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의 기독교

Christianity in the Third Millennium

Theology Today(April 1994), 출처: 한국기독교연구소

 

위르겐 몰트만/전병식 옮김

 

기독교에 있어 천이라는 숫자와 천년(millennium)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둘은 이 세상의 종말 전에 인류를 황금시대로 안내할 그리스도의 왕국을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이 왕국을 고대하기보다는 오히려 교회 자신을 그 종말론적인 왕국으로 간주하였다. 즉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설립된 신성 제국이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으로 간주된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 세상 국가들의 어머니요 교사"로서의 거룩한 교회가 곧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A.D. 1000년에 묵시의 파도가 유럽 전역을 휩쓸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천년이 마감되는 시점에 일어날 세계의 종말이 가까웠음에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사탄이 옥에서 풀려나고, 곡과 마곡이 마지막 전투를 시작하며, 하나님께서 하늘의 불로 그들을 소멸하신 후에(계 20) 마지막 심판이 시작되는 그러한 때가 다가왔다는 두려움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재산을 팔아 버리고 다가올 재난을 준비했다. 그러나 결국 종말은 오지 않았고 역사는 계속되었다. A.D. 2000년에 다다른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의 종말을 기대하기보다는 오히려 2천년대, 즉 예수 이후 '세 번째의 천년대'(third millennium)의 시작을 기대하고 있다.

천년 전에 사람들은 상징적으로 생각하여 세상의 끝을 기다렸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연대기적 시간으로 셈하면서 역사란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천년 전에는 역사가 계속되었지만,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역사의 마지막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다가와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 속을 사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 즉 어떤 순간에라도 그 종말적 파국이 일어날 만한 그런 때에 살고 있다. 단 며칠 내에 핵전쟁의 재난이, 단 몇십 년 내에 생태학적 재난이, 이른바 제3세계의 경제적 재난이 바로 이러한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바로 그러한 때 말이다. 우리는 인간 세상의 종말이 이미 시작된 시간을 살고 있으며, 우리나 우리 자손들이 이 파국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지는 전혀 불확실하다. 묵시문학에 전혀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매년 발간되는 {세계환경보고서}만 읽어보면 지금이 얼마나 "절박한 시간"인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21세기와 2천년대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어떤 대답도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가 놀라움으로 가득 찬 것이듯, 미래는 갖가지 가능성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들이 미래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가올 미래가 선이 될지 악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며, 이 때문에 현재는 다행스러운 것이다.

21세기가 20세기로부터, 그리고 2천년대가 1천년대로부터 물려받을 유산은 과연 무엇인가? 다가오는 2000년에 우리가 다음 세대들에게 넘겨줄 미해결의 문제들과 미처 못 갚은 채무들을 무엇인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어떤 투자를 했으며, 어떤 채무들을 남겨 놓았는가? 다가올 세대가 우리를 찬양할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를 저주할 내용들은 무엇이겠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세상의 모든 영역으로부터 그 대답이 나와야만 되겠지만 나는 이 논의를 기독교 세계 안으로 국한시키려 한다.

(1) 우선 20세기의 저주와 축복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20세기의 축복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흩어진 교회들의 새로운 연대감에 있다. 저주란 발칸 반도에서 보여준 전쟁처럼, 유럽 연합을 방해하는 새로운 고백주의와 민족주의를 말한다.

(2) 기독교가 한편으로는 근대주의(modernism)와 다른 한편으로는 신근본주의(neo-fundamentalism)라는 두 개의 종교적 얼굴을 20세기가 끝날 때 보여주게 될 것이다. 여타의 종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3) 나는 또한 19세기와 20세기에 모든 대륙들에서 벌어진 기독교의 거대한 팽창과, 미국과 아프리카에 새로 생겨난 기독교의 중심도시들, 그리고 전통 교회들의 끊임없는 유럽 중심주의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전자가 바람직한 투자인 반면에 후자는 버거운 채무이다.

(4) 마지막으로, 2천년대에 있어서 기독교는 더 이상 서방세계의 배타적인 종교가 아니라 여타 종교들 가운데 하나의 종교로서 위치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는 처음으로 지구촌의 종교가 될 것이며, 처음으로 각 나라에서도 기독교 신자는 소수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종교다원적 사회에 대해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어떤 종교가 "지구 종교"를 대표하며, 스스로 "세계 종교"임을 입증할 것인가?

