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나이다
 

삶을 위한 신학 - 신학을 위한 삶

 

 

세계석학 초청 강연 - 위르겐 몰트만 초청 강연 및 대화

주관: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신학연구소

일시: 2009년 5월 12일(화) 11시

장소: 서울신학대학교 성결인의 집 1층 존 토마스 홀

 


 

위르겐 몰트만/오성현 번역


 

 

이 강연을 통해서 나는 내 삶의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풀고, 나의 신학을 삶의 여정의 빛에서 풀어보려 한다. 그것은 내 삶에서 신학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또 내가 왜 내 모든 삶을 신학에 바쳤는지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은 청소년 시절 내 생명을 구했다. 그 희망은 지금까지도 나의 삶을 신적인 영의 에너지로 채웠다. 그 희망은 나로 하여금 매일 아침, 대림절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오심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나님의 미래”는 나를 항상 매료시킨다. 그것은 그 미래가 나에게는 예나지금이나 자유의“넓은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오셨다. 그리스도는 지금 여기 계신다. 그리스도는 오실 것이다 - 나에게 이 말은 이런 뜻이다. 즉 너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너는 자유롭다. 1968년 4월 4일 살해당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묘비에 새겨진 찬송시를 빌어 말하자면 “마침내 자유가!”(free at last, at last free!)이다.


 

1. 종말 안에 있는 시작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학적 탐색이 시작된 것은 1943년 내 고향 함부르크가 끔찍한 종말을 맞았을 때다. 나는 말하자면“소돔과 고모라에서 살아남은 사람”인 셈입니다.

 

이 말은 결코 시적이고 종교적인 표현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의 표현이다. 지금도 그 때에 대한 기억이 엄습하면 몸이 떨리고 두렵다. 나는 함부르크에서 교사 생활을 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세속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종교와 신학은 나와는 아주 멀리 떨어진 세계였다. 나는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려고 했다. 청소년기 나의 영웅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막스 플랑크였다. 내 나이 열여섯이 되었을 때,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의 서문이 붙은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의 저서 <빛과 물질>을 읽고 있었다. 그 때 우리 학급 모두는 함부르크 시내에 있는 고사포 중대로 가도록 명령받았다. 1943년 7월 마지막 주 함부르크는 영국 공군의 공습으로 화염에 휩싸여 결국 초토화되었는데, 그 때 그 공습의 암호명이“고모라 작전”이었다. 우리가 있던 곳에 떨어진 폭탄으로 바로 내 옆에 있던 친구는 사지가 다 찢겨나가 죽었는데 놀랍게도 나는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던 그 날 밤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었다. 나의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스코틀랜드와 영국에서 삼년 간 전쟁포로 신세로 있으면서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했듯이 나도 매일 밤 하나님과 씨름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두운 측면과의 씨름이었다. 하나님의 감추어진 얼굴과의 씨름이었으며, 우리가 전쟁과 포로생활의 처절함을 통해 체험한 하나님의 No(아니!)와의 씨름이었다. 우리는 가까스로 전쟁의 죽음을 벗어났다. 하지만 생존자가 한 사람이라면 죽은 사람은 수백 명이었다. 지옥은 탈출했지만 우리 앞에는 철조망이 놓여있었고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괴테와 실러의 아름다운 독일시, 독일 철학자들의 높은 이상을 흠모했다. 하지만 수용소의 처참함 속에서 그런 것들은 그 빛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나의 내적인 세계도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나는 무감동과 무감각의 철갑 보호막을 치고 그 뒤에 상처받은 나의 마음을 숨겼다. 그것은 외부의 포로상태에 뒤이은 내적인 포로상태, 영혼의 포로상태였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무심해지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아무런 기쁨도 아무런 고통도 못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육체는 살아있는 것 같지만 이미 죽어 굳어버린 생명이다.

 

이러한 종말로부터 새로운 시작으로 전환되었던 것은 세 가지를 통해서였다. 첫째는 활짝 피어난 벚나무, 둘째는 스코틀랜드 노동자들과 그네들 가정이 베풀어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친절함, 마지막으로는 성서였다. 

 

1945년 5월 우리는 벨기에의 그 처참한 수용소에서 어떤 차 한 대를 밀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아무런 말도, 아무런 재미도 없이 차를 밀다가 갑자기 나는 너무나 아름답게 꽃을 피운 벚나무 앞에 서게 되었다. 그 풍성한 생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하마터면 의식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내 안에서 다시금 생명의 불꽃이 이는 것을 느꼈다.


