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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도 순회기

남한에서만 집회를 하니 좁은 바닥에 몇 번씩 되풀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으니 복음주의 협회(NAE :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대표로 도미하여 9개월간 각처 교회를 순회하게 되었다.

성신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얻고 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행 1 : 8),

나의 갈 길을 내가 알지 못하고 내 할 일을 내가 알지 못하고 내 할 말을 내가 알지 못하고 내 먹을 것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오직 주님께 바친 몸 그의 능력의 손에 붙잡혀 신앙생활 사십 년간에 부흥 사명이 임한 지 이십삼 년 동안 한국 각지로, 일본으로, 만주 등지로 전도 여행하며 지난 자취를 회고해 보면 신기하고 오묘하신 주님의 섭리와 경륜을 다 측량할 수 없었다.

이제 선진국이라는 미국에 와서 예수의 증거자가 된 것은 실로 감사한 일이었다. 사실 우리는 그들의 신세를 많이 졌다. 일찍이 복음을 가져다 주었으며 문화와 물질과 군대 등으로 지금까지 우리를 도와주는 국민들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온 이유는 이렇다.

1. 우리는 그들의 빛을 많이 졌으니 만분의 일이라도 갚는 뜻에서 내게 금과 은은 없으나 예수의 이름으로 저들의 심령을 살려야 되겠다.

산돼지 잡으러 갔다가 집돼지 잃어버린다는 격으로 저들은 외국에 선교함으로써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 그대로 물질로는 많은 축복들 받았으나 영적으로는 비참한 사실을 다 말할 수 없다. 이 나라 민족이 일억 칠천만이라는데 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 신자는 불과 사천만 밖에 안 된다고 했다.

2. 우리 교포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라는 주의 음성이 내게 들려 저들을 위문할 것같이 간절하여 기도 중에 이번 길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지난 일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호사 다마로 모든 일이 여권 수속 때부터 가는 길이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었으나 주님의 도우심으로 4월 2일 오후 2시에 출발하게 되니 비행장까지 각 교파 목사들과 여러 성도들의 환송으로 마음 든든한 힘을 얻었다.

세 시간 반쯤 걸려 동경 하네다(羽田) 비행장에 안착하여 황제열 목사의 환영 안내로 오모리 호텔에서 안식하고 20년 전에 신앙으로 인연이 있는 김재식 집사의 특별 초대를 받았을 때 "여호와 이름으로" 감사하였다. 그의 가정이 영육간 축복을 많이 받아 외국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지냄은 주님을 사랑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받은 상급인 줄로 믿는다.

동경은 진재(震災) 때의 불심판과 대동아 전쟁 때의 불심판 등 거듭거듭 환난을 당하였으나 백절 불굴의 정신으로 재건 부흥은 괄목상대(刮目相對)였다. 무서운 매를 맞고 일제 항복 후로는 기독교회가 대부흥이라더니 요사이는 다시 신사 부흥이라고 탄식하는 뜻 있는 일본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또 무서운 심판이 두렵다고 한다.

우리 한국인 교회도 52개소가 있다고 하나 역시 위지사경이라고 하며 돌아오는 길에 좀 살려야겠다고 간절한 부탁을 받았다.

그날 밤 22시에 호놀룰루로 가는 팬 아메리칸 항공(PA) 비행기에 몸을 싣고 무려 12시간 걸려 하와이에 도착하여 우리나라 사람을 찾았으나 찾을 길이 없어 불가불 소림 호텔에 짐을 풀고 한국인 식당을 밤거리에서 찾다가 다행히 찾아 들어갔는데 뜻밖에 내가 만나려는 권희상 목사(이대영 목사의 사위) 내외가 초상집에 가다가 식사를 방금 마치고 앉아 있는 것을 만나 하나님의 섭리를 한번 더 체험하였다.

저녁을 먹고 초상집에 같이 가서 조상(弔喪)하였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며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잔칫집에 있나니라.

이것이 나의 신앙생활의 지침인 고로 고국 떠날 때에도 식구들에게 나는 죽으러 간다고 유언하고 결사적으로 떠나온 나의 여행길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권목사의 자가용으로 우리 일행은 지상 천국이라는 하와이 야경을 일주하게 되었다.

이튿날 오후 7시경 다시 PA 항공에 몸을 싣고 5일 오전 6시 반 주일 새벽에 로스앤젤레스 비행장에 도착하니 우리 최중섭 목사가 자동차로 5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을 와서 기다리고, 동양 선교회 친우 헤인스 목사가 마중 나오고, 일본 홀리네스 교회 감독 스에히로씨가 출영하여 국제적 환영을 받았다.

내리는 즉시로 일찍이 최목사가 목회하던 모라비안 일본 교회에 가서 제일차로 주를 사랑하자는 문제에 대하여 설교하니 은혜로웠다. 민족적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섭리인 줄 믿고 주님의 사랑이 내 가슴을 태워 설교하였다.

6일부터 열리는 복음주의 협회 대회 안내는 헤인스 목사가 하셨다. 마침 우리 동양 선교본부를 방문하니 30여 직원의 환영파티는 감사하였다. 선교회가 12개국으로 점점 확장되어 가며 축복받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좀더 우리 한국교회 선교사들과 친선 선애로 혼연 일체가 되어 악마의 대가리를 부수고 주님께 크신 영광이 돌아가기를 기도하였다.

통역할 이정윤 선생이 동행하지 못해서 안타깝게 생각했더니 대회 중간에라도 와서 다행한 일이었다. 복음주의 협회 대회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제일 큰 스틸 호텔에서 열렸는데 회원들이 숙식도 하고 회의 장소로도 사용하였다.

대의원은 무려 8백 80여 명이요 밤집회는 이천여 명이 모여 신령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우리 한국 대표들과 증경 총회장들의 환영 파티에서 육십 평생에 처음 보는 대접을 받았을 때 너무 황송하였다. 또한 사회부 신문 기자들이 우리의 포부와 사진을 미국 신문에 대대적으로 기재하여 유명하여졌다. 또한 선교 실행위원 분과위원장이 기도와 설교를 청하여 헤인스 목사 통역으로 "능력 있는 기도의 조건"이란 제목으로 나의 간증을 하니 저들의 사업에 다소간이라도 힘을 준 것 같았다.

또 부녀국의 초청으로 가서 에스더의 메시지를 이정윤씨 통역으로 설교하여 많은 감명을 준 것 같았다. 부녀들이 여기저기에서 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것이 보였다.

한 가지 유감은 많은 대중 앞에서 말씀을 전하기로 피차 약속하였으나 시간순서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아 회의 중에 우리 한국 대표들을 찾았으나 그만 시간이 겹쳐 귀한 시간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 죄송하였다.

회의를 마치고 우리 총영사를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친히 찾아 오셔서 특별 초대를 해주시고 자가용 차를 운전하시어 시내를 구경시키고 손두환 목사가 공부하는 풀러 신학교까지 가서 같이 기도하였다.

우리 나라의 젊은 외교관인 김창환 영사는 중한 책임을 지고 수고하는 사람이니 그를 위해 국내의 많은 성도들의 기도를 바란다. 12일 주일에는 우리 한국 장로교회(전에 김성락 박사가 목회하던 교회)에 가서 엿새 동안 공개되어 목자없이 주리고 목마른 양떼들을 위해 낮과 밤의 두 집회를 하니 크신 은혜 내려 백여 명의 신도들이 기쁨에 넘쳤다.

