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천국민의 생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은 예수의 산상보훈이며 황금률이다. 그 산은 팔복산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그 산에서 설교하신 제목은 천국이다. 그래서 5장 1-12절에서는 천국의 품성 여덟 가지, 즉 가난한 마음, 애통하는 마음, 온유한 마음, 의를 사모하는 마음, 자비한 마음, 정결한 마음, 화목한 마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핍박을 받으면서도)을 말씀하시고, 13-16절에서는 천국민의 사명을 가르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산 위에 세운 성이라고 말씀하셨고, 17-48절에서는 천국민의 율법을 가르치셨다. 모세의 옛계명과 주님의 새 계명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6장과 7장은 천국민의 생활이다. 6장은 하나님에 대한 생활, 7장은 사람에 대한 생활을 말씀하시고 마지막 결말은 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의 비유로 천국민의 도리를 명백히 가르치셨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 6장에 있는 "천국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제목으로 은혜 받고자 한다.

1. 천국민은 사람을 보지 않음

삼가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말라. 그리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1). 상대적 입장에 서지 말고 절대적 입장에 서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모두가 사람에게 곱게 보이려고, 사람에게 칭찬 받으려고, 사람에게 영광 받으려고 애를 쓴다. 여기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은 구제할 때에 나팔을 불어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쌀 한 됫박씩 나누어 주고는 칭찬은 한 섬씩 받아먹고, 기도할 때에는 길가에 서서 남에게 보이려고 신령한 성자란 칭찬 받으려고 외식하는 기도를 하고, 또 일주일에 금식을 두 번씩 하되 슬픈 기색을 하고 궁상을 떠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들은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고, 기도할 때에는 밀실에 들어가 하나님 보시는 앞에서 하고, 금식할 때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세수하고 몸단장을 깨끗이 하고 남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다. 남이야 알아주든지 말든지, 칭찬을 하든지 욕을 하든지 상관 말고 진실되게 하나님 앞에서 성실히 살라는 것이다.

요셉은 외국 타향에서 보디발 장관의 가정에 총무로 있으면서 장관 부인이 사랑의 유혹을 할 때 30대의 청년으로서의 본능과 생리적 유혹을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리까"(창 39:9)하고 뿌리쳤던 것이다.

또한 자기를 미워하고 시기하여 죽이려다가 아라비아 상인들에게 팔아먹은 철천지원수인 형들이 흉년들어 양식을 사러 애굽에 수십 년만에 왔을 때, 총리 대신 요셉은 형들을 만나 자기 정체를 밝히고 그들이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하니, 당신들이 나를 팔아 이곳에 오게 함으로 인하여 근심하고 한탄하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구하려고 나를 앞서 보내셨다. 또한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5)고 그 형들의 죄를 너그럽게 용서하였다. 하나님 앞에 사는 자는 이러한 것이다.

또한 여리고에서 불한당 만난 사람을 제사장이 보고도 그냥 지나가고 레위사람도 그냥 지나갔다. 아마 그 불한당 만난 사람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나 시장에서 죽어 간다면 남보다 먼저 구제하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산 속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있으니 구해 주어야 칭찬을 받지도 못하겠으니까 양심을 속이고 그냥 지나간 것이다.

사람 앞에 보이려고 의를 행하는 가증된 인간들의 대표가 아닌가?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원수같이 여기는 유대 사람을 누가 보든지 말든지 자기의 위급한 생명도 돌아보지 않고 몸과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여 여관까지 데려다 주고 치료비가 모자라면 돌아올 때 갚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끝까지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하나님 앞에 사는 양심의 자비로움에 순종하는 사람의 대표가 아닌가?

스스로 속이지 말라 .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갈 6:7).

2. 천국 백성은 기도한다

천국민은 기도의 사람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호흡을 보고 아는 것이다. 그의 영혼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기도의 호흡을 보고 아는 것이다. 하늘 나라에는 기도의 사람들만 모인 곳이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다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거문고는 찬송이다)와 금대접을 가졌는데 거기 향을 가득히 담았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라 하였다(계 5:8). 항상 기도하고 게으르지 말라고(눅 18:1) 주님은 지상 명령을 하셨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는 하나님의 뜻이라 하셨다(살전 5:1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

기도는 마귀 시험을 이기는 무기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지각에 뛰어나게 하리라(빌 4:6). 기도는 평강의 원동력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마땅히 정신 차리고 기도하라. 제일 긴한 것은 열심히 사랑할 것이니라(벧전 4:7-8).

