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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과 전도운동

 

초교파적으로 전도하면서도 본 교단의 인연 있는 식구들을 잊을 수 없어 기도와 봉사로 후원하였다.

6·25에 예배당은 많이 불타버리고 성결교단의 유력한 목사들은 죽거나 납치되어 없어지니 본시 작은 교단이 왜정 해산 때의 상처가 큰 데다가 겨우 일어나려는 때에 다시 2중 3중의 환란을 당해 단체적으로 큰 타격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이를 보고 그저 지나갈 수 없었다. 불한당 만난 여리고 사람을 보고 그저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 사람같이 무정할 수는 없어서 불가불 수복 후 첫 총회가 부산 수정교회에서 열릴 때 참석하였다.

각각 내 까닭이라고 책임지고 서로 붙들고 회개하여 새로운 출발이 있게 되었다. 나는 또한 각처의 무너진 모든 교회들을 찾아 재건하였는데 특히 임마누엘 특공대라는 이름을 띠고 농촌, 산골, 도서 여러 지방을 순회하며 부흥 집회를 하여 영광과 욕됨을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을 함께 받았다.

전에 세운 교회들, 특히 인연 있는 목포 앞바다의 모든 도서들, 압해, 임자, 암태, 진도에 들어가 순교 40여 명 낸 진말교회와 순교당한 문준경 전도사의 증동리 교회 등을 다시 방문하였다.

그러던 중 나는 병이 들어 집회하기가 곤란하였으나 결사적으로 들것에 들려 다니면서 집회하였다. 죽어도 자기 교회에 가서 죽어야 한다고, 자기 교회 집회는 조금도 연기할 수 없다고 하여 끌려 다녔다. 어머니는 병들어 죽어 가건만 어린 아기는 그것도 모르고 어머니 가슴으로 기어올라가 젖꼭지를 물고 발버둥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은혜를 사모하는 그 모양을 보니 병중에서도 새 힘을 얻어 봉사할 수 있었다.

또는 부산에서, 대구에서, 대전에서, 서울, 인천에서 천막을 치고 대중 집회할 때는 수천 명 수만 명에 이르기까지 집회함으로써 과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였다. 어떤 때는 하루에 5, 6차의 집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새벽기도, 유년 주일학교, 장년 구일학교, 정식 대예배, 오후 성별회, 또 밤 집회를 계속해도 시간시간 힘을 주셨다.

또한 각처 특수기관에 가서 전도를 많이 하였다. 형무소 죄수들에게 강연하였고, 군인교회도 많이 가게 되었다. 군목들 중에 인연 있는 분들이 많아서 전방과 후방의 각 군대에서 장병들을 모아 놓고 전도하면 손들고 돌아오는 군인 청년들이 부지 기수였다.

한번은 6사단에 가서 전도하려는데 사단장이 교회를 크게 환영하여 의장병으로 하여금 사열을 시키는데, 처음이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어리둥절한 채로 굉장한 대우를 받았다.

또한 경찰서에 가서 순경을 모아 놓고 전도할 때 감개 무량하였다. 일본 경찰들에게 그렇게도 핍박당하고 언론 취체(取締)한다고 형사들이 까딱하면 잡아다가 취조하던 것이 해방 후 오늘날 우리 순경들에게 받은 대접은 너무도 황송하였다.

특수한 일은 나환자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도 저들을 동정하여 남한에 있는 나병원 교회는 대개 안 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소록도 간생원, 여수 애양원, 대전 애경원, 대구 애생원, 부산 상애원, 인천 소생원, 금천 성애원, 창녕 소혜원 등등 가는 곳마다 많은 은혜를 입었다.