미국 교회는 대개 주일 낮 집회만 하고 밤 집회는 없었는데 그날 밤은 비상소집을 하여 집회를 하는 중 비상한 은혜가 내려 설교하고 내려가니 설교 시간 재청함으로 30분간 다시 설교와 독창을 하였다.

30여 년간 설교에 재청 설교를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물며 미국 교회에 지식층이 대부분임에랴. 그저 순복음은 누구나 좋아했다.

앞으로 하와이에서 사역하던 권희상 목사가 부임한다니 선한 목자의 심정으로 목마르고 굶주린 양떼를 잘 돌봐주기를 기도했다.

우리들의 집회

4월 18일에 우리 최중섭 목사가 자동차로 다섯 시간 남짓하여 달려와서 안내하니 가는 즉시로 프레즈노 일본인 연합 전도회에서 강연하여 재미 보았다.

비행기로 로스앤젤레스에 내리는 즉시 주일 예배를 일본인 교회 영접으로 드리며 처음 설교하였으며 이번 우리들의 첫 설교도 역시 일인들에게 하게 되는 것이니 무슨 인연인지 나도 모르겠으나 아마 민족적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일하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인 것 같았다.

누구든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내 누이요, 내 부모요, 나의 동포가 될 것을 한 번 더 확인하였다. 사랑은 자기 건설이요, 미움은 자기 파괴이다.

19일 주일에는 우리 동포 교회에 나가서 주님을 사랑하자는 말씀으로 많은 은혜가 임하였다. 이 교회는 전번에 김응조 목사가 와서 한국의 여러 교회 건축헌금을 얻어간 곳이었다. 나도 또한 무엇을 얻으러 왔는가 하고 잘 받아들이지 않더니 나는 얻으러 오지 않고 주러 왔다고 하여 겨우 4일간 계속 집회를 하였는데 물질적인 수확은 없었으나 영적수확은 다소간 생긴 것 같았다. 같이 모여 기도하는 사람들이 몇 사람 생기었다.

뜻밖에 오리다란 일본 이름으로 한국 교회 목사를 20여 년간 수고한 전영복이란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 그도 일본 경도에 예배당을 지어 놓고는 빚을 지고 돈을 얻으러 온 모양이었다. 동정을 금할 수 없었으나 제사에는 관심 없고 음식에만 관심이 있다는 격으로 세계 곳곳마다 목사들이 돈 생각만 하게 되어 큰일이었다. 아이 옷은 만들어 놓고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처럼 되지 말기를 바랐다.

4월 26일 주일은 우리 최목사가 신개척한 일본인 교회에 가서 "가시밭에 백합화"란 설교와 노래로 은혜로웠다. 환난을 겪고 일본인들도 우리 한국인 사정을 잘 동정하게 되었다.

그날 밤에는 헤인스 목사가 다섯 시간의 길을 자동차로 몰고 가서 백인 교회 설교를 통역하였다. 나의 간증과 한국 교회의 실정을 알리었다. 독일계통의 사람들인데 밤 예배만도 삼백 명이 모였다. 미국은 밤 예배를 보지 않는 교회가 많은데 이들은 순복음적이요, 열심으로 모이기 힘쓰는 교회였다.

설교를 하고 내려오니 한국의 빌리 그래함을 만났다고 하며 말은 통하지 않으나 얼굴만 보아도 은혜가 된다고 비행기를 태웠다. 자만을 주는 사탄의 오묘를 간파하였다.

5월 1일, 2일은 후리지스도 교회 특별 집회를 한국인과 일인의 연합 집회로 보았는데 최목사가 통역을 어떻게 잘하는지 강사를 부흥시켰다. 둘로 하나를 만드시는 성령의 역사를 감사하였다.

5월 3일은 5시 반에 출발하여 상항에 도착하여 한국인 감리교 외쳤다. 오클랜드 한인 교회서 천순봉 목사가 설교하고 신자들을 데리고 참석하여 금상첨화(금상첨화)였다.

그날 온종일 금식하고 설교하였더니 더욱 은혜로웠다. 김창수 목사 부인의 간청으로 가서 잘 대접받았다. 설교는 일인 교회에서 하고 대접은 한인 교회에서 받았으니 아무래도 핏줄기가 같은 동포에게서 인정미가 풍김을 느꼈다.

그날 밤 또 자동차로 한 시간 걸리는 일인 교회에 가서 한일 합동 집회로 회개와 천국을 전하여 미신자들 7명이 결심하는 중 어떤 타락하였던 일인 청년이 골방에서 나를 붙들고 통회 자복했다. 위하여 축복 기도를 하고 기쁨으로 작별하였다.

다시 우리들은 돌아와 일인(中加) 홀리네스 교회로 와서 2일간 집회하였다. 여기저기서 참으로 은혜 사모하는 알맹이 신자들과 같이 드리는 송별 집회는 은혜로웠으며 요나서 강화로 주의 종들과 신학생들이 특히 은혜로운 모양이었다회에 가서 예배를 보고 오후 2시에 일본 성결교회에 가서 "예수 다시 오신다 준비하라"고 .

5월 6일에 다시 우리 동양 선교회 본부가 있는 나성으로 돌아 와서 YMCA 호텔 8층 826호에서 주야로 기도하며 작전 계획을 세웠다.

5월 10일 주일 오전에는 우리 대통령이 세웠다는 동지회 기독교회에 가서 설교하여 새로운 불이 일기 시작하였고 오후에는 우리 동양 선교회 본부 성별회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문제로 설교를 하여 총본영에 재무장을 하게 되었다.

또 그날 밤 파사데나 교회의 헤인스 목사가 소속한 성결파에 가서 나의 간증과 특별히 우리 성결교회의 실정을 호소하였다. 미국의 성결교회는 신망이 없다고(너무 극단이라고) 하더니 그것도 공연한 풍문이었다. 각자 개인과 각 교회에 달렸지 열심히 주를 봉사하는 독특한 맛이 있었다. "열심 없는 지식보다 지식 없는 열심이 좋다"고 어느 성도는 말하였다.

그 동안 30여 년간 불철 주야로 전도하였다고 아마 나에게 안식년을 주신 모양이었다. 일평생 처음으로 이 육신은 안식으로 호사했다.

그러나 미국 교회의 형편을 보고 우리 조국을 생각하고 동역자들을 생각하니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없어 한참 울었다.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우시던 주님은 오늘도 이 세상을 향하사 어떠한 심정으로 애쓰시는 것을 누가 다 알 것이냐? 주여, 보시옵소서.

나성 연합 집회

5월 17일-21일

이 동안 한국 동포들의 교회, 기독교 (동지회), 침례교 연합한 미국에서 보기 드문 성회를 감사했다.

오랫 동안 정치 사상의 차이로 교회들이 일치되지 못하고 반목질시(反目嫉視)했던 신도들이 각 교회서 하루씩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모여 사랑의 뭉치가 된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아무쪼록 꽃만 피었다가 떨어지지 말고 앞으로 좋은 열매 많이 맺기를 축원하면서 상항으로 출발하였다.

5월 23일

버스로 7시간만에 후레즈노에 도착하여 최중섭 목사의 영접을 받아 그의 자가용으로 4시간에 걸쳐 상항에 도착하였다(샌프란시스코). 큰 해안을 중간에 두고 세계에서 제일 큰 다리(자동차로 20여 분 걸렸다)를 건너 오클랜드의 한국 교회에서 집회하였다.