 

1. 교회일치적인 연대인가 아니면 신조의 고수(固守)인가?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기독교에 있어 첫 번째로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뭉치게 되면, 모두가 살아가야만 하는 이 분열된 세상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의 평화를 증거하게 되겠지만, 만약 흩어지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 세상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고 말 것이다. 서로간의 적대감 속에서 흩어진 교회들을 연합하기 위한 교회일치 운동은 20세기에 우리가 받은 가장 고귀한 선물이다. 주의 만찬으로부터 서로를 제외시키고 그래서 저주까지 했던 기독교회들이 서로를 한 식탁으로 불러모으고 화해시키는 일이 단지 지난 50년 동안에 가능해졌다. 1054년에 일어났던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분리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의 서방교회의 분리가 아직 극복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분열의 극복을 향한 노정에 서 있다. 오늘날 에큐메니칼 회의들과 개체 교회들 사이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의 "조화된 다양성"을 경험하고 있다. (카톨릭교인들과 개신교인들이 나란히 반반씩인 독일에 있어 이 점의 중요성은 과대평가되어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교회일치운동을 시작하면서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상이한 교리들과 직제를 비교하였지만, 신학적인 교리상의 차이점들이 교회의 분리를 정당화하기에는 결코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이러한 차이점들이 서로를 더욱 풍요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교회 직제라는 측면에서는 천주교와 희랍정교회, 성공회, 장로교회, 회중교회들이 더욱 서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이 점에 있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3-1966)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하나의 희망적이며 고무적인 전조가 되었다.

단지 하나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로마 주교(교황)의 보편적 지위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서조차도, 대부분의 비로마 카톨릭 교회들이 로마 아래(sub Petro)에서의 연대가 아니라 로마와 함께(cum Petro) 하는 연대에 대해서는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있는 상태이다. 교황의 직분이 무오류성이나 통치자라는 자만감만 없다면, 보편적인 "일체를 위한 섬김"이 대부분의 교회들에 의해 승인 받게 될 것이다. 왜 로마의 주교가 그 자신 교회 내에서 다양한 직무들을 수행하며, 교회들의 유익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되는가? [신앙과 직제] 분과의 50년 동안의 신학적인 연구 결과, "세례, 성찬과 목회"를 주제로 한 리마 문서(Lima documents)가 태동되었는데, 이 문서는 세계교회협의회에 속한 대부분의 교회들에 의해 따뜻한 지지나 환영을 받았다. 오늘날 우리는 또한 381년의 니케아-콘스탄티노플의 신앙고백문을 통해 "함께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 교회들이 "정의, 평화, 그리고 피조물의 보전"(JPIC)을 위해 함께 일하는 "공의회 과정"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정회원으로 참석했던 1989년의 바젤과 드레스덴 회의는 동구권의 와해를 초래한 유럽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한편 이러한 교회일치운동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특히 독일에서는 교회에서 함께 성만찬을 축하하기를 꺼리는 사람들과 심지어 자신들의 이름을 교인 명부에서 삭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천년 동안의 분열이 50년이라는 짧은 세월에 치유되기란 어려운 일이긴 하겠지만,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교회일치운동을 계속한다면 지금 우리가 바라는 것 이상의 더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난 몇 년 동안 동구권이 와해되고 사회주의 국가들이 민주화됨으로써 출현한 새로운 유럽의 분위기는, 우리가 초교파적인 연대를 위한 최대의 기회를 맞이하였다고 생각했던 것을 점차 의심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1989년의 사태에 대해 여러 교회들은 어떻게 대응하였는가?

지금은 "공산주의 무신론"에 대하여 승리한 순간이 아니다. 지금은 고백적 신앙의 편협성에서 벗어나 사회에 대하여 회심할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새로운 유럽을 향한 초교파적 연대를 이루지 못한다면 교회들은 지나간 과거 시대의 유물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유럽을 카톨릭이나 개신교가 일방적으로 "복음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1989년 바젤에서 희망을 갖고 시작했던 "공의회 과정"을 지속할 수 있는 하나의 전체적이며 초교파적인 기독교 운동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러한 유럽의 카이로스(kairos)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한 세대 전에) 요한 23세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모든 교파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초청하였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즉 바오로 2세는 모든 기독교 교파를 초대하여 유럽 공의회를 소집하지 않은 채, 로마 카톨릭 교회만을 소집하여 "유럽의 재복음화"를 도모하고 있다. 교황의 이 소집은 그가 옛 체코슬로바키아의 "슬라브 민족의 사도"의 무덤을 방문하였을 때 지시한 것이다. 교황은 이 사도가 로마에 의해 파송된 것이 아니라 비잔티움 출신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인데도 말이다. 이것이 (동구권을 포함한) 유럽의 "재복음화"의 신호였다. 예수회 역시 동유럽 선교에 뛰어 들었다. 1981년 11월에 유럽 주교회의가 이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로마에서 모였다. 이것은 사실상 유럽을 "재 카톨릭화"(re-Catholization)하기 위한 계획이다. 서 우크라이나의 교회 건물들을 놓고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가 논쟁한 것은 하나의 슬픈 서곡이다. 또한 폴란드 학교들의 재 카톨릭화는 하나의 위협적인 전주곡이다. 세르비아 계 주교들과 크로아티아 계 추기경들이 화해를 거절하는 것은 그 민족들에게 치명적이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정교회와 카톨릭, 및 이슬람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내는 데 실패했다.

