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전통에서 본 저항권의 의미
(Widerstandsrecht in gegenwaertigen Diskussion)

위르겐 몰트만, 김원배 번역


기장신학연구소, 총회교육원이 초청 강연(2000.5.19)

 

1. 3가지 도전들

나는 이번 강연 초청을 한국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서남동 목사를 비롯한 많은 한국의 동역자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뜻으로 선뜻 대답, 응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제가 70년대 후반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민주주의의 죽음을 상징하는 십자가 마스크를 하고 저항투쟁에 참여하였던 일군(一群)의 여성들을 기억하면서 강연의 문을 엽니다.

나는 정치적 영역에서 수동적이고 적극적인 저항에 대한 토론을 3가지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경험하였다. 나는 스스로 3번에 걸쳐 “저항권과 저항 의무”에 대한 공개적인 논쟁에 연루되어 나 자신의 결정들을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첫 번째 계기는 전후에 있었던 ‘1944년 7월 20일의 남자들’에 대한 정당성과 부당성 논쟁이었다. 스타우펜베르그의 히틀러 암살 음모가 비록 실패로 돌아갔을지라도 그들은 인간을 경시하는 독일 독재자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을 해야하는 도덕적 정당성, 양심적인 의무를 가진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이 정당성과 이를 위한 의무를 가졌다고 한다면 자의반 타의반 비참한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의무를 행하는 수백만 독일 군인들은 부당성에 놓여진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이 제기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1948년, 괴팅엔대학에서 열띤 정도가 아니라 분노에 가깝게 마틴 니묄러 목사와 논쟁을 벌이던 노장교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당시 전쟁 포로에서 막 돌아왔었다. 1952년 하노버 베르그그라브에서 노르웨이 감독, 불란서 목사 조지 카잘리스와 홀란드 대원들로부터 우리는 주둔군과 주둔군이 세운 꼭두각시 정부에 대한 저항은 그리스도인 시민들의 당연한 의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민족 안에서와 자기 나라 독재자에 대한 저항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더 많은 희생과 소외를 요구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독재 가운데 사는 사람은 조국도 없는 것일까? 저 전후에 행해졌던 토론 가운데서는 본회퍼 목사의 암살 음모에서 분명히 나타났던 것과 같이 적극적인 저항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두 번째 계기는 1990년, 세계 교회 협의회가 전개했던 인종차별 반대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인종차별 정책을 펴는 남아공 정부의 전복과 제도화된 인종차별의 다른 형식뿐만 아니라 1969년 켄터베리 결정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힘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 경제, 정치적 힘을 힘없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힘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부정의한 힘의 관계에 대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인 변화를 위한 비폭력적이고 폭력적인 방법들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되었지만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는 우리가 아프리카의 해방전선과 게릴라 운동을 헌금을 가지고 지원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으로 집약되었다. 보수적인 독일 신문은 “교회 헌금은 게릴라들의 기관총을 위해 사용될 수 없다”는 1970년 아놀드스 라인 결정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독일 개신 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의 목적과 일치하는 비폭력적인 사업만을 지원하도록 강요받았다.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독일 개신 교회는 역탄압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비폭력을 설교하였고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평화의무로서의 국방의무를 강조하였다(1969년에 발표한 ‘그리스도인들의 평화 봉사’ 문서 참조). 히틀러의 인간말살행위에 침묵하고 동의했던 데 대한 양심가책이 이 문제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인도적인 도움에 합의했고 이 기금이 어떻게 어디에 쓰여지는 것도 수혜자들에게 위임되었다. 이로써 해방전선의 군사력이 물론 간접적으로 강화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억압받는 자들의 저항권과 저항 의무에 대한 물음이 확실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나는 아프리카 문제 토론회에서 적극적인 저항에서 불가피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본회퍼의 생각을 피력하여 큰 저항에 부딪친 경험이 있다.

왜 우리가 우리 동족을 수세기 동안 착취하고 깎아 내린 외국 주둔군에 대한 투쟁에서 ‘죄를 짓게’되는 것인가?

