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급진신학과 한국신학의 접맥

목창균

 

급진신학, 그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현대 미국의 급진신학(radical theology)은 20세기 중반 이후, 칼 바르트(Karl Barth), 로돌프 불트 만(Rudolf Bultmann), 폴 틸리히(Paul Tillich), 본 회퍼(Die trich Bon hoffer)등의 신학사상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새로운 신학 조류를 말한다. 전위신학(frontline theology) 또는 신자유주의 신학(Neo Libe ralism) 등으로 불리우기도 하는 급진신학은 전통적인 신학의 길을 거부하고, 신학 적인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려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급진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와 그 하나님은 현대인의 문제와 욕구를 해결할 수 없는 것 으로 간주하여 이를 분쇄하고 새로운 기독교 또는 제2의 종교 개혁을 모색했다.

  예를 들어, 신에게 솔직히(Honest to God) 라는 책을 발표함으로써 세속화 신학의 불을 당긴 영국의 성공회 감독 로빈슨(John A. T. Robinson)은 16세기의 종교개혁운동은 이제 지나갔다. 새로운 종교개혁이 요청된다. 기존의 교회구조를 지탱해주는 전통적인 교리와 신학적인 토대를 허물어버리고 새로운 개혁운동을 전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급진신학은 우파와 좌파, 또는 온건한 급진신학과 과격한 급진신학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메시지의 전달방법을 문제시하는데 반해, 후자는 메시지 자체를 문제시한다. 즉 온건한 급진신학은 복음의 옛 형태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보고, 새로운 형식에 이해 복음을 전달하려고 한 것이다. 한편 과격한 급진신학은 메시지 자체가 많은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기 대문에 그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상실이 그것이다. 현대 미국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급진 신학은 신의 죽음의신학(theo logy of Death of God)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1960년대에 전세계의 신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신학으로 세속화신학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이 외에도 1970년대에 시작된 희망의 신학과 해방신학에 뿌리 둔 정치신학, 그리고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 되고 있는 종교의 다원화를 주장하는 종교신학 그리고 과정신학이 급진신학으로 분류될 수 있다.

  우리는 이들 가운데서 세속화 신학, 신의 죽음의 신학 그리고 과정신학을 중심으로 미국의 급진신학의 동향을 살펴보고, 결론적으로 한국신학계에 미친 영향을 추적하려고한다.

 

세속화 신학

1950년대 후반 부터 세속화 신학이라 불리우는 신학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을 주도한 신학자들은 전통적인 기독교가 현대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대인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도, 전후 시대의 여러가지 문제점을 해결하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종교와 형이상학, 또는 초자연적이며 피안적인 힘으로 부터 벗어나 자신의 책임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형성하려고 하였다. 즉 초자연적인 것, 영적인 것을 거부하는 반면, 이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집중했다. 따라서 세속화신학은 세속적인 관심과 사고에 기초하여 형성된 신학이다.

  이 세속화신학은 성경에 대한 본 회퍼의 비종교적인 해석과 불트만의 비신화적인 해석에 사상적인 기반을 두었다. 예를 들어, 본 회퍼는 옥중서신 에서 하나님을 종교 없이 말하고, 종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 그리스도, 속된 세상의 그리스도를 세속적인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인간은 종교 없이도,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성숙한 시대, 성인된 세계에 도달했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를 비종교화하지 않고는 현대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과 제휴하지 못한다 고 주장했다.

  한편 불트만은 신약성경이 신화적인 언어로 표현 되었다고 보고, 이것을 실존론적으로 해석하였다. 그 결과 그는 계시의 객관성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사건을 신화로 간주했다. 예수의 역사를 우리의 신앙에 불필요한 요소라고 하여 제거해버렸다.

  이와 같은 본 회퍼와 볼트만의 신학사상은 세속화신학의 출현과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의 세속화를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성경의 비종교화와 비신화화는 곧 세속화를 의미했다.

  세속화신학은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1963)와 하아비 콕스(Har vey Cox)의 세속도시(The Secular City, 1965) 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으며, 그들이 베스트셀러가 됨으로써 대중화되었다.

