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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년시대


열두 살 때 중화에서 동생을 또 하나 보게 되었다. 동생은 매우 영민하고 똑똑하고 준수하게 생겼었다. 그를 "성환"이라고 불렀다. 성환이는 일곱 살 때 그만 좋지 못한 병에 걸리어 반생을 부모님께 걱정만 끼쳐 드리고 근심거리가 되어 온 집안이 동생으로 인해 늘 우울하였다. 그런 동생은 아들 "기숙"이를 하나 낳고 33세에 세상을 끝마쳤다.

우리 부모님은 나의 동생의 병이 결국 당신들의 죄값으로 받는 보응이라고 생각하고 달게 받으셨다. 동생의 아들 기숙이 또한 아버지를 닮아 영리하고 준수하게 생겼다. 그는 지금 이북에 있다. 같이 남하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나는 중화읍에서 살 때 중화 경의학교에 다니면서 신학문을 배웠다. 그러나 원체 몸이 약하고 더구나 폐디스토마에 걸려 말할 수 없이 말라서 깔다귀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어머니는 황해도 신천 장로교회 김익두 목사님께서 신천 경신 소학교 교원으로 청빙하시므로 거기서 삼년 간 봉직하셨다. 나는 그 학교에서 14세 때 졸업하였다.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사실 두 가지가 있다. 13세 때 삼일기도회에 예배드리러 갔는데 교인들과 학생이 모두 모여 예배를 드렸다. 다른 때는 김익두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그날 밤에는 어떤 장로가 설교를 하셨다. 가만 들어보니 다 아는 소리라 재미가 없어서 기둥에 의지하고 끄덕끄덕 졸다가 그만 꽝 하고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어찌나 창피한지 쥐구멍이 있으면 뛰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모든 학생들, 여학생 남학생 또 어른들 모두 예배를 드리다 말고 배를 쥐고 웃어댔다. 설교가 재미없고 존경하는 김목사님이 설교하지 않는다고 마음놓고 졸다가 창피를 당한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김목사님께 많은 감화를 받고 나도 이 다음 김익두 목사님처럼 부흥사가 되겠다는 꿈을 늘 가지고 있었던 때였다.

또 한 가지는, 그 경신학교는 남녀 공학이라 남녀 학생들이 선생 몰래 편지 왕래를 했던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여학생의 담임이라 나는 여학생들을 자주 만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상급생 큰 남학생들이 편지를 주면 그것을 전달하는 배달부 노릇을 하였다. 후에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어 학교에서 난리가 일어났다.

편지질하던 몇 명의 학생들은 정학을 맞았고 나는 혼은 났지만 특별히 선생의 아들이라고 봐 줘서 정학은 안 맞았다. 이러한 소학교 때의 사고들도 모두 지나고 학교를 졸업했던 것이다.

그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생은 최중호 선생이시다. 그는 얼마 안 있다가 상해 임시정부로 가서 활동하신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후로는 소식이 두절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나는 우리 가정의 형편으로는 도저히 중학에 갈 수 없는 터이라 우리 어머니는 경신학교를 그만두고 모두 외조모님댁인 평남 대동군 시족면 건지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 식구는 그곳 산곡에서 과수원과 농사를 하였다. 나도 부모님을 도우며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향학열이 나를 비관케 하였다. 가난한 살림이라 공부는 할 수 없고, 남들은 공부하는데 나는 못하니 열등감과 낙망이 소년 시절의 나를 괴롭혔다. 나는 자살하려는 결심까지 가지고 죽으려 했으나 모진 목숨이라 죽지 못하고 다시 살아나 할 수 없이 산곡에 틀어박혀 일을 하며, 나무를 해서 30리 되는 평양에 가져다 팔기도 하고 실과를 달구지에 싣고 밤새워 평양에 들어가 팔기도 하였다. 점심을 굶고 저녁 굶기는 일쑤였다. 실과 판 돈으로 좁쌀을 사 가지고 와서 죽을 쑤어 먹는 말할 수 없이 가난한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교회에는 빠지지 않고 나갔다. 그러나 내 심령은 교회에서도 죄를 짓는 소년이었다. 한번은 사경회 시간에 성신받으면 회개의 눈물이 있어야 무엇이든지 한다고 외치는데, 사람들은 눈물로 회개하며 애통하지만 암만해도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으니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엎디어 손가락으로 눈을 자꾸 비비고 또한 침을 눈에 발라 부흥목사에게 잘 보이려고 하던 가증된 행동이 생각난다.

또 예배 시간에 연보대가 돌아가는데 나는 돈이 없고 또 그냥 있자니 미안해서 빈 주먹으로 연보대에 돈을 넣는 척하여 하나님을 속인 일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하나님 앞에서 살지 못하고 사람에게 보이려는 외식하는 심령을 하나님은 얼마나 괘씸하게 생각하셨을까?

사람이 볼 때에는 점잖은 것 같으나 보지 않는 곳에서는 별 짓을 다 하는 못된 인간들이 많은 것이다. 삼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치 말라.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