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만 자서전" 서평

 

 

 

 

김종두
대구 수성성결교회 담임목사

 

 


    
몰트만은 그의 나이 70세가 되던 1996년에 아내 엘리자베트와 함께 특별한 신학적 행사를 주도한다. 그들은 동시대의 유명한 신학자 10인을 튀빙엔으로 초빙하고 그들로 하여금 각자가 자신의 신학적 여정을 간단히 발표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의 목적을 그는 이렇게 적시하고 있다. “(...) 우리는 전쟁시기와 전쟁이후의 시기에 우리 세대가 어떻게 신학을 하게 되었고 신학과 더불어 살아왔는지를 기꺼이 알고 싶었고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싶었다. 미래에 우리가 신학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할 지를 탐색하기 위함이었다. (506)”

외견상 몰트만의 의도는 크게 2가지로 드러난다. 첫째, 그의 전세대 스승들 예컨대 ‘바르트와 라너, 불트만’ 이후 자신과 또 동시대를 살았던 신학자들이 집중해왔던 신학적 현안들에 대한 공개적 정리(작업)와 둘째, 그럼에도 여전히 미해결된 신학적 문제들에 대한 전망(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내면적으로 과거의 정리는 결국 미래의 전망을 위한 디딤돌이기에 몰트만의 관심은 결국 그가 새롭게 추구해야 할 미래의 신학전망에 있었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이 행사 이후에도 몰트만은 그가 추구한 바 “쉬지않은 희망의 하나님으로부터 ‘내주하고’, ‘머물 수 있는 하나님’에게 이르기까지”의 여정(510)을 부단히 모색해 나간다. 문제는 행사에 초청된 신학자들이 자신들의 신학여정을 ‘자전적’으로 발표하도록 요청받은 것이다. 몰트만은 이미 1970년에 “나는 어떻게 변하였는가?”를 집필한 바 있다.(208) 그에게 신학이란 “나는 어떻게 변하였는가?”(508)라는 주제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몰트만자서전』은 몰트만 자신의 50여년에 걸친 ‘신학과 삶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몰트만 자신이 이 책을 ‘자서전적 신학(autobiographical theology) 또는 신학적 자서전(theological autobiography)’(506)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는 이 책을 저술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를 “...나는 왜 내가 나의 삶의 이야기를 썼는지를 말하겠다...간단하게 말하면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감사하고 싶다”(537)고 밝혀준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가깝고 먼 삶의 공간에서 나와 결속된 모든 사람을 위해 또 나의 신학의 수수께끼를 풀고 해명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이 삶의 이야기를 썼다”(538)라고 덧붙인다. 자신의 삶의 이야기야말로 자기 신학의 수수께끼를 풀고 해명하는 열쇠라는 뜻이다. 자신의 삶과 신학이 유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출발점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1943년의 함부르크 화염 속에서 일찍이 죽음을 경험한 이래 내가 분명히 추구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는 것이다. 왜 나는 살아있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죽지 않았는가? 나의 삶에서 내가 시작했던 모든 것은 삶의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려는 시도였다.”(537-8; 참조35)

 몰트만의 이러한 질문은 결국 ‘삶의 맹목성과 우연성에 기인한 허무와 무의미성’을 넘어 삶의 의미를 묻는 물음이다. 그의 질문은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보편성을 지향하면서 또한 처절하리만치 실존적이다. 그의 질문이 필연적으로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537) 라는 근원적 의문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1943년 17세 소년병으로 강제 징집되었다. 그리고 그의 동료 귄터 슈비베르트와 또 그의 친구 게하르트 쇼퍼가 폭격과 수류탄폭발로 그의 눈앞에서 처참하게 찢겨죽는 지옥같은 경험을 했다. 그때 몰트만은 “왜 나는 살아있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죽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심지어 그 순간에 오히려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느꼈으며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었다고 회상한다.(35) 이러한 질문은 그가 “죽은 자들의 얼굴이 나타나 창백한 눈으로 노려보는 꿈”때문에 밤잠을 설쳐야했다고 회상할만치 비인간적이었던 포로수용소에서, 또 마이다네크 집단수용소와 학살시설을 확인(123)하면서 ‘영혼의 고통’으로 내면화되고 의식화되었다.(47)

