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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특공대
(1954. 5. 25-1955. 4. 27)

"나는 원치 않는 곳으로 잡혀가노라." 예수께서 일찍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어려서는 네 손으로 띠를 묶고 임의로 다녔거니와 늙으면 네 손을 펴리니 다른 사람이 너를 묶어 원치 않는 곳으로 잡아가리라" 하심같이 나도 어려서는 자유로 수십년간 동양 천지의 각 교파 900여 교회에 임의로 돌아다녔다. 물론 주의 손에 이끌려 역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리고 철없어 종종 내가 주께 붙들리지 못하고 주님을 억지로 끌고 내 마음대로 다닐 때가 있어서 주님을 근심케 하며 주님 사업을 방해하여 나 자신에게 불행을 초래할 때가 많았다. 물론 고의는 아니었다. 성지를 분별할 지혜의 부족과 또한 알고도 인간의 편리와 요구로 마음대로 행한 것이 많을 줄 안다.

그러나 내 주님은 항상 변함없는 사랑으로 또는 절대 권능으로 나의 잘못을 고쳐 주시고 당신의 뜻을 성취하심을 감사할 뿐이다. 요나의 불순종으로도 주의 뜻이 성취됨을 안다. 오늘날 택한 종들과 성도들도 이런 사실을 체험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자기를 정화시킬 것이나 악인은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고 지혜로운 자는 깨달을 것이다. 나도 이제는 노경이 시작되고 모든 경험과 세태의 동향과 교회의 형편을 보고 이제는 밀알과 같이 땅에 떨어져 썩어지려는 사명에서 환영보다 배척의 길, 평안한 길보다 괴로운 길, 원치 않는 곳으로 잡혀가노라.

이제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십자군 특공대의 포로가 되어 각처에서 분투하는 전도대를 봉사하고 농촌과 산촌, 도서 등지에서 부흥사를 못 청하는 곳에 끌리어 가노라.

먼저 후방보다 일선의 교회가 부진하기로 유명산 강원도 지방으로 가는 길이다. 고로 당분간 타 교단 교회와 언약하였던 집회는 일률적으로 불가능해지고 비록 본 교단이라 해도 대교회로 전자급하는 교회는 집회를 일체 사절하게 된다. 내가 못 가도 소장 부흥사들이 주와 함께 백전백승할 것을 믿고 기도할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해야만 되는가?

1. 성지임을 믿음으로 그렇다. 주님은 약한 자와 가난한 자의 친구 되시고 또한 나뿐만 아니라 주의 종들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2. 시대가 너무 자유주의로 흘러 교회조차 법적 질서가 없고 혼란 무질서하여 이단과 속화를 방지하기 어려우므로 이제는 내부 결속이 시급히 요청되므로 그렇다.

3. 내가 나를 쳐서 복종시키지 않으면 타인에게 복음 전한 후에 내가 버림받을까 두려워서 그렇다.

4. 타인을 위하여 대를 구하고(대 교회는 내가 안 가도 갈 사람이 많다) 자기를 위하여는 소를 구하는 뜻에서 그렇다.

5. 약소 교회를 동정하며 고루고루 은혜를 나누기 위하여 그렇다.

6. 새 시대 남북 통일을 위한 전도 훈련과 작전 계획이다.

7. 환영하는 헬라로 가지 않고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에서 밀알같이 땅에 떨어져 썩어 많은 열매를 맺은 주님 자취를 조금이라도 밟아 보려는 심정에서 된 것이다(요 12'24). 살든지 죽든지 괴로우나 즐거우나 이 몸에서 그리스도만이 존영(尊榮)을 받으소서.

1954. 5. 25

우리 대장 예수기를 가지고 앞에 가신 주를 따라 단신으로 강원전(江原戰)에 출전했다.

1954년 5월 27일-30일 춘천

점령 5일간 제일교회에 포진하고 노장 김규호 목사와 함께 삼 백여 명의 병사들을 인솔하고 악마 대군과 백병전을 하니 새 결심자 70여 명이었다. 우리 군사 재무장으로 사기 충천이요 성결 진지 예배당은 사변 전보다 아담하였고 전일의 2차 대화재로 깨닫는 자가 오히려 다수이니 문자 그대로 제일교회의 성결 간판이 부끄럽지 않게 계속하여 잘 싸웠다.

6월 1일-6일 6사단

국군 6사단의 초청으로 수만여 명에게 복음탄 투하, 무려 5천여 명의 장병이 주께 돌아와 평생 전도의 최고 기록이었다. 군인교회 두 곳에 예배당 헌당식과 19연대 장병들에게 성례식 거행하였다.

그리고 민간인으로는 좀처럼 차지할 수 없는 6사단의 사열을 받는 영광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우리 교단 이봉성, 정종옥 두 군목의 감화가 컸다.

6월 7일-10일 춘천 재토벌

소양(昭陽)고지 점령, 천막교회 포진하고 사흘간 소탕전에 신학교 재학중인 홍순우 전도사와 교인 70여 명으로 다소 고전이었으나 각 교파 후원군들로 여전히 승리했다. 신개척 교회였으나 이제는 토대가 바로 서게 되었다.

6월 11일-14일 횡성 성결군

대장 이만선 목사의 고군 분투하는 소식 듣고 급진 돌격하니 교회당과 목사관 모두 빼앗기고 무너진 공회당 지하실에서 장병들이 포위를 당하여 악전 고투로 비절 참절이었다.

특공대 숙소는 신흥 여관이요, 전투장은 건난장이라. 4일간 공방전에 고지를 탈환하여 엉터리 신축 예배당에 가마니 깔고 승전 예배드리니 부상 장병 50여 명. 사기 충천하여 진지 사수에 진력했다.

6월 15일-19일 원주전

오만식 대대장(목사)과 3백여 병사들은 특공대 내원 소식 듣고 만반 준비로 대회전에 합세 작전하니 악마군은 벌벌 떨고 자군은 초일부터 사기 충천, 5일간 격전에 새 구도자 백칠 명, 성전 건축헌금 30만여 원 봉헌에 장로교, 감리교는 물론 침례교, 안식교인까지 참석하여 은혜받고 헌금까지 하게 됨은 성령의 역사요, 순복음탄의 권위로다.

