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생명 체험자의 특징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 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1-10)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이 우주의 생명의 본체이시오 생명의 근원이시다. 생명의 대동맥이 그로 인하여 뻗쳐 있는 것이며, 모든 만물은 다 거기서 발생한다. 그는 곧 우주의 대주재 되시는 분이신 것이다. 하나님이 만일 마음속으로 자기만 생각하시고 그 신과 기운을 자기에게로 거두어들이시면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할 것이요 사람도 반드시 진토로 돌아가리로다(욥 34:14-15).

이것은 꼭 전구(電球)와 같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내면 밝은 빛이 있으나 전기를 거두면 암흑 세계가 된다. 지금부터 1900년 전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보이는 생명으로 나타나셨으니 곧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안에 있는 독생자가 나타나셨느니라(요 1:18). 이 생명은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생명이다.

우리가 눈으로 본 바요, 귀로들은 바요, 손으로 만진 바요, 마음으로 상고한 바라고 요한 사도는 체험의 종교를 증거 하셨다. 체험이 없는 종교는 거짓이요 해골과 같은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이 생명을 체험하는 실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생명의 약동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생명을 체험한 자는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1. 생명 체험자는 빛 가운데 행한다

생명의 하나님은 빛이시니 털끝만큼도 어두움이 없으시다. 우리는 먼저 빛 가운데에서 자기의 진상을 철두철미하게 보고 법률상으로 지은 죄, 도덕상으로 지은 죄, 양심상으로 지은 죄를 모두 깨달아 회개하게 된다. 아무리 교회 출입을 하고 성직까지 맡아 교회 일을 한다고 하여도 자기의 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도 생명의 주를 체험하지 못한 자이다.

예수는 죄인의 친구라고 하셨다. 죄를 아는 비례대로 예수를 알고 예수를 아는 비례대로 죄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캄캄한 밤중에는 이것저것 보이지 않으나 차차 밝아 오면 다 드러나게 되며 차 문틈으로 가늘게 햇빛이 들어오면 뽀얀 먼지까지라도 다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내 죄가 내 머리털보다 많다고 하였고, 바울은 자기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고, 천로역정을 지은 존 번연은 자기 속은 변소 속의 구데기 같고 죄가 나오는 것이 샘물이 샘에서 솟아나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어거스틴 성자는 다섯 살에 어머니 젖 빨다가 젖꼭지 깨문 죄까지 발견하고, 필자는 여덟 살 때 사촌 형님 집에서 달걀 도적해 먹은 죄까지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수리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이 문둥이와 같은 자기 죄의 진상을 빛 가운데서 발견하여 회개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빛 가운데에 행한다는 것은 광명 정대하게 승리의 걸음을 걷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생명을 체험한 자는 자기의 잘못을 철두철미하게 깨달아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성신을 받아 기쁨과 감사에 넘치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신을 힘입어 의와 평강과 기쁨으로 사는 것이다(롬 14:17).

어떤 사람은 자기의 죄와 허물만 보고 또 자기의 부족과 불결만을 생각하여 밤낮 애통하며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주랴.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죄만 행하게 된다."는 부르짖음으로 항상 침울한 생애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은 로마서 8장에 있는 말씀과 같이 사는 사람이다. 그런고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죄를 정죄함이 없느니라(롬 8:1).

왜 그런고 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신의 법이 나를 놓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하였기 때문이다. 누가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 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날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나 권세 잡은 자나, 지금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은 곳이나 깊은 곳이나 창조함을 받은 아무 것이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능히 끊지 못하리라(롬 8:37-39).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이김을 얻고도 남음이 있느니라. 할렐루야.

2. 생명 체험자는 대언 자를 의뢰한다

만일 누가 범죄를 하면 그를 위하여 아버지 앞에 대언 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요일 2:1).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 하였다. 즉 생명을 체험한 자는 죄를 얻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원칙적으로 인간은 죄를 짓게 마련인데 하나님께로 난 자는 원칙적으로 죄를 못 짓는다는 말이다.

인간은 구정물을 원칙적으로 먹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돼지는 원칙적으로 구정물을 맛있게 먹는다. 돼지 같은 인간, 중생하지 못한 인간들은 원칙적으로 죄를 재미있게 짓는 것이다. 그렇지만 새 생명을 체험한 중생의 사람은 원칙적으로 죄를 짓지 못한다. 그래도 부지중에 인간성의 연약함으로 범죄하게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어떤 때 나는 목욕을 하다가 잘못하여 목욕물을 꿀꺽 마신 적도 있다.

