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란 무엇인가?

W. Pannenberg, Systematische Theologie, Band 1, 1988, 11-18쪽

판넨베르크/정용섭 옮김

출처: 대구성서아카데미


"신학"(Theologie)라는 단어의 의미는 다층적이다. 오늘날의 언어 사용에서 보면 이 단어는 신학 대학에서 공부하는 훈련이라고 이해된다. 특히 인간의 인식론적 노력을 가리킨다. 그런데 플라톤적인 근원에서 볼 때 이 단어는 시인의 언설과 노래로 신성을 알리는 로고스를 일컬었다(Staat 379a, 5f.). 즉 신학은 철학자들을 통한 반성적 연구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 철학의 세 가지 훈련 중에서 이 한 가지를 "신학적"이라고 불렀다(Met 1026a 19와 1064b 3). 그것은 나중에 소위 "형이상학"이라고 일컬어진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모든 타자를 포괄하고 토대하는 모든 존재자들의 원리인 신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스토아 학자들은 철학자들의 "신학"이라는 점에서 신성의 본성에 속하는 이것을 시인의 신화적 신학으로부터, 또한 국가적 예배의 정치적 신학으로부터 구별했다. 여기서 신학은 더 이상 철학적 연구의 대상만이 아니라 자체의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2세기에 등장한 기독교의 언어 관습은 철학적 경향이 농후했는데, 여기서의 의미도 역시 다층적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디오니소스의 신화론에 대해서 "무상하지 않은 로고스의 신학"을 대비시킨 것은(Strom Ⅰ,13,57,6) 단지 로고스 학설만을 생각한 게 아니라 로고스 자체의 하나님 선포를 생각한 것이다(12,55,1 참조). 신학은 신적인 진리를 하나님에게서 영적인 감동을 받아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은 후기의 기독교적 언어 관습에서도 여전히 적용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 기자들은 한결같이 "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구약성서의 예언자들과 예수의 신성을 언급하는 "신학자"라 할 수 있는 요한복음 기자는, 또한 그 뒤에 등장해서 삼위일체론에 대해 380개 항목으로 진술한 그레고리우스(Gregor von Nazianz)와 같은 교부, 그리고 "새로운 신학자"인 시메온(Symeon) 같은 이도 역시 신학자다. 그런데 이미 클레멘스의 경우에 신적인 것에 대한 철학적 지식은 "신학적인" 것이었다(Strom Ⅰ,28,176). 그러나 이러한 지식은 플라톤이 신비라고 간주한 영적 관(觀)이라고 이해되었다. 신학은 여기서도 역시 단순히 인간적 행위의 생산물로 파악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적인 로고스에 고유한, 그리고 로고스를 통해서 개방된 하나님 지식이었다. 신학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보증된 신적인 진리에 대한 관으로서만 인간들이 가까이 할 수 있다. 즉 계시하는 영감에 의해서만 말이다. 이것은 신학이 플라톤의 경우에서처럼 "참된  변증법"의 예술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176f.). 여기서 말하는 변증법은 구별하는 힘을 통해서 참된 지혜를 찾아가고, 또한 "학문"을 찾아가는 것이다(176). 물론 이러한 진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증법을 통해서만 준비될 수 있는 조명(照明)에서 발생하는 모든 지식의 근원에 대한 플라톤의 학설을 숙고해야만 한다.

다음과 같은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초기 라틴 스콜라 신학이 신학의 학문적 성격에 대해 전개한 논의에는 신학이 계시와 구성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 의식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으로 훨씬 많이 각인된 신학자들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이외의 부분에서 어거스틴,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과 대립적이었다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신학의 토대를 신적인 계시에 정초 하는 것은 훗날 자연신학과 계시신학의 대립에서 논의되었던 것처럼 신학의 본질을 피상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자신을 통해서, 즉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인식해보려는 가능성은 이러한 신학 개념의 근본 조건에 속한다.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을 다른 식으로는 결코 확실하게 찾아볼 수 없다. 즉 신관 자체에 대한 항변 없이는 생각될 수 없다. 이로써 아직은 피조물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지 결정된 게 아니다. 또한 믿는 기독교인만이 신학적 인식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 이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비록 부분적이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방인들도 역시 신적인 로고스의 참된 신학에 참여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분명히 기독교 내부나 외부에서, 또한 소위 자연적 하나님 인식의 경우에 하나님 자신에게서 출발하지 않는, 또한 성령의 활동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는 하나님 인식이나 신학은 있을 수 없다.

