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죄의 복음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요일 2:12)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기독교의 진리를 간단하게 말한다면 사죄(赦罪)이니 인간이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고 죄 사함받는 인간이 또한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고상(高尙)한 도덕을 연구하지 못하고 훌륭한 신학이나 철학을 몰라도 좋으나 사람이 이 사실만은 체득(體得)하여야 할 것이니 이론이 아니요 체험이다.

하나님께 죄 용서함을 받는 체험이다. 죄 사함을 받아야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행복을 누릴 수 있으니 죄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데 죄의 담이 가로막혀 있으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죄로서 빚어지는 것이요, 불행 중의 가장 큰 불행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

이 죄악의 막힌 장벽을 헐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허는 길은 죄사함받는 것이다. 천국은 거룩한 곳이니 우리가 천국민이 되려면 또한 거룩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고 지은 죄를 용서함 받을 길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용서함 받는 길을 열어 주셨으니 예수 강림하신 목적이 그것이다.

아들을 낳거든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리라(마 1:21).

내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노라(눅 19:10).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라(눅 12:49).

내가 온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노라(요 10:10).

이 모든 말씀은 예수께서 이 세상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신 것을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33년 생활 그 하신 말씀, 그 십자가, 그 부활은 우리의 죄를 멸하려 하심이요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심도, 장차 다시 나타나시는 목적도 이 죄 때문인 것이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를사했다." "딸아, 안심하라. 네 죄를 사했다. "예수님 세상에 계실 때 언제나 하신 말씀이요,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유함이 없으매(히 9:22) 십자가를 지시고 피 한방울까지 남김없이 우리 위하여 흘리시고 최후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으니 저는 우리 범죄함을 인하여 내어 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피(血) 대야를 앞에 놓고 때묻은 우리의 발을 씻기시기 위하여 기도하신다. 최후의 심판 그때에도 악한 마귀는 무정한 검사(檢事)같이 우리의 묵은 죄문서(罪文書)를 들추어 정죄할 것이나, 주님께서는 우리의 변호사가 되시고 대언자가 되셔서 그 피값으로 승소(勝訴)시켜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무궁 무진한 주님의 은혜를 힘입기만 하면 누가 능히 우리를 정죄하리요. 태평양의 물고기가 목이 말라죽고 요셉의 7년이나 풍년 든 창고의 생쥐가 배가 고파 죽었다면 그 얼마나 어리석다 할 것인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입으로는 말하면서 아직 사죄의 경험, 확신이 없다면 태평양의 물고기 못지 않은 불쌍한 인간이다.

그러면 죄사함의 확신은 무엇이며 그 증거는 무엇인가?

1. 평화스러운 마음이 곧 그 증거이다

하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고 성신을 힘입어 의와 평강과 기쁨이라(롬 14:17) 하였는데, 마음에 아직 참 평화가 없는 심령은 죄악에서 구원을 얻지 못한 영이다.

우리 마음의 무거운 죄의 짐을 벗고 보면, 주 예수 내 마음에 들어와 계시고 주 예수 계신 곳이면 그 어디나 천국이다. 초막이나 대궐이나 산이든지 들이든지 환경을 초월하여 하늘의 영광이 충만한 것이다.

고무 풍선이 속이 비어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둥실둥실 두둥실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 마음이 비어 성신의 바람을 타고 항상 하늘의 생활을 보내는 것이다.

2. 나도 남의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이 곧 그 증거이다

어떤 사람이 빛을 만 냥 졌는데 주인이 재촉하매 빚진 자가 엎드려 겸손하게 절하며 "조금만 더 참아 주시면 갚으리이다" 하니 주인이 불쌍히 여겨 전부 탕감해 주었다.

빛진 자가 좋아하며 나오는 길에 자기에게 백 냥 빛진 사람을 만나 이를 붙들고 빛을 갚으라 하니 그가 어려운 형편을 사정하나 듣지 않고 옥에 가두어 그냥 빛을 재촉하니 먼저 만 냥 탕감하여 준 주인이 듣고 괘씸히 여겨 다시 잡아다가 탕감한 빛을 다시 내라고 하였다는 비유로 주님께서 말씀하심은, 나는 하나님 앞에 많은 죄 사함받았으면서 나에게 지은 남의 작은 죄를 기억하고 용서 못하는 잔인한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을 자임을 경계함이다.

형제여, 자매여 ! 우리는 어떠한가? 남의 죄를 너그럽게 용서하는가! 못하는가! 죄 사함받았는가! 못 받았는가! 예수가 내 안에 있는가! 없는가! 이것은 오로지 내가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가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롬 8:9)하였는데, 그리스도의 영은 무엇보다도 사지의 영이다. 베드로가 주님께 묻기를 "형제가 내게 범죄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할 때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라" (마 18:21) 하심은 계산하여 4백 90번을 용서하라 하심이 아니요 무제한으로 용서하라 하신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드리는 주기도문에 ......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 하지 않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죄사함 받으려면 먼저 우리가 남의 죄를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있는 죄는 약대 같은 것이라도 슬쩍슬쩍 넘기면서 남의 죄는 갈대 같은 죄라도 낱낱이 살피려는 가증한 바리새인이 오늘날 교회 안에도 많은 것을 볼 때 한심하다.

그리스도께서 내 죄 용서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애쓰시며 희생하셨는가를 생각할 때 우리가 남의 죄를 사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네 죄 사하심을 도로 물리실 것이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 32) .

자비한 자 복이 있나니 저희도 자비받으라

남에게 주는 태도는 주님께 받을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