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천국(天國)

 

   1. 인생이 생각하는 영원(永遠)

 

  인생은 보통 동물이 아니오 만물의 영장(靈長)이다. 보통 동물이라면 현세와 음식하는 일 곧 물질 외에 더 생각하는 것이 없을 것이로되 일방(一方) 영적생활을 경영하는 인생은 선천적으로 영원한 세상을 사모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영원한 세사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음이니라(전도서3장11절) . 아침에 일찍이 바다에 나가서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어부가 고기를 잡는데 한 마리 두 마리 잡을 때에는 마음이 취하여 부모처자와 가정이 별로히 생각나지 않치만 일색(日色)이 서천(西天)으로 기울어지고 그림자가 길어질 때에야 비로소 마음이 쓸쓸하여지며 부모처자가 있는 가정이 동경된다. 이것은 인생에게 없을 수 없는 생각이오, 면할 수 없는 심리의 작용이다.

  우리의 영혼은 영원부터 있었는데 현세에 온 이래로 때때로 영혼은 전세(前世)의 축복상태를 동경하며 추억하여 그 상태로 돌아가려고 사모하나니 시인[우을스와루스] 노래하기를,

  "우리 생(生)은 단지 꿈뿐이오 망각뿐이다.

  우리 한가지로 용솟음치는 영혼

  나의 생명의 별은 이별한 세상의 고향에 있어

  멀리 저편에서 왓도다.

  모든 것을 망각하고 적신(赤身)으로 온 것은 아니다.

  영광의 구름을 타고 우리 고향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하였다.

  이와같이 우리 인생은 온 곳이 있으니 또한 갈곳이 있도다. 사람이 온 곳도 모르고 갈곳도 모르면 그야말로 길잃은 인생이다.

 

  2. 세상에는 영원히 거할 성(城)이 없음

 

  인생들이 현세가 영원히 거할 곳인줄로 알고 영원히 살 기초를 세우나니 후에 기록하였음에

  [저가 심중에 그 집이 영원히 있고 그 거할 곳은 대대로 있으리라하여 그 전답을 자기 이름으로 일컫도다.] (시49 : 11) 하였으니 과연 그러하다.

  [전야공토야공(田也空土也空)하니 환료다소주인옹(煥了多少主人翁)] 전(田)도 허(虛)한 것이오 토지도 허한 것이니 소유자가 종종 바뀌는 도다 한 것이 세상에는 영원히 살 곳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진시황(秦始皇)이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지엇어도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님으로 일거고소불복반(一去姑蘇不復返)한 것이오 동대궁궐옹회진(銅臺宮闕甕灰盡)이오 위주원릉담수연(魏主園陵潭水演)이라 하니 동작대상(銅雀臺上)에 높은 궁궐도 조조(曺操)의 영원히 살 곳이 아니었고,

  [흥망이 유수하여 만월대에 추초로다. 오백년왕업이 목적(牧笛)에 붙었으니 석양천에 지나는 객 눈물겨워 하노라] 하였으니 만월대상에 높은 대원(大園)도 왕건 태조의 영원히 거할 곳이 아니엿다. 이 세상에는 너나 나나 영원히 거할 곳이 없다.

  일년에 반드시 일년의 춘(春)이 있으나 백세에는 일족이 백세인이 없다는 말을 생각하면 세상에는 영원히 생존한 사람도 없고 동시에 영원히 거할 곳도 없으므로 (히13 : 14) 인생은 영원히 거할 성을 찾는다.

 

  3. 인생은 과객(過客)

 

  인생은 날 때부터 세상에 살되 세상은 영원히 살 곳이 아니며 세상은 역려(逆旅)이다. 그런고로 모든 사람이 인생을 가리켜 우거(寓居)자와 과객이라 하였다.