5월 24일-25일

불과 3회 집회이나 이 교회로는 유사 이래 처음이라 했다. 교회가 되지 않아 없이하려던 것을 김장수 목사의 성의와 몇몇 대학생의 열심과 특히 주영한 총영사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생명의 싹이 트는 계제에 이번 집회는 칠년대한(七年大旱)의 봉감우(?甘雨)라 했다. 다시 좋은 기회를 약속하고 이제는 캘리포니아 주를 떠나 오리건 주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5월 27일

아침에 버스를 타고 18시간을 달려 28일 아침 포틀랜드에 도착하니 김석규 목사와 정동철 목사가 환영 안내하여 반갑기 그지없었다. 이 오리건 주는 우리 동양 선교회 유지자가 많은 곳이었다. 우리 교단에서 보낸 김석규 목사와 오봉운 목사가 공부하는 복음 신학교가 있는 곳이었다.

오목사는 나성으로 전학하고, 정목사는 침례교 신학교에 있고, 김목사는 복음 신학교에서 단연 우등생으로서 학생들에게나 교수들에게 귀염을 받고 각 교파 모든 교회에 설교하러 나가 큰 영광을 드러내던 중 이번 나의 순회길을 위하여 20여 일간 각 교회 집회 안내를 하면서 백인 교회에서는 영어로, 일인 교회에서는 일어로 통역하여 주었다.

한인 교회는 아직 서지 않았으나 그래샴에 한인 가정 일곱 가정을 이루어 여러 번 가정 집회를 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김 치연 김명숙 김신숙 삼인에게 세례까지 베풀어 비공식적으로 우리 성결교회가 서게 된 셈이었다. 오리건 주 집회 일정과 교회는 다음과 같다.

5월 31일

주일 워싱턴 주의 복음 형제 교회에 가서 예수를 사랑하자는 문제로 설교하니 농촌 교회에 은혜로웠다. 저녁은 저닝스 복음 감리교회에 가서 집회할 때에 그래샴 동포들이 많이 참석하여 동서양 연합 집회가 되었다.

6월 1일-2일

계속 우리 한인 교회에서 집회하니 정치적인 이상한 감정으로 몇 가정 되지 않는 데서 합하지 못했던 것이 이번에 성령의 불이 임하여 독사와 같은 심정이 불타버리고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됨을 감사했다.

특히 김부인과 황부인은 사돈간에 재판까지 하고 십여 년을 말하지 않고 지내던 것이 이번에 손을 잡고 눈물로 해결하여 온 동리 온 신도들이 다 기뻐하였다.

6월 3일

아침에 렌스 복음 형제 교회 부인 기도회 초청으로 에스더의 기도와 민족 구원의 메시지를 주니 감명이 깊은 모양으로 연발 아멘 아멘 했다.

저녁에는 포틀랜드 제이 퀘이커 교회서 설교하였는데 뒤에 알고 보니 하룻밤 설교에 15불 정도로 시켰다는 것을 알았다. 자본주의 국가의 특색으로 한심한 노릇이었다.

6월 4일

저녁 락웃 복음 감리교회에서 설교했는데 그 밤에 졸업식을 한다고 신자 불과 30여 명 모았으나 집회는 은혜로웠다. 신학교 구내에 있는 특히 동양 선교 유지 부인회의 기도회 초 청을 받아 문준경 전도사님의 순교 미담을 들려주니 그들은 감동을 받았다.

6월 5일

저녁에는 이백여 리를 자동차로 한 시간 반 달려 지방 선교 남자 기도회에 참석하여 교회 부흥의 비결은 성신을 받고 기도에 힘쓰는 일밖에는 없다고 고조하여 기도의 불이 그 밤에 일어남을 보았다.

6월 6일 밤

벨리씨의 초대로 가정 집회를 인도했다. 이 가정은 오순절 사도교회 신자인데 우리 김목사를 지성으로 사랑하여 심지어 외국 학생의 양말까지 빨아주는 등 주님의 참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으로서 하룻밤 피차 간증으로 즐거웠다.

6월 7일

오전에는 포틀랜드 카인너트 교회에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문제로 설교했고 종일 금식하면서 그 즉시로 팔백여 리를 자동차로 달려 워싱턴에 있는 커뮤니티 산골 교회에 가서 저녁도 못 먹고 설교를 하였는데 참으로 은혜로웠다.

그 교회는 참으로 살아 있는 교회였으며 어린 주일학교 학생들이 한국의 고아를 네 사람 후원하겠다고 하여 더욱 감사하였다.

6월 10일

YMCA 회관에 모인 기독교 사업가 기도회에 초청을 받아 기도의 능력이란 문제로 간증을 하였고 저녁에는 올바니 합동 복음교회에 그 삼백여 리 길을 쉘턴 선교사의 안내로 가서 죽도록 충성하란 제목으로 우리 한국교회 순교자들의 간증을 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다.

6월 11일 저녁

렌스 복음교회에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로 설교하였다. 김목사의 통역은 은혜 만점이었다. 이 교회는 우리 선교 지원자가 많은 교회인데 대만 선교사 한 사람을 전담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보기 드문 사랑의 분위기로 충만하였다.

6월 12일

이 날은 오리건주 설립 백년제로 모든 광경이 굉장했다. 시가 행진과 세계 박람회로 포틀랜드는 물 끓듯이 야단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별 흥미가 없었다.

누구는 조상에는 정신 없고 팥죽에만 정신이 있다더니 나는 팥죽같은 세상에는 관심이 없고 모든 민족들의 영흔에 대한 관심만이 점점 더 강해졌다.

6월 14일 오전

삼백여 리 되는 올바니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어쩐지 쓸쓸하였다.

저녁에 포틀랜드 복음교회에서 청년 집회와 장년 집회를 연달아 하였다. 교회는 매우 아름다웠다.

6월 15일 밤

그래샴 자유 감리교회서 간친회 초청을 받았으나 음식을 먹지 않고 골방에 들어가 금식 기도를 하여 최고 승리를 하였다. 김목사 자신도 모르게 청산 유수로 흐르는 통역은 부흥사를 부흥시킨 것이었다.

6월 17일

김목사 차로 다섯 시간에 걸쳐 워싱턴 주의 제일 도시인 시애틀에 가서 일인들의 홀리네스 교회에서 집회하였는데 예상 밖에 많이 참석하였으며 또한 우리 두 사람이 혼연 일체로 주님을 사랑하자고 외칠 때에 목사 이하 모든 신도들이 사랑에 감격하여 여기저기서 눈물을 씻는 것이 보였다.

워싱턴 주 집회

미국의 수도 워싱턴이 아니라 서방의 오리건주 옆에 워싱턴주가 있다. 6월 18일 에드몬즈 복음 감리교회에서 특별집회를 가졌는데 이 교회는 신개척 삼 년에 아직 기초가 서지 못하고 목사도 자급 봉사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첫사랑에 불탔다. 처음 보는 한국 목사들이 저들에게는 하늘에서 온 사람같이 보여 신기하게 여기며 사랑했다.