기도는 하나님께 대하여 신앙의 행위요, 사람에게 대하여 사랑의 행위니라.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하는 기도는 가짜 기도요, 기도하지 않고 하는 사랑은 동물적 사랑이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법을 가르쳐 주셨다. 과연 주기도문은 우리 기도의 모범이다.

첫째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기도의 대상을 말한다. 나는 이전에 어렸을 때 군수의 아들과 놀았다. 나는 군수의 아들이 부러워서 침을 흘렸다. 군수 영감이 군청에서 나오면 그 아들 효동이는 "아버지" 하고 달려가서 돈내라고 조른다. 그러면 비단 주머니를 열고 이십 전, 십 전을 덜렁덜렁 꺼내 주니 효동이는 내 손목을 잡고 과자점에 가서 과자를 사준다. 나는 그걸 조금씩 얻어먹느라고 따라다니면서 왜 우리 아버지는 군수도 못했노 하고 탄식했었다.

그러나 내가 스물 한 살에 참 중생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똑바로 안 다음부터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다 없어졌다. 왜? 우리 아버지는 군수, 도지사, 대통령, 임금이 아니라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온 우주의 대주재 되시는 분이란 것을 알았고, 내가 바로 그의 아들이란 특권을 가진 것을 생각할 때 기도는 능력이 있고, 생명이 있고, 응답 받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기도의 목적이다. 성부의 이름, 성자의 나라, 성신의 뜻, 삼위일체의 영광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여야 한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요, 궁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내 욕심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생활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기도하여야 한다.

셋째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나 자신의 생활을 위해 기도한다. 일용할 양식을 우리는 원해야 한다. 하루 먹을 것이면 족하다. 내일 먹을 것까지 한꺼번에 구하지 말고 매일매일 구하는 것은 매일 매일 감사를 하기 위함이다.

배급 타 먹는 기도이다. 우리 집 창고에 쌀이 몇 백 가마니가 있어도 내 것이 아니요 다 주님 것으로 바치고 매일 매일 빌어 먹는 것이다. 구하지 않고 얻으면 감사함이 없다. 그래서 기도는 감사의 전제다. 매일 기도로 감사를 계속하기 위함이다. 하루 수고는 그날에 족하니라.

넷째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사죄의 기도이다. 이 기도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기도를 할 수 없는 구절이다. 그래서 내가 주님 앞에 죄사함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내가 남의 죄를 사하느냐 못하느냐의 표적이다. 너희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기 전에 누가 너를 원망하는 생각이 나거든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오라는 것이다(마 5:22).

다섯째는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은혜를 유지하는 기도이다. 한 번 승리하였다고 안심하지 말고, 한 번 큰 은혜를 받았다고 자만하지 말고, 쉬지 않고 오는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는 것은 기도로만 되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순간은 받은 은혜를 소멸하고 일곱 마귀가 우리를 점령하게 되니 조심하여야 한다.

여섯째는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결론으로 모든 것을 얻어서는 감사와 찬송으로 주께 돌리며 맡기는 생활이다. 다 바치는 기도이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이 정신과 범위 내에서 진행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될 것이다. 응답받는 기도가 될 것이다.

. 너는 하나님을 기뻐하라.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시리라(시 37:4).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3. 물질을 앞세우지 않음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이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고 하셨다. 먼저 생명 있는 말(馬)을 앞세우라. 그러면 물질인 마차는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멍텅구리는 마차를 앞에다 세우고 말을 뒤에다 세워서 일을 거꾸로 하는 우스운 일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고이래(自古以來)로 유물주의자, 자본주의자들이 물질 문제만 생각하고 영혼 문제, 생명 문제를 등한히 하는 , 다 거꾸로 된 세상이 되어 이렇게 혼란과 아우성 소리가 천지에 사무친다.

