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천국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2-3)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처음으로 침묵을 깨뜨리고 하신 말씀이 "천국이 가까왔다"이다. 팔복을 말씀하실 때도 제일 먼저 천국을 말씀하셨다.

천국이라는 말은 종교상 술어가 아니요 실재(實在)하는 신천지(新天地)이다. 예수께서 세상 죄악을 준엄하게 책망하신 후에 지옥의 형벌을 단연 선언하셨고 회개를 권고하신 후에는 천국의 복을 주셨다. 이 천국을 위하여 죄와 불의의 생활을 용감하게 버리고 모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실망치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이 나라를 바라고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천국을 부인하는 사람과 의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으면 무관심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세상 사람들이 천국을 있다 하든지 없다 하든지 성경은 엄연히 천국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성경은 조금도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약한 말 같으나 사람이 상식적으로 말하는 것은, 사람이 만일 내세의 천국을 생각하고 현세에서 경건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만일 천국이 없다고 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고 손해 될 것이 없다.

밑져야 본전이지. 그러나 반대로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하여 무소불위(無所不爲)로 죄악 생활한다고 하면 현세에서 손해는 물론이요, 만일 천국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하려느냐는 말이다.

사람들이 큰 일에 예산편성(豫算編成)을 하는 것은 만일을 위하여 예산을 세워 두는 것이다. 큰 집을 건축하려고 설계(設計)할 때에 위급한 일을 당하면 쓰려고 비상출입구(非常出入口)를 만드는 법이 아닌가? 그러면 어찌하여 인생 문제에서 중대 문제인 내세에 대하여는 만일을 위하여 생각지 않을 수 있으며, 생에 대하여 설계를 할 때에 어찌 사망의 위급을 당할 때에 천국이라는 비상 출입구를 생각지 않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천국은 첫째로 성경이 증거했고, 다음으로는 우리의 양심과 상식이 증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한 천국을 몇 가지로 말할 수가 있으니 이것을 성경을 근거하여 말씀드리려고 한다.

심중 천국

하나님 나라는 너희들의 안에 있느니라(눅 17:21). 혹자는 말하기를 천국이라 하는 것은 특별히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심(道心), 즉 천국 생활이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신을 힘입어 의로움과 평강과 기쁨이니라(롬 14:7) 하신 말씀과 같이 사람의 마음 속에 성신을 힘입어 이루어진 평강과 기쁨이 있어서 내세의 천국이 증명되는 것이니 천국에 대한 신앙을 요동치 말라는 말씀이다.

혹자는 나보고 당신이 천국에 가 보았느냐고 무식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의 말에 나는 천국 본점(本店)은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천국 지점(支店)은 가보았다고 대답하였다.

시골에 있는 지점은 서울에 본점이 있다는 증명이 되는 것처럼, 내 맘 속에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천국은 내세에 천국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인적(印蹟)은 인장(印章)이 있는 일의 증명이요, 그림자는 물체와 태양이 있는 일의 증명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속의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천국의 그림자요, 우리가 천국에 갈 일의 예표가 되는 것인데 천국은 심중 천국의 연장(延長)이며 계속이다.

교회 천국

마태복음 13장에 나온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등은 세상에서 교회가 확장될 것을 가르친 말씀인데, 예수교회가 세상에 건설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목적이 있어서이다.

마치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치는 것처럼 온 세상에 교회를 확장시켜서 이 모양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천국 백성을 모아들이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런데 요즘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교회를 주장하는 것은 근본 의미에서 보면 교회의 신성을 범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루바삐 교회를 확장시켜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 신자가 할 일이며 교회를 그만두자는 무교회주의는 우리 신자가 할 일이 못 된다.

속화되고 타락한 교회는 차라리 없어도 좋다고 하지만 이도 역시 교만한 말이다. 장구한 세기(世紀)를 두고 세상에서 발전되어 가는 교회 역사가 속화되는 일이 없을 수가 없다.

예수님도 이를 인정하신 것이다.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매 공중에 나는 새가 와서 깃들인다고 하신 것은 이를 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속화된 교회를 바로 청산하는 것은 무교회주의로는 도저히 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니 우리는 열심으로 교회에 나와서 열심으로 예배하며 교회를 각처에 확장시킬 것 밖에 없다. 교회는 세상 사람을 불러서 천국 백성으로 만드는 공장이다.

