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렉스톤과 왓슨의 재림론 비교 연구

목창균

서 론

한국 성결교회는 1907년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사중복음으로 믿는 신앙의 토대 위에 요한 웨슬레의 성서적 성결를 전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사중복음은 성결교회의 정체성이다. 특히 성결교회는 재림론에 관한 역사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재림을 강조한 것이 1943년 일제에 의해 성결교회가 해산당한 요인 중 하나였다. 또한 한국 성결교회 창립자 김상준의 [묵시록강의](1918)는 한국 최초의 요한 계시록 주해서였다. 그 이외에도, 이명직의 [그리스도의 내림](1939), 김응조의 [말세와 예수의 재림](1953) 등을 통해 성결교회는 한국 교회의 재림신앙과 그 이해에 크게 공헌했다.

한국 성결교회의 재림론은 전천년설과 환란전 휴거설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미래주의적 전천년설, 즉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동일하다. 성결교회의 재림론은 동양선교회 창립자 카우만과 길보른을 통해 세대주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김상준, 이명직을 비롯, 한국 성결교회 초기 지도자들도 세대주의자나 세대주의 저서를 통해 그 영향을 받았다. 블렉스톤과 죠지 왓슨의 영향이 그것이다.

블렉스톤의 저서 [예수의 재림]은 1878년 초판이 출판된 이래 1916년까지 25개 언어로 386,000부 이상 발행된 베스트 셀러였다. 카우만과 길보른은 그것을 [동양선교회]의 종말론 이해의 표준으로 삼았다. 특히 카우만은 블렉스톤과 개인적 친교를 가졌을뿐 아니라 동양선교를 위해 그의 재정적 후원을 받기도 했다. 그는 블렉스톤이 전천년설과 웨슬레적 성결을 결합시킨 것에 공감했다. 따라서 카우만은 블렉스톤의 저서를 [동양선교회] 산하 성서학원의 재림론 교과서로 채택했다. [동경성서학원]의 경우, 나카다주지는 그것을 그의 재림론강의에 사용했다.

김상준, 이명직을 비롯, 한국 성결교회 초기 지도자들은 [동경성서학원] 수학을 통해 블렉스톤의 재림론과 세대주의 교리에 접하게 되었다. 이것은 김상준과 이명직에 의해 확인된다. 김상준은 [사중교리]에서 블렉스톤의 저서를 인용했으며, 이명직은 장창덕의 [휴거론] 서문에서 재림학의 태두 블렉스톤, 모리슨, 왓슨 등의 학설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한편, 왓슨은 미국 남부출신의 성결운동가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주의자였다. 한국 성결교회가 왓슨의 재림론에 영향을 받게된 것은 그의 설교와 저술을 통해서였다. 1914년 그는 카우만의 인도로 한국을 직접 방문했으며 성결교회 제1회 수양회 개회예배 설교를 했다. 왓슨의 전기에 따르면, 그의 일본과 한국 방문 목적은 젊은 목회자들에게 설교하는것이었다. ''카우만의 부인은 그의 설교와 성경강의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그같은 것을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의 저서 [백의] (White Robes)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성결교 기관지 [활천]에 연재되었다. 한편, 김상준은 [묵시록강의] 서문에서 그가 왓슨에 힘입고 있음을 밝힌바 있다. "동 서양의 영적 대가, 곧 미국의 사이스와 왓슨 두 박사와 일본의 사사오 떼쯔 사부로우의 해설을 고루 채택하여... 설명하오니" 또한 이미 지적한대로, 이명직 역시 블렉스톤과 더불어 왓슨의 재림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블렉스톤과 왓슨의 재림론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 연구는 성결교회 재림론의 배경이 되는 블렉스톤과 왓슨의 재림론을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I. 세대주의 동향

세대주의는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영역에서 초교파적으로 확산된 성경해석 운동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세계통치에는 현저하게 다른 세대가 있다는 신념에 근거한 일종의 성경해석 체계로 정의된다.

