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의 구원론에 대한 소고

-신생명과 성결교리를 중심으로-
 

이인한 목사(부산 남천교회)

 1. 서론 : 2. 김상준의 제1교리, 신생명 : 3. 김상준의 제2교리, 성결 4. 김상준의 구원론의 특징 : 5. 결론


1. 서론

"1907년 5월 30일에 김상준, 정빈 양인이 동경성서학원에서 졸업하고 돌아와 경성 종로 염곡에 다 쓰러져가는 집 몇간을 세내어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매일 저녁마다 한 사람은 장등을 들고 한 사람은 북을 치며 황토현에 가서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오'하고 찬미를 부를 때에..... 김, 정 양인은 어떠한 방법이던지 영혼을 구원함에는 개가죽이라도 무릅쓸 경우에는 그것이라도 사양치 아니하겠다는 주의로 오직 충성을 다하여 역사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함께 하셨더라."

이명직의 공식적인 소개와 함께 한국성결교회의 기억에 살아있는 김상준은 정빈과 더불어 이 땅에 최초로 성결의 복음을 전파한 열정적인 전도자이다. 그는 조롱과 멸시와 비난을 온 몸에 받으면서도 독특한 직접 전도 방법으로 한국에서 구령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 전도 방법은 간접의 방법을 버리고 오직 직접임은 고금이 일반인데, 단순하고도 기발하였나니 밤에는 노방에서 등을 들고 나팔을 불며 북을 치고 찬미를 부르고 모여드는 사람에게 전도하고 다시 행렬을 지어가지고 전도관으로 돌아가서 집회를 하고 낮에는 지난 밤에 결신한 사람을 심방하는 일과 개인 전도하는 일로 구령사업을 하였나니...."

그의 노방 전도 활동의 내면에는 뜨거운 영적 체험과 명석한 성경 이해가 담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또한 그의 영감 깊은 설교로 나타났다.

"김상준의 영력으로 충만한 설교와 명석한 진리적 성경강의와 은혜의 실험적 간증을 듣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그 진리됨을 인정치 아니할 수 없고 그 은혜를 사모치 아니할 수 없었더라. ..... 1908년 겨울에 성신의 크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때에 온 경성 교회가 다 움직이게 되었고 모든 교회 교역자와 선교사들까지 참석하여 기도하는 중 성신의 능력이 나타나시는 때에 각각 저희 죄를 통회자복하고 거듭나는 은혜와 성결의 은혜를 받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손바닥을 치며 찬미를 부르고 굴레 벗은 송아지와 같이 뛰게 되었더라."

그는 한국성결교회의 첫 번 안수를 받은 목사로서 52세로 하나님께 부름을 받기 전까지 교단 안팎에서 전도자요 설교자로 최선을 다하여 사역하였다. 이러한 실천적인 사역과 더불어 김상준은 이론적인 차원에서도 큰 빛을 남겼다.

그는 한국성결교회의 교리 형성의 기초석를 놓은 신학자이다. 김상준은 1921년 6월 13일에 한국 성결교회의 교리적 특색을 표명한 {사중교리}를 집필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한국에 성결교회가 창립된 후 15년동안 삼천리 반도 전역에 걸쳐 세워진 33개의 교회(복음전도관)에서 수천의 교인들에게 밤낮없이 외친 '사중복음'이 비로소 책자로 정리되어 나왔던 것이다. 이른바, 1911년 3 월에 성결교회의 전도자 양성기관인 경성성서학원이 세워진 지 10년만에 {사중교리}가 출판되어 나왔다. 이 {사중교리}가 출판되어 나오기 전에는 '사중복음'에 대한 풀이가 그리 대대적인 것이 못되었다. 그저 설교에서나 언급되었으며, 또 간단한 신학강론 좌석에서 피상적으로 논의 \되는데 그쳤을 뿐만 아니라, 그 풀이도 극히 개인적이요 부분적이었다. 그러나 김상준의 {사중교리}를 발간한 뒤부터는 이때까지 성결교회가 '사중복음'을 단순한 전도 지표(표제)로만 강조하여 왔던 것을, 그리스도교의 교리적 측면에서 정리, 강조하였다.

본 소고는 한국성결교회의 교리적 기초를 놓은 김상준의 구원론을 연구하는 시도이다. 즉 김 상준의 '사중교리' 중에서, 일반적으로 이론신학에서 구원론의 범위에 포함하는, 신생명(중생)교리 와 성결교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여 그의 구원론의 체계를 밝힘을 목적으로 한다. 이 목적을 위 해서 먼저 본고는 김상준의 {사중교리}중에서 구원론에 속하는 '제1교리-신생명'과 '제2교리-성결'의 내용을 그의 저술을 따라 그의 언어를 살리면서 독해한다. 이 작업의 중요성은 먼저 현존하는 {사중교리} 텍스트 자체에 있다. 본 연구를 위한 텍스트로 3권의 다른 (복)사본을 사용하였는 바, 그 3권이 동일한 책의 사본으로 인쇄상태, 보관상태, 편집상태 등이 불량하여 독해 불가능한 면이 다수였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문자를 복원하고 앞뒤의 문맥을 고려하여 그 의미를 해독하는 일이 필수적이며, 동시에 지난한 작업이다. 또 다른 중요성은 한국성결교회에서 나온 최초의 이론 신학서인 {사중교리}의 본문을 꼼꼼히 다룬 신학 논문이 한편도 없다는 데 있다. 서론에 이은 제 2장과 제 3장에서 김상준의 구원론을 중생과 성결로 나누어서 이 작업을 개진한다.

모든 저술이 텍스트 내의 문맥 즉 구문론적 차원이 있는가 하면 택스트 외의 맥락, 즉 의미론적 차원이 있기에 제 4장에서는 김상준의 {사중교리}에 영향을 끼친 동양선교회에 속한 카우만, 길보른, 나까다 쥬지 등의 저술을 참조하면서, 앞선 연구가 밝힌 대로 웨슬레안 성결 운동의 구원론의 구조 위에 서서 김상준의 구원론의 특징을 규명하고자 한다.

지난 텍스트의 독해의 의미는 과거를 밝힘으로 현재의 바탕을 분명히 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는 데 있다는 전제 아래, 제 5장에서는 결론을 대신하여 김상준의 구원론의 한계를 최근의 웨슬레안 신학자들의 저서를 비추어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김상준의 제1 교리, 신생명

"죄인들의 영들이 죄와 허물을 무수히 범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겔18:3,4) 그 영이 모두 이미 죽은지라. 그러나 죄인이 하루아침에 그 죄와 허물을 진실히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보내신 신생명의 주 예수를 자기의 구주로 받아들여 믿으면 약속의 말씀과 같이(요3:16) 그 영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중생케 하시리니 이것이 즉 신생명이다."

신생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상준은 이렇게 신생명의 정의를 내렸다. 영의 죄와 죽음에서 중생까지 다양한 변별적 요소들을 포함하는 이 정의를 세분하면서, 그는 사중교리중 제1교리인 신생(중생)교리를 개진한다. 이하에서 그의 신생교리를 형성함에 주요한 요소들을 그의 언어를 살리면서 논의하고자 한다.

가. 죄와 영적 죽음

김상준은 구원교리, 좁게는 신생 교리를 개진함에 인류의 실존적 존재적 상태를 진단함으로 그 시초를 삼는다. 실존적 상황이라 함은 "죄인들의 영들이 죄와 허물을 무수히 범함"을 말하 고 존재적 상태라 함은 "그 영이 모두 이미 죽은" 것을 의미한다. 그는 성서에 근거해서 현 인류의 모습은 죄와 죽음이라고 단언한다. 전세계 인류 중에 의인이 얼마나 되는가. 혹 열 사람 가량 되는가(창16:26). 아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는 말씀대로 천하 인간이 제각기 죄로 인하여 모두 죽은 자가 되었다(롬6:23).

김상준이 보기에 죄의 실체는 무엇인가? "오! 죄 이 동물이여 전세 인류의 영의 생명을 살해 하며 하나님과의 교통을 단절하는 자로다." 그는 죄를 크게 둘로 구분한다. "전세 인류가 모두 아담의 자손이라, 그 아담에게서 세세 전래한 죄성, 즉 원죄와 제반 자범죄"로 분별한다.

원죄는 "전래죄"이다. 하나님의 영적 형상으로 피조된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으므로 타락하였고 그 타락한 본성이 아담의 자손인 현세 인류에게 "태를 따라" 전래되었다. 또한 원죄는 "죄근 즉 내부에 잔재한 본성과 심기"이다. 옛사람이며 악성이며 악물이며 내부의 불결한 것이다. 김상준은 죄성 곧 죄의 뿌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 죄성에 속한 것을 말하려면 대단히 많으나 간략하게 제시하면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과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담을 타락케한 마음-과 기타 범사에 나라고하는 것, 즉 자존주의와 세상과 세물을 사모하는 마음과 시기와 호색과 간사와 야심과 사람을 멸시함과 사람의 과실을 기억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과 가난한 사람에게서 불의한 이득을 취하는 것과 고집과 나태한 심성 등이다."

김상준에게 이러한 죄성의 뿌리에서 자라난 맹아로서 전세 인류가 범한 모든 죄와 허물이 이 른바 "자범죄"이다. 이 자범죄의 실상을 김상준은 한 설교에서 이렇게 상술한다.

