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을 어떻게 체험할까?

이명직

<활천> 1935년 3월호에 실렸던 것을 현대말로 옮긴 것이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5>

 

성결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벧전 1:16).

본문에 보면 "거룩할지어다"는 명령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권면의 의미나 간청의 의미가 아니라 명령적으로 "거룩할지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명령은 성결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성결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하나님은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 중에 성결할 수 없다는 말씀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성결이 성경적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지 않는 자가 있는데 어찌 성서적 신앙이라 할 있겠습니까? 성서에 근거하지 않은 신앙은 배격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나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명령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은 누구든지 자유의지로 복종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을 보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완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완전하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인간에게 향하신 말씀이지 동물에게 향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완전은 정도가 있는 것입니다. 즉 전지전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완전은 천사와 같은 구조를 가진 완전도 아니고, 아담과 같이 인간과 사물에 무경험한 완전도 아니며, 다만 인간으로서의 필요한 완전입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고 질병도 모르는 천사적 완전이 아니며, 타락 전 아담과 같이 범죄의 경험도 없는 아담적 완전도 아닙니다. 그것은 아담적이지도 천사적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받는 또는 범죄의 경험까지 있는 그리스도인적 완전이다. 가령 나무열매가 여름과 가을에서 다른 것은 여름에는 푸르고 가을에는 누런 것으로 그 빛이 다를 뿐이고 그 모양은 다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완전이 농숙(濃熟)한 과실이라면 우리의 완전은 성숙치 못한 과실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완전의 정도는 다르나 그 질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입니다. 여기 종지에 담긴 바닷물이 있다고 합시다. 물은 대양의 물이나 종지에 담긴 물이나 마찬가지로 물입니다. 물의 양으로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 그 질에 있어서는 꼭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완전이라는 것은 사랑의 완전인데 양적인 것이 아니고 질적인 의미의 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명령에 복종해야 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입니다.

 

성결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 4장 3절).

성결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거룩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결이란 병 없는 건강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일어에서 성결이란 말은 건강이란 말과 같은 의미로 통용되었습니다. 육체의 건강을 해하는 것이 기생충인 것과 같이 심성(心性)의 성결을 해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마음 속에 죄악의 기생충이 있는 자에게는 변화가 마치 칠면조와 같습니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경우와 처지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있는 죄의 기생충을 제거한 자는 때와 장소를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요한 3서 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의 건강을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자기 자녀의 건강을 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우리의 영과 육의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건강은 주님의 소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3절을 보면, 한 문둥병자가 나와서 절하며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손을 펴셔 만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그 사람의 문둥병이 깨끗해졌습니다. 문둥병자가 "주여 원하시면"이라 한 것은 "주의 뜻이거든"이라 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하신 "내가 원하노니"라는 말씀은 너의 깨끗함이 "나의 뜻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도 주님께는 우리의 문둥병과 같은 죄의 성질을 정결케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정결함을 받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뜻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피흘려 죽으심도 이를 위한 것이며, 하나님이 독생자를 십자가상에서 버리심도 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결의 필요

1.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성결이 필요합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 좌우편의 강도 역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한쪽의 강도는 예수를 조롱하였으나 한쪽에 있는 강도는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주께서는 그 회개한 강도를 향해 중생이니 성결이니 하는 필요성을 말하지 않고 "네가 오늘 나와 같이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그 날로 세상을 떠난다면 성결의 필요 없이 회개함으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려고 하면 성결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일년이 지나고 한 달을 지나는 동안에 성결하지 않으면 돼지나 개와 같이 토했던 것을 다시 먹게 되는 것이므로 성결이 필요합니다.

2. 천국에 들어가려면 성결이 필요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7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불결한 자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감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성결한 생활입니다. 천황폐하의 탄신일에 참여할 자는 대예복(大禮服)을 입고 오라는 통지를 총독부에서 발송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천국에는 성결하고 화려한 세마포 예복을 입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3. 주를 보려면 성결이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4절에 보면 "거룩하지 않으면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에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불의에서 사는 자는 재림의 주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희망하는 자에게는 두 번째 나타나서 구원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재림을 믿어야 하는데 재림의 주를 뵈려면 성결해야 할 것입니다.

