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결론

 

   (前題는 基督敎 眞髓)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3:16).

 

  1. 천부(天父)께서

 

  천부는 누구인가, 천부는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만물과 우리 인류를 지으셨으며 사람의 생명과 화와 복을 주장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아바지시다. 이 세상에도 가장 가련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부모가 없는 무의무탁(無依無托)한 사람이라할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분명히 기쁨도 없고 위로도 없고 일생을 유감으로 지내일 것은 사실이다. 그러하나 우리에게는 이와 같이 거룩하시고 절대무한하신 아바지 하나님이 계신 것이 어찌 최대의 행복이 아니리오. 그러하나 어떠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않니라 하나님을 부인하고 심지어 무신론을 주창한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가련한 일이뇨. 만일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하면 이는 자기의 존재도 부인할 일종의 정신병자로 보이지 아니할 수 없다.

  눈을 들어 자세히 보라. 이 호대(浩大)하야 제한이 없는 공간에 한 별이 걸려 있으니 그 성(其星)의 직경은 이만칠천육백여리요 그 주위는 팔만여리니 만일 사람이 동편에서 서편을 향하고 떠날 때에 일행(日行)백리를 여행한다 하면 이개년(二個年) 이상의 시간을 요하겠는데 그 성면에는 육대주와 오대양이 있으며 거기에 붙어서 무슨 끈에다가 꿰여서 매달았는가 하면 그런것도 아니오, 그리하면 무슨 기둥으로 밑을 받쳐 놓았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오, 공중에 둥둥떠서 있나니 욥기 26장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 지구를 아모 것도 없는 공간에 다가 달아 놓으셨다 하였으니 이밤에 뜰에 나아가 머리를 들고 공중을 쳐다 볼진대 금쌀알을 뿌린듯한 무수한 별들이 천공(天空)에 가득하다. 그 별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거리가 멀기 까닭에 조알 하나 만큼씩 되어 보이지만 실로 그 별들중에 목성이라는 별은 우리 사는 지구보다 일천삼백배며, 토성은 칠백배며, 해왕성은 구십배며, 천왕성은 칠십배인데 이런 따위 별들이 이로 다 계산할 수 없으리만치 공간에 배치되여 그정한 궤도에서 구루고 있으며 매일 우리에게 비추어 주는 저 태양으 우리가 사는 지구보다 말할 수 없이 커서 만일 태양을 주머니라고 할 것 같으면 이 지구를 일백삼십삼만개를 능히 넣을 수가 있으니 그 용적이 얼마나 크뇨. 또 우리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삼억팔천만리인데 우리가 만일 일주야(一晝夜)에 삼천사백리씩 달아나는 기차를 타고 태양을 향하여 간다하면 삼백여년만에야 도착할 터이다. 이것 저것 말할 것 없이 이와 같이 위대하고도 신비한 설계는 자연도 아니오, 무의식자(無意識者)도 소위(所爲)도 아니라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봄에는 백화(百花)가 난만하고 여름에는 녹음이 청창(靑蒼)하고 가을에는 오곡이 풍등(豊登)하고 겨울에는 백설이 수정의 세계를 이루워서 사시(四時)의 대사(代謝)함이 일초(一秒)를 어기지 아니하며 우리의 눈을 기쁘게 하고 귀를 즐겁게 하며 마음을 쾌락케 하고 배를 부르게 하시는 이가 누구인가. 저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그런 즉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는 [그 창조하신 만물로 넉넉히 알 수 있으니 알지 못한다고 핑계할 수 없는 것이다] (롬1 : 20).

  또는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나니 가령 사람이 병이 들매 자기를 나은 어머니를 부르고 불가항력의 어려운 일을 만나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인심의 동서고금을 물론하고 공통이라 할 것이다. 어떠한 유명한 무신론자가 위험을 당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부르짖을 때에 저 유명한 무신론자도 배 한구석에 가서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부르짖었다 한다. 그런즉 이것이 곧 하나님의 존재를 그 양심으로는 인식하는 증거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잊어지리고저 하여도 잊어 버려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그러면 이 하나님은 성경을 보아서나 우주만물을 보아서나 각 사람의 양심에 나타나는 증거를 보아서라도 넉넉히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잇거늘 어찌하여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도 하며, 또는 죄악을 범하는가 하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죄악이 사람의 양심을 무디게 하고 그 총명을 가리워서 그러한 것이다. 나는 연전(年前)에 중국 선교사 뿍맨박사에게 이러한 말을 들었다. 자기가 어떠한 대학생을 만나 전도할 때에 그 학생은 하나님을 부인하며 영혼까지 부인하여 크게 무신론을 주창할 때에 박사는 변론을 중지하고 그 학생의 얼굴을 한참 보다가 말하기를 [군(君)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고 계시지 아니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군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 하거나 말거나, 믿거나 말거나 하나님은 계시겠지만 군에게 큰 문제는 음행(淫行)이니 그 죄로 지옥에 빠질 것이 큰 문제라] 할 때에 그 학생은 잠간(暫間)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자기의 곳으로 돌아갔다. 그 이튿날 미명(未明)에 그 학생은 뿍맨박사의 집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박사는 나아가 문을 열고 본 즉 작일(昨日)에 변론하던 학생이다. 그 학생은 곧 땅에 엎드러지며 말하기를 나는 죄인이 올시다,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여 달라 하였다 한다. 그런즉 이 학생은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때에 하나님을 믿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되지 아니하였다. 우리가 참 하나님을 알려면 죄의 구름을 헤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데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면 곧 하나님을 앎으로 경건한 생애를 보낼수가 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인격은 향상 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여러 사람이 있으나 빈방에 홀로 있으나 그 양심을 속이지 않는다. 그 인격을 얼마나 고상(高尙)한가.

