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회 신학의 정체성과 과제

박명수

 

서론

한국성결교회는 장로교, 감리교와 더불어 한국의 가장 중요한 교단의 하나로 인정받아왔다. 그리고 성결교회의 신학교육기관인 서울신학대학교는 한국신학교육을 이끌어 가고 있는 중요한 신학교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이런 외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성결교회는 자신의 신학의 정체성에 대해서 계속 논란을 해왔다. 교단의 신학은 교단의 정신이다. 따라서 교단의 신학이 제대로 수립되고, 강조되지 않으면 그것은 내실이 없는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결교회는 신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아울러서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성결교회의 신학을 발전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본 연구는 먼저 성결교회의 신학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역사적으로 살펴본 뒤에, 이 정체성에 근거해서 성결교회 신학의 특색을 신학적으로 분석한 다음에, 이것을 성결론을 중심으로 타 교파와 비교하여 성결교회의 위치를 살펴 본 다음에, 앞으로의 성결교회의 신학의 발전을 위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I. 성결교회 신학의 정체성

성결교회 신학의 뿌리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성결교회가 역사적으로 자신의 뿌리를 무엇이라고 정의하였는가를 살펴보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명직 목사는 1925년에 쓴 [성결교회약사]에서 성결교회를 "오직 감리교회의 개조인 요한 웨슬레를 이어 일어나 곧 초시대의 감리교회와 같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생긴 단체이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결교회의 신학은 "요한 웨슬레의 성경해석의 근본적인 도리와 만국성결교회의 신앙개조를 토대"로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만국성결교회는 19세기 말 미국에서 생긴 급진적 성결파이다. 이천영 목사는 [성결교회사]에서 성결교회의 신학을 "세계복음파교회"와 맥을 같이하는 "알미니안계통인 웨슬리안 체험주의에 입각한 복음주의신학"이라고 밝힌다.

이것을 종합하여 볼 때, 성결교회는 전통적으로 자신의 신학적 뿌리를 첫째 개신교 복음주의, 둘째 웨슬리안 알미니안주의, 셋째 19세기의 성결운동이라고 이해했다. 전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강근환 박사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신학적 전통은 동양선교회와 미국의 성결운동을 통한 웨슬리안 알미니안 복음주의적 프로테스탄티즘"이라고 밝히고 있다. 강근환 박사의 성결교회의 신학적 뿌리에 대한 정의 가운데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전통이 다 포함되어 있다.

1) 개신교 복음주의

첫째는 개신교의 복음주의적인 전통이다. 성결교회 헌법 제1장 총강 제6조는 "본 교회의 기초교리는 기독교 개신교가 일반적으로 믿는 복음주의"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헌법 제1장 총강 제9조는 "본 교회는 복음주의인 타 교파와 교인의 교제를 가져 친선을 도모하며"라고 명시하고 있다.

성결교회는 개신교에 속하는 단체이다. 모든 개신교는 루터의 칭의 교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성결교회가 성결을 강조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천주교의 공로구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루터의 칭의 교리 위에 세워졌다. 성결은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목적이다.

복음주의는 18세기 영미에서 일어난 대각성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19세기의 부흥운동과 선교운동을 주도하고, 20세기에 와서 자유주의와 투쟁하면서 형성된 개신교의 주요 흐름이다. 웨슬리안 역사가인 스미쓰는 복음주의의 특색은 첫째 성경의 권위를 분명하게 고백하고, 둘째 중생의 체험을 강조하며, 셋째 전도를 그의 사명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결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한다. 성결교회는 성경을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또한 참된 신앙이란 단지 전통적인 교리에 대한 지적인 동의나 화려한 의식에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전례주의도 아닌,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이것이 중생의 신앙이다. 또한 성결교회는 모든 인간은 구원의 대상이며, 교회는 이 선교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믿는다.

성결교회의 역사에서 복음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해방 이후이다. 해방 이후 한국교회는 WCC의 가입문제로 심각한 논란을 거듭하였고, 이런 상황에서 성결교회는 자신의 신학적 위치를 복음주의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미국의 성결운동의 영향이 크다. 1940년대부터 미국의 성결운동은 소수의 분파운동에서 벗어나서 개신교 복음주의의 넓은 세계에 가담하게 되었고, 미국의 NAE를 형성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런 영향이 동양선교회를 통하여 한국교회에 전달되게 되었고, 한국의 복음주의운동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 뒤에 한국성결교회는 빌리 그래함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복음주의 운동에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한국의 복음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2) 웨슬리안 알미니안주의

둘째는 웨슬리안 알미니안의 전통이다. 성결교회는 폭 넓게는 개신교 복음주의와 교류하고 있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웨슬리안 알미니안 전통에 서있다. 여기에서 알미니안이라고 하는 것은 칼빈주의와 비교하여서 사용하는 말이다. 칼빈주의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 나머지 예정론을 주장하는 것에 대항하여 알미니안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고 동시에 모든 인간이 다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임을 주장한다. 웨슬리는 이런 의미에서 자신을 알미니안이라고 주장했고, 한국 성결교회도 이런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성결교회가 알미니안이라고 말할 때, 이것은 일반적으로 칼빈주의자들이 이해하는 알미니안과는 다르다. 성결교회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믿지만, 선행적 은총으로 자유의지가 회복되었다고 믿는다. 아울러서 성결교회는 인간의 결단을 강조하지만, 이것은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기 위한 결단이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결단은 아니다. 칼빈주의는 알미니안주의를 인본주의라고 주장하지만, 성결교회는 원죄를 부인하고 자유의지만 강조하는 자유주의화된 알미니안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원죄를 인정하지만 선행적 은총과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 응답할 수 있다고 믿는 복음주의적 알미니안주의(Evangelical Arminianism)를 주장하는 것이다.

