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구원

 

  "우리가 이와같이 큰 구원을 경히 보면 어찌 피하리오"(히2:3)

 

  1. 구원의 필요

 

  육신으로는 어떠한 사람에게는 구원 또는 구제가 필요하되 어떠한 사람에게는 필요치 아니한 일도 있다. 가령 빈궁하여 의식(衣食)의 구원이 필요하나 부자에게는 의식에 대한 구제가 필요치 않은 것이다. 그러나 심령상 구원으로 말하면 빈부와 노소와 남녀와 귀천과 문야(文野)의 구별이 없이 일체로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인생들이 망하는 것이 물질이나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지 못한 까닭에 망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살려면 물질의 궁핍으로 핍박을 당한는 수도 있고, 지식의 기근을 크게 느끼는 때가 있다. 고로 여기에서 구원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바라는 바는 이러한 소극적 구원이 아니라 그 이상 적극적 구원이다.

  보라 여기에 한 사람이 있는데 부지중에 실수하여 물에 빠져서 방야명재경각(方也命在頃刻)하여 비명애호(悲鳴哀呼)하는 그 안타가운 정경을 보게 되는 때에 그의 요구하는 바는 어디에 있으며 보는 자의 할 일은 무엇인가. 저를  구원할 일이다. 직접으로 구원할 일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어더한 인정 많은 사람이 저의 의복이 물에 젖어서 오직 곤란할가 생각하여 화려한 의복을 가지고 와서 [갈아입으라] 한다든지, 저가 오작이나 시장할가하여 진미를 갖추어 가지고 와서 [좀 먹으라] 한다든지, 또는 저가 물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즉게 된 것은 수영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하여 수영술책(水泳術冊)을 주면서 [헤엄치는 법을 배워 가지고 스스로 구원하라] 하면 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생각이오 방법이다. 그때에 물에 빠진 사람은 말하리라. [나는 의복이라든지 음식이라든지 학술은 지금 물에 빠져 죽게 된 때이니 구원을 받은 뒤의 일이요, 먼저 나를 이 수중멸망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할 것이다.

  오늘날 모든 인생이 다 죄악이라 하는 수중에 빠져서 구원하여 달라고 부르짖는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행16 : 30) 한다. 보라 주사청루(酒肆靑樓)에서 옹금포기(擁琴抱妓)하고 무용하는 사람이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잘 때에 자고 일 할 때에 일하지 않고 주야를 바꾸어 가며 도박장이나 극장에 출몰(出沒)하는 사람들이 의식(衣食)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위조문서 위조인장 사기횡령범이다 무식지배(無識之輩)이 되도록 의리있게 사용 하였을 것이나 그 심령이 구원을 받지 못하였던 까닭에 이 사회에 많은 해독(害毒)을 끼치게 된 것이다.

  

  2. 어디서 구원 하시는가

  

  (1) 악습(惡習)에서 구원하심

  [이에 너희 구습(악습관)을 의논컨대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 (엡4 : 22)

  [모든 악한 것(악습관)은 모양이라도 바리라] (살전5 : 33) 습관은 제2천성이라는 습관이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여인이 의차(衣次)를 직조할 때에 경선(經線)의 한줄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사람이 능히 입을 의차가 되는 것과 같이 습관은 소견소문(所見所聞)과 일상생활에 접촉되는 감화에 따라 그 성행과 인격을 변화케 하는 것이다. 악습관이라 하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니 거짓말, 비평, 시기 그 타동작간(他動作間)에도 일일이 매거(枚擧)하여 말할 수 없도록 많을 것이나 그 중에도 일례를 들어 말한다면 연초와 음주이다. 연초는 이촌(二寸)에서 불과하고 주일배(酒一杯)는 오육하(何)에 서 불과한다. 그러나 사람이 한 번 이 습관에 포로가되면 지자(智者)도 소용없고 문사(文士)도 소용없고 용사도 소용없고 할 수 없이 노예의 생활이다. 이 악습관은 적어 보이되 실상은 큰 것이다. 경성에 내과의로 유명한 김의사는 연불과 사십여에 별세하고 말았다. 그의 사인은 무엇인가. 위암이라 하였다. 위암의 원인은 무엇인가 하면 과음에 있었다 한다. 물론 초야(初也)에는 자신이 내과전문인만치 심심주의(深甚注意)하여 치료한 결과 성적이 매우 양호하여 안심할만한게 되였던 것을 계속하여 단연 거절하지 못하고 다시 마시기를 시작한 결과 도져서 위 내벽에만 있든 암종은 위 내외에 만연되어 결국은 술습관에 가엽게도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면 그에게는 결코 그만한 지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제는 만인의 계감(誡鑑)이 되었다.