 

  2. 세상(世上)을

 

 세상이라함은 막연한 공간을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 인류사회, 즉 인간을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어떠한 곳인가. 혹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이라, 보기 좋은 곳이라, 놀기 좋은 곳이라고 할는지 아지 못하겠다. 혹은 이 세상은 점점 문명하여 곧 교육이 발달하고 정치가 개선되어 가며 군비는 축소 되어 가며 마지막에는 전쟁이 없어지게 되고 인도와 정의는 실행되어 가는 세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씀 하셨는가. [악하고 음난한 세대] (마16 : 4), [사특한 세상] (행2 : 40),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대] (빌2 : 15), [흉악자에게 속한 세상] (요일5 : 19) 이라 하였으니 이러할 말씀을 의지하여 보면 이 세상은 이십세기에 와서 비로소 위와 같이 악하게 되었는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그러하였다. 창세기 6장 5절을 보면 [세상 사람의 관악이 관영(貫盈)하여 심중의 사상이 간악(奸惡) 하였다.] 하였으니 이 세상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를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 몇 천년 동안을 두고 하나님을 상대하여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의로 진리를 대적하는 중에 있었다.

  이 세상이 과연 좋은 세상인가 악한 세상인가는 매일매일 게재(揭載)하는 신문지 사회난을 읽어보라. 전구(前口)에는 들어보지 못한 기괴 참악(慘惡)한 사건으로 만재된다. 너무 그러한 기사만 보니 우리의 감각들도 거의 마비가 된 것과 같은 감이 있다. 우리 동양에서 지켜내려오던 윤리중에도 부자의 관계는 진실로 귀중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금일에 와서는 자식이 아비나 어미를 걸어 법정에 고소하는 일은 상사(常事)가 되었다. 그 고소를 당하여 법정에서는 아버지가 그 아들을 애지중지하여 입에 있는 것을 토하여 먹이고 입었던 옷을 벗어 입히며 진자리 마른자리 바꾸워 누이고 추울세라 더울세라 누르면 꺼질세라 불면 날라갈세라 그 장수하지 못할까 두려워 하며 기른 아들이다. 무슨 영광이나 볼까하고 이렇게 힘을 쓰고 애를 써서 기른 것이 결국은 그 자식이 자란 후에는 그 아버지를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이것으로 그 부모의 은애(恩愛)를 갚았다. 그 이면에는 무슨 동기로 그러한 일을 하는가 하면 거반은 재산문제이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일까지 일어나니 이 세상은 과연 악하다.

  또 부부간에 되는 일을 보아 인도(人道)에서는 떠나고 오직 정욕에서 사는 금수와 다를 것이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금수만도 썩 못하게 떨어지고 말았다. 금수는 짝이 명백히 있어서 그 분의(分義)를 지키는 일이 있음을 보지만 사람은 음행 하는 일을 항다반(恒茶飯)으로 생각하며 첩을 두되 많은 자는 이삼인으로 수십식도 두는 일도 있다. 또 많은 청년중에는 자기의 본처는 신여성이 못되고 구여성이 되어서 무식하다는 등 자기를 이해를 못한다는 등 이상이 맞지 아니한다는 등 이유를 붙여서 이혼을 강요하고 심지어 이삼인의 자녀가 있으되 불구하고 축출을 하니 종신안거(終身安居)을 기약하고 자녀에게 탁정(托情)하고 살자던 그가 이러한 변을 당하고는 할 일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 설곳도 없이 나아가는 때에 그 자녀들은 어머니 어디로 가느냐고 치마꼬리에 붙어서 울다가 동서로 헤여지게 되니 그 가정은 분명히 파괴이다. 아 - 어찌하야 이 세상은 이와 같이도 악한고.