세 번째 계기는 1979-1981년 사이에 있었던 독일 평화 운동 기간동안 진행된 ‘시민 불복종’에 대한 토론이었다. 여기에서는 양 독일 땅에 ‘상호 확인된 파괴’를 획책하고 있는 초강대국들의 핵중거리탄 무장에 대한 저항권 문제였다. 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양대 독일 국가와 같이 군사적인 멸절 가능성이 축적된 곳은 없었다. 이 경우에는 폭력적인 저항의 문제는 아니었다. 저 군사적인 힘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권력에 기반을 둔 사회가 평화를 지향하도록 비폭력적인 저항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평화를 위하여 우리는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는 단지 평화적인 수단을 가지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불복종’은 ‘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이미 폭력적이 아닐까? 아니면 시민불복종은 민주적인 문화의 불가피적인 요소이므로 다른 범죄적인 행위들로부터는 구별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교통체증 유발, 군대시설 봉쇄 행위, 인간 띠 잇기 등의 행위들은 상징적인 성격을 지닌 저항행위들로서 정부와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해야하며 국민 대다수들로부터는 지지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합의하였다. ‘시민불복종’은 공개적이고 비폭력적으로, 양심에 따라, 그러나 법의 개정과 정부 결정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현행법에 위배되는 행위임이 그 당시 합의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어떤 조건들 아래서 그와 같은 시민불복종이 가능할 것인가? 누가 그와 같은 결론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인가?

2. 적극적이 저항이 일반적인 시민의 의무이다

‘적극적인 저항’이라는 말을 우리는 비합법적이며 헌법에 위배되며 인권을 침해하는 힘의 지배에 맞서는 힘을 가지고 저항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와 같은 저항의 권리와 의무는 모든 헌법을 기초로 하고 있는 국가들 안에서는 모든 시민들의 일반적인 권리와 의무들이다. 여기에서는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정상적인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 이외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슨 특별한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옛 독일 1215년에 제정된 작센법전(Sachsenspiegel,중세의 유명한 법전) 3장 78항 2조에 따르면 지배자와 백성의 관계는 상호성에 바탕을 둔 서로간의 신실성에 근거하고 있으며 절대적인 복종과 조건 없는 따름을 말하고 있지 않다. “각자는 왕과 재판관들이 불의를 행하면 비록 자기의 친척이거나 지주라고 할지라도 저항해야 하며 여러 방법으로 그가 돌이키도록 도와야 한다. 이로써 그는 그의 충성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

통치자가 통치계약(tyrannis & exercitio)을 위배하거나 통치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행하면 그와 통치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들은 저항할 의무가 있다. 그 사람들이란 중세 계급사회에서는 각양의 사회계층과 도시들이고, 선출된 군주체제에서는 선출권을 가진 사람들이며, 현대 법치국가들에서는 시민들을 말한다. 한 독재자의 전복이 요구되는 한계상황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폭군살해가 허용된다(Sent.Ⅱdist. 44 Qu.2).

중세기에는 법과 계약의 정의가 자연법과의 일치 가운데서 측정되었다면 종교개혁 당시의 도시들과 지방들에서는 ‘하나님의 법’(Gesetz Gottes) “그리스도의 가르침”(Richtschnur Christi)에서 추구되었다.

1523년 츠빙글리는 취리히 신앙논쟁을 위해 제출된 결의문 38번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그들의 법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해야 한다... 그러므로 통치자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위배되거나 벗어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퇴위시켜야 한다.”

존 녹스에 의해 1560년에 제정된 스코틀란드 신앙고백 14항에서는 무고한 사람의 삶을 보호하고 폭군을 제어하고 억압받는 자의 편을 드는 것을 보편적인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로마서 13장에 대한 주석이 아니라 10계명의 두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이웃에 대한 사랑의 완성으로 주석하고 있다.

루터의 신앙고백과는 차이가 있다. 아우스부룩의 신앙고백 16조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세운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같은 불복종 규정이 독일 루터교에서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2년 노르웨이의 감독 아이빈드 베르그그라브(Eivind Berggrav)는 하노버에서 있었던 루터교 세계연맹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정부가 난폭하게 권력을 사용하면 악마적인 상황이 발생하며 그 결과 그 정부는 하나님의 법 아래 서 있지 못합니다. 악마적인 힘을 휘두르는 힘에 대한 복종은 죄입니다. 그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는 원칙적으로 이런저런 형식의 봉기가 성립됩니다.”

