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심판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20:11, 15)

 

  심판이라함은 만반사위(萬般事爲)의 종국에 임하여 시비선악(是非善惡)과 진위정사(眞僞正邪)를 심사판단(審査判斷)하고 비밀한 것을 드러내는 행동을 말함이니 물론 모사(某事)하고 심판을 당하지 아니함이 없고 또한 심판 으로 종국하는 것이다. 가령 일년을 두고 생각할지라도 춘기(春期)에 뿌린 즉, 하간(夏間)에 성숙하고 추절(秋節)에는 타작장에서 두다리나니 이것이 곧 예수께서 말씀하신바 심판이다. 또한 사람도 심판을 당하는 일일(一日)이 있나니 누구나 결코 면치 못할터이데 성경에 기록 하였으니 「사람이 한 번 죽고 그 후에 심판을 받는 것은 정하신 것이라」(히9:27) 하였으니 만일 사람이 1차(次) 죽는 것으로 사실이라고 인정하면 심판 받는 것도 또한 사실됨을 부인할 수 없을지라. 심판은 제왕도 한 번은 받을 것이며 장군도 면치 못할 것이니 귀천과 지혜를 막론하고 필경(畢境)은 심판대전에 서서 선악간에 심판을 받을 터인데 이것이 곧 하나님의 공평하신 정치요 정의의 행위이다.

  흑이 심판이라 하면 장래의 형벌의 의미로만 해석하는 오해의 생각을 가지나 그는 그렇지 아니함이 명백하니 기록 하였으되 「선악간에 각각 그 몸에 행한 것을 따라 보응(報應)을 받으리라」하였으니 어떤 사람에게는 두려운 심판이 될 것이나 의인에게는 소망이라 할 것이다. 그런고로 사도 바울은 전세계가 자기에게 대하여 논단 할지라도 고요히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린다(고전4:5)하였다. 심판이 없으면 우열의 표준도 없고 승패의 결국도 없고 생애의 희망도 없고 이 인생은 아무의미없이 마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세는 장래와 인연이 깊은 시련장이다. 우리가 장래의 심판 끝 보응 받는다는 것은 현재 세상에서 행한 일체의 행위가 그 표준이 되나니 어찌 슬프지 아니리요. 마치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촌음(寸陰)을 다투워가며 면학하면 그 결과는 시험 때에 나타날 것이요, 반대로 나태하여 허송광음(虛送光陰) 한다면 시험일에 그 성적을 받을 것이 명백하다. 사람이 어리석고 죄로 눈이 어둡고, 정욕으로 마음이 캄캄하여 자기 운명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 판단없이 지내는 것이 어찌 한심치 않으리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시는 표준의 삼조(三條)가 있나니 첫째는 「경건치 않은 마음으로 행한(유15) 모든 행위이다.

 

  1. 행위(行爲)

 

  행위를 심판 하시나니 마태25:30-를 보면 그 심판의 성질은 행위인데 선에 대하여 자기의 힘대로 행한 사람은 물론 영생의 보응을 받았거니와 한편에 있는 사람은 불법행동으로 살인이나 구타한 일은 없을지라도 마땅히 행하여야만 될 자기직분을 행치 아니함으로 태벌(泰罰) 받는 것을 볼 수 있나니 그러면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일체 행한 것이 다 하나님의 심판대전에 드러나 심판을 받게 될지라.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이나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나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나 잊어버린 것이난 하나님의 책에는 일호(一毫)도 누락됨이 없이 기록되었는데 마치 사진 박히듯 박아 두었다가 우리의 눈앞에 펴놓으신 날이 있다. 신문에서 종종 보는 바이지만 혹 어떠한 공회당에서 연사는 강단에서 팔뚝을 휘두르며 연설을 하고 수다(數多)한 청중은 연사를 주목하고 있을 때에 사진사는 기계를 배치하고 있다가 무심중에 박아낸 것이 있다. 그와 같은 사진을 보면 꼭 그때 형편대로 박혀졌다. 아마 박혀진 자기는 깨닫지 못할 터이나 그 후에 그 사진을 보는 때에는 아-내가 이 모양으로 앉았었나 할 것이며 또한 자기는 그곳에 앉았던 일까지 얼마 후에는 아주 잊어버릴는지 모르나 그러나 그 사진은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생활에 시시각각 동(動)하는 것을 사진과 같이 인쳐두셨다가 심판날에 펴놓으실 것이다. 또 둘째로 심판의 표준은 경건치 않은 죄인의 강팍한 언어이다.