"..... 현시대의 각종 암흑의 사태가 무엇인가 하면 로마서 13장 12절에 말한 바 불의의 재물을 탐함, 부정한 음식을 탐함, 술에 취함(취주, 마24:9 말씀과 같이 말세에 재림을 믿지 않는 소위 교 인들이 태반의 미신자와 교제한다 하며 한 가지로 음주하기를 시작하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음란(남녀가 예로서 사귀지 않는 것의 총칭이니 밀통, 구합, 곧 매개자와 식이 없이 모여 사는 것, 처첩, 이혼, 연애, 자유결혼, 남색, 동성의 음, 호색), 질투(무릇 나보다 의롭고 어질고 바르고 이긴 자를 미워하는 총칭), 쟁(소소한 감정적 당쟁), 투(은근하고도 무서운 암투), 사회 공산 양 주의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죄의 결과는 사망이다.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그 영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게 모두 죽었다." 김상준은 죄로 인한 영의 죽음을 주장한다. 이 영의 죽음을 설명코자 그는 교리적 인 설명의 전제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3분설의 입장에 서서 영과 생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인류는 누구든지 모두가 영, 생(혼), 신 이 세가지가 대합하여 된 것으로 .... 우선 영과 생의 구분을 강구"하여야 한다. 영이란

"성령 즉 하나님의 영과 같은 인간의 영이니(롬8:16) 하나님의 형상 즉 권위, 영광, 자애 등의 성정을 가지며 하나님과 같이 영생할 수 있는 것이라. 그런즉 이는 즉 인간의 생명이며 또는 인간의 전부를 지도하는 자니 마음의 기초이며 원료니라. 대개 인간이 영이 있음으로 인해서 능히 하나님의 존재를 알며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도 하며 하나님과 함께 교통하기도 하느니라"

고 하며, 이어서 그 영에 속한 것을 마음과 의지와 양심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째 마음은 "하나님과 사람을 진정한 사랑으로(마5:44) 사랑할 정이 있는 처소이며 또한 영적인 용기가 거하는 처소"이다. 둘째 의지는 "마음의 작용이니 일체의 할 일의 여부와 취급을 자유의 권과 또한 일체의 각오력을 가지며 격물치지의 제반 재능이 모두 여기에" 있다. 셋째 양심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의 마음 중에서 당시에 당신의 대리자로 마음 중에 투입하사 그 마음 중에 항상 전권 공사와 같이 선을 장려하고 악을 책망케 하신 것이니, 즉 선악시비 등을 선변하는 빛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생이란 "인간의 심지에 가장 큰 것이며 또한 인간의 생명의 의자요 평범한 사람의 각오와 사상 등을 생기게 하는 것이며 능히 동작케 하는 것, 즉 인간의 육신을 생활케 하는 소위 혼이란 것이다." 생(혼)에 속한 것이 역시 세가지 있는데, 첫째 기억력 즉 범사를 선히 기억하는 능력, 둘째 사상 혹은 사념, 셋째 판단력 혹은 범사의 행함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 등으로 이들의 중추는 두뇌이니 이는 인류와 금수에게 모두 있는 것이다.

김상준은 이렇게 영과 생(혼)을 구분하고, 타락한 인류는 바로 그 영이 죽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양극의 두 주장에 대해서 반론하고 있다. 인간의 영적 실체를 부정하고 현실의 물적인 삶에 만족하며 자긍하는 한편의 세속적 주의 주장에 대해서, 인간의 "육신 들이 비록 동물적 생명 임으로 인해서 생명이 꿈틀거리며 살아가고" 있어서 사람이 보기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같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완전히 죽은 인류들이라고 경고하며, 다른 한편 잠3:19을 인용하며 영과 혼을 구분치않고 혼언하는 2분설 주장들에 대해서 인간과 금수를 구분 못하는 불쌍하고 가련한 이설이라고 비판한다.

나. 사죄, 회개와 신앙

김상준의 신생 교리의 첫 관문는 사죄 곧 죄사함이다. 죄와 허물로 인하여 전세 인류는 모두 그 영이 죽었으며,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공로와 의로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다. 그렇기에 김상준은 사죄함을 받아 신생의 길에 들어설 것을 독자들에게 이렇게 청유한다.

" ....지금까지 극소한 죄 한 개라도 은익한 것이 결코 없습니까. 만일 혹시라도 있다면.....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부복하여 그 죄를 통회 고백하고 십자가에서 당신을 대신해서 죽으시며 보혈 을 흘리신 예수께 나아가 사죄의 은혜를 충만히 가지신 거룩한 손을 향하며 신생명을 믿음으로 받으시기를 아멘."

김상준은 사죄를 위한 첫걸음을 회개라 한다. 그는 성서에 근거해서 회개의 우선순위를 주장한다. 세례요한의 전도시 초언이 우선 회개하라는 것이었고(마3:2), 주께서도 첫전도시에 역시 먼저 회개하라하셨고(막1:15), 사도들도 먼저 너희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후에 죄없음을 받으라고 하 다(행3:10). 그러므로 "회개는 과연 사죄의 제일보로다. 그렇다면 주를 믿기로 결심할 최초의 제 일은 회개니라." 그는 "죄악으로 인하여 죽은 이 전세 인류들의 영들은 마땅히 제 죄와 불의함 을 속속히 회개하여 버리기를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듯"하라고 촉구하며, 회개가 없는 자는 수 십년을 성경을 읽어도 결코 사죄의 은혜를 받지 못하리라고 단언한다.

회개에 대한 가르침을 펼치면서 김상준은 먼저 회개의 대상을 분명히 한다. 행21:21과 같이 첫 대상은 하나님이시고 눅17:4, 마5:23-24과 같이 둘째 대상은 사람이다. 하나님께만 회개하면 사람에게는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큰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

"예컨대 타인의 물품을 도둑질하였으면 우선 그 물건의 주인에게 뉘우쳐 고하고 죄사함을 청한 후에 하나님께 뉘우쳐 고하여 죄사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며 구하여야 온전히 그 죄사함을 얻을지니라." 만일 하나님께만 기도하면 " 하나님께서 필히 그 기도함을 중지하시고 그 사람-물건 의 주인-에게 가서 누우쳐 고하고 또한 도둑질한 물건까지 돌려주고 돌아와서 나에게 기도하라고 하실것이니라."

이어서 그는 회개의 종류를 4가지 제시하며, 바른 회개로서 성경적 회개를 상술한다. 첫째는 거짓된 회개로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하지않고 사람 앞에만 보이려고 하는 것, 둘째는 도덕적 회 개로 매우 악한죄가 대단히 많지만 단지 사람 앞에서 회개하기 심히 곤란치 않은 제반 불효 불충과 부부불합과 전하는 스승에게 불순함 같은 것만 회개하고 인정하는 것, 셋째는 합당한 결과를 본 회개로 눅19:8, 행26:20의 회개 또는 불합한 열매를 거둔 회개로, 즉 가롯 유다의 자살과 같은 종류의 것, 그리고 넷째는 성경적 회개로 고후7:11의 후회할 것이 없는 회개인데 이 회개는 두가 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가령 주님을 믿고 회개할 때 혹은 첩과 서로 헤어진 후에나, 또는 사기나 토색한 금전이나 그런 물품을 성령의 책망을 인하여 돌려준 후에, 마음 속에 은연중에 후회한 행 동에 반대하는 생각이 있는 것이요, 둘째는 성령의 책망을 받을 만한 어떤 죄가 있음으로 마음이 심히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사람의 면목을 꺼려서 그 매우 악한 죄는 은밀히 숨기어 두었다가 그 감추어 두었던 죄를 재차 책망할 때에 그 사람이 자기마음으로 후회하기를 전에 내가 왜 이 죄까지 마저 회개하고 인정하지 아니하였다가 지금 이렇게 재차 책망을 당하는고 하고 후회함이 있는 것 등이다. 사람이 진실로 이러한 회개를 하고 주의 공로를 신뢰함으로 죄사함을 받는다.

죄사함을 받기위한 또 다른 발걸음은 신앙이다. 진정한 회개를 한 후에는 또한 진정한 신앙이 필요하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을 향하여서는 회개를 재촉하고 또한 회개한 사람을 향하여서는 신앙을 재촉하는 것이 즉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의 진정한 순서이다."

김상준은 먼저 잘못된 신앙을 지적한다. "어떤 사람들 같이 도덕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과 찬송가나 손에 들고 예배석이나 출석하며 세례나 받으면" 그것이 속죄함을 받는 선한 믿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 하며, 그는 내용없는 형식적인 신앙을 배척한다.

그러면 속죄함을 받는 신앙은 어떤 것인가? 그 신앙은 세가지 내용을 포함한다. 첫째 하나님은 거짓된 말씀을 하시지 않는 것을 믿는 것, 둘째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을 향하여 계약 - 회개하고 믿으면 죄를 사하여 주시겠다는-의 말씀으로 확신하는 것, 그리고 셋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번 죽어도 애석하지 않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속하신 주로 믿는 것이다.

진정한 신앙과 형식적인 신앙을 구분하려는 이론적 목적과 더불어 독자들을 비롯한 다수 신앙인들의 신앙상태를 시문하려는 실천적 목표를 위해서 김상준은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

"만일 하나님께서 오늘밤 당신의 영혼을 불러다가 심판하실 때, 당신이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범죄한 것을 말씀하신 후에 이러한 죄가 있으니 너도 불신자와 같이 지옥으로 가라고 하시면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신앙상태의 표징이다. 그러므로 김상준은 심사숙고하여 대답할 것을 요청하며 진정한 신앙의 응답을 제시한다. 만일 명확한 계약 - 죽을 죄가 있을 지라도 회개하고 주를 믿으면 그 죄를 사하여 주시고 천국으로 보내시마 하신 거짓없고 분명한 성서의 약속- 을 반드시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 담대히 대답하기를

"하나님께서 신약성서중 요3:16로 나에게 계약하여 주시기를 누구든지 죽을 죄가 있을지라도 회개하고 예수를 나의 죄를 대속하신 구주로 믿기만 하면 네 죄를 모두 사하여 주시고 천국에 들 어가게하여 주시마고 하셨기로 분명히 믿고 거하다가 왔더니 지금 하나님께서 나더러 지옥으로 가라고 하시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거짓된 말로 계약하여 주셨습니까. 엎드려 원하건대 하 나님께서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도 천국으로 가게하여 주옵소서."

