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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전도대

1957 5. 15-1957. 12. 29

 

성결교회는 다른 교파보다 20년 후에 들어와서 금년 50주년을 맞이하였다. 나는 이 희년을 맞이하여 좀더 뜻있는 봉사를 하기 위하여 순회 부흥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하여 이정율과 정운상을 데리고 자동차 순회 전도를 하였다.

이정율은 오래전 만주 전도시 훈남교회 집회서 어린 소년으로 열심히 참석 은혜받고 그 후 헌신하여 서울신학을 졸업한 청년 전도자요 또한 정운상은 정운학 목사의 동생이다. 정운학 목사는 13년간 우리 집에 동거하면서 한국과 만주에서 같이 전도한 신앙의 동지였다.

해방 후 만주에서 귀국할 때 그에게 동행하기를 권했더니 이 어린 양떼를 두고 어디로 갈까 자기는 좀더 기다리겠다고 떨어졌다. 6·25 전에 그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그 일절에 "만주는 공산 치하에 지냅니다‥‥‥ 교회마다 2,3인 혹 십여 인 남아서 예배는 보아도 목자 없이 자기가 바랑을 걸머지고 전만주 각 교회를 독점하여 순회 목양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편리와 안일을 위해서 이리저리 좌우하는 것은 인생의 가치가 없습니다. 의무와 사명과 책임을 위하여 죽음의 문이라도 돌파하는 것이 주의 종된 자의 최고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그 후로는 소식 두절이었다. 진충(盡忠)을 잃어버린 기독도 모양으로 외롭기 짝이 없더니 뜻밖에 그의 동생이 따라오게 되었다. 경주서 부흥회하는데 어떤 청년이 바늘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정목사 동생이었다.

어려서 보고는 다 잊어버렸다가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소학교 교원 노릇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학자금 곤란으로 바늘 장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 물심으로 도와주어 신학을 졸업하고 훌륭한 목사가 되었다. 또한 부흥 소질도 있고 명민했다. 통영에서 목회하는 것을 불러서 희년 전도 1년 동안 함께 봉사하였다.

방방 곡곡 대집회 소집회를 열어 많은 무리들이 나와서 은혜 받고 새로운 결심자도 많이 얻게 되었다. 또한 특기할 일은 장춘단 교회 김원철 집사(그 후 장로 됨)가 지프차를 하나 사 주어서 임원상이란 청년을 운전수로 데리고 다니면서 고락을 같이했던 것이다.

희년 전도대 보고

희년 복음 전도대가 출진한 지도 만 7개월, 지난 5월 15일 저녁부터 계산하니 만 231일이 지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셔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저의 전도대 일행을 가는 곳곳에서 영광을 올리게 하셨습니다.

그간 활천(活泉)이 매월 출간되지 못해 밀린 바 8월-11월분을 종합으로 보고를 쓰게 되었습니다. 첫 여름에 시작한 것이 감사절을 지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까지 가지가지의 감사할 것뿐입니다.

때로는 기차 시간을 놓칠 뻔도 해서 가슴을 졸이기도 하였습니다. 달리는 버스를 못 타고 트럭 신세도 졌습니다. 장마통에 지게로 전도 기구를 짊어지고 걷기도 했습니다.

고장 난 자동차를 떠밀고 대관령에서 비를 흠뻑 맞아가며 넘기도 했습니다. 새벽차를 타고 종일 차 속에서 시달려 정신을 못 차리고 허덕일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밤낮 침식을 잊고 하루에 천여 리를 차 속에서 산 때도 드문드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에 서울서 강릉까지 대관령 상공을 넘어 날라다 주는 항공편이나 수천리 길을 지프차로 달리는 쾌사(快事)며, 바다 건너 제주도를 찾는 일에 큰 혜택을 준 과학의 진보는 분명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이렇게 다니는 동안 산을 넘고 강을 건너니 공중 수상을 지나 때로 쓰러진 대원을 격려하며 연전 연승하시는 대장 이 목사님의 건투는 하나님이 친히 함께하신 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수천의 생명을 회개시켜 하나님께 인도하셨고 수십만 군중에게 70여 회에 걸쳐 복음의 씨를 뿌린 것은 사람의 계획만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이같이 연간 50회의 집회 목표를 세웠다가 70회를 갖게 된 것은 하나넘의 특별한 축복이 함께한 것입니다.