 

  2. 언어(言語)

 

  유다서1:15에 말이라 하는 것은 하기도 어렵고 아니 하기도 어려운 것이니 삼가할 것이다. 활에 살은 한 번 쏜 후에 다시 거둘 수 있거니와 사람의 말이란 한 번 잘못된 후에는 고칠 수 없나니 그러므로 다윗은「혀로 범죄함을 면하고 악인이 내 앞에 있는데에 내 입에 자갈 먹이겠노라. 시39:5」하였으니 저도 언어에 대하여 얼마나 근신(謹愼)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람이 말을 한 번 발(發)하면 그 말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함을 기억하라. 만일 우리가 발한 말이 남의 감정을 상한다던지 억원(抑怨)하게 한다면 그 말은 영원히 그 사람으 기억에 인쳐 두었다가 심판날에 증참(證參)이되고야 말 것이다. 우리의 말이 결코 일호(一毫)도 사라지지 않고 보존됨이 명백한 것을 요사이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 기이한 일은 다 말할 수 없거니와 가령 무선전신으로 능히 우리 조선에서 하는 말을 아메리카에 앉아 듣게 되는 것은 전기의 작용이라. 그러면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일일이 기억하시는 것을 지각(知覺) 할진대 특별히 심판책에 적히지 않기를 힘 쓸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형제를 어리석은 자라 미친 놈이라 하는 자는 재판을 받고 지옥에 들어가리라 하셨으니「마5:22」어찌 두렵지 아니한가. 축음기에 사람의 말을 넣은 후에는 그 속에서 변함없이 그 소리가 나오는 것과 같이 사람의 매일매일의 천언만담중결불결(千言萬談中潔不潔)을 막론하고 다 하나님의 축음기에 있다가 심판날에 듣고 기이히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황언과 허탄한 말을 버리고 진리를 따라 순결하고 정직한 말을 할 것이다. 셋째는 경건치 아니한 마음이다.

 

  3. 마음

 

  [유12] 국가에서 세운 법률은 범죄의 행위가 나타나기 전에는 정죄할 권리가 없으되 하나님의 법은 친밀하사 깊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심판 하시나니 숨길 수 없으리라. 가령 사람이 도덕질은 아니하엿을지라도 도덕질 하고저 하는 마음이야 누가 알며, 간음의 행동은 없었으나 여인을 향하여 불결한 생각을 품으면 누가 알리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예레미아 선지자 증거 하기를 [마음은 만물 보다 거짓된 것이요 심히 악한 것이라. 누가 알 수 있으리요. 나 여호와는 마음을 살피시고 신장(腎臟)을 시험 하기고 만사에 그길을 순(順)히 하시고 그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는 자로다. 렘17 : 9, 10] 하였으니 과연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행하기 전에, 말하기 전에 그 마음을 아신다. 엘리사가 다메섹에 이르렀을 때에 아람의 장관 하사엘을 보고 울으셨다. 그때에 하사엘이 엘리사더러 어찌하여 우느냐 한즉 엘리사 대답하여 네가 장차 이스라엘을 쳐서 많은 악을 행하고 그 뿐만 아니라 네 인군(人君)을 죽이고 아람왕이 되리라. 할 때에 하사엘은 절대로 부인하고 나는 그런 마음을 품은 일이 없으니 어찌감히 그러한 일을 행하리요. [왕하8 : 7, 15) 하였지만 과연 그 후에 그와 같이 행하였으니 그 마음을 안 자는 누구뇨. 오직 하나님 이시다.

  우리가 현세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자유이니 말하는 것도 자유, 생각하는 것도 자유, 그러나 백천(百川)이 모두 바다로 돌아가는 것 같이 우리의 평생의 일기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전으로 모이는 것이다. 마치 돌을 물 가운데다가 던지면 그 돌 떨어진 자리에서부터 파문이 시작되어 점점 사방으로 퍼지다가 그 파문이 좌우 언덕에 부딛친 즉 다시 돌아와서 처음 돌 떨어진 곳에 이르러서 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생애의 마지막은 심판대 앞에 가고야 말 것이다. 지금은 숨길 수도 있고 속일 수도 있거니와 그때는  [각 사람이 다 자기의 행한 일을 하나님께 직고(直告)하리라] 고 바울은 로마서14 : 12절에 말씀 하였고, 베드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 앞에서 직고 하리라(벧전4 : 5)] 하였으니 그때에는 사람의 양심의 기억이 더욱 새로워지인다. 그러면 그때에 선악간에는 보응을 받는다 하였으니 물론 선한 사람은 선의 보응을 받으려니와 선의 보응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평생에 지은 죄악의 기억만 남아 잇게 되면 어찌할까 이 심판대전에는 다시 용서의 기회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 판결하는 것이니 낙원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곳이다. 그러면 아직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구원 저편 언덕에 서있는 사람은 어찌할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보좌 보다 먼저 은혜의 보석을 예비 하셨나니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긍휼 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히4 : 16] 심판의 보좌를 보고 전율하던 자가 은혜와 보좌 앞에서 찬송하기는 은혜의 보혈이 있음이다. 옛날 지성소내에는 하나님의 법괴가 있고 법괴 위에는 속죄소가 있었는데 이 속죄소에는 피가 마르지 않고 늘 고여 있었다. 이 피는 곧 속죄의 피라. 이 피가 있는 곳곳에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나타나섰도다. 죄짐을 걸머진 자 구원의 길 없어 애통하였으나 은혜의 보좌에 고여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