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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문


나의 선조와 부모님은 이렇다 할 만한 가문이 못 된다. 그저 평범한 서민이었다. 그보다 더욱 죄에 얽매인 하류층의 가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님이 모두 예수를 믿고 자기들의 죄의 고민으로 증인 삼아 나를 데리고 산중에 들어가 아버지는 아버지의 죄를, 어머니는 어머니의 죄를 회개하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들의 죄악의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1900년 7월 4일 새벽 다섯 시경에 평남 강동군 간리에서 아버지 이인실과 어머니 김진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나의 어머니는 일찍이 외조모의 강권에 못 이겨 마음에도 없는 강제 결혼을 하여 나의 아버지와 일생을 정과 의가 없이 살게 되었다. 그 중에도 경제적으로 너무 빈곤하여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두 번씩이나 자살을 하려고 비상을 물에 타서 마셨으나 이상하게도 주님의 섭리로 죽지는 못하시고 고민의 나날을 보내셨는데 다행히 내가 여섯 살 때 우리 집에 복음이 들어 왔다. 죄 많은 곳에 은혜도 풍성하시다는 말씀 그대로였다.

예수를 믿게 된 우리 가정은 기쁨이 충만하였다. 그 후 우리 식구들은 평양에서 한 40리 떨어진 중화 "한다리"라는 곳으로 이사하였다. 우리 식구들은 거기서 평양 선교리 감리교회까지 40리 길을 걸어다니며 주일 예배를 드렸다.

주일이면 우리 어머니는 닭 울기 전에 일어나서 새벽 조반을 지어 우리를 먹이고, 동생은 업고 나는 걸려서 혹은 아버지의 등에 업히기도 하며 그 머나먼 40리 길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빠짐없이 교회에 출석하였던 것이다.

모든 교인들은 우리 가정에 충만한 은혜가 내린 것을 모두 기뻐하고 늘 위로하여 주었고 가정에는 평화가 깃들고 아주 단란한 가정이 되었다.

어머니는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은 간절하신데 예배당은 멀고 찬송 한 장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으니 얼마나 안타까워하셨는지 모른다.

하루는 예수를 믿는 새우젓 장수가 "새우젓 사려" 하고는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주 앞에 빨리 나갑시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구주 곧 오라 하시네 죄악 벗은 우리 영흔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천쌍에 계신 구세주를 영원히 모시리"라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작대기로 장단을 맞추며 기뻐하는 것을 보시고는 너무 반가워서 따라 나가 "새우젓 장사" 하고 부르셨다.

"새우젓 좀 삽시다." 그리고는 새우젓을 사신 후에 "아주버님, 예수 믿으세요?" 하고 물으셨다. "예 ! 나 예수 믿소" 어머니는 좋아하시며 "나도 예수를 믿는데요" 하고는 점심을 해서 새우젓 장수를 잘 대접하고 찬송과 성경을 들고 와서 찬송 한 장만 가르쳐 달라고 조르셨다.

이렇게 너무나 배우고 싶은 마음 간절하여 겸손히 새우젓 장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찬송을 배우셨던 것이다. 그렇게 주님을 사모하신 어머니는 열심으로 공부하셨다. 그리하여 예수 믿은 지 6개월 만에 중과읍 장로 교회에서 세운 학교 여학생들의 교원이 되시어 그곳에서 봉사하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