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와의 대담

국민일보 2004.6.17



△요즘 한국 교회에서 신학교육 개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참다운 신학이란 무엇입니까.

-카를 바르트의 집에 걸려 있는 그림 중에 세례 요한이 긴 손가락으로 예수님을 가리키는 장면이 담긴 그림이 있습니다. 모든 신학은 이렇듯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합니다. 신학은 단순합니다.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따라서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 아는 사람들은 신학을 가르치든 아니든 이미 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사님이 주창한 '희망의 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은 영원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여성적이고, 믿음은 남성적입니다. 소망, 즉 희망은 아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9장 6절에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소망의 시작을 표현합니다. 소망은 '중생의 힘' 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 소망입니다. 우리는 그 소망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소망은 이 시대를 향한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소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박사님의 '희망의 신학' 출판 40주년을 맞았습니다. 박사님의 책이 세계에 끼친 영향과 또한 지금 생각했을 때 부족했던 신학적 성찰은 무엇입니까.

-희망의 신학은 64년 독일에서 처음 출간됐으며, 67년에 미국에서도 번역 출판됐습니다. 미국에 크게 영향을 줬고, 72년에 시사주간지 타임이 크게 다뤘습니다. 서구인들이 제 책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향한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적지 않은 미국인과 신학자들이 '희망의 신학'을 미국적 낙관주의를 증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남용했다는 것은 크게 아쉬운 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낙관주의 일변도로 가는 것을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에는 희망과 더불어 십자가와 고난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희망의 신학'이 추구하는 최종적인 귀결점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이 피조물 가운데 온전히 거하시는 것,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희망을 가지려 해도 절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신학'은 작용하는 것인가요? 특히 폭력과 죽임의 문화에 익숙한 사회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희망에 관한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힘을 가진 자의 교만이고, 다른 하나는 힘없는 자의 절망입니다. 테러리즘과 전쟁같은 위협 앞에서 생명을 향한 소망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희망의 덕목은 인내라는 사실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너희는 생명을 사랑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생명을 사랑하고 죽임의 문화와 폭력에 저항합니다. 모슬렘들은 죽으면 알라에게로 간다고 하며, 죽음을 해방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뿐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리라"고 기도하는 것 같이, 이 땅의 절망과 좌절을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고 생명의 세계를 이뤄야 합니다.

△소위 현대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모던이나 포스트모던과 같은 개념보다도 현대에 더 적합한 표현은 세계화(Globalization)입니다. 세계화 시대에서 기독교인들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어떤 기독교적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세계화의 도전 앞에서 전체 기독교 이름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크리스천 간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비록 교회마다 색깔과 주장이 다르더라도, 세계화가 가지고 있는 위험과 위협 앞에서 같은 소리를 내며 진리를 변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뿐 아니라 종교간 대화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종교다원주의는 경계해야 합니다. '종교간 대화'도 좋지만, 기독교인들은 항상 선교적 마인드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종교다원주의가 팽배하고 종교간 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대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종교간 대화' 이후 어떤 '선교적 신학'을 제시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종교간 대화는 서로 다른 종교를 지닌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종교들이 평화 공존할 수 있도록 하지만, 종교간 대화 자체를 통해 타종교인들이 결코 기독교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방한 기간에 강연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강조하셨는데요.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적 소망의 기초이며 힘이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속으로 오심과 함께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잘못되고 모순된 삶 가운데 참된 삶이 시작됩니다. 떠오르는 태양 빛과 물러가는 저녁 그림자들 사이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자본주의에 내재된 탐욕과 테러리즘이 분출하는 증오, 안보 정치 속에 나타나는 두려움 등이 있습니다. 영과 육체, 두려움과 희망, 미움과 사랑 사이의 전투에서 끝까지 싸우는 것은 우주적이고 종말론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런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의 원천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마지막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이며, 이 새 창조의 결과는 하나님의 공의의 기반 위에 영원히 존속되는 세계입니다. 심판의 목적은 인간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은 심판을 기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평화주의자든 아니든, 이번 이라크 전쟁에는 반대합니다. 이미 독일정부도 반대했습니다. 전쟁을 위한 명분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에 동참했었습니다. 내게 전쟁은 그 하나로 족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크리스천들이 작은 믿음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신뢰하시는데 비해, 우리는 그분의 신뢰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위기지요.

△지난 시절을 회고해 볼 때, 인생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인생이란 사랑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죽은 것입니다. 사랑에 거하고 사랑을 주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