 절제할 수 있는 것이오, 성결치 못하면 절제도 할 수 없나니라.

  5. 절제에 인내를 더함

  인내는 성결을 완전케 하는 도(道)니 인내는 연단을 낫고 연단은 소망을 낫는다 하였는대(롬5 : 4) 예수께서도 그 앞에 둔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섰다 하였고(히12 : 2∼) 또 인내는 성신의 열매 중 하나이니 성결한 사람은 인내 않이 하여도 상관 없는 것이 않이라 인내함으로 구원을 완성하나니라(마24 : 13).

  6. 인내에 경건을 더함

  경건은 종교적 생활이니 예의(禮儀)라는 것은 인간끼리 행해지는 표면에 나타나는 행의(行儀)오 경건은 중심에서부터 하나님을 공경하는 대서 나타나는 태도니라. 이와 같이 경건함을 연습한다 하였으니(딤전4 :7) 곳 수양(修養)이니라. 이러한 경건의 수양이 싸이고 싸임으로 성결이 완성되나니라(고후7 : 1∼). 모든 인생들이 사람이 사람 앞에서만 살나고하니 외식(外飾)과 허위(虛僞)가 많으나 무소부지하시사 홀로 있을 때에 나의 행동을 아시고 마음속까지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고로 말에나 행실에나 생각이 진실무위(眞實無僞)하여짐으로 성결의 은혜가 따라서 진보하고 지식으로 발달되어 완전하여 지나니라.

  7. 경건에 화목을 더함

  화목이라 함은 부드러운 마음으로 섬겨지고 매저저서 하나이 되는 것이니 자기를 희생하야 다른 사람과 친합(親合)하야 지는 것이니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달로 세상에 오사 하나님과 원수되였든 우리를 위하야 희생이 되심으로 화목케 하심같이(요일2 : 1, 2 롬5 : 1) 우리도 형제끼리 화목함으로 하나님의 아달이라 일커름을 얻나니라(마5 : 9). 화목은 조화함이니 청황적백흑(靑黃赤白黑) 오색이 조화하여야 소래가 요량하고 산감신감고(酸甘辛甘苦)의 오미가 조화되여야 진미가 생기나니 이것은 곳 화목한 까닭이니라. 그럼으로 세상은 나혼자 잘 날 수도 없고 나혼자의 특색으로 만도 모든 일을 다하여가지 못하고 남의 단점은 나의 장점으로 채우고 서로 밧드러야 잘 된것이오, 남의 단점은 적발하고 자기장점만 가지고 자랑하는대서 화목이 되지 않고 반목질시(反目疾視)가 되나니라. 그런고로 화목의 소금을 쳐야 비로서 성결의 은혜가 성취되나니라(골4 : 6).

  8. 사랑을 더함

  사랑은 성신의 열매 중 제일 과(果)니(갈5 : 22), 성결은 사랑의 완성이니라. 그런데 신자 중 스사로 속거나 혹은 속이는 일은 무엇인가 하면 사람이 한 번 성결하면 다시 범죄하지 않는다 하야 인간성을 부인하고 경험을 무시하며 힘써 그 은혜의 성장에 주의치 않이 함이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성결하여졌다 하는 것은 순간적 법적 역사거니와 그것은 원숙한 완성은 않이니 말하자면 성숙되지 못한 과실과 같고 처음 출생한 아해와 같아야 그 은혜가 성숙하고 발육할 시간을 요하야 완전하야지나니라.

 

  제4절 천국에 드러 갈 자의 자격

  요한복음 제3장5절에 물과 성신으로 나지 않이하면 천국에 드러가지 못한다 하였으니 중생하면 물론 천국에 드러갈 자격이 일우어졌음을 표시하였는대 베드로후서 1장 4절이하에 보면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형제화목을 더하고 형제화목에 사랑을 더할지니 이와 같이하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도 드러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으니 요한복음은 중생의 본질을 말하고 베드로서에는 중생함으로부터 천국에 드러갈 때까지 성결로 성장할 것을 가라침이니라.

<처음으로>

 

제7장 성결을 유지하는 법

 