이러한 카톨릭 교회의 독자노선에 맞서서 개신교회들은 1992년 3월 부다페스트에서 유럽 개신교 연합을 결성하였다. 정교회들 역시 그들의 "정교회 국가들"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모든 복음화 노력들을 차단시켜 왔다. 정교회는 로마 카톨릭과의 접촉조차 끊고 있다. 교회일치를 위한 용감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순간에 교회일치의 정신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우리가 맞이할지도 모를 가장 최악의 상황은 기독교가 고백주의로 새로운 유럽을 휩쓸어 민족적 및 문화적 교류를 차단시키는 것이다. 초교파적 연대 의식 대신에 우리는 민족 중심적인 고백주의라는 수렁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정교회 세르비아 족, 카톨릭 크로아티아 족, 기독교 아르메니아 족, 이슬람 아제르바이잔 족, 정교회 루마니아 족, 개신교 독일, 카톨릭 폴란드 등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의 개신교들이 이미 경험한 것과 같이 소수계 종교인들이 차별을 당하는 이른바 단일 신앙고백국가들을 정교회나 로마 카톨릭이 건설하려는 시도를 보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개신교 근본주의의 새로운 물결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후에는 300년 전과 같이 세속주의와 무신론의 새로운 물결이 뒤따를 것이다. 하나로 연합된 유럽 가족이란 분열되고 비타협적인 기독교회들을 포기하고, 오직 그 교회들에 대항할 때에야 비로소 세워질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조에 의해 나누어지고 초교파적으로 비타협적인 교회들은 새로운 유럽의 도전들에 대처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미카일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개방된 유럽 가족"이란 그 안에 사는 다양한 민족들이나 그 밖에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문을 열어 두는 그런 가정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현실의 특징은 외부에 대하여 폐쇄된 "유럽 요새"와 유럽 내에서의 새로운 민족주의이다. 사람들이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고, 개인적인 상황도 더욱 악화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편 너무나 파격적인 개방에 충격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유년기부터 친숙해 왔던 신앙고백의 정체성 속으로 숨어 들어 가게 된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사회주의와 함께 사라져 버린 지나간 시대의 위대한 비전은 바로 모든 인류를 위한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각자의 협소한 지역성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각 나라의 국기와 민족 교회라는 것들뿐이다. 다가오고 있는 것은, 유럽의 천오백만 명이나 되는 실직자들 때문에 개개인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만 하는 자유 시장의 실용주의뿐이다.

교회들이 살아 있는 희망을 낳고, 사람들에게 미래를 향한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을까? 기독교인들이 그들 자신의 방으로 움츠려 들어가 문을 닫아 걸고 서로의 얼굴을 외면하지는 않을까? 제3세계에서 흘러들어 오고 있는 난민들에게 유럽 "가족"은 사방에 있는 그들의 문을 열어 놓을 것인가 아니면 굳게 닫아걸 것인가? 만일 우리가 교회일치운동의 정신으로 산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문을 개방하게 될 것이고, 정교회나 카톨릭, 개신교, 그리고 오순절 교단 사이에서 기독교적인 환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교회일치운동의 정신을 거부하고 신조의 고백대로만 산다면, 우리는 문을 닫고 말 것이다. 만일 우리가 "공교회적으로"(catholicly) 산다면, 우리는 또한 바깥 세계에 대해 문을 열어 놓고 제3세계의 비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의 연대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종파주의자들이 될 것이다. 초교파적 연대와 신조적 완고 사이의 투쟁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우리는 다음 세기로 넘겨 줄 것이다.

 

2. 현대주의인가 근본주의인가?

우리가 "현대 세계"라 부르는 과학기술문명의 태동기 이래로, 교회들은 그 진보에 발맞추고, 삶과 사고 형태에 있어서의 현대 상황과 대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현대 세계가 주로 서부와 중부 유럽의 개신교 국가들에서 출현하였기 때문에 개신교 신앙은 매우 일찍부터 계몽주의의 원리들과 대화하여 "개신교 문화"를 만들어 냈다. 종교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함께 속해 있었으며, 종교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불란서 혁명의 정신을 거부하고 반혁명과 신성 동맹을 지지했다. 카톨릭 교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와 1907년의 현대주의를 탄핵하는 서약을 통해 스스로를 현대주의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4년 만에 종교개혁과 계몽주의를 따라잡았으며, 커다란 열정으로 교리와 체제의 현대화에 착수하게 되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저주의 대상이었던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과 유럽에서 카톨릭 교도들과 신학자들의 현대세계를 향한 운동, 즉 현대인들이 삶을 영위하고 또한 고통을 당하는 바로 그 현장에 있으려 하는 운동을 인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카톨릭 교회가 중세의 박물관으로 여겨지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러면 현대 세계의 원리들은 무엇인가? 나는 이것을 세 가지로 나누어 언급하고자 한다.