6월 21일 두벌 감리교 집회

시애틀에서 80여 리 자동차로 달려 오전 예배에 참석하니 마침 주임 목시님은 출타하시고 여자 장로가 사회했다. 또한 그날은 아버지 주일이라고 부모의 은덕을 찬양했다. 개인주의로 부모를 박대하는 자가 많은 사회에서 그래도 주를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효자가 아니될래야 아니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날을 당하여 수만리 이역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늙으신 아버지와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각이 간절하여 눈물로써 간증할 때에 일반에게 크신 은혜가 임하는 것을 체험하였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저녁에는 시애틀 녹호 자유 감리교회에서 마지막 서방 전도를 승리로 마치고 만리 이역에서 고학을 하며 이번 나를 위하여 근 일개월 동안 동고 동락한 김석규 목사를 눈물로 작별하고 밤 11시 비행기로 7시간 비행 중에 동방의 대회를 위하여 긴장한 가운데 한잠도 들지 못하고 철야 기도를 하였다.

와이오나 부홍 성회(동양 선교 유지자 대회)

6월 22일

아침 7시 30분에 시카고 비행장에 도착하여 새벽 네 시에 떠나왔다는 헤인스 목사와 동승하고 가다가 지회 총무의 출영으로 네 시간에 걸쳐 대회 장소에 도착하니 각국 각처에서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경치 좋은 곳이라고 하여 각 교파의 수양관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도 특히 부흥사로 유명한 빌리 선데이 수양관은 만여 명을 수용한다고 했다. 우리 선교회 수양관도 금년 칠백여 명 회집되는 건물이 아름답게 신축 중이었다.

준공되지 못한 곳에서 십이 개국 선교사들과 삼백여 명의 유지자들과 밤에는 방청인까지 오백여 명이 다른 단체에서 보지 못한 따뜻한 분위기로 충만하였다. 30여 년간 떠나 있던 프랜취 목사 부부 이하 여러 인연 있는 선교사들을 젊어서 헤어져 늙어 백발로 만나니 감개 무량했다.

첫날밤 환영회에 나아가 예수를 영접하란 답사와 독창으로 작은 폭탄을 던졌다.

6월 22일 오후 두 시 반

이 한 시간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였던가? 5천 마일에 2백불 들여 비행기를 탄 후에 헤인스 선교사가 멀리 출영하고 돌아올 때는 길보른 선교사 부자(父子)가 3기간을 수고한 참으로 일평생 제일 비싼 설교이었다.

또한 우리 한국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이번에 해결할 중대한 책임감으로 금식 기도를 하고 일발 일중(일발일중)의 목표로 결사적인 설교를 하니 마침내 주님께서 승리하신 줄 믿고 감사했다. 다음으로 길보른 선교사의 각오도 승리로워 한국 위한 헌금이 수만 불이나 나온 모양이었다. 그 후로 헤인스 목사에게 들은 말이었다. 그래서 모든 짐을 우리 주님과 선교부에 맡기고 그날 밤으로 다시 비행기로 아홉 시간 만에 상항에 도착하였다.

24일 아침 여섯 시 반

최목사가 우리를 위해서 새벽 한 시 반에 떠나와서 영접, 즉시로 길루로이 온천장엔 전국 일인 수양대회로 달려가서 그날부터 사 일간 복음을 전하였다.

멀리 호놀룰루, 시카고, 시애틀에서 백여 명이 회집하였는데 은혜를 사모하고 일치 단결하여 감독 이하 모든 목사들이 회개하고 안수 기도를 청하는 그 겸손한 태도에 일변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우리 동포들이 교회 생각이 간절하여 즉시로 하산하였다.

28일 주일

전번 봉사한 오클랜드 우리 한인교회에 와서 일주일을 휴양하면서 두 주일 설교로 잠자던 심령들을 일으켜 깨웠다.

장례식에 전도 강연

우리나라 임시정부 초대 주석이었던 이동녕씨의 따님이요, 이살림 목사의 부인으로 한 달 전에 동지회 교회서 연합집회를 주선하며 그렇게 열심히 은혜받고 많은 감사 하더니(허사가에 녹아져서) 졸연간 심장 마비로 별세하였다는 부고를 받고 자동차로 네 시간 달려갔다. 마침 장례식 설교를 청함으로 주 안에서 죽은 자는 행복하다고 실물 설교를 함으로써 신불신간에 잘살려고 하는 것보다 잘 죽어야겠다는 은혜로 풍성하였다.

나성의 집회

나성에 한인 교회가 네 군데인데 대개가 영어와 국어를 섞어 예배하니 영적 분위기가 냉랭했다. 그러나 동지회 기독교회는 우리 이대통령을 중심하여 세운 교회임으로 애국정신이 강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국가가 독립하기 전에 교회가 먼저 독립해야 한다고 독립교회로 수십년간 내려왔다. 목사도 자급 전도를 하자니 영적 생활이 결함되고 양떼들이 굶주리고 목이 말라 허덕였다.

나성에 한인 교회가 네 곳이나 되는데 제일 빈약한 것을 볼 때 그저 지나갈 수 없어 여름 동안이라도 도와줄 마음이 간절하여 동지 회관 골방을 얻어 들어가 주야로 기도하며 개인개인 만나는대로 같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여 그 교회 임시 목회 목사가 된 셈이었다.

가난한 교회라서 목사 식사대접도 어려울 줄 알았는데 엘리야에게 까마귀로 떡을 물어오게 하신 하나님이 나에게도 그와 같은 은혜로써 살려 주심을 감사할 뿐이었다. 작전상 새로운 구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미국 마귀는 참으로 오묘 지독했다)

7월 17일-19일

흘리네스 청년 대회에서 설교하였다.

미국은 합중국이니만치 각국 각 민족이 미국인으로 되었으나 일본인 계통의 미국인으로 조직된 스헤로 감독교회에서 최목사 통역으로 삼 일간 전도 강연을 하였는데, 20여 명이 손을 들어 일어서서 눈물로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오고 이미 믿는 사람들도 새로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여 기쁨과 사랑으로 충만한 집회를 이루어 감사했다.

특히 일본 정부에서 우리 교포들을 공산 치하로 강제 북송하는 것은 절대로 주님의 성지(聖志)가 아니므로 미국에 있는 일본인 목사들과 신도들은 이 일을 위하여 순진한 양떼들을 사자굴에서 악마의 포로에서 석방시켜 주기를 간절히 호소하였다.

일본 사람에게 이 말을 할 때에 최목사가 통역하기를 어색해 하였지만 불가불 진리를 말하는 것이 주의 종의 사명임으로 그대로 담대히 전할 때에 그들의 거의 전부가 동감되어 아멘으로 환영하였다.

7월 20일

미국 마귀는 너무 오묘하여 아무래도 장기전을 해야겠으므로 독립교회에서 환영을 하여 일개월 장기 봉사를 하였다.

나의 숙소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방을 주시고 조종익 선생이 나의 식비들 전담하시며 고(故) 윤목사님의 사딜런 되시는 75세 된 할머니가 지성으로 봉사하시어 아무런 불편이 없이 지내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각 교회에서 청빙을 받아 갈래도 시간이 없는데 여기서는 교회 가기를 먼저 주문을 하게 되고, 우리 한국은 가정 방문을 가면 천사나 온 것같이 기뻐하는데 여기서는 내가 가겠다고 전화로 먼저 연락하여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몇 집에서 보이콧을 당하였다. 그것이 복음인 모양이었다. 우리가 원치 않아도 주님은 찾아오시고 문밖에서 두드리시는 것을 생각할 때 나도 그 심정을 체험하여 감사했다.

74세 된 전효택 장로님 내외가 종일 일하시고는 돌아와서 자기 트럭에 나를 새워 가지고 매일 저녁 한 집 두 집 세 집 심방하여 죽은 심령이 소생하고 넘어진 자 일어나고 병든 자 나음을 얻어 기뻐하는 것을 볼 때 잃은 양을 찾은 선한 목자의 기쁨으로 피곤한 줄 모르고 사역하게 되었다.