  제1절 중생후 범죄하는 까닭

  중생은 모든 범죄를 회개하고 사죄함을 받아 원상이 회복됨이오, 성결은 원죄와 정욕과 습관이 정결케 됨이니 원죄의 정결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나의 범죄뿐 않이라 원죄까지 위하야 죽으섰다고 믿을 때에 그 믿음을 통하야 순간에 법적으로 정결케되는 것이오, 시간을 요할 것이 없거니와 정욕과 습관의 정결과 은혜의 성장은 시간을 요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원죄에 대하야는 사죄 동시에 믿으면 그때에 순간으로 정결할 수도 있는 것이오, 그 후에 그 속죄하심을 믿으면 그때에 정결하여지나니라. 좌우간에 신자가 믿음으로 원죄가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이제는 성결하였다고 믿은 후에 즉 원죄가 뿌리채 뽀펴졌으니 다시는 범죄하는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대 의외에도 건 과(過)에 빠지게 되는 때에 스사로 생각하기를 나에게서 원죄가 아직 빠지지 않었구나 하고 다시 믿고 그 후 재차 건 과(過)에 빠지게 될 때에는 웨 그런가하야 의심하다가 낙심케 되는 일이 있나니라.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니 사람이 범죄하는 것이 원죄가 있어서만 범죄하는 것이 않이라 정욕과 습관이 있어서 범죄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마치 밭에 풀뿌리를 뽀바도 풀이 나는 것과 같이 뿌리는 없어도 정욕과 습관에 의하야 범죄케 되나니라.

  아담이 에덴에서 범죄할 때에 아담에게 원죄가 있어 범죄한 것이 않이라 본능적 정욕이 있었든 까닭이니 우리가 일반 성결의 은혜를 믿은 후에는 다시 원죄가 사라나는 것이 않이니 오직 주의하고 싸훌 것은 정욕이니라(벧전2 : 11). 이것을 매일 십자가에 못박는 생애라야 할 것이니라(갈5 : 24, 눅9 : 24). 그러면 이제부터 성결을 유지하는 법을 배울지니라.

 

  제2절 성결을 유지하는 방법

  사람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서 나의 원죄까지 도말하여 주섰다하야 믿음으로 성결하여졌으니 이제는 다시 범죄할 염려 없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니라. 유전하여 오는 원죄는 믿는 그 순간에 성결하였다 하여도(행15 : 9) 그것은 법적이오, 우리에게는 본능적 정과 욕이 있음으로 다시 그것이 마귀에게 이용되며 범죄할 수 있다함은 이상에 누누히 말삼하였거니와 이제 말하고저 하는 것은 엇지 하면 이 본능적 정욕을 이기고 성결한 마음을 유지할 가 함이니라.

  1. 성경을 읽어야 할 일

  성경 말삼은 곳 하나님의 말삼인대 물이라 하였나니 곳 물로 씻는 것과 같이 말삼으로써 정결케 하사 거룩케 하신다 하였나니라(엡5 : 26). 우리가 이 세상을 거러 다니려면 과연 풍진이 사오나워 눈도 귀도 손도 발도 더러워지게 되나니라. 유대인은 맨발로 다니는 까닭에 발에 몬지가 붓는 고로 집에 드러갈 때에는 반다시 발을 씻는 풍속이 있섰나니라. 이와 같이 우리가 이 정욕 세상에 거러 다니는 중 매일 주려지는 세정 세욕(世情 世慾)은 매일 하나님의 말삼으로 씨서야 하나니 오직 여호와 이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중 그 심령이 날로 새로와 지머 양육을 받아 시내물가에 심은 나무가 그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마르지 않이 함과 같이 자라나니라. 그럼으로 성경을 애독하는 자의 심령은 그 육체가 날로 진보하되 성경을 읽지 않이하는 자의 심령은 가물을 맛난 초목과 같이 시드러 주름살이 잡히나니라. 그럼으로 성경을 읽어야 성결의 은혜를 유지하나니라.

  2. 기도하여야 할 것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이며 그 세력을 가저오는 것이니, 우리 약자에게 가장 좋은 무기니라. 그런고로 예수께서 항상 기도하라 하시고(눅18 : 1) 사도 바울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였나니라(살전5 : 17).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야 오는대 우리는 약하니 엇지할고. 강하신 자 하나님께 부르지지는 외에 다른 길이 없나니라. 그러나 우리가 유혹을 당할 때에만 기도할 것인가 하면 그런 것이 않이고 무사할 때에도 기도하야 신령한 힘을 많이 저축할 것이며 어려움이 올 때에는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홈으로 비나이다] 하는 기도는 그 순간 그 순간 드릴지니라. 이것이 곳 마귀를 물리치고 하나님을 갓가히 함이니라. 우리가 받은  성결의 은혜는 기도함으로 성장하여 가나니 맛치 채소에 비와 이슬이 나려 열매를 맺게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에 은혜의 이슬이 부실부실 나려 성결의 은혜가 성숙하여 가며 보존되나니라.