스코틀랜드에서 우리는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함께 도로건설 작업을 했다. 그 사람들은 우리의 웃옷 뒤쪽에 새겨진 번호를 부르지 않고 우리의 이름을 불렀고, 과거의 원수였던 우리를 허물없는 친절함으로 대했고 인간적인 연대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이 나를 무척 부끄럽게 했다. 딱딱하게 굳은 석상과 다름없었던 우리는 그 사람들 덕분에 다시 웃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이후 나는 어느 영국인 군목한테 성경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성경을 받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일단 저녁마다 구약성서의 탄식시를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편 39편을 읽다가 깜짝 놀라게 되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좋은 말도 하지 않았더니

걱정 근심만 더욱더 깊어갔다...

내 일생이 주님 앞에서는 없는 것이나 같습니다...

주님, 내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내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 또한 나의 모든 조상처럼

떠돌면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손과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온 영혼으로 이 시편을 읽었다. 나중에 나는 또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예수께서 운명하시면서 외치신 말씀을 읽었다.“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때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분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분이다. 그리고 그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꼈더니 나도 예수를, 하나님에게 시험을 당하는 그 예수를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스도 - 그는 낯선 곳에서 만난 친구였다.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친구였다. 그리스도 - 그는 나를 그가 걷고 있던 부활과 생명의 길로 인도했다. 나는 생기를 되찾았다. 풍성한 생명에 대한 큰 희망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다시 여러 소리를 듣고, 여러 색깔을 보고,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열망하는 것처럼, 그 때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어떤 결단을 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것은, 그 때 바로 거기서 영혼의 어두운 구멍에 있는 나를 그리스도께서 발견하셨다는 사실이다. 그 후에 나는 거듭거듭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를 위해서 결단해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버림받음, 즉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음(Gottverlassenheit)이 나에게 하나님이 어디서 현존하고 계심을 보여주었다. 고향 함부르크가 화염에 휩싸였을 때 하나님이 어디에 계셨는지를 보여주었다. 나에게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그분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 확신은 오늘날까지도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이 체험에 완전히 매료된 나는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런 생각을 쓸데없는 것으로 간주하셨던 나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스코틀랜드의 노동수용소에 있을 때 영국에 있는 어떤 수용소 얘기를 들었다. 신학 공부를 할 수 있는 특이한 수용소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수용소에 갈 것을 신청했고 1946년 한 영국인 군인의 호송을 받아 노팅엄 근처 포틀랜드 공작의 아름다운 공원 안에 있는 노튼 캠프(Norton Camp)로 이송 되었다.

 

이곳은 영국 YMCA에서 세운 곳으로 영국군이 관리하고 유지하는 수용소였다. 그곳에서는 전후 독일의 목사 양성을 위해서 포로 교수들이 포로 대학생들에게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히브리어를 배우고, 신학 강의를 듣고, 신학 책을 읽었는데 처음에는 그 책의 내용을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목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목사가 되는지조차도 몰랐다. 그 당시 나에게는 교회가 완전히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진리를 찾아 나선 상태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지 않으신다면 나도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삶을 향한 나의 부활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없는 어두운 시절이 지나간 뒤 바로 그 수용소에서 내 인생에 태양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거기서 하나님의 모든 NO(아니!)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YES(그래!)를 발견했다. 1948년 나는,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밤새 씨름을 한 뒤의 야곱처럼,“절뚝거리며” 포로생활에 되돌아왔으며, 그 야곱처럼“축복받은” 사람이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숨겨진 얼굴” 아래서 그렇게 오랜 시간 고생한 끝에 마침내 하나님의“빛나는 얼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세 가지 경험은 이후 나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1. 모든 종말에는 새로운 시작이 숨겨져 있다. 네가 그 시작을 찾아 나서면, 그 시작이 너를 찾을 것이다.

2. 짓누르는 듯 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의 용기를 갖는다면, 우리를 묶고 있는 사슬들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고통은 체념보다 낫다. 고통은 생명의 징표지만 체념은 죽음의 징표기 때문이다.

3. 내가 예수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음성은 나에게 매일 이렇게 말한다.“그가 너를 두려움의 심연에서 이끌어 내사 곤궁이 없는 넓은 곳으로 옮기신다.”(욥 36:16)

 

나는 하나님을 억압이나 소외로 경험하지 않고, 항상 이런 자유의 넓은 공간으로 경험했다. 우리는 그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호흡하고 또 일어설 수 있다.