우리가 만일 범죄하여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죄많고 죄 많고 더러운 자식인 우리들이 그와 교제할 수 없게 될 때에 대언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교통의 사다리가 되어 주시는 것이다.

대언 자라는 의미는 "보혜사", "위안자", "곁에서 부르짖는다", "변호사"이다. 우리의 변호사는 우리 사건이 불리하게 될 때에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배상 지위에 서서 자기의 피의 제사로 승소하여 주시고야 마는 분이시다. 이러하신 대언 자를 절대 의뢰하는 신앙이 생명 체험자의 특징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3. 생명을 체험한 자는 그 계명을 지켜 행한다

예수로 구원받아 생명을 소유한 자는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하심과 같이 행하여야 한다. 물론 우리들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나 도덕, 수양,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력이 아니요 타력인 절대 주님의 은총으로 되는 것이다. 그 생명을 체험한 자는 그 능력이 내부에 주입되어야 그 계명을 준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계명은 무엇인가? 물론 모든 주의 율례와 말씀과 법도이다. 특히 여기에 계명은 요한 복음 13장 34절을 보시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나니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 할지니라. 너희가 서로 사랑함으로 모든 사람이이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 알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자키라(요 14:15).

그 계명은 참되고 영원하고 광대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형제를 사랑할지니 이는 우리가 주께 받은 계명이니라(요일 4:21).

사랑은 아무리 오래 있어도 새 계명이다. 사랑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아름답고 신선한 것이다. 사랑을 행하는 자는 빛 가운데 행하는 것과 같이 무엇에든지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사랑에 굶주린 자들이 많다. 우리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여 불행한 자가 아니라 사랑을 주지 못하여 불행한 자임을 기억할 것이다. 서로 사랑하자.

4. 생명을 체험한 자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사람이 만일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마음에 있지 아니하니, 대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다. 우리의 원수를 네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으니 사탄과 죄악의 성질과 세상과 사망이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바울을 떠났다. 많은 신자들도 세상을 사랑하므로 하나님과 멀어지고 점점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 복음 3장 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하였는데, 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인가? 이 세상을 하나님이 지으시고 "아름답다"고 또 "좋다"고 하셨다. 일월성신, 금수어충, 수목화초로 장식된 아름다운 세계이다. 어떤 염세주의자들 혹 열광적인 신자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성구를 오해하여 탈선의 행동을 하는 수가 많다. 때문에 이단사설(異端邪說)이 생기는 것이다.

그럼 여기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자기의 정욕의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세상의 자랑,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아욕으로 된 세상을 말한다. 이러한 세상은 허무한 것이며 가고야 마는 것이다. 이 세상과 함께 정욕도 가 버리고 모든 것이 지나가 버리고 만다.

홍안 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영웅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마라. 유수 같은 세월은 너를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 묘는 너를 기다린다. 간다 간다 하더니 청춘이 가고요, 온다 온다 하더니 백발과 죽음이 왔도다. 형제들아. 남은 때가 얼마 되지 못한 고로 아내 있는 자는 없는 것같이 하며, 우는 자는 울지 않는 것같이 하며, 기뻐하는 자는 기뻐하지 않는 것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는 없는 것 같이 하며, 이 세상 물건을 쓸 때에 만족하게 쓰지 마라. 대개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가는 것이다. 너희가 염려 없기를 바라노라(고전 7:29-32).

이 세상은 잠깐 가는 중에도 눈물과 괴로움으로 가득 찬 곳이다. 아마 이 세상에서 근심과 걱정과 고통을 빼 놓는다면 세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으로 버티어 나가는 듯하기에 말이다. 채제공(蔡濟公)이란 사람이 말하기를 "아기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우는 것은 왜인지 그대는 아는가? 인간이 세상에 떨어지자 만 가지 근심이 생기는 까닭이라" 하였다.

