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저희들의 믿음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

주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에 가버나움에 가서 전도하셨다. 그 동리에 중풍병이 들어 반신 불수로 오랫동안 병상에서 신음하는 자가 있었다. 그의 친구 네 사람은 아마 자기들이 먼저 주님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일 것이다. 자기가 체험한 은혜가 아니면 남을 동정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동정심과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은 우리의 친구를 구원하시리란 믿음으로 그의 집을 찾아갔다. 병상에서 신음하는 자에게 이 네 친구가 예수의 권능과 사랑을 열심히 간증할 때 병자의 마음은 움직여 예수께로 인도하게 되었다.

우리들도 전도하러 갈 때에 혼자 가는 것보다 삼삼오오 작반(作伴)하여 가는 것이 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을 전도 보내실 때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보내신 것이다. 친구들은 가서 "여보게,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께서 누구의 집에 와서 설교하시는데 자네도 가볼 맘 없는가?" 라고 하였다. "글세 그럴 맘은 있지만 내가 움직일 수 없으니 어찌 갈 것인가?""그러면 우리가 자네를 매어다 줄 터이니 이 상에 누워보게." "아이구, 친구들, 너무 고맙네." 병자가 상에 누우니 네 친구는 상을 둘러메고 예수님 계신 곳으로 가게 되었다.

힘을 합하고 발걸음을 맞추어 주님 계신 곳에 다다르니 많은 군중들이 입추의 여지가 없이 대만원이라. 남반 문을 열고 "길을 좀 내어 주시구려. 이 병든 사람 좀 들어갑시다." 하니 동정이 없는 인간들은 본체만체하고"이것 무어. 성한 사람도 어려운데 그 병자가 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잡아떼는 것이다.

그 다음은 부인반 문으로 또 갔겠지요. "여보 모매(母妹)님들, 길 좀 내주시오. 이 불쌍한 반신 불수 병자 좀 들어갑시다." 동정이 없는 여자들도 또한 들은 체 만 체 조금도 움직임이 없었다.

친구들은 얼마나 낙심이 되었을 것인가? "이 사람들아, 이건 왜 메구 가자구 해서 여기까지 와서 이 모양이 되게 하는가?"

"아니 이 사람아, 자네가 먼저 제안하지 누가 그랬나?" 하고 싸웠을까요? 오늘날 보통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다가 안되면 분쟁이 일쑤인데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때가 이르면 거두리란 약속을 믿고 주님 만날 연구를 한 결과 한 사람이 제안을 했다. "여러분, 좀 어렵지만 지붕으로 올라갑시다" 하는 것이었다. 모든 친구들은 한 사람도 반대 없이 만장일치로 가결을 하고 다시 병상을 메고 지붕으로 올라간다.

아마 간이 콩알만했을 것이다. 상상을 해보시라. 그러나 이들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생명을 내어 걸고 간신히 올라간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유대인들의 지붕은 위가 평평해서 상을 내려놓고 안심하였으나 또한 재차 난관은 아래서 설교하시는데 남의 지붕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곱게 뜯으려 해도 퉁탕퉁탕 소리가 나고 부슬부슬 털매 지저깨비가 주님 머리 위에 떨어진다.

모든 사람들은 이런 미친놈들 남이 집회를 방해한다고 야단이요, 그 집 임자는 남의 집을 파괴한다고 야단났을 것이다. 그래도 이들은 온갖 비난을 겪으면서도 그저 이 친구 하나 살릴 욕심에 다른 방해는 문제도 삼지 않았다. 지붕을 다 ?고는 병상을 달아 내리니 바로 예수님 발 앞에 떨어졌다.

이거야말로 일등 자리도 아니요 특등 자리다. 주를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름을 입은 사람에게는 만사가 합동하여 유익하게 되느니라 하신 말씀 그대로이다. 믿는 자에게는 불행이란 두 글자가 없느니라. 보시라! 아까 그들이 남반과 부인반에 들어갈 용수(容手)가 없이 길이 막힌 것이 도리어 유익이 아닌가?

그래서 범사에 감사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가는 길에 종종 길이 막힐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이 구멍이 막히면 저 구멍으로 나가고, 저 구멍이 막히면 위로 용진하는 것이 신앙자의 노선이다. 주님은 저들의 믿음을 보시고 반신 불수더러 네 죄를 사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 나오면 더가짐 은혜가 있는 것이다. 병을 고치러 왔는데 죄까지 사해 주신다.

