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난 극복의 비결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약 5:13)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형통한 날에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 생각하라.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완전히 기뻐하라.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하라.

아마 이 세상은 환난 고통으로 버티어 놓은 것 같다. 환난 고통을 빼 놓으면 무너질 것이다. 앞집에는 근심이요 뒷집에는 한숨이요 옆집에는 눈물이요 곁집에는 슬픔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세상을 고해(苦海)라 하고, 성경에 다윗은 눈물의 골짜기라 하였다. 더구나 이 시대는 세계적으로 환난이요, 국가 사회적으로 환난이며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난이요, 종교적 정신적 사상적으로 심한 혼란 중에 있으니 앞으로 올 큰 환난의 시초인가 한다.

큰 비가 쏟아지려고 큰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감이 있다.

개중에는 "걱정마라. 나는 오늘 평안하다" 하는 사람 있을지 모르나 "안심마라. 내일에 무슨 환난이 닥칠지 알 수 있느냐?" 아침에는 웃음이 왔으나 저녁에는 슬픔이 오구요, 밤중에는 평안히 자고 일어났으나 새벽에 무슨 고통이 올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나는 돈이 없어 그렇지 돈만 있으면 아무 걱정 없겠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돈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잘 간수할 걱정으로 밤중에 개만 짖어도 잠이 안 오고 수상한 사람이 찾아와도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돈이 있다고 많은 사람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고 사돈의 팔촌 콩나물 대가리가 다 와서 뜯어먹으려 한다. 열 번 주다가 한 번만 안 주어도 원수 치부를 하는 것이다. "나는 아들이 없어 그렇지 아들만 있으면 아무 걱정 없겠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집에는 먹을 것은 없는데 자식이 너무 많아서 남의 대문 구멍에다 내어버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래 걱정, 저래 걱정, 고통의 세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교회에 나와서 위로를 받을까 했더니 또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목사는 신자를 나무라고 신자는 목사와 당회를 원망하고, 개교회와 노회 지방회 또는 총회 사이에 불평 불만이 가득하니 교회를 떠나 무교회주의로 나가는 자가 적지 않은 것이다.

또한 나가서 인기 있는 자를 따라가 보니 거기서도 실망을 느껴,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쓰러져서 영육이 멸망을 받는 자가 부지기수이다. 그러면 이런 고통과 시험을 극복할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앞서간 성도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승리의 비결을 상고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의 말씀을 기억하사이다.

첫째로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롬 5:3).

나를 인하여 너희를 핍박하면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상받을 것이 크리라(마 5:12).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 4:13)

고통과 시험이 올 때에 근심하건 두려워하지 말고 기쁘게 여기라. 왜 기뻐할 것인가?

1. 범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쓴 것이나 단 것이나 괴로운 것이나 즐거운 것이나 행복이나 불행이나 다 아버지로 인하여 있는 것이다(고후 5:18). 상대적 입장에 서지 말고 절대적 입장에 설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달콤한 은혜도 있고 쌉쌀한 은혜도 있느니라. 단 것만 너무 좋아하면 이가 썩는다. 그래서 쓴 것과 단 것을 화제(話劑)를 해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먹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다.

보시라. 욥은 있던 재산을 단번에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자녀 십 남매가 한꺼번에 몰살당하고 몸에 창질까지 났었으나 하나님이 주셨다가 하나님이 가져 가셨으니 찬미하리라고 하였다.

또한 다윗은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쫓겨가는데 시므이란 자가 나와서 저주를 했다. 아비새란 장군이 분개하여 가서 시므이의 목을 잘라 오겠다고 하니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야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므이더러 나를 저주하라고 하신 것이라고 너그러이 용서하였다.

또한 요셉은 형님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 갔다가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옥중생활을 하였으나 일약 총리대신이 되었다. 이십 년만에 형님들을 만나 요셉을 팔아먹은 죄상이 드러날 때 행여나 형님들이 두려워할까 하여 형님들을 위로하면서 형님들이 나를 이곳에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앞서 보내신 것이라고 말하였다(창 45:8). 얼마나 위대한가?

주님께서 악당들에게 잡히게 될 때 베드로는 칼을 뽑아 말고의 귀를 잘라 버렸던 것이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여 칼을 집에 꽂으라 칼을 끄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하셨다.

요나는 불순종으로 풍랑을 만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기도하기를 주께서 나를 깊은 바다에 던졌다고 하면서 그 앞에 회개한 것이었다(욘 2:3).

2. 신앙을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환난 고통은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진짠지, 가짠지,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모래 위의 집인지 반석 위의 집인지, 선한 목자인지 삯꾼 목자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알곡인지 쭉정이인지는 까불어 봐야 아는 것이다.