성결교회가 알미니안이라고 할 때, 자유의지를 인정하고 구원의 보편성을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결교회가 웨슬리안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구원의 두 단계, 즉 중생과 성결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주지하듯이, 종교개혁 당시 루터는 천주교의 공로신학에 대항해서 칭의를 강조했다. 또한 칼빈은 이 칭의는 중생과 병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신앙의 기초단계 다음의 과정에 대해서 분명한 목적을 제시하지 못했다. 루터는 신자의 생활을 "의인임과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고 표현했고, 칼빈은 중생 이후에 영적으로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동시에 이 세상에서는 온전한 성화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의 공로구원을 타파하는 데는 큰 공을 세웠지만, 구원받은 신자가 어떻게 온전한 신자가 되는가는 분명한 대답을 주지 못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웨슬리는 칭의와 중생으로 이루어지는 초기의 구원이 보다 온전한 구원이 되기 위해서는 두 번째 은혜, 곧 성결의 단계에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점이 웨슬리의 강조점이다.

사실 기독자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은 초대교회의 중심주제였다. 하지만 기독자의 완전이라는 번역은 문제가 있다. 기독자의 완전이라고 하면, 보통 절대적인 완전을 생각하게된다. 하지만 초대교회에서 이 말을 사용할 때, 이것이 절대적이고 정적인 완전이 아니라 동적이고 목적론적인 완전을 의미했다. 즉 기독교인은 온전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Perfection (텔레이오시스) as the goal (스코포스)"). 웨슬리 연구의 권위자인 아뚛들러에 의하면, 이 목적으로서의 완전이 웨슬리가 말하는 성결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Christian Perfection을 "기독자의 완전"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온전한 기독교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지금까지 개신교신학은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주로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웨슬리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구원받은 사람의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문제삼았다. 이점에 있어서 웨슬리는 개신교신학이 가지는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3) 19세기 성결운동

셋째는 19세기말 미국에서 일어난 성결운동이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웨슬리의 성결의 복음을 다시 한번 일으키고자 하는 강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것이 1867년의 전국성결연합회이며, 이것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수많은 성결교파들의 모체가 되었다. 또한 여기에서 정의된 성결론은 성결파들의 공통신조가 되었으며, 아울러서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의하면, 성결은 인간 내면에 있는 부패성의 변화이며, 이것은 성령세례로 가능하다. 한국 성결교회의 성결론은 이것을 따르고 있다. 한국에 성서학원을 처음 설립할 때, 다른 선교회들이 연합해서 학교를 운영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여기에 대해서 동양선교회는 웨슬리안 성결론을 분명히 가르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하지만 이런 제안은 거부되었고, 결국 동양선교회는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미국에는 신유운동과 전천년설적인 재림사상이 매우 강하게 퍼져 있었다. 성결운동 가운데는 중생과 성결의 전통적인 웨슬리안의 복음만을 주장하는 단체와 이것과 더불어 신유와 재림의 복음을 받아들이자는 그룹이 있었다. 전자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주류라면, 후자는 일반적으로 급진파 성결그룹(Radical Holiness Group)이라고 불리운다. 전자에 속한 그룹이 애즈베리와 나사렛 교회라면, 후자에 속한 그룹이 하나님의 성서학원과 만국성결교회이다. 만국성결연맹은 1920년대에 여러 성결그룹들과 연합하여 필그림 성결교회가 되었고, 1960년대 말에는 웨슬리안 감리교회와 합하여 웨슬리안 교회가 되었다. 한국성결교회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단체가 바로 이 단체이다. 이 만국성결교회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온전한 복음 혹은 사중복음이라고 부르며 강조하여 왔다. 성결교회의 모체가 되는 동양선교회는 이 만국성결연맹으로부터 주된 후원을 받았으며, 그 초기 선교사들은 다 만국성결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이다.

이 급진파 성결운동은 오늘날 오순절 운동의 뿌리가 되었다. 급진파 성결운동은 자신들을 종종 오순절 운동이라고 불렀다. 성결교회 헌법 전문에는 "본 교회는 동양의 모든 나라에 순복음을 전하려는 사명 하에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순복음이라는 것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을 말하는 것으로, 방언에 관한 문제만 제외하면 오늘날의 순복음 교회와 거의 유사하다. 사실 초기 성결교회는 성령을 통한 내면적인 변화도 강조했지만, 성령을 통한 능력도 강조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급진적인 성결운동은 오순절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성결운동과 오순절운동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상에서 성결교회의 신학적인 뿌리를 살펴보았다. 이것을 종합하여 보면, 성결교회의 신학은 1) 종교개혁적인 전통을 이어받아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18세기 이후부터 일어난 복음주의의 전통을 따라 성서의 권위와 중생의 체험과 전도의 사명을 강조하고 (개신교복음주의), 2) 알미니안의 전통을 따라 비록 인간이 타락했지만 선행적 은총으로 자유의지를 회복하고, 동시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을 믿으며, 웨슬리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신자는 칭의의 은총 다음에 이차적인 은혜, 곧 성결의 은혜를 추구해야 함을 믿으며(웨슬리안 알미니안), 3) 19세기의 급진적인 성결운동을 따라 중생과 성결의 영적인 구원뿐만이 아니라 신유와 재림이라는 성서적 메시지를 온전히 전하여(Full Gospel) 영육 간의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을 추구하며, 아울러서 성령의 능력으로 온 세계에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선교지향적인 신학이다(급진적인 성결운동).