이것으로 나의 개인적인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하나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2. 하나님의 삼중적 도래


그리스도교의 신약성서만이 아니라 유대교의 구약성서도 이미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오신다는 것, 인류에게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그 하나님의 도래를 지향하고 있다. 약속의 땅에서 멀리 떨어진 이방에서 살면서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느낌이었을 때 그 백성은 탄식의 노래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주님, 일어나소서. 주님의 얼굴을 드시고 오소서!”그 백성이 하나님의 도래를 느낄 때는 하나님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지 않을 수 없다.“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활짝 열려라.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신다.”(시 24:7) 오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현존을 그 백성이 경험하면 그분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그분의 아름다움을 칭송한다.

 

이스라엘과 교회가 이 세상 속에서 희망의 공동체인 것처럼, 구약과 신약성서는 하나님에 대한 희망의 증인으로 나란히 서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래 속에서 살고 있다.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고, 희망은 우리가 깨어 일어나도록 하고, 앞으로 도래할 것을 향해서 우리의 모든 감각을 일깨워준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의 삼중적 재림에 대한 옛 교리를 빌어, 지금까지 내 삶의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분은 육체 가운데 오셨고 - 영으로 오시며 -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이다.



1.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셨다


그리스도교의 미래에 대한 희망은 확고한 역사적 기억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다. 그분은 이로써 우리의 생명을 그분 자신의 생명으로 만드시고, 피로 물든 이 땅을 희망의 땅으로 바꾸신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희망은 오늘날 말해지는 미래에 대한 인간의 모든 꿈, 혹은 미래에 대한 온갖 두려움과 다르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그리스도론의 교리를 전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전쟁과 포로생활 시절 내가 하나님을 찾아 헤맸으나 아무런 답도 발견하지 못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내게 가까이 오셨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이르렀다. 그리스도가 없었더라면 나는 무신론자가 되었을 거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에 대한 경험과 자연에 대한 관찰만을 가지고는 그 시절에 내가 결코 하나님이 계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사랑이 우리를 향한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나는 그리스도께서 그렇게도 친근하게 ‘아바’,“사랑의 아버지”라고 불렀던 그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신 나라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 바로 그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나는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친밀함과 하나님 나라의 광대함을 느낀다.


내가 만난 그리스도의 첫 번째 이미지는 하나님에게 시험을 당하고, 붙잡히고, 고문당하고, 로마인의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그리스도의 이미지였다. 마치 나와 운명을 함께한 친구가 나를 이해하듯, 그분이 나를 이해한다고 나는 느꼈다. 그리스도는 고난의 길을 가셨고, 버림 받은 사람들을 찾으시고 그들의 형제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는 자리까지 가셨다. 그것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깊은 감동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버리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버림 받은 상태에 처한 나에게 오셔서 나를 발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나 스스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내 운명 가운데 어떤 것이 그분의 운명 가운데 있음을 발견했고, 내 생명 속에는 그분의 현존이라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 당시 내 책상 위에 세워져 있던 중세기의 그림 하나가 있다. 그것은 지옥에 내려가 거기에 문을 열고 있는 그리스도의 그림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사람 가운데 한 명이 그에게 와서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면서, 꼭 이렇게 말하려는 것 같다. ‘당신이 나에게 오신 거군요! 도대체 나는 누구입니까?’그러면 이 그림 속에서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돕는 분, 그리스도는 구원하는 분이다. 하지만 그분은 초능력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한 처지에 있는 우리와 연대함으로써 도우신다. 예언자 이사야는 이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종, 고난 받는 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그분의 상처를 통해 우리의 병이 나았다.”(53장) 디트리히 본회퍼는 감옥에서 “오직 고난당하는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고 썼다. 언제나 하나님은 일단 함께 고난당하심으로 우리를 도우신다. “내가 (하나님께 버림 받은) 지옥에 있어도 당신은 거기 계십니다.”(시 139:8) 어떤 고난, 어떤 지옥도 이렇듯 함께 고난을 당하시는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



2. 하나님은 영으로 우리에게 오신다


그리스도교의 미래에 대한 희망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과,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을 체험하는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리고 하나님의 미래를 기다릴 뿐만 아니라, 오늘도 “장차 올 세상의 권능”(히 6:5)을 미리 경험하고 있다. 그 권능은 성령의 생명 에너지다.