6월 20일-21일 호저 싸움

호저는 원주 지교회 소대인데 전임 소대장이 떠나고 4, 5인의 약졸들이 진지 사수하더니 여군 맹장 김만호 전도사가 예산에서 전임된 지 수 주일에 전세를 만회하고 승전도상에 특공대가 2일간 후원하니 단연 마적이 투항하고 포로 석방 30여 명을 신병들과 함께 편입하여 사기 양양.

6월 22일-25일 안흥 접전

6·25 이후 비참한 폐허에 대장 이석민 목사는 교회 재건에 악전 고투로 사면 적춘에 포위되어 고전에 빠져 애타던 중 특공대 돌격 응원으로 아군이 대승리하여 면내 유지 다수 귀주(歸主)하였고, 공산당 때문에 면민 8백여 인부 들여 석조 망대를 세웠었는데 전쟁 후 지서에서 그 망대를 무상 헌납하고 또 인천 이종문 장로가 자기 산판의 목재를 헌납하고 더욱 초근 목피로 연명하는 산골 신도들이 백만여 환을 지성으로 연보하여(도회지에서의 3백만 환보다도 어려운 일) 미구에 석조전이 인민군 토벌 망대 자리에 서게 되었다. 할렐루야!

블레셋군 토벌에 삼손의 피로는 내게도 찾아와서 기계 고장으로 그만 작전상 후퇴할까 하였지만 진부와 강릉의 소식은 잠시라도 결사대의 후퇴를 용납치 않았다. 계속 동해안으로 출격하오니 후방의 복병들 많이 기도하여 주소서 !

 

욥의 노래

(욥 23. 10, 찬송 294곡)

 

1. 환난 중의 성도들아 욥의 인내 보시오

2중 3중 큰 환난에 하나님을 찬송해

 

2. 많은 재산 빼앗기고 10남매의 죽음과

온 전신 창질 나고 노비 모두 죽었네

 

3. 한몸같이 사랑하는 아내조차 떠나고

죽마 고우 친구들은 이해 동정 없구나

 

4. 고(苦)는 낙(樂)의 근본이라 배전 축복받을 때

전에 듣던 주의 위엄 이제 본다 그 사랑

 

5. 나의 평생 가는 길을 주님께서 아시니

나를 연단하신 후에 순금같이 되리라


6. 세상 모두 없어져도 주님 함께 계시면

어느 때나 어디서나 항상 찬송하리라.

 

(후렴) 하나님이 주시었고 하나님이 빼았네

         적신으로 나왔으니 적신으로 가리라

 

이 노래는 전재지 강원 지방에 와서 교역자와 신도들의 곤란을 보고 지은 위로가이다.

6월 26일-29일 진부 백병전

오대산에 침입한 대마군의 위협은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과 방불하다. 아름다운 산천 도시 초토화되고 교회당조차 소실당하고, 대장 김목사는 상이 군인이 되고 부대장 전인천 사관이 소수의 잔병(殘兵)과 함께 악전 고투차, 특공대 돌격 소탕은 위로와 기쁨 충만이요, 지방 유지, 지서장, 중학교장, 조합 이사장 다수가 주께 돌아왔고 세례 4명, 학습 18명 신병 보충 입대식 거행하니 무한 영광이로다.

6월 30일-7월 4일 강릉전

대관령 넘어 동해안을 울고 갔다 울고 나오는 강릉은 미신 소굴로서, 해마다 거행하는 대관령 성황리 단오대제는 유명한 제사인데 금년은 계속된 우천으로 불성이라, 마귀 세력 불리로 한풀 꺾인 셈이다.

30년 역사에 교회 부진으로 유명한 지대인데, 8 · 15해방 후 교회 재건에 있어 나의 수고로 특별히 인연 있는 교회로서 근30년간 젊은 청춘에 부임하여 지성으로 봉사, 이제는 백발 노파가 된 이정근 여전도사의 기도 응답과 별동대 김의방군의 희생적 투쟁으로 괄목 상대의 대승리 중 금번 특공대가 합세 작전하니 그 승리는 교회 유사 이래 처음이란다.

기도의 응답 없다고 그렇게 낙심 말아라

만사에 때가 있나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7월 5일-7일

예정한 정선 행진이 폭우로 길이 막혀 당지 감리교회에서 삼일간 벼락 작전했으나 많은 영광 나타났다. 폭우 중에도 사면에서 모여드는 대군중이 은혜 폭탄 세례로 거듭나는 역사는 가관이었다.

7월 8일-11일 속초전

38선 넘어 백여 리로 진격, 수복지 감리군과 공동 대격전하니 악마는 완충 지대를 새 방위선으로 총집결이라. 계속 결심 기도와 전도로 추격하면 완충 지대 폭파도 머지 않으리라. 성결 군단에서도 속속 수복지 진격을 시급히 요청하노라. 특수한 사실은 감리교 고봉섭 권사가 3년간 척수 골막염으로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백약 무효로 신음하더니 금번 신유로 즉시 완쾌, 걷게 되니 주께 영광 할렐루야! 아멘.

후방 각처의 하기 장교 훈련장의 요청과 또 하나의 작전상 계획과 심신의 피로 정양(靜養)과 재무장 위계로 영남 지방으로 이동령이 내렸다.

7월 14일-17일 주봉산 고지

후방으로 오는 도중에 주봉산 고지에 성결소대가 위급 요청하여 3일간 토벌 작전하니 완전 탈환이요, 충북 수산에서 승리의 공훈을 남기고 부임한 이 소대장의 결사적 활동과 몇몇 성도의 희생적 봉사는 선교부 의뢰 없이 스스로 단행하여 성전 신축 계획도 착착 실현 도상에 놓였다. 사탄의 오묘한 악마 같은 모든 문제가 주님 안에서 완전히 해결됨을 다시 체험하니 감사하고 강원 일회전을 마치고 3개월만에 서울행 열차로 칙칙 폭폭.

7월 26일-29일 유성 천양원 꼬마전

무의무탁한 고아의 어머니 유을희 전도사의 간청으로 천진난만한 고아원에 돌격하여 꼬마 사탄을 박멸하니 어린 것들의 눈물의 기도와 기쁨의 찬송에 산천이 진동했다.