현대 세대주의는 19세기 후반 다비와 그가 지도자로 있던 프리모드운동에 의해 시작되었다. 다비는 문자적이며 미래주의적 예언해석에 근거하여 이스라엘과 교회의 철저한 구분, 전천년기적 재림, 환란전 휴거, 유대적 천년왕국 등의 신학개념을 제시했다. 다비의 신학체계를 세대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인류역사를 여러 세대로 나누고 하나님의 활동양태가 각 세대마다 다르다고 보았던데서 비롯되었다.

세대주의는 1860년대에 미국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다비는 7회에 걸쳐 미국을 방문하여 신학체계를 가르쳤으며, 그의 성서예언 해석방법은 미국 교회, 특히 칼빈주의 배경을 지닌 목사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다. 세대주의는 1870 - 80년대에 성경대회와 예언대회 운동을 통해 지지기반을 확보했으며, 문서출판, 대중매체 활용, 성서학원 설립 등을 통해 미국 전역에 널리확산되었다. 특히 그것은 블렉스톤의 [예수의재림]에 의해 대중화되고 브룩스와 스코필드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1909년에 출판된 스코필드 관주성경은 세대주의개념형성과 전파에 크게 공헌했다. 미국에서 세대주의가 큰 호응을 얻은 것은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을 통해서였다. 미국의 전천년주의자 대다수는 세대주의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대주의는 20세기 중반 후천년설을 압도하고 미국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가장 일반적인 종말론이 되었다.

세대주의의 가장 본질적 교리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엄격히 구분하는 교회론과 전천년주의적 종말론이다. 이스라엘은 항상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손을 의미하는 반면, 교회는 영적 이스라엘이나 새 이스라엘이 아니며, 천년왕국 실현이 중단된 사이에 나타난 막간극과 같다. 이 둘은 병행하면서도 별도의 운명을 지닌다. 대 환란과 천년왕국은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에 관련된 것이며, 교회는 대환란이 시작되기 직전 공중으로 휴거되어 재림의 그리스도를 맞이한다.

미국에서 발전한 세대주의는 교회관에 따라 고전적 세대주의, 수정 세대주의, 점진적 세대주의로 나뉜다. 고전적 세대주의는 19세기 초 프리머드 형제단 운동으로 부터 1948년 루이스 채퍼(Lewis S. Chafer)의 [조직신학] 출판까지 영국과 미국의 세대주의를 말하며, 다비와 스코필드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고전적 세대주의의 중심 전제는 두 목적과 두 백성에 대한 교리다. 성경은 인류의 구원과 관련해 두 다른 하나님의 목적을 계시한다. 그것이 천상적 목적과 지상적 목적이다. 전자는 하나님이 천상의 백성으로 인류의 일부를구원하는 것이며, 후자는 지상적 백성으로 인류의 다른 부분을 구원하는 것이다. 이 전제로부터 이스라엘과 교회의 분명한 구분, 유대인의 본문과 교회의 본문으로 나누는 성경의 구획화, 천년왕국의 유대화의 개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 두 목적과 두 백성 교리는 신약성서해석에 많은 문제를 노출시켰다. 그것은 신약성서의 구약성서 인용을 적절히 설명할 수 없었으며, 교회와 천국의 분리로 산상수훈을 교회와 무관한 것으로 간주했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고전 세대주의의 문제점을 교정하려는 움직임이 일단의 학자들로부터 일어나 1970년대에 이르기 까지 세대주의를 지배했다. 그것이 수정 세대주의다. 왈브우드(John F. Walvoord), 라일리(Charles C. Ryrie), 펜트코스트(J. D. Pentecost)등이 이를 대변했으며, 이들로부터 [스코필드관주성경]개정판이 1967년에 출판되었다. 수정 세대주의는 두 목적 교리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으나 논란이 되는 요소들을 삭제하거나 개정했다. 교회와 이스라엘, 천상적 구원과 지상적 구원을 평행적인 것으로 보는 고전적 입장을 포기하고 영원한 구원의 본질을 하나로 통일시켰다. 따라서 교회 역시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계획의 일부로 보았으며, 이스라엘과 교회의구별을 동일한 본질의 구원받은 인류의 두 형태로 해석했다.