  여기에서 구원 받은 자의 일례를 들어 말해 볼까 한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이라는 곳에 양선장(梁善章)이라는 이는 유명한 음주가이었다. 소년시대부터 마시는 술은 육십당년 하도록 마시었다. 술을 마시건든 곱게나 깨여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고 반드시 관계없는 시비를 가로 맡아 가지고 구타를 하고 언쟁이라도 하여야 속이 시원하여 잠이 온다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때는 자기 부친의 몽상(夢喪)을 하였는데 여전히 음주를 하고 야원(野原)을 지나다가 그냥 쓰러져서 자고 깨어보니 하늘에 별들은 총총하다. 곧 일어나서 좌우를 살필 때에 두건(頭巾)은 어대로 날라가버리고 방립(方笠)은 깔고 잣기 때문에 다 파열되고 말었다. 그때 그는 부친에 몽상을 하고 그와같이 실패된 것을 후회막급하여 어떠한 친우에게 단주법을 물으니 그 친우는 농담으로 [피부에서 떨어지는 비늘을 끍어서 물에 타서 마시면 단주된다] 는 말을 곧이듣고 밤새도록 정강이에서 피가 나도록 비늘을 입숟가락으로 긁어 모아 물에 타서 마셔 보아도 아무 효력이 없이 실패되었고 또 어느 때에는 과부의 독자를 구타하여 생명이 위독하게 됨에 다시 회심이 되어 단주방법을 물으매 또 누가 농담으로 [홀아비의 십년된 망건(網巾)을 구하여 태운 후에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시면 단주된다] 는 말을 꼭 곧이 듣고 실행하여 보았으나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복음을 들었다. 무엇인가 예배당에 가서 예수를 믿으면 술이 끊어진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때는 박제원(朴齊云)목사가 가서 교회를 새로이 설립하던 때이다. 그는 좋은 복음을 들은지라 예배당을 찾아 갔다. 그러나 박목사는 양씨가 온 것을 믿으러 왔다는 것보다 먼저는 주정하러 온 줄로 잘못 생각하고 환영하는 뜻이 적을 뿐 아니라 예배도중에 무슨 난로나 일으키지 않을까 하여 가슴이 조마조마하여 실로 불안중에서 설교를 마치게 된 것이다. 설교를 마치고 나니 양씨는 강대상 앞으로 가까이 와서 [나는 이제부터 예수를 믿기로 작정합니다] 할 때에도 박목사는 의아하게 탐탁치 않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저는 성경을 사고 복음성사까지 사가지고 한 주일 두 주일 다니더니 제삼주일에는 확실히 구원얻은 것을 증거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구원의 사실을 증명하였다.

  물론 예수교가 악습관이나 끊고 도덕이나 실행하자는 목적이 아니오, 또는 그것을 위하야 믿는바도 아니다. 그러나 예수는 생명이 되신고로 그 생명 되신 예수를 믿는 동시에 참 생명이 하늘로부터 그 사람의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신성한 천래(天來)의  생명이 그 마음에 임하면 그 속되고 비열하고 추한 욕망이나 오락이야 자연히 소감될 것이오 인력을 요(要)할 것이 아니다. 이것은 큰 구원의 일례이다.

  

  (2) 범죄의 고통에서 구원한다.

  [아들을 낳거든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하시리라] (마1 : 21)

  율법에서 보면 범죄한 영혼은 반드시 죽으리라 (겔18 : 20) 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있으니 범죄자는 죽는 외에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강림 하심은 죄인을 구원코져 하심이니 이것은 인류에게 큰 소식이요 큰 구원이다. 많은 범죄자들이 이러한 구원을 찾지 못하여 고통하다가 심지어는 자살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주께서는 즉을 죄인이라도 큰 구원으로 건지신다.