7월 26일

7월 26일 주일은 동지회원들과 교우들이 야유회를 간다고 하여 오전 아흡 시에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문제로 설교하고 혹시 열 시에 정식 예배에 참석하러 올 사람들을 기다려 가지 않았더니 과연 몇 신자가 와서 그들을 데리고 다시 예배를 보았다. 내가 나갔더라면 그들의 예배는 허탕칠 뻔하였다.

미국 교회는 대개가 낮 예배만 보고 밤 예배 삼일 기도회는 보지 않는 교회가 태반이었다. 그래도 내가 있는 동안에는 몇 사람이라도 모이는 대로 모여 밤 예배를 시작하게 되고 또한 오랫 동안 교회가 동지 회관 셋방살이로 창피 막심하더니 이제야 조금 새 힘을 얻어 회관을 증축하며 예배당이 커지게 되니 감사했다. 그래도 독자적으로 교회 건축하지 못한 것이 크게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고국의 신자들 같은 열심만 가졌다면 벌써 예배당이 건축되었으련만 주님께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한국 민족의 수치를 벗기 위하여 국내외의 뜻있는 성도들은 순한국식 교회를 세워 국제적으로 빛내기 위해 기도하여 주기를 바랐다.

8월 2일

여전히 개인 심방 기도와 설교로 승리로웠다. 심방 갔던 많은 새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감사하였다. 예배 후 즉시로 오랫동안 병중에 신음하는 자매 한 사람을 백오십 리 길을 달려 병원에 방문하여 말씀으로 위로하고 기도로 새 힘을 얻게 하였다.

"내가 병들 때에 네가 와서 보았나니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외국 타향에서 특별히 병든 자들을 위문함은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요, 나의 큰 황금의 사슬이었다.

8월 8일

손목사 댁에 장로교 감리교 목사들과 함께 초청을 받아 굉장한 대접도 감사하거니와 분열과 파쟁인 세상에서 우리 한국 목사들 이 사랑으로 사귀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새로운 은혜의 불길이 일어나게 됨을 특히 감사했다.

백인 천인이 은혜받은 것보다도 중대한 책임을 진 우리 사명자들이 먼저 영적으로 살고 새로운 능력을 얻어 봉사하는 일이 가장 급선무가 아니겠는가.

8월 9일 주일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외치고 밤 예배는 능력 있는 기도의 칠대 조건으로 기도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모이는 귀한 집회이므로 일발 일중을 위하여 금식하고 애쓰는 심정을 주님만이 아실 것이었다.

동부 전도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은 너무나 거리가 멀고 전도 자금이 부족하고 또한 통역이 문제되어 단념하고 호놀룰루로 다녀서 일본 전도를 하고 귀국할까 하였는데, 주님이 작성하신 일은 변경하시지 않고 길을 열어 주시어 8월 10일 9시 반 비행기로 만오천 리를 날아서 미국에서 제일 큰 도시 뉴욕 비행장에 이 날 8시 35분에 도착하였다.

멀리서 자동차 세 시간에 걸쳐 차남진 목사가 출영하고 이상호 선생(최석모 목사 사위)이 영접하여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고 감사할 뿐이었다.

뉴저지 주 트랜턴이란 경치 좋고 유명한 곳에서(워싱턴 장군이 도강 작전한 곳) 장로교 목사가 휴양 가며 그 교회와 주택을 차목사에게 위임하여 그곳이 여호와 이레로 나의 전도 본부가 되었다.

차목사는 오래전부터 인연 깊은 장로교 젊은 부흥사요, 또한 3월에는 박사 학위를 얻을 세계적으로 기대가 큰 목사였다. 이번 나를 위하여 지성으로 봉사함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처질(처질) 문회석군 모자가 전도 여행차로 삼천 리 밖에서 와서 우연히 만나 사랑으로 봉사함을 볼 때 또한 주님의 섭리를 측량할 수 없었다.

문희석군은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외로운 어머니와 함께 이리 저리 굴러다니면서도 수재로 공부를 잘하여 미주에서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얻어 칼빈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이어 금년에 신학교에 들어갔는데도 벌써 미국 각 교회에 초빙을 받아 곳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불을 일으키는 중에 있었다. 미국 골리앗을 박멸하는 한국의 다윗이 되기 바랐다.

8월 13일 필라델피아 비상 집회

세계 교회의 정통의 근거지요(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또한 연전에 세계적으로 충격을 준, 흑인에게 피살된 오인호 사건(그의 부모가 살인자를 너그러이 용서하고 예수의 사랑을 그대로 증거 하자 필라델피아에서 한국인에 대해 많은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곳 시장이 친히 한국 학생 열두 명을 초청하여 오인호군을 기념하는 의미로 공부를 시켰다)이 있었던 곳에 한국인 교회가 없어 유감이더니 마침 내가 우연히 가게 되었다.

최목사를 만나 오랫만에 처음 한인 동지들 가정에 모여서 예배를 보기 시작하였는데 그날에 십여 명이 비상한 은혜를 받고 한번 더 나를 요구하여 23일 주일에 또다시 가서 더욱 큰 은혜가 내리니 이제는 계속하여 예배하게 됨을 기뻐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라는 사명이 얼마나 귀할소냐.

12일에 우리 일행은 뉴욕으로 가서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02층)에 올라가 온 뉴욕시를 구경하고 우리 영사관을 방문하였더니 총영사님은 안 계셔서 최영사님과 함께 외교관들을 위하고 우리 조국을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영사관 역사 이래 처음이라 했다.

또한 우리 한국 교회를 찾아갔더니 목사님은 안 계시고 뜻밖에 20년 전에 어려서 은혜받은 형제를 반가이 만나 간증을 듣고 또한 합심 기도를 하였다. 그러고는 이상호 선생댁에 초청을 받아 어려서부터 인연이 있는 최희숙씨(최석모 목시님 딸)를 타향에서 14년 만에 만날 때 감개 무량하였다.

우리 일행과 함께 가정 예배를 드렸다. "나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예수의 평안을 가지고 축복하고 특히 몸이 약한 최부인을 위하여 기도하고 섭섭하게 작별하였다.

8월 16일 주일

오전 9시에 트랜턴 감리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제목으로 하여 설교하고 11시에는 장로교회에서 또한 주님을 사랑하자고 외쳤다. 차목사의 통역은 설교자와 혼연 일체가 되었고 또한 노래를 잘 불러 미국 모든 집회 중에 제일인 것 같았다.

이 교회는 우리 한국 교회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또한 세계 봉사회 책임자가 있어 한국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은 교회였다. 특히 차목사가 가족의 사진을 교회에 붙이고 항상 기도와 물질로 조력을 했다.

또한 그 교회 목사와 차목사가 발기하여 한국 농촌, 산촌, 도서에 신개척 전도 선교회를 조직하고 선교사는 한국인으로 활동을 하게 했다. 이제 그 사업이 잘 진행되면 앞으로 큰 효과 있는 전도가 될 줄로 믿는다.

한국 교회서도 이 일을 위하여 적극적 기도와 후원이 있기를 진심으로 부탁한다.

8월 23일 주일 복음주의 협회 계통 복음 감리교회에서 설교, 차남진 목사 통역으로 승리로웠다. 허사가를 내가 부르면 차목사는 영어로 번역하여 노래를 불러 향락주의와 현실주의에 젖은 백인들에게 경종을 울리었다.