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계약대로 이루어주시겠고 겸하여 이 계약의 증인, 즉 중보되시는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다가 그의 이름을 아신다 하시며 변호하여 주시리니 그때에 즉 은공과 및 자기의 성서를 확신한 신앙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천국으로 찬미하며 들어가라고 명령하심을 얻을 것이다. 이렇듯 자기의 모든 죄를 남김없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진실되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확실히 믿는 사람만이 죄사함을 받는다.

이렇듯 사죄의 은혜를 이론적, 실천적으로 설명한 후에 김상준은 사죄의 한계성을 지적하며 칭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사죄는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이 항상 하나님의 의로운 노하심 아래 있다가 주의 대속하여 주신 것을 신뢰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처벌로 멸하고져 하시는 의로운 노하심에서 벗어남을 얻은 것뿐이니 아직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칭하심을 득할 수는 없다.

다. 칭의

칭의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불의한 인간을 의인으로 칭하시고, 보아주시는 것이다. 김상준이 보기에 죄로 인한 죽음을 면케 하시는 사죄의 은혜와 불의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오라고 하심을 받는 것"인 칭의는 분명 다른 것이다. 사죄는 전술한 바와 같이 마땅히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처벌을 받아 죽을 수밖에는 죄인이 예수께서 자기의 죄를 대신하사 십자가에서 피흘 려 죽으심을 믿음으로 그 죄와 그 처벌을 사함 받는 것이다. 그런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신 죽으심과 하나님의 처벌을 면케됨, 즉 노여움에서 벗어남이 그 핵심이다. 그러나 칭의는 그것을 넘어선 은혜로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 불의한 인간을 의인이라 칭하시고, 그 앞으로 오라하시고, 의인으로 보아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칭의의 은혜를 받는가? 죄인으로서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공로나 도덕을 세우거나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칭의를 얻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입을 수 있다. 김상준은 사죄의 은혜는 주의 대속하여 죽으신 공로를 믿음으로 인하여 얻었지만, "이 칭의의 은혜는 부활하신 주를 믿음으로 인하여 얻는다"고 한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칭의을 얻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은 대단히 절박한 문제라고 하면서 김상준은 성서말씀에 기대어 그 대답을 제시한다. 부활하신 주께서 승천하사 아버지의 우편에서 '무릇 자기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가는 자를 완전히 구원할 능력이 있을 것은 항상 생존 하셔서 그들을 위하여 대신 기도하심'(히9:25)을 인함이다. 부활하신 주께서 승천하사 아버지의 우편에서 지금 우리를 의인으로 보시도록 대신 간구하심으로 인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불의 한 우리를 의롭다 하실 것을 믿으면 칭의의 은혜를 받는다. 김상준은 또한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주로서 우리의 대리자시라는 점을 들어 변증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대리자이신 예수를 의롭다 하시고 천국에 받아들이셨으니 본인되는 우리도 천국으로 받아들이시고 칭의의 은혜를 주실 것이다. 만일 칭의의 은혜를 주시지 않으실 것 같으면 우리의 대리자이신 예수를 천국에 받 아들이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생각은 모두 버리고 오직 이 교리만을 확신하는 믿 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만이 칭의의 은혜를 받는다.

라. 중생(신생)

"대개 사죄는 죄인을 대속하신 예수의 죽으심-생명의 피를 흘리심-으로 인하여 된 것이요 칭의는 부활 승천하사 항상 대신 기도하시는 예수의 크신 공로와 능력으로 인하여 된 것이라. 그런즉 이 양자의 큰 은혜가 당연히 죽어야할 죄인들에게는 무상한 은혜와 영광이라 할 수 있으나 아직도 신조하심을 얻지 못하였은즉 만족하다고는 할 수 없소이다."

김상준은 이렇게 '새로운 창조하심'인 중생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칭의와의 시간적 공간적 의미적 변별성을 마음에 두고 중생의 교리를 제시한다. 먼저 중생은 시간적으로 칭의와 동시의 사건이지만 논리적으로는 이어지는 은혜이다. "누구든지 칭의만 되면 그 때는 곧 신생의 때라. 그러나 (본)인의 의견으로 말하면 혹 칭의가 선재하고 신생이 후재한다 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 가하면 먼저 하나님의 노를 돌이킨-즉 사죄와 칭의-후에 (성)령이 그 마음 속에 동역하며 신생하는 연고올시다."

그는 "칭의란 것은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을 위하여 예수로 하여금 이루신 대 공로로 인하여 인간이 사죄함과 구원을 얻는 것이요, 신생이란 것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죄 중에서 죽은 자의 마음 속에 이루신 대 공로 - 그 사람의 영을 중생케 하신 공로 - 로 인하여 타락한 본체 -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케 하시는 것"이라는 웨슬레의 견해를 인용한 후에, 칭의와 중생의 공간적 의미적 차이점을 밝힌다. 칭의는 외부적이며 중생은 내부적이다. "칭의는 외부적으로 된 것이요 칭의할 만한 실상-신자의 언행심사 행동에 칭의을 얻을만한 실상-이 없는 것을 지금 믿는 마음으로만 마음 속에 받아들여 보시고 하나님이 칭의하심이요" "신생은 내부에서 사역하시는 성령의 성업으 로 신생명이 들어와 태초의 아담의 하나님 형상적 심령을 회복케 하심이니 내부적이며 실상-즉 신생명-이 있는 것이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온전히 사랑뿐인고로 그때에는 심사언행을 사랑으로 주님만을 위하며 공의와 진실과 거룩함(성결)뿐이더니 범죄한 후에는 돌변하여 황망하고 교만하고 편사(偏私)하고 오악불순하여 마귀의 형상이 되어 영이 없는 금수의 형상과 동일하게 되어 하등물의 생애로 겨우 살고 있으니 생존한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어있었다. 아담의 자손인 전세 인류들은 타락한 아담과 같은 실상이다. 그러므로 영은 죽고 생만을 겨우 살고있는 인간은 누구든지 성령으로 인하여 중생할 수 있으며, 중생한 자는 "주 예수의 생명을 얻으므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그러면 중생의 은혜는 어떻게 임하는가? 김상준은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요 3:8) 중생하는 심오한 비밀은 설명하기 대단히 어려우나 그 사실을 확연하다 하면서, 오직 진심으 로 회개하고 칭의를 받은 자에게만 중생의 은혜가 임하며, 또한 그의 마음에는 자연히 확실한 성령의 증거가 있다고 한다. 김상준은 성령의 증거를 대단히 중요시 한다. 기도하는 중에 잠깐동 안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이나 또는 성구나 사람의 교설을 따라 혼자 신생하였다고 생각하는 것 이나 다른 사람이 신생하였다고 하니까 그저 따라가는 것 등과 "참으로 성령이 기도하는 중에 오셔서 네 죄가 사하여졌다고 하며 중생하였다 하시는, 감심적(感心的) 혹 감영적(感靈的)으로 되어 마음 속에 증거가 영구불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음 속에 확실한 성령의 증거가 있는 자만이 진실한 중생의 은혜를 받은 자이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 성령의 증거는 "사람이 먼저 믿고 기도하며 구하는 중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대답하시고 마음 속에 증거도 주신다"고 하며 만일 "신생의 영증이 없다면 십자가 앞에 나아가 꿇어 엎드려 마음을 열고 믿음으로 기도하는 중에 대망하면 주를 소생케하신 성령이 부활 하신 주의 우편으로 좇아 오셔서 당신의 영을 소생시켜 일어나게 하시리니 그리하면 그때에 당신 의 마음 속에 신생의 영증이 또한 있으리이다"라고, 믿음으로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마. 하나님의 자녀됨

김상준에 따르면 사죄와 칭의를 받은 후에는 중생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받는다.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갖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성경(롬8:14-17,갈 4:5-7)에 근거해서 설명한다. 죄사함을 받기 전의 인간의 실상은 전술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진노 하심아래 있어 마치 죄인이 법관 앞에 있는 것같이 두려운 마음과 종의 마음이 있었으나, 이제 사죄와 칭의의 은혜를 받았은즉 다시는 두려운 마음을 품을 필요가 없다(롬8:15).왜냐하면 자녀의 명분(갈4:5)과 권세(요일1:12)를 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은혜를 이루는 가? 그것은 성령 곧 예수의 영이 신자의 마음 속에 내주하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기 때 문이다(롬8:15). "성령이 마음 중에 내주하시면 담대하게 큰소리로 '아버지여' 할터이올시다. 어째 서 그런가하면 '예수의 영이 신자들의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더러 아버지여 한다'(롬8:16) 하셨슨즉 진실로 이 (성)령이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시기만 아무리 아버지여 하지 않으려고 할지라도 자연히 하게 되는 것이다"

김상준은 이 은혜를 받기위해 우리가 준비할 그릇은 오직 믿음이라고한다. 만일 누구든지 이 명분을 갖지 못하고 이 권세를 받지 못함으로 담대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은 신앙이 없는 까닭이다(요일3:1). 믿는 자는 권세를 주사 자녀가 되게하신다(요1:11하)는 약속을 확실히 믿는 자에게 자녀의 명분과 권세를 주신다.

그리고 그는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 즉 신생한 자들은 "그 도의 젖-성경말씀-을 사모하여 점점 장성해서 구원에 이르고(벧전2:2) "저 천국에서 영원한 사업"(갈4:7)을 받을 것을 덧붙인다.