직원과 일반 교우들도 충성을 맹세하여 좋은 일꾼들을 양성하는 결의를 새롭게 했다. 한 자식 기르기도 싫어하는 세상에서 수백의 고아를 근 십년을 하루같이 기르는 유부인의 갸륵한 자애심에 주님의 축복이 무한하실진저 ! 자선이란 미명하에 사리 사욕을 도모하는 위선자들, 고아의 피를 빨고 노쇠의 기름을 짜는 자 허다한 이 시대에 아무쪼록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럼 없는 천양원이 되어지이다.

8월 2일-7일 경남 지방 장교 하기 훈련

말은 뛰고 학은 춤추는 마산 무학산봉에 삼백여 명 교역자 집합하니 바로와 싸우려는 모세가 불붙는 가시덤불에서 새 사명 받아 하나님의 지팡이로 사용됨과 방불하다. 찬송탄과 기도포, 말씀의 원자탄으로 매일 문제없이 천지 진동하더라.상설 기도관 건축 문제로 헌금하여 백만 환 모이니 주의 이적이요, 산명 수려한 절승의 곳 삼천여 평을 장로교 모 장로님이 헌납하셨으니 여호와 이레로라.

불꽃의 사자들 임지에 돌아갈 때 경남 일대 곳곳마다 영적 방화범이 될 것이다. 전투에 피곤한 용사들이 이곳에 올라와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용기를 얻었네, 한없이 넓고 큰 은혜 늘 베풀어 줍소서.

8월 9일-14일 경북 지방 장교 하기 훈련

무학산의 성화는 금오산에서도 연소했다. 근일에 산 기도자들이 많이 일어났다. 유행인가, 시대의 요구인가, 사탄의 오묘인가, 하나님의 섭리인가? 열매를 보라, 그 열매로 알 것이다.

기성교회 불 없어 다른 불에 끌리는 무리 허다하여 목마르고 굶주린 양떼들 독초와 더러운 물에 쓰러지는 자 많구나. 갈멜산상에서 바알신과 싸우는 엘리야의 기도와 이단과 거짓 선지자 퇴치하는 참선지자 그리워라. 성결군의 사명 중대함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래서 불은 불로 꺼야 한다. 금오산의 훈련은 장병 사오백명이 재무장하고 일치 단결 합심 기도, 순복음 전파로 미로에 방황하는 교계에 바른 노선이 명약관화로다.

성화는 붙고 붙어 마귀의 진 전소하니 기세 충천이로다. 지방 성경학교 기숙사 필요하여 헌금하니 삼십만 환이요 금지환과 시계들을 바치는 마음 주께 감사 영광뿐이었다.

8월 14일-17일 봉림 빨치산 토벌

이 교회는30년 역사에 진전이 없으니 웬일일까? 마의 빨치산 준동 맹렬하고 간첩 사탄의 오묘로 소대 내부 불일치다. 4일 간 악전 고투로 위기 일발에 마지막 사탄의 간계를 타파하고 종내 승리는 주께 돌아왔다.

금해읍 교회와 대사리 교회에서 다수 원군 합세 작전하여 기도와 신앙으로 주의 영광 무한했다. 뒷염려 적지 않았으나 다 주께 맡기고 교통 불편으로 도중에서 수시간 기다려 부산행 열차 승차하니 대단히 피곤했다.

8월 18일-20일 구덕산 고지 무혈 점령

부산 제일, 제이 수원지가 있고 전후에 봉우리마다 공동묘지요 산하 백여 호는 꽃장사로 생계잇는 곳에 근일 갑자기 석조 건물이 아담하게 섰다.

일본 홀리네스 신학에 재학 중인 최상익씨가 귀국하여 미군의 호의 얻어 건축한 것이었다. 처음 고신파와 손을 잡았다가 신앙 불통일로 단연 떠나 성결군 내원을 요청하므로 백사 제지하고 시급히 돌격, 단도 직입하니 대승리로다.

사면에서 운집하는 성도들의 기도와 회개의 역사로 구덕산은 영적 매장지가 되고 생수의 원천지요 성신의 열매 맺는 화원지로 변했다. 신개척의 첫 열매 중 십오 명에게 세례 베푸는 것은 복음 결사대로 이루어진 장행식(壯行式)이었다.

8월 21일-23일 고로 산악전

당일 새벽 기도 후 도보로 하산하여 중앙선에 몸을 싣고 한숨에 경북 영천 지나 신녕에 도착한 후 다시 자동차를 수차 갈아타니, 이 교통난은 당해 본 자 외에 알 자 없느니라.

산악 고지를 달려 밤 9시경 도착, 심심 산곡 양지동 백여 호 작은 동리에서 3일간 백병전으로 소탕했다. 신개척 신도들이 너무 우둔하여 장기 훈련이라야 되겠다.

김수백 대장의 천신만고로 세워진 신축 성전이 3만 환 부족으로 미완성되어 기도 결과 의외에 서울 계신 이종현씨가 참석하여 부족액을 전부 담당하겠다고 거수하니 일반 신도들간에 희열이 만만했다.

김 전도사는 욥의 시험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용기로 싸웠으니 하늘의 보상이 크실진저! 들어가는 길 어려웠거니와 나오는 길도 막연했다. 2일간 노상에서 허비했다.

8월 28일-31일 충청남도 공주군 신풍면

나의 동서인 서선보 전도사가 3년 전 신개척하고 악전 고투한 결과 장·유년 3백여 명의 신병대를 양성하고 아름다운 성전 건축 도상에 심신이 피곤한 장병들을 위해 갔다. 이는 주님 섭리로 특공대 후원은 많은 도움이 된 듯했다.

금번 포로 석상이 46명, 3만 환 예산에 실제 헌금 4만 7천 환에 달하니 오랫동안 고난 중이었던 소대장은 이제부터 뽐내는 판이었다.

이상 농촌에 아름다운 교회 사랑이 보글보글 끊는다. 고(苦)는 낙(樂)의 근본이라. 엄동 설한 지나면 양춘 가절 오구요, 어둔 밤 지나면 빛난 아침 오나니 그리스도의 정병들아, 인내로 선한 싸움 힘써 싸워 영생을 취하사이다.

9월 1일-8일 사곡과 각처 산발전

사곡은 마곡 산하 미신 소굴로 사곡(邪曲)으로 마역 심한 사곡(死谷).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고통당하는 곳이었다.

