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뇨?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물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8-13).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간절하신데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뇨?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고 심판의 날이 가까워 오는데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뇨?

어떤 부자가 상처를 했는데 새장가를 들어 젊은 색시를 데려 왔다. 여자가 시집 온 날부터 남편의 속을 많이 썩이는데, 밥을 하라고 하면 죽을 쑤고 죽을 쑤라고 하면 밥을 하고 가라면 오고 오라면 가고 앉으라면 서고 서라면 앉는다. 아마 나이가 어려서 그렇겠지 하고 모든 것을 참았다니 나이가 들고나니 군눈을 뜬다. 간부를 두고는 볼사납게 군다.

여러 번 권면을 하나 조금도 회개하는 빛이 없고 이혼을 강요한다. 허락하지 않으니까 하루는 간부와 공모를 하고 남편의 밥에다 독약을 넣어 처치하기로 결심하였다. 남편이 하루는 밥을 먹다가 토하고 구사 일생하였다. 여자를 불러 책망을 하니 조금도 회개하지 않고 반항을 한다.

할 수 없이 간부를 책망하고 어서 내 눈 앞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가서 잘 살라고 놓아주었다. 간부는 손에 손을 잡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가서 재미있게 살았다. 그러나 죄악으로 맺어진 사랑은 오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사나이는 그 여자를 술집 유곽에다가 팔아먹었다.

그 여자는 불의의 씨를 배고 만삭이 되어서 술단지를 부둥켜안고 오고 가는 뭇 사람에게 술을 팔고 육체를 팔아 비참한 고통의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 본남편이 일본을 갔다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오랜만에 그 여자를 보고 너무 반갑고 감격하여 달려가서 "너 이거 웬일이냐" 하고 손목을 꽉 잡으니 그 여자는 깜짝 놀래어 가만히 있다가 눈을 흘기며 "무얼하러 왔소?" "나는 너를 보러 왔다," "이것을 보면 뭘해요?" "너 내 품을 떠나더니 잘 되었구나," "잘됐건 못됐건 당신이 무슨 상관이요," "대관절 얼마에나 팔려 왔노?" "물어보구려," " 여보, 주인! 이 여자 얼마에 사 왔소?" "돈 많이 주었지요." "여보시오, 이 여자 도로 물러 주시오. 이 여자는 내 아내요"하고 많은 배상금을 치르고 찾아내었다.

그 여자 말하기를 "저는 데려다 무엇해요?" 했지만 "어서 가자.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아닌가?"하고 데리고 한국에 건너 와서 그 간부의 자식을 낳게 했다.

그 남편은 그 아이를 제 아이보다 더 사랑하고 귀여워하며 그 더러운 여자를 전보다 더욱 사랑하여 주었다. 이제 이 여자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 말이오.

그 여자는 누구요? 이 글을 쓰는 나를 비롯하여 모든 인생들이다. 없던 우리를 세상에 귀한 인간으로 만드시고 핏덩어리로 생겨난 우리를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고 길러 주심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신 양심대로 살다가 영원한 천국의 복락을 누리게 하고자 함이니 우리는 간부 같은 악마에게 속아서 생명의 근원이요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다.

또한 속절없이 멸망을 받을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까지 주시고, 독생자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시어 탄생이후 최후까지 십자가를 지시고 녹아지고 사라지어 피 한 방울 남기지 않으시고 쏟아 우리를 구원하사 악마의 포로 됨을 석방시키시고 멸망의 자식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영생의 복락을 누리게 하였으나 우리는 그 사랑 그 은혜를 등한히 하고 과거에 주님 가슴에 창칼을 박은 것도 원통한데 가시 같은 잔못을 계속하여 박아드렸다.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간절하신데 너희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뇨.

이와 같이 넓고 크고 깊고 크신 사랑에

아직 감복 않는 자야 사람이라 할까

죄인 괴수 이 사랑에 녹아지어서

이 몸 드려 이 사랑을 전하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올 터인데 너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뇨?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은 두 가지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첫째는 개인에게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올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며, 둘째는 주님의 재림의 날이 도적같이 오실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성결하고 승리의 생활을 하려면 우리의 생명이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함을 잊지 말 것이다. 과연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룻밤에 무슨 일이 생길는지 모르느니라.

어느 사람은 밤에 자다가 죽고, 밥 먹다가 죽고, 차를 타고 가다가 죽고, 자동차 사고로 죽고, 일하다가 죽고, 학교에서 죽고, 설교하다가 강단에서 쓰러지고, 기도하다가 죽는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아침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잔칫집에 있느니라.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솔로몬 임금은 말하셨다.