바. 신생과 그 후의 죄

신생한 자가 죄를 범하여 타락할 수 있는가? 요일3:9, 5:16은 신생한 자는 결코 죄를 범치않고 또한 죄를 범할 수도 없다고 한다. 반면 히6:6은 (신생 후에) 타락한 자가 있다고 한다. 김상준은 요일3:9을 풀어 설명하면서 이 질문의 대답을 제시한다. 그 구절의 원의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연속하여 있음으로 죄를 범하면서 있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생명 의 말씀이다. "신생명을 얻은 사람은 성경을 읽고 - 어린이가 젖을 먹음같이 - 기도함을 태만치 아니하는고로 하나님의 씨 - 생명의 말씀 - 가 그 속  -신생자의 마음속 - 에 연속하여 있으며 - 시시각각으 로 생각함 - 어느 때든지 범죄치 아니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연속하여 있지 아니하면 그 때는 죄를 범하고 타락할 수 있다. 히6:6의 '타락한 자'는 그 마음 속에 하나 님의 씨가 연속하여 있지 아니함으로 타락한 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권면한다. "독자 형제도 신생 의 은혜를 받았거든 성경을 근실히 읽으며 기도하시사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항상 당신의 마음 속에 연속하여 두시기를 아멘."

신생자가 만일 범죄하여 타락한 자는 다시는 사하심을 받을 수가 없나?(히6:6) 김상준의 대답은 이렇다. "물론 어렵기는 하나 하나님의 우편에서 대신 기도하시는 의로우신 그리스도(요일2:1) 로 인하여 다시 사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이라는 두 글자에 깊이 주의하십시오. 잘 지내다가 혹 만에 한 번 범죄하면 그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대신 기도하신다는 뜻이지 누차 범하는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기도하여 주신다는 뜻은 아니올시다."

사. 원죄와 성결의 필요성

신생한 자는 사죄, 칭의, 중생 그리고 자녀됨의 은혜를 받은 자이다. 그는 자기가 지은 죄를 용서받았다(사죄).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고 칭하신다(칭의). 그의 마음 속에는 성령으로 새생 명이 회복되어(중생),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다(자녀됨). 그는 새로워진 영으로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마음 속에서 "두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두 사람 - 즉 새사람과 옛사람 - 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새사람이 옛사람에게 져서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복종케 될만한 위기 상황에 쳐하는 괴로움도 느끼게 된다. 달리 말하면, 사죄의 은혜로 자범죄를 사함받아 외부는 깨끗케 되었지만 아직도 내부에는 죄의 뿌리가 발거(拔去)되지 않아서, 사죄의 은혜를 받으면 범죄치 아니한다 하나 항상 마음 속에 잔재한 죄근으로 인하여 때때로 전쟁이 일어나 화평과 희락을 잃기도 하고 조금만 부주의하면 전쟁을 하다가 패하여 아주 죄를 범하는 지경까지 이르기 쉽다.

이런 전제 위에 김상준은 성결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다수 신자 중에 자범죄만 사하심을 받고 당장 보기에는 완전히 없어진 것과 같으므로 방심하고 죄의 근을 마음 속에 남겨두었다가 머지않아 그 죄근에서 여러가지 죄의 맹아가 종생할 때에 보다 큰 괴로움이 생겨 탄식을 발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태하고 등한하여 죄의 근을 뽑아버리지 아니하는 자는 그 죄근으로 종생(從生)하는 죄의 맹아(萌芽)가 혹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남겨주고 뽑아버리지 아니하리니 그런즉 그 어리고 작은 죄의 싹이라도 업신여겨 보다가 전보다 배나 더크고 더 심한 두려움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생자는 속히 성결의 은혜를 받지않으 면 안되겠습니다."

한편 그는 성결의 변별성-신생과의-과 필요성을 확실히 하고자 '인간의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세 지위'를 독특한 도표와 함께 해설한다. 그는 창세기 초반에 나타난 인간 타락-아담과 가인-의 사건을 해석하며 인간의 세 지위를 설정하고 각각 갑위, 을위, 병위라고 지칭한다. 첫째, 갑위는 '타락하기 전 에덴에서의 아담'의 지위이다. "아담은 천지 창조 후 처음 나온 인물이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성결한) 형상과 같이 친조하셨다 하셨으니 누구에게서 죄근을 전수되었을리 없으니. ..... 아담은 근본인즉 완전한 성(결)인이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는 온전히 사랑 뿐인 고로 그때에는 심사언행을 사랑으로 주님만을 위하며, 공의와 진실과 성결 뿐이었다." 이 지위는 곧 중생한 후에 마음 속의 원죄(죄의 근)까지 모두 발결(拔潔)된 성결한 성도의 지위이다.

둘째, 을위는 '타락 후에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의 지위이다. 완전한 성인으로 피조되었지만 자유능을 잘못 씀으로써 타락하였고 에덴에서 쫓겨났다. 아담이 범죄하여 그 영이 죽었으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가죽옷을 입은 후 재생하였다. 이 가죽 옷은 성의로운 예복이 되는 예수의 모형이다. 그러므로 아담은 예수의 대속하심으로 사죄함을 얻고 중생하였다. 이 지위는 예수 그 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중생한 신자의 지위이다.

셋째, 병위는 '아벨을 살해하고 놋 땅으로 축출된 가인'의 지위이다.(창4:11-16) 아담의 죄근을 상속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하는 죄를 지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처벌로 타락한 아담이 경작하던 대지에서도 쫓겨나서 죽음의 땅을 유리방황하게 되었다. 이 지위는 죄 가온데서 유리하며(마9:36) 필경 멸망할 전세 인류의 영적 지위이다. 기본위(병위)에 있는 죄인은 예수의 대속하심을 믿고 사죄와 중생의 은혜를 받으면 을위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예수의 대속의 은혜를 신뢰치 아니하는 자는 지옥불 속에 던져지게 된다. 신생한 신자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성결의 주로 믿으면 성결함을 얻어 갑위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만일 불신앙의 생각으로 육신으로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성결에 이를 수 없다고하여 이 성결의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겨우 아담이 타락한 지위 즉 을위에 머무르게 된다.

이러한 유형적 해설 후에 김상준은 확신에 찬 음성으로 성결에 이를 것을 권면하고 있다.

"주께서 이 가인과 같은 불쌍한 상태에 있는 인류를 구제하시려고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 아담과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일생동안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시다가 필경은 골로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은 신자로 하여금 사죄뿐 아니라 성결을 이루게까지 하시려고 하심이니(딛2:14)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성결해질 수 있습니다."

 

3. 김상준의 제 2교리, 성결

"죄의 근을 뽑아서 내부의 여러 불결한 것까지 없애는 것이 이른바 성결이니...."

"성결이란 것은 ......죄근 즉 내부에 잔재한 악성과 심기를 주의 보혈과 성령의 불로써 씻어 깨끗게(洗潔)하며 더러움이 없고 흠이 없게 하는 것이 올시다."

"성결이란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신생자로 하여금 마음과 (정)성과 힘과 의지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기를-이 사랑은 신비적 사랑으로 결단코 육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몸과 같이(눅10:27) 못하게 하는 죄의 성질과 옛사람의 마음 속에 잔재한 것을 뽑아서 깨끗케(拔潔)하는 것을 일컬음이올시다. 성결에 대한 설명의 성귀를 왼쪽에 진술하니 참조하시옵소서.

가) 죄의 근-혹은 원죄라고도 함-을 뽑아서 깨끗케함(요일1:7)

나) 옛사람-6천년간 마음 속에 박혔던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엡4:22하)

다) 성령과 및 주의 피로 마음-혹은 양심-을 성결케 함(히9:24)

라) 몸과 영과 생-혹은 신(神)과 혼과 신-을 모두 깨끗케 함(딤전5:23)."

이렇게 몇 차례 강조된 성결의 정의 위에서 김상준은 성결교리의 세목을 풀어간다. 그 과정에는 두 가지 목적이 명시적 혹은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그 하나는 성결교리를 성서적 구조적으로 해설하고 권면함이요, 다른 하나는 성결교리를 이론적 체험적으로 부정하는 이설에 대해서 비판 변론하는 것이다. 이하에서 그의 논의를 따라 성결교리를 구분 상술한다.

가. 성결에의 과정

신생한 신자가 거기서 머무르지 말고 보다 성숙한 신앙의 경지인 성결의 지위에 들어가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김상준은 신생 후 성결에 이르는 과정을 '성결의 순서와 및 그 방법'이라는 제목아래 개진한다. 그것은 신생 후 원죄 즉 죄근의 자각, 헌신과 복종, 그리고 믿음과 대망함이다.

1) 죄근의 자각

"성결을 구하는 자는 먼저 죄근이 자기 마음 속에 잔재한 줄을 깨닫는 것이 제일 필요하다."53 죄인이 사죄함을 얻으려면 자신이 죄인인 줄을 깨달아야 하는 것과 같이 신생자가 성결을 얻으려 면 제일 먼저 자신의 마음 속에 죄근이 있음을 깨달아야한다. 김상준은 죄근과 그에 대한 깨달음에 대해서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탄식과 고백과 감사에 빗대어 설명한다. 신생한 초기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있다. 얼마 후에는 신생자의 마음 속에 두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과 새사람이 옛사람에게 져서 지체(육체)에 속한 죄의 법에 복종하게 될 위경에 처함을 느끼게 된다. 그 때에 율법아래에서 무한이 괴로움을 당하던 바울과 같이 '나는 실로 괴로운 자로다. 누가 나를 이 죽음에서 구하리요'(롬7:24)라고 탄식하게 된다. 그러나 신생자가 그의 마음 속에 죄근이 있는 것을 고백하며 발결하여 주시기를 주께 간구하면, 필경 예수께서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구하 심-즉 성결-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바울과 같이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롬7:25상)하고 진정한 감사드리며 큰 기쁨을 누릴 것이다.

김상준은 "성결의 은혜를 받고자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감정적으로만 받고 영과 마음으로는 받지 못한 것을 진실한 성결로 믿었다가 얼마 후에 그 숨어있던 죄근으로부터 나온 것이 있을 지라도 자기 마음에 허락하기를 이는 사람의 지혜가 불완전한 소치라고 하며 또는 무심코 될 일 이니 습관으로 될 일이라고 하며 자기를 속이는 자가 대단히 많"다고 하며 감정적인 성결 체 험과 그에 근거한 잘못된 성결론을 비판하고, 진실된 죄근의 자각과 그것의 척결을 권면한다.