지난 가을 소대장이 신학교에 가는 공관된 틈을 타 소위 여호와의 증인이란 부부가 와서 감언 이설로 교회를 짓밟고 어린 양들을 물어 찢어 영육간에 손해 막심하여 교회는 폐문 지경에 이르렀으나 살아 계신 주에서 다시 기름부으시사 꺼지는 불길은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이번 특공대 돌격은 전세 만회요 교회 일신하고 성전 건축기성 이뤄지니 기뻐하면서 일로 상경 도중 조치원 충북도 사경회에 돌입하여 원자탄 일발하니 마귀 군세 기절이요 우군은 희희낙락이었다.

단번에 서울 입성, 삼각산 군목 수앙회에 전격전 일야에 대충격 주고 시급히 강원도에 재침공, 당일에 귀래 고지를 탈환하여 강원전을 마치고 충북으로 진격했다.

충주 구역 소탕전, 강원전을 승리로 마치고 파죽지세(파죽지세)로 충북 진공.

9월 11일-12일 충주시 돌입

당지는 작년 십자군이 장기간 공방전으로 고지를 탈환하여 교회를 설립하였으나 마군 빨치산 준동이 심하여 장병들이 머리를 앓는다. 특공대가 춘추에 걸쳐 2회 토벌하고 송인구 대장과 구역 작전을 계획했다.

9월 13일-15일에 수산 도성 점령하다

바사 나라 수산 도성의 하만의 선민 학살 흉계를 모르드개의 충성과 에스더의 용감으로 파하고 위기 일발에 구원한 역사적 사실을 당지에 적용하였다. 회전 기간중 폭풍우 대작으로 지장이 많았으나 작은 모르드개와 작은 에스더의 용전으로 마귀 신하만을 타살하고 선민 승리하니 부림절의 희열 만만이로다. 교회당 수리와 종각 건립 위계(위계)하였다.

9월 16일-19일 덕산 부대 응원

3년 전 안병문 소대장이 단기로 기습, 악전 고투하여 고지를 탈환하고 아담한 성전과 사택까지 신축하고 백여 명의 장병은 사랑이 쩔쩔 끓었다.

금번 특공대 응원은 금상 첨화로 부대 사기 충천하니 동네의 유력한 유지 30여 명 귀주하고 감사 헌금으로 종각과 강대상이 마련되었다.

9월 19일-20일 월악 광산 탈환

덕산 부대 유격으로 중석 광산 월악에 분대소를 설립했으나 위급 소식 듣고 급하게 갔다. 19일 석양에 돌격전이 학교 강당에서 벌어졌다. 아군의 감격 눈물과 혈투로 승리했다. 중요 인물들이 귀주요, 성전 건축 헌금이 예상 초과하니 능력 주를 찬송할뿐이로다.

9월 21일-22일 고명촌 완전 탈환

집회 장소가 일진일퇴(一進一退)라서 특공대 돌격에 돼지우리 옆 노천 회전이 가관이라. 찬 서리 갖으며 주야 공격에 완전 승리했다. 성전 건축을 결의하고 당장에 헌금하고 청신 에 기공식 예배를 거행했다. 정승일 목사 내조 위로요, 기쁨만만했다.

9월 23일-26일 제천 시가전

작년 십자군이 20여 일 간 악전 고투하다 철수하고 소수 성결군이 고지 사수하더니 특공대 비상 작전과 장감(長監)군의 절대 후원으로 여전 승리라. 성전 기지 난문제를 헌금하니 십만여 환기적으로 해결 감사요, 부대 내부 불일치도 은혜의 단비로 해소되어 전도 양양.

청주 구역 소탕전

9월 27일-28일 미평 신개척지

노천 회전으로 성전 기지 닦은 터에서 주야로 포격하니 31명 귀주요, 건축 헌금으로 불원간에 성전 건립을 하게 되니 온 교우는 기뻐했다.

9월 29일-30일 양촌 소전

소수의 여군들이 진지 사수에 기진맥진이라. 특공대 진입에 천사나 만난 듯이 너무 좋아했다. 목자 없는 양떼들 누가 돌아볼꼬? 속속히 선한 목자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용사들아, 분기하라.

10월 1일-3일 운동 고전

15년만에 재침공이라 사탄 역사 맹렬했다. 송헌빈 분대장 신상불편으로 산기도 가고 개전 시초에 최장로 병으로 쓰러지니 신산하기 짝이 없도다.

그러나 싸움의 주장은 여호와시니라. 뜻밖에 송대장 기적 귀대요, 최장로 신유 참전으로 큰 뱀 타살의 환상 어느 신자의 간증에 감사했다. 여전 승리하여 퇴락한 성전과 사택 일신 수리에 착수하니 본격적 부흥의 징조는 동편에 떠올랐다.

10월 3일-4일 청주 시가전

성전 대공사가 마역으로 부진 상태라는 급보를 접하고 특공대가 입성하여 4일간의 백병전이 맹렬하였다. 일기 불순으로 다소 난관이 있었으나 만사 합동 유익이라, 50여 명의 새 구도자가 생기고 헌금 백오십만 환으로 공사를 계속하게 됨은 오직 주님의 능력이라. 헌금 미담 중 외덕 장로교인 무명씨의 종돈 일두(21관) 헌납과 본교회 사모님의 뉴똥치마와 그 자부의 결혼 금지환 헌납은 일대 충격이요, 김종호 장로의 전후 헌금 백만여 환은 마리아의 기름 향기로다.

10월 9일-11일 궁평 혈전

신개척 소대 50여 명과 이필희 대장의 용전 분투 중 특공대 혈투로 마군 기절하고 신구도자 20명, 기념 성종도 울리게 되니 일반 성도들 기쁨이 만만했다. 결전 중에 코피가 심하여 염려했으나 말로 설교 못하면 죽음으로 대신 설교하리라고 결사적으로 등단할 때 성도들의 열도와 신유 지혈로 승리했다. 청주교회 박 철 선생은 70고령에 귀도하여 열심히 주를 섬기니 신불신간에 대감화이신데 궁평까지 내참 응원은 감사불금이요, 노장 익간으로 5시간 포도원에 부름 입은 일꾼의 영광이외다.