  언제는 들었다. 어떠한 사람이 자기의 처를 생명보험회사에 가입을 시키였는데 일년이 못다가서 죽었다. 또 결혼하고 결혼한 처를 또 다시 생명보험에 가입시키였더니 또 얼마 아니되어서 죽었다. 이와 같이 되기 사오차라. 생명보험회사에서는 비로소 깨닫고 그 사람의 처의 병명을 조사하여 보니사, 오인이 다같은 병으로 죽은 것이다. 이에 큰 의심을 가지고 몇해저 사건을 다 들쳐매고 시체를 해부한 후 당자을 엄중히 취저한 결과로 자기의 처가 죽으면 그 보험금을 취하여 먹을 욕심으로 호열자균을 그 처도 알지 못하게 그 식물(食物)에다가 긴 날을 두고 조금씩 섞어 먹여서 죽게 하였다는 것을 자백하였다. 이 악한 세상이여 어찌 되랴는고. 또 어떠한 사람은 자기의 가옥을 화재보험회사에 들고는 화재보험금을 탐하여 고의로 자가(自家)에 방화하였다가 이것이 발각되어 방화죄로 칠년징역을 한다는 말도 들었다. 이것뿐이 아니다. 혹은 몇 만원(萬圓)의 회뢰사건(賄賂事件)으로 고발을 당하여 징역을 하게 된다고 하니 이 세상이 어찌 이리 악한고.

  어떠한 사람은 금전의 세력으로 빈민(貧民)에게 동정은 고사하고 고리대금장변리(高利貸金場邊利) 장리(長利)라는 악수단으로 빈민의 기름과 피를 빨고 가죽을 벗기고 뼈까지 부수다시피 하되 간난(艱難)한 사람은 호소할 곳이 없어 다 빨린 후에는 그 가족들은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동서로 이산하여 노유(老幼)를 제휴(提携)하고 깊은 한을 머금고 눈물을 뿌리며 유리표박 하다가 아사(餓死)도 하고 동사(凍死)도 하여 그 시체가 구학에서 굴게되니 이 세상은 악한 세상이다. 통계상으로 보면 늘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이혼 살인 강도 자살사건 뿐이다. 이렇듯이 악한 세상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접하셨는가.

 

  3. 이처럼 사랑하사

 

  이처럼 이라는 말은 더 사랑할 수 없이 사랑하셨다는 뜻이다. 또는 사랑하지 못할 것을 사랑 하셨다는 뜻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주안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개인의 형편을 생각하던지 이 인간세상의 상태를 하나님께서 보는 때에는 도저히 사랑 하실수가 없다. 그러나 사랑하셨다. 이처럼 사랑하셨다.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참된 사랑이 없어 울고 있다.  사랑이 없어서 쓸쓸하다. 사랑이 없어서 춥고 사랑이 없어서 죽고마는 것이다. 보라 일낙서천(日落西天)하여 황혼이 됨에 조(鳥)작도 깃으로 돌아가고 들짐승도 제곳으로 돌아오는데 오라는 사람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이 성(城) 모퉁이에 외로이 서서 우는 아해(兒孩) 남루한 의복을 입었으니 붉은 살은 이 구멍 저 구멍에서 내여 비치인다. 배는 고파 죽을 지경, 추워 배고파 기한(饑寒)을 이기지 못하여 운다. 그 아해는 왜 우는가하면 물론 춥고 배가 고파서 운다할 것이다. 그러하나 실상은 사랑이 없어 우는 것이다. 그 아해라도 만일 사랑하는 이가 있어서 잘 먹이고 잘 입히지는 못할지라도 따뜻한 사랑으로 [추우냐] [배가 고프냐] 하고 위로하는 이가 있었다면 울지아니 하였으리라.