천로역정에 보면 장망성 살던 기독도가 간난산을 넘어갈 때에 간난산 꼭대기에서 미궁(美宮)을 만나니 그 미궁 안에는 근신, 경건, 인애, 현지가 있어 오는 사람을 대접하는데 기독도는 미궁안의 평안방에 가서 피곤한 심신을 평안히 쉬고, 진리와 사랑방에 가서는 진리를 배워서 마음에 밝히며 사랑을 마음에 채우고, 무장방에 가서는 앞날에 당할 적을 위하여 무장을 든든히 하고 갔다는 말이 있다.

이 미궁은 오늘날 교회를 의미한 것인데, 우리 교회는 이상과 같은 미궁에 책임을 다하여 간난산을 넘기에 피곤한 영혼들에게 이러한 은혜를 주어야 할 것이다.

평안방이 있다는 말들은 지가 오래더니

연약하다 죄인 몸이 여기 와서 즐기도다

미궁이야 높고 높다 주의 은혜 아니런가

걱정 근심 다 버리니 작은 천국 여기로다.

교회는 하나님 계신 궁전, 사랑의 가정, 진리의 학교, 그리스도의 신부 단장시키는 미장원, 작은 천국이다.

지상 천국

지상 천국이라고 하는 것은 과학이 발달되어 황금 세계가 되고 정치가 발달되어 산에는 도적이 없고 길에 떨어뜨린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다는 그런 지상 천국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천국을 만든다는 인본주의(人本主義)사상인데, 죄로 타락한 이 세상을 인력으로 천국을 만들 수는 절대로 없다.

누가 바다의 파도를 잔잔케 할 수 있으며, 죄악 세상에 천국을 건설할 수 있겠는가? 정치로 국내에 죄를 없이할 수 없고 강화조약으로 세상에 전쟁을 없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천국은 어느 때에 이루어질 것인가? 첫째로 예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되실 때에, 아픔으로 죄악을 철창으로 질그릇 부수듯 부숴 버리고 사탄 마귀를 결박하여 무저갱에 쓸어 집어넣는 날에야 비로소 지상 천국이 건설될 것인데, 이는 이 세상 정치와 관련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성취될 것이다.

이것이 천년왕국(千年王國)이다.

영생 천국

천년 왕국이 유기적(有機的)이라고 하면, 영생 천국은 무기적(無機的) 즉 영원 무궁한 세계이다. 세상 창조 이후로 길고 긴 세상 역사를 최후 판결 지을 때는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이 될 희망이 있고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함 받고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지금과는 다르다. 이때는 악한 자는 악한 자로 선한 자는 선한 자로 영원히 판결을 지어 갈라놓는 때요, 최후 장소이다. 혹자는 천국을 말할 필요가 없고 다만 사람이 행할 바 선을 행할 뿐이라고 한다. 이것이 신앙을 방해하는 마귀의 오묘이다. 왜?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라야 선을 행할 수 있고, 이 소망이 없는 자는 절대로 선을 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비근한 예로는 태평양 전쟁 때에 한국 청년이 원치 않는 영장을 받고서 그만 자포자기하여 "에라! 나는 사형 선고를 받은 몸이니 마음껏 놀아 보리라" 하고 매일 장취(長醉)로 허랑 방탕하여 자기 생활을 자기도 절제치 못하고 날뛰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잘 믿는 청년들은 영장을 받은 후에 전보다도 더욱 경건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영생의 소망이 없이 현세에서 선을 행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세상의 박해와 고난을 이기는 것은 이 소망뿐이다. 인생을 든든히 붙드는 유일한 힘은 천국에 대한 희망인 것이다.

결론

예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신 말씀은 분명한 진리의 말씀이므로 가까워 오고 있다. 세상 사람이 천국을 부인하거나 인정하거나 상관하지 않고 가까워 온다. 인생은 세월이라는 급행열차를 타고 이곳을 향하여 달려간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북망산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그 속도는 심히 빠르다. 빨리 달리는 기차가 이 터널에서 나와서 어언간 저편 터널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부도 좋고 공명도 좋지만 그도 잠깐이고, 가난이 어렵고 고난이 괴롭지만 그도 역시 잠깐이다.

북망산 무덤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천국 갈 준비를 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이다.

1. 꿈결 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 살까

인생의 향락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 세월 고난 풍파 일장 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가느냐

 

2. 이팔 청춘 그 꽃다운 시절도 지나고

혈기 방장 그 장년도 옛날이 되누나

성공 실패 꿈꾸면서 웃고 우는 그 순간에

청치 않는 그 백발이 눈서리 휘날리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