"만일 이와 같은 분자가 있으면서도 감추거나 혹은 성결함을 자신하고 기도하며 구하지 아니 하거나 하는 그 사람은 영원토록 성결의 진정한 은혜를 받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근이 있음을 분명히 깨닫고 기도하는 것이 순서와 방법이며 또 제일 필요가 되며 거짓 성결을 스스로 원치 않는 것이 제일 필요합니다."

2) 헌신과 복종

김상준에 의하면 성결을 구하는 자는 온전히 헌신해야한다. 신생자의 당연한 제물(롬12:1 하)이 헌신이다. 당연히 죽어야 할 죄인이 대속하신 예수로 인하여 중생하였은즉 마땅이 '주 예수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후5:15).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도 역시 당신의 보혈로 사신 우리들의 깨끗한 몸과 부서진 영혼의 헌신적 제사이다(시51:17). 온전한 헌신은 '나'를 철저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대저 헌신의 의미가 대단히 깊지만은 쉽게 말하면 자기와 및 자기가 사랑하는 물건들을 모두 주께 바침이니, 누구든지 성결을 구할 때 온전히 주께 기탁하기를 옛날 이스라엘인이 제단에 바친 육혼과 같이 '나'라하는 것은 온전히 없어져야 하겠소이다. 그러나 바친다 하면서도 얼마쯤 나라하는 것으로 하려고 애를 무한이 쓰다가 나중에 자기의 심력이 다하여 할 수 없이 될 때에 온전히 자기를 바쳐고 기도하기를 주여 저는 지금 할 수 없기로 나의 영, 육, 마음, 의지, 힘을 주의 거룩한 손에 바치오니 저의 마음 속에 잔재한 죄근을 발결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 진 정한 헌신이올시다."

"복종하는 자에게 성신을 주신다"(행5:32)는 말씀대로 김상준은 또한 복종함으로 성결에 이르라 한다. 혹 헌신하고 기도하나 불복종함으로 성결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자가 많다. 초대교회의 제자들과 같이 성령이 기도하라 하시든지, 전도하라 하시든지, 간증하라 하시든지 할 때에 믿고 복종해야 한다. 또한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도하는 때에 무슨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기다려야 하겠고, 기도 중에 성결함을 받았다 하는 증거가 있거든 믿음으로 받아가지고 다시 의심하지 말고 즉시 일어나 그 받은 은혜를 사람들에게 간증하여 자기를 성결케 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믿고 복종하는 것이다.

3) 믿음의 기도와 대망

무슨 기도든지 기도하며 구하는 것을 '이미 얻은줄로 믿으면 얻으리라' 하신 말씀(막11:23-24)을 근거로 김상준은 믿음의 기도를 성결에 이르는 또 다른 방책으로 제시하며 권면한다.

".....모든 죄를 씻어 깨끗게 하시는 능력이 있으신 주께서 거룩한 피(요일1:7)를 흘리신 거룩한 옆구리를 당신에게 보이시려고 당신의 머리 위와 눈 앞에 임재하시오니 믿음의 눈을 뜨고 보시며 믿음으로 그 보혈과 주 예수를 마음 속에 받아들이사 성결함을 받으시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은 당신이 성결함을 받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런즉 당신은 믿기만 하시고 주의 뜻에 합당하시거든 저를 성결케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시오. 그러면 주께서 필히 나의 뜻에 합하니 정결함을 받으라 하실 것입니다(마8:23). 오 형제여 믿고 기도하시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아니 하겠습니까(눅11:13)."

이어서 그는 대망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심과 성령을 받은 자만이 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음을 예루살렘 교회의 성령 강림을 예로 삼아 설명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셨다. 예루살렘에 머물며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강림하심을 대망하라 하셨다. 위로부터 내리는 능력을- 즉 성령을- 받은 후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 성령을 받지 못한 자는 떠날지라도 무익하다. 세상과 육에 속한 지혜로 자기의 명예를 얻으려는 마음만 있어서 무익한 자신의 이야기나 세상 이야기를 말하기를 좋아하고 예수의 이름을 굳세게 증거할 힘이 없는고로 순전히 주의 거룩한 이름만 증거하기를 부끄러워 하여 십자가의 도를 온전히 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 이 지금 주를 증거하라는 사명이 있으면. ..... 믿고 머물러 기도하시는 중에 대망하여 우리위에 내리시는 성령을 받으신 후에 다시 가서 역사하시기를. .... 당신의 부족함을 깊이 성찰 자인하고 엎드려 대망하시오. 그리하면 당신의 하나님이 성화로써 (성)결케 하여 보내리이다."

나. 성결의 현세성과 순간성

과연 이 세상에서 인간이 성결할 수 있는가? 치열한 논쟁의 자취를 암시하며 김상준의 성결교리 해설 곳곳에 '성결의 현세성'을 부정하는 신학적 입장이 넘어야할 장애물로 드러난다. 김상준 은 이들을 비판하며 자신의 논의 즉 '죄의 발결로서의 성결의 현재성'을 주장한다. 김상준은 먼저 성결의 현세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성서를 불신하고 가감하는 자라고 개탄한다.

"혹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이 생존한 동안에는 결단코 성결할 수 없다 하나니 이는 성경을 보기만 하고 믿지않는 억설가로다. 성경에 분명히 내가 성결하니 너희도 성결하라(레19:2,20:7,벧전 1:16)하시고 명령하셨나니 어찌하여 살아있는 동안에 성결할 수 없다 하리오. 이 성구를 보면 당시의 생존한 사람들에게 성결하라고 하신 명령이지 어찌 죽은 사람더러 성결하라고 하셨습니까. 그런즉 이 세상에 생존하는 동안에 성결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은 즉 성경말씀대로 믿는 자가 아 니요 즉 자신의 마음대로 가감하여 가면서 믿는 자 올시다."

그는 성결의 현세성을 부정하는 이들의 논리 속에 담긴 '죄의 압치로서의 성령 세례'를 '죄의 발결로서의 성령세례'로 맞서 비판한다.

"그가 성결은 불신하면서 성신 받을 것은 믿고 기구하노니 대개 성결은 즉 성신을 받는 것인대 어찌하여 성신받을 줄은 믿고 기도하면서 성결 받을 줄은 믿고 기구치 아니하나이까. 성신을 받고 어찌 성결치 못할 수 있습니까. 성신받은 이에게 죄근이 그대로 있지 못할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올시다. 이 죄근을 압치하실 능이 있으신 성신을 생전에 받을 수 있다면 발결하실 능이 있는 성신도 생전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성결을 힐란하는 자들의 "옛날 다윗은 성신을 풍족히 받았던 인물이라 만일 다윗이 악성을 발결하였으면 어찌하여 그런 대죄를 범하였습니까. 이를 보면 성신으로 압치하였던 것이 분명하 다"는 주장에 대해서 김상준은 그것은 "진리를 명료하게 깨닫지 못한 자의 설명"이라 하면서 다윗의 범죄를 설명한다. 다윗은 타락한 것이다. 즉 아담과 같이 자유능을 잘못씀으로써 된 사건 이지 압치되었던 죄성에서 부패한 것이 아니다. 다윗의 죄는 "성결한 인이...인간의 고유성-즉 인성이니 식색의 정과 기타 여러가지 정을 가진 것으로 조금 부주의하면 마귀와 사람에게 유혹을 받기 쉬운 것이다-이 있음으로 자기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거척치 아니하고 받아들인 것이니 이는 죄근이 없으나 자유능을 활용함으로 된 죄이다"

성결의 정의, 성결에의 과정, 그리고 성결의 현세성 논의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무엇으로 인하여 성결을 얻느냐'는 제목 하에 따로이 뽑아내어 간단히 정리하면서, 김상준은 성결의 순간성 을 언급한다.

"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엡5:26,요17:17)

나) 주의 피로 인하여 (히9:24,요일1:7)

다) 성령의 불로 인하여 (레9:24)

이 세가지를 사람이 믿음으로 받아 드리면 '순간으로' 성결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대개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바치는 자를 즉 성령의 불로서 태워 정결케 하시사 제물로 받으십니다."

다. 성결, 그 결과와 유지

김상준에 의하면 성결의 결과는 '참 안식'이다. 성결의 지위는 에덴의 지위이다. 그 내부에서 전쟁하는 악물까지 전결하여 진(정)한 안식이 있다. 김상준은 이 안식을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점령에 빗대어 설명한다. "옛날 이스라엘인이 애굽을 떠나서 홍해를 건너고 요단을 건너서 가나안의 7족을 멸하고 안식을 얻어 누린 것은 지금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이 그 죄된 세상- 즉 애굽-을 떠나서 신생의 물세례-즉 홍해를 건넘-를 받고 또 성령의 불세례-즉 요단강을 건넘- 를 받아서 여러 가지 악성을 가진 옛 사람을 죽이고-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듯- 진정한 안식-즉 성결-을 누리는 모형이올시다."

그리고 그는 다시 성결의 안식으로 독자들을 초청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하여 하루가 천년같이 바라시고 기다리십니다. 또는 다행이 가나안을 점령할 좋은 믿음이 있을지라도 당신의 평생에 사랑하는 물건을 그 요단강 동편에 버려둔 것이 없습니까. 오 형제여. 온전히 바치고 이 행복스러운 안식 즉 성결에 들어오시오. 그러면 두 지파 반과 같이 훗날에 괴로움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 안식이 하나님의 선민에게 남아있으니 속히 믿음으로 나아와 취하시오. 사랑 하는 형제여. 당신은 지금까지 신생의 생애로 기쁘고 감사하게 지냈지만은 마음 속에 아직도 안 식이 없지 아니 하옵니까. 그러면 속히 성결의 은혜를 받아서 마음 속에 전쟁의 고통을 면하시고 이 좋은 안식으로 일생을 보내시기를 아멘."