(a) 첫째는 현대 세계의 생활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현대 과학기술의 편견 없는 적용이다. 신앙은 성서적 세계관에 의존하기보다는 이성을 해방시켜 그 자신의 합리성에 따른다. 이 말은 역사학을 성서와 교리에 적용하는 것도 포함한다는 뜻이다. 역사 비평은 신앙의 근본을 파괴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앙의 초월적인 근거를 드러낸다.

(b) 신앙의 주관성을 강화하는 것이 현대 세계의 두 번째 원리이다. 신앙은 더 이상 국가적인 사안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이다. 정부와 교회는 분리되어야 하며, 국가는 세속으로 돌아가서 종교적인 중립을 지킨다. 신앙을 지키는 것이 위험할 경우에도 신앙적으로 살 것인지는 개인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신앙의 주관성은 종교의 자유와 함께 양심의 자유에 대한 인식을 요구한다. 물론 이 사실은 종교적 다원주의를 고무시키며, 기존의, 그리고 공공적 특권을 누려 왔던 교회들이 항상 우려해 왔던 자유주의를 초래한다. 그러나 현대의 민주 세계는 또한 주어진 자유 속에서 개개인의 책임성을 요구한다. 교회 안에서, 신앙과 도덕에 있어서, 이러한 개인적인 책임성은 반드시 공표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종교의 자유가 없이는 자유로운 세상이 불가능하다.

(c) 현대인들이 그들의 자유에 대해 의식하면 할수록 그들은 주교들, 신학자들, 그리고 목회자들에 의해 감시 당하거나 보살핌을 받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 모든 여론 조사는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교회에 참여하기를 원하며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교권주의가 교인들을 잃어 가고 있는 반면에 오순절 교단과 자유 교단의 교회들이 각처에서 성장하고 있다. 기독교는 점차로 교권주의적 교회에서 벗어나 회중적인 구조로 옮겨가고 있는데, 이것은 자발적일 뿐 아니라 성직자 부족의 결과이기도 하다. 출생과 관습에 따른 종교적 소속감의 유대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과거에 그들이 수동적이고 보살핌을 당해야만 했던 낡은 교회를 이제는 그들 자신이 참여하는 새로운 교회로 만들어 가고 있다. 교인 명부의 숫자는 줄어가겠지만 교인들의 적극적 참여는 늘어나게 될 것이다.

현대주의와 함께 그의 남매이자 적(敵)인 근본주의도 일어났다. 개신교가 현대 세계와 대화를 시작했고 그 원리들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역사적으로 근본주의는 미국 개신교에서 비롯된다. 근본주의는 본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작용이었기 때문에, 현대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반작용이라기보다는 현대 세계에 대한 기독교의 "잘못된 반응"에 대한 반작용이라 볼 수 있다. 이 반작용은 미국에서 "근본원리들, 진리의 증거" 라는 일련의 문고본들(1910-1915)로 시작되었다. 이 문고본들을 통해 자유주의 개신교에 의해 유보되었던 영원하고 근본적인 기독교 진리들, 이를테면 성서의 권위, 동정녀 잉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부활 등을 옹호하였다. 다양한 근본주의적 운동들은 고대 신앙에 대한 현대 세계의 위협에 대해 보수적인 반작용이었을 뿐 아니라 현대 세계를 재정복하기 위한 군사적인 작전이기도 하였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근본주의자들은 학교와 정치에 있어서, 특히 현재에 있어서는 낙태 문제에 있어서, "기독교적 가치들"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가 정치적 입지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현대 세계의 모든 수단들이 동원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미국의 복음주의적 근본주의자들은 "방송 교회"를 가동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현대의 마케팅 수단들을 동원하여 모금하고,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는 현대 기업과도 같은 선교 전략뿐 아니라 선교를 위해 다국적 기업들을 활용하고 있다.