오후에는 필라델피아 침례교 대학 강당에서 한국 학생들의 간청으로 "하나님의 사람의 삼대 특성"을 가지고 설교하여 대개 한국에서 공부하러 오신 목사들과 학생들의 급소를 찔러 사명이 새로워졌고, 백인들도 참석하여 말은 모르지만 태도만 보아도 은혜를 받았다고 간증하였다.

8월 26일

트랜턴에서 200마일이나 되는 헤스버리 메노나이트 교회에 갈 예정이었으나 너무 멀어 그만두고 문희석군만 가기로 하고 나는 아주 작별을 하였는데 그들이 가는 도중에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차목사와 나를 오라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달려가서 새 차를 바꾸어 타고 저녁도 못 먹고(자연 금식) 예배 정각 시간에 당도하여 문희석군 통역과 차목사 독창으로 크신 은혜가 임하였다.

또한 미국 교회는 대개 낮 예배만 보는 교회가 많은데 이 교회는 삼일예배도 많이 모였고 15분간씩 각각 분반 기도하고 또 15분간 각자 간증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나의 "예수 사랑하자"고 외치는 설교가 또한 은혜로워 백인 교회에서 처음으로 재미를 보았다.

다시 필라델피아로 가서 한인 학생 동지회 초청으로 30여 명에게 "서로 사랑하자"는 제목으로 간곡한 설교를 하였다.

이튿날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버스를 타고 가려 하였는데 뜻밖에 한국 해군 대위 박학도군이 오래전에 한국에서 나에게 은혜받은 것을 간증하면서 자기 차로 4, 5시간 걸쳐 워싱턴까지 실어다 주는 것이었다.

순간순간 주님께 그 길을 맡기고 나가는 자에 대한 주님 사랑의 체험을 필설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워싱턴에는 한국인이 200여 명 되는데 교회는 세 곳이었다.

침례교가 보수파와 개혁파로 갈려서 반목 질시하는데 나는 두 곳에 다 가서 예수의 사랑으로 전도하여 양파가 다 은혜받고 다시금 합동의 기운이 보였다. 화목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의 소리"로 우리가 잘 아는 황재경 목사가 계시는 교회에서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인물"에 대하여 대개가 지식층 인 교우들에게 전하였고 또한 그날 일류 음악가들이 음악 예배로 나를 환영하여 주었다.

그날 오후에는 전교우들이 야외로 나가 간친회로 많은 위로가 되었다.

또한 황재경 목사가 녹음기를 가지고 일부러 호텔까지 찾아와서 "미국의 소리" 방송으로 세계 전도 메시지를 보내게 되었다. 우리 한국에는 10월 5일 밤에 보낸다고 했다.

멀리서 보내는 방송이 다만 몇 사람에게라도 은혜를 끼쳤으면 나의 사명은 다하는 것이었다.

미국에 좀더 있어서 장기전을 해야겠는데 한국에서는 소환 명령이 내리고 집에서는 송아지 소리가 나고 우리 본부에서도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 같아 그만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보통 아홉 시간에 가는 것을 제트기를 태워 주시어 5시간만에 나성에 왔다.

9월 13일 주일

나성 기독교회에서 두 종류의 실패자, 즉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실패를 들어 경고하였다.

저녁에는 침례교회(여기야말로 국제적 회중교회였다. 백인, 일인, 중국인, 헝가리인, 필리핀인, 한국인의 합동 교회였다)에서 김동명 목사의 통역으로 마지막 작별 예배를 보았다.

9월 16일

헤인스 목사의 전송을 받으며 비행기로 9시간 만에 호놀룰루에 도착하여 기독교회 김치연 목사의 영접으로 호텔에 짐을 풀고 안식하였다.

9월 20일 주일

낮과 밤에 나의 간증과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설교하고 특별히 수요일 밤에는 감리교회와 성공회 목사 신부까지 참석하여 은혜로웠다.

본교회 목사도 35년 만에 처음받은 은혜의 설교라고 간증하신다.

특히 이 교회는 과거 이대통령이 계실 때 세운 교회로서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물심간 많이 제공한 교회였다. 그러나 그 노인들은 많이 별세했거나 노쇠하여 이제 그들이 전부 돌아가시면 순한국식의 교회는 절손이 될 염려가 많아 속히 국어를 찾으라고 이세 삼세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였다.

그 교회의 기둥같이 여기는 정영옥 자매는 16세에 28세나 위인 남편에게 눈물겨운 사진 결혼을 하여서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남편에게 봉사하고 6형제를 낳아 길렀다.

부군은 벌써 별세하였으나 그는 지성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에 봉사하여 교회와 사회에 신망이 두텁고 아들 6형제가 다 성공차여 큰 공장을 운영하여 500여 명이 그 아래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다 효자였고 교회를 위해 잘 봉사하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는 나를 위하여 지성으로 봉사하여 눈물겨웠다.

또한 고(故) 손양원 목사의 누님은 일찍이 이곳에 와서 딸 일곱을 낳고 청춘 과부가 되어 혼자서 그 어린 딸들을 다 결혼시켜 지금은 잘들 살았다. 그녀는 안나 할머니처럼 주님 한 분을 모시고 사는 거룩한 부인이었다. 손목사는 죽은 순교자요, 그 누님은 산 순교자였다.

9월 27일, 하와이 한인 기독교

정해천 목사의 안수식과 취임식에 참석하여 설교하고 축복의 안수를 하여 온 교회가 다 기뻐하고 주께 많은 영광을 돌렸다. 그 젊은 정목사를 앞으로 크게 쓰실 줄 믿고 주님의 부으신 기름이 장차 온 미국과 전세계에 불의 도화선이 되기를 빌었다.

계속하여 3일간 집회를 하였는데 참으로 미국에서 보기 드문 성과를 올렸다. 이전에는 집회를 해도 노인 몇 사람만이 모였는데 이번에는 젊은이들이 다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다.

이곳 교회의 청년들은 대개가 국어를 하고 잘 알아들으니 장차 이들을 통하여 한국식 교회가 승승할 것을 믿어 마음 든든하였다. 감사 헌금도 200여 불이 생겨 최고 기록이었다.

또한 이곳 이민국에서 패스포트 6개월간 연장을 기쁨으로 해 주어서 모두가 다시 미국에 좀더 있어 일하라는 섭리인 줄 알고 다시 미국 본토에 상륙 작전을 계획함으로써 한국에 귀국할 예정은 변경이 되었다.

나의 갈 길을 내가 알지 못하고 나의 할 일을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그분의 뜻대로 그분의 지도에 순종할 뿐이었다.

내게 은과 금은 없어 돕지 못하나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 조국과 교회를 위하여 기도함이 더욱 간절하였다.

귀국 연기

미국에 온 지 어언 6개월이 되어 귀국하려고 비행기표까지 사가지고 호놀룰루까지 와서 돌아간다고 가족들과 몇 사람 선생님께 편지를 하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번 돌아가면 미국에 다시 올 기회가 막막하여 기도한 결과 뜻밖에 패스포트를 우리 영사관과 이민국에서 기쁨으로 연기를 하여 주고 호놀룰루의 성도들이 미국에서 전도할 여비를 주어 다시 몇 개월 더 머물기로 하었다.