인삼녹용 좋다 해도 늙는 길 못 막고

진시황의 불사약도 죽는 데 허사라

인생 한 번 죽는 길을 누가 감히 피할쏘냐

분명하다 이 큰 사실 너도 나도 다 당하네.

주님은 도적같이 다시 오신다. 심판하러 오신다. 주님의 택한 신부를 영접하러 오신다. 심판하러 오신다. 주님의 택한 신부를 영접하러 오신다.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것도 두 가지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첫째는 어느 때 오실지 알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생각하지 않을 때에 오신다고 하였다. 그런고로 너희는 예비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종종 부흥회 갔다가 밤중에나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식구들이 깊이 잠들고 방심하였다가 당황하는 것을 많이 본다.

내가 수원서 교역할 때 일이다. 전도사하고 심방을 갔었다. 때마침 여름이라 시어머니, 며느리, 딸 모두가 옷저고리를 벗고 치마를 벗고 홑바지 바람으로 마루에서 발을 치고 낮잠들을 자고 있었다.

전도사가 들어가면서 "여보세요, 이거 웬 잠을 잡니까? 선생님 오십니다." 하니까 모두 일어나 서면서 "야, 내 치마, 내 적삼" 하며 떠드는 것이다. 주책없는 시어머니는 먼저 치마를 입고 치마끈을 매면서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한다. 나는 다 입은 줄 알고 따라 들어갔더니 며느리가 아직 적삼을 못 입고 헤매다가 내가 들어가니까 "에구머니나"하더니 뒷문으로 벌거숭이로 뛰어나간다. 나는 모르는 척하고 앉아서 기도하는데 며느리는 저의 딸 이름을 부르면서 "영자야, 영자야, 내 적삼 내 적삼"하니 영자는 아무리 보아도 적삼이 없다. 잠잘 적에 어디다 구겨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 때 성경 한 절이 생각났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세상 술에 취하여 허영의 꿈을 꾸면서 의의 옷, 성결의 옷, 사랑의 옷, 광명한 갑옷을 다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를 옷 입듯 하라 하셨는데 그리스도와 친근하지 못하고 스스로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라오디게아 신자 같은 자가 부지기수이다.

또한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은 쫀쫀한 신자, 값있는 신자, 좋은 신자 데려간다는 것이다. 도적이 오면 헌 기저귀 같은 것 가져갈 것인가? 금가락지, 양단 저고리, 하여간 귀중한 것 가져갈 것이요.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첫 손에 도적을 맞아야 한다.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할 때에 한 사람은 데려 가고 한 사람은 버려 둔다. 열 처녀 중에 다섯은 데려가고 다섯은 버림받은 것이다.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뇨? 생각하라.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씨뿌리는 비유하신 것을 우리는 안다. 어느 농부가 씨를 뿌리니 어느 씨앗은 길가에 떨어져서 새가 와서 다 쪼아먹고, 어느 씨앗은 자갈밭에 떨어지니 싹이 나오나 뿌리를 깊이 박지를 못해서 해가 내리쬐니 또한 말라죽었고, 어느 씨앗은 가시덤불에 떨어지니 싹이 나와서 자라나도 가시덤불에 막혀 열매를 못 맺고 시들어지고, 마지막으로 옥토에 떨어진 씨앗은 깊이 뿌리를 내려 무럭무럭 자라나 열매를 백 배, 육심 배, 삼십 배를 맺었으니 귀가 있어 들을 자는 들으라 하셨다.

처음으로 듣는 사람들은 무슨 비유인지 짐작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씨앗은 하나님 말씀이다. 이 말씀은 꼭 씨앗과 같다. 씨앗은 어떤 것은 납작한 것도 있고 둥그스름한 것도 있고 길쭉하고 모난 것도 있다. 여러 가지 빛깔로 보잘 것 없이 작은 것이지만 그 놈이 땅 속에 들어가면 위대한 역사를 하는 것이다.