칼 바르트는 1938년 스코틀랜드의 신앙고백에 대한 주석과 해석에서 기본적인 국가 시민들의 의무를 강조했다. “힘에 대한 힘. 폭군에 대한 저항,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것을 막는 다른 방안이 없다”(213).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폭력 사용에 참여할 수 있는가?”(214). 여기에 대한 대답은: “우리는 아직 구원받지 못한 세상의 공간에 위치한 교회가 가진 한계점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215). “우리는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함으로 이미 힘을 행사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는 것”.

폭군에 대한 폭력적인 저항은 모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시민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정치책임의 최후 수단이다. 우리는 기본적인 국가시민의 저항의무와 특별한 그리스도인들의 정의 문제로 돌아가겠다.

어떻게 오늘날 폭군, 독재자, 폭력통치 등이 증명될 수 있을까?

1. 경찰, 군, 또는 정치적인 목적의 그 결정체들이 계속해서 법을 어기면 그 정부는 불법적이다.

2. 그 정부가 헌법에 저촉되는 법들을 통과시키고 헌법의 부분들을 무력화시키면 그 정부는 부적절한 정부다.

3. 한 정부가 법과 헌법의 변경을 통하여 기본적인 인권조항을 침해하면 그 정부는 비인간적인 정부다.

이와 같은 3가지 형태의 독재에 대한 저항은 첫째 합법성을 다시 회복하는 의도를 통해, 둘째 헌법을 다시 회복시키는 의도를 통해,

셋째 인권을 새롭게 회복하고 인권을 시민의 기본권리로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아야 한다. 저항할 정당성을 부여받은 기관들은 1.국민의 정치적인 대표들에 의해서 선출된 정부 2.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치적인 대표자 자신들 3.기본 헌법에 따라 모든 정치적인 권력이 나오는 국민 4.가중한 인권침해의 경우에는 헤이그에 있는 유럽의 법정과 같은 국제적인 재판소들이다. 오늘날 발칸반도에서 행해지는 인권침해는 이 같은 기관들에 의해서 판결을 받고 있다.

그러나 힘의 사용의 권리는 정당해야 하고 불의한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힘 사용의 정당성의 정의는 인권과 일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은 비인간적이 된다. 권력은 그러므로 정의와 인권을 연결하고 권력지배를 배제하는 권한이다. 국가는 우리들의 헌법에서 ‘권력독점’을 위탁받는다. 그러나 그 대신에 권력사용은 법, 헌법, 인권에 따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권력통치에 대한 저항은 한 나라의 시민들과 모든 사람들의 의무가 되는 것이다. 2000년간의 기독교를 통해서 힘의 무죄성은 부서졌다. 그래서 모든 권력 사용은 정당성의 의무를 가진다. 법 저편에 서 있거나 정당성 의무에서 자유로운 절대적인 통치자는 없다. 모든 힘의 사용은 책임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3. 적극적이고 폭력적인 저항에 대한 기독교적인 입장

적극적이고 폭력을 사용하는 저항을 받아들이고 저항에 대한 참여는 모든 권력을 꺼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양심의 위기로 몰아간다. 많은 아프리카의 해방운동들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에두아르도 몬드라네(Eduaardo Mondlane)가 1966년 제네바에 밝혔던 것과 같이 비폭력적인 저항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저항으로 옮겨가고 있다. 모잠비크의 해방전선(Frelimo)의 조직가로서 그는 1969년 다레스알람(Daressalam)에서 자동차에 설치된 폭탄에 의해 살해되었다. 힘의 새로운 분배는 힘에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참여가 현저하게 거부되면 단지 반대 권력에 도움을 줄뿐이다 : 너의 권리를 위해 싸우라. 그러나 이 같은 권력에 맞서는 폭력수단은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의 목적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폭력적인 저항은 ‘속죄(Ents hung)에 의존하고 있다. 폭력을 사용하는 저항에의 입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디히트리히 본회퍼가 갔던 길처럼 죄를 짓는 것과 결부되어진다.