사회에서, 가정에서, 동리에서 버림받고 병으로 몸은 썩고 문드러지는 비참한 그들을 동정하여 찾아가서 복음을 줄 때 진정한 사랑, 참된 신앙의 무리는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

구제품을 얻어 입고 부업으로 돼지를 기르고 닭을 쳐서 꼭꼭 십일조를 드리고 썩은 몸뚱이를 가지고도 박수를 치면서 즐겁게 찬송부르는 것을 보고는 건강한 사회에서 보지 못하는 참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저들은 오히려 나환자 된 것을 감사했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그냥 지냈다면 하나님을 이렇게 전적으로 '믿지 못하였을 것을 오히려 고난당한 것이 자기들에게 유익이라고 감사했다.

그래서 나환자를 위해서 노래를 지어 주었다. 순교자 손양원 목사가 목회하시던 여수 애양원 교회 집회에서 이렇게 지었다.

 

애양원 노래

1. 금수 강산 남해안 기묘한 곳에

에덴 같은 이 낙원은 우리 애양원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사랑해

이 동산을 우리에게 주시었도다

 

2. 죄가 많은 이곳에 은혜 풍성타

세상에서 버림받은 비천한 자를

장인들이 버린 돌이 집모퉁이에

요긴하게 보이신다 우리 주님께

 

3. 하나님이 우리들과 같이 계시는

임마누엘 제단이요 미궁이로다

천여 명이 날마다 드리는 제물

가멜산상 불로써 태워 주소서

 

4. 수륙 만리 성도들의 뜨거운 동정

우리 동포 유지들의 후원과 사상

진주같이 빛나는 선한 목자의

피와 땀과 눈물로 길러 주시네

5.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대로

부름 입은 사람에겐 불행 없구나

만사 합동 유익하여 영광이로다

겉사람은 부패하나 영은 살았다.

 

또한 양로원, 고아원, 자매원에서도 집회를 많이 하였다. 그 중에 부산 신망애 양로원에서 집회를 청하여 갔더니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2백여 명이 계셨다.

그들은 참으로 인생학교 졸업반들이라, 나도 부모님의 환갑연이니 장례식도 못한 불효 자식임을 기억하고, 특히 연로한 분들을 대할 때에 나의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니 저들은 죽었던 자식이나 돌아온 것처럼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지성으로 복음을 전하면 그들은 배후에서 안 나와 시므온과 같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는 은혜를 많이 얻게 되었다.

또한 거기서 노인들을 위해 지어드린 노래는 다음과 같다.

 

인생모경가

(찬송 214곡)

 

1. 꿈결 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 살까

일생의 향락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 세월 고난 풍파 일장 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가느냐

 

2. 이팔 청춘 그 꽃다운 시절도 지나고

혈기 방장 그 장년도 옛날이 되누나

성공 실패 꿈꾸면서 웃고 우는 그 순간에

청치 않은 그 백발이 눈서리 휘날리누나

 

3. 해와 달과 별같이도 총명하던 정신

안개 구름 담뿍 끼여 캄캄해지누나

모든 정욕 다 패하고 아무 낙도 없어지니

땅에 있는 이 장막은 무너질 때가 되누나

 

4. 인삼 녹용 좋다 해도 늙는 길 못 막고

진시황의 불사약도 죽는 데 허사라

인생 한번 죽는 길을 누가 감히 피할소냐

분명하다 이 큰 사실 너도 나도 다 당하네

 

5. 꽃이 떨어진 후에는 열매를 맺구요

엄동의 설한 지나면 양춘이 오누나

어두운 밤 지나가면 빛난 아침이 오리니

이 세상을 다 지난 후 영원한 천국 오리라

 

6. 근심마라 너희들은 하나님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고 주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 그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지요

기쁘도다 주님 함께 영원히 같이 살리라

 

7. 강 건너편에 종소리 내 귀에 쟁쟁코

보석성에 그 광채는 눈앞에 찬란타

앞서 가신 성도들이 주님 함께 기다린다

어서 가자 내 고향에 할렐루야로 아멘


이 노래는 각 교회에서 많이들 부른다. 또 고아원도 여러 곳에 갔다. 특히 유성 온천에 "천양원"이라는 고아원은 무의무탁한 어린이들을 잘 보살폈다.