점진적(progressive) 세대주의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일어난 것으로, 수정 세대주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두 목적과 두백성 교리를 포기한것이다. 따라서 교회를 이스라엘과 병행하는 구원받은자의 별개의 집단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경이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통전적(holistic)구원계획을 계시한다고 믿는다. 이 통전적 구원은 구약성서의 축복약속, 신약성서의 복음선포, 그리스도의 재림소망에서 점진적으로 계시되었으며, 성서역사를 통해 부분적, 점진적으로 실현되었고 그리스도의재림과 마지막 부활이 이루어질 때,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점진적 세대주의란 명칭은 이러한 점진적 계시와 성취의 개념으로부터 유래되었다.

II. 블렉스톤의 재림론

윌리암 블렉스톤(William Eugene Blackstone)은 감리교 출신의 저명한 세대주의자였다.

그는 1842년 뉴욕주 아담스의 감리교 가정에서 태어나, 10살 때 교회 부흥회에서 회심을 체험했다. 그는 보수적 신앙의 소유자였으나, 감리교회가 현대주의화되었음에도 평생 감리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블렉스톤은 평신도 전도자요 부흥사였다. 그는 신학교에서 공식적인 목사훈련 과정은 물론, 대학교육을 받은바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평신도 성경교사, 설교자, 주일학교 교장으로 봉사했으며, 많은 책을 저술하거나 편집하여 출판했다.

블렉스톤은 사업가였다. 그는 일리노이스주에서 보험업을 비롯, 사업에 종사하여 성공했다. 또한 장인으로 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아 전도와 선교활동 기금으로 운용했다.

블렉스톤이 전천년주의와 세대주의적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시카고에서 사업가로 활동할 때였다. 그는 무디, 브룩스와 같은 미국 세대주의 주요 지도자들과 교제하게 되었고그 자신 세대주의 신앙의 전도사가 되었다. 1878년 사업활동을 그만두고 복음전파에 전적으로 헌신하게 되었다.

블렉스톤은 그리스도의 재림 임박을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문서출판이 필요하다고 느껴 동료 세대주의자들에게 그것을 요청했으나, 그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따라서 그 자신 그것을 저술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두 권의 팜프렛을 저술했으며, 1878년 그들을 합본하여 [예수의 재림](Jesus is Coming)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것은 두번에 걸처 개정, 증보되었으며, 42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수십만권이상 보급되었다. [예수의 재림]은 미국에서 세대주의 교훈에 관한 가장 인기 있는 책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세대주의 체계를 대중화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또한 톨레이, 채프만, 피어슨, 그레이, 어드만, 무어헤드 등, 많은 저명 전천년주의자들에 의해 그 권위가 인정되었다.

블렉스톤의 [예수의 재림]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독창적 해석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미국 세대주의 운동의 일반적 개념과 메시지를 알기 쉽게 요약한 것이다. 그는 다비의 사상체계를 대부분 수용했으며, 그의 입장은 친구 스코필드와 비슷했다. 그의 독창적 개념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특별한 역할과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예수의 재림]을 중심으로 블렉스톤의 재림론을 살펴보자.

블렉스톤은 문자적 성서해석을 지지한 반면, 성서에 대한 영적해석을 비판했다. 그는 성경에 상징, 비유, 은유, 우의 등이 사용되었다는것을 인정했으나, 본문에서 그것이 비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밝히지 않는한, 문자적 의미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성서예언은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는 구약성서 예언이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성취되었다는것을 문자적 성서해석의 근거로 간주했다.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미5:2), 동정녀를 통해 탄생한 것(사7:14), 예루살렘 입성(스9:9), 친구에 의한 배신(시41:9; 55:12-14), 은 30개로 팔린 것(스11:12), 손과 발에 못이 박힌것(시22: ) 등과 같은 수난의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그리스도 초림시 문자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블스톤은 그리스도의 재림(살전4:16), 신자의 공중휴거(살전4:17), 지상재림(행1:11), 지상통치(단7:13-14, 계2:27) 등과 같은 영광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 역시 그의 재림을 통해 문자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다. 그는 성경의 어떤 예언도 상징적으로나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했다.