  로빈슨은 멀지 않은 장래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할 것으로 보았다. 전통적인 방법과 용어로 전달되는 기독교 교리들은 현대의 세속적 인간들에게는 무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난국을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 초자연적인 것 그리고 종교 자체와같은 신학의 기본적인 범주들을 새롭게 주조해야 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높이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하늘 위에 계시거나 저 멀리 밖에 계신 분으로 이해하는 대신, 새로운 차원, 즉 인간의 고난과 슬픔에 관여하시는 깊이의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교회가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관심이 존재하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이다.

  또한 교회는 예수를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 이 아닌,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 로서 그리고 남을 위해 산 선한 이웃으로 소개해야 한다. 그럴 때, 예수의 인격 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세속화될 때, 현대인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세속화 신학의 대표자로 간주되는 하비 콕스는 그의 세속도시 에서 기독교와 그 역사를 사회학적으로 다루었다. 그는 사회 발전의 역사를 세속화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이를 세 단계로 구분했다.

  씨족문화(Tribe Culture), 소도시 문화(Town Culture) 및 기술-도시문화(Techno Politan Culture)가 그것이다. 그는 종교를 이런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유형의 산물로 보았다.

  씨족문화에서는 신이 영을 지배하는 자로, 소도시 문화에서는 지배자, 왕, 주인으로 표현되었다. 소도시 문화의 신과 인간의 관계는 나와 당신(I Thou)의 상하관계, 즉 수직적인 관계였다. 한편 현대는 도시 문화시대이다. 도시는 세속화의 상징이다.

  이 시대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나와 너의 수평적 또는 평면적인 관계이다. 신은 너로서 인간과 나란히 서있어 상호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따라서 신에 대한 전통적인 진술은 현대의 세속화 시대에서는 무의미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서 신을 말하려고 한다면 세속적인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 이것은 신이란 이름을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신학적인 문제로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아비 콕스는 신에 대한 새 이름이 나올 때까지, 전통적이 하나님이란 말의 사용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세상과 교회, 세속과 거룩, 회식과 성찬, 그리고 자연과 초자연의 구분을 부정했으며,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신의 죽음의 신학

세속화신학은 신의 죽음의 논쟁과 더불어 더욱 급진화되었다. 우리는 신이 죽었다고 하는 한 역사적 사건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은 우리들의 시대와 역사와 생활 속에서 죽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 없는 신학을 전개하려 했던것이 신의 죽음의 신학이다. 이것은 복음의 본질을 과격하게 곡해하고 그릇된 방향으로 세속화하려 했던 신학운동이다.

  토마스 알타이저(Tho mas J. Altizer), 윌리암 해밀톤(William Ha milton), 반 뷰렌(Paul van Buren), 가브리엘 바하니안(Gabriel Vahanian)등. 당시 일단의 미국 젊은 급진주의 신학자들 이 이것을 다양하게 주도했다.

  1966년 4월 8일자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지가 신이 죽었다(God is Dead) 를 겉표지의 표제로 삼아 소개함으로써 전세계에서 경악과 분노와 탄식을 일으키며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으나 1960년대 말을 고비로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한 때의 유행신학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 미국의 급진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죽음을 최초로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서구의 정신사에 나타난바 있었던 사상이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철학자 니이체(Fr ie dri ch Nie tz sc he, 1844~1900)는 그의 즐거운 지식 에 등장 하는 미치광이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죽음을 외쳤으며 불란서의 실존 철학자 사르트르(Je an Paul Sartre, 1905~1981)는 이것을 시인했다.