그런데 “성령”은 어떤 분인가? 나에게 성령은,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을 살아 있게 하시는 “생명의 영”(GEIST DES LEBENS)이다. 이 세상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의 생기 넘치는 현존이다. 하나님의 영의 은사와 임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또는 우리의 인간 공동체가, 모든 살아 있는 존재가, 또는 이 땅이 경험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것이다. 성령 안에 현존하는 영은 여러 가지 선한 영, 혹은 악한 영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성령 안에 현존하는 영은 하나님 자신이며, 창조적이고 살아계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다. 그 영이 계시는 곳에는 하나님도 특별한 방식으로 현존하신다. 일반적인 편재(遍在 Allgegenwart)의 방식이 아니라, 자기 계시의 방식으로 현존하신다. 하나님이 당신을 계시할 때, 그 곳에서는 그분이 자기 자신을 직접 나누는 일이 일어난다. 그분의 영원한 생명의 창조적인 에너지는 우리의 유한한 생명을 뒤덮어버리고 관통하여, 우리의 생명을 속에서부터 완전히 소생시키신다. 하나님의 영을 느끼는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어떻게?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서! 우리는 고침 받은 삶 전체를 경험하며, 사랑받고 동시에 사랑하는 삶을 경험한다. 우리는 단지 마음의 새로운 영성이나 머리의 새로운 신학으로만 영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감각으로 생명의 새로운 활력을 통해서 그 영을 체험한다.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생명, 우리 생명 안에 있는 하나님을 우리는 느끼고 맛보고 듣고 냄새 맡고 본다. 그것을 요한1서 1장 1-2절은 이렇게 묘사한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이 생명을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이 생명의 영의 이름도 여러 가지다. 나에게는“위로자”(Paraklet)와 “생명의 샘”(fons vitae)라는 이름이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리스도와의 사귐 속에서 우리는 이런 신적인 영의 생명력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슬픔에 빠진 사람, 냉담함에 사로잡힌 사람, 자기 안에서 아무런 생명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그리스도께 나오면 하나님의 영의 새로운 활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그 활력은 새로운 생명의 감성(Sinnlichkeit des Lebens) 속에, 그리고 넓디넓은 하나님의 생명의 공간(Lebensraum Gottes) 속에 있다.


큰 슬픔 속에서 우리의 감각이 소실되어 아무런 색채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 맛도 느낄 수 없고, 우리의 육체가 뻣뻣하게 굳어 있을 때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숨결 안에서는 우리의 감각이 다시 열려서 다시금 저 화사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듣게 되고, 다시금 입맛을 되찾고 감정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삶에 대한 거대한 긍정이 우리를 사로잡는데, 이는 하나님의 생명의 영이 베푸시는 생명의 긍정이다.


이 새로운 생명의 전개에 필요한 것은 넓은“생명의 공간”(Lebensraum)이다. 시편 31편 5절은“주님께서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나이다.” 라고 노래한다. 이 넓은 공간은 우리의 유한한 생명을 사면에서 감싸고 있는(시 139:5) 무한하신 하나님의 현존이다. 하나님의 신적인 현존이 사면에서 우리를 감싸면, 우리는 우리의 유한한 생명을 사방으로 자유롭게 전개해나갈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며, 하나님 안에서 살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을 건낼 수 있는 인격체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마음껏 전개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신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하나님의 신비로운 이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콤(MAKOM), 즉 공간이다. 우리가 사랑과 우정 속에서 서로를 위해 자기를 개방하고 다른 사람이 우리의 삶 속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생명의 공간을 선물하는 셈이다.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삶 속에서 그런 자유로운 공간이 없다면 개인적인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 사랑은 자유의 공간을 주며, 그 자유의 시간을 허용해 준다. 그런 자유의 공간을 경험하는 곳에서 우리는 우리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한다.



3. 하나님은 영광 가운데 우리에게 오신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하나의 위대한 희망으로 경험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하나님은 바울이 로마서 15장 13절에서 말하듯이“희망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도 계실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오실” 분이다.(계 1:4) 그분은 미래로부터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그러므로 그 넓은 미래의 지평은 나중에 그리스도교에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본질적인 요소다. 신앙이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사는 것이며“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땅으로도”오시는 그분의 나라를 향해 우리를 활짝 여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오심을 대망하면서 산다. 우리는 그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그분의 오심의 빛 안에서 살아간다. 우리 위에 언약의 별이 빛나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은 새로운 날, 하나님의 날을 알리는 새벽별과 같다. 그리스도교의 시간 느낌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롬 13:12)

 