블렉스톤은 하나님의 세계통치에는 현저히 다른 7세대가 있다고 믿었다. 무죄, 자유,정부, 순례, 이스라엘, 교회, 천년왕국 세대가 그것이다. 무죄세대는 에덴부터 아담추방까지, 자유세대는 추방부터 노아 홍수까지, 정부세대는 홍수부터 소돔까지로 구획된다. 순례세대는 소돔부터 홍해 까지, 이스라엘 세대는 홍해부터 그리스도 승천까지, 신비및 교회세대는 오순절 성령강림부터 성도의 휴거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년왕국시대가 뒤따른다.

블렉스톤은 미래주의적 전천년설을 지지했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일어날 사건들의 순서를 요약한 도표에서도 분명하다. 또한 그는 7장에서 전천년설의 성서적 증거로 적 그리스도의 멸망(살후2:8), 대환란 직후 그리스도의 재림(마24:29-31), 그리스도의 문자적 지상통치(사32:1, 례23:1-6, 마19:28, 계5:10), 그리스도, 신자 및 악인으로 이어지는 부활의순서(고전15:22-26, 살전4:13-17, 계20:4-14) 등을 제시한 반면, 전천년설에 대한 반대 이론을 논박했다. 특히 그는 천년왕국이 요한 계시록 20장이외, 성서 어디에서도 교훈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천년설을 반대하는 것을 사려 깊은 견해로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요한 계시록이 쓰여지기 오래 전에 유대인들은 천년왕국 교리를 구약성서의 교훈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메시야 왕국이 1000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은 탈무드에서 가장 자주 표현된 견해였다."

블렉스톤은 휴거와 현현, 교회와 천년왕국의 구별을 그리스도의 재림 이해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휴거와 현현, 두 단계로 구분했다. 휴거(rapture)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하늘로 들려올라가는것을, 현현(revela-tion)은 그리스도가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 나타나시는 것을 의미한다. 휴거는 그리스도가 성도들을 위해 공중에 재림하는것을 말하며, 현현은 그리스도가 성도들과 함께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 지상에 재림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 단계로 보았다.

블렉스톤은 그리스도 재림의 임박성을 주장했다. 역사주의적 전천년설은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고 재림 전에 시대의 징조들이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반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임박한 재림을 믿으며, 시대의 징조들은 재림의 첫 단계, 즉 휴거 이후에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블렉스톤은 후자의 입장을 취했다.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교회의 휴거는 어떤 경고적인 징조 없이 어느 순간에나 일어날 수 있는 반면, 지상재림은 모든 민족에게 대한 복음전파, 이스라엘의 회집,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같은 예언된 사건들이 실현된 후 일어난다. 블렉스톤은 종말의 일반적인 징조들이 오늘날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았다. 여행과 지식의 증가(단12:4), 고통하는 때(딤후3:1), 강신술(딤전4:1), 배교(딤후2:3), 세계적 복음전파(마24:14), 부의 축적(야5:1,8), 이스라엘의 회복(례30:11)이 그것이다.

블렉스톤은 교회와 천년왕국을 구별했다. 천년왕국은 예수의 초림을 통해 그 실현이 임박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까닭에 실현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로 관심을 돌려 그의 백성으로 삼았다. 그것이 교회요, 그리스도의 신비스런 몸이다. 교회는 오순절(행2: )에 시작되어 대환란 직전, 휴거에서 끝난다. 그것은 구약성서 예언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반면, 천년왕국은 대환란 끝, 그리스도의 지상강림, 곧 현현과 더불어 시작된다.