10월 12일-13일 연서 전격전

조치원 지대로 3년 전 점령하여 김현숙 여대장과 곽집사의 맹활동으로 성전도 아담하게 건축하고 장유년 백여 용사 열화에 끓었다.

추수 다망인데도 불구하고 다수 참전하여 특공대 여전 승리하였고 여기에도 기념 성종 성취했다. 조치원 김선재 대장의 절대 응원 불망에 감사했다.

10월 13일-14일 노송 소전

조치원에서 기차 시간 놓쳐 진퇴 양난인데 마침 미군 트럭이 내도하여 편승하니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어 주시리라"(시 37 : 5). 오랫동안 부진 상태인 소대에 유년대장 이용신군의 기공과 특공대의 맹격으로 교회당이 7년간의 누더기를 벗고 기와로 경신한 역사는 전과에 자랑이었다

10월 15일-17일 현도전

신탄진에 하차하여 도강 도보로 1킬로미터 가면 오영필 목사 출생지요, 오씨 가문 23대 자손 일촌 완고지이다. 3년 전 교회 설립은 오목사의 눈물 기도의 30년간 결정이라. 박해가 무한이더나 이제는 선견자로 인증되고 존숭 지위(尊崇地位)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의 강팍으로 성지 불순하는 동리가 안타깝다. 청주대 교수 오선생 내외의 독특한 수훈은 특공대에 위로와 기쁨이 컸다.

어린 장소대장은 다윗의 용전 본받아 골리앗을 쳐부수라.

10월 17일-18일 시동에 야습

30년 역사를 가진 시동교회는 부진으로 유명했다. 이름이 시동이니 재미없는 이름이라 물으니 전자는 신안골이라는데 왜정 때의 개명이라 했다.

그래서 다시 신안교회라 칭하여 주었다. 무주 공산(無主空山)에 어린 양떼들 목자 없이 부르짖는 광경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다.

2일 동안 같이 울고 같이 웃었다. 부득이 명일을 위해 야행 십리 다시 현도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 인도하고 부강 진격했다.

10월 19일-20일 부강 3차전

17년 전 1차, 8년 전 2차, 금번에 3차전이요, 청주 구역 종결 전이었다. 40년의 역사가 있는 교회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니 보기에 딱했다. 최길용 대장이 장항에서 전임 악전 고투했다. 특공대 맹공으로 철야 기도자가 다 수용, 통회와 신생의 능력 충만하니 성전 수리 헌금 2만여 환이 믿는 대로 되었다.

충북전을 종결하고 충남에 이동했다. 애경원 복병 위문(10월 23일-25일). 대전의 애경원(나환자 요양소)은 우리 성결군의 복병 5백여 명 결사대들인데 일반 교회에서 보지 못한 영광을 거두었다.

장인의 버린 돌이 집모퉁이에 요긴한 돌이라더니 세상의 버림받은 불치의 환우들 겉 사람은 부패했으나 속사람은 새롭다.

쭈그러진 안면 오그라진 수족으로 뛰고 춤추니 주 앞에 영광이요, 병신 자식 효도한단 말이 이에 적응이로다. 양곡 2홉 5작 배급받으면서도 부수입에서 십일조와 감사 헌금 집회중 시간시간 산적하니, 4만여 환이었다. 건강한 몸으로 감사할 줄 모르고 주신 재산 활용치 못하는 자는 차라리 문둥이를 만들어서라도 이런 은혜 체험케 했으면 !

이정율 전도사의 희생적 봉사는 제2세 손양원 목사로 칭송이 자자했다.

10월 26일-28일 계룡 고전

미신 소굴이요, 사교 집단지인 계룡산하에서 박태섭 대장의 노련한 전법으로 계룡 고지를 점령하고 아담한 성전 건축하니 장유 백여 명이 은혜 중에 지낸다.

금번 특공대 전황은 불리하여 수주간 전에 차보근 목사 지휘로 일대 격전이 지난 뒤요, 추수 농번기이고 특공대의 치통이 극심하여 성과가 별로 없었다. 그저 고군 분투하는 장병들 위로나 되었을 것이다.

10월 29일-31일 남대전 시가전

작년 십자군 전과로 이루어진 교회는 1년유여로 장족 발전이요 대장 박윤희는 20여 년 전 목포 교역 당시 열매로 더욱 귀했다.

3일간 백병전에 33인 귀주로 애통 회개자 다수요, 풍금 헌금 사만여 환이니 예산 초과로 없는 것 있게 하시는 주의 능력 체험에 감사할 뿐이었다.

좋은 일꾼들이 많이 모여드니 전도 양양.

11월 1일-4일 장진전

십자군 최창진 대장의 애원으로 3백여리, 자동차로 7시간 가량 달려 당야부터 자동차 차고에서 백병전하니 4일간 여전 승리로 80여 명 포로 석방, 건축 헌금 십만여 환, 신개척지에 이적이었다. 학교 교실을 빌려 예배 중이요, 목자 없이 우는 양떼가 동정불금 이었다. 주여, 선한 목자 속히 보내주소서.

11월 7일-9일 구미 소전

거북 꼬리 느린 모양 20여 년 역사에 밤낮 교회 부진하니 장로교는 정통 신통 싸움에 양떼들 병들고 굶주린 판이었다.

3일간 특공대 응원은 아군 사기 북돋우고 마군 기세 한풀 꺾었다. 장로교 성결교 연합집회 매우 은혜로웠다. 박원준 대장은 이북에 부모 처자 두고 독신으로 고아 남매를 기르면서 악전 고투로 기지 4백 평, 30여 평 예배당으로 승리하여 궤도에 올랐다.

11월 11일-18일 부산 협동대전

기독교 부흥협회 주최하에 추가 대공세로 순천, 마산, 서울에서 대격전이 벌어졌는데, 특공대는 부산역 대광장에서 매일 수만 명을 상대로 세계 부흥 강사 잘비스 박사와 협동 작전을 하여 대승리라. 두 사람이 한사람보다 나으니 함께 수고함으로 많은 상이 있도다.

매일 4차 집회로 부산 유사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매일 철야 기도1자가 천여 명, 갈급한 심령들 순복음의 용사들을 기다린다. 일주간 새 구도자 천삼백여 명 회개, 중생 성결자 부지 기수이며 신유의 이적으로 복음 권위와 광채가 굉장하였다.

모든 영광 주님 홀로 받으소서.