70년대에 사회학자들은 근본주의를 현대 세계에 나타난 기현상으로 치부했다. 그들의 신앙이 진보하게 되면 현대성을 거부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사회의 세속화는 점차적으로 종교의 영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이란 국왕의 현대화 계획을 지원한 것도,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카불의 막시스트를 지원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종교의 "사망"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란에서는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무자헤딘이 나타나 신에 대한 경외를 가르쳤다. 현대 사회학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오늘날 근본주의는 세계 곳곳에, 즉 이슬람 속에, 호전적인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들, 오순절 교회들, 로마 카톨릭 전통주의 속에, 그리고 발칸 반도와 코카서스 지역의 신조적 민족주의 속에 넓게 퍼져 있다. 오늘날 근본주의는 현대 사회의 수단들을 동원해서 현대 사회를 재정복하기 위한 고대의 가치들과 거룩한 전통의 영향력을 증가시키려는 하나의 프로그램일 뿐이다. 호메이니의 혁명이 일종의 녹음기를 이용한 혁명이었다면, 카톨릭의 오푸스 데이(Opus Dei)는 유력한 전문 기술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복음주의적 근본주의는 "성공의 복음"(gospel of success)을 선전하면서 상류사회로의 출세를 노리는 야심가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때 근본주의자들의 정체성은 남에 대하여, 그리고 미래의 변화에 대하여 그 문을 열지 않는 폐쇄된 정체성이다. 이들은 오직 "근본주의적 가치들"만을 고집하고 주위 사람들을 오로지 적으로 여기면서 그들 자신을 스스로 가둬 두고 방어하려 한다. 개방과 다원주의는 가장 큰 위협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모든 행태 뒤에는 심각한 비탄(悲嘆)이 자리잡고 있다. 즉 근본주의자들은 "세상이 망했다"고 믿는다.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이전에 아랍 제국이 누렸던 영광이 몰락한 것이 심각한 상처로 남아 있고, 기독교들에게 가장 큰 상처는 동일한 신조를 고백하는 종교 국가가 몰락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기독교적 미국"에 대한 꿈, 혹은 "구세주의 나라," 지구상의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꿈이 사라져 버렸다. 이와 같은 점들은 왜 이슬람과 기독교의 새로운 근본주의가 묵시론적으로 생각하며 아마겟돈의 마지막 전투를 기다리고 있는지, 왜 이슬람 근본주의가 "가장 큰 사탄"인 미국에 대항하는 "대전쟁"을 기다리는지에 대하여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오늘날 왜 이토록 근본주의와 묵시론이 확산되고 있는가? 그것은 현대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진보에 대한 현대 신앙은 시간이 계속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러나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 이후에 우리는 어느 순간에라도 시간이 끝장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신뢰하기보다는 영원을 신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과학기술에 대한 현대 신앙은 우리가 저지른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에 대해 이 지구가 견뎌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체르노빌 사건 이후 우리는 만일 지금껏 해 왔던 우리의 잘못을 계속 저지른다면 더 이상 이 지구가 참고 견디고만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이 아니라 저 하늘을 신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영원과 하늘에 대한 확신은 바로 "절대적 계명"과 계시의 "초시간적 진리"를 설교하는 근본주의자들이 약속하는 복음의 내용이다. 이로써 근본주의는 현대 세계의 토대들과 모순을 이룬다. 현대 세계가 "계몽주의의 변증법"(T. W. Adorno) 속에 무너져 내리고 현대세계가 자초한 재난 속에 빠져들수록, 근본주의의 추종자들은 늘어나게 될 것이다.

30년 전만 해도 우리는 근본주의란 시대에 뒤쳐지고 낡은 것이며, 그 자체가 유치하고 억압적인 것이라서 곧바로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현대주의가 아니라 근본주의가 다가오는 21세기의 형태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의 마지막에 와 있는 지금 우리는 아무런 해결의 실마리도 잡지 못한 채 현대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의 이 갈등을 다음 세대들에게 넘겨줘야만 하는 지경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러나 정말 현대주의와 근본주의는 서로 앙숙이란 말인가? 심층적 차원에서 이 둘은 서로 같은 곳에 속해 있으며, 따라서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오직 한 가지 측면에서 이 문제의 답을 끄집어 내보려 한다.

현대 사회의 종교적 상황이 입증하는 것처럼 근본주의는 다원주의에 맞서는 처방이 아니다. 바꾸어 말해서 근본주의는 자신을 다원 구조 속에 속해 있는 것으로, 즉 여타 종교들 가운데 하나의 종교적 가능성으로 그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다. 다원주의 또한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한 일방적 집착이다. 그러나 공통적인 기초가 없다면 그 주장들이나 태도들에 있어서도 다원성이 존재할 수 없다. 통일성이 없이는 다양성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인권에 대한 인식 없이는 종교의 자유도 있을 수 없다. 하나의 공통적인 기독교적 기초 없이는 기독교적 다원주의도 존재할 수 없으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라는 이름 자체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근본주의는 그 기초에 대한 일방적인 고착이다. 그러나 개인 생활의 복합성을 야기하지 않는 살아 있는 기초란 없다. 획일성을 요구하는 기초란 삶의 기초라기보다는 무기력과 죽음의 기초인 셈이다. "어느 달걀도 다른 것과 똑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기독교인은 각각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의 원형(an original)이지 어느 누구도 모조품은 아닌 것이다. 살아 있는 교회에서, 그 기초(그리스도 자신)를 향한 노력과 영적인 은사의 다양성을 향한 노력은 서로를 보충하는 것이며, 따라서 다원주의도 근본주의도 반드시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3. 유럽 중심주의인가 세계화인가?