구(舊)프로테스탄트 교의학은 신학개념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사태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초기 루터교 정통주의 교의학에서 말하는 신학개념을 소개했거나, 아니면 자세하게 해명한 요한 게르하르트(Johann Gerhart)는 여기서 이미 1594년 개혁주의 신학자인 프란쯔 유니우스(Franz Junius)에 의해서 갱신된 중세기 스콜라주의의 명제를 넘겨받았다. 즉 인간의 신학은 신적인 원형의 신학(theologia archetypa)을 모형으로 삼고 뒤따라 갈 때만 가능하다고 말이다.

이러한 요점은 후기 루터주의적 교의학이 신학개념을 설명할 때 고수되었다. 물론 이 교의학은 이미 게르하르트에 의해서 서술된 이해와 긴장 관계에 있다. 게르하르트의 주장에 따르면 신학의 대상은 영생으로 인도 받아야할 인간이다. 게르하트의 생각에 비해서 훨씬 좁은 의미에서 신학이 "실천적 학문"으로 규정된다면 또한 인간의 행복이라는 목표에 제한된다면 신학 개념은 틀림없이 인간 중심적 경향에 빠진다. 이 경향은 하나님을 향한 인식으로 완전히 기울어지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다. 초기 루터주의 신학은 구원받아야할 인간에게 집중함으로써 자신들의 신학이 신적인 구원 계시에 상응하며 또한 하나님의 구원 의지에 상응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신학 개념을 규정하는 경우에 이런 전제가 하위의 단계에 정립되면 안 된다. 케커만(B. Keckermann)이 실천적  학문이라고 그 근거를 제시한 신학의 "분석적 방법"이라는 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는 그 신적인 근원과 구원 목표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지향하는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인간 구원에 필요한 실천이 무엇인지 밝혔으며, 이에 따라서 기독교 교리의 주제를 분류했다. 여기서는 구원을 목표로 하는 인간의 실천이 핵심이지 신학의 단일성에 토대를 제공하는 신관이나 하나님의 계시가 핵심은 아니다. 물론 케커만의 경우에 실천학으로서의 분석적 방법에 따라 제시된 신학은 일종의 이론적 "신지학"(神智學)을 전제한다. 이런 방식에 따라서 나중에 실시된 루터주의적 교리 정통주의에 속한 신학자들의 경우에 하나님의 현존과 특성을 가르치는 자연신학이 이에 상응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분석적 방법"을 구원론에 축소시켜버리는 것은 신학을 그 신학의 중심적 대상인 하나님 인식 대신에 인간 구원의 둘레에 인간 중심적으로만 맴돌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신학을 하나님 인식에 대한 다른 형식에 의존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신학은 하나님의 현존을 전제적으로 확증하기 위해 다른 방식의 보증에 의존해야한다는 값을 치루고 싶을 때만 신론과 우주론의 "사변적" 주제들에서 벗어난다. 이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바로 행복과 그것을 지향하는 구원 계시를 목표로 하게 하는 근원자이다. 이런 오류의 길이 물론 신학을 "실천학문"으로 이해하는 것과 필연적으로 연결된 건 아니다. 하나님이 신학의 대상이며, 또한 모든 인간적 신학은 하나님의 지식 덕분이라고 확신한 둔스 스코투스가 그랬던 것처럼 신학 지식을 실천적인 성격으로 생각한다면 신학의 실천적 성격에 대한 명제는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사랑을 일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곧 모든 지식과 신앙을 인간적 태도 안에 있는 사랑에 정치될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놓는 것이다. 