그러나 이 성결의 지위가 천국의 지위일 수는 없고 성결한 사람이 하나님일 수는 없다. 김상준은 성결의 상대적인 면을 이렇게 밝힌다. "성결한 사람의 마음 속에도 결단코 악물이 잔존한다 고 할 수 없지만 육신으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참으로 하나님과 같이 완전치 못할 것은 인정이 있음으로 조금 부주의하면 위태한 일이 있으니 즉 식색(食色)의 욕과 및 지혜의 불완전, 능력의 불완전함으로나 또한 부지중에 과실되는 것과 나라는 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중에 여러 가지 작은 전쟁은 완전히 없을 수는 없습니다."

성결한 사람도 죄를 범하여 타락하는가? 바꾸어 물으면 사람이 일차 성결의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지내든지 영원히 성결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 김상준은 먼저 신생명을 얻은 자 도 범죄치 아니한다 하는데 하물며 성결한 사람이 죄를 범하겠는가 라고 답변하고 나서 그러나 한 번 성결을 체험했다고 해서 저절로 영원히 성결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일 성결한 것만을 믿고 방심 태만하여 경건치 아니하거나 또는 사람의 과실을 마음 속에 기억하고 용서치 않거나 전도에 태만하거나 범사에 불충하거나 성경읽고 기도하는 일에 나태하거나 죄를 작다고 경히 여기거나 혹은 청년신자가 과색하거나 하게되면 그 성결한 은혜를 누실하며 추락하여 범죄하는데 까지 이를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다윗의 경우를 그 예로 들어 김상준은 성결한 사람의 범죄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담과 다윗을 보시오. 이 두사람은 완전-아담-,성결-다윗-한 인물이나 불경건과 태타함으로 인 하여 마귀에게 틈을 타게하여(엡4:27) 식-아담-,색-다윗-에 대하여 자유능을 잘못 씀으로 타락되었습니다." 이들의 범죄는 죄근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유능을 잘못 활용함으로 인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고유성이 있음으로 자기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거척치 아니하고 받아들인 것이 니 이는 죄근은 없으나 자유능-혹은 가능성-을 활용함으로 된 죄"이다.

아담과 다윗같은 사람도 그렇게 되었으니 가령 성결을 얻는다 할지라도 끝까지 유지하기가 어렵고 또 신구약시대에 성결을 끝까지 유지한 자가 누가 있느냐는 반론에, 김상준은 많지는 않지만은 십여 인이 있다고 대답한다. 에녹(창5:24)과 엘리야(왕하2:11)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 시대의 열한사도와 바울과 스데반과 및 여러 성도들이 성결을 끝까지 유지한 사람들이다.

그러면 어떻게 성결을 유지할 수 있는가? '성결한 후에 경외로서 재림의 주를 대망'이라는 제목 아래 김상준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결을 유지 완성하라고 한다. 성결한 사람은 타락 전의 아담과 같이 죄와 선에서 자유할 능이 있다. 일차 성결 후에 아무렇게나 살면 성 결을 유지할 수 없다. 이미 성결한 사람도 경외하여 지키지 않으면 타락하기 쉽다. 성결한 사람은 스스로 자유능을 합당하게 활용하여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결을 완성해야 한다.(고후7:1) "이미 얻은 성결에서 타락할까 혹은 나태하여 누실할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건너야 하겠소이다."

또한 하나님의 지혜로 주위의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완전한데 까지 이른 자라 할지라도 그 주위에 더러운 것이 많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지혜로 소심방어치(엡 5:15) 아니하면 이미 성결한 마음을 다시 더럽힐 공념"이 있다. 주위에 있는 더러운 것들은 "악마와 악인과 및 여러 가지 사물들과 신문 잡지 들을 읽는 일 등"이다. 김상준은 레11장을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며 ".....먹지 못할 것은 즉 좋지못한 신문 잡지를 읽는 것과 악한 것과 사 귀는 것, 악한 것을 보는 것,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 악한 것을 듣는 것 등과 관계된 모든 일 들"은 먹지 말고 성도는 마땅히 식물 즉 성경과 및 신앙에 유익한 서적만 읽으라고 한다.

하와-성결에서 타락함-와 요셉-성결을 유지함-의 예를 든 후에, 김상준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신을 지켜서' 성결한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오 형제여 이 두사람의 일을 보시고 어렵게 (성결을) 완성한 후에라도 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신을 지키는 마음을 잃지않는 동시에 흠과 더러움이 없이 인내로써 재림의 주를 고대하다가 이 더럽고 악한 세상을 떠나서 주위에 성결한 물건만 가득한 공중 즉 거룩한 세계로 피안하시기를 아멘"

라. 소극적 성결과 적극적 성결

소극적 성결은 "사람의 마음 속에 숨어있는 죄성을 발결하여 소멸하는 것"이다. 소극적으로만 성결한 사람의 마음을 김상준은 "청소한 빈집"(마12:44)이라 한다. 사람이 만일 마음 속에 죄성, 즉 악물을 청소만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미덕을 그 집에 채우지 아니하면 전에 떠났던 마귀가 물없는 곳으로 다니다가 다시 돌아와서 보고 가서 자기와 동류 7명을 데리고 와서 들어와 거할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소극적 성결 후에 적극적 성결에 이르러야 한다. 적극적 성결이란 그 빈 마음 집을 "예수의 마음, 사랑, 능력, 공의, 기타 여러 가지 미덕과 및 용사보다 힘쎈 자, 즉 대장 예수(눅11:22)를 내주-믿음으로(엡3:17)-케"하는 것이다.

 

4. 김상준의 구원론의 특징

이미 앞선 연구들이 한국성결교회가 동양선교회를 통해서 웨슬레안 성결 운동의 신학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밝혀 놓았다. 김상준의 신학도 그 흐름 안에 있다. 미국 웨슬레안 성결 운동의 구원론의 특징을 나타내는 몇가지 중요한 주제들 아래 김상준의 구원론을 정리하며 그 특징을 밝히고자 한다.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동양선교회 초기 지도자들의 글이 이 작업에 도움을 준다.

가. 죄에 대한 이해

웨슬레안 성결 운동의 구원론의 첫 번째 특징은 죄에 대한 이해이다. 웨슬레안 성결 운동은 죄를 원죄(혹은 유전죄)와 자범죄의 두 범주로 나눈다. 자범죄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으로, 그 결과로 인간은 죄책감을 갖게 된다. 이 자범죄를 외적인 죄라고도 한다. 원죄는 내면적인 죄로서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서 인간의 본성에 생긴 부패성이며 죄의 뿌리이다. 이것은 아담의 자손에게 전가된다.

웨슬레안 성결 운동의 관심의 비중은 외적인 죄보다 내면의 죄, 곧 부패성이 있다. 외적인 죄의 사함을 넘어서서 죄의 뿌리가 제거되어야만이 인간이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죄의 뿌리는 인간의 본래적인 요소가 아니다. 원래의 인간에게는 부패성이 없었으나 아담의 범죄 후에 인간의 본성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부패성이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왔다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부패성이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이 웨슬레안 성결 운동의 믿음이다.

동양선교회 초기 지도자들의 죄에 대한 이해 역시 이와 동일하게 나타난다. 카우만은 "우리는 생활에서 범하는 '우리의 죄'(our sins)와 '모든 아이들이 가지는 태여나는 생래적인 악의 원리인 우리 안에 거하는 죄'(SIN) 사이의 성서적인 구분을 기억해야만 한다. 전자는 용서받아야 하고, 후자는 성령의 '씻음'과 '정화'로 제거되어야만 한다"고 하고, 생래적인 죄의 본성을 육의 성질 이라 하며 '악한 것을 붸는 욕망, 망설임과 불안정, 모순성, 자기중심주의와 이기주의, 성미급함, 분파성' 등으로 설명한다. 길보른은 "......죄의 두가지 성질에 대하여 주의해야 한다. 죄의 두가 지 성질이란, 원죄와 자범죄를 말하는데 원죄는 우리가 모태에 있을 때부터 전래된 죄, 즉 우리 조상 아담의 악한 성질이요, 자범죄는 스스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짓는 죄"라 한다. 나까다 쥬지도 "대체로 죄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지은 죄와 마음 속에 있는 죄, 영어로는 전자를 sins라 는 복수형을 쓰고, 후자는 sin이라는 단수로 말합니다. 이것을 자범죄와 원죄라고 합니다. 우리는 거듭남으로써 자범죄에서 구원을 받아 행위가 깨끗하여지고 또한 성결하여져서 원죄, 유전죄의 뿌리가 제거되어 깨끗함을 받아 성질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김상준의 죄에 대한 이해는 이러한 웨슬레안 성결 운동의 신학적 흐름 안에 있다. 김상준은 죄를 원죄와 자범죄로 구분한다. 즉 "전세 인류가 모두 아담의 자손이라, 그 아담에게서 세세 전 래한 죄성 즉 원죄와 제반 자범죄"로 구분한다. 원죄는 전래죄이다. 또한 원죄는 "죄근 즉 내부에 잔재한 본성과 심기"이며 옛사람이며 악성이다. 이 죄성에 속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과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담을 타락케한 마음-과 기타 범사에 나라고하는 것, 즉 자존주의와 세상과 세상의 물건을 사모하는 마음과 시기와 호색과 간사와 야심과 사람을 멸시함과 사람의 과실을 기억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과 가난한 사람에게서 불의한 이득을 취하는 것과 고집과 나태한 심성 등"이다. 그러나 김상준은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지위를 "아담이 천지 창조 후 처음 나온 인물이요, 하나님께 서 당신의 거룩한 형상과 같이 친조하셨다 하셨으니 누구에게도 죄근을 전수받았을리 없으니..... 아담은 근본인즉 완전한 성인"이라 하며 원죄가 인간 본성의 본래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이 부패성이 제거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한다. "죄의 근을 뽑아서 내부의 여러 불결한 것까지 없애는 것이 이른바 성결이니......"