어떤 미래가 하나님의 언약과 우리의 희망과 이 세상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인간의 땅에서 인간과 함께“살기”위해서 오신다. 그렇게 되면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성전이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이것을, 이 세상을 향해 오는 “하늘 예루살렘”의 이미지로 묘사했다. 하나님의 이 우주적인 쉐키나(Schechina=거주)를 위해서 모든 것이 새롭게 창조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면 모든 눈물을 닦여지고, 고통과 울부짖음은 사라지고, 더 이상 죽음도 없을 것이다.(계 21:5) 신적인 것이 모든 현세적인 것 안에 있고, 모든 현세적인 것이 신적인 것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빛나게 한다. 이것이 인류에게 있는 희망의 역사의 완성이며 창조의 완성이다. “태초에” 창조된 모든 것, 하늘과 땅, 빛, 생명, 식물과 동물과 인간 모두는 바로 이것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3장 12절에 의하면, 우리는“주님의 미래가 오기를 기다리며 그것을 앞당겨야 한다.”이것은 모순처럼 들리지만 결코 모순이 아니다. 이것을 우리의 경험, 우리의 언어로 옮겨보자.


기다림(Warten): 이 말은 불의한 현실에 순응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세력을 인정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보다 나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고, 그와는 다른 무엇이 오고 있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기다림이란 결코 단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기다릴 수 있음 - 그것은 희망의 기술(Kunst der Hoffnung)이다. 인내는 희망의 미덕이다. 기다림이란 성취의 시간이 올 때까지 긴장감 속에서 깨어 살아가는 것이다. 기다릴 수 있음 - 그것은 약속된 미래에 대한 신실함이기도 하다. 바빌로니아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하나님의 백성은“주 우리의 하나님, 이제까지는 주님 말고 다른 권세자들이 우리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가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기억하겠습니다.”(사 26:13)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백성은 살아남았다. 루벰 알베스(Rubem Alves)가 말했듯이, 포로기의 신학 없이는 해방의 신학도 없을 것이다.


서둘러 앞당김(Eilen): 이것은 지금의 현실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의 미래를 한 걸음 씩, 한 행동 한 행동을 통해서 선취하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의 한 행동 한 행동에 의해서 정의가 거하는 새로운 세상을 위한 길이 마련된다. 폭력 아래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뭔가 옳은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미래가 그들의 세계로 비쳐드는 것이다. 우리가“과부와 고아”를 위해 헌신한다면 한 조각 진리가 우리의 세상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가 온갖 불의와 폭력으로 이 땅의 많은 보물과 생명력을 탈취하고 있어서 땅은 신음하고 있다. 땅도 자기의 권리 보장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그러한 정의를 선취하여, 그 정의 안에서“새로운 땅”이 생겨나게 할 때 우리는“주님의 미래”를 앞당기는 것이다.


기다림과 앞당김, 그것은 저항하고 선취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생명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의 미래를 확신하게 된다.


 