11월 19일-22일 대사리 토벌

구포와 김해간의 농촌 교회 송세흥 대장의 열심은 특공대를 움직여 4일간 토벌전과 송대장의 일주간 금식 철야 기도는 큰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농촌 교회로는 모범적 전과라, 회개금 4천여 환, 결심자 40여명, 건축 헌금 25만 환이니 농촌 경제에 이적이 아닌가? 약혼 처녀 출가 준비한 의복을 바치는 등 어느 집사는 돈이 없어 문제가 아니라 신앙이 문제라. 주님 축복하사 명춘에는 아름다운 성전이 건축될 것이다.

11월 24일-28일 삼신 토벌

부산 수정동 고려파 삼신교회가 본 단체로 온다는 소식은 특공대의 무거운 짐이 된 동시에 용기 백배로 토벌 접수케 했다. 싸우는 교단이 싫어서 개인으로 교회를 이탈하는 형편을 현교계는 아는가 모르는가?

우리가 혼란한 교계에서 미로에 방황하는 양떼들을 진리의 울타리로 몰아 넣음은 교세 확장의 야욕이 아니라 성지의 섭리요, 성결군의 사병이다.

수정동 성결군 대장 황성주 목사의 지력과 감화는 부산 교계에 새벽별같이 빛났다. 그 교회에서 개척한 지교회 칠개 처는 다 힘차게 성장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더니 본 교회는 더욱더 일신 또 일신하였다.

12월 2일-5일 대구 대봉전

활천(활천) 지상에 보도된 일선여관 주인 김여사가 단독으로 건축한 대옹 성결교회의 남녀 교역자 박관빈과 박춘화는 나의 복음의 자녀로 특수한 관계가 있는 곳이다. 특공대의 응원으로 신개척에 주님 영광 무한하고 50여 명 구도자와 십만여 환 헌금은 혈한의 수고와 어린 종들의 기도의 결정이며 몇 십년 지나도 작은 교회당 하나 지어 보지 못하는 교회와 교직자들에게 반성의 표본이로다.

12월 6일-9일 마산 피난민교회

위무 창포 피난민 수용소 천막교회는 빨치산의 치명상 소식 듣고 시급히 돌격, 개전 벽두에 김순봉 대장이 적탄에 쓰러지고 복잡한 환경에 난전 극심하나 싸움의 주장은 여호와시니 여전 승리로다.

마지막 날 모여드는 군중은 예배당 내외에 인산 인해라. 피난생활에 시달린 전우들의 사기 충천했다. 천당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너희는 환난을 받으나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임마누엘.

거제도 상륙 소탕전

12월 10일-23일 죽토 고지 접수

연초면 죽토교회는 고려파이더니 전 교우가 성결군에 귀대, 3일간 향연에 만족이라. 고려파의 장점도 있으나 혹자의 교만, 고집, 극단은 위험 천만이니 피차 반성하사이다.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살상 15 : 23).

오비기전

일찍이 장로교에서 들어왔다가 2차나 실패하고 철수한 곳에 성결군 여장 전석희씨가 결사적 투쟁으로 이룬 성전 건축은 기적이요, 소수의 약졸로 진지 사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태산 준령을 도보로 넘어 기습 작전 3일에 결국 승리했다. 윤봉주 집사의 희생 봉사와 꼬마 군병의 열도는 타처에서 보지 못한 기이한 현상이요, 장로교 옥지엽 집사가 성전 기지 백 평을 헌납함도 기적이요 엘리야의 까마귀가 이곳에 날아드니 주의 여종 위로 만만 모두가 기적이 아닌가 ?

연초 천막전

포로 수용소 철거에 따라 피난민도 거의 분산하고 천막교회 자존자 소수는 하만의 음모 술책으로 영육간 위기 일발에에 처해 특공대의 역할로 하만과 4일 대전 결과 부림절의 즐거움 무한하였다. 이우길 장로 가정은 오라는 곳 많아도 사절하고 거제도에서 하나님 사업 위해 성결군의 결사대로 분투 노력하는 것은 주의 축복 무한하실진저.

장승포 접전

이성영 목사 급청으로 19일 주일 밤과 새벽집회로 단일 접전했으나 전과 다대하였다.

지석 결전

거제 작전 반삭(半朔)에 최후 결전 단계로 돌입하여 지석 소탕전에 각처 응원군 다수 내원하여 축호 전도, 노방 전도로 새 결심자 많았다. 그 교회 김집사 내외는 가시밭의 백합화같이 가정과 몽리의 핍박 중에도 꾸준히 싸우며 교회를 사수했다.

주 앞에 보배로다. 마지막 날에는 천막 제단의 수리를 절감하여 불시 헌금하니 푼전이 새로운 어촌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본신자 불과 20여 명에 만오천 환의 기적으로 주께 영광을 돌리고 거제 일대 소탕전에 개선가를 부르며, 특히 10여 년만에 귀단하여 노년에 거제 성결군을 총지휘하시며 고군분투(孤軍奮鬪), 지사진충(至死盡忠)하시는 임동오 목사께 감사를 드리며 12월 23일 성포항을 떠나 통영으로 향했다.

12월 23일-26일 통영 성탄절

거제전을 승리로 종결하고 통영에 상륙했다. 마침 성탄절이라. 마귀는 성탄 휴전 미끼로 도처에 대거 유격전을 벌여 아군의 참패는 극심했다.

특공대는 사탄의 오묘를 간파한 지 이미 오래다. 매년 성탄절을 이용하여 유도전에 재미 보던 중 금번은 본격적 전과 다대라. 일반 심령에 그리스도 내림하고 포로 석방 90여 명, 감사 헌금 8만여 환 나오니 그간 부진 상태인 태평동 성결부대는 사기 충천, 위세 당당, 정운상 군목의 기민한 활약은 전승에 특공훈이라.

12월 26일-28일 황리 야전

통영에서 떠날 때 우군들의 환송 합창으로 특공대 용기 백배하여 똑딱선 두 시간에 황리 상륙하니, 꼬마군들이 십자기 휘두르며 부르는 환영가는 싸우기 전 승리로다. 소대한 추위에 싸움터로 바깥 뜰에 차일 치고 3일간 백병전, 승리는 주께 영광이라.