4) 성결교회의 신학적 배경에 대한 오해

지금까지 일부 인사들 가운데는 성결교회의 신학적인 배경을 심프슨(A. B. Simpson)과 무디 성서학원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역사편찬위원회는 1981년에 나온 자료에서 "요한 웨슬레의 신학적인 배경과 A. B. Simpson의 사중복음, 그리고 무디 부흥운동과 관련된 동양선교회 설립자들의 신앙체험과 동양선교회의 신조가" 성결교회에 계승되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결교회가 사중복음을 주장하고, 이것은 심프슨의 사중복음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사중복음은 19세기 후반의 미국의 복음주의와 급진파 성결운동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었으며, 이것이 한국성결교회에 유입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사중복음의 내용 가운데서도 심프슨의 성결론과 종말론은 한국성결교회의 것과 다르다. 웨슬리안 성결운동은 성결을 부패성의 제거라고 보지만, 심프슨은 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종말론에 있어서도 심프슨은 성결교회와 같이 종말에 대한 미래주의적 해석을 유보하고,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동양선교회 창시자들이 심프슨의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심프슨의 신학은 동양선교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동양선교회 창시자들이 무디 성서학원에서 공부하였기 때문에 성결교회의 신학이 무디 성서학원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동양선교회는 무디 성서학원의 방식을 따라서 동경 성서학원과 경성 성서학원을 운영했다. 그리고 이들이 강조하는 실천적인 사역자를 양성하려고 하였다. 또한 무디 성서학원은 동양선교회와 같이 전천년설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무디 성서학원은 웨슬리안 성결론을 반대했고, 이 세상에서의 온전한 성화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무디학원은 웨슬리안이 아니다. 따라서 동양선교회 창시자들이 무디 성서학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제한적인 의미에서이다.

 

II. 성결교회 전통의 신학적인 재구성

성결교회 신학은 성결교회의 정신을 내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성결교회의 입장에서 신학 전반을 재구성한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웨슬리신학이 있다. 웨슬리 신학은 신학의 근거와 구원론에서는 성결교 신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한국성결교회와 다른 점도 있다. 예를 들면, 웨슬리에게는 신유와 재림이 강조되고 있지 않다. 또한 오순절적인 성령의 능력도 강조되고 있지 않다. 교회론에 있어서도 웨슬리에게는 영국 고교회적인 전통이 남아 있다. 이런 것은 성결교회와는 다르다. 따라서 우리는 웨슬리의 근본적인 정신을 따라가야 하지,만 웨슬리 신학을 전체적으로 다 따를 수는 없다.

성결교회가 자신의 전통에 맞는 신학을 완성하려면, 오순절 운동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오순절 운동은 20세기 기독교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운동 가운데 하나이며,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성결교회는 신유, 재림,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 비전례적인 예배 형식 등 오순절 운동과 많은 점에서 유사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오순절 운동이 성령의 역사에서 은사를 강조하는 한편, 성결운동은 내적인 삶의 변화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순절 운동과 성결운동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성결교회가 나름대로 자신의 전통에 맞는 신학을 형성하는 것은 긴 시간이 요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성결교회의 전통을 조직신학적인 틀에 비추어서 조명하여 봄으로서 앞으로 성결교회의 신학을 보다 깊게 형성하는 데 작은 방향이라도 마련하고자 한다.

1) 성서의 권위와 체험적인 신앙

첫째, 성결교회는 신학은 성경의 권위와 체험적인 신앙에 근거해야 한다고 믿는다. 성경은 기독교 교리와 생활의 규범이 된다. 성결교회는 19세기 독일에서 시작된 성서의 고등비평을 반대한다. 그것은 고등비평이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계시의 절대성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성 성서학원의 전통이며, 성결교회헌법 제5조가 강조하는 것이다. 성결교회는 인간의 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성결교회는 정통교리일지라도 성경의 권위보다 우위일 수 없다고 본다. 개신교 정통주의, 특히 칼빈 정통주의는 초대교회 이후 신유는 끝났고, 계시록에 나오는 천년왕국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서는 분명하게 이것을 증거한다. 성결교회가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온전한 복음(Full Gospel)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전통적인 교회가 성서를 제대로 강조하지 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성결교회는 정통교리의 권위보다는 성서의 권위를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성결교회는 정통주의적인 복음주의가 아니라 "순수한 성서적인 신조를 중심하여 복음주의 노선을" 따른다.

성결교회는 성경은 단지 과거의 계시의 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되어야 할 책으로 믿는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과거의 책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책인 것이다. 이것은 웨슬리의 전통과 일치한다. 웨슬리는 그의 신학의 근거로서 성서와 경험을 강조하였다. 그는 성서의 권위를 믿지만, 동시에 성서의 내용은 오늘의 삶 속에서 체험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서 체험은 성서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체험이지 성서를 떠난 주관적인 체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체험은 신비주의적인 체험이나 자유주의적인 경험신학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2) 성령론의 재발견과 신학의 재구성

둘째, 성결교회는 신학전체에 있어서 성령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신학은 기독론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다. 하지만 성령론이 없이는 기독론이 제대로 위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신학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이다. 서구신학이 성령론을 제대로 강조하지 않고 기독론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측면만 강조하여, 단지 이상적인 인간이나 정치적인 해방자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구원론에 있어서도 강조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기독론은 그리스도께서 이천년 전에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사역에 강조점을 두어, 그 의를 덧입는 칭의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성령은 그 그리스도를 2000년 전의 분으로가 아니라 오늘의 구체적인 삶에서 역사하는 분으로 만든다. 그리스도가 오늘날 우리에게 현존하는 방식은 성령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구원론에서의 성령의 강조는 성화론의 재발견으로 이어진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사역이지만, 성화는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결교회는 성결은 성령세례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성령의 역사는 교회론에 있어서도 강조되어져야 한다. 교회는 인간이 만든 조직이 아니라 성령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찬주교는 성령론을 교회론에 종속시켜 성령의 역사를 제한했지만, 이것은 신약의 신앙과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 성령이 교회의 도구가 아니라 교회가 성령의 도구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지나친 관료주의에 빠지고 있다. 그러나 성령의 역동성이 없는 교회는 얼마가지 않아서 시들고 만다. 교회론이 성령의 역사를 중심으로 다시 형성되어야 한다.