3. 1975년 이래 한국에서 맺은 나의 인연과 경험



1. 민중신학과의 교류


1975년 3월 나는 처음으로 한국에 발을 디뎠다. 세계개혁교회연합에서 알게 된 박봉랑 박사가 나를 한국에 초청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나의 첫 강연은 한국신학대(현재의 한신대)에서“민족의 투쟁 속에서의 희망”에 대한 강연이었다. 이 강연은 정치신학의 한 부분이었다. 내가 당시 이러한 위험한 테마를 다루었기에 한국의 국가보안기관에 의해 감시를 당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연세대에서 나는 서남동 박사를 알게 되었고, 한국신학대에서 안병무 박사는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막 풀려난 그의 제자들과 함께 나를 맞이하였다. 이를 통해 나는 한국의 민중신학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소유한 한 사진 속에서는 내 옆에 앉아있던 한 불행해 보이는 남자를 볼 수 있다. 그는 이른바 북한간첩행위로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재판정에서 당시 막 번역된 나의『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fnung, 1964)을 인용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다행스럽게도 사면되었고 오늘날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1975년 5월 네 명의 신학자들을 위시하여 열한 명의 교수들이 즉각 풀려났다. 후일 대통령이 된 김대중과, 내가 2년 전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만났던 시인 김지하는 당시 사형수로서 독방에 수감되었다. 이리하여 나는 한국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한국은 군사독재 치하에서 농부들과 노동자들이 가혹하게 착취당하는 제3세계이며,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고난당하는 자국민 안에서 착취와 억압에 항거하며 저항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나라와 이 민족, 그리고 이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1984년 나는 독일에서『한국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민중신학』(Minjung-Theologie des Volkes Gottes in Korea)이라는 저서를 새로운 민중신학의 텍스트와 기도문, 찬양과 함께 출간하였다. 나의 제자 볼프강 크료거(W. Kröger)는 몇 년간 한국으로 갔고,『민중의 해방. 에큐메니컬적 전망 속에서 아시아를 위한 개신교 해방신학의 프로필』(Die Befreiung des Minjung. Das Profil einer protestantischen Befreiungstheologie für Asien in ökumenischer Perspektive)이라는 저서를 1992년에 저술하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2년 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0년 전 안병무 박사는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 갈릴리 공동체, 곧 노동자들과 비판적 지식인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창설했다. 이 공동체는 한국의 비밀 정보기관에 의해 종종 기습을 당하였다. 이 일로 인해 안병무 교수는 재판을 받게 되었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우리는 독일에서 한국에 있는 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운명에 매우 생생한 관심을 갖고 참여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에게 나치 독재 치하의 고백교회 시절과 디트리히 본회퍼(D. Bonhoeffer)의 능동적 저항의 길을 회상케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은 고도의 기술을 지닌 선진 산업국가로 발돋움 했는데, 현대와 삼성은 세계 도처에 널리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저 억압과 저항의 시대를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신약성서에서의 한 주석적인 발견은 현재를 위한 새로운 공동체 운동과 새로운 신학을 전개하도록 이끌었다. 마르틴 루터(M. Luther)는 로마서 3:28에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했고, 이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안병무 박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의 연구를 통해서 가난한 민중이 - 희랍어로 오클로스(ochlos) - 복음에 대해서 가지는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한국의 신학과 교회 안에서 민중-운동을 일으켰다. 이것은 독창적인 일이며, 대단한 찬사를 받을만하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마가복음에 등장하는‘민중’에 대해 결코 한 번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단지 예수와 그의 사역에만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병무 박사는 예수와 가난한 민중 사이에 언제나 특별한 교환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예수는 가난한 민중과 자신을 동일시했고, 그들은 예수의‘가족’이 되었다. 예수는 민중을 가르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고치며,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으며,“많은 이들을 위해” 죽었다. 그는 민중을 대리하고, 민중은 예수를 대리한다. 마가복음서에서 예수는 결코 고독한 개체로서 묘사되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민중의 형제로서 묘사된다. 안병무 박사는 동일한 실재성이 “예수”와“민중”에 의해서 묘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민중을 대신하며, 민중은 예수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신학 안에서 예수는 황금 면류관을 쓴 교회의 그리스도가 아니고, 오히려 고난에서 민중을 이해하는 형제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육체 안에서 몸소 고난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민중-그리스도론은 전통의 배타적인 대리의 그리스도론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고난을 짊어지고 우리의 아픔을 나누는 신적인 형제의 그리스도론, 곧 포괄적인 연대의 그리스도론이다.“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사람의 아들 예수는 말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 속에서 나는 1972년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Der gekreuzigte Gott) 이래로 한국의 민중신학자들과 전적으로 일치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하나의 질문이 아직도 답변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안병무 박사가 서광선 박사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불쑥 이렇게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민중이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그의 고난을 통해 세상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억눌리고 굴욕당하는 민중의 고난은 세상을 구원하는 고난이라는 것이다. 당시 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만약 민중이 세상을 구원하고 나면, 민중은 누가 구원할 것인가? 민중은 고난을 당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고난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신학자들이 민중의 고난을 종교적으로 그다지 잘 해석할 수 없으며, 이를 통해 오히려 고난을 영속화시킬 수도 있다. 가난하고 굴욕을 당하는 민중 가운데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는 민중을 위로한다. 이는 그가 부활을 통해서 민중을 정의로운 삶과 자유로 이끌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그의 백성이 있다는 사실은 옳다. 계시된 그리스도는 우리를 이 세상 안으로 보낸다. 누구든지 너희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것이다. 숨겨진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과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안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누구든지 그들을 찾아 돌보는 사람은 나를 찾아 돌아보는 것이다.



2. 1984년 한국교회 백주년


1984년 나는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 협의회”로부터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에큐메니칼 개신교 교회 측의 주강사로 강연해 달라는 명예스러운 초청을 받았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소속되지 않은 교회들 측에서는 캘리포니아의 풀러 신학대학원(Fuller Theological Seminary)의 맥가브란(D. McGavran) 교수가 초청되었다. 1984년 9월 나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총회에 앞서 강연을 시작하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교회로서 간주되었기 때문에 나는 독일의 나치 독재치하에서 저항했던 고백교회의 순교자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신앙의 순교자 파울 슈나이더(P. Scheinder) 목사에 대해, 그리고 정의의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D. Bonhoeffer)에 대해, 그리고 이름 없는 백성들의 순교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나는 이 부분을 그리스도론에 대해 다룬 나의 저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Der Weg Jesu Christi, 1989)의 284-304쪽에 수록하였다.