그런데 몰트만의 이러한 질문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537)라는 원초적 질문과 함께 “나의 하나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35)라는 또 하나의 근원적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어떻게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그때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셨는가?”라는 물음을 연계할 수 있었는가? 이 문제는 몰트만 신학의 근본적 모티브이자 뿌리이다. 몰트만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제시한다. 몰트만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내가 굴욕감으로부터 새로운 희망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두 가지 경험 때문이다. 하나는 스코틀랜드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과의 인간적인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다.”(52) 그는 특히 스코틀랜드의 포로수용소에서 ‘한 마음씨 좋은 군목’을 만났고 군목이 나눠준 성서를 통해 전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눈이 열렸다고 회상한다. 그는 시편 39편과 특히 마가복음의 수난기사를 읽으며 처절하게 버림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났다. 그에게 예수는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제요, 나와 함께 이 어두운 골짜기를 걸어가는 길동무요, 나의 고난을 지고 가는 친구”였으며 ‘영혼의 수렁속에 빠져 버림받은 자신을 친히 찾아오신 하나님’이었다.(52-3) 몰트만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실의에서 삶의 용기에로 전환하는 계기이자 그의 신학의 원천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러한 근본적 경험을 통해 그는 철두철미한 삼위일체론적 신학자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두한 ‘실존적 허무주의’나 에른스트 블로흐가 갔던 막시즘적 유토피아(혹은 無神論的 휴머니즘)의 그림자를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또 라틴아메리카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츠(Gustavo Gutierres)나 휴고 아스만(Hugo Assmann)이 갔던 막시즘적 급진주의와의 결별조차 쉽게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신학은 철두철미 ‘인간과 신의 대화’를 추구한다. 굳이 전문적 용어로 표현한다면 ‘말씀Text과 상황Context'사이의 대화이다. 이때 ‘상황’은 ‘역사이자 현실’이다. 인간의 현실상황은 시,공의 제약아래 있는 개별적, 특수한 것이면서 또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적, 일반적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신학을 통해 ‘시대와 지역을 넘어’ 이러한 대화를 했다(405)고 발언할 수 있는 것이다. 몰트만의 대화는 언제나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열린 질문들을 통해 하나의 문제로부터 다른 문제로 옮아갔다. 그것은 나의 신학적 사고의 모험이었다. 나중에 한스 큉(Hans Kung)은 나의 신학적 여정이 산만한 주제들로 인해 갈팡질팡했다고 비판했다. 큉과는 달리 ‘세속적인 가문’에서 자라난 나는 항상 동일한 것(semper idem)을 추구하는 가톨릭교회적 연속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레싱(Lessing)이 언젠가 말했듯이 “하나님은 굽은 종이에도 글을 쓰신다.”

맞다. 저자의 시각에 의하면 가톨릭신학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신학은 언제나 ‘이미 고정된 신학의 체계’속에 있다. 몰트만은 이러한 신학을 ‘전통적 신학’이자 ‘교리적 신학’으로 부른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기존의 고정된 신학이 아니라 그자신의 고유한 신학의 길을 걸어간다. 몰트만은 그러기에 항상 먼저 ‘질문한다’. 그의 질문은 언제나 ‘열린 질문’이자 ‘문제의식’이다. 그의 질문은 곧 ‘인간 삶의 현실에 대한 투철한 고민과 통찰’에서 비롯된다. 그의 신학이 필연적으로 정치신학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강연과 여행, 그리고 논쟁들도 필연적이다. 그의 문제의식은 치열하게 ‘문제에서 문제로’ 옮겨간다. 그의 질문 혹은 문제의식의 답은 언제나 ‘말씀’을 통해서 온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자신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신학을 그는 “길위의 신학이며 시간속의 신학”(405) 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러한 그의 신학여정을 진정한 의미에서 ‘신학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근원적인 삶의 의미를 묻는 몰트만의 신학은 크게 前期와 後期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전기는 1964년에 출판되어 한 순간에 그를 바르트나 몰트만과 같은 동렬에서 신학의 거장이자 세계적 인물로 만들었던 『희망의 신학』에서『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을 거쳐『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1975)를 출판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다. 1980년 ‘신학을 위한 조직신학적 기여’를 펴내기 시작한 일련의 과정은 후기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1980년에 몰트만은『삼위일체와 하나님나라』를 출판한다. 그리고 그는 이책을 “‘신학을 위한 조직신학적 기여’시리즈를 위한 기초적인 토대가 되었다”(413)라고 평가한다. 적어도 몰트만 자신의 회고에 충실하다면 그가 1980년 ‘신학을 위한 조직신학적 기여’를 펴내기 시작한 일련의 과정은 그의 신학에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났던 시기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나는 이것을 ‘몰트만 신학의 전회’라고 부르고 싶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렇지만 『성령의 능력안에 있는 교회』(1975)부터 나는 하나의 쟁점에 더는 집중할 수 없었다. 더 많은 관점 아래서 다루어야 할 일련의 주제들이 내게 주어졌다. 그래서 1980년에 나는 다른 방법으로 ‘신학을 위한 조직신학적 기여’를 펴내기 시작했다. ...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말했던 것을 또 다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가 이미 발견했거나 제안할 수 있다고 생각한 새로운 것만을 다루고 싶었다. 나는 새로운 체계나 나의 교의학이나 새로운 교과서를 펴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 신학적 대화를 이어가는 일에 ‘기여하려고’ 시도했다. 신학을 위한 나의 기여는 과거와 현재의 신학자들과의 긴밀한 ‘대화’를 전제하며 내가 제안한 내용에 대한 대화에 참여한다. 인간의 신학은 길위의 신학이며 시간속의 신학이다. 나는 나의 시간속에 있고 나의 자리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더 크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신학의 전체안에 두려고 노력했다.(...) ‘기여’라는 표현과 ‘제안’이라는 수단은 그동안 암묵적으로 전제되었던 내 자신의 관점의 절대성을 폐기하려는 나의 의도를 드러낸다.”(404-5)

몰트만 신학의 전회는 ‘그동안 암묵적으로 전제되었던 내 자신의 관점의 절대성을 폐기’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내 자신의 관점의 절대성을 폐기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몰트만은 ‘삼위일체론적 사고’를 제시한다. 몰트만의 말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자.