이것이야말로 꿩먹고 알 먹은 셈이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시고 만물을 은혜로 주신단 말씀은 경품권, 더가짐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신앙의 군중들은 그 말씀을 듣고 참람한 말이라고 수군수군한다. 예수를 알지 못한 연고이다. 예수는 이 사람의 죄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반신 불수야, 일어나서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칠 때에 반신 불수는 돌연 새 힘을 얻어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의 누웠던 상을 메고 나갈 때에 길은 쫙 열린 것이다.

들어올 때는 길이 막혔으나 나갈 때는 길이 열리는 것이 신앙자의 앞길인 것이다. 할렐루야. 저들의 신앙은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 활동적 신앙

저들의 신앙은 어떠한 신앙인가? 저들의 신앙은 사랑으로 활동하는 활동적 신앙이었다. 즉 산 믿음이다. 산 사람은 움직임이 있느니라. 대개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는 하례를 받는 것도 유익함이 없고 받지 않는 것도 또한 그러하되 오직 사랑으로 행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약 2:26) 하였다.

어떤 사람은 누워먹는 팔자가 좋다고 해서 밤낮 누워먹다가 무량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유명한 의사가 내가 고쳐준다고 가족과 의논하고 박달 망치를 차고 들어가서 사정없이 욕을 한다. "야 이놈아, 너 돈푼이나 있다고 밤낮 누워먹어? 너는 이 사회에 하루 살아야 하루 해독이요 이틀 살아야 그만큼 이 나라 이 사회에 해독인 기생충 같은 놈이야. 너같은 놈은 때려 죽여야 한다"고 사정없이 두들긴다. 무량병자는 마누라를 부르고 자식을 부르나 종무소식(終無消息)이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겠구나 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발동하며 일어난다."야, 이놈이 일어나누나" 하고 다시 후려갈기니 둥싯둥싯 달아나면서 한 번만 살려 주시면 일 잘하겠다고 백배 사죄를 한다. 그래서 무량병 든 놈을 때려서 살렸다는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참말 한국민족이 이렇게 매를 맞고 한국교회가 많은 매를 맞는 것은 일어나서 일하라는 것이다.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은 곧 나를 위함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2. 일치 단결의 신앙

위의 친구들은 맘을 합하고 힘을 합하여 친구를 구원하였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집안이 화합하면 가정이 축복을 받고, 국가가 화합하면 국가가 부국강병이 되고, 교회가 화합하면 교회가 참 부흥을 한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망하는 법이다. 사도 시대에 베드로와 요한으로 더불어(행 3:4) 40년 앉은뱅이가 일어섰다. 더불어는 일심단결이다. 나이가 많은 베드로와 나이 젊은 요한으로 더불어, 무식한 베드로와 유식한 요한으로 더불어, 이 더불어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고, 오순절에 예수의 모친과 모든 여인들과 제자들로 더불어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성신이 강림하신 것이다(행 1:14). 악마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간을 붙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간을 붙여 분리시키고 있다. 화목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어떤 집에 아들 오 형제가 서로 밤낮 분쟁 불화로 부모의 속을 태운다. 마침내 속이 상한 아버지는 별세하게 될 때에 아들 오형제를 불러 놓고 마지막 유언으로 아들들에게 나뭇가지를 한 개씩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가지고 온 나뭇가지 한 개씩을 꺾어 보라고 하였다.

아들들은 힘 안들이고 쉽게 꺾어 버린다. 다음에는 다섯 개의 나뭇가지를 한데 묶어서 꺾어 보라고 하니 꺾을 장사가 없는지라, 아버지는 그렇게 너희 오형제가 제각기 분열하면 속히 꺾기어 망할 것이나 너희 오형제가 일심 단결만 하면 너희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고 한마디를 남겨 놓고 운명하였다. 아들 오형제는 그 유언을 지켜 축복의 가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3. 열성적 신앙

병든 친구를 찾아 메고 지붕에까지 올라가는 그 열정, 남의 지붕을 뚫는 그 열정은 주님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다. 생명의 신앙은 열심이 있는 법이다. 열성만이 인간 생활을 썩지 않게 한다고 하였다. 성경에도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계 3:19), 열심히 선을 행하라(딛 2:14), 열심히 봉사하라(롬 12:11),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벧전 4:8)고 나와 있다. 하나님의 열심 같은 열심히 너희를 한 지아비에게 중매하였노라(고후 11:2)고 바울은 말하였다. 열심히 전도함이다.

