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칼빈의 예정론(클로스터)

 

목창균

 

칼빈하면 예정론이 연상되고, 예정론하면 칼빈이 연상될 만큼 칼빈과 예정론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칼빈주의 내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교리 가운데 하나가 예정론이다. 이 문제로 그단적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이가 대립하게 되었으며, 수정 칼빈주의 또는 온건 칼빈주의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권에서는 예정론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칼빈에 대한 최근의 새로운 관심에 부응하여 그 동안 등한시되었던 그의 예정론에 대한 소박한 이해를 시도한 것이 클로스터(Fredd H. Klooster)의 [칼빈의 예정론]이다.  미국 칼빈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인 그는 이 책에서 제2차 자료가 아닌, 칼빈 자신의 저서들, 특히 [기독교 강요]에 근거하여 예정에 관한 칼빈의 견해를 제시했다.
    이 책은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클로스터는 서론 격인 제1장에서 칼빈의 예정 교리의 일반적 특징을 개관한 후, 제2장과 3장에서 그 교리의 핵심인 이중예정, 즉 선택과 유기 문제를 상술했다. 칼빈은 예정을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각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으로 정의했다. 칼빈에 따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일한 상태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그의 영원 불변한 계획 속에서 어떤 이는 구원하기로 선택한 반면, 또 다른 이는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셨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운명을 이중으로 예정하셨다. 선택과 유기가 그것이다.  선택과 유기는 자신의 영원 불변한 작정에 근거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다.
    제2장은 하나님의 주권과 무상 선택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칼빈에 있어 선택은 개별적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적 사역이다.  이것은 아담의 타락이나 천지 창조 이전에 이루어졌다. 클로스터는 타락 전 예정설, 즉 전택설(Supralapsarianism)이 칼빈 자신의 견해임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칼빈에 있어 선택은 자비로운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기인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선행도 그것에 대한 예지도 선택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며, 인간에게는 멸망할 요소밖에 없기 때문이다.  선택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  그의 주관적 의지, 그의 기뻐하시는 뜻이 그것이다. 칼빈은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무상의 자비에 의해 선택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편, 하나님은 두 가지 목적, 즉 궁극적 목적과 직접적 목적을 위해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이 궁극적 목적인 반면, 우리의 성화가 직접적 목적이다.
    제3장은 하나님의 주권과 유기의 정당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칼빈은 유기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주권과 그 정당성을 강조했다.  칼빈에게 있어 유기는 개별적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주권적 작정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 불변한 계획에 의해 어떤 이를 멸망되도록 결정하셨다. 이것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기인된 것이다. 인간의 죄도 그것에 대한 예지도 유기의 원인이 되지 못한다. 유기의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 즉 기뻐하시는 뜻 안에 있다.
    칼빈의 예정론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는 것이 죄의 책임 문제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원인이라면, 죄의 창시자가 아니가 하는 것이다. 클로스터에 따르면, 칼빈은 하나님이 아담의 타락을 의도하셨다는 것은 인정했으나, 죄의 창시자라는 것은 부정했다.  칼빈은 유기의 원인을 긍극적 원인과 직접적 원인으로 구별했다.  하나님의 주권적 뜻이 긍극적 원인인 반면, 인간의 죄는 직접적 원인이다.  칼빈은 유기 행위의 직접적 원인을 하나님으로부터 제거함으로써, 모든 책임을 인간에게 돌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의 창시자가 되지 않고, 어떻게 작정에 의해 인간의 미래를 결정했는가 하는 문제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신비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자신은 그 문제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고백했다.
    선택과 유기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양자의 원인과 목적은 동일하다.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뜻이 양자 모두의 궁극적 원인인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 목적이다. 한편 선택은 하나님의 무상의 자비를 나타내는 반면, 유기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나타내는 것이 양자의 차이점이다.
    클로스터에 따르면, 전술한 칼빈의 예정교리의 기본 구조는 바울 서신, 특히 로마서 9장과 에베소서 1장에 근거했다. 칼빈이 이 교리를 주장했던 것은 그 유용성 때문이었다.  그것은 세 가지 ‘감미로운 열매’를 가지고 있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무상의 자비를 믿게 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것, 그리고 겸비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감미로운 열매가 기대되기 때문에, 칼빈은 이 교리가 유용하다고 믿었다.
    클로스터는 이 예정교리가 칼빈의 신학체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부정했다. 칼빈이 예정교리의 창안자도 아니며, 이것이 칼빈신학의 중심교리나 [기독교 강요]의 중심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클로스터의 주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흔히 칼빈 신학의 핵심을 예정론으로 보는 견해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어떤 새로운 사실이나 독창적 해석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예정에 대한 칼빈 자신의 견해를 알기 쉽게 요약한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중복이 심하고, 예정 문제를 단순하게 취급한 감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결론에서 저자는 예정교리가 인기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전망했으나, 사람들이 성경 전체 교훈에 순복하지 않는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았다. 이것은 이중 예정교리가 성경적이라고 믿는 데서 나온 소박한 결론이다.  그러나 실제로 기독교 내에서 칼빈의 예정론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성경에 순복하지 않거나 성경을 천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예정교리가 성경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정론은 신적인 작정을 인간 구원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간주함으로써 구속사에 있어 그리스도의 중요성과 의미를 약화시키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성경의 핵심 교리를 무효화할 우려가 있다.  믿음에 의한 구원의 교리는 예수님 자신에 의해 명시되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이것이 복음의 진수다.
    또한 클로스터는 칼빈이 예정론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칼빈은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를 수호하기 위해, 그리고 교회와 인간의 선행과 공로에 의해 구원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견해에 대항하기 위해 예정론을 주장했다. 칼빈의 예정론 형성에는 성경뿐만 아니라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칼빈의 예정론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두 측면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예정론의 또 다른 취약점은 죄에 대한 책임 문제다.  타락 전 예정설(전택설)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든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원인이라면, 하나님은 곧 죄의 창시자가 아니냐는 것이다.  클로스터는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는 있었으나, 이것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고,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듯한 주장을 했다. 즉 유기의 원인을 다룰 때는, 그것이 인간의 죄나 죄에 대한 예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근거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반면, 죄에 대한 책임 문제를 논할 때는 유기의 원인을 긍극적 원인과 직접적 원인으로 구분하여 하나님의 주권적 뜻은 단지 궁극적 원인이고, 인간의 죄가 직접적 원인이라고 했다.  이 두 주장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다. 이것은 예정교리가 하나님을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그리고 실제적 범죄자로 만든다는 결론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적 모순에 대한 책임은 클로스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칼빈에게 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죄의 창시자가 되지 않고 어떻게 인간의 운명을 작정하셨는가 하는 문제는 신비에 속하는 것으로 자신은 그것에 대해 무지하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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