3) 영과 육의 온전한 구원

셋째, 성결교회는 구원론에 있어서 보다 온전한 구원을 지향하고 있다. 일찍이 웨슬리는 "현재적 구원"(Present Salvation)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것은 칼빈주의가 현 세상에서는 죄에서의 온전한 구원이 불가능하고, 죽음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주장에 반대해서 이 세상에서도 죄의 용서뿐만이 아니라 죄의 세력에서도 해방받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현재적 구원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것은 구원을 내세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신학에서 구원을 현 세상에서 이해하는, 보다 성서적인 신앙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결교회는 현재적 구원이라는 말과 함께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학은 자범죄로 인한 징벌에서의 구원을 강조하였다. 이것이 칭의이다. 하지만 성결운동은 인간 내면에 있는 죄의 세력, 곧 원죄로부터의 구원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칼빈주의는 인간의 타락을 강조한 나머지 이 세상에서 죄의 세력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성결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것이 가능함을 믿었다. 이런 점에서 성결교회는 인간 본성에 대해서는 비관주의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에 근거해서 낙관주의를 갖고 있다.

칭의와 성결이 각각 인간의 죄와 관련된 영적인 구원이라면, 신유는 구체적인 육체의 구원이다. 성결교회는 인간의 육체는 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대상이라고 보았다. 심프슨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그러나 신유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신자의 특권이다. 칭의와 성결을 통해서 영혼이 죄에서 구원받고, 신유를 통해서 인간의 육체가 질병에서 해방된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인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모든 신자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져야 한다.

4) 선교지향적인 교회론

넷째, 성결교회는 선교적인 교회론을 갖고 있다. 성결교회의 원래 명칭은 복음전도관이다. 사실 성결운동은 19세기 말 미국 감리교회가 교권화되고 세속화되어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이것을 비판하고 새로운 선교운동을 일으키기 위해서 일어난 운동이다. 복음전도관은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운 교파를 세우기보다는 오직 복음전도에 힘쓰기를 원했다. 이것은 복음전도관이 성결교회로 명칭을 바꾼 다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명직 목사는 비록 교파가 되었지만 성결교회는 본래 전도본위의 단체이며, 앞으로도 그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성결교회는 선교중심적인 교회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조직에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의 많은 교파들은 교회의 조직문제 때문에 생겨났다. 장로교회는 장로제도를 주장하고, 감리교회는 감독제도를 주장하고, 침례교회는 회중제도를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그 교파들의 본질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성결교회는 어떤 특정한 교회조직을 고수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감독제도를 지켜왔으나, 해방 후에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장로교적인 의회제도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여 감독제도에서 의회제도로 바꾸었다. 이런 점에서 성결교회는 제도상의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떤 구조가 과연 성결교회가 선교적인 사명을 다하는 데 유익을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성결교회는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아 역동성있는 예배를 주장하여 왔다. 성결운동은 부흥운동의 산물이다. 19세기 말 감리교가 부흥하자 점점 전례화되었다. 그리해서 예배는 형식화되었고, 생동감은 사라졌다. 신자들은 교회에 오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없었다. 여기에 대해서 반대하고 나온 것이 성결부흥운동이다. 부흥운동은 근본적으로 전례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기보다는 형식에 치우치기 쉽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형식적인 전례보다는 기도와 찬송과 말씀과 간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5) 성결을 통한 사회의 개혁

다섯째, 성결운동은 기존의 어떤 신학보다도 강력한 개혁적인 모티브를 갖고 있다. 성결운동은 죄를 용인하는 신학이 아니라 죄를 제거하는 신학이다. 따라서 성결운동은 근본적으로 부정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사실 18세기의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영국사회가 산업화로 인하여 타락하였을 때 이것을 갱신하는 운동이었고, 19세기의 성결운동은 도시화로 인하여 기존의 도시가 황폐하여 있을 때 그곳에 들어가서 그들을 새로운 인간으로 만든 운동이었다.

성결운동의 사회개혁의 출발점은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의 더러운 본성을 변화시켜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 사회복음은 사회의 개혁을 구조적인 데서 찾았다. 하지만 인간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고 구조만 바꾸어진다고 해서 새로운 사회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결운동은 사회의 문제의 근저에 인간의 죄성이 자리잡고 있음을 인식하고, 성령세례로 새 사람을 만드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다.

성결운동은 전통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운동이다. 웨슬리가 산업사회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고, 19세기의 성결운동은 도심의 빈민들을 위하여 일했다. 성결운동의 일파인 자유감리교회의 창시자 로버트(B. T. Robert)는 가난한 자가 와서 마음놓고 예배드릴수 없는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성결운동은 여성의 역할을 크게 인정했다. 성결운동은 성령의 시대에는 남녀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성령 안에서 남녀는 다같이 하나님의 사역을 해야 한다. 실제로 성결운동은 수많은 여성사역자들을 배출하였다. 19세기 중엽의 팔머 여사, 19세기 말의 구세군의 캐서린 부드, 동양선교회의 3대 총재 카우만 부인 등은 몇몇 대표적인 예에 불과하다.