원장 유을희 전도사는 내 일찍 35세 때에 충청도 강경서 집회할 때 구원받은 자매였다. 소위 양반 가정에서 자라나 양반의 가정에 출가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으나 그만 서울서 공부하던 남편이 돌연 별세하여 21세에 청춘 과부가 되었다. 하나 있던 어린 딸마저 죽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랴.

세상을 비관하다가 신경쇠약까지 들고 또한 다른 여러 가지 병에 시달려 친정에 치료하러 왔다가 내가 강경 성결교회에서 부흥회 한다는 말을 듣고 혼자 찾아왔다고 했다. 그날은 마지막 날인데 십자가의 도를 가지고 전도할 때, 예수의 도는 밤송이와 같다고 했다. 밤송이는 껍데기에 무서운 가시가 났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밤알이 나온다. 그러나 그대로는 먹지 못한다. 두꺼운 껍질을 벗기고 또 속에 내피를 벗기면 달고도 고소한 맛좋은 것이 나온다.

예수의 도에는 십자가가 있어 찌르는 서러운 고통이 많다. 그러나 내버리지 말고 참고 참아 속 진리를 체험해야 된다고 외칠 때, 그 자매는 나도 좀 믿어 봐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이튿날 새벽에 안수기도 받아 병도 낫고 열심히 믿어 그 교회 집사가 되었고, 신학까지 공부하여 전도사가 되어 시댁 근처인 공주군 노성에다가 교회를 설립하고 또 공주에 가서 신개척하여 큰 교회를 이루었고 근방에 지교회를 4, 5처나 세웠다.

그리고 고아원 두 곳을 세워 수백 명의 어린이들을 길러 고등학교, 대학교, 신학교까지 보내 좋은 인재를 양성시켜 사회와 교계에 명망이 높은 부인이며 복음의 자녀 중 나의 자랑거리였다.

목포 열매

또한 목포에서 목회할 때인데, 크리스마스 밤이 되자 무슨 구경있다고 신자 비신자가 막 몰려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기회를 이용하여 항상 전도 강연을 하였다. 내가 33세쯤 되는 해 성탄 밤에 22,3세쯤 되어 보이는 한 예쁜 청년이 빨간 넥타이에 빨간 안경을 끼고 양복을 쪽 빼고 들어왔다.

꼭 얼른 보아 기생 서방같이 보였다. 그날 밤 설교를 하고 예수 믿을 사람 손들라고 하니 그 청년이 손을 들고 결심했다. 주소 성명을 적었으나 처음에는 좀 의심하였다. 그는 결심한 후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새벽기도까지 꼭 나와서 성경을 배웠다.

나는 그 청년을 자주 심방하였다. 6개월만에 학습을 세우고 1년만에 세례받으니 주일학교 선생이 되고 후에 집사가 되고 가족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자기는 서울신학교에서 공부하여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더니 지금은 목사가 되었는데 이리 성결교회에서 20여년 간이나 목회를 하고 있다.

그 교회에서 신개척한 교회도 여러 교회다. 그 지방회장을 여러 해 계속하여 지내고 총회 서기는 전매 특허로 역임한 명망이 있는 목사요, 나의 복음의 자녀 중 자랑거리의 한 사람인데, 그가 이 진우 목사이다.