 

이후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자문회가 열렸다. 여기서 나는 화해에 대해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안병무 박사와 그의 그룹들을 다른 편에 서 있는 보수적인 근본주의자들과 화해시키는 일을 성사시키지는 못하였다. 이들 사이에 어떤 상호이해도 없음을 확인했다. 나는 해인사에서 하루 휴식을 취한 후, 많은 대학과 신학대학원에서 강연을 하고, 영락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것으로 나의 한국방문은 마쳤다. 당시 나는 아직 젊었기 때문에 연이어 대만을 방문하여 타이페이와 타이난에 있는 장로교 신학대학원에서 강연하였다.

 

한국교회의 세기적인 기념행사에 이번에 방문한 것을 통해서 나는 한국 교회들의 다양성을 알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의식적인 교회로부터 비정치적인 교회에 이르기까지, 근본주의적인 교회로부터 현대적인 교회에 이르기까지, 장로교회로부터 감리교회와 성결교회를 넘어 오순절 교회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의 다양성을 알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내게 개인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신앙과 정치적 책임, 기도와 저항을 하는 그리스도인들과의 만남이었다. 이들은 성서와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통합시킬 줄 알았고, 고백과 에큐메니즘을 통합시킬 줄 알았으며, 그들은 낡은 파괴적인 싸움의 전선에서 안주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한국에서 급속 성장하는 그리스도의 신흥교회를 발견했다. 이 신흥교회로부터 나는 새로운 것을 배웠다. 그러나 나는 또한 교파주의의 아픔과 근본주의의 아픔을, 그리고 한국의 그리스도 백성들의 분열의 아픔을 목도했다. 이런 점은 항상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러한 교회 분열은 한국 개신교에 있어서 결코 명예로운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치이다. 물론 교회의 연합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 놓여 있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그리스도의 진리는 교회를 연합시키지, 결코 교회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성서해석에 있어서, 교리에 있어서, 윤리와 정치에 있어서 우리가 가진 차이점이 우리 모두와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를 포기하게 할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3.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와의 만남


내가 1975년 처음으로 한국에 왔을 때, 저항신학자들이 내게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가 개최한 복음성회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오순절 교회가 그를 한국에 초청했다고 한다. 목사들과 어머니들이 빌리 그래함 목사에게 찾아가서, 군사독재에 의해서 수감되고 체포된 자들을 위해 공식적으로 기도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빌리 그래함 목사는 자신의 비정치적 복음성회가 위협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거절하였다. 이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고, 그를 떠나왔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오순절 교회들이 독재정권과 잘 타협할 수 있겠다고 하는 인상을 가졌다. 오순절 교회에서는 내세에서의 개인의 영혼구원만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장로교회의 근본주의자들도 별로 나을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95년 당시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총회장이었던 나의 제자 박종화 목사가 조용기 목사와 함께 하는 조찬모임에 나를 데려갔다. 우리의 대화는 아침 7시에 시작되어 10시에 끝났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상호 간에 깊은 유대감을 발견하였다. 그러고 나서 나는 조용기 목사 교회의 목사들과 선교사들 앞에서 몇 차례 강연을 했다. 수요일 10시인데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사람들로 꽉 찼다.

 

2000년 조용기 목사는 나를 여의도 순복음 교회 부설‘국제신학 연구소’로 초청하였다. 나는 “성령과 교회”에 관한 주제로 강연했고, 한신대의 교수들 및 조용기 목사와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조용기 목사는 나에게 자신의 교회에서 금요 철야예배 때 설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나는 감동적이고 신앙을 일깨우는 설교를 하고자 노력했지만, 이는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몇 사람들은 내 설교가 매우 학문적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나는 장로회 신학대에서 처음으로‘개교기념일’을 위한 첫 강연을 했다. 여기는 내가 좀 더 편안함을 느끼며, 마음이 놓이는 자리였다.

 

이후 2004년 조용기 목사는‘국제신학 연구소’가 주관하는 희망의 신학에 관한 심포지엄에 나를 초대하였다. 그리고 그는 내게 자신의 교회에 대한 기초적인 문건들을 보내주었는데, 그것은 “순복음의 7대 신학적 기초” 및 다른 문건들이었다. 나는 이 문건들을 가지고 연구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매우 강한 십자가 신학과 상당히 고무적인 오순절 신학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그리스도 부활의 신학은 그렇게 잘 발전되지 못했다는 점을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희망의 축복’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 속에서 제시하였다.