6) 종말론적인 역사이해

여섯째, 성결교회의 역사관은 종말론적이다. 성결교회는 전천년설을 믿는다. 전천년설은 역사를 비판적으로 본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인류는 진보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전천년설은 과학의 발달이 인류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과학이 적그리스도가 되어서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결과적으로 이 세상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종말을 고하게 된다고 믿는다. 이런 전천년설은 과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부정적인 측면을 인식하게 만들어 순진한 낙관주의에 빠지지 않게 한다.

전천년설은 역사의 주인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하게 만든다. 이것은 성결교회의 역사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인 일제말의 교단해산을 생각하게 만든다. 일제는 역사의 주인이 일본 천황이라고 가르쳤다. 여기에 대해서 성결교회는 역사의 주인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면 천황도 심판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성결교회의 해산은 역사의 주인은 그리스도라는 종말론적인 신앙 때문이었다. 이것은 성결교회가 자랑스럽게 간직해야 할 유산이다.

올바로 이해한 종말론은 역사를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게 된다. 사실 19세기 말 세계선교의 열기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신앙 때문이었다. 즉 예수의 재림 이전에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종말론적인 열기가 수 많은 사람들을 미지의 세계로 나가게 만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심판의 메시지는 도시의 환락가의 사람들에게 죄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했다. 즉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도시선교는 임박한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도록 하는 데서 출발했다. 강력한 종말론은 철저한 사회개혁으로 이어진다.

 

III. 성결교회 신학과 다른 전통들(성결론을 중심으로)

성결교회 신학의 특성은 개신교의 다른 단체와 비교하여 볼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는 성결교회의 신학의 핵심인 성결론을 주로 다룰 것이다. 그러나 성결교회는 자신의 특성을 주장하면서 다른 전통에 대해서 배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성결교회는 다른 전통의 특성을 존중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양한 전통들을 조화시키셔서 그의 역사를 이루신다고 생각한다.

1) 성결교회와 천주교회

성결교회의 핵심교리는 성결이다. 하지만 천주교 역시 거룩한 삶, 즉 공로를 강조한다. 그러나 성결교회는 천주교가 강조하는 공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천주교는 인간이 은총을 받아 그 은총으로 선을 행하고, 그 선행 곧 성결로 인하여 의롭다고 인정받는다고 가르친다. 다시 말하면, 천주교는 먼저 성화를 강조하고, 성화의 결과로 의인을 얻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화는 의인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천주교에서 성결은 구원의 조건, 곧 공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결교회는 성결을 개신교의 틀 안에서 이해한다. 무엇보다도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의 결과로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따라서 성결교회에서 성결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 추구해야 할 이차적인 은혜이다. 이미 웨슬리는 칭의는 구원의 문이며, 성결은 구원의 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칭의의 은총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성결의 은혜에 들어갈 수 없다고 발했다.

흥미있는 것은 이명직 목사의 회개의 단계와 천주교의 고해의 단계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천주교는 고해의 단계로 후회, 참회, 고백, 보속, 사죄선언의 5단계를 말한다. 그런데 이명직 목사도 그의 [기독교의 사대복음]에서 회개와 그 성립이라는 항목에서 각성, 통회, 고백, 변상, 사죄의 5단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란 단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요, 자신의 죄를 입으로 시인하고 거기에 합당한 변상을 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직 목사는 회개의 열매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구원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여, 천주교의 교리와의 구별을 말하고 있다.

2) 성결교회와 루터의 신학

성결교회는 개신교로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믿는다. 이 점에서 성결교회는 루터의 유산을 이어받는다. 그러나 루터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칭의는 강조했지만, 우리의 내면이 변화되는 실질적인 의는 강조하지 않았다.

성결교회는 원죄와 자범죄를 구분한다. 자범죄는 고의적으로 지은 죄로서 여기에는 죄의 벌이 뒤따른다. 이 죄의 벌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용서받는다. 하지만 이렇게 용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내면에는 원죄(부패성)가 남아있다. 그리고 이 원죄가 남아 있어서,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또 다시 자범죄를 짓게 만든다. 만일 원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죄에서 해방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칭의는 자범죄로 인한 죄의 벌에 대해서는 큰 해결책이지만, 그 자범죄를 짓게 만드는 원죄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성결교회는 죄의 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지만, 죄의 본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결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점에서 성결교회의 신학은 루터의 신학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성결교회 신학의 장점은 죄에서의 용서뿐만이 아니라 죄의 세력에서의 해방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3) 성결교회와 칼빈주의

칼빈도 루터와 같이 칭의를 강조하였다. 하지만 칼빈은 루터와 달리 중생도 강조하였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는 것이지만 중생은 인간의 내면에서 새로운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칼빈은 그리스도는 의롭고 동시에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어 의롭게 되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거룩을 본받아 실질적으로 거룩하게 된다고 보았다. 즉 칼빈은 의와 거룩을 분리하지 않았다. 칼빈은 이런 거룩의 시작을 중생이라고 보았다.