2000년대에는 기독교인의 대다수가 유럽에 있기보다는 두 개의 아메리카,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중심은 여전히 로마의 바티칸과 제네바의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모스크바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구에 속해 있다. 기독교는 유럽 종교, 혹은 제 1세계의 서방 종교인가, 아니면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에서도 같은 권리를 갖고 있는 세계 종교인가? 기독교는 지금 메시야적 유럽 중심주의와 제 1세계의 지배적 종교라는 힘겨운 짐을 지고 2000년대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기독교는 이스라엘에서 메시야 대망의 부흥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12사도들의 처음 회중은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그 곳에서 임박한 주의 재림을 기다렸다. 한편으로는 기독교인에 대한 유대인의 박해가,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동일하게 임했던 놀라운 성령 체험이 이방인에 대한 선교로 이어졌다. 이방인들은 먼저 유대교인이 되지 않고서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절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우선 여러 방향으로, 특히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유대인이며 기독교 박해자였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을 통해 이방인의 선교사 바울이 되었다. 그러나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울은 그의 서신들, 특히 로마서 뿐 아니라 고린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로마 제국에 대한 선교에 그의 열정을 기울였다. 그는 로마 제국의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이해했으며, 그가 체포되기 이전에 이미 스페인으로의 전도 여행을 계획했으나 결국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로마 제국에 대한 선교는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 후에 비로소 제국의 종교로 열매 맺게 되었다. 황제들에 의해 소집된 고대 교회의 공의회들은 제국의 통일된 종교를 확립하는 선에서 교회의 일치성을 확고하게 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이런 방식은 불행히도 로마 제국으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으로의 선교를 막아 버리는, 즉 제도권 교회로부터 이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 이외의 지역에 다음과 같은 선교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즉 아르메니아에서는 위대한 기독교 왕국이 발전되었고, 에티오피아인 전체가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바빌론에는 베드로 대성당이, 그리고 네스토리우스파는 중국에까지 기독교를 심었던 것이다.

로마 제국 밖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기독교도는 소수파로 남겨졌다. 그러나 로마 제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지배적인 다수가 되었다. 비잔티움이나 로마, 후에는 모스크바나 비엔나에서도 "신성 로마 제국" (Holy Roman Empire)은 지상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으로 여겨졌으며 이로써 그 제국은 메시야적 특성을 얻게 되었다. 교회가 아니라 황제가 그 백성들을 자신의 기독교 왕국에 복종시킴으로써 복음화를 이루어 나갔다.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에 대한 독일 왕의 선교나, 원주민들에 대한 스페인 왕의 선교는 세례와 칼을 통한 그리스도 왕국의 영역 확장을 의미했다. 그들은 믿음을 일깨우기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대신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왕국을 넓혀 갔다. 이런 정치적 메시아니즘은 19세기에 들어, 개신교 패권 국가들인 대영제국, 프러시아-독일, 그리고 미합중국이 이어받아 이들 국가들은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을 향해 "기독교 시대"를 선포했다. 기독교 신앙과 함께 서양 문명이 확산되었으며, 서양 문명과 함께 식민지 제국이, 식민지 제국과 함께 서방의 세계 시장 정복이 확장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영향을 입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백인의 종교" 또는 "서방 세계의 종교"로,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이긴 자와 성공한 자들의 종교로 인식했다는 것은 전적으로 이해할 만한 사실이다. 우리가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간에 우리는 서방 기독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즉 한국 교회의 건축 양식은 북미 교회의 좋지 않은 모방이며, 나이로비의 교회들은 성 안드레 교회(장로교) 또는 성 패트릭 교회(아일랜드-카톨릭)라고 불린다. 서부 아프리카의 성 베드로 성당은 로마에 있는 것보다 규모에 있어서 크기는 하지만 로마의 것과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졌다. 세계 도처에서 우리는 수많은 교파들로 나뉘어진 유럽 기독교의 할거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복음만 수출한 것이 아니라, 화평을 이루지 못한 우리의 부족함 또한 전해 왔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안고 있는 유럽 중심주의의 무거운 짐인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물려받은 짐으로부터 그들 자신이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복음을 스스로의 문화에) "토착화"(inculturate)시킴으로써, 서방세계에 사는 우리가 우리 문화에 대하여 친숙한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땅에서 자기 고유의 문화에 대하여 친숙하게 되어야만 한다. 즉 그들 고유의 건축 양식으로 교회를 짓고, 그들의 순교자의 이름을 따라 교회 이름을 지어야 할 것이다. 그들 자신의 노래로 찬양하며 그들 고유의 교리집을 출판하고, 고유한 도덕적 가르침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교리들을 써야 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 로마나 제네바 또는 비텐베르그를 바라보지 않고, 마침내는 개체 교회, 구역, 대륙적인 차원에서 그들 자신을 조직하고 관리하게 될 것이다. 진정 바라기는 더 이상 그들이 선교사들의 교단에 매달리지 않고 유럽 지배의 할거를 극복하기를 희망한다. 그때 그들은 유럽 교회의 분파주의를 잊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의 교회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또한 지배에 대한 우리의 주장도 철회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이라는 거짓된 꿈을 버리고, 우리 스스로를 많은 기독교회들과 친교를 나누는 학생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교회들에게 어떤 단일한 교리문답서라든가, 획일적인 신조 체계라는 짐을 부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저들의 믿음을 우리 자신의 경험이라는 잣대로 재어서는 안된다. 만일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 국가들에 있는 기독교인들과의 초교파적인 친교를 나누려면 정교회는 자신만이 "진정한 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철회해야 하며, 로마 카톨릭 교회는 자신만이 "진정한 교회"이며, 개신교 교회들은 자신들만이 "진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들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2000년대에 있어서는 기독교인의 대부분이 유럽이 아니라 그 밖의 대륙에 살게 될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유럽 중심주의는 박물관에서나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지방 분권화(decentralization) 없이는 기독교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룬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원화 (pluralism) 없이는 생명이 죽게 마련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중심지나 교권 제도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계약, 즉 자유로우며 평등한 교회들과 회중,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계약이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우리의 공통적인 기원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상에 있어서의 기독교의 중심은 로마나 비잔티움 또는 제네바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모든 나라의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과 친교를 나누게 되리라는 기본적이고도 최종적인 소망의 비전을 지닌 채 예루살렘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4. "세계 종교"인가 아니면 "대지의 종교"인가?