4. 성결치 않으면 주(主)와는 상관이 없어집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주님은 최후의 만찬을 어떤 사람의 다락방에서 드셨습니다. 그때에 열두 제자들은 피차 권리를 다투고 대신(大臣)의 의자를 놓고 경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중의 한사람도 유대의 풍속을 따라 발을 씻기는 하인의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교만한 무리에게 겸손의 덕을 실제로 가르치시려고 친히 대야에 물을 들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기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내 발을 영원토록 씻지 못하시리라"고 하니,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발을 씻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결한 자라야 예수님과 상관이 있게 되며, 반면 불결한 자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에게 무슨 현실적 만족이 있으며, 어떻게 미래의 구원을 인증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으로 성결하여지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6천년이나 되는 죄의 성질에서 어떻게 하면 성결해 질까요?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결해 집니다. 에베소서 5장 26절에 "말씀으로 깨끗케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7장 17절에는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춘향전이나 기타 연애소설을 읽음으로서 거룩하여지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으로서만 거룩해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에는 "소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 선생이 청년 목사 디모데에게 권면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소년의 정욕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혈기입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주먹으로 덤비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락입니다. (이는 노소의 구별이 없으나) 극장 출입, 카페 출입, 당구장 출입과 같이 마냥 놀러 다니느라 가사(家事)니 국사(國事)니 공부니 다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셋째는 지식욕입니다. 청소년에게는 알고자하는 지식욕이 팽창함으로 좋지 못한 영문학 등을 읽다가 정신적으로 타락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독서할 때에는 서적을 잘 선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넷째는 성욕입니다. 특히 청소년이 많이 이 죄악에 빠집니다. 남녀간에 연애니 무엇이니 하면서 범죄의 기회를 갖는 일 등입니다. 다섯째는 허영심입니다. 청년 남녀는 조금만 정도에 지나치면 이 허영심으로 타락하기 쉽습니다. 의식(衣食)에서 허영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어떤 목욕탕의 하녀가 돈을 훔쳐서 화장을 하다가 발각되어 경찰에 잡혀갔는데, 취조 심문하니 그 하녀는 자기가 일하는 목욕탕에 어떤 대학생이 오는 것을 마음에 두고 날마다 화장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화장비용이 궁해서 도적질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허영으로 화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소년의 정욕에서부터 성결케 될 수 있습니까? 시편 109편 9절에 보면 주의 말씀으로 소년의 행실을 정결케 한다고 했습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주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면 조금 전까지 있던 정욕적인 마음이 완전히 정결케 됩니다. 활수여학교(活水女學校)의 학생이 자신의 방에 도적이 와서 모든 물품을 들고 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은 성경책을 던지며 이것까지 가지고 가라고 소리를 쳤으나 도적은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후에 그 도적이 경찰에 잡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여학생은 신약전서 한 권을 갖다주었습니다. 그 도적은 신약을 읽고 또 읽다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 도적은 구원을 얻은 간증을 써서 여학생에게 보내었습니다.