알곡은 까불면 까불수록 바싹바싹 까부는 사람에게로 들어가고, 쭉정이는 바람에 다 날아가고 만다. 모래 위의 집인지 반석 위의 집인지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장마물이 나 보아야 아는 것이요, 선한 목자인지는 이리가 와 보아야 아는 것이다. 평안할 때에야 누구인들 잘 못 믿으리오. 환난 풍파가 참 신자에게는 더욱 더 유익이 되는 것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시 119:71)하였다. 여자들 중에 내 짝은 가시밭의 백합화라고 하였다. 가시밭의 백합화는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 때마다, 연약한 꽃송이가 세찬 가시에 찔리면 찔릴수록 향기를 더욱 날리는 것이다. 즉 환난 중에도 감사와 기쁨의 향기를 잘 드러내는 예수의 신부들을 가리킨 것이다.

3. 환난 고통은 즐거움의 근본이다.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고 죽음이 없으면 부활도 없는 것이다. 꽃이 떨어지면 열매를 맺고, 엄동 설한 지나가면 양춘가절이 오고요, 어두운 밤 지나면 빛난 아침이 오는 법이다. 비가 올 때는 늘 올 것 같으나 해 나는 날 있고요, 바람이 불 때는 늘 불 것 같으나 잔잔한 날이 올 것이다.

인자의 날은 해산하는 수고와 같다고 하였다. 애기 어머니가 해산할 때는 죽을 고생을 하며 애를 썼으나 응애응애 하고 애기가 태어나 자랄 때에는 둥실둥실 내둥실 금자동아 옥자동아 하면서 좋아한다. 애기 날 때에는 다시는 안 낳는다고 하더니 낳은 후에는 좋아서 하나 더 낳으면 좋겠다고 한다.

우리 나라 민족이 왜정시대에 당했던 그 고통, 더욱이 대동아 전쟁 구년에 당한 환난은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수저도 내라, 밥그릇도 내라, 아들도 내라, 딸도 내라, 머리를 깎아라, 성을 갈아라, 몸뻬를 입어라, 콩깻묵 먹어라 할 때에 나는 얼마나 외쳤는가? 조금만 참으시오, 애기를 낳습니다 하였다.

과연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되어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천지가 진동하게 부를 때에 얼마나 기뻐했던가? 9년간의 전쟁고통은 결국 대한 민국 하나 나오느라고 야단을 친 것이다.

대한 민국이 나와야 또한 그 턱이지 요사이는 아이 낳고 훗배앓이를 이렇게 오랫동안 앓는가? 아니다, 적은 고통이 있으면 적은 기쁨이 있고 큰 고통이 있으면 큰 기쁨도 있으니 이것은 우리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세계적이다. 세계적인 고통이 있으니 앞으로 세계적 기쁨이 있을 것이다. 소망 중에 즐거워할 것이다.

4. 훈련시키는 도구이다.

환난 고통은 주께서 당신의 종들을, 당신의 자녀들을 훈련시켜 좋은 인물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도구이다. 산이나 들에서 생금(生金)을 파서 그대로 두면 아무 가치가 없으나 생금을 불 가운데서 녹이고 물 가운데 잡아넣고 방망이로 두드리고 쟁기로 아로새겨 좋은 패물을 만드는 것이다. 신구약의 모든 성도와 역사상 귀히 쓰임 받은 인물들은 많은 환난 고통 중에서 훈련을 받았다. 요셉이 그러하였고 모세, 다니엘, 모르드개, 에스더, 요나, 바울 등 여러 성도들이 환난 고통 중에서 연단을 받아 귀히 쓰임을 받았다.

필자도 골막염 삼년에 알부랑자가 변하여 주의 종으로 이만큼 쓰이게 된 것이다. 지금도 종종 주의 뜻대로 살지 못하면 징계의 채찍으로 훈련시키어 정화시키심을 체험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단 훈련받아 자기들을 정화시킬 터이나 악한 인생들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지혜로운 자는 깨달으리라(단 12:10).

하나님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여 그 거룩하심을 한 가지로 얻게 하시려고 징계하시느니라(히 12:10)

가시밭이 백합화에게 불행이 아니다. 가시밭이 없으면 장난꾼 아이들이 와서 그 꽃을 꺾어갈 것이다 가시밭이 있으므로 장난꾼들이 만지지도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사면에 있는 환난 고통의 울타리가 결단코 불행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라는 것을 아는 자는 참으로 행복하다.

그런고로 너희가 여러 가지 환난 시험을 당하거든 기쁘게 여기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야고보는 1장에서는 기뻐하라고 했으나 인간성을 잘 이해하여서 덮어놓고 기뻐만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5장 13절에 가서는 너희 가운데 고생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하라고 하였다.