신적인 지식이 사랑에 정치된 실천적 지식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신론과 하나님의 역사적 구원 행위와의 연관이 밝혀질 수 있다고 예상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둔스 스코투스는 자기 생각을 이런 방향에서 발전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이 바로 실천적인 지식이 아니라 이론적인 지식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정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 한에서 신학의 실천적 성격에 대한 명제가 이룬 업적은 신론에 한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이론적인 지식과 실천 지식 사이를 아주 날카롭게 구별해서 신론에 적용시키는 일이 정당한지 아닌지 질문되어야만 한다. 더구나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이다. 혹은 그러한 종류의 구별이 피조적 현존의 유한성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이 자체상 실천적인 지식으로 생각될 수 없다면 그렇게 진술했던 위대한 프란치스코파 선생(둔스 스코투스를 말함. 역주)의 입장에서는 기독교 신학을 이렇게 묘사하기가 아주 곤란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오는 하나님의 지식에 참여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인식이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신학 개념에서 구성적인 인 문제인데, 대(大)알베르투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로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신학의 고유하고 포괄적인 대상으로 파악되는 경우에 가장 명백하게 드러날 수 있으며, 또한 최고의 준거로 용인될 수 있다. 신학에 다른 대상이 있다면 신적인 계시를 통해서만 인식이 가능한 게 틀림없다는 점이 이런 대상에는 피상적인 부분으로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신학의 대상이라면 이런 대상의 존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이 확실해진다.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인식되려고 할 경우에만 인식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진술이 단지 기독교 교리의 내용만 갖고 있을 경우에는 이런 상황이 더 이상의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 교리는 인간과 창조의 세계에 대해서, 그리스도, 교회, 예전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언급한다. 고(古)교회 신학은 이런 주제를 "경륜", 즉 하나님에 의해 닻을 올린 구원사에 정치시켰다. 그런데 이 신학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행하는 활동에 관심을 갖는다. 그렇지만 하나님 자체에 대한 진술과는 구별되어 있다. 이 진술에는 구원 경륜과 달리 "신학"이라는 특징이 유보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을 기독교 교리의 전체로 확장시키는 일은 때때로 이미 고대 교회의 헬라 교부들에게서 일어났다. 그러나 주로 라틴 스콜라주의에서 관철되었다. 12세기에 대학이 출현하고 이런 대학의 훈련인 신학과의 밀접한 연관성에서 이런 일이 수행되었다. 기독교 교리 전체가 말씀이 확장되었다는 의미에서 신학의 대상으로 이해된다면 한결같이 하나님을 결정적이고 포괄적인 신학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숙고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알베르투스와 토마스도 역시 피조적 현실성으로서 하나님과 구별된 많은 것들이 기독교 교리에 속한다는 점을 승인해야만 했다. 그러나 토마스는 하나님과 구별된 소여성이 신학적으로 주제화되는 경우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관계될 때라는 점을 확실하게 했다. 하나님과의 이러한 관계라는 관점 하에서만 (sub ratione Dei) 이 소여성들은 신학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S. theol. Ⅰ, 1a7). 이런 한에서 하나님은 신학적으로 다루어지는 모든 대상들과 주제들을 일치시키는 관계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들이 신학의 대상이 된다.