또 일본인인 호지유태랑(好地由太郞)이란 자는 절도, 강간, 살인, 방화, 탈옥 등 수십 차례에 걸쳐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다가 옥중에서 그의 고모가 들여보낸 성경을 읽고는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옥중에서도 자신의 구원의 경험을 가지고 전도를 했습니다. 결국 그는 감형을 받고 23년만에 출옥하였는데, 일본에서 유명한 전도자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 그대로 우리의 죄를 눈보다 더 희게, 양털보다 더 희게 하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보혈의 능력으로 성결해 집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에 보면, "그 보혈이 어찌 너희의 양심을 깨끗케 하여 죽은 행실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는 것이다. 개성에 가 보면 선죽교 주위에 포은(圃隱) 정몽주의 혈흔이 있습니다. 그 피는 고려의 충신으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는 절의(絶義)를 지키다가 그가 흘린 피입니다. 또 한말의 충정공(忠正公) 민영환이 자살한 후에 마루바닥에서 오엽죽순(五葉竹筍)이 났다고 합니다. 보십시오. 한사람이 나라를 위해 흘린 피도 이처럼 후세의 사람에게 존경과 예찬을 받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의 피이겠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힘있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중국 대창에 한 절녀(節女)가 있었습니다. 원수가 자기 남편을 죽이려고 기회를 찾다가 절녀의 부친을 위협하며 말하기를 "네 딸을 시켜 그 남편을 내 손에 붙이게 하라"고 협박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에 못 견디어 허락하고 자기 딸을 부르고 울며 원수에게 볼모잡힌 일을 말하자 절녀가 생각했습니다. "만일 허락하지 않으면 부친이 원수에게 죽을 터이니 불효이고, 또 남편을 잡아준다 하더라도 불의이다. 불효하고 불의하며 살아 무엇하겠느냐. 내 몸으로 대신하리라" 결심하고, "내일 밤에 누방(樓房)에서 머리를 동쪽에 두고 자는 자가 나의 남편이라" 하고 부친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자기의 남편을 다른 방에서 자게 하고, 자기는 친히 누방에서 머리를 동쪽에 두고 누워 있었습니다. 때에 원수가 와서 목을 베어 나가 보았는데 원수의 부인이었습니다. 원수는 후회하여 울며 말하기를 "절녀의 남편을 용서하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절녀의 의로운 피가 그 악독한 원수의 마음을 감옥에 넣고 자기의 남편을 구속한 것입니다. 피 있는 곳에는 용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피는 사람의 마음을 정결케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피 속에는 조금도 악의 성분이 섞이지 않은 순결한 보혈입니다.

3. 성신의 세례로 성결해 집니다. 디도서 3장 5절을 보면 "중생의 씻음과 성신의 새롭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결케 되고, 예수의 피로 정결케 되며, 성신의 세례로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영혼을 성결케 하시기 위해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 총동원하여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마기 부인에게는 딸이 있는데 어렸을 적부터 무도와 가극에 능하여 강단에서 많은 환영과 갈채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중학교 시절에 어머니는 무도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댄스 옷을 입고 춤을 출 때에는 환호를 받았기 때문에, 허영심이 생겨 계속하여 댄스홀에 출입하였습니다. 하루는 어머니와 선생님의 눈을 피해 극장에 들어가 숨어서 구경하고 있는데, 한쪽에 자기 선생님이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밤부터 그 아이는 "선생도 다니는데..." 하면서 극장 출입을 함부로 하다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눈(雪)이 한자(尺)나 내렸는데, 아침에 마차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너무 추워서 웨슬리교회에 불을 쬐러 들어갔습니다. 그때 마침 그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큰 감화를 받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눈물로 회개한 후에 간증하기를 지금 이후로는 나의 입으로 노래하는 것과 나의 손으로 바이올린 켜는 것과 나의 발로 춤추는 것을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쁨이 충만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서 모친께 말하기를 "나는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그 모친은 아이가 너무 열정적으로 말하기에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이 애가 너무 흥분되었다. 좀 진정해라. 좀 진정해라"고 하였습니다. 허영심으로 충만했던 그 아이의 마음이 성령세례로 인해 그리스도의 신부의 마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4. 정직한 자복(自服)과 완전한 헌신입니다. 우리의 죄를 진심으로 또는 정직하게 자복하여 우리의 전체를 십자가 제단에 번제물로 바칠 때에 우리 마음과 사상과 성질이 성결해 지는 것입니다.

5. 믿음입니다. 사도행전 15장 9절을 보면 신앙으로 그 마음을 성결케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말하기를 신앙의 공효(功效)는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자복도 필요하고 헌신도 필요하지만 신앙은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모세가 신앙으로 홍해를 가른 것을 과학자는 바람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신앙의 위대한 능력이었습니다. 신앙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고, 신앙으로 요단강에 들어갈 때에 물이 갈라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