  가장 과격한 신의 죽음의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은 당시 에모리 대학의 교수 알타이저였다. 그는 불교사상과 엘리아드(Mirce a Eliade)의 종교현상학 및 니이체의 허무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가 1966년에 로체스터 신학교 교수 해밀톤과 함께 저술한 급진신학과 하나님의 죽음 (Radical Theology and the Death of God)은 미국 개신교에 급진신학의 출현을 알린 최초의 책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급진신학을 개신교의 현대적인 발전으로 정의하고 무신론의 관점을 기독교에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이 우리의시대. 역사 및 현존에서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써 하나님의 죽음을 역사적인 사실로 간주했다. 하나님의 죽음은 재생이나 부활이 가능한 일시적인 것이 아닌, 역사 안에 다시 나타날 수 없는 최종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예수를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의 전통적인 하나님을 전적으로 무가치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예수는 우주적 원리로서의 그리스도가 아닌, 역사적 예수였다. 성령과 신적인 요소가 제거된 그리스도, 즉 하나님 없는 그리스도였다. 한편 그는 기독교와 그 신학을 해체하고 다른 종교의 장점을 도입한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따라서 예수와 디오니서스를, 그리고 기독교의 천국과 불교의 열반을 동일시했다.

  이와 같이, 알타이저가 기성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부인한데 반해, 해밀톤, 뷰렌 및 바하니안은 하나님을 부정하면 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한 기독교, 즉 하나님 없는 기독교를 인정했다.

  예를 들어, 해밀톤은 현대인은 하나님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없다고 보았다. 초월적인 하나님은 죽었을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을 인정할 힘마저 말라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의 죽음의 선언을 세속주의의 본질인 무신론을 원인으로 하여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체험한 결과로 나타난 운명의 힘에 대한 반항으로 해석했다.

  그는 예수를 세상의 주(主)로 인정하는 것이 신학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은 죽었지만 예수는 살아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중심으로한 윤리적 기독교를 주장했다.

  바하니안은 알타이저나 해밀톤 보다 완곡하게 하나님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신의 죽음(The Dea th of God, 1961) 과 다른 신은 없다(No Other God, 1966) 에서 현대를 기독교가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사멸한 기독교 이후 시대라고 했다. 이 시대에 기독교가 물려줄 유일한 유산은 기독교의 자기 무효화밖에 없다고 하면서 그는 과학과 기술로 기독교를 대체하려 했다.

  반 뷰렌은 접근 방법에서 다른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과 구별된다. 그는 복음의 세속적 의미(The Secular Meaning of the Gospel, 1963)에서 본 회퍼가 제기한 문제점을 언어 분석철학을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즉 언어분석을 통해 하나님이란 말을 죽은 언어로 규정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의미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현대인에게 존재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세계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오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여 복음을 세속적으로 이해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기독교 신학을 전개하려고 했다. 즉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셨던 인간 예수에 근거하여 유신론적 형태가 아닌 휴머니즘적 형태의 기독교 신학 형성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신의 죽음의 신학은 하나님 상실의 경험과 역사적 예수에 대한 재발견을 토대로 현 대 미국의 낙관주의적인 사고에 의해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이 아닌 세계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함으로써 해결하려한 급진적인 신학운동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욕구 충족자와 문제 해결자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계를 믿는다. 신의 죽음의 신학자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독교 전통적인 초월자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은 죽었으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둘째, 하나님의 죽음은 또한 전통적인 기독교의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의 윤리적인 교훈에 근거하여 새로운 윤리종교로서 기독교를 재조직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경험적 사실의 배후에 있는 초경험적인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 인간의 이성과 경험에 신뢰성을 두려는 실증주의적인 태도로 부터 나온 것이다.

 

과정신학

20세기에 들어와서 다윈(Darwin)의 진화론과 아인슈타인(Einstein)의 상대성이론에 근거한 과학적 세계관이 미국 현대신학의 흐름의 형성에 또 다른 큰 영향을 끼쳤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와 하트숀(Charles Hartshorne)의 철학에 토대를 둔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이 바로 그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영국 태생인 하버드 대학의 철학교수로서 현대과학과 조화를 이루는 형이상학을 정립하는데 자신의 만년을 보냈다. 과정철학으로 불리는 그의 사상은 생성(becoming)과 관계(relation)를 강조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화이트헤드의 제자인 하트숀은 시카코대학과 텍사스대학의 철학교수로 재직하면서 그의 선생 화이트헤드에 대한 저명한 해석자와 독창적인 철학자로 활약했다.