그 교회는 강봉린 여집사 단독으로 설립하고 지사 충성했다. 그녀는 일 년 전 천국 가고 그 백여 명의 열매 알곡들은 그녀의 면류관이라, 성전 신축 헌금 십만여 환 돌파하니 농촌 경제로 대이적이라. 김말순 집사 옥답 일 두락 헌납은 마리아의 기름 향기로다.

12월 30일-31일 방산 소전

황리전 필한 후 우차에 실려 세 시간, 어린이 십 명이 수명의 집사들과 십자기 같이 휘두르며 하는 환영 합창은 예루살렘 입성에 부르는 어린이들의 호산나를 연상케 했다.

작은 제단에 원근 각처에서 모여드는 성도들 입장 제한하니 유감 천만이라. 명춘에 성전 건축 예산 만반 준비로 회춘만 고대하니 장래 아름다운 큰 교회 눈앞에 어른거렸다.

1955년 1월 2일-4일 마산 돌격

신설교회 개회 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가정교회 본받아 유도역 목사 내외가 사택 20여 평 대지 80여 평을 주께 헌납하여 상남교회 설립 개시 격전에 교회 토대가 완전 성취되었다.

사랑하는 한국 교회가 자아 중심으로 대교회주의에 흐르지 말고 백만 개병 신도 되고 십만 가정 교회 되면 이 강산에 제반 문제 즉시 해결되리라.

1월 5일-8일 특공대 동기 맹훈련

기독교 부흥협회 주최로 전국 각 교파 부흥사들이 대구 주암산에 회집하여 3일간 금식 철야 기도로 각양 은혜 경험 지대하였다.

20여 명의 부흥사들와 애끓는 호소와 라이스 선교사가 우리 민족과 우리 교계를 위하여 식음 전폐하고 우리와 같이 울고 기뻐하는 신앙통일, 소망통일, 사랑통일, 나는 보고 듣고 만져 보았노라.

신년에 새 무장으로 지방에 구정 원단 출동령이 내렸다.

목포 지방 수륙 작전

1월 24일-29일 목포 시가전

수십년간 특수한 관계로 제2의 고향인 목포, 그곳의 복음의 자녀들의 애원 듣고 갈 때 그돌라오멜 연합군의 침공으로 롯의 식구 봉변 당한 소식 듣고 달려가는 아브라함의 특공대를 연상했다.

임마누엘 특공대가 구정 2일체 목포 기습하여 5일간 백병전에 포로 석방 70여 명, 성전 건축 헌금 3백만 환 정도, 각처 육해군 장병들의 절대 응원, 김동완 참모의 기민한 활동은 전지방에 새 활기라. 앞으로 할 일이 태산 같으니 잠시라도 방심 말고 힘써 싸워라.

1월 30일-2월 2일 압해도 상륙전

계속 쉴 사이 없이 폭풍 격랑을 헤치고 압해도 상륙 신장에 포진하여 학동 대천교회 합동작전으로 많은 영광, 승리는 주께로 해병대장 김근옥 전도사의 맹활동은 부임 이래 주택 신축, 교회당 증축. 금번 전과로는 주께 돌아온 자 36명, 감사 헌금 9만 여 환.

없는 데서 있게 하시는 주의 능력 다시 체험했다.

2월 3일-6일 장흥전

지휘관도 없는 장흥부대 위급 비명은 특공대 동정불금이라. 시급 돌격 4일간 소탕전에 기진 맥진의 약소 부대 사탄의 냉수로 꺼졌던 불 다시 붙고 승리 궤도에 오르니 감사 만만이며, 9명의 세례 예식과 30여 명의 성찬식 거행, 신구도자 40여 명, 감사 헌금 만칠천 환으로 지교회까지 설립한다니 진충 갈력하는 최성기 집사에게 주의 축복 무한하실진저.

2월 7일-9일 안양 열전

장흥서 6킬로미터, 안양 고지에서 백병전하니 초가 삼간 개방하고 바깥 뜰에 차일 치고 주야로 출입구에 파수꾼 냉열기에 숨막혀 졸도할 지경이라. 사면에서 운집하는 성도들 다 수용 못해 입장 제한 미안했다.

성전 신축을 시급히 느껴 당장 헌금하니 근 20만 환이요 국민학교 백교감은 기지 백 평 헌납하니 모두가 이적으로 주께 영광지었다.

악마는 기절하고 김창희 노대장 20여 년 전 수양하다가 그만 악마에게 포로 생활하더니 6·25에 주께 돌아와 재무장하여 귀히 싸우니 감사했다. 금년 신학 졸업하니 날쌘 신검 들려 보내 주소서.

2월 12일-13일 펑풍도에서 병고전

문준경 여전도사 순교 기념 성전이며 인공(人空)시대 과부 많이 난 곳으로 민은주 여대장의 고군 분투에 동정 불금으로 특공대 상륙 작전하려다 폭풍 지장과 독감 병탄에 쓰러졌다.

그러나 칠전 팔기로 설교 못하면 죽음으로 설교하리라. 사십도 상열에 등단 공격 여전히 승리했다. 해병대장 민은주는 순교 기념 교회를 사수하기에 알맞은 지능으로 신불신간에 신망이 두텁고 주님만 아시는 희생적 봉사는 상급이 크실진저.

2월 14일-16일 임자도 점령

병구를 끌고 풍선과 발동선으로 4시간만에 결사대 모험 상륙하니 신기한 신유 또 한번 체험하고 당야 진리 고지 점령했다.

이곳은 6·25때 48명의 순교자가 난 곳으로 특히 진충 이판일 장로 13식구가 전몰하고 유족으로 독자 이인재 집사 단연 궐기하여 혈기 완력을 쓰지 않고 사랑의 원자탄으로 온 섬을 점령.

특히 자기 전답을 팔아 대기리에 성전을 건축하여 백여 명의 신도가 득구(得救)하고 진리의 성전 증수(增修)하고 부흥의 불길 맹렬했다.

6·25 때 좌우편에서 천소백여 명이 희생당한 무시무시한 악마의 야성의 아성이 이제 복음탄으로 무너졌다.

2월 17일-18일 사·옥도 결사전

이연신 대장이 수년 전 사옥도를 점령하여 40여 평의 아담한 성전 건립하고 백여 명의 신도들이 특공대를 고대하다가 2일간 소탕에 여전 승리했다.