일본의 금정(金井) 목사는 일찍이 불교의 대사였다. 하루는 황혼에 동경 시가를 지나다 보니 웬 청년들이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데, 기독교 청년들이 노방전도를 하는 것이었다. 금정 목사는 우리 불교에는 저런 청년들이 없는데 기독교에는 참으로 열심히 있구나 하고 서서 구경을 하는데 또 한 청년이 나아와 간단히 설교를 하고 오늘 밤 우리 교회에서 유명한 강사가 와서 인생의 중대 문제를 가지고 강연할 터이니 물실호기(勿失好機)하고 한 번만 와서 들어보시라고 열렬히 광고한다.

금정 목사가 따라가서 문에 들어서니 문안에 안내원 여자가 매우 친절히 영접을 한다. 들어가 앉으니 어떤 청년이 옆에 와서 앉아 성경을 볼 때에는 성경을 찾아 보여 주고 찬송을 부를 때는 찬송을 찾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면서 부른다.

목사가 나와서 설교를 하는데 열심히 불을 토한다. 설교를 마친 후 예수 믿을 사람 손들라고 하니 그만 그 대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어떤 장로가 달려 와서 주소 성명을 쓰고는 머리에 손을 얹고 열심히 기도를 하여 준다. 그만 그 대사는 눈물을 흘려 당석에서 회개를 하고 참된 신자가 되어 후에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되었다 한다.

그의 간증에 "나는 불교의 중으로서 기독교의 목사가 된 것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나 그날 밤 노방 청년들의 열심히 부르는 노래와 청년의 열렬한 광고와 문안에서 안내해 주는 친절한 열심과 목사의 열정적 설교와 장로의 기도해 주는 열정에 다 녹아지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인간 만사는 열성이 승리니라.

4. 희생적 신앙

친구들은 그 병자를 위하여 자기들의 시간과 노력과 명예와 재산을 다 희생하였다. 작은 믿음에는 작은 희생이 있고 큰 믿음에는 큰 희생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희생하시고 우리 주님은 탄생이후 최후까지 십자가를 지시고 녹아지고 사라져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쏟아 바쳐 우리를 살리신 것이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지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악마를 위하여는, 또한 자기들의 그릇된 주의와 사상을 위하여는 재산을 버리고 생명을 초개같이 내버리는 사탄의 순교자와 악마의 결사대는 벌떼같이 일어나는데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온 천하보다도 귀한 영혼을 위하여는 작은 것이나 희생하지 않으니 어찌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겠느냐. 반성하자.

5. 전뢰적 신앙

그 친구들은 지붕에서 병자를 달아 내루우되 그 상을 맨 줄을 "선생님, 이 병자 좀 보아주세요. 되면 좋고 안되면 도로 끌어올리렵니다" 하면서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줄까지 내어 맡겼다. 그림으로 보니 줄이 꾸불텅꾸불텅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옳다 그것이 신앙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 반신반의로 줄까지는 맡기지는 않는다. 아주 줄까지 맡겨라. 신앙은 맡기는 것이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겨라(시 37:5).

네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라(잠 16:3).

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라(벧전 5:7).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라(시 55:22).

네 영혼을 조물주께 맡겨라(벧전 4:19).

그리고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시 68:19).

종이 한 장이 비록 약하나 벽에 붙이면 강하게 되어 뚫을 장사가 없는 것같이 우리 몸도, 영혼도, 마음도, 의지도 약하나 만세반석 되시는 하나님에게 꼭 신뢰하여 붙으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시멘트 콘크리트를 할 것이다.

결론

믿는 자는 주의 영광을 보리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리라. 작게 믿으면 작게 되고 크게 믿으면 크게 되느니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느니라.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행하는 일을 저도 행할 터이며 이보다 더 큰 것도 행하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느니라. 믿어라.

믿음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귀요, 믿음은 하나님을 붙잡는 손이요, 믿음은 하나님께로 가는 발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는 혀(舌)라고 어느 성도는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