  일례를 들어 말하면 산구활(山口豁)이라는 청년은 중학시대에 타락서생이 되어 사기, 간음, 실연, 유령회사 같은 것을 조직하고 기인취재 횡령만 하다가 수년간 징역까지 하고 출옥하여 구직(求職)을 하나 가정과 친우에게 버림을 받은 중에 사회에까지 버린바 되어 누구 한사람 동정하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리저리 표박(漂泊)하여 돌아다니던 중 대택(大澤)이라는 목사를 만나 여러달동안 성서도 배우며 은혜를 받고 지내다가 작심삼일이라 부랑심(浮浪心)이 다시 일어나서 목사에게 고하지 않고 탈주하여 각처로 돌아다니며 절도질과 강도질까지 하다가 마침내는 살인죄까지 범하고 교묘히 은신(隱身)하여 돌아 다니던 중 하루는 우연히 경찰관에게 피착(被捉)되어 유치장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는 그가 구원을 얻을때가 되었던 것이다. 유치장에 있을때는 적적무인반야월(寂寂無人半夜月)에 천지는 잠들었고 만뢰는 구적한대 과거의 범죄사실이 등촉같이 나타나고 양심의 책망은 총소리같이 들릴뿐만 아니라 자기의 칼날에 찔러 죽은 두사람이 유혈피발(流血被髮)에 절치장목(切齒張目)하고 앞에 나타나니 참으로 두렵고도 그 미안한 마음을 견딜 수 없을때에 성경 말씀이 다시금 기억되었다. 그는 일시일분이라도 너는 구차(苟且)이 살고져 하지 않고 죽음으로 속죄하고 영혼의 구원을 받고져 원하여 일각이 여삼추로 날이 새기를 기다려 사실을 서장에게 고백하고 검사국으로가서 자진하여 사형선고를 받을 때에 [고맙습니다] 하고 형장에서 할렐루야 삼창으로 절명되였으니 누가 이 사람이 육신이 죽은 것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였다 하랴. 저는 진실로 큰 구원을 받았다.

  

  (3) 내주(內住)의 죄에서 구원함

  누구든지 이것 까닭에 고생하지 아니하는 인생이 없다. 대사도 바울도 로마사 제8장의 경험에 들어가기까지는 [슬프다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 (롬7 : 24) 이것은 모든 성도  곧 참되게 살아보려는 사람의 부르짖음이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인가하면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그 악을 행하는 도다] 이것이다. 이것은 곧 내재(內在)의 죄의 세력이다. 누가 이 세력에서 구원할까. 옛날 조선에 장지형(張之亨)이란 대장은 매우 기고(氣高)한 인물이었다. 그가 평소에 말하기를 상놈에게 세가지의 부러운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 세가지는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금을 녹이고  돌을 태울듯한 유월 염천에 등골에서 땀이 내 흐르듯 할 때 파탈(罷脫)하고 앉아서 부채질하는 것이오, 둘째는 말할 때에 맹서 짖거리를 하여가며 양비대성(揚臂大聲)하는 것이오, 셋째로는 아내의 불순종하고 괴롭게하여 심기를 불평케 할 때에는 머리채를 쥐어잡고 마음대로 때려주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저가 하지 못하는 것은 소위 양반일 까닭이다. 그 심중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랴. 우리 그리스도인이 만일 그 심중에 불선을 행하고저 하는 마음이 이와같이 항상 일어난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길은 있다. 여기에서 구원 얻을 길은 있다. 이것은 수양의 방법이 아니고 주예수께서 우리를 여기에서 구원 하시려고 귀한 보혈을 흘리셨나니 오직 믿음으로 그 큰 구원에 참여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시기함과 분쟁함과 탐심(貪心)등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극히 자유스럽고 승리스럽고 평화스러운 생애에 도래케 하는 것이다.

  

  (4) 질병에서 구원한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 (약5 : 15)

  오늘날 혹세무민(惑世巫民)하는 무리들이 병을 의치(醫治)한다고 돌아다니며 사람이 병에서 구원을 받고저 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혹은 무식한 행동을 하다가 인명을 상하는 일도 있고 금전을 사취하는 일도 있었기 까닭에 신유라 하면 일종 미신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신유에 대하여는 말하기가 심히 위험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영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죄의 결과로 생긴 병에서 구원하실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믿을 만한 일이다. 감사한 일이다. 여기에서 병이 어떻게 낫다는 원리는 다 말할 시간이 없거니와 일례를 들어 증명한다면 수년전에 경성승동예배당에서 김익두(金益斗)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할 때에 수백명의 병자가 모여와서 안수기도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때에 각종 병자가 고침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다 사실인줄로 믿거니와 실지로는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가 직접으로 본 것 한가지만 증명한다면 경성 무교정교회에 속한 최영복씨의 친형되는 분이 광주에서 사는데 오래전부터 좌각(坐脚)이라. 그는 어느때 그 형님을 데려다가 김목사의 기도나 받으면 나을까하여 데려다 놓고 너무도 분망하여 미처 김목사의 손에 돌아가지 못함으로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기도하던중 순간에 말렸던 다리에 혈맥이 통하며 발목에 힘이 생기고 서서 걸어다니게 되었다. 이것은 이적이다. 그리하여 광주서 년년이 봄이 되면 산채를 캐어 이고 동생의 집을 심방하려 오는 것을 보았다. 병 잇는 자는 주께 구원을 받으라.