저항의 책임감을 가졌던 스타우펜 베르그(Staufenberg)는 1944년 7월 20일 저항할 수밖에 없는 단계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때가 왔음을 보았던 것이다. 정부는 히틀러를 퇴각시켜야 함에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군부 최고지도자가 임명되어야 했으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장성들이 이 일을 서둘러야 했으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고책임자인 그만 홀로 남았다. 그는 그의 자리와 계급을 걸고 폭군 살해의 책임 가운데 자신을 던졌다. 다른 사람들은 이같이 얽힌 사회질서를 보지 못했고 희생자들, 특히 유대인들의 구출 때문에 개인적인 저항이 정당하다는 것을 의식하였다. 수동적인 저항은 누구에게나 가능하였다. 독일 국방 당국은 25,000명의 국방의무 거부자, 국방력 해체자, 명령 거부자들을 처형하였다. 그와 같은 일이 전쟁 전이나 독일 군부 외에서는 전혀 있지 않았다.

이와 함께 우리는 다시 권력문제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산상수훈과 예수그리스도 폭력적인 십자가 죽음 이래로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모든 권력사용에 대해 예민하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자기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을 강요하는 힘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어들에서 우리들은 ‘폭력’(violence)과 ’힘‘(power)을 구분한다. 권력(Gewalt-violence)은 잘못 사용된 힘을 규정하는 반면에 힘(Macht-power)은 오히려 정당한 통치를 의미한다. 권력과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권리와 정의다. 힘의 사용은 정당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힘은 횡포가 되고 벌거벗은 잔인한 권력이 되어버린다.

비록 살인죄가 최악의 비상사태에서 행해졌다고 할지라도 살인죄는 살인죄로 남는다. 집단 살해의 위협에서 무고한 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폭군살해는 살해로 남는다. 악의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 행동하지 않음으로 우리는 더 많은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책임적인 행동은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죄인이 될 준비가 돼있는 사람을 요구한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행위를 결정하는 덕목일 수 없다. 단지 빌라도만이 자기 손을 죄 없다고 씻으려 하였다. ‘죄의 용서’에 대한 간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행위를 결정하는 기독교적인 덕목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모든 정치적인 행위는 속죄를 불가피적으로 요구한다(Eduarzd Heimann). 속죄 없이는 힘의 자만심과 무력감의 좌절에 빠진다.

“예수께서 모든 인간들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셨기 때문에 각자는 책임적인 행동의 빚을 지고 있다. 죄의 책임을 회피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 없는 자의 죄 짊어짐이 가진 구원의 비밀로부터 멀어지며 하나님의 의인화에 참여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그 개인의 무죄를 인간들을 위한 책임 위에 놓으셨고 그를 강요하는 구원 없는 죄에 대해서는 눈멀다. 그리고 다른 사람 때문에 죄의 공동체로 들어가는 데서 참된 무죄성은 증명되고 있다. 죄 없는 자가 자기 헌신적인 사랑하는 자로서 죄를 짓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책임적인 행위의 본질에 속하게 되었다”(D.Bonhoefer. 윤리, 뮌헨 1966. 186).

정당성 없는 권력통치에 대한 폭력적인 저항이 비정한 참여로 된다면 이 같은 저항은 결코 극복되어져야 할 권력 통치와 같은 것은 아니다. 위로부터의 독재에 대항하는 밑으로부터의 독재는 성립되지 않는다. 어떤 악마도 다른 악마로서 퇴치되지 않는다. 테러가 되는 반대테러는 없다. 혁명적인 수단들은 항상 더 나은 목표와 견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어지면 보복과 복수의 자리에 평화가 들어선다. 가장 좋은 예는 니카라과와의 소모사 정권을 무너뜨렸던 산디니스트들의 저항이다. 승리 후에 보여 준 반대자들에 대한 기독교적 행위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4. 폭력적인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제자직

지금까지 우리들이 다룬 것은 권리, 법, 인권법의 기준에 따른 그리스도인의 세계 책임 문제였다. 정치, 경제, 문화에의 책임적인 참여는 인권을 침해하는 법, 헌법위반을 가져오는 위기의 상황에 처해서는 저항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같은 저항은 당연한 것이기는 하나 특별히 기독교적인 대안이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들이 이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여 산상수훈의 교훈에 따라 정치, 경제, 문화의 상황에서 참 그리스도를 따르는 복종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어떤 결론에 다다를까?