  또 한가지 실례를 들어서 말하면 어떠한 어머니가 형제 두 사람을 세상에 남겨두고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못할 죽엄의 나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아버지는 자기 마음에 좋아하는 여인을 취하여 장가를 들었다. 그리하여 그 아버지는 금술 좋게 화락(和樂)하게 잘 살지만 그 계모는 두 아해를 학대한다. 그런고로 그 가정에는 취미가 없다. 위로가 없었다. 기쁨이 없다. 그 두 아해에게는 그 가정은 광야와도 같고 사막과도 같다. 그런고로 형제 두 아해는 서로 의지하고 서로 위로한다. 어떠한 때에는 아우가 울면 형이 위로하고 형이 울면 아우가 위로한다. 형이 볼일이 있어 그런고로 형제 두 아해는 서로 의지하고 서로 위로한다. 어떠한 때에는 아우가 울면 형이 위로하고 형이 울면 아우가 위로한다. 형이 볼일이 잇어 멀리 가서 늦도록 돌아오지 아니하면 그 아우는 종일토록 계모의 학대를 받다가 눈물을 이리씻고 저리씻고 중로(中路)에 나와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 형이 늦게 돌아오다가 그 아우가 길에 나와서 울고 기다리는 것을 보면 가슴이 타고 뼈가 저려서 마주붙잡고 울게된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집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계모도 있으나 사랑이 없는 까닭이다. 어찌하여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그 귀중한 생명을 만경창파에도 던져 버리고 시퍼런 칼날로도 자르고 노끈한 바람으로도 끊어 버리며 먹지 못할 독약을 마시고 고민하다가 원한을 길이 품고 불귀의 객이 되는가. 사랑이 없어서 그러하다. 과연이지 이 세상에는 사랑이 없다. 육정에 붙은 사랑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다 거짓 사랑이다. 내가 실패하는 때에 내게 사랑을 줄 사람이 없다. 내가 죄를 범하여 법망(法網)에 걸리게 되는 때에 사랑하여 줄 친구가 없다. 내가 병들 때에 사랑하여 줄 사람이 없다. 내가 죽을 때에 사랑하여 줄 사람이 없다. 아 - 이 세상은 쓸쓸하고 비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저의 사랑은 크시고 원만하시고 영원하시다. 귀한 사람도 사랑하시고 천한 사람도 사랑하시고 부자도 사랑하시고 가난한 사람도 사랑하시고 유식한 사람도 사랑하시고 무식한 사람도 사랑하시고 남자도 사랑하시고 여자도 사랑하시고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불구자라도 사랑하신다. 죄인도 사랑하시고 낙심한 사람도 사랑하신다. 이 죄악으로 관영(貫盈)한 세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사랑하셨다. 이 세상에 일분자(一分子)인 더러운 죄인 나를 사랑하셨다. 또 너를 사랑하셨다. 아- 과연 사랑하셨다.

  사람이 저 입으로만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면 그 말만 가지고는 사실이 나타나지 아니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은혜로 우리에게 주셨다.] (롬8 : 32) 위로 천공(天空)에는 일월성신의 삼광(三光)이 우리를 위하여 비취이고 지상에는 산천이 수려하고 수림이 창울하여 초화(草花)가 화미(華美)하고 오곡이 풍등하며 백과가 성숙하여 우리의 육체를 양(養)하고 지하에 금은보석을 몇 천년 몇 만년 전부터 예비하사 취지불금(取之不禁)하며 용지불갈(用之不渴)의 대부고(大富庫)를 그냥 우리에게 맡기셨고, 산간의 주수(走獸)와 공중(空中)에서 노래하는 새들과 해중(海中)의 어(魚)별은 다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니 우리 인생은 만물의 주인이라. 이것들은 다 우리의 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사 주신 것이다.

  [사람이 음식을 의지하여 생활하나니 진실로 밥과 돈은 귀중한 것이니. 그러나 하나님께서 돈 한푼 받지 아니하시고 그냥 무대가(無代價)로 주셨다. 그러나 양식과 음료수 보다 더 귀중한 것은 공기니 사람이 음식은 칠, 팔일 먹지 아니하여도 살 수 있으나 공기는 오분간만 마시지 못하면 곧 질식이 되어 죽는다. 그러면 공기의 가치가 음식의 가치 보다 얼마나 더 귀중한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람이 매매하는 중에 생활상 아무 필요가 없는 금이나 보석은 제일 값이 많으되 생활상 절대의 필요한 쌀 값은 금값 보다 더 싸고 하루라도 마시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 곧 쌀보다 더 필요한 물 값은 오히려 쌀값 보다 싸고 쌀보다 물보다 더 필요하여 인생이 오분간만 마시지 아니하면 꼭 죽을 수 밖에 없는 공기는 일분(一分)의 값도 내지 않고 그냥 하루에도 몇 섬씩 마시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그 양육비라고 도로 받는 이가 있는가. 하물며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리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풍성함으로 사람이 깨닫지 못한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벽장에다가 그 아들을 위하여 많은 식물을 예비하여 두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밖에서 놀다가도 들어와서 벽장문을 열고 집어먹고 학교에 갔다가 와서도 벽장문을 열고 집어 먹는다. 어느 때던지 벽장문만 열면 먹을 것이 없어지지 않고 예비되여 있다. 그 아해는 늘 그렇게 먹으니까 그저 그런줄만 알고 어머니의 사랑을 깊이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생각하여 보라. 작년에도 종자 한말 뿌린 데서 곡식 두섬(二石)이 나오고 또 금년에도 그러하고 내년에도 그러하며, 과실나무에서 작년에도 따고 금년에도 따되 일평생을 다함이 없이 거두어 먹고 또 거두어 먹으며, 땅에서 물이 솟아나와 오늘 펴서 먹고 내일 퍼서 마시되 항상 솟아나와 마르지 아니하니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다. 오늘에 이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입지 아니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러나 이것은 아직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은 것도 못되고 다 안것도 되지 못한다. 이밖에 형언(形言)할 수 없는 더 큰 사랑이 있다. 그것은 곧 무엇인가.