충청도 충성에 가서 집회하는데 송헌빈이란 목사가 "목사님, 저를 잘 기억하지 못하시지요?"라고 물었다. "왜? 송목사지." "어떻게 목사 되었는지 잘 모르시겠지요?" "글쎄?" "일제 해방 후 바로 평택에서 교회 재건 부흥회 하신 생각나지 않습니까?" "왜 안나? " "그때 앉은뱅이 청년, 나무 판대기 깔고 손으로 기어 교회 나오던 청년 생각나지 않습니까? " "오, 어렴풋이 생각난다. " "그 청년이 바로 저랍니다. 저는 그때 병중에 비관하고 낙망 중이었으나 그때 나와서 예수 믿고 목사님 기도해 주신 후 몸도 회복되고 신앙으로 일관하니 또한 신학까지 하게 되고 졸업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제 아버지로 생각한답니다. " 나는 그 감격스런 간증을 듣고 감사하였다. 그는 벌써 곳곳에서 교역에 큰 승리를 하고 충성했다. 오랫동안 숙제로 있던 교회당을 아름답게 건축하고 주께 영광을 돌렸다.

아편쟁이가 목사 됨

목포 처음 부임에 첫 열매가 김정기였다. 그는 아편쟁이로 패가망신하게 되고 겨우 결심함으로 약간 절제를 하였으나 또 술과 담배 등 모든 불의의 습관을 이길 수 없었다. 그의 딸이 먼저 주일학교에 나오고 나는 때때로 찾아가서 개인 전도하니 주께 나오게 되었다. 나오자마자 열심히 변함없는 신앙으로 일로 매진하였다.

그는 마침내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지금 삼천포 교회 목사로 유력하게 일하고 있다." 예수는 죄인의 친구이시니 죄 많은 곳에 은혜도 풍성하다" 하신 말씀 그대로였다.

복음의 열매뿐 아니라 육신의 열매도 많이 있으니 잉태 못한 여인들이 은혜받아 좋은 아들 딸들을 얻음을 많이 보았다. 그 중에 기억나는 몇 가정을 소개한다.

한번은 신의주 부임 초에 김순모 집사네집(지금은 목사)을 갔더니 그 부인이 30이 넘도록 성태를 못하였다 했다. 그래서 두 내외에게 함께 축복하였더니 그 부인은 그 달부터 태기가 있어서 훌륭한 아들을 전무후무로 하나 낳아서 길러 대학을 다니는 모양이요, 그의 아버지는 신학을 마치고 목사 되어 서울 창신동교회 목사로 유력하게 일하는 중이다.

또 한번은 평양 기림교회 주최로 천막 대집회를 하는데, 많은 신유의 이적이 나타나는 중 그 교회 이용선 목사 부인이 슬하에 혈육이 없어서 어느 날 새벽 기도회 때 안수하였는데 그 후로 좋은 아들이 생겨나니 연희대학 음악과를 공부하는 전무후무한 독자이다.

또 한번은 평양 유정 감리교회 집회를 하는데 한 부인이 꼭 강단 앞에 나와 일주일을 금식기도했다. 왜 그러느냐고 이유를 물으니, 그녀는 평양 연화동 장로교 집사인데 30이 넘도록 성태를 못해 지금은 별짓 다 해도 소용이 없어 믿지 않는 남편한테서 세 가지 요구를 받았다고 했다.

"어서 속히 아이를 하나 낳아 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혼을 해주든지 또는 술장사라도 해서 돈이라도 벌어라. 아이 낳지 못해 남의 집안 망하게 하고 밥만 먹고 집에 있을 것이냐? 담판을 지으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이것을 해결하려고 기도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것 참 동정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그 후 일본에 갔다 오니 일년만에 그 자매가 옥동자를 안고 기뻐하였다. "아니, 그거 웬 아이요?" "아이고, 그때 은혜받고 얻은 아이랍니다. "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했다. 나는 그때 일이 생각나서 "여보시오, 남편이 이제는 술장사하라고 안 하겠지요" 하니 "그렇고 말고요 우리 남편도 교회 나간답니다. " 그는 전농 전집사이다. 애기 어머니가 애기를 데리고 나와 떠들면 교회에서는 다들 좋아하지 않지만 전 집사만은 애기 업고 나가면 온 교회가 다 즐거워했다. 이런 사실은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