책임적인 참여와 통전적인 제자직이라는 전제는 처음부터 기독교를 개신교회와 카톨릭교회라는 양대진영으로 나누는 결과를 초래했다. 종교개혁 때에는 재세례파들이 총체적인 그리스도 제자직의 원칙을 수도원에서 세상 속으로 이끌어내었다. 카톨릭교회와 종교개혁 교회의 갈등은 국가권력에의 참여를 거부하는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아우구스부룩의 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 16조는 “모든 국가질서는 선한 것이며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제정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1527년 미카엘 사틀러(Michael Sattler)가 작성한 슬라이트하이머 재세례파 규약선언 6항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 규약은 사틀러가 처형당하기 1년 전 로텐부룩(Rottenburg)에서 작성되었다. 그 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국가권력은 그리스도의 온전성 밖에 있는 하나님의 질서이다” 재세례파들은 루터와는 달리 교수형리(Henker)와 전쟁가담자는 정당한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에 국가권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전적인 제자직의 길은 그들로 하여금 철저한 비무장화와 고난받을 준비와 순교의 길을 가는 것을 뜻하였다. 재세례파들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마20:25이하)라는 말씀에 따라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자발적이고 형제자매애에 기반한 공동체나 마을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종교개혁시대의 순교자들 중의 대부분은 카톨릭교회와 루터를 지지하는 영주들에 의해서 동시에 탄압을 받았던 재세례파들이었다. 메노나이트교회 백과전서는 헤아리기 힘들정도의 수많은 화형당한 재세례파들의 명단을 보유하고 있다.

‘비무장적인 삶’은 ‘위대한 거부’를 말하는 것인가? 우리들이 희망 없는 세상으로부터 우리들을 구별한다면 이 폭력으로 물든 세계는 정의와 하나님나라의 빛 속으로 들어오는 것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비무장적인 삶은 세계의 생존을 위한 진정한 책임과 맞아떨어지는 것일까? 우리들 다수에게 1980년을 중심한 핵무기 위협에 직면한 세계의 정황이 그와 같은 상황에 해당하는 것인가? 군사무기 경쟁이 균형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국가 경쟁을 부추기는 끊임없는 군사력 경쟁을 가속화시키고 결코 좋은 결말을 가져오지 않는 한 우리는 전면적인 거부의 결단 앞에 서게 된다. 핵 죽음에 대항하는 정치적인 투쟁으로부터 스스로 의무감을 갖는 저항이 자란다. 그것은 무장 없이 사는 삶이며 전적으로 폭력 없이 살아가는 평화의 섬김이다.

목적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수단에 있어서도 평화의 수단과 방법들이 퍼져 나가는 평화의 운동이 생겨난다. 산상수훈에 근거를 둔,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인 됨에 대한 숙고가 시작된다. 이것은 국가 시민의 책임성을 뛰어넘는 차원이다.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들이다.” 이와 같은 확증으로서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정치적인 분쟁으로부터 빠져 나오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어떤 분쟁에 뛰어드는 자는 적대의 논리 즉, 보복의 논리에 놓이게 된다. 분쟁가운데 균형은 깨어지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무기경쟁-무기 확장, 무기확장-무기경쟁의 논리가 지배한다. 원수에게 보복의 법칙을 허용하는 자는 결단코 빠져 나올 수 없는 악순환 가운데 빠져들게 된다. 그는 그의 원수의 원수가 된다. 그는 그를 위협하는 자를 위협한다. 악을 악으로 대처하는 자는 또 다른 악을 불러온다.

우리는 원수를 원수로 갚는 행위를 중단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현실에로 방향전환을 하게 될 때에만 이와 같은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 일은 적대자를 압박하는 악의 놀이를 떠나 다른 놀이, 즉 하나님의 사랑의 놀이를 하게 될 때 가능하다.