칼빈은 중생의 순간에 인간 내면의 죄성이 변화되기 시작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칼빈은 인간의 죄성은 인간의 육체성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온전히 죄성이 변화될 수 없다고 보았다. 즉 죄성에서의 온전한 변화는 육체가 사라진 죽음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서 성결교회는 죄성과 육체성을 분리한다. 육체는 하나님이 원래 만드신 것이지만, 죄는 타락 이후에 덧붙여졌다고 믿는다. 따라서 타락 이후에 덧붙여진 죄성은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칼빈주의는 인간의 죄성의 심각함을 믿어 이 세상에서는 온전한 성화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웨슬리안 성결운동은 인간의 부패성이 심각하기는 하지만 성령의 능력이 더 위대하여서 그 능력으로 죄성이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칼빈주의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강조점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칼빈주의가 온전한 성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반면, 웨슬리안은 그 가능성을 인정한다. 따라서 칼빈주의는 죄를 인간의 세상에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하는 반면, 성결운동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것을 이기려고 노력한다. 이런 점에서 성결운동은 칼빈주의보다 차원 높은 목적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4) 성결교회와 감리교회

성결교회는 웨슬리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특별히 성결교회는 웨슬리의 두 가지 은총, 즉 중생과 성화의 은총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성결교회는 18세기의 웨슬리의 전통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한국성결교회는 이것을 보다 발전적으로 계승한 19세기의 웨슬리안 성결론을 직접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19세기의 웨슬리안은 두가지 점에서 웨슬리의 성결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첫째는 성결은 부패성(원죄)을 정결케 하는 것이다. 웨슬리도 원죄를 인정하고 성결이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이것이 특별하기 강조된 것은 19세기 미국의 성결운동이다. 19세기 미국은 원죄에 관한 논쟁을 거듭했고, 이런 과정에서 웨슬리안 성결운동은 진보적인 사상에 반대하여 원죄를 강조했다. 둘째는 성결은 성령세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웨슬리도 성결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했다. 그러나 성결과 성령세례를 동일시한 것은 웨슬리의 제자 플렛쳐이다. 하지만 이것을 크게 강조한 것은 19세기의 성결운동이다. 따라서 19세기 성결운동은 인간의 부패성을 강조하는 철저한 정통주의와 성령의 능력을 강조하는 부흥운동이 만나서, 성결은 인간의 부패성을 성령세례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한국성결교회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19세기 감리교회의 주류는 인간의 원죄를 부인하고, 성결을 도덕률을 준수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웨슬리안 성결운동은 여기에 대해서 반대했다. 성결은 성령의 체험이며, 이것이 외적으로 표현된 것이 도덕이라고 본다. 따라서 성결운동의 강조점은 일차적으로 성령체험이며, 이차적으로 도덕적인 삶이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성결한 삶이 가능하지 않다. 이점에 있어서 성결운동은 감리교회와는 다른 차원에서 웨슬리를 이해한다.

5) 다른 성결교파들과 한국성결교회

사실 19세기 성결운동에서 많은 성결교파들이 나타났다. 19세기 중엽에 나타난 성결교파는 웨슬리안 감리교회와 자유 감리교회이며, 19세기 후반에 나온 성결교파는 나사렛교회와 만국성결교회, 구세군 등이다. 이들 모든 그룹은 다같이 위에서 언급한 웨슬리안 성결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중에서 신유와 재림을 받아들이는 단체는 만국성결교회이며, 이 단체는 현재 웨슬리안 감리교회와 연합하여 웨슬리안 교회가 되었다.

한국성결교회는 초창기에 만국성결교회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성결단체들 가운데서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을 다같이 강조하는 단체는 만국성결교회 밖에 없는데, 이 단체도 웨슬리안 감리교회와 합병되고 말았다. 사실 신유와 재림을 포함한 사중복음은 오히려 성결운동 뒤에 나타난 오순절운동에서 더 잘 찾아볼 수 있다. 사중복음을 주장한 만국성결교회와 동양선교회는 전통적인 성결운동에서 방언을 주장하는 오순절운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난 단체이다.

6) 오순절운동과 성결교회

성결운동이 감리교회에서 나왔다면, 오순절운동은 성결운동에서 나왔다. 19세기의 성결운동이 18세기의 웨슬리 부흥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20세기의 오순절 운동은 19세기의 성결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성결운동과 오순절 운동은 사실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중생, 성령세례, 신유, 재림, 그리고 체험중심의 신앙과 열정적인 예배 등 많은 점에서 유사점을 갖고 있다. 사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성결운동과 오순절 운동은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방언이 나오고 이것이 지나치게 강조되자, 전통적인 그룹은 자신을 성결운동이라고 부르고, 방언을 강조하는 그룹은 오순절운동이라고 불리워졌다.

20세기 초에 성결운동과 오순절 운동 사이에는 성령세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성결운동은 성령세례가 내적인 성결이라고 보는데 비하여, 오순절 운동은 성령세례의 일차적인 증거는 방언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성결운동이 성령의 변화시키는 사역에 강조점을 둔다면, 오순절 운동은 방언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에 더 큰 강조점을 두고 있다. 지금 한국성결교회는 초기처럼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성결교회는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외적 은사가 아니라, 인간이 변화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일찍이 성결운동은 오순절 운동이 은사를 강조하고 성결을 강조하지 않으면 결국 잘못될 길로 나갈 것이라고 보았다. 동시에 성결운동도 오순절 운동의 역동적인 신앙을 배워야 할 것이다.