  이 두 철학자의 사상을 기독교 신앙에 도입하여 그것을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시카코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것이 미국 과정신학의 시작이었다. 이 대학 교수로 과정신학의 기초를 놓았던 제1세대 과정신학자들은 위이맨 (Henry N. Wie man), 윌리암즈(Daniel D. Williams), 루우머(Bernard Loomer), 멜란드 (Bernard Mel and) 등이다. 시카고 대학의 동문으로 과정신학을 계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제2세대 과정신 학자들은 오그덴(Schubert M. Ogden)과 콥(John B. CobbJr.)이다.

  미국 과정신학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이다. 이것은 화이트헤드의 신론에 힘입은 바가 크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형이상학적인 원리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양극적인(dipolar) 개념을 제시했다. 하나님은 원초적(primordial) 본성과 결과적(consequent) 본성을 가진다. 전자로서의 하나님은 현실성의 근거로서, 어떤 현실성에 의해서도 제한되지 않는다. 후자로서의 하나님은 세계의 창조적 전진의 결과이다. 하나님은 세계에 관계하며, 세계는 하나님에게 반응한다. 하나님은 전적인 완전 속에 있지 않고, 과정과 변화 속에 있다. 이와 같이 화이트헤드는 하나님과 세계가 창조적인 전진에 서로 참여한다고 주장했다.

  하트숀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유신론(the ism)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새로운 유신론을 제시했다 전통적인 유신론에서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완전하여 결코 능가될 수 없으며, 따라서 세계에 대해 필요 한 존재이나 자신은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반면에 하트숀의 신유신론에서는 하나님과 세계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동적인 관계에 있다. 하나님은 세계 안에 있고, 세계는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과 세계는 상관적이나 동일한 것은 아니다. 하트숀 은 이것을 만유재신론(Panen the ism)이라고 불렀다.

  오그덴의 신학의 중심문제 역시 하나님의 본성이다. 그는 화이트헤드와 하트숀의 신관을 탐구하여 이것을 발전시켰다. 현대의 세속인에게 정당한 동시에 기독교 신앙에 적절한 신관을 확립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오그덴은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인간의 경험, 관계성과 시간성 속에서의 인간 주체를 검토했다. 그는 자아를 관계적 또는 사회적인 동시에 변화의 과정 또는 시간적인 것으로 해석했다. 자아의 기본 범주는 존재(being)나 실체(substance)가 아닌 과정(Process) 또는 창조적 생성 (creative becoming) 이다.

  오그덴은 이 존재의 유비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실체가 아닌 창조적인 생성의 한 예그리고 사회적이며 시간적인 실재로서 규정했다. 오그덴의 하나님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불변적이며 무시간적이고 비관계적인 절대자로서의 하나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의 하나님은 불변적이거나 무시간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는 계속적으로 자기 창조의 과정 속에 있는 살아있는 하나님이요 성장하는 하나님이다.

  오그덴은 전통 기독교 신론의 약점과 모순을 지적했으나, 동시에 기독교를 하나님 없이 해석하는 것도 부정했다.

  그는 화이트헤드와 하트숀의 형이상학에 근거하여 유신론을 재건했으며, 이것을 신고전적 유신론 으로 불렀다.

  이 신고전적 유신론에는 두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에 참으로 관계하는 실재이다. 하나 님은 이 세계에 상관적일 뿐 아니라 또한 의존적이다. 둘째, 하나님은 양극적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절대자만은 아니다. 지극히 절대적인 동시에, 지극히 상대적이다. 하나님이 시간적이며 변화한다면, 또한 영원하고 불변적이어야 한다. 오그덴은 이 신고전적 유신론이 세속인에게 이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 적절한 유신론의 형태 라고 주장했다.

  과정신학은 기독론을 신론처럼 철저히 탐구하지 않았다. 신론이 중심적이었던데 비해, 기독론은 파생적이었다.

  특히 화이트헤드와 하트숀은 기독론을 발전시키지 않았다.