  아부라함은 [천성을 멀리 바라보며 기뻐하고 또 자기가 땅에 있어 외국인과 나그네라] (히11 : 13)하였고, 야곱은 [내가 세상에서 객된지 일백삼십년] 이라 하였고 (창47 : 9), 다윗왕 [우리가 주앞에서 나그네와 우거한 자와 같아 우리의 열조(列祖)와 다름이 없고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고 또 장생(長生)하는 소망이 없소이다.] (대상29 : 15) 하였고, 베드로는 [나그네와 같은 인생] (벧전2 : 11)이라 하였고, 모든 사람이 다 인생은 역려 과객이라는 뜻을 발표하였나니 이백(李白)은 [부천지자(夫天地者)는 만물지역여(萬物之逆旅)오 일월자(日月者)는 백대지과객(百代之過客)이라 하였으니 과연 이 물질적 우주는 인생의 나그네를 재우는 여관이다. 우리 인생은 오륙십년 칠팔십년 이 세상에 나그네로 부쳐살다가 어디로 인지 가는 것인데 모든 사람이 가기는 가면서 어대로 가는지를 아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生)은 기야(寄也)오 사(死)는 귀야(歸也)라하니 귀 즉(歸卽) 도로 간다함은 막연한 사상이 아니오 필야(必也)나온 곳으로 가는 것이오 살던 곳으로 도로가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마치 농가에서 머슴살이하는 일군이 남의 집에 의지하고 사는 것과 일반이니 그 머슴군은 그 약속한 년한을 마치면 반드시 자기의 곳으로 도로 갈 것이다. 그러면 언제나 나그네라는 것은 자기 고향으로 도로 갈 사람을 가리켜 나그네라 하는 것이다. 또 그와 반대로 사(死)라는 것도 역시 도로 가는 것을 가리키는 뜻이라. 육신으로 살든 육신의 일은 마지막이지만 살던 집을 비워 놓고 고향으로 도라간 것이다. 세상은 취산(聚散)이 무상하고 그사는 방법이 각각 다르되 필경 도로가는 그 길은 오직 한 길이 있으니 죽음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인생은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까지 동안이라 하니 누구 나룻배 안에서 영원히 살기를 구하리오. 목적이 저 언덕까지오 또 인생은 여관에서 하루밤 자는 동안이라 하였으니 누가 여관서 영원히 살고져하리오. 그 생각은 자기의 고향일 것이다.

 

  4. 인생의 목적(目的)

 

  인생이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와서 장차 고향으로 가려고 나그네 노릇을 하는데 그 동안에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인생이 그 목적을 깨닫지 못하거나 망각함으로 탈선의 거름을 걸을 것이다. 인생이 다 목적이 있는 것은 마치 학생 이 학교에 통학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나니 학생이 학교에 가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만일 학생으로서 아무런 목표없이 학교에 다닌다 하면 그야말로 징역(懲役)이다. 그러나 학생은 목적과 희망이 있는 고로 풍한 서습이라든지 빈궁을 인내하야 극복하고 공부하는 것은 학교에서 졸업한 후 자기가 활동할 실사회가 있음이니라. 이러한 희망이 없다면 누가 학교에서 수십성상을 인해하고 지내리오. 그리하다. 현재는 장래를 예비하는 우리의 경주장(競走場)이며 학교이며 도장이다. 학교에서 배운 실력이 실사회에 가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인생이  이 세상에서 지내온 실력은 장래세상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에서 일일 일각(一刻)의 생활이라도 성(聖)스럽게 살려는 것이다. 우리 인간 생활의 전부는 장래를 준비하는 데서 불과하는 것이다. 현세에서 일시적 실패는 일순간의 범죄는 영원한 수치와 영원한 실패가 될 것이오, 그럼으로 장래의 수치와 형벌을 면키 위하야 양심대로 살고자 하며 참회하며 심신을 성결케 하며 항상 반구제기(反求諸己)하야 수양을 쌓는 것이다.

 

  5. 영생(永生)의 나라

 

  성경에 나타난 말은

  [저희가 영원한 집에서 너희를 대접하리라] (눅16 : 9)

  [내아버지 집에 잇을 곳이 많으니 - 나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14 : 2)

  [적은 무리여 두려워 하지 말라. 대개 너와 아버지께서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나니라] (눅12 : 32)

  [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예비하였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라] (마25 : 34)

  [오직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나니라] (빌3 : 20)

  [예수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나라가 이 세상 나라이드면 - 하셨으나 이상의 말씀들은 추상적도 아니오 시적(詩的)도 아니고 실재를 증거하신 것이니 인생은 현세에만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괴롭고 달고 쓰다 하며 왔다갔다 하다가 사라지고마는 것이 아니다. 물질인 육체는 물질을 의지하고 살다가 물질의 육체가 무너지는 때 영혼은 어디로 갈 것인가. 혹은 여전히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은 지어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하였으나(전12 : 7) 그 영혼이 돌아가는 곳이 즉 영생의 나라이다.