 

  4.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것은 사랑의 절정(絶頂)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때에 물질로는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생명까지는 주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는 자기의 몸까지도 줄 수 있으나 남을 위하여 자기의 자녀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것은 못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만물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다. 그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다. 여기에 이르러는 하나님의 사랑의 양을 다 깨달을 수가 없다. 이 사랑은 우리 지식(知識)에 넘치는 사랑이다. 우리의 경험으로는 도무지 인식할 수 없는 사랑이다. 그 독생자를 나에게 주셨다. 하나님께서 무슨 까닭에 곧 무엇을 하라고 그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단 말인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독생자)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나니라] (롬5 : 8). 과연 우리 인생은 다 죄인이다. 죄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세상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고로 의인은 없나니 곧 한 사람도 없나니라 하였다.(롬3 : 10). 우리 사람들이 법률에 의지하여 우리의 행위를 조사한다 하면 누가 이 법망에서 벗어날 사람이 있을까. 도적질한 것은 죄악이다. 물론 강도질한 것이 죄, 절도질한 것이 죄, 우리가 세밀하게 생각하면 노상(路上)에서 사람의 물건이나 금전을 집어 가지고 주인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자기의 물건을 삼은것도 죄이다. 사람의 물건을 빌어쓰고 주인에게 돌리지 아니한 것도 죄이다. 또는 사람들이 거짓말은 으례히 할 것으로 생각하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마땅히 먹을 음식을 먹고 살아야 살지 먹지 못할 양재물이나 쥐 잡는 약이나 먹어도 살까. 그러한 것을 먹은 사람은 많이 먹었던지 적게 먹었던지 죽을 것은 사실이다. 그와 같이 거짓말은 우리 사람으로는 마땅히 할말이 아니다. 보라 거짓말은 왜 하는고 자기를 이롭게하고 사람을 해할 목적으로하는 것이다. 그러면 거짓말도 천원이나 만원을 속여야 기인취물(欺人取物)이라는 죄가 되고, 십전이나 일전쯤은 관계없는 일이 될까. 그런고로 거짓말 한 마디가 발서 법률에 저촉인 것은 사실이다. 감옥에 가서 보라. 거짓말 한마디하고 징역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의 죄가 묻혀있고 또는 법망으로 빠져서 면하였지 만일 그 법망에 걸리기만 하였더면 마땅히  청의(靑衣)를 입고 쇠사슬을 차고 옥에 매인 몸이 되었으리라. 우리의 손가락으로 글자를 쓸때에 두이 자를 석 삼자로 막 고쳐도 훌륭한 문서위조 죄인이다. 남의 유부녀와 간통 하였는가, 강간죄가 아니면 사통죄(私通罪)이다. 사회나 관청에서 사무보는 사람의 신분으로 만일 금전이나 무슨 물품을 받은 후에 그른 것을 옳타고 증명한다든지  마땅하지 못할 일을 하였다 하면 훌륭한 수회죄인(受賄罪人)이다. 법률이 결코 그를 용서치 아니한다. 아 - 보라 보라. 법률을 속여가며 밀수입 아편흡취 남이 여자를 유인 이밖에도 사람이 법률을 범하는 일이 어찌 한 두 가지에 그치랴. 분명히 법률에 비춰보면 징역을 하여도 몇 해씩 다 하였을 것이며, 한번이나 두 번만 하지 아니할 죄상이 많다. 또는 도덕에 비추어 한번 조사를 하여 보자. 설혹 우리가 법률상으로는 저촉되는 죄가 없다 하더라도 도덕에 비추어 본다면 부자유친이라 하였고 효경부모(孝敬父母)하라 하였으니 우리가 과연 그 교훈대로 하였다 할 수 있을런지 의심이다. 오늘날에 부모를 핍박하고 박대하는 자식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또는 부부유별이라 하였으나 남편이 되어 그 처자를 학대하여 이혼을 한다. 