 

IV. 성결교회 신학의 발전을 위한 제언

성결교회는 지금까지 훌륭한 신앙의 전통을 가지고 발전하여 왔다. 이 전통은 웨슬리안 성결운동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폭 넓게 다른 복음주의 교단과 교류를 통해서 발전하여 왔다. 하지만 이것을 신학적으로 정리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열심을 다하였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 성결교회의 신학이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서울신학대학교에는 다양한 곳에서 공부한 신학자들이 가르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성결교단에 속해 있지만, 대부분 해외에서 본 교단의 전통과는 관계없는 곳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 따라서 서울신학대학교에서는 다양한 신학이 소개되고 있지만, 이것을 하나로 묶어서 성결교회의 신학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신학대학교와 성결교단은 이것을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결교회의 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 성결운동의 자료의 수집과 정리

첫째 성결교회의 전통에 대한 연구를 새롭게 해야 한다. 각 교파의 신학은 그 교파의 전통을 가지고 씨름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루터교 신학이 루터의 전통을 연구하는 데서부터 출발하고, 칼빈의 신학이 칼빈의 전통을 연구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듯이, 성결교회의 신학은 성결교회의 전통을 연구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성결교회의 전통은 웨슬리로부터 시작하여 19세기 성결운동을 거쳐 20세기 한국 성결교회로 이어진다. 사실 웨슬리의 연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19세기 성결운동에 대한 연구도 매우 활발하다. 지금 미국에서는 성결운동에 대한 박사논문이 일년에 수십 편씩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성결교회의 전통에 대한 연구는 이제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한국 성결교회의 신학의 보고는 [활천]이다. 이런 점에서 [활천]의 영인본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기타 초기 성결교회의 저술을 모으고, 그것을 재출판하여 전문적인 학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성결교회에 관한 문헌조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2) 목회현장, 한국문화,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연구

성결교회의 신학은 단지 복고주의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오늘의 상황에서 적응성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성결교회를 살리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오늘의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시도들이 있었으며, 그 결과는 어떤 것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목회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또한 신학자들도 목회와 선교현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앞으로의 신학은 신학자들이 상아탑에서 만들어낸 신학이 아니라 목회현장의 교역자들과 일반 신자들의 삶과 경험도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 성결교회의 신학은 한국인의 냄새가 베어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은 한국인들이 어떻게 복음을 이해했는가를 살펴보고,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글, 한국 문화, 한국인의 풍습에 대한 연구도 성실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복음으로 해석하고,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사회는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시대의 장점과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우리의 전통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학문과도 부단한 대화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금은 소위 포스트 모던사회로서 모든 것을 이성적인 논리로서 설명하려는 이전의 학문의 틀이 깨지고 있으며, 감성적인 측면과 비논리적인 측면이 당당한 위치를 얻고 있다. 이런 것은 신학이 더 이상 논리의 멍에에 매이지 않고 나갈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고 있다.

3) 새로운 파라다임의 요구

성결교회의 신학은 성결교회의 장점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기존의 신학들은 각각 자신들의 전통을 신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그런 신학들이 성결교회의 장점을 잘 드러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주류 서구신학은 이성중심의 논리적인 신학이었다. 이것은 어거스틴, 아퀴나스, 그리고 칼빈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전통이다. 하지만 지금 포스트 모던 사회에서는 이런 파라다임이 깨어지고 있다. 오히려 경험을 인정하고, 논리보다는 이야기로 설명하는 것이 각광을 받고 있다. 성결교회의 신학에는 전통적인 파라다임보다는 이런 새로운 파라다임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성결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지만, 이것을 교리의 근거로 보다는 삶의 지침으로서 본다. 다시 말하면, 성결교회는 웨슬리의 전통을 따라서 성경과 경험을 신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는다. 즉 성경의 내용은 객관적인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 가운데서 체험되어야 할 내용이다. 이런 점에서 성결교회의 신학은 처음부터 체험을 신학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한다.

그런데 이런 체험은 논리로 설명하기보다는 이야기로 전달된다. 성결교회는 오래 전부터 간증을 신앙표현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정했다. 간증은 이야기이다. 성결운동의 문헌들은 수많은 간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성서 자체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신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의 우리의 삶 속에서 반복된 것이 간증이다. 간증은 논리처럼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만일 이야기가 신학적인 차원에서 승화된다면 보다 생동감이 있는 신학이 될 것이다.

또한 지금 우리는 대중 시대에 살고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전통적인 사회가 귀족사회였다면, 오늘날은 대중사회이다. 대중들의 교육도 높아졌고, 구매력도 커졌다. 따라서 사회의 모든 분야가 이 대중들을 겨냥해서 전통적인 구조를 새롭게 개편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상품들의 주고객이 귀족들이었는데 비해서, 요즈음은 일반대중들로 바뀌었다. 여기에 따라서 대중들의 기호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게 된다. 신학도 마찬가지이다. 엘리트만 이해할 수 있는 신학이 아니라 보통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4) 비슷한 전통의 국제적인 학술단체와의 교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결교회는 복음주의, 웨슬리의 전통, 19세기의 성결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런 그룹들도 자기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정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성결교회가 자신의 전통에 맞는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학문적인 교류를 해야 한다.

성결교회는 복음주의를 표방한다. 지금 복음주의의 학문은 과거의 수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매우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옥스포드의 맥그라쓰는 복음주의가 기독교의 미래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성결교회가 복음주의 신학을 유지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이들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서 기독교의 전통을 유지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성결교회의 특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성결계통의 신학자들과의 교류를 가져야 한다. 지금 미국에는 웨슬리안 신학회를 중심으로 웨슬리안 성결운동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성결이 과연 무엇이며, 성결운동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 왔고, 기존의 감리교회와는 어떻게 논쟁을 해왔고, 미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등 수많은 문제들을 잇슈로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Wesleyan Theological Journal을 중심으로 좋은 논문들도 나오고 있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신학을 형성해 나가는 데 좋은 참조가 될 것이다. 또한 애즈베리 신학대학원을 비롯한 성결계통의 신학교들과 교류확대 역시 매우 중요하다. 특별히 성결신학의 중심은 애즈베리이며, 우리와도 오랜 유대관계를 가졌었다. 지금 애즈베리는 미국에서 가장 발전하는 신학교의 하나이다.