또한 이 세상은 벌레가 먹는 박넝쿨이다. 하나님의 종 선지 요나는 자기를 위하여 장막을 만들고 내리 쬐는 햇벼에 몹시 괴로워하던 차에 하나님이 박넝쿨을 그 머리에 덮으니 요나는 박넝쿨을 심히 사랑하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 이튿날 벌레 한 마리가 박넝쿨을 다 씹어 시들어 말라서 죽어 버리니 요나는 불평불만으로 가득하여 자기도 따라 죽겠다고 하였다. 참으로 천박한 감정이었다.

솔로몬의 부귀 영화도 벌레 먹는 박넝쿨이요, 바벨론의 장한 경치도, 진시황의 만리장성도, 일본의 천황도, 공산당의 스탈린도 다 벌레 먹는 박넝쿨이로다. 모든 인간들은 자기 중심으로 일시적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세상을 사랑하다가 망하고 마는 것이다.

천로역정에 보면 진 충이란 사람이 천성 가는 길에서 노아당 영감을 만났다. 영감은 자꾸만 자기 집에 가자고 한다. 왜 가자느냐 하니 자기의 딸이 삼 형제가 있어 사윗감을 고르는데, 자네를 보니 마음이 든다고 사위되라고 한다.

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니 첫째 딸은 호색(好色)이요, 둘째딸은 탐재(貪財)요, 셋째 딸은 고명(顧名)이라 한다.

이것이 곧 호색은 육신의 정욕이요, 탐재는 안목의 정욕이요, 고명은 이생의 자랑이다. 많은 사람은 여기에 장가들어 현재를 망치고, 장래를 망치고, 육체를 망치고, 영혼을 망치고 마는 것이다.

1. 호색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인 소돔과 고모라가 이 죄악으로 유황불을 받아 사해가 되었고,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하던 삼손도 이 죄악으로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성군 다윗도, 솔로몬도 호색인 육신의 정욕으로 실패하였다.

내가 아는 유력한 신자, 교직자들까지도 이 호색의 정욕으로 실패한 자가 부지기수이다. 여자의 생명은 정조인데 여자가 정조를 잃으면 생명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못된 사나이들은 왜 여자에게는 정조를 원하면서도 자기들은 정조를 안 지키는지 알 수 없다. 다른 죄는 다 몸밖에 있으나 이 죄악은 몸 안에 있다고 하였다. 회개하기에 제일 어려운 죄악이란 말이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말 2:15).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기업을 팔아먹은 에서와 같이 되지 말고 이국 타향에서도 생명을 내걸고 정조를 지킨 요셉을 본받아 거룩한 생활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2. 탐재

가룟 유다는 여기에 장가들어 선생을 팔아먹고 자살하여 지옥의 자식이 되고, 발람은 여기에 장가들어 안 가야 될 길을 가다가 저주를 받고, 엘리사의 제자 게하시도 여기 장가들어 문둥이가 되었다. 돈을 탐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돈이 사람을 따라와야지 사람이 돈을 따라가다가는 망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육체가 물질의 힘으로 산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쳐서 심령에 빈틈이 생겨 그곳이 물욕으로 가득 차게 되면 물질로 망하는 것은 필연적 사실인 것이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딤전 6:17). 범사에 돈을 탐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 알라(히 13:5).

3. 고명

이생의 자랑이다. 아나니아 부부가 여기에 장가들어 망하고 헤롯은 충을 먹어 죽었다. 유방백세(流芳百世) 못하면 유취만년(流臭萬年)이라도 하겠다고 많은 사람은 허영과 명예심에 들떠 야단들인 것이다.

감투 하나 얻어 쓰겠다고,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해방 전의 죄보다도 해방 후의 고명 바람에 쓰러지는 자가 부지기수이다. 진정한 애국자들도 많겠지마는 애국을 빙자하여 고명에게 장가들어 목사, 장로의 성직을 모독하는 자가 적지 않은 것이다.

주님은 마귀가 와서 천하 영광을 다 보이면서 유혹할 때 단연 일축하여 하나님 제일주의를 실천하셨건만 그를 따른다는 소위 신도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음행하는 여인같은 너희들아,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인 줄 알지 못하느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결말로 생명을 체험한 자의 특징은 빛 가운데 살고 걸으며, 시시각각으로 대언자이신 변호사인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나의 사정을 고백하고, 주의 계명을 사랑하고 수행하며,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분 토같이 버리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생활을 보내며,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려는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