이 성경 말씀은 어떻게 보면 신화책 같기도 하되 역사책 같기도 하고 잡지책 같기도 하지만 사람의 심정에 들어가면 나 같은 알부랑자가 변하여 목사가 되어 일생을 많은 열매 맺는 일을 하게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씨앗을 받는 마음 밭은 대개 네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첫째는 길바닥과 같이 걍퍅한 마음이다. 길바닥은 사람이 왔다갔다하고 짐승이 왔다갔다하고 자동차가, 수레가 다녀서 뺀질뺀질 닳고 굳어졌다. 오늘날 모든 사람 마음 속에 길바닥 같은 마음, 돌과 같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공작새와 같은 교만이 왔다 갔다 하고, 염소와 같은 음란이 왔다 갔다 하고, 돼지 같은 욕심이 왔다 갔다 하고, 호랑이와 같은 포악함이 왔다 갔다 하고, 독사같은 복수심이 왔다 갔다 하고, 여우같은 의심이 왔다 갔다 하여 그 마음은 단 쇠에 화인 맞은 것 같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도 아무 감응이 없는 것이다.

둘째는 자갈밭 같은 마음이다. 자갈밭은 겉에는 흙이 있으나 속에는 돌멩이가 있어 씨앗을 냉큼 받기는 잘 받으나 속에 뿌리를 박지 못하여 시험을 이기지 못하니 오래 못 가는 일시적인 감정적 마음이다.

천로역정에서 기독도를 따르던 이천은 마음이 연약하여 우울니 절망소로 빠질 때에 그만 기독도를 원망하고 돌아간 것이다. 자라 모가지는 평안할 때에는 한 발만치 쑥 나오다가 무엇이 건드리면 쑥 들어가고 만다. 무슨 칭찬이나 받고 영광이 나오면 신이 나서 덤비다가도 좀 어려운 일 만나면 아이구 난 모르겠다 하고 물러가는 마음은 자갈밭이다.

셋째는 가시덤불 마음이다. 아무리 복음의 씨가 자라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탐심은 곧 우상숭배이니라.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가면 주초도 끊고 오입도 안 하니 돈 모으고 경제하리라 하고 주일날 교회에 나가니 연보대가 도니까 "에크, 여기도 돈 드는 곳이로구나"하고 물러났다 한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수전노가 되어 욕심만 부리다가 이도 저도 다 놓쳐 버리는 가시덤불 인간은 가엾기 짝이 없다.

또한 걱정 근심의 가시덤불이다. 걱정해야 소용이 없고 염려해야 생명을 일각이나 더할 수 없건마는 무얼 먹을까, 무얼 입을까, 무얼 마실까 염려의 가시덤불로 귀한 생명의 씨앗이 자라지를 못하는 것이다.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어라 저가 너를 권고하시느니라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라(시 55:22). 큰 보따리 작은 보따리 다 주께 맡기면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하면서 찬송과 감사로 사는 자는 행복하다. 그러니 길바닥에 떨어진 놈도 실패요, 가시덤불에 떨어진 놈도 실패이니 낙망 실망이다. 그러나 걱정말라.

마지막 옥토가 있는 것이다. 그곳에 떨어진 놈은 무럭무럭 자라나서 열매를 백 배나 얻으니 길바닥, 자갈밭, 가시덤불, 본전의 네 알이 썩어지고도 96개나 남은 것이다.

아니 60배 자리만도 본전까지 네 알이 썩어지고도 56개가 남는 것이다. 아니 제일 적게 거두는 30 배 자리도 길바닥, 자갈 밭, 가시덤불, 본전의 네 알이 썩어지고도 26개가 남았다.

전도자도 이 재미에 돌아다니는 것이다. 전도받은 많은 사람이 실패를 할 때 낙망이 되나 그래도 여기저기 옥토들이 있어 나의 전도를 받아 목사 된 사람이 부지기수요 장로, 집사, 전도사가 된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나 같은 죄인 괴수도 그 씨앗이 싹트고 자라 꽃피고 열매 맺되 35년간 많은 열매를 맺었으니 일본으로, 만주로, 한국 각지의 농촌, 도시, 산촌, 섬, 여러 곳에 맺힌 열매를 볼 때 위로가 풍성하다.

그러나 또 일변 쭉정이가 많아 세상 풍조에 날아가고, 이단 바람에 날아가고, 환난 시험 바람에 날아가는 자도 많은 것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도 알맹이 있는 알곡들이어서 결단코 어느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고 주의 곡간에 들어가는 자도 많은 것이다.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뇨? 길바닥이냐, 자갈밭이냐? 가시덤불이냐, 옥토냐? 또한 알곡이냐, 쭉정이냐?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사르는 심판의 주님이 문 앞에 이르렀나니 한 사람도 멸망치 않는 불에 사르는 심판의 주님이 문 앞에 이르렀나니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여 성신받아 알맹이가 있는 알곡, 열매를 맺는 알곡, 모든 바람에 날지 않는 알곡이 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