성결교회의 신학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오순절 운동과의 교류도 중요하다. 20세기 초의 성결운동과 오순절운동이 방언문제로 갈등을 빗은 후에 지금 이 두 운동은 서로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20세기 세계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오순절 운동의 등장이다. 특별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유, 재림, 그리고 역동적인 예배형태 등은 오순절운동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우리는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많은 학문적인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5) 교단신학의 발전을 위한 연구지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성결교회의 신학발전을 원하여 왔다. 하지만 성결교단이 성결교회의 신학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투자하였는가? 교회개척과 해외선교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신학의 발전을 위해서 여기에 걸맞는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 아닌가? 이것을 위해서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신학의 발전은 연구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금 성결교회에는 수많은 학자들이 최종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성결교회의 유산과 씨름하면서 학문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결교회는 이들에게 성결교회에 관한 연구과제를 주고 재정적인 지원을 하여, 그 많은 인력들을 교단신학의 발전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사중복음 같은 주제를 제시하고 여기에 대한 각분야의 학자들을 모아서 종합적인 연구를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위해서 총회적인 차원의 기구가 설치되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재정을 확보하고, 학자들을 격려하며, 그 연구결과를 발표할 기회를 주고, 교회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성결교회 신학의 수립은 건물을 짓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가시적인 결과가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성결교회의 정신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자랑해야할 것은 건물이나 숫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우리교단을 세우신 그 뜻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6) 출판지원

모든 연구의 결과는 출판의 형태로 나타나야 하며, 이것을 사람들이 읽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상이라도 책으로 출판되지 않고, 그것이 읽히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된다. 이런 점에서 성결교단은 출판사업에 힘을 쏟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학 교재의 출판이다. 성결교회의 시각에서 집필된 성서신학, 조직신학, 교회사, 실천신학, 선교학 등이 나와서, 이 교재들을 가지고 신학생들이 공부하게 될 때, 진정으로 성결성이 강조된 신학교육이 될 것이다. 이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되고, 충분한 재정적인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서 신학 전문학술지의 활성화이다. 신학이 발전하려면 그 장이 있어야 하고, 그 장 가운데 하나가 전문학술지이다. 지금 서울신학대학에 몇 종류의 학술지가 있지만, 여기에 대한 교단과 목회자들의 관심은 매우 미약하다. 관객이 있어야 공연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독자가 있어야 출판이 가능하게 된다. 이런 학술지가 그때그때 성결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잇슈로 하여 다루어 주고, 여기에 일반교역자들이 읽고 토론하여 준다면, 이것은 성결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큰 공헌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번역 사업이다. 성결교회의 신학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선행연구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우리 성결교회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연구들이 외국에서 이미 진행되어 왔다. 이런 연구들을 번역해서 소개하므로 우리의 신학을 연구하는 데 기초를 삼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일반 신자들을 위한 경건 서적의 출판이다. 우리가 성결교회이지만 일반 신자들이 읽을 수 있는 성결 서적을 얼마나 출판하였는가? 웨슬리의 신성클럽은 경건 서적을 읽는 운동에서부터 시작했다. 진정한 성결운동이 이루어지려면 성결집회도 중요하지만, 읽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나와서 읽혀야 된다.

7) 신학교육의 재편성과 교역자 및 평신도지도자의 재교육

진정으로 성결교회의 신학을 형성하려면, 신학교에 이런 종류의 과목이 많이 개설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분야에 있어서 이런 강좌를 개설하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강의실에서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고, 토론되고, 아울러서 성결교회의 전통이 전수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성서와 사중복음," "성결 고전강독," "교회사와 사중복음," "목회와 신유"등과 같은 다양한 과목들이 개설되어, 우리의 전통을 연구하는 일들이 많아야 한다.

신학교육은 신학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총회 교육원과 각 지방회의 교육원을 통하여 성결교회의 역사와 신학을 가르치는 강좌가 개설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성결교회의 신학서적을 읽히고, 가슴에 새기도록 하여, 명칭만이 성결교회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성결사상과 성결생활이 이루어지는 성결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교역자들만이 대상이 아니라 교회의 중요 직분자, 더 나아가서 모든 평신도들에게까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신입교인교육과 직원교육의 프로그램에 성결성을 강조하는 과목들을 편성하여, 성결교인으로서의 긍지와 사명을 갖도록 해야 한다.

 

맺는

성결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역사적인 연구에 근거해야 한다. 지나치게 객관적인 사실을 무시한 체 주관적인 해석을 강조할 경우에 사실을 왜곡시킬 수가 있다. 지금까지의 많은 논란은 충실한 역사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결교회의 신학을 말하는 것은 미래의 한국 성결교회를 위해서이다. 따라서 과거의 역사적인 자료를 미래의 한국성결교회를 위해서 재해석하여 발전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성결교회의 신학을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한다.

성결교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복음주의 개신교의 틀 안에서, 웨슬리안 알미니안 신학의 전통 아래서 19세기의 성결운동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그런데 복음주의나 성결운동에 대한 연구가 지금까지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복음주의 내지는 오순절 성결운동의 부흥과 더불어서 이런 분야의 신학이 크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성결교회는 이런 세계교회의 흐름에 맞추어서 자신들의 위치를 재발견하고, 이것을 한국교회에 접목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성결교회의 신학을 발전시키는 일은 소수의 신학자의 몫만이 아니다. 성결교회의 신학은 몇몇의 신학자들의 창조적인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결교인들의 신앙이 용해되어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성결교인들이 이것이 우리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성결교회는 구체적으로 성결교회 신학의 발전을 위해서 신학자와 목회자, 더 나아가서는 평신도들까지 힘을 합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