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예수의 평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근심 많고 걱정 많고 질병 많고 죽음 많은, 공포와 불안에 싸인 세상 중에서 무엇을 가져야 가장 행복하게 살 것인가. 예수님은 독특한 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 주님은 "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신다. 돈이 많아서 평안하다면 예수님에게는 그 평안이 없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주님은 오막살이 한 칸도 없으시고 빈곤한 생활을 하셨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평안을 누렸다면 예수님께는 그 평안이 없으셨을 것이다. 33세 되시도록 장가도 못 들고 총각으로 독신생활하셨다. 그런고로 여기 주시는 주님의 평안은 독특한 평안인데 이 말씀은 언제 하셨는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주님은 가지고 계신 유산을 분배하셨다. 옷 한 벌 있는 것은 로마 병정에게 나눠주시고 십자가를 붙들고 우는 모친은 요한에게 맡기시고 죽은 시체는 아리마대 요셉에게 맡기시고 그 영혼은 천부께 드리니 주님 유산이란 그것뿐이다.

만찬 석상에 근심과 염려에 싸여 앉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는 무엇을 줄까? 오! 한 가지 남아 있다. 주님 가슴 속에 있는 평안이다. "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마음 속에 있는 참 평안을 주신 것이다.

환난을 받으나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 16:3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행복하냐. 세상의 부귀 영화 다 얻어도 이 평안을 얻지 못할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자이다.

그러나 세발 막대 둘러도 거칠 데 없고 세상 사람 말대로 8자가 남의 7자 끝 부러진 것만 못해도 이 평강을 얻은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이 평안 가졌으므로 빌립보 교회에게 항상 주 안에서 즐거워하라, 다시 말하노니 즐거워하라고 편지한 것이다.

이 말씀은 바울이 로마 옥중에 여러 해 동안 있으면서 쇠고랑 차고 똥통 옆에서 진지 잡수시면서 쓰신 편지이다. 빌립보 교회는 이 편지를 받을 때에 감개 무량하였을 것이다. 왜 그런가? 수십년 전 유럽 최초 전도시에 바울은 빌립보에서 전도하시다가 귀신 들린 여자 점쟁이에게서 귀신을 내어쫓은 것이 문제되어 경찰에 검속되어 많은 악형을 당하며 옥중에 수금(囚禁)되었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조금도 원망 불평이 없이 옥중에서 기쁨으로 찬송하고 기도하였다. 밖에서 수직(守直)하던 간수가 그들을 보고 그 밤중에 이상히 생각하고 있던 차에 뜻밖에 지진이 일어나며 옥문이 열렸다.

간수가 그만 죄수들이 도피한 책임감에 눌려 자살하려 할 때에 바울이 간수에게 죽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였다. 간수는 더욱 놀라서 달려들며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하였으니 이는 어떻게 하면 나도 당신들 같은 참 평안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말이다.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1) 하니, 간수는 그 밤에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음식을 대접하고 상처에 기름과 약을 발라 치료하여 주고 온 가정이 예수 믿고 구원을 얻어 세례받았던 것이다.

또한 강변에서 기도하던 자주 장사 여인의 가정을 기초로 하여 빌립보 교회가 섰으며 모든 교회 중에 아름다운 교회가 되었으니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서 편지받은 그때쯤에는 그 간수가 적어도 교회 장로는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온 교회가 바울의 평강과 즐거움이 불변함을 보고 더 많은 은혜가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오! 형제여, 자매여, 이 평강을 받으시라.

누구에게나 원하는 자에게 주신다. 주님은 평강의 근원이요, 평강의 주인이 되신다. 이 평안은 어떤 평안인가?

1 . 마귀와 상관없는 평안이다

마귀는 어떤 사람과 관계가 있는가? 죄 있는 사람과 상관 있으니 주님의 평강은 죄인에게 임할 수 없느니라. 이 세상에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사회에 평안이 없음은 죄로 인한 까닭이니라.

질병이 있는 사람은 몸에 평안이 없는 것처럼 죄가 있는 사람은 그 영혼에 평강이 없는 것이다. 이 죄로 육체가 망하고 가정이 망하고 국가, 사회가 망한다. 그런데 죄에는 자범죄와 원죄 두 가지가 있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지은 모든 무거운 자범죄를 십자가 아래 풀어놓고 사죄함 받은 영혼에는 평안이 있으니 예수의 평안이다. 죄악에서 구원얻어 중한 짐을 벗고 보니 나의 마음 이 세상도 천국같이 느껴지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평안히 쉬게 하리라(마 11:28).

다음에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옛 사람의 원죄가 있다. 옛 성질이 자주 나타나 문둥이 같은 죄 성질이 발동한다. 이것이 사죄함 받은 새사람에게 괴로움을 준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주랴,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죄를 행한다고 사도 바울은 외쳤다. 사망의 몸이란 송장을 말하는데 옛날에는 사형 선고받은 사람을 송장과 맞붙여 결박하여 썩은 송장의 독균이 산 사람을 썩여 같이 죽게 했다고 한다.

사도 바울도 이런 괴로움을 느꼈으니 우리는 성결의 필요를 알고 성신과 보혈의 능력으로 여기서 해방을 받고 정결함을 얻어야 참 평화가 있는 것이다. 이 내부 죄악의 성질에서 구원함을 받았느뇨? 너는 스스로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아신다. 지금 너를 감찰하고 계신다.

2. 절대 신뢰의 평안이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심이라. 나를 사랑하였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을 기뻐했으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사느니라.

믿음이 없은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믿음이 없는 마음은 바다 물결 요동하는 것 같아서 안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크신 아버지를 절대로 의뢰하셨다. 이같이 우리가 주 안에 있고 주가 내 안에 계심이 물고기가 물 속에서 평안하고 기차가 레일 위에서 자유롭고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잘 자고 포도나무 가지가 원체에 붙어 열매를 맺음 같아 하나님

절대 의뢰의 생활을 할지어다.

물묻은 종이가 연약하지만 벽에 붙으면 강하게 됨과 같이 우리 육체도 마음도 연약하지만 만세 반석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함으로 참 평안과 능력을 얻는 것이다. 할렐루야!

내 주님 품속은 영원한 피난처

그 품에 안긴 자는 늘 평안하도다

내가 그 품에 의지할 때에

그 가슴의 평안을 내게도 주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