  3. 정욕을 좇지 말 일

  대개 너희가 육신(정욕)을 좇아 살면 반다시 죽을 것이오, 오직 성신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8 : 13) 하였으니 이는 성결의 은혜를 받은 자에게 대한 말삼이오 불신자에게 대한 말삼이 않인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바니라. 그러면 사람이 성결한 뒤에도 본능의 정욕은 없어지지 않이 하는 것이오, 이것이 물욕에 끌리어 유혹을 받으면 다시 범죄할 가능성이 있음으로 성신의 능력으로 몸, 즉 정욕의 행실을 죽이면 성결의 은혜를 유지하나니라. 우리 마음에 당연히 요구되는 조건이 있는대 여기에 지나가는 것은 악한 정욕이 되는대 곳 죄니라.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 알어야 할터인대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시험과 유혹과 모든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떠러졌나니 곳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 : 8, 9)하였으니, 우리의 정욕이 유혹받기 쉬운 것은 재욕과 색욕과 식욕과 명리욕 안일욕인대 나의 본능욕이 외계의 물욕을 받아드리는 때에 범죄케 되나니라. 마음은 동(動)하는 것인대 이러한 외계물욕에 동치 않이하는 것은 자기를 죽이고 성신께 순종하는대 있나니라.

  4. 적은 죄를 용서치 말 일

  사람이 성결의 은혜를 받고도 범죄하는 것은 무삼 까닭이뇨 하면 죄가 적다고 용서하는 까닭이니라. 전에 한(漢) 나라 조열(照烈)황제 유현덕(劉玄德)이 임사(臨死)에 그 아달 후주(後主)를 명하야 갈아대 선(善)이 적다 하야 하지 말지 말고 악(惡)이 적다 하야 하지 말라 하였으니 명언이거니와 모든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바리라(살전5 : 21) 하섰으니 엇지 성훈(聖訓)이 않이리오. 우리는 사람의 실패는 큰대서가 않이라 적은 대서니 적은 것을 없수히 넉이나 적은 것이 큰 것을 일우나니라. 배의 치는 비록 적으나 큰배를 조종하고 불이 비록 적으나 많은 집을 세운다 하였으니 적은 것을 엇지 없수히 넉이리오. 세균은 육안으로는 볼 수도 없고 수천배 확대되여 보이는 현미경으로 빚최여 보아야 겨우 머리털만 하야 보이는 세균이 공기에 식겨 날라다니다가 사람의 호흡으로 드러가면 그 생명을 빼았나니 호랑이에 죽은 사람은 많지 않지만 장질부사나 호열자 균에 생명을 빼았긴자 더 많으니 죄가 적다 하야 없수히 넉이지 않이하면 성결의 은혜를 유지할 지니라.

  5. 경성하여야 할 일

  우리가 성결의 은혜를 유지하는대 각성이 첫째니 [맛당히 존절하여 깨여라 너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 (벧전5 : 8). 마귀는 온 지구로 두루 다니며 (욥1 : 7), 우리 보화를 빼앗고 우리를 사로 잡으려 하나니라. 그럼으로 깨여야 할지니 도적이 무엇을 집으러 왔다가도 만일 주인이 눈이 또렷또렷하야 앉어 있으면 도망할 것과 같이 우리의 심령이 깨여 있는 동안에는 마귀가 와서 우리의 예복을 더럽히지 못하고 우리 마음밭에 가라지를 뿌리지 못할 것이니라. 깨여 있다는 것은 무엇이뇨. 물질에 관심을 가지는 것보다 심령에 관심을 가지고 시시로 반성하며 성경읽고 기도하는 것과 참회하는 생애가 즉 경성하는 일이니라. 아모리 성결하여서도 심령이 잠자면 마귀의 밥이 될 것이니 항상 깨어 있음으로 은혜를 유지할 지니라.

  6. 성신이 내재(內在) 하여야 할 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신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이하고 오직 성신에 있나니 무릇 그리스도의 신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않이니라(롬8 : 9) 하였으니 하나님의 성신이 우리 마음에 게서서 우리의 심령을 직히시면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할 지니라. 예수 비유를 베푸러 갈아사대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가(사람이 회개함으로 그 심중에서 죄악이 나감을 가라침이니라) 물이 없는 따으로 다니다가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갈아대 내가 나온 집으로 도로 들어가리라 하고 와서 보니 그 집이 고요하고 쓸고 수리 하였거늘 곳 가서 저 보다 더 악한 신 일곱을 다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후환이 전보다 더 크다하섰으니(마12 : 43∼45) 이것이 무삼 뜻이뇨? 사람이 회개하고 중생함으로 그 심령이 깨끗하여졌지만 그 집은 빈 것과 같이 곳 성신이 게시지 않음오로 그 심령이 다시 타락된 것을 가라침이니라. 그럼으로 성결하여도 성신이 내재하시지 않으면 빈 집이니, 항상 성신으로 내주하시게 하여야 성결의 은혜를 유지할 수 있나니라. 성결의 은혜를 받을 때에는 쉬웠으나 직히여 나가기는 어려운 일임으로 천국은 힘쓴는 자가 얻나니라(마11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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