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서울에서

※ 동양선교회(OMS) 기관지 Electric Messages 1908년 4월호

 

김상준 글/ 박도술 역

 

집에 머물러 있던 지난 몇 주 동안 주님의 축복이 저에게 임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친척들 사이에서 영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 사람들에게도 역시 영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며칠 전에 몇 줄 안되는 글을 띄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에게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 주님의 영광을 알 수 있도록 좀더 충분하게 글을 쓸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권능을 나타내셨고, 이 때문에 주님의 이름은 영원토록 찬양을 받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저의 부모님이 영적으로 크게 용기를 얻고 다시금 새로워지셨다는 사실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들은 몇 해 전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냉랭했고, 교제를 나눌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다시금 신앙의 열정을 크게 회복하시자, 이웃에 살던 일고여덟 분이 역시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처소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예배당을 빌릴 수 있도록 이삼십 달러를 헌금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을 양육하고 그들과 함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 유감입니다. 정 빈 형제가 서울에 없기 때문에 부득불 그곳의 사역을 위해 제가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음일에 들렀습니다. 거기서 10명이나 되는 영혼을 구주께로 인도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이 사람들 역시 예배 드릴 장소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따로 예배를 드릴 만한 장소를 얻을 여력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10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내 고향 동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해서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겠노라고 결심했습니다. 틀림없이 음일에도 조만간 예배모임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또한 미추동에도 들렀습니다. 그곳에서는 두세 명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을 소망하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만, 머무른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계속해서 머무를 수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지금 위 세 곳에는 20명이 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그들을 인도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이 진정 목자 없는 양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만약 그곳에 그들을 인도해 줄 사람이 몇 명 있다고 한다면, 분명히 그들은 은혜 안에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에 굶주려 있는 많은 사람들이 더하여질 것입니다. 누군가 일으킴을 받아 이 굶주려 있는 무리들을 양육하기 위해 보내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무사히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밤에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거기서 훨씬 건강해진 정 빈 형제를 다시 만났습니다. 지난 밤 예배에는 두 명의 구도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고향을 방문하는 일로, 정 빈 형제는 몸이 아팠기 때문에 둘 다 몇 주 동안 서울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의 사역에 대해 특별히 말씀 드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오고 있습니다. 이제 날씨가 따뜻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찾아갈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도움에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으며, 그곳의 사역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1908년 4월

여러분의 신실한 동역자 김상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