소위 하나님을 믿고 영혼을 위하여 산다는 성직자, 신자들까지도 물질에 사로잡혀 갈 길을 못 가고 탈선의 걸음을 걸어 비참한 구덩이에 떨어지는 자가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물질을 앞세우지 않는 생활이란 어떠한 것인가? 여기 물질을 앞세우지 않는 방법을 두 가지 방면으로 가르쳤다.

1. 부자에게 가르치셨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좀이 먹고,, 동록이 슬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는 곳이니 오직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이곳은 좀도 먹지 않고 동록도 못 슬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도 못하는 곳이라고, 즉 물질을 의롭게 사용하라고, 수전노가 되지 말라고 하셨다.

요한 웨슬레는 말하기를 돈 잘 벌어라, 돈 잘 모아라, 돈 잘 쓰라고 그리스도의 금전관을 가르쳤다. 참말로 돈 잘 벌기보다도 잘 쓰기가 어려운 것이다. 재산을 흩어 구제하여도 부해지는 수가 있고 으레 줄 것을 아껴도 가난하여지는 수가 있느니라(잠 11:24).

부하려 하는 사람은 시험과 유혹과 모든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沈淪)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탐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바치라 하셨다(말 3:10). 왜 십일조를 바치라는가?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고 하셨는데, 모든 만물이 다 주님의 것인데, 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가? 그것은 사람에게 복을 주려 하심이다. 물질이 생기면 얼른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물질이란 매력이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이끌어 애착심을 뜯어 바치는 것이다. 또한 물질적으로도 잘 쓰는 사람에게 더 주시는 것이다. 쓰면 범이 되고 안 쓰면 쥐새끼가 된다는 격언이 있다. 심는 자에게 씨를 주시는 것이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행 20:35).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롯과 아브라함을 보시라. 롯은 욕심을 부려 좋은 옥토 평야인 소돔과 고모라를 가졌으나 불이 내려 그 땅은 결국 현재의 사해가 되었고, 아브라함은 헤브론 산중 아주 나쁜 박토를 가졌으나 하나님의 축복이 그렇게 풍성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은 실험적인 진리인 것이다.

2. 무산자에게 가르치셨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 6:31).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곡간에 모아 두지도 아니하되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르시지 않느냐?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되 솔로몬의 지극한 영광으로 입은 옷이 이 꽃 하나만 못하지 않느냐? 적게 믿는 자들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풀들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고 보호하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욱 입히시고 보호하시지 않겠느냐? 그런고로 의·식·주로 인하여 염려하지 말라.

부자가 물질을 의롭게 쓰지 않는 것도 죄이지만 무산자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도 불신앙의 죄가 된다는 것을 경고하셨다.

나는 종종 형무소에 가서 죄수들을 모아 놓고 전도 강연을 한다. 얼마 전에 군산 형무소에 갔더니 죄수가 한 팔백여 명이 예배드리러 모였다. 그런데 몸도 다 튼튼하고 옷도 두껍게 입어 추위를 모른다. 그래서 소장보고 이 죄수들 밥을 얼마씩이나 주느냐고 하니 오홉밥을 준다고 한다.

나는 그때 "아하, 나는 먹을 걱정할 필요 없구나. 먹을 것 없으면 식구들 데리고 여기로 들어오는 것이 상책이겠다" 하고 웃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살인 강도 죄수들도 오홉밥을 먹이는데 왜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아보지 않으시리오. 엘리야 선지자가 굶어서 주릴 때에 까마귀가 떡을 물어다 공궤(供饋)하였다. 사렙다 과부는 자기 먹으려던 마지막 양식을 엘리야에게 대접함으로써 통 가물어 흉년이 되었어도 굶지 않고 잘 살았던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말고 주님께 맡기는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결론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이든지 상대적 입장에 서지 말고 절대적 입장에 서서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창 17:1)는 말씀을 목표로 항상 기도의 용사가 될 것이며,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대로 하나님 제일주의로 물질을 초월하여 천국민의 생활로 주께 영광을 돌릴지어다.