하와이 교회의 사랑

그 교회의 주임 목사 정해천 목사 내외가 지성으로 봉사하고 매일 저녁 가정가정에 초대를 받으며 가정 예배를 봄으로써 사랑의 불길은 냉랭한 미국 교회에 불의 도화선이 되었다.

하와이도(島) 힐로 집회

하와이 주는 이번에 승격하였거니와 정작 하와이 주는 사람 사는 섬이 다섯 군데인데 하와이 본도(本島)는 제일 큰 섬이었다. 호놀룰루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이나 갔다. 거기도 우리 동포교회가 있다고 하여 가기를 원하였더니 유해라씨가 안내하게 되었다.

유해라 자매는 전번 로스앤젤레스에서 집회할 때 은혜받고 물질과 시간을 크게 회생하면서 한 시간 비행기를 타고 또 자동차로 두 시간이나 가서 하와이 힐로교회로 안내하여 2일간 집회하게 되었다. 그녀는 김치 장사로 성공하여 축복받을 일을 많이 했다.

힐로교회는 한때 왕성하였으나 지금은 이민으로 왔던 사람들은 다 노쇠하고 별세한 이들이 많아 교회는 불과 주일에 십여 명밖에 모이지 않는 상태에 있었다.

그 교회는 또인 목사 안시엽씨가 독신으로 고생하며 지키느라니 풍전등화(風前燈)와 같은 상태에 놓여 있던 중 이번 일생 처음으로 특별한 은혜를 맛보고 기뻐하는 것을 볼 때 나의 기쁨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은 목자의 기쁨과 비할 수 없었다.

호놀룰루에서 재집회

10월 9일 낮 집회는 호놀룰루 본 교회에서 성신을 받으라고 외치고 저녁은 하와이 교회에서 고난 극복의 비결을 가지고 전도하여 여러 모양으로 시험이 많은 성도들이 새로운 힘을 얻어 용진(勇進)하게 되었다.

우리 국어를 모르는 이세 삼세들도 많이 참석하여 저들도 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이제 국어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나라를 찾았어도 자기 나라 말을 잃어버린 우리 동포들이 동양이나 서양에 부지 기수로 있었다. 다른 나라 말을 배우려고 애를 쓰면서 자기 나라 말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들에게 책임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라델피아로 재비행

주님은 작전상 나를 일시 후퇴시켜 하와이를 점령하게 하시고 일개월 만에 다시 본토에 작전을 시키셨다.

10월 10일 밤 많은 성도들이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는 환송을 받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로스엔젤레스에 잠깐 상륙하여 선교 본부에 가서 내가 받은 많은 꽃다발을 모든 사무원들에게 나눠 주고 그 밤으로 필라델피아로 향하였다.

여러 가지 불편이 많아도 주님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시는 체험을 감사할 뿐이었다.

불구의 몸으로도 이제는 제법 대륙 횡단을 자유 자재로 하니 죽은 자를 살리시는 주님의 권능뿐이었다.

필라델피아는 3차 침공이었다. 초부득삼(初不得三)이라더니 여기 다시 찾아 것은 참말 내게는 큰 희생이었다. 호놀룰루에서 내왕 여비가 4백 불이나 되었고 비행기로 20여 시간이나 걸렸다. 또한 이번에 시간과 경제로 부대끼는 학생들과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 것과 모든 방면에 동정을 하기 위하여 나도 셋방을 얻어 60평생 처음으로 매일 자취를 해 가면서 기도와 말씀을 전했다.

최고 학부에서 공부하고 있는, 장차 우리나라의 각 부분에서 지도자가 될 수재들의 심령들이 복음으로 신창조되어야 할 것이 급선무임을 나는 확실히 알기에 그들을 위하여 얼마나 애쓰는지 주님만이 아실 것이다.

혹인 교회 집회

11월 1일 주일은 무려 천여 명 모인 큰 교회에서 설교하였다. 이 교회는 세계적인 성악가 앤더슨을 낳은 교회였다. 전번에 약속했던 것을 수행치 못하고 귀국하려고 호놀룰루까지

갔으나 마음에 항상 걸렸었는데 이번에 다시 와서 얻기 어려운 강단을 얻어 복음으로 민족적 빚을 갚게 되었다(오인호군이 흑인에게 피살됐다),

통역을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대학생 정기섭이란 신앙 청년이 자진하여 나섰다. 200여 리 밖에서 그 바쁜 시간을 회생하면서 따라왔지만 모처럼 몇 달을 벼르던 이 집회가 일발 일중을 해야겠는데 통역의 실력을 몰라 염려하였으나 벌써 하니님은 그 형제를 미리 준비시키셨으니 자유 자재로 설교자와 통역자가 혼연 일체가 되어 승리 위에 대승리를 하게 되었다.

흑인은 특히 환경과 그 생활이 우리와 감정이 통하여 부흥 설교는 저들에게 꼭 들어맞는 모양이었다. 곳곳에서 아멘 아멘 하고 감격의 눈물로 회답을 했다.

오후에는 우리 한국인 집회를 하였다. 천로 역정 강화를 하니 지식층의 학생들이라도 미국에서 한국인이 순한국식 김치, 깍두기 음식을 사모하는 것같이 김치, 깍두기 같은 나의 설교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도 사탄의 역사로 일치 단결치 못하였으나 이제 그 사람들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려 사랑으로 뭉치게 되는 것을 볼 때 엘리야의 기도로 3년 6개월 대한에 손바닥 만한 구름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징조로 믿고 감사 찬송할 뿐이었다.

미국에서 전도할 때에 지은 노래로 다음과 같다.

 

주님만 앙망하고 의지할 때

 

1. 나는 나의 의식주를 알지 못하나

주님만 앙망하고 의지할 때에

주는 나의 필요한 것 잘 아시어서

때를 따라 공급하며 축복하시네

(후렴)주님의 사랑 크신 능력

체험하는 성도여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 돌려라

 

2. 나는 나의 할 일 전혀 알지 못해도

주님만 앙망하고 의지할 때에

예수님은 나의 사업 나의 할 일을

어느 때나 최선으로 인도하시네

 

3. 나는 나의 길을 가지 못해도

주님만을 앙망하고 의지할 때에

주는 나의 길과 진리 빛이 되시니

어디서나 한결같이 인도하시네

 

4. 나는 나의 할 말조차 알지 못해도

주님만을 앙망하고 의지할 때에

우리 주님 내 입술에 말씀 주시니

구구 절절 그 복음은 생명수로다

 

5. 나는 나의 죽을 때를 알지 못하나

주님만을 앙망하고 의지할 때에

예수님은 나의 생명 영원안 생명

최후 순간 숨질 때에 승리하리라.

 

자취 생활

고학하는 우리 학생들을 동정하기 위하여 60 평생 처음으로 내가 손수 밥을 해 먹으며 전도하였다. 밥을 할 줄 몰라서 죽도 되고 떡도 되고 타기도 하고 설기도 하나 범사를 참아 모든 데 본이 되기 위함이었다.

보스턴행

국제 학생 선교부 총무 훤니씨는 일찍 피벌스씨와 함께 우리 나라에 와서 순회 전도한 분인데 나를 만나 신앙과 사명에 일치가 됨으로 손을 잡고 10여 일간 보스턴 근방에서(수백 마일) 왔다 갔다 하며 전도했다.

파 피덴, 뉴헤이븐에서

11월 7일부터 16일까지 봉사하였다.