  

  (5) 사망에서 구원 하신다.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에 노예 노릇하는 모든 사람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 (히2 : 15)

  사람은 다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노예가 되었다. 사망을 겁내지 아니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사망은 하나님의 심판이오 형벌이다. 아담 부부가 범죄하는 동시에 사망의 선고를 받았다. 그 이후로 그 자손된 인생은 누구든지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된 것이다(롬5 : 12). 그러나 주 예수께서 우리를 사망에서까지 구원하시는 구원은 큰 구원이다.

  누구나 죽엄이라면 공포심을 가지게 되는데 우리 믿는 사람은 도리어 화안(華顔)에 미소를 띄우고 큰 소리로 개가(凱歌)를 부름은 무슨 까닭인가. 주 에수께서 임의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이다. 이 주를 따르는 우리도 주 안에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대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이라 우리들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고전15 : 55∼57).

  한 소년이 우연히 득병(得病)하여 약석이 무효라. 명의를 청하여 진찰한 결과 희생의 희망이 없다고 선언하고 돌아갔다. 그때  그 소년은 아버지에게 묻기를 [의사가 무엇이라고 진단 하였나요] 하니 아버지는 바로 말하였다. 소년은 듣다가 낙심이 되어 벽을 안고 통곡하며 아버지에게 [동행하여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말하기를 [생사가 이로(異路)하고 유명(幽明)이 정계(定界)가 있으니 피차에 넘지 못하리라] 고 거절 하였더니 소년은 벽을 면(面)하여 한참 울다가 조용히 있더니 다시 돌아 누우며 아버지를 부르니 그 얼굴에 광휘(光輝)가 났으니 도리어 아버지를 위로하는 말이 [아버지 슬퍼하지 마세요.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나 있는 곳으로 영접 하리라는 말씀을 언약으로 받았으며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주의 품에 안기어 갑니다.] 하고 평안히 잠들었다.

  

  (6) 완전히  속량(贖良)함

  [대개 창조함을 받을 만물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뭇 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나니 - 우리의 몸을 속량하는 것이라] (롬8 : 18∼25)

  우리가 현재 구원을 받았으나 완전한 속량은 아니다. 현재에서는 비록 성도라는 연약한 육체를 쓰고 사는 동안에는 병에 걸릴 수 있고 슬픔이 있고 아픔이 있고 사망을 면하지 못하니 이것이 완전한 속량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완전한 속량을 기다린다. 우리뿐 아니라 하등동물도 완전한 속량을 기다린다. 약육강식하며 피차에 살륙하는 것이 저희들 생활의 원칙이 아니다. 이리와 양이 동거하고 소와 사자가 한가지로 놀고 육식동물이 식물을 먹는 때가 완전한 속량이다. 이 지구는 속량을 기다린다. 폭풍우와 한재(旱災)와 홍수 지진과 해일(海溢) 독주와 우상 악질(惡疾)과 전쟁은 얼마나 이 미려(美麗)한 자연계를 더럽혔으며 탄식을 하게 하였는가. 그러면 어느때에 완전한 속량이 올 것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강림하시는 때에야 인류사회나 동물계나 천체에나 지구에 속량의 봄이 올 것이다. 현금(現今)에 이 우주는 사단의 세력위내(勢力圍內)에 있으니 거기에서 속량을 받지 아니하면 사회개량도 도로(徒勞)요, 교회제도도 정치니 종교니 도덕이니 주의니 무슨 사상이니 하고 떠들어도 아니 된다. 철학이니 과학이니 하고 부르짖어야 다 공상(空想)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속량 하심으로만 성취 될지니 이것이 이른바 큰 구원이다.

 

  3. 이와 같이 큰 구원을 경(輕)히 보면

 

  어찌 피하리오 멸망을 피하지 못한다.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구원을 경히 여기고 노아의 전도를 경히 여기던 그 시대 사람은 다 홍수에 멸망을 받았다. 롯의 권면을 경히 여기던 소돔고모라는 유황불 가운데에서 멸망되었다. 이것은 우리 앞에 큰 계감(誡鑑)이 되었다.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리오.

  [지금은 은혜를 주실 때요 지금은 구원하실 날이로다] (고후6 : 2). 은혜의 때가 지나고 구원의 문이 닫치기 전에 큰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라.

  지금 형제와 자매의 서서 있는 처지가 구원을 요하지 아니하는가.

  악한 습관에서 과연 구원을 받았는가.

  범죄에서 구원함을 과연 받았는가.

  내주(內住)의 죄에서 확실히 깨끗함을 받았는가.

  주 예수께서 강림하셔서 이 우주를 완전히 속량 하실줄 바라고 믿는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이 있는 자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하기를 그의 깨끗 하심과 같게 하나니라] (요일3 : 3)

  속히 속히 회개치 못한 자는 회개하고 중생하고 성결치 못한 자 성결하여 장차 나타날 은혜를 바라고 기다릴진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