  한편 오그덴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절대규범으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점에 국한시키는 것은 신화이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 다. 항상 모든 사람에게 가능했던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재표명 되었다고 보았다. 인간 구원의 유일한 근원은 하나님의 원초적인 사랑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명백히 계시되고 있으나 그와 동일시된 것은 아니다.

  구원의 가능성은 그리스도의 케리그마와 같은 재표현된 계시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인 원계시(original revelation), 즉 자연계시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그덴의 기독론은 그리스도 중심주의가 아닌 신중심적 비규범적 기독론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닫는글, 소위 토착화된 세속화신학

이제까지 신의 죽음이 신학을 비롯한 세속화신학과 과정신학을 중심으로 현대 미국의 급진신학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현대에 적합한 새로운 기독교 형성을 신학의 과제로 삼았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메시지와 방법이 세속화된 현대인에게 무의미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 과제를 이성과 경험 또는 세상에 근거하여 이룩하려 했다.

  그러므로 신학의 근본적인 자료인 성경이나 전통에 권위를 두지 않고 오히려 이들을 도외시하거나 부정하고, 이 성과 경험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갔다.

  급진신학은 특히 신관을 문제시했다. 하나님을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분으로 믿는 전통적인 신관이 현대인에게 무의미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세속화신학과 과정신학은 동일한 문제의식으로 부터 출발했으나 도달한 결론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세 속화신학과 신의 죽음의 신학은 무신론을 도입하여 하나님 자체를 부정하고 단지 인간 예수에 근거한 기독교를 형성하려고 했다. 따라서 기독교를 하나님 없이 해석하여 하나님 없는 그리스도를 주장했다.

  반면에 과정신학은 내재적인 하나님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고 전통적인 신론의 문제점을 해결하려 했다. 즉 존재의 형이상학에 근거한 전통적인 유신론을 생성과 과정의 형이상학에 근거한 새유신론으로 대체했으나 그리스도 없는 하나님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현대 미국의 급진신학은 한국의 신학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세속화신학과 신의 죽음의 신학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주로 기독교사상 지를 통해 소개되어 크게 유행했다.

  신의 죽음의 신학은 그 과격성 때문에 단지 비판적으로 소개되었을 뿐이며, 그것을 공개적으로 변호하거나 수용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속화신학은 당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기독학생운동 지도자들에 의 해 환영을 받았으며, 그들의 사회참여 주장의 신학적인 근거가 되었다.

  또한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 와콕스의 세속도시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유례 없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주로 기독교 장로교회에 속한 신학자들이 세속화신학을 이론적으로 전개했으며, 그 대표자가 서남동 교수였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의 논문 현재적 그리스도 (연세논총, 1967)에서 오늘에 현존하는 세속적 그리스도를 논했다. 세계 신학계에 한국 특유의 신학으로 소개되고 있는 민중신학은 토착화된 세속화신학 이라고 평할 수 있다. 이것은 1970년대에 태동되어 80년대에 들어와 체계화되고 있는 것으로 서남동, 안병무, 현영학 교수 등이 이 신학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 과정신학은 현재 소개되고 있는 단계에 있다. 최근에 와서야 과정신학과 관련된2권의 논문집이 출판되었다.

  과정철학과 과정신학 (1988)과 종교다원주의와 신학의 미래 (1989)가 그것이다.

  전자는 과정사상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의 연구 논문집인 동시에 과정신학에 대한 한국어로된 최초의 입문서이다.

  후자는 변선환 교수와 그의 동료 교수 및 제자들이 종교신학을 주제로 하여 쓴 그의 회갑기념 논문집이다.

  변 교수는 그의 종교의 다원화 주장의 한 근거로 죤 콥이나 슈베르트 오그덴과 같은 과정신학자의 기독론을 도입하고 있다.

  한국의 급진신학은 세속화신학에 뿌리를 둔 민중신학과 과정신학 또는 종교신학을 두축으로 하여 진보적인 신학자들에 의해 더욱 전개되리라 예상되는 동시에,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을 대변하는 보수적인 신학자들에 의한 비판 역시 본격화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