사실상 인간들은 기뻐해야 될 줄 알면서도 막상 고난에 부딪히게 될 때에는 당황하고 걱정이 생기고 의심이 생기고 낙망이 되게 된다. 육을 가진 인간성이다. 그래서 고난 극복의 비결로 기도하라신 것이다. 그렇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모든 환난 시험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주님께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의 기도가 있었으나 제자들은 잠만 잤다. 그 때에 예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얼마나 간곡히 부탁하셨는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의 평강이 사람이 지각에 뛰어나게 이루어 주시리라 하였다(빌 4:6-7)

5. 환난당한 자의 기도할 이유

첫째로, 기도하면 환난 고통이 왜 오는지 그 뜻을 알게 되는 것이다.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의 음성이라 한다. 길을 가다가 발로 돌을 차게 되어 발가락이 아파 견디기 어려울 때 처음에는 돌을 원망하고 돌을 거기에 놔둔 사람을 저주할 마음이 생기나 다시 반성하여 기도한다.

"하나님이시여, 내가 가지 않을 길을 갑니까? 좋지 못한 생각을 합니까?" 여러 가지로 반성하여 나의 부족을 나의 잘못을 찾아 교정하게 된다. 또한 죄만 있다고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생각이 나지 않으면 거기에는 어떤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를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만사가 합동하여 유익하게 됨을 깨달아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불행이 변하여 행복이 되고 실패가 변하여 성공이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둘째로, 환난 중에 기도하면 그 환난이 신기하게도 물러가고 그 어려운 일이 바로 잡히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기도로서 사자의 입도 막았으며 불의 기세를 멸하기도 하고 칼날을 피하고 홍해를 가르고 적군을 하룻밤 사이에 물리쳤고 모든 질병도 물러가게 하고 연약한 자들도 강하게 된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이기도 할 때에 모든 것을 갚아 주신다고 하셨다.

갚아 주신다는 말씀은 바로잡아 주신다는 말씀이다. 내가 잘못한 것도 바로 잡아 주시고 상대편의 잘못한 것도 바로 잡아 주시고 마귀 역사도 바로 잡아 주시고 자연계의 질서도 바로잡아 주신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갈매기 동상이 있다고 한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수백년 전에 청교도들이 미국을 개척할 때에 농사를 짓는데 황충의 재난으로 농작물이 전멸하게 되었으므로 청교도들은 밭 모퉁이에 엎드려 결사적인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 때 난데없이 갈매기 떼들이 수만 수 천 마리가 와서 황충을 다 잡아 먹고 똥을 싸고 달아나니 그것이 거름이 되어 그 해 농사가 참 잘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조상들은 갈매기 동상을 세워서 자자손손 신앙을 고취시킨다고 한다. 환난은 인간을 기도로 가게하고 기도는 인간으로 환난에서 떠나게 하느니라.

셋째로, 환난 중에서 기도하면 그 의미를 알고 또한 기도하면 환난이 물러간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환난이 물러가지 않아도 그것을 박차고 힘차게 넘어가는 용기를 얻게 된다.

신앙에서는 소프라노도 잘해야 하지만 베이스를 잘해야 하는 것이다. 하늘 나라에는 올라도 잘 가야 하지만 내려도 잘 가야 한다. 자, 보시라. 히브리서 11:17-35 상반절까지는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모든 난관을 물리치고 승승장구(乘勝長驅)로 올라가며 모든 난관이 추풍낙엽(秋風落葉)과 같았다.

소프라노를 잘하였다. 그러나 35절 하반절부터는 모든 환난을 다 그대로 받아서 형편없이 내려갔다.

희롱과 채찍을 받고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을 받았고 돌로 매맞고 톱에 키고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궁핍과 환난 고생 당하였고 광야와 산중의 암혈과 토굴에서도 잘 참고 견디고 베이스를 잘하여 내려가면서도 찬송과 감사로 승리한 것이다.

6·25 후에 안동 책거리란 교회에 집회를 갔더니 첫날부터 은혜가 막 쏟아진다. 그러나 다음날 빨치산들이 내려와 신자들의 집을 불사르는 환난을 당하니 얼마나 고통이요 실망일까 하고 걱정했더니, 그 신자들은 조금도 낙망하지 않고 "목사님, 참 감사합니다. 그 전에는 집을 지키느라고 부흥회를 해도 번갈아 다니면서 은혜를 마음껏 못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 집이 없어져서 온 식구들이 아이들까지 와서 몽땅 받으니 참 감사합니다." 한다. 감사하려면 안 할 것이 없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지은 노래가 "가시밭의 백합화"란 노래이다.

가시밭의 백합화 주의 성도여

쉬지 않고 찌르는 고통에

남 모르는 눈물이 몇 번이던고

주님께서 네 눈물 씻으리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나의 사랑은 아름다운 향기를 떨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