첩을 둔다, 회사나 관청이나 근무하여 근근히 받는 박봉(薄俸)을 가지고 의복이나 음식이나 불결한 오락 불결한 교제에 다 소비하고 필경에는 채귀가 되어서 이리저리 미동을 하며 하석상대(下石上戴)하다가 그것 저것 다 잘되지 아니하는 때에는 기인취재(欺人取財)니 공금횡령의 범죄사건이 일어난다. 남의 재물을 욕심내며 불한당 처럼 그저 먹으려고 도박을 하여 양가 자제(良家子弟)를 유인하여 패가망신케 하며 자기도 망하게 되며, 종일토록 근육운동하는 형제들은 매일 잘 받아야 일원(一圓)혹은 칠, 팔십전이다. 그것을 가지고는 처자를 보육하기가 극난(極難)하다. 그러한데도 그것을 불고(不顧)하고 독약과 같은 술을 사서 마셔 버리고 만다. 그 후에는 광인(狂人)이 된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면 처자의 의복은 현순백결이오, 그 얼굴에는 채색(菜色)이 나타난다. 그러나 동정 할줄 알지 못하고 구타를 하니 풍파가 일어난다. 이것이 누구의 죄인가. 또는 근육이 튼튼하고 연부력강(年富力强) 하면서도 일하지 아니하고 공연히 낮잠만 자고 시간을 낭비하여 인생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어찌 도덕상으로 죄인이 아니고 무엇이리오. 살인이나 강도나 방화치 아니하였다고 의인으로 자처하고 안심하지 말라. 죄인은 죄인이다. 또는 법률도 그만두고 도덕도 그만두고 우리 개인 개인의 양심에 비추어 보자. 직접 도적질은 아니하였으나 남의 것을 욕심내고 탐한다. 살인은 아니하였으나 형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혐의(嫌疑)하고 시기한다. 직접으로 범색(犯色)은 아니하였으나 마음으로 여인을 보고 또는 여인은 남자를 보고 더럽고 불결한 마음을 품는다. 그러면 우리가 모든 일을 우리 양심에 비추어 본다면 도망할 수 없는 죄인이다. 죄는 커도 죄, 적어도 죄이다. 열번 범하여도 죄, 한번 범하여도 죄이다. 죄는 나타난 것도 죄, 마음속에만 있고 나타나지 아니한 것도 죄이다. [죄악의 값은 사망](롬6 : 22)이다. 법률상으로 도덕상으로 양심상으로 지은 우리의 죄를 생각하면 태산이 오히려 경하다 할 것이다. 아 - 죄 - 죄 어떻게 우리가 이 죄에서 놓임을 받을까. 삼십년 이십년 오십년 칠십년 이렇게 죄를 지어 쌓았으니 이십년 칠십년 난행고행을 하면 죄에서 사함을 받을가. 죄의 가지 수를 따라 한가지에 십여전씩만 속전(贖錢)을 내이면 사함을 받을까. 자살이라도 하면 사함을 받을까. 아니다. 아니다. 도를 닦다가 공을 이루지 못하고 죽으면 무슨 유익이 있나. 속전을 내자니 무슨 돈으로 할가. 자살이라도 하자면 죽엄의 밑이 곧 지옥불이다. 아 - 아 어디가서 사함을 받을까. 이것이 만인의 고통이다. 그러나 [하나님게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우리의 죄는 자기의 의나 또는 물질로는 도저히 속량(贖良)을 받을 수 없는 죄이다. 지옥에 가서 영혼으로나 영원히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신 고로 우리가 지옥에서 멸망되는 것은 결코 앉아서 보실 수가 없으셨다. 그러나 그러하다고 오직 사랑만 생각하사 불의와 죄악을 무조건으로 용서하신다는 것은 공의(公義)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공의에도 이즈러 지심이없고 사랑도 완전케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옛날에 어느 나라왕이 새로이 국법을 세우고 반포하기를 누구든지 이 법을 어기면 반드시 그 두눈을 빼리라 하였더니 얼마되지 아니하야 의외에 왕의 태자가 처음으로 그 법에 저촉이 되었다. 왕은 이것을 위하여 깊이 생각하였다. 만일 자기의 아들이라고 법대로 아니하면 백성이 그 법에 복종치 아니할 것이오 또 태자의 두눈을 뽑으면 폐인이 될지니 차마하기 어려웁게 되었다. 이렇게 법대로 하면 사랑이 이즈러지고 법대로 아니하면 공의가 이즈러지겠는고로  왕이 자기의 한편 눈을 뽑고 또 태자의 한편 눈을 뽑아 공의와 사랑을 어즈러트리지 아니하였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공의와 사랑을 완전케 하셨는가 하면 마땅히 멸망을 당할 우리 죄를 그 독생자 곧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음으로 죽을 우리가 살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만물을 다 주시다가 마지막으로는 그의 독생자까지 주셨으니 곧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대속제물(代贖祭物)이 되신 것이다.