 “...나는 이 새로운 신학시리즈를 ‘사회적 삼위일체론’으로부터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 안에 있는 친교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과 새로운 ‘삼위일체론적 사고’를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우리가 관계속에서, 친교속에서, 변화속에서 사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대상의 분리와 격리가 없이는 활동할 수 없는 실체와 주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낡은 사고를 해체하고 싶었다. ...이 사실을 더 분명히 깨달았을 때 나는 예전의 책에서 취했던 논리, 즉 ‘긍정이 아니면 부정’이고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고 결정하던 변증법을 버렸으며 관계와 친교의 변화속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이러한 사고를 나는 일반적으로 ‘삼위일체론적 사고’라고 불렀으며 특별히 ‘순환적 사고’라고 불렀다.”(406-7)

몰트만에게 ‘내 자신의 관점의 절대성을 폐기’한다는 의미는 곧 “하나님 안에 있는 친교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과 새로운 ‘삼위일체론적 사고’를 적용하는 것이다. 그에게 삼위일체론은 신학의 뿌리이자 토대이다. 문제는 지금 그가 자신의 뿌리였던 삼위일체론을 근본적으로 재반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금 새로운 ‘삼위일체론적 사고’를 천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그가 ‘하나님 안에 있는 친교의 관계’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가 주창하는 ‘하나님 안에 있는 친교의 관계’는 무엇인가?

몰트만에게 ‘친교의 관계’란 ‘대상의 분리와 격리가 없이는 활동할 수 없는 실체와 주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낡은 사고의 해체’를 의미한다. 곧 ‘실체론적 주객도식의 폐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아래 있던 서방교회의 전통을 해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은 흔히 ‘심리학적 삼위일체론’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본질적으로 삼위일체론을 ‘단자론적 일치개념과 군주론적 일치개념’을 그 토대로 해명하는 방식이다.(408) 하지만 몰트만은 지금 ‘심리학적 삼위일체론’이 아니라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삼위일체론’은 곧 ‘삼위일체론적 사고’를 말한다. 그는 이러한 사고유형을 ‘변증법을 버리고 순환론적 사고를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나는 몰트만이 적어도 이 부분에서 변증법을 매우 협소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변증법은 순환론적 사고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론적 사고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몰트만의 신학이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537)라는 원초적 질문과 “나의 하나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35)라는 또 하나의 근본적 질문의 연계에서 출발했다면 그는 과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는가?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자신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고 계시며 우리를 사랑으로 기대하시는 분에게 이를 넘겨줄 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글을 쓰면서 나의 삶이 풍성한 감사로 가득 차 있음을 경험했다. 초기의 죽음의 경험이후에 내게 삶은 항상 놀라운 선택이었으며 모든 아침이 즐거운 놀라움이었다.”(538)

쉽게 읽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다른 글쓰기 현안들이 있어서 빨리 읽어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책을 한 번 읽어내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 한 번 정독하고 난 후 제대로 된 글쓰기가 어려워 다시 한 번 정독하는데 거의 또 한 달이 걸렸다. 당연히 다른 글쓰기가 미루어졌다. 두 번째 정독이 끝난 후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내가 신학학위논문을 쓴다면 학위논문 몇 편도 쉽게 쓸 수 있겠다”라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과대망상 아니냐고? 아니다. 나는 지금 사실을 말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자신할만큼 이 책속에는 신학도들이 집중해야 할 신학의 모든 주제가 담겨있다. 또 거의 한 세기를 풍미한 신학자들과 그들이 활동했던 생생한 현장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자료들이 우연적,개별적,독립적으로 그저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몰트만’의 시각으로 ‘인과적 관계’를 맺고 있다. 씨줄과 날줄로 공시적, 통시적으로 촘촘히 엮여져 있다는 뜻이다. 몰트만은 신학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십자로(사거리)에서 마치 교통순경처럼 두 팔을 흔들며 지휘하고 있다. 이런 확실한 안내를 받으면서 신학의 사거리에서 길을 찾지 못한다면 신학이라는 운전석에 앉을 자격이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 방대한 책을 번역하신 분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번역책임을 맡으신 이신건교수님의 노고를 기억하고 싶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도전을 받게 되기를 기대한다. 옥에 티같이 가끔 번역상의 오류가 보인다. 특히 몰트만의 부친이 ‘1939년에 세상을 떠났다’라는 표현(22,456)은 명백한 오역으로 보이며, ‘나의 모친의 여동생들’이라는 표현(26)은 ‘내 이모님들’로 표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가끔은 ‘조사’하나가 문맥을 전혀 다르게 왜곡할 수도 있다. 예컨대 ‘당신은 내게 오십니까?’라는 표현(53)은 명백히 ‘당신이(께서) 내게 오십니까?’로 표현해야 원래의 뜻이 선명하게 살아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