2.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한 것 같이 온전하라”. 여기에서 요구되는 하나님의 온전성은 완벽주의는 아니고 오래 참은 나머지 창조적인 저 사랑 안에서 성립된다. 그것은 ‘원수사랑’이라 일컬어진다(마5:44). 원수사랑은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친절함이며 반사적이 아니라 창조적인 사랑이다. 악을 선으로 갚는 자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는 반사적이 아니라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그는 독자적인 계획에 따르며 행동 법칙을 적대자의 마음대로 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왜 그는 악을 선으로 갚는가?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과 원수들을 위해서도 책임을 느끼고 그 책임을 떠맡기 때문이다. 원수 사랑은 바로 ‘주지윤리’(Gesinnungsethik)가 아니라 ’책임윤리‘(Verantwortungseth- ik)의 확신에 찬 모습이다. 만약 모든 현실적이고 가능한 원수들이 제거되어 버리면 평화는 없다. 오히려 원수감정이 사멸되고 극복될 때 진정한 평화가 있다. 이와 같은 평화는 단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 하셨다(에2:16). 이것이야말로 ‘평화는 복음’이라는 의미다 . 즉 ‘모든 원수들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가져오는 적대감의 죽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따라가야 할 하나님의 온전성은 하나님께서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리라(마5:45)’라는 말씀 가운데 있다. 태양과 비라는 모성적인 상징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창조하며 적대감과 폭력에 대항하여 생명을 보전하신다. 원수사랑은 적대감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생명과 원수의 인격을 향한 사랑이다. 원수 사랑은 원수를 내적으로 파괴하는 적대감의 허용이 아니라 원수됨의 적대감으로부터의 해방을 향한 지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이다. 이렇게 이해되어질 때 축복하는 대신에 원수를 저주하고 미워하는 것보다 나쁜 일은 없다. 저주, 증오, 적대감은 인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미워하고 저주하고 증오감에 불타는 사람보다 가련한 것은 없다. 마틴루터 킹 목사는 이와 관련하여 알라바마주 버밍함 감옥으로부터 미국 남부의 백인 인종분리주의자들에게 적절한 말을 남겼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적대감 속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종족, 계급, 계층, 민족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창조적인 사랑은 자유에서부터 생겨난다.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확신은 우리를 원수에 대한 저주로부터 해방시킨다. 우리들은 우리가 위협을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모험을 감행할 때 이미 얼마간 자유롭게 된다. 우리들이 비무장적이고 상처받기 쉬운 삶과 삶을 긍정하고 창조적인 사랑의 모험을 감행하게 된 만큼 우리는 더 자유롭고 더 여유 있게 될 것이다. 오직 알지 못하고 압박을 주는 것만이 우리에게 공포심을 준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마지막 질문이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직 가운데서 이 같은 원수사랑은 독특한 기독교적인 가능성인가 아니면 이 계명은 일반적인 요구와 연결되는가?

후스파들과 메노나이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제자직은 단지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상수훈이 기록된 마태복음 5:1에 따르면 제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무리들’(ochlos)에게 말해졌고 그리고는 모든 남자와 여자들에게 선포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산상수훈에는 이 세계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의 기본법칙에 관한 것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오고 있는 정의와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요구(Anspruch)를 가진다. 평화로운 수단을 지닌 평화섬김과 폭력 없는 원수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유롭고 정당하고 연대성을 가진 평화사회이다. 이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 가운데서 이 같은 평화사회만이 하나님 나라에 일치한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제자직의 삶 가운데서 산상수훈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은 기독교적인 소종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구원의 길이다. 개인적인 자유와 사회적인 정의, 그리고 생태적인 균형을 지닌 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군사적이며 생태적인 인류의 재난에 대한 유일하고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러한 사회를 위해서는 시민적인 불복종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되며 적극적인 저항을 위한 비장한 참여를 각오해야 한다. 그와 같은 사회를 위해서 우리들은 규정들과 헌법 개혁뿐만 아니라 인권의 신장을 위해서 적극적인 참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5. 결론을 대신해서

- 저항은 좌절보다 낫다.

- 폭력적인 저항이 비겁한 복종보다 낫다.

- 시민적 불복종이 불의에 대한 침묵보다 낫다.

- 공포, 공격, 증오, 적대감을 비폭력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평화와 삶의 왕도(王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