나. 은총에 대한 이해

웨슬레안 성결 운동의 구원론의 두 번째 특징은 은총에 대한 이해이다. 웨슬레안 성결 운동은 은총 또한 두범주로 나눈다. 첫째는 '용서'의 은총으로 우리의 자범죄의 죄책을 용서하는 것이며, 둘째는 '정결'의 은총으로 죄의 뿌리를 뽑아 부패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용서의 은총을 칭의라고 한다면, 정결의 은총은 성화라 한다. 웨슬레안 성결 운동은 용서와 정결을 구분하였으며, 용서의 은총 후에 정결의 은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즉 죄에서 용서를 받아 의롭게 되면 그와 동시에 죄의 뿌리에서 해방되는 성화가 뒤따른다. 용서는 정결과 동반되어야 하며 칭의는 성화로 이어져야 한다. 우드(J. A. Wood)는 "하나(용서)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자비행위요 다른 하나(정결)는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은총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부패성을 용서하지 않으며 죄책을 씻지 않는다. 용서와 정결은 인간 구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죄책을 면케하는 전자는 천국에 갈 자격을 보장하고, 죄의 부패성을 제거하는 후자는 천국생활을 위해 준비케 한다"고 구분하였다.

길보른은 "길보리 산상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주 예수가 성취해 놓으신 놀라운 구원으로 인하여 우리는 자범죄와 원죄가 깨끗하게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얻게 된 것"이라 하고 죄사함을 받는 구원(칭의)와 성결을 구별한다. 첫째 은혜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으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남의 은혜에 들어가는 것이요, 둘째 은혜는 죄의 성질을 깨끗케 함이라 하며, "......우리가 사죄와 성결의 구별을 알겠고......우리를 구원할 두 가지 은혜가 필요한 것을 알 수 있으니 이는 이미 예수의 피로써 다 준비된 것들"이라고 한다. 카우만은 "첫째 은총의 역사, 즉 중생,- 하나님을 향한 회심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은혜"와 "둘째 은총, 즉 참된 성결은 내적인 부패성, 즉 육적인 마음 혹은 옛 사람을 제거하는 것"을 구분한다. 나까다 쥬지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속죄의 은혜, 칭의", 즉 죄 사유하심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음과 "성결의 은혜즉 제2의 은혜"를 구분하고, "...... 죄를 지으면 먼저 거듭남의 은혜로 회복하여 주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결의 은혜인 죄의 뿌리를 뽑아내는 제2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김상준은 은총에 대한 이해에서도 역시 같은 흐름 안에 있다. 김상준은 "사죄의 은혜"와 "성결의 은혜"를 구분한다. 사죄와 칭의의 은혜는 "죽을 죄가 있을지라도 회개하고 예수를 나 의 죄를 대속하신 구주로 믿음"으로 얻는 은혜요, 성결의 은혜는 "죄근, 즉 내부에 잔재한 악성 과 심기를 주의 보혈과 성령의 불로써 씻어 깨끗게하여 더러움이 없고 흠이 없게" 하는 은혜이다. 김상준은 또한 사죄의 은혜 즉 외적인 죄를 사함 받은 후에, 성결의 은혜, 즉 죄의 뿌리가 제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 자범죄만 사하심을 받고 당장 보기에는 완전히 없어진 것과 같으므로 방심하고 죄의 근을 마음 속에 남겨 두었다가 머지않아 그 죄근에서 여러 가지 죄의 맹아가 종생할 때에 보다 큰 괴로움이 생겨 탄식을 발하는 자가 있습니다 ....... 그러므로 신생자는 속히 성결의 은혜를 받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다. 이중의 치료, 중생과 성결

웨슬레안 성결 운동은 부패성을 치료되어야 할 질환이나 죄된 본성으로 묘사하곤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병을 치유하고 죄된 본성을 제거하고자 두 단계로 치료하신다. 즉 중생과 성결이 그것이다. 중생은 치료의 시작이요, 성결은 그 완성이다. 중생과 성결에는 차이점이 있다. 중생한 신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행동을 통제하시므로 외적인 죄(자범죄)를 범할 수가 없다. 그러나 중생 한 신자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원죄의 부패성이 남아 있으므로 육과 영의 싸움이 지속된다. 즉 남아있는 부패성 때문에 온전히 죄에서 해방된 삶을 살지 못한다. 이 잔여죄를 제거하는 제 2단계의 축복이 필요하며 이것을 온전한 성화 혹은 성결이라 한다.

웨슬레안 성결 운동은 외적인 행위의 변화보다 내적인 본성의 변화에 더 큰 강조점을 두었다. 스틸(D. Steele)은 웨슬레안 성결론을 '복음적 완전'이라하여 율법적 완전과 구분하였다. 율법적 완전은 율법 준수에 강조점을 두는 반면, 복음적 완전은 부패성의 제거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회복이다. 전자가 행위의 완전이라면 후자는 행위자 자신의 완전이다. 우드(Wood)는 "근본적으로 성결은-사람을 거룩하게만드는-거룩한 행위들이 아니라, 행위들을 거룩하게 하는 거룩한 마음이다. 선한 마음으로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하고, 악한 마음으로 악한 사람을 악한 일을 한다."

카우만은 "예수 안에서 중생한 신자들에게 육적인 마음은 잔존한다.....이 내재하는 악한 본성이 심지어 신자들 안에서 나쁜 기질, 교활한 욕망, 자존심, 자만심, 질투, 불평, 이기심 그리고 많은 '육체의 일'을 불러 일으킨다. ..... 이러한 '육적인 마음' 이 마음 속에 잔존하는 한, 내면의 전쟁은 매우 격렬하고 오래 지속되어서 많은 정직한 영혼을 낙심시킬 것이다"라고 중생 후에 영적 상태를 설명한 후에, "이러한 상태는 오직 '제 2의 은총', 즉 참된 성결 혹은 성화에 의해서만 벗어날 수 있다. 성화는 내적인 부패성을 제거하여 '선한 나무와 그 열매'(마12:33)를 만든다"고 한다. 길보른은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거듭남의 은혜를 받으면 죄의 나무는 찍혀 거꾸러져 버릴 것이다. ..... 여러 갈래로 범한 죄의 잎사귀와 모든 악습의 가지는 찍혀 버렸으나 아직도 그 뿌리가 남아 생명이 있으니 이 뿌리가 육에 속한 성질이다." "육에 속한 성질이라 함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죄의 뿌리니, 이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유전죄로서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치 아니함으로 입게 된 죄의 성질이다." "이 죄의 뿌리는 잠시 후면 밖으로 까지 나타나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증거하게 된다. 즉 분노와 시기, 제사와 분쟁 등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하고 "사람이 성결의 은혜를 받는 그 때에 온전히 모든 육의 성질 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한다. 나까다 쥬지는 "사람이 거듭나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을 때에 이미 성결이 시작된 것입니다. ..... 신자가 되는 그 순간부터 행위의 거룩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무언가 불충분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 오히려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라 하며 중생한 신자가 겪는 "내면에서의 자기와의 싸움"을 지적하고 "마음만일 뿐 실제로 옮겨지지 않는 것은 온전한 깨끗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의 다툼이 있을 뿐 아니라, 외부적으로 일할 힘이 없는 것을 깨끗함을 받지 못한 증거 입니다.....성결은 이와 같은 처 지에서 성령충만을 구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후, 성결은 "원죄, 유전죄의 뿌리를 제거하여 깨 끗함을 받아 새로워지는 것"이며 "성질의 변화"임을 분명히 한다.

김상준은 같은 입장에서 중생 후의 성결의 필요성과 부패성의 척결로서 성결을 주장한다. 김상준은 "신생자가 신생한 초기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있지만은 얼마 후에는 ...... 마음 속에 두 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새사람이 옛사람에게 져서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복종 케 될 만한 위기 상황"에 서게 된다 하면서, "죄의 성질과 옛사람의 마음 속에 잔재한 것을 깨끗케하는 것"이 성결임을 분명히 한다. 김상준은 또한 '죄의 압치로서의 성결'에 반하여 '죄 의 발결로서의 성결'을 주장한다. "그가 성결은 불신하면서 성신 받을 것은 믿고 기구하노니 대개 성결은 즉 성신을 받는 것인대 어찌하여 성신받을 줄은 믿고 기도하면서 성결 받을 줄은 믿고 기구치 아니하나이까. 성신을 받고 어찌 성결치 못할 수 있습니까. 성신받은 이에게 죄근이 그대로 있지 못할 것은 분명히 알수 있는 사실이올시다. 이 죄근을 압치하실 능이 있으신 성신을 생전 에 받을 수 있다면 발결하실 능이 있는 성신도 생전에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라. 성결, 점진적 성장과 순간적 은사

웨슬레안 성결 운동은 성결을 인간 본성의 점진적인 성장으로 보는 진보적인 신학자들과 달리 하나님의 순간적인 은사로 보았다. 본성이 부패한 인간이 점진적인 성장으로 그 부패성을 결코 제거할 수 없다. 스틸(Steele)은 "....... 부패성은 영적 발전을 의해서 제거될 수 없고 , 오직 믿음을 통한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죽일 수 있을 뿐이라" 했다. 우드(Wood)도 '성장에 의한 성숙'에 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사역에 의한 순간적인 정결'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웨슬레안 성결 운동은 성결에서 성장의 측면을 전적으로 무시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인간 본성의 성장이 아니라 은총 안에서의 성장이다. 이 성장은 두 단계로 구분된다. 하나는 중생 이후에 전가된 죄의 제거를 준비하기 위한 성장이요, 다른 하나는 성결 체험후 지속적인 유지와 발전을 위한 성장이다. 즉 중생 이후나 성결 체험 이후, 성결 체험을 위해서, 받은 은혜의 지속 을 위해서, 그리고 더 나은 성결을 위해서 노력과 성장의 필요성은 강조되었다.