 

  5.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신앙(信仰)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아주 쉽게 말하면 어떠한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줄 때에 받기를 원치 아니하는 때도 있고 받고져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도 있다. 그러면 그 받기를 원치 아니하는 마음은 반항심(反抗心)이오 받기를 원하는 마음은 그것이 곧 신앙심(信仰心, 믿는 마음) 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가 죄가운데에서 고통하며 죄악의 결과로 영영히 지옥에서 고통할 것을 불쌍히 여기사 사랑하심으로 그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사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으니 우리는 무슨 일을 할까. 어떠한 태도를 취할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독생자를 배척할까 받아 우리의 구주로 받을까. 옛 사람이 말하기를 [하늘이 주시는 것을 받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독생자를 큰 신물( 物)로 주셨으니 만일 반항하고 받지 아니하면 그 반대로 형벌 받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떠한 사람은 말하기를 믿어지지 아니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심히 어리석은 말인줄로 안다. 우리가 하루에 세번씩 밥을 먹는다. 왜 먹는가, 곧 먹으면 배가 불을줄을 믿고 먹는다. 만일 어떠한 사람이 [나는 이 밥을 먹고 싶어도 과연 배가 부를런지 아니 부를런지 믿을 수가 없어서 먹을 수가 없노라.] 하면 그 사람은 그 어리석은 가운데에서 굶어 죽고 말 것이다. 또한 우리가 편지를 써서 우편함에 던진다. 그것은 다만 신앙의 행위이다. 그러나 그 편지가 갈런지 가지 못할런지 믿지 못하면 고향의 소식은 한번 듣지 못하고 죽을 것이 아닌가.

  또 어떠한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성경을 연정(硏程)한 후에 믿겠다] 하나 그것이 좋기는 좋은 일이로되 먼저가 믿을 일이오, 연구는 둘째로 할 일이다. 지금 병으로 죽게 된 사람이 해가(奚暇)에 의학박사가 되어 자기의 병을 치료할 수 있으리오. 먼저 약을 먹어 자기의 병이 고침을 받은 후에야 의학을 연구함도 좋고 약학(藥學)을 연구함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는 첩경은 믿음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또 어엿한 사람은 생각하되 [나는 죄가 원래 많은 사람이니 감히 믿을수도 없고 비록 믿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고 한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이라고 허락 하셨으니 이것은 과연 복음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일에 빈부와 귀천의 차별이 있다 하면 이에서 더 불행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만일 선한 자만 구원을 받고 죄인은 구원을 얻을 수 엇다하면 진리가 아니고 사랑이 아니면 복음이 아니다. 그러면 예수는 황제라도 믿어야 하겠고, 왕후장상(王侯將相)이라도 믿어야 하겠고, 지(知)자라도 믿어야 하겠고, 가난한 사람도 믿어야 하겠고, 부자라도 믿어야 하겠다. 누구든지 믿어야 한다면 믿음에는 지식도 필요가 없고 금전도 필요가 없다. 오직 자기는 죄인되는 줄 알고 죄의 값은 사망인 줄 알고 예수는 나를 죄의 지옥에서 구원하시는 구주인 줄로 믿으면 넉넉하다.

  참된 신앙 곧 믿음은 어디서부터 나타나는가 하면 먼저 회개할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셨으니 죄를 회개치 아니하면 참된 신앙이 생기지 아니한다. 마치 석탄 가운데 돌이 섞이면 불이 잘 일어나지 아니함과 같이 회개치 아니한 죄가 있으면 참된 신앙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신앙을 가지고 원하면 죄라는 것은 낱낱이 회개하여야 한다. 도적질하던 사람은 그 악습을 회개하고 음행하던 사람도 그 악습을 회개하고 거짓말하던 사람도 그 악습을 회개하고 첩둔 사람도 그 첩과 분리하고 술 마시고 담배 빨고 입으로 욕하고 남을 속이고 게으른 사람은 그 모든 악습을 회개하여야 될 것이다. 그러나 회개한다고 그저 내가 전일에 행한 것은 다 잘못된 일이야 이제부터는 잘하여야 되겠다고 스스로 결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좋기는 하나 그렇게만 하는 것이 참된 회개가 되지 못한다. 가령 남의 금전을 차용하고 값지 아니하였거든 값아야 할 것이다. 남의 유부녀와 불의의 관계를 두고 자기의 처를 삼았으면 본부(本夫)에게로 돌려야 할 것이다. 남의 물건(物件)을 자기의 것으로 삼은것이 있거든 본 주인에게로 돌려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야 참된 신앙을 얻을 수 있다. 실례를 들어서 말하면 어떠한 사람이 나에게 좋은 물품을 주는데 내 손에는 다른 물건이 있으면 어떻게 새 것을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독생자로 우리에게 주시는데 우리의 손에 만일 더러운 것, 죄악, 불의한 것이 여전히 있으면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우리 손에 있었던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믿자. [대접하는 자는 그 이름을 믿는 자라. 권세를 주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나니라.]