블렉스톤은 환란 전 휴거설 변호했다. 대환란은 휴거와 현현 또는 교회와 천년왕국 사이의 기간을 말한다. 그것은 다니엘의 70 이레 중 마지막 한 이레에 해당한다. 대 환란은이스라엘과 불신자에 대한 것이며, 천년왕국의 준비작업이 그 목적이다. 교회는 지상으로 부터 휴거되어 공중에서 예수를 만나 대환난이 끝날 때 까지 체류한다. 반면, 이스라엘은 "야곱의 환란 날"로 알려진 혼란기를 겪는다. 블렉스톤은 에녹과 노아의 유비에 의해 교회와 이스라엘의 대환란 통과문제를 다뤘다. 에녹이 대홍수 전에 휴거한 것같이 교회는 환란 전에 휴거하는 반면, 노아가 대홍수를 통과한 것 같이 이스라엘은 대환란을 통과한다. 이스라엘의 남은자 중 어떤이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증인이 되며 적 그리스도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들이 대환란기의 성도들이며, 그리스도의 지상강림시 부활한다. 블렉스톤은 대환란을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7년 보다는 긴기간으로 보았다.

블렉스톤은 교회와 이스라엘을 분명히 구별했다. 그는 교회와 이스라엘을 혼동하는 것은 바울의 논증에 대한 오해로부터 일어나는 매우 큰 오류로 취급했다. 바울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9:6)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과 교회를 혼동하지 않았으며, 믿음으로 우리를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롬4:16) 고 했을 때, 교회를 이스라엘과 혼동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10:32에서 바울은 유대인, 이방인 및 하나님의 교회를 구별했다.

한편, 천년왕국 교리는 세대주의 전체 체계와 성서해석의 필수요소며, 천년왕국을 강조하는 것이 세대주의 종말론의 특징이다. 블렉스톤은 천년왕국을 미래에 그리스도가 성도들과 함께 1000년간 지상을 통치할 의의 통치시대로 정의하고, 그 성서적 근거를 창세기의 안식일 제도와 요한 계시록 20장에서 찾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6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신 것 같이 (창2 :2 ), 노동과수고의 6천년이 지난 뒤, 안식의 1천년이 온다고 보았다. ''천년왕국론의 뿌리는 창세기의 안식일에 있으며, 그 열매는계시록의 천년왕국에 있다.''

블렉스톤은 천년왕국을 유대적 왕국으로 이해했다. 천년왕국은 단순히 천년에 걸친 그리스도의 지상통치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성취와 이스라엘민족의 회복에 그 목적이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민족이 다윗 자손, 즉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팔레스틴 땅에 거할 때, 문자적으로 실현된다. 따라서 천년왕국은 유대 왕국의 회복을 의미한다. 이는 블랙스톤이 유대교적 천년왕국론과 기독교의 천년왕국론의 공통점을 지적한 것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양자 모두 천년왕국을 유대인들이 모든 적들로 부터 구원되고, 팔레스틴 땅으로 회복되며, 메시야가 통치하는 것으로 보았다. 블렉스톤은 [예수의 재림] 15장에서 성서적 근거들을 제시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강조했다. 그는 시온주의운동을 적극 지지했으며 유대인 선교에 열성적이었다. 그는 그것을 말세에 대한 하나님의계획 성취의 도구로 간주했다.

블렉스톤은 미국이 말세에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영토회복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토대준비에 참여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미국이 하나님이 진노와 파멸적 전쟁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블렉스톤은 그의 종말론 구조에서 특별한 역할을 미국에 배정함으로써 전천년설에 그의 애국심을 결합시켰다.

III. 왓슨의 재림론

죠지 왓슨(George Watson)은 1845년 버지니아의 감리교 집안 6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1863년 남부의 병사로 남북 전쟁에 참전한 동안 군목의 영향으로 회심했다. 전후 뉴 햄프셔주 콘코드에 있는 [감리교 성서학원]에 입학하여 1년 동안 성서원어를 비롯 신학교육을 받았다.