백년 전에 우리는 종교적으로 비교적 폐쇄적인 사회, 즉 하나의 국가, 하나의 법률, 하나의 종교 속에서 살았다. 오늘날에는 다문화적(多文化的) 사회가 어느 곳에나 펼쳐져 있고 특히 유럽과 미국의 제 1세계 국가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종교적 다양성은 이러한 사회들을 풍요롭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갈등의 소지가 있는 것들을 한데 뭉치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사실들은 인종적인 증오심이나 종교전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따라서 다양한 종교 공동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대부분 터키 출신인 백 오십만 명의 이슬람교도가 현재 독일에 살고 있지만, 독일인들 사이에 이슬람교에 대한 지식은 미미한 실정이다. 사람들은 지붕을 맞대고 살아가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위험스러운 일이며 이미 그렇게 되었다. 큰 종교들은 서로 대화를 나눠야만 한다. 종교간 대화의 목적은 모든 종교를 단일화된 하나의 종교로 융합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서로를 인정하면서 다른 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에 대해 열려 있으면서도 자기의 믿음에 대하여 확고한 자세를 갖는 것은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서 필요 조건이다.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어 놓지 않는 한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으며, 자기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사람 또한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서 각 종교들은 고립되어서도 안되며 섞여 버려서도 안된다. 종교간의 대화를 통하여 종교적 사고와 형태들의 성과 있는 상호 변화와 사회를 위한 연대 운동을 이루는 구조적 연결망이 나타나고 있다. 이 이상의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이고, 이 보다 적은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너무 적게 기대하는 것이다.

이 세계에는 부족 종교와 민족 종교들, 자연 종교와 정치적인 종교들이 존재하고 있다. 어떤 종교가 모든 개인을 인격적 존재로 대할 경우에 비로소 우리는 "세계 종교"(world religion)라 말할 수 있다. 그런 경우에야 비로소 그것은 보편적인 종교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신-힌두교, 불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그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세계 종교들"이다.