카우만은 "참된 성결의 전체적인 일은 성령 세례와 불 세례로 갑자기, 순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여 성결의 순간적 체험을 주장한다. 길보른은 성령 세레, 성결, 온전한 사랑, 둘째 은혜 등이 동의어임을 전제하고 "성령세레는 차차 받아가는 은혜가 아니고 일회적으로 받는 은혜이다. 우리가 우리 몸을 산 제사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당장에 성취시켜 주시는 은혜인 것이다"라고 하며 성결의 순간성을 주장한다. 한편 그는 중생 한 후 죄의 뿌리를 자각한 신자는 성결에 이르기 위해 마음 속에 있는 뿌리를 물리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하며 성경을 읽으며 자기 믿음의 기초가 될 말씀을 찾아야 하고 온전한 복종과 확실하고 명백한 헌신으로서 나아가 자기가 받을 유업을 간구하고, 이 세상에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길지라도 성령의 거룩하심과 능력을 얻고야 말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성장해 나가야 함을 언급한다. 그리고 성결을 체험한 신자가 더욱 성장해야 함을 그는 "이상 두가지 은혜(중생과 성결)가 우리 준비의 모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히려 더 진보할 것을 원하시고 또한 더 좋은 준비를 하게 하신다. .... 곧, 매순간 주와 동행하며 한 걸음이라도 주에게서 떠나지 않고 주의 뜻에 순종하며 그의 거룩하신 음성을 따라서 전진해 나가야 한다"고 한다. 나까다 쥬지는 "여러분은 점진적으로 깨끗해진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수단과 방법을, 또는 수양 단련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은혜인 성결도 조금씩 점차적으로 깨끗해져 가는 것이 아니다. 이제 곧 하나밖에 없는 죄의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라 하며 "선한 일을 행한 자, 수양과 단련으로 가고자 하는 자"(활천94-2,70)가 점진적인 성장으로 성결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며, 성결은 "성령을 받는 일"이며, "이것은 즉석에서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일이며, ...... 서서히 조금씩 깨끗해 지는 것이 아니라 즉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한다. 나까다 쥬지는 또한 "거듭난 사람은 그 결과로서 선한 일을 행하게 됩니다.....거듭나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을 때에 이미 성결이 시작된 것입니다 ."라고 하여 중생후 지속적인 성장과 "성결은 성령과 불세례에 의해 즉석에서의 체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끗함을 받은 다음에는 '성령으로 충만케하여 주옵소서' 해야 합니다. 나는 32년 전에 성결의 은혜를 받았는데, 그 후 여러차례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고 하며 성결 체험 후의 지속적인 성장을 말하고 있다.

김상준은 ".....사람이 믿음으로 받아 드리면 '순간으로' 성결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대개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바치는 자를 즉 성결의 불로서 태워 정결케 하시사 제물로 받으십니다."라고 하며 성결의 순간성을 말한다. 그는 또한 신생한 신자가 죄근을 깨닫고, 온전히 헌신하며, 복종하고, 믿고 기도하며, 성결을 대망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결을 체험한 신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재림의 주를 대망하며 하나님의 지혜로 주위의 더러 운 것에서 자신을 지키면서 성장해야 한다고 한다.

 

5. 결론

이상에서 김상준의 구원론을 그의 {사중교리} 중 신생명과 성결교리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그의 구원론을 사죄로부터 성결에 이르기까지 그의 논의를 따라 개진하였고, 이어서 그의 구원론의 특징을 웨슬레안 성결 운동 구원론의 신학적 특징적 주제 아래 정리하였다. 이제 김상준의 구원론의 특징이 드러내는 한계를 논의하며 대안적 입장을 암시함으로 결론을 대신하려 한다. 이 작업은, 첫째 김상준의 신학이 웨슬레 신학에 대한 웨슬레안 성결 운동의 해석이 불가불 드러내는 한계와 동일한 지평 위에 서있다는 전제와, 둘째 현금 한국성결교회 신학이 초기 지도자들의 신학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책임 아래에 서있다는 전제를 안고 있다.

첫째, 김상준의 구원론은 사죄에서 성결까지 죄에 대한 깊은 연관 속에 논의된다. 자범죄와 용서하는 사죄, 칭의의 교리에 중점을 두었던 개신교 전통을 넘어서서, 원죄 즉 인간 내면의 죄성과 제거하는 성결 교리를 발전시킨 웨슬레안 성결 운동의 입장과 동일하게, 김상준의 구원론도 원죄, 죄의 뿌리, 내면의 부패성을 척결하는 성결이 그 핵심에 있다. "웨슬레안 성결 운동은 19세기 미국에서의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 가온데서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반대하기 위해서 인간의 부패성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고" 웨슬레의 성화론의 소극적인 부분을 강조하여, 극단적으로 정의해서 죄성을 인간의 몸 속에 있는 어떤 요소로 이해하고, 성화를 이것을 제거하는 것으로 보았다. 김상준도 같은 입장에서 "성결이란 것은 ...... 죄근, 즉 내부에 잔재한 악성과 시기를 주의 보혈과 성령의 불로써 씻어 깨끗게 하며 더러움이 없고 흠이 없게 하는 것"이라 하며 "죄근의 발결로서의 성령세례"를 주장했다. 그는 물론 소극적 성결 후에 적극적 성결이 따라야 함을 말하지만 그의 논의 비중은 소극적 성결에 크게 놓여있다. 그러나 웨슬레의 성화론은 그 범 위를 넘어선다. "요한 웨슬레에게 성화의 소극적 의미는 성결 혹은 죄 없음이지만, 더 적극적 의 미는 사랑이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성결이 성화의 한 요소이지만, 세상으로 찾아가는 성육신적 행동과 사회적 참여로서의 사랑과 선행이 성화의 또한 요소이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완전한 성도의 궁극적 목표이다."여기서 성결의 교리가 200년을 거쳐 전승되어 오는 과정에서 웨슬레가 주장한 이 교리의 윤리적 사회적 측면이 가리워지곤 했다는 스나이더(Snyder)의 지적을 인용하며 권면하는 조종남의 권유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성결의 교리, 곧 하나님께서 웨슬레를 통하여 성결교회에 맡기신 '거대한 위탁물'을 웨슬레의 해석에 따라 성서에 근거하여, 보다 이해력있는 신학적 과업이 수행되길 요청하는 바이다. 더 나아가 이 성화의 교리가 기독교의 윤리와 사회적 적용에 있어서 오늘날의 요청에 보다 폭넓게 적응하는 교리로 수립되길 요청하는 바이다."

둘째, 김상준은 성결의 순간적인 면을 강조한다. 웨슬레안 성결 운동은 성결 곧 성령세례라고 주장하였다. 19세기의 웨슬레안은 부패성의 제거가 인간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 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들은 성결을 인간의 점진적인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성령의 순간적인 역사의 결과로 보았다. 김상준도 이들의 흐름을 따라 성결을 "성신을 받음"으로, 순간적인 체험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요한 웨슬레의 성화론은 순간적인 면과 점진적인 면이 균형있 게 통합되어 있다. 그것이 19세기 미국의 상황에서 웨슬레안 성결 운동에 의해서 순간적인 체험으로 중심 이동을 하였다. "그것은 성화를 중생 때 시작된 마음의 점진적인 성화의 과정과 분리시키며, 자아에 대해서 죽는 순간에 오는 은혜와 완전한 사랑 안에서의 끝임없는 성장과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자아에 대해 죽고 사랑하기 위해 다시 태여나는 순간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이들이 완전 성화의 사건 전후에 있는 은혜 안에서의 성장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이 두 번째 축복을 받았다고 증거하는 많은 사람들의 초점은 진행되는 관계의 성격에 대해서보다는 결정적인 순간의 경험의 의미에 더 쏠려 있었다." 김상준에게 나타나는 순간적인 체험의 중요성과 그 경험의 유지의 강조는 이와 같은 맥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얻은 성 결에서 타락할까 혹은 나태하여 누실할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건너야 하겠소이다." "완전한 데까지 이른 자라 할지라도 그 주위에 더러운 것이 많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지혜로 소심 방어치 아니하면 이미 성결한 마음을 다시 더럽힐 공념"이 있으니 주위에 있는 더러운 것들, 즉 "악마와 악인과 및 여러 가지 사물들과 신문 잡지를 읽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 등은 그런 점을 나타낸다. 그러나 순간적이고 개인적인 체험만이 강조될 때는 완전 성화를 위한 성도들의 영적 생활이나 실제적인 삶에서의 헌신이나 노력등이 약화되어 결국 도덕무용론에 빠질 위험이 있고, 개인주의나 분파주의의 위험이 있으며 사회적인 무관심을 낳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웨슬레의 성화론의 점진적인 면과 순간적인 면을 균형있게 고려하는 신학과 실천은 오늘 한국성결교회에 주어진 과제이다. 웨슬레의 성화 과정은 점진적인 개념에 순간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종말론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며 "이러한 성화의 개념은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그 성장을 방해하는 병적 요소의 제거이다. 따라서 소극적인 면에서 보아 성화는 죄의 세력에서 자유케 되며 죄의 성질로부터 씻김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인 면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이며(롬5:5), 이 생명이 은총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사랑과 봉사의 힘이 점점 자라며 성결(온전한 성화)을 통하여 급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라는 웨슬레 성화론 해석은 현금 한국성결교회 신학이 선교 초기 지도자들의 신학을 계승, 발전시켜야 할 과제의 출발점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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