그 이후로 이런 견해는 도미니크 학파에서만이 아니라 하인리히 겐트(Heinrich von Gent)에게서, 또한 둔스 스코투스 이래로 프란체스코 신학에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전체 고(高)스콜라의가 이런 결과를 수렴한 셈이 되었다. 사실상 하나님만이 단일성의 토대를 제공하는 근거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른 모든 주제들과 신학적 대상들은 연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스에 의해서 설명된 논증에는 난점이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본질에서 다루어지는 하나님의 불가해성이 이런 문제에 속한다. 초기 루터주의 교의학자들이 신학을 하나님에 대한 학문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이런 이의에 대해서 토마스는 이미 앞서서 문제를 제기했었다. 그의 대답은 우리가 하나님을 그의 본질이라는 면에서는 직접적으로 알 수 없고, 오히려 피조적 작용의 근원과 목적으로서 알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S. theol. Ⅰ, 2a2, 또한 1a7 ad 1 참조). 토마스는 여기서 구원사의 소여성을 계산에 넣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이의를 인과율적 모델에서는 발견하기 힘들지만 계시 신학적 토대에서는 제법 만날 수 있다. 즉 하나님은 역사적 계시를 통해서 자신의 불가해적 본질을 인식토록 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답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 인식을 통해서 중재되는 피조적 소여성이 하나님의 신성 자체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여기서 문제는 하나님과 구별되는 모든 것이 자신의 피조적 본성에 따라서 자기 존재의 근원과 목적인 창조자 하나님과 연결되었다는 점에 놓여 있다. 하나님이 그런 동일한 방식으로 피조물과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만약 하나님이 피조물 없이도 영원에서 영원에 이르는 바로 그 분이라면 어떻게 피조물에 대한 지식이 하나님 자체에 대한 인식에 도달될 수 있을까? 여기서는 피조적 사물의 존재가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도 역시 피조물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이것은 성육신 사건 안에서 발생했다. 오늘의 신학이 기독론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중세기 신학은 감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직접 이 난제에 부닥쳐보려고 했다. 즉 일반적인 신론을 수단으로 해서 말이다. 그래서 둔스 스코투스는 하나님에 의해서 구별된 대상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신학 개념에 속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증을 펼쳤다. 즉 우리의 신학이 참여하고 있는 하나님의 지식에 대한 자신의 해석적 틀에서 말이다. 둔스 스코투스는 하나님의 지식으로 모든 다른 사물이 (그 사물들의 가능성에 따라서, 또한 신적인 의지의 대상들로서) 더불어 정립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식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둔스 스코투스가 말한 바처럼 하나님의 지식 안에 있는 피조물은 아직은 하나님의 신성에 속한 것으로서 함께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이런 방식은 하나님에 대한 학문인 신학에 귀속된다는 점이 분명하다. 따라서 성육신의 도움을 받는 일은 불가피하다. 피조물과 하나님과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하나님 행위의 관점 하에서만 피조물이 하나님의 신성에 속한다는 사실이 (그 신성의 차별성이 손상 받지 않고서) 주장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피조물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학문인 신학에 속한다. 이를 통해서만 하나님에 대한 학문인 신학의 단일성 개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 자체 안에 있는 영원한 삼위일체적 생명과 소위 경륜적 삼위일체의 구원사에 임하는 하나님의 현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쟁에 따라 결정된다.

기독교 교리에 연관된 인식론적 노력의 포괄적인 특징으로 나타나는 신학 개념의 다층성은 중세기 이후에 신학이 발전해 나가면서 여러 상이한 신학 훈련이 독립해나감으로써 계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이로써 신학을 하나님에 대한 학문으로 파악하는 난점도 역시 계속적으로 부각되었다. 역사적인 신학과 해석적인 신학의 주제 영역은 기독교 교리의 전승과 선포에 대한 주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와 연관되어서 다루어진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서의 하나님의 현실성은 이런 훈련에서 명시적으로 주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비슷한 방식으로 신학적 윤리학에도 적용된다. 더구나 이 현실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교리로서 발전되지 않을 경우에 더욱 확실하다. 쉴라이에르마허는 신학의 단일성을 이런 훈련의 상이성에서 진술하려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길을 "교회를 끌어가는" 과업에서 발견했다. 교회를 끌어가는 작업에는 신학의 상이한 훈련들이 있으며, 여기에 바로 신학이 기여할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쉴라이에르마허는 무엇보다도 실천 신학이 신학 훈련의 순환에 속한다는 사실에 대한 토대를 신학 개념으로부터 끌어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라이에르마허가 고유하게 제시한 신학 연구의 실천적 목표 설정은 이미 신학 개념을 규정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게 확실하다. 신학 연구의 단일성과 이로 인한 신학 훈련의 단일성은 그에 의해서 일종의 다른 주제로서 심원한 토대를 형성했다. 즉 기독교적 종교의 단일성에서 말이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신적인 진리에 대한 확증만이 기독교 교회의 계속적인 내용에, 또한 이로 인해서 교회의 실천적 교육에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정당화될 수 있다. 기독교 신학은 문화를 학문적으로 훈련하는 것만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신학이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정당한지 아닌지, 또한 정당하다면 어떤 정당성을 갖고 있는 되물어야 할 것이다.