1868년 감리교 필라델피아 연회에 가입했으며, 1870년 전국 캠프집회에 참여했다. 1876년 12월 14일 성결집회에 참석하여 성령세례, 곧 온전한 성화의 은혜를 체험했다. 이 때부터 목회방식이 달라졌으며, 교회목회직을 사임하고, 성결운동 전담 부흥사가 되었다. 1896년 웨슬레 감리교회에 가입했으며, 그 때부터 후천년설을 포기하고 전천년설을 받아들였다. 1924년 사망하기 까지 성결운동의 대표적 복음전도자로, [성결지침], [보좌에 이르는 단계], [흰옷], [하나님의 독수리] 등 많은 책을 쓴 저술가로 활동했다.

왓슨은 세대개념을 사용하여 인류역사를 구분했다. 1896년 전천주의자가 되기 전에는

성부, 성자, 성령시대, 3세대설을, 그 후에는 양심, 율법, 교회, 천년왕국시대, 4세대설을 주장했다. 양심시대는 아담부터 노아 홍수까지 지속되었으며, 율법, 교회, 쓰여진 계시가 존재하지 않았고, 인류는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시대다. 율법시대는 아브라함의 소명부터 예수의 십자가 죽음까지 지속되었으며, 모세시대 또는 유대인의 시대로 불리기도 한다. 이 시대에 인류는 양심과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교회시대는 복음시대로도 불리며,오순절 성령강림부터 성도의 휴거까지 지속된다. 하나님은 양심, 율법,성령을 통해 인류에게 말씀하신다. 천년왕국 또는 왕국시대는 대 환란 직후 그리스도가 성도들과 함께 재림할 때부터 시작되어 천년동안 지속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지상통치시대다. 이 시대 마지막에 속박되었던 사단이 일시 풀려나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적하나 하늘로부터 쏟아진 불에 의해 그 세력이 섬멸된다. 그 후 하나님은 신천신지로 알려진 새 시대를 시작한다.

왓슨은 문자적 해석과유형론적 해석을 선호했다. 모든 성서 본문은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적 또는 영적 의미와 외적 또는 미래적 의미다. 왓슨의 강조점은 1896년을 깃점으로 바뀌었다. 후천년주의자였던 왓슨은 전자를 강조하여 요한 계시록을 신자의 현재적 삶에 적용했던 반면, 그 후 전천년주의자가 된 왓슨은 후자를 강조하여 요한 계시록을 신자의미래적 삶에 적용했다. 왓슨은 [보좌에 이르는계단](Steps to the Throne) 서언에서 자신의 해석학적 전환을 인정했다.

왓슨은 요한계시록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영적해석은 본문의 의미를 왜곡하고 기독교 신앙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했다. 한편 그는 문자적 해석과 더불어 유형론적 해석을 강조했다. 그의 저서의 특징은 유형론(typology)의 사용이다. 특히 그는 요한 계시록은 신호와 암호로 쓰여졌으며, 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계시록 이해의 비밀 열쇠라고 주장했다. 예를 든다면, 별들은 사역자를, 촛대는 개개의 교인을, 하늘은 하나님의 나라를, 여인은 교회를, 태양은 왕이나 왕국을, 달은 여왕을, 새는 귀신과 악령을, 물은 인류의 영혼을 나타낸다. 계시록 2-3장에 기록된 아시아 7교회는 사도시대부터그리스도의 재림까지 모든 시대의 교회 유형이다. 에베소교회는 1세기, 서머나교회는 2-3세기, 버거모교회는 4-5세기, 두아디라교회는 6-12세기, 사데교회는 13-15세기,빌라델피아교회는 종교개혁시대 그리고 라오디기아교회는 모든 개신교 시대의 유형이다. 왓슨은 유형론을 통해 성결과 전천년설의 근거를 제시했다.

왓슨은 1896년 자신의 종말론적 관점을 후천년주의로부터 전천년주의로 바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변화는 어떤 특정인이나 저서의 영향이 아닌 기도와 성령역사의 결과였다.