첫째는 장춘단 모 신자가 전도대에 쓰라고 지프차를 기증해 주어 쉬는 날이 없이 개교회 하나하나 방문하면서 성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미국에서 퍼커슨 박사가 와서 한미 합공으로 한 대가 두 대로 분산 집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1월, 12월에는 거의 분산 집회를 갖게 되어 매주 3개처의 집회라는 최고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가운데 또 한 가지 감사한 것은 묵호 성회시 잃었던 전도 기구를 경찰의 손을 통해 다시 찾게 되어 얼마간 저하되었던 대원의 사기가 더 한충 힘을 얻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굴곡 많은 전도대의 활동은 12월에 들어 해산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일을 합동하여 유익하게 하시는 줄 압니다.

하여간 희년의 나팔을 전국 400여 교회에 전부 불지 못한 것이 마음 섭섭합니다. 선교부의 일부 해산의 통고와 경비 단절도 있었으나 계속 4월까지 100교회 목표가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더 씩씩하게 계속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찰라에도 대장 이성봉 목사님은 이리 신흥제단에서, 총무 정운상 목사는 동대전 제단에서 외치며, 부대장 이정율 목사는 멀리 제주도를 찾아 잃은 양을 구하러 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의 부활을 갖다 주고 이 겨레 위해 많은 눈물을 흘리며 불철 주야 애쓰시던 퍼커슨 박사도 멀리 대만을 향해 12월 9일 비행기로 이 땅을 떠났습니다.

하늘에서 다시 만나자고 부탁하고 그의 마지막 인사로 죽은 교회에 생명의 운동을 계속해 달라는 언중유골(言中有骨)의 심각한 표정을 남기고 필자의 손을 뜨겁게 쥐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지 말고 많은 군중을 모으기 보다 한 영혼이라도 올바로 회개시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자고 하면서 또 자기가 한국에 와서 집회한 것을 회상하면서 희망의 웃음과 함께 어딘가 모르게 고소(苦笑)를 지어 보였습니다. 옆에 있던 퍼커슨 부인도 역시 한국 영혼을 위해 마지막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이 같은 영혼에 대한 불타는 심정이 오늘 이 강토에서 희년을 맞이하는 전성결교회 교역자, 장로, 집사, 신학생, 평신도에게도 있어야 될 것을 느껴 마지않습니다.

이렇게 우리 희년 복음 전도대가 활동한 232일간의 업적은 송두리째 하나님만이 받을 영광으로 돌리옵고 그동안 감사 헌금 수백만 환으로 제일 어려운 교회를 보조하니 전북 지방 태평동 교회 20만 환, 강원 지방 초당교회와 또 한 교회 20만 환, 서울 신정교회 20만 환, 전남 지방 주월동교회를 광주 집회에서 20만 환 보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희년 기념 교회 설립으로 영등포 문래동에 410만 환 들여 자그만한 교회를 샀는데 설립한 지 불과 1개월에 장유년 50여 명 장족의 발전 중입니다. 그리고 대만 선교자를 후원하기 위하여 전도 대원들이 십일조를 드리게 됨도 희년 전도 성과의 한 부분일까 합니다. 대만 선교 위해 기도합시다.

청년회 사업을 위한 협조

본시 우리 단체 청년회 사업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기대되던 중 금번 우리 부대장이 청년회 회장이므로 청년회 사업을 물질적으로 후원하게 되었다. 그 방법은 임마누엘사 서적 판매로 문서 전도하고 순이익을 청년회에 바쳐 강원도 산천의 교역자 보조에 충당함이 불소하였다.

끝으로 화보와 통계표를 총회까지 내놓을 예정이며 그때는 좀 더 큰 영광이 드러나기를 기대하면서 남은 기간 자급 전도하는 대원을 위해 끊임없는 기도를 아끼지 마옵시기를 바라나이다. 임마누엘 은총이 우리 교단 전체 위에 더욱 충만하옵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