신학 개념에서 신학적 언급의 진리는 하나님 자신을 통해서 권위가 확보된 신(神)진술이라는 점을 이미 전제한다. 단지 인간에 의해서만, 인간적 필요성과 흥미로부터만, 그리고 신(神)현실성에 대한 인간적 표상을 표현하는 토대로서의 신(神)진술은 신학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생산품일지 모른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진술은 오히려 신적 현실성이야말로 참된 "신학적" 진술일 수 있다는 점에서 끝없이 추구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신학이 가장 분명하게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점이다. 신학적 진술의 심각한 이중성은 여기서 더 이상 참으로 "신학적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단순한 인간적 진술이 핵심으로 등장한다는 데에 놓여 있다. 플라톤이 신학적 진술에서 제기했던 그런 의혹이 여기에 있다. 소위 "이중의, 즉 참된, 또는 거짓된" 진술이 있다(Staat 376 e 11). 그러나 플라톤의 경우에 시인의 "신학적" 진술은 거의 (377 d 4ff.) 참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신학 대학에서 신학 훈련을 받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적 진술의 진리를 주제로 삼는다고 말할 수 없다. 역사적 훈련의 가르침과 연구에서 이런 질문이 제기되지 않는다. 주석적 훈련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훈련은 역사-비평적 방법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근대가 시작할 때까지는 본문 해석, 즉 대학과 교회의 해석은 구속력이 있는 기독교 교리의 내용을 하나님의 계시로 부각시켜야 할 과업이 있었다. 교부들의 판단과 그들의 주석에서 중요한 것은 본문의 교리를 요약하고 그렇게 제시하는 것이었다. 종교 개혁 신학에서 이 문제가 아주 확고부동했다. 구(舊)프로테스탄트 교의학은 성서 말씀의 교리 내용을 요약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자신의 작업으로 여겼다. 이런 교리 내용의 확증을 위해서 성서 말씀이 확실하게 주석되었다. 그런데 근대의 역사-비평적 본문 주석에서는 성서 말씀이 근본적으로 지나간 시대의 문서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 문서의 내용이 담고 있는 현재의 중요성은 역사적 성서 주석의 틀 안에서 더 이상 결정적일 수 없다. 이로써 신(神)진술의 진리에 대한 질문의 무게는 완전히 교의학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결과에 이르는 단초는 이미 근대 이전 시대의 신학적 발전에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보다도 신학의 근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그리고 교의학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결과와 화해하거나, 이를 통해서 그렇게 치우친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교의학은 자신의 특별한 과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런 짐을 짊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신학 전체에 봉사하기 위해서도 역시 그렇지만 말이다. 교의학 작업에서는 나머지 신학적 훈련이 갖고 있는 특별히 신학적 성격이 핵심이다. 이것은 신학적 훈련이 신학의 교의학적 과업에 참여하는 그런 기준에서 "신학적으로" 정확하다.

그러나 교의학은 어떻게 기독교적 신(神)진술의 진리에 개입할 수 있는가? 도대체 교의학이 그럴 수 있는가? 그리고 실제로 그럴 수 있다면 이 일이 어떤 근거에서, 어떻게 발생하는가?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해명하려면 교의학의 개념에, 그리고 도그마에 대한 그것의 관계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것이 이런 신학 훈련의 역사에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