출발 직전에 돌연 위경련 병탄에 쓰러지니 궁벽 산촌에 위험 천만이요 인사불성 헛소리 중에도 설교 연발이라. 그러나 죽음에서 회생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전교우의 지성 애호로 4일만에 기상했다.

그러나 기력이 너무 쇠약하여 불가불 작전상 계획으로 후퇴를 위계러니 증동리 성도들의 사랑의 줄에 끌려 교자 태워 가니 생전 처음 호사하고 갈보리산이 기다리는 듯했다.

2월 24길-27일 증동리 결전

문준경 여전도사의 눈물과 땀으로 세워진 교회요 마지막 순교의 피로 자라나는 교회로서 양도천 목사와 백정희 여전도사의 독특한 목회로 생명의 교회는 가시밭에 백합화라. 즉시로 새 힘 얻어 3일간 성전은 영광 보여주고 창립 20주년 예배 드리고 성전신축 헌금하니 밭, 논, 산판, 가옥 대지, 재봉틀, 헌금 무려 60만 환이니 섬 경제로 이중적 이적이 아닌가?

다시 병탄에 쓰러져 아마 순교자의 교회에서 순직의 영광을 주시려는가 은근히 기뻤다. 그러나 서울 수도를 기어이 점령하려고 병구를 끌고 수륙 수천 리를 모험 진격하니 예정 시간에 아볼루온은 물러가고 잃었던 신검 다시 잡고 수도 점령했다.

3월 9일 - 13일 서울 지방 수양회

서울 지방 연합회를 위하여 병들고 상한 기계, 필사적이면 필생적이란 표어 밑에서 도서를 출발, 천신만고로 수륙 수천 리를 달려 입성하여 예정 시간부터 공방전은 치열하였다.

다행히도 지방 교직자들과 신도들의 지성 봉사는 잊을 수 없는 감사요, 성결교 역사 이래 지방적 연합집회 처음으로 맹화의 도화선이 전시에 파급되었다. 일치 협력하는 동지 다수이나 아직도 연합성 적은 것을 생각할 때 딱하기도 했다.

3월 16일 - 21일 청파동 소탕전

내가 4년 전에 무너진 제단 보수하느라고 몇 개월간 수고한 곳이며 이적적으로 아담한 성전이 신축되어 70여 평에 많은 신도들이 모였다. 영육간 피로한 형편도 딱하거니와 채무가 백칠십만 환이라는 소식은 동정불금이라, 내 몸 피로함에도 불구하고 진격해 많은 영광 있었다.

신구도자 70여명, 채무 정리의 축복, 특히 조월순 집사의 전담 봉사도 크려니와 금번에 백만 환을 부담하니 할렐루야! 협력자 없이 거대한 공사를 완수한 안수훈 목사의 수고, 주께서 기억하실지어다.

3월 21일-24일 인천 북성 고지 소탕전

지난 여름 한능효 전도사가 조치원까지 내방 애원한 집회는 금번 성취, 많은 영광 주께 돌렸다. 그러나 유감은 50여 평 예배당 협착하여 대혼란, 겨우겨우 필했다.

피난 성도들의 눈물과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교회, 마지막 날 밤 철야 기도와 안수 기도시 성화의 불길은 타처에서 보지 못한 맹화였다. 교역자의 주택 문제 해결에 감사드렸다.

3월 26일-30일 서울 충무로 교회

병으로 고전하며 함흥 피난 성도들 거제도에서 환도함을 축복했다. 68환 가지고 올라와서 서울에 자리잡고 백여 평의 예배당 짓고 3백여 명 신도 부흥 도상이나 아직 교역자와 신자 고생이 막심했다. 첫날 선전 포고하고 특공대는 병탄에 상이군 되었다.

그러나 결단코 후퇴 불허, 내내 의자에 신세지고 최종일 잃었던 칼날 다시 잡고 용전 결승하니 당장에 보는 일이 참으로 이상했다. 주님 같이하는 특공대 앞에 악한 마귀 당할소냐! 우리 주님 크신 능력 이기고도 남음 있네.

4월 8일-12일 순천 부활절전

이곳은 반란 사건으로 유명하고 장로교 총신 진영 본거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성결군의 고군 분투 동정 불금이라. 지난 3월에 양도천 목사 집회한다는 대대적 선전이 수포되니 악마의 조소와 신자들의 낙망이 극심하였다.

차제에 고난 주간을 맞아 주와 같이 십자가에 죽고 사는 부활절 역사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도 체득되니 감사했다. 집회 기념종을 위해 헌금하니 약한 교회에서 6만여 환 나와 미구에 종소리가 잠자는 순천시민을 깨울 것이다. 대장 신현호 목사의 똑똑한 품격은 신 인간에 귀염성 있고 앞으로 교회 부흥 징조의 손바닥 구름은 멀리 떠오른다.

4월 13일-17일 여수항 마귀 토벌

개척 당시 장로교회에서 구예배당을 인계하여 악전 고투하였으나 결국 철수하여 진지 이동하고 또 각양의 마귀 포위로 위지 사경된 교회 동정 불금하여 특공대의 불시 돌격으로 승리의 거포 연발사격 5일간에 전과 다대하니 포로 석방 50여 명, 십만여 환 헌금으로 시급한 문제 다소 해결되었다. 어려운 일 당한 대로 족한 은혜 주시는 하나님, 불한당 만난 여리고 사람 같은 여수교회 이제부터 많은 축복내리소서.

4월 19일-27일 수도 재침 완전 점령

전국 총회전의 사명 띠고 특공대는 청신 수소탄을 투하하고 아담스 박사는 주야로 순복음탄으로 공격하고 수백의 복병들은 철야 기도포로 사격하니 적병은 거의 몰살이요, 마귀의 도성은 결국 아군 수중에 들어왔다. 할렐루야.

특공대 1년 전과로 포로 석방 8천여 명, 헌금 1천만 환 이상.

이제 특공대는 만기 제대되어 민병으로 돌아가 희년 기념 전도부장의 관을 쓰게 되었다.

지난 해는 구호 대상에 드는 받는 교회에 대개 봉사하였으나 이제 1년간은 주는 교회에 지교회 설립 목적의 집회를 봉사하기로 하였으니 배전의 도고를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