그러나 "세계"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계 정치, 세계 경제, 그리고 세계 문명의 결과로서 오늘날 지구상의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하나의 세계에로 향하고 있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직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것, 즉 하나의 지구 위에 살고 있는 하나의 인류(one humanity in one earth)라는 개념이 대두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도 가공할 만한 분쟁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세계가 대두하고 있다는 사실 뿐 아니라, 제 1세계와 제 3세계라는 이 세계의 분열과 제 1세계의 제 3세계에 대한 억압과 파괴의 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우리는 어느 세계를 위한 "세계 종교"인지를 묻게 되는 것이다. 제 1세계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제 3세계를 위한 것인가? 각기 다른 인간 "세계" 사이의 이런 분쟁에 직면해서 과연 무엇이 "세계 종교"인가? 앞서 언급했던 종교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힌두교가 카스트 제도를 도입했고, 불교는 지배와 억압에 직면하여 무관심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슬람교는 아랍 정복자들을 위한 종교를 표방하고, 유럽 중심의 형태를 지닌 기독교는 제 1세계의 종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계 종교"가 되기 위해서 이들 종교들은 그들이 갇혀 있는 이런 사회적 굴레들로부터 그들 자신을 해방시켜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제 1세계와 제 3세계 사이의 분열과 굴욕을 극복해야 하며, 모든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하나의 공통된 세계를 위해 일해야만 한다. 기존의 고등 종교들은 그들의 계급 구조와 지배 조직에 너무 묶여 있기 때문에 보편성에 대한 그들의 주장이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기독교는 자체의 유럽 중심적 특성과, 제 1세계의 종교이기를 포기하고 모든 사람들, 특히 제 3세계 사람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세계 종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가 그 관심의 초점을 제 3세계 사람들에게로 옮길 때, 비로소 기독교는 "세계 종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것을 위해 제 1세계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특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모든 사람들과의 친교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세계 종교가 된다는 것의 세 번째 의미는 기독교를 비롯한 고등 종교들이 인간의 세계를 넘어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향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뜻한다. 현재 다양한 고등 종교의 대표자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는 하나 뿐이다. 즉 다양한 대화 모임들, 특히 기독교 교회들이 주관하는 모임을 통해 고등 종교들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맥락에서는 비기독교인들 편에서 볼 때 항상 미심쩍은 요소가 남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기독교의 새로운 선교 정책에 편입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서양의 문화적 모델을 수출하는 데 그들이 협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과 전혀 다른 만남의 자리가 있는데, 이 자리에는 각 종교 대표자들이 훨씬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자리이다. 그 만남의 자리들이란 지구의 날(4월 22일), 세계 공개 토론회(Global Forum Conference), 생태학 회의 등의 자리이다. 다양한 종교의 지도자들이 지구의 파괴와 보존의 문제에 대해 그들이 서로 협력해야만 한다는 공통의 과제를 인식했기 때문에 이러한 자리에 모인다. 고등 종교들이 그들의 신앙과 도덕성을 통해 지구 파괴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고등 종교들의 현세 부정적인 묵시적 태도들은 어떤 것들이며, 다시 우리 모두를 낳고 키우는 이 지구의 자녀들이 되도록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등 종교들은 놀랍게도 현대의 생태학적 위기에 직면하여 별로 할 말이 없다. 오히려 이전에 소위 경멸적으로 불리던 "자연 종교들"의 대표자들이 목소리를 높여 왔으며, 우리는 지구 및 달과의 조화, 자연의 순환과 리듬, 그리고 "대지의 종교"(religion of the earth)에 대한 그들의 메시지를 경이롭게 듣고 있다.

우리 현대인들이 자연의 낙원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만일 현대 문명에 의한 지구와의 동시적인 파멸 대신에 이 지구와 함께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지구에 대해 인류가 취해 왔던 초기의 이러한 통찰력과 태도들을 되살려 현대 문명의 미래를 방향 설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현재의 세계 문명을 따라가는 종교가 아니라, "대지의 종교"가 되는 종교만이 "세계 종교"로 인정될 것이다.

생태학적 위기가 확산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대지의 종교"를 요청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들을 서로 다른 인종, 다른 종교 공동체로 나눌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하나의 인류로 여겨야 할 것이다. 세계 정치는 지구의 정치로, 세계 경제는 지구 경제로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우리의 종교들로부터 우리들 자신을 "대지의 자녀"로 깨닫기 위한 대지의 영성(spirituality of the earth)을 가르칠 수 있는 "대지의 종교"가 나타날 것이다.

인류는 지구상에 가장 늦게 출현한 종자이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우리보다 먼저 이 땅에 존재했다. 아직도 사춘기쯤에서 자아 도취에 머물러 있는 인류는 미래의 생존이나 후세대들은 염두에 두지도 않은 채, 그 힘을 온갖 경쟁에 쏟아 부어 어머니인 지구를 메마르게 하고 있다. 다른 어떤 생명체들도 고의적으로 공기나 토양, 그리고 수자원을 파괴해서 스스로를 해치지는 않는다. 어떤 영리한 생물도 한 쪽에 과다한 식량을 축적함으로써 다른 한 쪽에서는 매년 그 새끼들을 수백만씩 죽도록 하지는 않는다. 어떤 생물도 그의 어머니 것을 도적질하지는 않는다.

인류가 진정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사춘기적 망상에서 깨어나 더욱 지혜롭고 성숙해져야만 한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대지의 자녀들"인 것이다. 우리는 개발이나 경쟁의 원리에서 벗어나 협력의 원리로 옮아가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든지, 아니면 재난의 결과이든지 간에 우리는 성숙해져야만 한다.

기독교는 2000년밖에 되지 않은 종교로서, 이 땅에서는 아직도 젊은 종교이다. 젊은 종교로서 기독교는 젊은 세대의 대부분을 메시야적 정신으로 가득 채웠다. 기독교는 유럽을 개혁과 혁명의 대륙으로 만들었으며, 현대 세계 문명의 실험을 가능케 했다.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기독교의 운명은 현대 세계의 운명과 함께 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사춘기를 극복하고 지혜롭고 성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세계를 지배하기보다는 다른 종교들과 함께 살아 나가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보다 오래된 종교들로부터 지구와 어떤 연관을 맺을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다. 기독교 또한 성인기에 이르게 되고, 그래서 진보에 대한 믿음에서 벗어나 생명의 균형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는 또한 그 자신의 창조의 영성(spirituality of creation)을 재발견하게 되고, 하느님의 위대한 창조의 노래 안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대지의 종교와의 공명(共鳴)을 발견하게 될 것인데, 세계를 구원할 길은 이 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