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죽도록 충성하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사람은 다 죽는다. 영웅, 호걸, 미인, 열사 어느 누구 죽지 않을 용사가 있는가? 이래도 한번, 저래도 한번 누구나 죽을 것인데 값있는 죽음, 복 있는 죽음을 맞아야 할 것이다. 이 백성들이 너무너무 잘살려고 애쓰다가 잘살지도 못하고 잘 죽지도 못하니, 이제 잘 죽으려고 노력하면 잘살게 되는 비결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이후로 주를 높이다가 죽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계 14:13).

주를 높이고 죽도록 충성하는 자만이 이 세상에서도 값있는 생활을 하고 이 장막이 무너지면 하늘 나라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복 있는 죽음을 하는 것이다.

서머나 교회는 당시 환난 많고 핍박이 심한 교회였다. 서머나라 하는 뜻은 몰약이니 맛은 쓰나 향기로운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2, 3세기 교회 모형이니 밖으로 환난과 핍박이 심하고

안으로 궁핍과 부패함이 극심하던 때라 할 것이며, 오늘날 우리 나라 현실을 살피고 교회 형편을 바라볼 때 서머나 교회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에 주님께서는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시었다.

1. 충성이란

1. 중심으로

충성 충(忠)자는 가운데 중(中), 마음 심(心)이니 무엇이나 중심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외식하지 말고 가리우지 말고 정직하고 솔직하게 못났으면 못난 그대로 무식하면 무식한 그대로 적나라하게 살아야 할 것이니,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겉으로는 믿는 척하고 말로는 충성한다 하면서, 실제로는 불신앙의 생활을 하며 중심에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찬송을 하여도 중심으로, 기도를 하여도 중심으로, 설교를 하여도 중심으로, 남을 구제하고 사랑하여도 중심으로 거짓 없는 참사랑을 하여야 할 것이다. 하루하루 작은 일에 중심으로 충성하는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시는 것이다.

2. 언행일치

정성 성(誠)자는 말씀 언(言), 이를 성(成)이니 말한 대로 행동에 나타나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충성한다고 입으로는 하기 쉽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겟세마네 동산, 갈보리 산을 죽기까지 따라가겠다고 호언 장담은 잘하나, 십자가는커녕 조그만 가시 하나에만 찔려도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도망치려 하는 것이 인간들이다.

가시밭의 백합화는 찌르는 가시가 많으면 많을수록 향기를 날린다. "여자들 중에 내 짝은 가시밭의 백합화로다." 신자라고, 집사라고, 장로, 목사라고 예수의 짝이 될 수 없으며 장로교인, 감리교인, 성결교인이라고 예수의 짝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여자들"이요, 그 "여자들" 중의 예수의 짝은 가시밭의 백합화와 같이 찌르는 가시가 많고 어려운 환난을 만나도 더욱 예수의 향기를 날리는 사람을 말한다.

가시밭의 백합화 주의 성도여

쉬지 않고 찌르는 고통의

남 모르는 눈물이 몇 번이런고

주님께서 네 눈물 씻으리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나의 사랑은

아름다운 향기를 떨친다.

2. 죽도록이란

1. 예수의 죽으심같이

서머나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님이다. 날개 없는 짐승보고 날라고 하면 날수 있겠으며, 뿌리없는 꽃이 열매를 맺을 것인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무리한 명령을 내리시는 주님은 아니다.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이다.

그는 나를 사랑하사 나 위하여 죽으셨다. 이 주님 생각할 때 우리에게 닥치는 환난 핍박이 많다 하여도 주님보다는 낫고, 목마르고 배고픔과 수욕과 고통이 심하다 할지라도 십자가를 지시고 살이 찢겨 피 흘리신 주님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는 십자가를 억지로 지지 말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과 함께 한걸음 한걸음 감사와 즐거움으로 죽도록 충성하여야 할 것이다. 십자가가 있으므로 면류관이 있고, 죽음이 있으므로 부활이 있다. 구름이 있으면 비오고 비온 뒤에는 햇빛이 난다. 꽃이 떨어진 후에는 열매가 맺히고, 엄동의 설한 지나면 양춘가절(陽春佳節)이 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26) 하셨으니, 이는 탁상공론(卓上空論)이 아니다.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의 본체요, 생명의 자본주가 되시는 주님께서는 친히 죽음의 돌무덤을 깨뜨리고 부활하셨다. 이러한 생명의 주와 함께 죽으면 생명의 주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

2. 나의 뜻을 죽이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서머나 교회의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주님께서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 하셨으니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일을 아시고 계시며 또한 범사가 주께로 말미암아 오고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나고 싶어 났으며 죽고 싶어 죽는가? 쓴 것이나 단 것이나 괴로운 것이나 즐거운 것이나 다 그의 권능과 섭리와 사랑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고로 어떤 일에 부딪히든지 상대적 입장에 서지 말고 절대적 입장에 설 것이다. 인간들은 언제나 환경과 주위를 원망하기 쉽고, 자기의 수단과 방법을 써 보려고 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자기의 칼을 빼어 말고의 귀를 침으로써 주님께 오는 십자가를 막을 수 있었는가? 주님께저는 태연자약(泰然自若)하여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에 서야 할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주님께 큰 사정, 작은 사정, 만단 사정 맡겨 버리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결론

그런고로 두려워 말라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사탄의 결사대, 악마의 순교자는 벌떼같이 일어나는데, 어찌하여 두려워 떨고 비겁하게 할 말을 못하고 아니할 말을 하며 갈 곳을 못 가고 아니 갈 곳을 가는가. 그리스도의 정병들아, 일어나라! 개인의 편리와 안위를 따라 이리저리 좌우되지 말고, 의무와 사명과 책임을 위하여서는 죽음의 문이라도 돌파하는 것을 주의 종 된 자의 최고의 영광으로 알아서, 죄에 대하여는 피 흘리기까지 대적하고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주님 세상 계실 때 걸어가신 그 자취

성신이여 인도하사 나도 가게 하소서

탄생 이후 최후까지 십자가를 지시고

녹아지고 사라지신 희생 제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