  인생은 누구이나 타락하여 죄악의 생활을 하는 자라면 모르거니와 지극히 이상을 가지 자라면 영생을 찾는다. 현세로 만족할 수 없고 물질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천국이라는 영원한 나라를 발견하기 까지는 결코 만족이 없는 것이다.

  바울 사도 말씀 하시기를 [만일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단지 금생(今生)뿐이면 모든 사람중 우리가 더욱 가련한 자가 되리라] (고전15 : 19) 하였으니 내생(來生)이 없으면 내생을 바라는 우리가 가련한 인생이오, 내생이 있으면 현세와 물질로 하나님을 삼는 그 인생이야말로 가련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성도는 이렇게 찬송한다.

  내 영혼아 네 날개를 펴고 하늘 향해 날개치며 아버지의 집 영원한 전으로 빨리 도망치라. 바다와 산과 일월(日月)은 엇어지리라.

  내 영혼아 걱정 근심 다 버리고 하늘의 영광을 바라며 나가자 구원하신 주께서는 이제 나타나사 썩지않은 면류관을 주시리라.

  내 영혼아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의 성성(聖城)을 항상 사모하라. 흐르는 눈물을 다 씻어버리고 완전한 평화의 노래 즐거이 부르리라.

 

  6. 인생의 위로(慰勞)

 

  인생은 위안으로 그 생을 연장한다할 것이니, 위안이 없는 곳에 비관이 잇고 원망이 있고 자살이 있는 것이다. 인생의 위안은 물질이 아니오 정신이다.

  많은 자녀가 있으되 먹이지 못하고 입히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기갈(饑渴)한 때에 도적질이라도 하여 일시 만족을 취하고져 하며 빈궁하여 이해없이 남에게 대접을 받을 때 그 원통하고 분한 생각은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차시(此時)에 위로는 무엇인가. [너희 이제 주리는 자가 복이 있도다. 너희가(천국에서) 배부름을 얻을 것이오. 너희가 이제 우는 자가 복이 있도다. 너희가 천국에서 웃으리라(눅6 : 21)] 이것은 인생의 위로의 말씀이다.

  고이고이 기르고 가르쳐 장래를 바라보는 희망이 컸었는데 이것이 의외에도 죽고 보니 무슨 위로가 있으리오. 비통하고 앞이 캄캄할 때 누가 능히 위로하리오만은 인생이 죽어도 영죽은 것이 아니다. 다시 살아난다. 아 -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희망이다. 그러므로 노래한다.

  꽃과 같이 사랑스런 내 아들이 들어간 후 꽃답고 아름다운 기억만 남았구나. 내 눈속에 남아 있나. 네 얼굴은 주님 앞에 다시 만날 그 날이 기다려진다.  천부께서 내 아들을 곁에 두고 내 맘으로 영원천국 기다리게 하시도다. 나의 아기를 불러가 신 그날부터 나도 역시 하나님이 가까워졌다.

  그뿐 아니라 호생악사(好生惡死)는 인지상정이라는데 누가 죽기를 좋아 하리오. 인생의 소망은 다 떨어지고 죽엄의 그늘이 앞에서 어른어른 하는 때에 그 낙심됨과 비통과 적막함은 형언할 길 없으리라. 이때에 그 무엇으로 저를 위로하리오. 금이나 은이나 지위나 명예나 처자나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를 나에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얼마나 감사한 말씀이냐.

  조로(朝露) 같은 이 생명은 잠시 동안 뿐이로다.

  그러하나 다함없는 참 생명은 내세상에 또 있도다.

  모든 죄와 근심 걱정에 시달리든 그 대신에

  저 천국의 평안으로 바꾸어서 즐기리라.

  아직까지 이 싸움은 쉬지않되

  저 영광의 면류관은 나오기를 기다리네.

  위협하여 오는 적은 사나우나 각성(覺醒)하여 힘을 쓰고 싸움하여 승리하라.