나의 생애 24년 또는 30년 동안, 나는 옛 로마 가톨릭교회의 개념, 즉 예수의 재림은 천년왕국 이후, 그리고 대 심판 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개신교 대부분이 수용한 것이다. 그 후 몇년 동안 그 문제에 대한 나의 입장이 흔들렸다. 왜냐하면 그 이론과 부조화되는 성서의 많은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1896년 초 나는 그 문제에 대한 성서적 해답을 명확히 제시해달라고 성령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2, 3주 내에 성령은 놀라운 방법으로 계시록, 예수의 비유 그리고 예수의 전천년기적 재림에 관한 다른 성경구절들을 나의 마음 속에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후부터 왓슨은 그리스도의 전천년기적 재림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그의 저술과 설교를 통해 표현되었다. 그의 생애 마지막 글이 천년왕국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후천년설을 비성서적인 것으로 취급했으며, 전천년설의 성서적 근거를 50개 이상 제시했다. 특히 그는 전천년설을 입증하기 위해 유형론을 사용했다. 예를들어, 사울왕 통치는 율법의 모형이요, 다윗의 통치는 교회시대 그리스도의 유형이요, 솔로몬의 통치는 천년왕국 시대 그리스도의 통치유형이다.

왓슨은 환란전 휴거설을 지지했다. 헬라어 파루시아(parousia)는 휴거를 의미하는 반면, 아포카리프시스(apocalypsis)는 대환란 후 그리스도의 공개적 지상강림을 의미한다. 성도들이 휴거되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동안, 지상에는 큰 고통의 기간이 지속된다. 그는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을 휴거의 모형으로 해석했다. 그들 모두 심판 직전에 일어난 변화라는 면에서, 대환란의 심판 직전에 준비된 성도의 변화의 표본이다.

왓슨은 대환란이 약 40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았다. 하루를 일년으로 간주하는 예언해석법에 따라 다니엘서 12장에 제시된 시간을 계산하고 새 시대의 개막에서 예루살렘의 수욕 년수를 감하면, 35 - 40년의 기간이 대환란기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노아홍수전 40일간의 강우, 모세의 40일간의 산상체류, 예수 부활후 40일간의 지상체류와 같은 성서의 여러 유헝론적 사건들은 대환란의 기간이 40년임을 시사한다. 40이란 숫자는 항상 시험기간을 의미한다.

결 론

블렉스톤과 왓슨은 몇가지 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공통점은 몇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블렉스톤과 왓슨은 세대주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 웨슬레안주의자였다. 그들은 인류역사를 여러 세대로 구분하는 세대개념을 수용했다. 대부분의 감리교나 성결운동 지도자들이 세대주의에 부정적이었던데 비해, 그들은 세대주의적 재림론을 받아들였으며, 전전천년설을 주장했다.

둘째, 블렉스톤과 왓슨은 말세에 일어날 사건들의 순서에 대해 동일한 관점을가졌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문자적 해석에 근거하여 예수의 공중재림과 성도의 휴거, 대환란,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대 심판, 신천신지의 순서로 말세사건을 배열했다.

한편, 블렉스톤은 전형적인 세대주의자였던 반면, 왓슨은 세대주의자로 자처한바 없으며, 세대주의 영향을 언급한바 없다. 또한 그들의 재림론은 구조에서는 동일했으나, 그세부에서는 차이점이 없지 않았다.

첫째, 세대의 수와 구분이 달랐다. 블렉스톤은 세대주의의 전형적인 7세대설을 주방한 반면, 왓슨은 4세대설을 주장했다.

둘째, 성서예언해석방법에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 블렉스톤은 문자적 해석을 지지하고 영적해석을 비판했다. 반면, 왓슨은 문자적 해석과 유형론적 해석을 강조했으나 영적해석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셋째, 휴거와 대환란의 기간에 대한 견해가 달랐다. 블렉스톤은 대환란을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7년 보다는 긴기간으로 보았던데 비해, 왓슨은 40년설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