 

  6. 영생(永生)을 얻으리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을 것이 무엇이며 받을 것은 무엇인가. [너희가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함이라] (요20 : 31). 또 [너희 믿음의 공효(功效)를 받나니 곧 영혼을 구원함이라] (벧전1 : 9) 하였으니 우리가 믿음으로 얻을 것은 생명이오 받을 것은 구원이다. 금일 전세계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것이 무엇이냐 하면 금전보다도 지식보다도 문명 보다도 곧 물질보다도 그 영혼의 구원이다. 가옥보다 식물보다 음료보다 의복보다 명예보다 그 영혼의 구원이다. 지금은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민족들이 다 - 죄악으로 인하여 침륜하는 중에 있지아니한가 보라. 이 구원이 없는 이에게는 금전이 소용이 없다. 왜 그런가하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이에게 금전이 있다하면 그것을 인하여 죄악이나 더 지을 뿐이오 하등의 유리한 일이 없다. 그 돈이 있으면 먼저 사치나하고 내외 주점 요리점 기생방 연극장 또 자동차에 음녀나 싣고 한강에 달놀이 우이동 꽃놀이 창경원 불놀이 또 아편침질 나중에는 패가망신하고 거적자리에 문전에 걸식을 하다가 절도(竊盜)질 마침내 옥귀(獄鬼)가 되고 말 것이다. 또는 지식을 준다하자. 지식이 없는 사람은 남의 것을 빼앗아도 막 곤봉으로 사람을 두드리고 백인(白刃)으로 사람을 찌르지만 지식이 있고도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지식을 악용한다. 가령 은행이나 관청 기타 회사에 직원이 된다하자. 무식한 자가 곤봉으로 하는 대(代)에 필단(筆端)으로 전후못된 협잡(挾雜) 사기(詐欺)의 행위를 할지도 모를 것이다. 보라 현금(現今) 각 관청 은행 회사원중 종종 공금횡령사건 인장위조 문서위조 사건이 빈발되어 축출 면직 징역의 보응을 받게 되지 아니하는가. 또는 법률가나 정치가나 된다고 하자. 얼마나 자기의 권세와 범위에 맞는데까지 악용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즉 구원이 없는 자에게는 금전이니 지식이니 하는 것이 도리어 해독이 된다. 구원을 얻지 못한 자에게 금전 명예 권리 지식 같은 것이 있는것은 도리어 크게 위험한 것이다. 마치 철모르는 아해에게 창검을 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왜 그런가하면 그것으로 자기를 상하고 또 다시 사람을 해하게 된다. 그런고로 먼저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은혜를 주실 때요 지금은 구원하실 때이로다.] (고후6 : 2) 하였으니 우리가 이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 우리 인생의 생명이라는 것은 아침 이슬도 같고 기와장 위에 서리도 같아서 오늘 저녁에 벗어 놓은 신을 내일 아침에 다시 신을런지 알지 못한다. 이와같이 헛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말고 이와 같이 큰 구원을 받으라. 우리가 이 구원 곧 영생을 받는 것이 마치 생명보험회사에 드는 것과 같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 구원을 한번 받아 놓으면 물에 빠져 죽어도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있고, 불에 타도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있다. 인간의 영욕(榮辱)의 유혹을 받아 구원의 기회를 잃지 말라. 저 아메리카에 있는 나이가라 폭포는 세계에 유명한 폭포이다. 그 폭포이 상류는 평정한 강이다. 그러므로 봄이 되면 많은 처년남녀가 그 상류에서 배에다가 음악과 술과 음식을 싣고 마시며 두드리면 춤추며 즐겁게 노는중 그 자미(滋味)에 몰두하여 배가 스스로 흐르고 흘러서 폭포에까지 오되 깨닫지 못하고 놀다가 배와 한가지로 저 폭포에 쓸려들어가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이 가끔 있다 한다. 만일 우리가 세상의 정욕과 죄악의 오락에 정신이 팔리고 타락된 생애를 그냥 보내다가는 필경 지옥의 멸망을 면치 못하리니 그때 가서야 뉘우치면 무슨 유역이 있으며, 후회한들 무슨 유익이 있으랴. 하나님은 죄에 빠진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사랑을 부르신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