  이 싸움을 마치는 날 낙원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앞에서서 승전가를 부르리라.

  밤낮으로 사모하는 저세상의 참 행복을

  내가 보고 즐깁니다.

  이렇게 찬송하며 눈을 감는 그 죽엄은, 그 위로는 보통인의 상상도 못할 위로니라.

 

  7. 천국의 실경(實景)

 

  흔히 말하기를 천국을 누가 보았느냐하나 이는 매우 무지한 폭언이다. 이러한 무지한 말에 역시(亦是) 역언(逆言)으로 답하면 너의 십대조나 이십대조는 보고 믿는가. 너의 마음은 네가 보고 믿는가. 모든 물(物)의 질 원자도 보고야 믿는가. 우리가 세상에서 믿는 것이란 다 보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지 보고 믿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보이는 물질은 보고 아는 것이오, 믿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부재다언(不在多言)이다. 현재가 있으면 미래천국도 있는 것이다. 육체의 내가 사는 지구세계가 잇으면 진아(眞我) 즉 영이 가서 살 수 있는 천국이 있는 것이다. 죄인을 위하여 지옥이 있으면 의인을 의하여 천국이 잇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니 천국이 있는 것이다. 천왕성이나 해왕성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보다 더 멀고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이 육안으로 보여질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모(思慕)하여지고 기다려진다. 이것이 보통인의 육안으로는 보여지지 않아도 성신의 감동을 받은 요한 사도가 밧모 섬(島)에서 장차나타날 천국을 영감으로 보았다. 그의 증명한 바에 의하면 이러 하니라.

  저는 육신의 의식은 전혀 정식(靜息)되고 오직 영동(靈動)에 의하야 천국전폭(天國全幅)을 본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성성(聖城)을 보았는데 역시 축도(縮圖)로 본 것이다. 본디 사방이 방정(方正)한 성인데 동서남북이 각각 일만이천리씩이니 일주하자면 오만육천리오, 성의 고(高)는 일백사십사척이며 그 성을 쌓은 재료는 보석이니, 특히 벽옥이오 그 성의 문은 동서남북으로 각각삼문이니 십이문인데 그 문은 진주로 달았고 그 문은 주야로 닫는 일이 없다 하였으니 그 영광과 그 거룩함과 그 자유로움은 인간의 말로는 다 형언할 길이 없으며, 그 성에 들어가서 보니 가로는 전부 정금(精金)으로 포장하였는데 그맑고 정결(精潔)한 것은 수정과 같다 하였고, 성의 중앙으로는 생명강이 관통하야 흘러가며 강좌우 언덕에는 매월 한 번씩 열매를 맺는 생명수가 벌려있어 그 경치는 말할 수 없이 웅장화려한데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야 일광과 월색이 수용할 필요가 없고 그 성의 평화스러운 기상은 첫째, 아담으로 인하야 나타난 저주(咀呪0가 없으니 병이 없고 병이 없으니 고통이 없으며 또 사망이 없으니 애통할 일도 없고 고통이 없으니 그 눈에는 눈물도 없는 곳이라. 이것은 곧 모든 인간들이 이상(理想)하는 천국이다. 이 성에는 백의금관(白衣金冠)의 성도들이 금거문고들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무수한 천군천사들이 찬미할 제 온 우주는 찬송으로 덮히고 천성은 기쁨과 평화와 자유로 넘치게 님의 뜻이 비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보석으로 단장하고 황금으로 번쩍이는

  하나님의 계신 서울 기쁨으로 기다리네.

  세상사람 알지 못한 비추이는 저 광영은

  비교할 것 아주 없네.

  예루살렘 새 정선에 모여들은 천사천군

  생명까지 다 바치며 증거타가 순교한 자

  주의 공로 찬송하네.

  악신마귀 이긴 성도 흰 예복을 몸에 입고

  공중 혼연(婚宴) 청함 받고 밤낮으로 쉬지않고

  하나님을 찬송하네.

  하나님이 예비하신 있을 곳이 과연 많타

  하나님의 계신 서울 기쁨으로 기다리네.

  우리 인군(人君) 예수시여

  진실로 원하오니

  즐거운 저 천국에 드러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