통역이 없을 때는 한국말로 독창을 하고 몇 마디 영어 단어를 던지나 얼굴만 보아도 은혜가 된다고 했다. 또한 그때그때 신기한 섭리로 통역을 보내 주시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체험하였다. 파 피덴에서는 우재승군, 보스턴에서는 이순우군, 뉴헤이븐에서는 장대원(장창덕 목사 아들)군이 통역을 하니 "여호와 이레"였다. 임시 벼락 감투를 씌워 내세우니 인간적으로는 설교 통역이 매우 힘이 드는 모양이나 성령께서는 초자연적으로 상상 밖에 그들을

사용하시어 복음을 전하게 하였다.

보스턴의 한인 집회

유명한 교육 도시. 하버드 대학, 엠 아이 티 공과대학, 보스턴감리교 신학교에서 각 방면으로 우수한 우리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그 가정을 찾아가 위로와 격려 축복을 하고 특히 보스턴 신학교에서 2차에 걸쳐 한인 학생들과 동포 30여 명을 비상 소집하여 사랑의 불을 던졌다.

보통 신자 천인 만인이 은혜받는 것보다도 각 방면에서 장차 우리 조국의 큰 지도자 될 인물들이 은혜받으면 얼마나 효과적일까를 생각하여 주력한 것이었다.

프린스턴행

22일 주일에 박학도 대위가 자가용에 나를 싣고 프린스턴에 가서 유명한 내외국 선교사들을 많이 길러낸 신학교와 우리 대통령이 공부하던 기숙사 방을 구경하고 10여 명의 한인 학생들을 비상 소집하여 집회를 하니 비상한 은혜가 임하였다.

오태원씨 가정의 귀한 초대 감사했고 대학생들과 신학생들이 합심하여 전에 없던 친목과 사랑으로 주께 영광 돌림을 감사했다.

그래도 신학교 예배당 문밖에 담배 꽁초가 수두룩하고 신학생들이 담배 피우는 것은 예사로 보편적이라니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의 훼이스 신학교를 방문하니 거기에서는 담배 꽁초 하나도 볼 수 없었다. 경건하고 신령하게 살려는 교수와 학생들의 모습이 내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신앙의 교만자, 독선자들이라고 한편에서는 비난했다. 정통 교리는 부르짖으나 생활이 정통하지 못하면 아니될 것이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아야 만사 형통하리라.

미국의 감사절

11월 26일(목), 1864년에 링컨 대통령이 감사절을 선포하여 전국적으로 감사 분위기에 충만하고 가정에서는 칠면조 고기를 먹으면서 여러 가지 행사로 기쁨이 넘쳤다.

각 학교에서는 방학을 하고 상점은 문을 닫고 시가 행진을 하는 것도 보았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25일 밤에 "바이블 클럽" 주최로 연합예배 보고 또한 26일 예배에 30여 명이 모여 감사절에 대한 설교와 감사의 파티로 사랑의 뭉치가 되었다.

귀국

명년 3월까지 패스포트 연장이 되었으나 외무부에서 복음주의 협회를 통하여 돌아오기를 재촉함으로 귀국하는 것이 주의 뜻인 줄 알고 모든 성도들의 눈물의 전송을 받으면서 비행기에 몸을 싣고 다시 호놀룰루에 와서 수일간 지내면서 두 교회서 재집회, 작별 설교를 하고 12월 6일 밤 12시에 다시 비행기에서 잠들어 태평양을 건너 이튿날 오후 1시에 동경에 도착하니 그날 밤 황재열 목사가 찾아와서 재건된 동경 시가지를 구경시키겠다는 것을 사절하고 YMCA에 모인 대학생 모임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매우 상쾌하였다.

기회를 민첩하게 사용하여 영혼 구원하는 일밖에는 나에게는 아무 취미가 없었다. 그 이튿날 오전 9시에 탄 비행기는 오후 1시에 오랫동안 떠나 그립던 조국 김포 비행장에 도착하니 여러 성도들의 환영으로 감개무량(感慨無量)했다.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더니 나는 가나 오나, 작별이나 상봉이나 그저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할 뿐이었다. 또한 이제는 미국 전도까지 하고 왔다고 박래품(舶來品)이라고 인기가 점점 더 올라가니 각처의 초청을 다 감당 못하고 육체는 쇠잔하여 오니 세계의 인연 맺은 성소들의 사랑과 후원의 기도를 진실로 감사하거니와 앞으로도 끊임없는 배후의 복병이 되어 주소서. 모든 영광을 주에 돌리나이다.

미국의 소리 방송 요지(10월 5일)

내가 미국에 온 것은 돈 많은 나라라고 돈 구하러 온 것이 아니요, 학교 많은 나라라고 공부하러 온 것도 아니요 훌륭한 나리라고 구경하러 온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온 목적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복음의 빚과 사랑의 빚을 만분의 일이라도 갚으려고 왔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저들을 통해서 복음을 들었고 또 이번 6·25 전란에도 저들의 피와 물자로써 우리를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이 빛을 갚는 뜻에서 내게 금과 은은 없으나 예수의 이름으로 저들의 심령을 살려야 되겠습니다.

사실상 저들은 산돼지 잡으러 갔다가 집돼지 잃어버린다는 격으로 외부로는 훌륭한 것 같으나 내부 심령 상태는 죽은 심령과 같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메마른 해골떼와 같은 불쌍한 영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새로운 작전을 하기 위하여 지금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 교포들, 즉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교포들이 이 땅에 온 지 오래되자 벌써 인생의 졸업반들이 많이 있고 또한 많은 학생들이 와 있는데 이들은 장차 우리나라 각 방면에서 지도적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들을 찾아서 축복하고 저들의 심령에 올바른 인격을 심어 주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하나님 제일주의, 예수 중심의 인물들이 되기를 원함입니다.

물줄기가 길게 흘러가려면 물 근원을 파야 하고 나무가 좋은 나무가 되려면 그 뿌리를 가꿔야 되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복을 받으려면 우리 민족의 양심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오늘날 미국이 축복을 받는 원인을 나는 잘 압니다. 처음에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이 땅에 와서 첫 해 농사지어 예배당을 짓고 다음 해 농사지어 학교를 짓고 삼년 만에 자기들의 집을 지은 영국 청교도들의 자손들이니 저렇게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오래 전에 저들은 국민투표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요구하는 인물은 어떠한 인물이냐고 투표했습니다. 그때에 당선된 것이 열 가지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한마디 말이 약속 수표를 대신하는 인물.

둘째는 의지가 돌과 같이 강하여 대소사에 마음 뜨지 않는 인물.

셋째는 무슨 일이든지 일정한 의견을 가지고 나가는 인물.

넷째는 작은 일이라도 큰 사건과 같이 충성 다하는 인물.

다섯째는 자기를 위한 야심이 아니요, 인류와 사회을 위한 대포부에 불타는 인물.

여섯째는 용기와 과단성이 풍부한 인물.

일곱째는 많은 사람 중에서도 자기 특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인물.

여덟째는 기회를 붙잡는 데 민첩한 인물.

아홉째는 아무리 비천한 노동 직업이라도 천하게 생각지 아니하는 인물.

열째는 거듭거듭 실패해도 낙심하지 않는 인물.

이러한 정신과 성격을 가지고 사는 민족은 복을 받는 줄 압니다. 오늘의 우리 나라, 우리 민족, 우리 동포들도 이 정신 이어받아서 서로서로 사랑하고 일치 단결하여 속히 남북 통일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많은 축복을 받는 우리 국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