 

이듬해 조용기 목사는 매우 중요한 새해설교를 했다. 그는 그의 교회의 2005년을‘적극적인 사회구원의 해’로 선언했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영혼의 구원만을 선포했으며 사회의 구원과 자연의 구원에 대해 등한히 했음을 고백했다.“새로운 한해의 시작에 나는 어떠한 일에 대해 깊은 회개를 했습니다. 나는 나의 조국의 정치에 대해 충분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학에 대해 너무 편협하게 해석하였습니다. 나는 사회적 악을 도외시했고, 자연의 대재난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그러고 나서 그는 다음의 말로 끝을 맺었다.“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을 지향하는 순복음 공동체였지만, 이제 우리는 세계를 포용하는 순복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세상을 껴안는 순복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나는‘순복음가족신문’으로부터 조용기 목사의 이런 선언에 대한 논평을 써줄 것을 요청받았다. 이에 나는 조용기 목사의 인품에 대한 경의의 마음으로, 그리고 그와 공유하게 된 새로운 신학적 사귐을 크게 기뻐하면서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논평을 썼다.“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전체 피조물을 구원하시고자 이들을 포옹하십니다.”이것은 여의도 순복음 교회 안에서 경이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4. 통일


독일과 한국의 처지가 매우 유사하던 시절이 있었다. 즉 양국은 모두 동병상련의 아픔을 지닌 분단된 국가였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들에 의해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고,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었다. 이에 양국의 국민들 사이에는 많은 공감대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차이점도 존재했는데, 이는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죄과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나누어진 데 반해, 한국은 한국전쟁에 대해 전혀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분단되었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 사회주의 진영과 다른 한편으론 자본주의 진영 사이에서, 또는 소위‘소비에트 블록’과 자유세계’사이에서 대치하는 최전선은 우리 독일과 한국의 국가와 국민을 관통하였다. 그리하여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독일과 한국의 국경보다 더 큰 군사적 위협의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없었다. 우리는 늘 위험 속에서 삶을 영위하였다. 만약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이는 분단된 독일과 분단된 한국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하일 고르바초프(M. Gorbatschow)가 모스크바로 가서 페레스트로이카(Peristroi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를 추진했고, 소련연방은 몰락했다. 이로써 분단된 독일의 운명은 독일인의 손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1989년 평화적인 혁명을 통해 동독은 붕괴되고,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유럽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었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1989년 한국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개방하고 경제적 열강으로 급성장할 때에도, 북한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이와는 정반대로 북한은 기근을 겪어야 했다. 군대가 모든 자원을 삼켜버렸지만, 군대는 다 알다시피 비생산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의 한국 친구들은 한탄하면서 독일의 통일을 무척 부러워하였다. 이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엄청난 수의 -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2백만이 넘는 - 사람들이 가난한 동독으로부터 산업화된 서독으로 이주해왔고,   독일의 사회주의 부분과의 통일이 매우 큰 비용을 치르는 일이며,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큰 경제적 부담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자, 우리의 한국 친구들은 통일에 대해 보다 심사숙고하게 되었다. 남한이 경제적 성장의 꽃을 피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 체제의 갑작스런 붕괴는 남한에 과도한 부담이 될 것이다. 만약 수백만에 달하는 북한의 주민들이 남한으로 몰려든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남한과 북한이 서서히 가까워져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지난해에 한국에서 실천신학대학원 교수들이 독일을 방문하여, 우리와 함께‘사회적 통합의 관점에서 본 통일’에 대해 토론하였다. 정치적 통일은 빨리 이루어질 수 있지만, 문화적ㆍ사회적 통합은 한 세대, 곧 4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린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독일에서 몸소 겪은 체험에 근거한다. 문화적ㆍ사회적 통합의 과정에서 두 기구가 특별히 중요하다. 이는 곧 가족과 기독교 공동체이다. 이 기구들은 분열된 개인들에게 사회적 고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독재와 계획경제로부터 나와서 이제는 각자가 노동시장에서, 생존을 위한 일에서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삶의 형태로 이행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자신에 대해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주의에서 50년 이상 살아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자유는 멋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자기가 결정하고 책임지며 살아가는 삶이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이행과정에 서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공동체는 중요하다.

 

나는 한국의 국민들이 통일을 이루며, 자유와 사회적 정의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실현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독일 사람들은 헤어질 때“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내 나이로 보건대 한국을 또 다시 방문할 것 같지 않아서 이렇게 작별인사를 고합니다.“제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지키시고, 한국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복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